프랑켄슈타인 - 200주년 기념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메리 셸리 지음, 데이비드 플런커트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서평단으로 당첨되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아니 이런, 프랑켄슈타인!"(p70) 앙리 클레르발이 타고 있던 스위스 역마차의 문을 열어 다급히 친구의 이름을 부릅니다.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의 흔한 오해와는 달리 프랑켄슈타인은 누덕누덕 기워진 괴물이 아니라 그를 만든 박사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거든요. 새로운 종을 창조하겠다는 기괴한 열망에 빠진 프랑켄슈타인은 납골당과 해부실, 도살장에서 아름다운 육체들, 이를 테면 화려한 이목구비와 240 센티라는 키에 딱 맞춰진 팔과 다리, 근육과 동맥을 알맞게 덮은 피부, 윤기 있는 검은 머리카락, 하얀 진주 같은 이로 한 인간을 성형합니다. 피조물에게 생명이 깃들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외양은 그렇게까지 혐오스럽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이제 괴물은 깨어났고 칙칙한 눈구멍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쳐다보며 미소 엇비슷한 것을 짓고 있습니다. 축축한 노란 눈동자, 쭈글쭈글한 얼굴, 일직선의 새카만 입술, 발작하듯 꿈틀거리는 팔라디 앞에 프랑켄슈타인은 공포를 느낍니다. 창조주로서의 기쁨은 간데없이 혐오로 가득찬 마음은 그를 통제불가능의 상태에 이르게 하고 끝내 연구실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죠. 클레르발이 프랑켄슈타인을 목격한 것은 이 즈음으로 박사는 친구를 마주하며 꿈 같았던 지난 밤의 악몽을 잊고 현실에 발을 붙이며 약간의 희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클레르발을 데리고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는 피조물이 있을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진 않았겠죠. 또렷한 대책도 없으면서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실행에 옮기는 프랑켄슈타인의 무책임함은 소설의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아간 집에는 감사하게도 더는 그 괴물같은 피조물의 흔적이 없습니다.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프랑켄슈타인은 알고 싶지 않습니다. 피조물을 연구하며 보낸 시간, 피조물의 존재 자체를 인생의 페이지에서 단호하게 찢어버리고 다시금 행복해지고픈 마음뿐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프랑켄슈타인을 평화롭게 놓아둘 생각이 없는 듯 합니다. 고향의 동생 윌리엄이 누군가의 손에 목졸려 죽습니다. 프랑켄슈타인과 형제처럼 자란 저스틴의 옷가지에서 윌리엄이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가 발견되며 그녀 또한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사형 당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벌인 짓이었죠. 그는 차근차근, 하나하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복수를 이행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당신게 간청했습니까, 창조주여. 진흙을 빚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당신께 애원했습니까, 저를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실낙원> 아담은 기억할만한 낙원에서의 한순간이라도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은 숨 쉬기 무섭게 창조주에게 버려졌습니다. 그가 해도 달도 모르던 때였습니다. 갓 태어난 눈이 제대로 작동조차 않아 제 눈 앞에서 날개짓 하던 새의 형상조차 파악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배가 고팠고 추위를 느꼈으나 입을 열어 도움을 구할 말이 없었고 뭣보다 괴물 같이 추한 생김새로 마주치는 모든 인간들의 적대감을 받았습니다. 만 0세의 갓난쟁이가 겪을만한 시련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이 피조물이 선량한 존재로 태어났다 한들 그가 증오없이 어떻게 이 세상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요. 프랑켄슈타인은 거듭거듭 피조물에게 소리칩니다. "이 가증스러운 괴물! 버러지 같은 놈! 네놈은 악마다!" 그러나 제 눈에는 회피와 도피로 안주하며 자기 중심적이고 분별력 없고 책임감 제로에 손쉽게 책임 전가까지 시켜버리는 프랑켄슈타인이 더욱 혐오스러웠습니다. 자신 때문에 살인 누명을 쓰고 내일 사형 당할 저스틴을 바라보며 "절망! 누가 감히 그럴 논한단 말인가요? 내일이면 생사의 음울한 경계를 넘어갈 저 가련한 희생자도 나만큼 깊고 쓰라린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겁니다."(p108) 생각하는데서야 코웃음만 나올 뿐. 아니 물론 이건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롯이 내 아픔만이 중요한,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전형을 프랑켄슈타인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가요 작가님?

"그는 이따금 슬픈 거인처럼 거대한 얼굴을 자신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유리 너머의 방문객들 쪽으로 돌린다. 쓸쓸함과 인내심과 지겨움이 가득한 느린 시선이며,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것도 아닌 형태의 세상에서 유일한 개체로 그렇게 지내는 것에 대한 완전한 체념, 특이한 형상을 지니고 다녀야 하는 모든 노고, 그렇게 거추장스럽고 눈에 띄는 존재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고뇌를 표현하는 시선이다." <팔로마르> 프랑켄슈타인을 읽는데 문득 떠오른 것은 이탈로 칼비노 작가의 작품 팔로마르 속에 등장했던 알비뇨 고릴라 눈송이였습니다. 동물원 방문객들뿐만 아니라 암컷과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마저 특별한 현상으로 간주되며 이질감과 고립을 느끼는 듯 했던 눈송이. 눈송이가 처한 상황에서 적대적 + 폭력적 거부가 일어난 상황이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겪은 현실입니다. 눈송이에게 인간이 만든 타이어라는 물질적 출구가 있었던 것처럼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에게도 증오를 표출할 다른 방향성이 제시되어야 했습니다. 피조물은 스스로 답을 찾아내요. 자신을 혐오하지 않을 이성. 인간이 없는 벌판에서 함께 운명을 헤쳐갈 배우자.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여성 피조물을 제 손으로 파괴합니다. 괴물 같은 생김새라 하여 똑같이 괴물 같은 생김새의 이성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냐고 그는 처음으로 그럴 듯한 답을 도출했던 것입니다. 피조물이 냇가에 비친 제 얼굴에 괴로워하듯 이런 창조는 괴로움에 허덕이는 또하나의 희생자를 늘릴 뿐이라는 걸 그는 마지막 순간에 깨닫지만 피조물을 더욱 화나게 만든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북극까지 이르는 그들의 쫓고 쫓기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프랑켄슈타인은 꼭 완역본으로 읽으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모든 문학작품들이 다 그렇지만요. 축약본으로는 피조물의 이 묵직한 회한을 다 목격할 수가 없습니다. 이 작품 속 진정한 괴물은 누구일까요? 작품의 제목에 괴물의 이름을 넣겠다는게 작가 메리 셸리의 취지였다면 이보다 더 적합한 제목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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