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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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의 서평단으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네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예진, 도원, 호계, 재인. 이들의 엇갈린 사랑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왜 이리도 아깝던지.책을 읽다가 정말 좋은데 그 좋음이 지나쳐서 책을 덮은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최대한 늦추고 늦춰서 읽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하루에 한쪽씩만. 아니다 참. 그냥 한 문단씩만. 몰아치듯 페이지를 넘기는 그런 독서 말고 마침표 하나에까지 잠기듯이 그렇게 읽고팠다.

가장 먼저 눈길을 주었던 건 예진이었다. 예진은 도원을 완전히 오해한다. "적당한 것들이 모이고 섞일수록 퇴색한 결과물을 낸다. 색깔을 더할수록 탁하고 어두운 색이 되는 것처럼. 그런데 도원의 적당함은 모여서 상쾌함을 자아낸다. 그래서 그가 더 좋은 건지도 모른다."(p15) 예진은 도원의 지난밤 행적을 모른다. 연인과 정이 똑 떨어지는 싸늘한 이별을 한 줄은 그 멀쩡한 얼굴로는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테다. 애시당초 애인이 있었단 사실도 몰랐다. 빌딩 숲 사이 외져서 호젓한 빈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며가며 얼굴을 익힌 것이 다인 사이인 것이다. 아는 얼굴이 되면서 아는 사람이 된 듯한 착각 속에 안녕, 좋은 하루 보내요 인사하는 것으로 친근함을 착각하는. 게다가 예진은 원체도 쉽게 반하는 타입이기도 했다. 앞선 사랑과의 이별의 시간이 너무너무 괴로워서 어떻게든 새 남자친구를 빨리빨리 사귀어버리는 스타일? 사랑을 시작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미인 것이다. 예진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함께 커피를 함께 식사를 하며 차츰 썸을 타게 되고 한발짝 더 나아갈 생각으로 두 사람은 함께 연극도 보게 된다. 친구를 데려와도 된단 말에 예진은 호계를 부른다.

예진이 밤잠 이루지 못하는 올빼미 같은 청년들의 모임에서 만난 호계. 냉정한 얼굴, 얄미울만큼 싸늘한 태도의 첫인상으로 비호감을 찍었던 호계가 예진의 분실한 다이어리를 찾아춘 것이 계기가 되어 그들은 친구가 된다. 호계는 다시 자신이 근무 중인 빵집 이스트 플라워 베이커리 (이름이 이게 뭐냐며 ㅋㅋㅋ)의 사장을 파트너로 해서 (누나-동생 같은 사이이니 오해하지 말 것) 연극을 보러 가게 된다. 막이 내린 후 불 켜진 자리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선 네 사람. 기류가 이상하다. 알고 보니 도원과 재인은 한 때 연인으로 발전할 뻔 했던, 마음만큼은 분명 호감 이상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소식이 끊어지고 멀어지며 각자의 길에서 잊혀진 친구 사이였던거다. 예진은 닭 쫓던 개 같은 기분으로 재인과 도원의 주변을 맴돌고 그런 예진에게 호계는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며 당황한다. 세상에 사랑이란 없다고 믿었고 뭣보다 스스로가 사이코패스라 믿고 있었으니 이 첫사랑이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나. 매번 제 마음을 부정하면서도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른다.

한편 도원은 완벽하게만 느껴지는 재인과의 재회에 과도하다 싶을만큼 최선을 다한다. 자기 감정을 못이겨 사랑을 나눈 후 울어버리는 장면에서 읽는 내가 당황스러 앜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재인이 너무도 어른스럽게 도원을 토닥여서 깜짝 놀랐다. 재인은 재인대로 고충이 있다. 재인은 결혼을 했고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전남편과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잇고 있다.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이상한 상태로 잠자리를 가지는 그들. 재인의 그런 선택을 남편 또한 이해하지 못해 이런 관계 정말로 괜찮냐고 물을 정도이니 주위 누구에게도 이해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동생처럼 아끼는 호계와 대화를 나누다 은연 중에 자신의 사생활 일부를 노출하기는 했다. 이런 소소한 비밀들이 언젠가 전부 알려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누구에게 알려질지 누구에게 속을 빤히 내보이게 될지 미처 상상조차 못했던 지난 여름의 예감이 습한 추위와 함께 재인을 덮친다. 호계로 인해 하필이면 예진이 재인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타인의 사랑에 빌런으로 등장하고 싶은 마음은 쥐뿔 없지만 좋은 사람인 도원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예진은 찾기도 어려웠을 공중전화에서 도원을 번호를 누른다. 사랑이 하나둘 엇나가기 시작한다.

2020년에 출간된 손원평 작가님의 신간이다. 소설이 처음 연재될 당시와는 달리 작금의 코로나가 터지며 작가님을 고심케 했단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마스크를 우회적으로라도 작품에 씌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고심 끝에 마스크를 씌우지 않기로 한 결정이 마스크로 답답한 세상 속에서도 우스웠다. 코로나에 주인공들이 야외에서 커피를 어떻게 마셨을 것이며, 연극은 당연히 불발되며 표를 환불했을 것이고, 조그만 제과점이 경영난을 겪어 알바생을 쓸 수도 없었을 것 같다는, 뭣보다 마스크 너머의 얼굴들에 한눈에 반하는 운명적 사랑의 기회를 어떻게 포착할 수 있었겠냐는 회의 앞에 한편으론 숙연하면서 또 한편으론 킬킬 웃음이 샜다. 소설 속의 사랑들이 실패이냐 성공이냐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다. 읽는 내내 사랑하고 싶어서 다 읽은 후에도 어딘가의 사랑을 포착하고 싶어서 그것이 꼭 내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사랑을 응원하고파서 나는 안달이 났다. 바람이 싸늘한데 어디선가 날아온 사랑이 내 발밑에 똑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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