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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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사 지원 도서입니다

기원전 4천년 전의 도시 우르크로부터 시작해 바빌론과 아테네, 로마, 바그다드, 뤼벡, 리스본, 암스테르담, 런던, 맨체스터와 시카고, 파리, 뉴욕을 거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이곳"에 대해 이야기하고 발견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습니다. <메트로폴리스> 영국의 역사학자 벤 윌슨이 6천 년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 속에서 생성하고 발전하고 소멸한 26개의 도시를 알려줍니다. 도시는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요? 어째서 인간은 도시에 매료되었을까요? 도시와 함께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생존했을까요? 책의 물성에 약한 독자라 표지를 보자마자 흥분했는데 완독까지 그 흥분이 이어졌습니다. 도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흥미진진할 일이냐며 거듭 감탄했다는 사실, 누가 소문 좀 크게 내주십시오.ヽ(≧□≦)ノ

1. 청결한 로마인은 가랏!

세계 역사를 통틀어 제가 가장 큰 환상을 가지고 있는 국가와 국민을 꼽으라면 단연코 로마, 로마인들입니다. 중세유럽의 불결함과 대조되는 고대 로마의 청결한 이미지는 로마인들에 대한 호감을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요. 대리석으로 만든 공중 목욕탕, 자동으로 급수되던 뜨거운 물, 올리브 오일로 가꾸는 피부, 매일매일 목욕을 거르지 않는 로마인들의 청결하고도 풍족한 이미지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목욕탕이 알고 보니 세균과 병균, 기생충의 온상이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우리나라 6, 70년대 목욕탕만 생각해 봐도 온수가 귀하니 물을 자주 교체하지 못했잖아요. 매일 수천 명이 드나들었다는 로마 목욕탕의 수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겠지요. 오죽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이런 말을 남겼을까요. "목욕이라고 하면 기름, 땀, 때, 기름투성이의 물, 온갖 역거운 것이 떠오른다."(p189) 매일 목욕을 했지만 목욕하지 않는 여타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하게 기생충과 벼룩에 시달렸다는 로마인. 고대 문명 사회에 대한 내 환상을 깨지 마란 말이야~(︶^︶)도시의 생명력을 가늠하는 기준이었다는 목욕. 목욕탕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도시 풍경이 무척 재미났어요.

2. 바그다드 시장에서 길거리 음식을!

중학생 때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었습니다. 범우사 판 열 권짜리 책이었는데 어찌나 야하고 재미있던지 밤과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몇 권을 내처 읽었어요. 비슷한 플롯의 반복으로 지루해져서 결국 중도하차 했지만요. 많은 만남이, 그러니까 사건들이 시장에서 시작됐던 것만은 뚜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시리아의 사과, 오스만의 모과, 오만의 복숭아, 나일 강에서 자란 오이, 이집트의 라임, 술탄국의 오렌지와 시트론 그리고 알레포의 재스민, 향기로운 도금양 열매, 다마스쿠스의 수련, 쥐똥나무꽃과 국화꽃, 새빨간 아네모네, 제비꽃, 석류꽃, 장미, 수선화를 사는 여인."(p213) 중학생인 제가 짐꾼과 세 자매가 언제쯤 키스하나 목을 빼고 다음 장을 넘길 때 저자는 바그다드의 탁월한 국제무역의 성과에 감탄하구요. 도시적 사교성을 창출하는 길거리 음식들을 하나씩 찾아냅니다. 바그다드의 이민자, 하층민들은 화로가 딸린 주방을 갖추기가 힘들었고 또 도시로 진입할 순쉬운 수단을 찾아 길거리 음식을 먹고 길거리 음식을 만들어 팔았는데요. 덕분에 술탄마저 길거리 음식을 먹으려고 암행을 나올만큼 갖가지 맛집들이 즐비했다고 해요. 꿀, 장미수, 설탕, 말린 과실, 향신료, 사프란으로 맛을 낸 달콤한 빵푸딩과 빵푸딩에 촉촉히 육즙을 흘려 풍미를 더했다는 화덕에 구운 닭고기, 오리고기, 양고기가 먹고 싶어요. 맥주 한 잔 들고 바그다드의 위장 속으로 시간 여행 안될까요?

3. 폭력의 온상이었던 대도시, 단테 너마저!

자유도시 뤼벡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 등장하는 단테 알리기에리. 우리 선조들이 사람이 태어나면 한양으로 보내라고 한 것처럼요. 중세 유럽에서도 부자가 되려면 도시로 가라고 하는 말이 있었대요. 부를 쫓아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외지인과 하층민들에게 교양을 기대하긴 힘든 시대였기 때문에 도시는 시끄럽고 폭력적이었다고 합니다. 1410년대에 발생한 범죄들 중 7퍼센트가 절도죄, 나머지 범죄들 중 76프로가 자발적+충동적 폭력 행위였는데요. 기록에 따르면 소변기에 오줌을 누다 옆사람 구두에 실례를 한 바람에 도끼에 두개골이 깨져 죽은 사람도 있는 등 일상적 무장과 우발적 살인, 소규모 전투는 이상할 게 없었다고 해요. 오! 로미오! 당신이 로미오인 게 당신 탓이 아닌 것처럼! 로미오가 티발트를 죽인 것도 무대가 도시였던 탓인가요?? (⊙x⊙;) 뤼벡 편이 재미났던 건 단테의 일화 때문인데요. 포르타 디 산 피에로에서 노래하던 대장장이 앞에 한 남자가 뛰어와 연장을 마구 내던지며 히스테리를 부리더래요. 대장장이가 놀라서 당신 미쳤냐고 하니까 그 남자가 "그래, 나 미쳤다!" 라고 말했으면 더 재미났겠지만 그러지는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내가 당신 물건을 망쳐놓는 것이 싫다면 내 것도 망치지 마시오!"(p274) 단테가 자신의 시를 마음대로 노래하는 대장장이 때문에 열받아서 저지른 폭력,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대장장이가 망치 들고 단테 두개골을 깨부셨으면 우리는 신곡을 만나지 못했을지도요.

아이쿠. 26개 도시 중 고작 3개 도시를 쓴 게 다인데 인스타그램 활자 수를 초과할만큼 페이지가 차버렸습니다. 기억에 남은 이야기들이 정말 많아요. 유대인 포로들에 의해서 오늘날까지도 악성 루머(?)에 시달리게 된 바빌론, 나치 연설자의 정치 활동을 금지했던 뤼벡, 모험가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생양아치였던 바스쿠 다 가마, 나치 시대 이전부터 여러 도시에서 추방과 화형, 학살에 시달렸던 유대인들, 검댕처럼 검고 검댕 맛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매혹적인 코파, 극장 입장을 저지 당하자 폭동을 일으킨 런던의 하인들, 프로이트마저 비소를 찾아 자살하려는 시도를 하게 만든 파리 증후군, 나치에 의해 완전히 부서지고 해체된 바르샤뱌, 2015명이 인육을 먹은 혐의로 체포된 레닌그라드, 험악한 거리를 시적으로 기록한 힙합, 시골에서보다 더 많은 종류의 꽃가루를 채집하는 도시벌, 송도와 피맛골, 혜초, 청계천 등 등 당장 무궁무진한 이야기 주머니입니다. 독서력이 부족해 흥미있는 사건 몇 가지로 파편적인 리뷰 밖에 못쓰는 게 아쉽습니다. 6천 년이란 시간 동안 꾸준히 크기와 부피를 늘려온 도시들, 도시의 흥망성쇠에 굴복하지 않고 거듭 새로운 도시를 개척해온 인간, 죽음과 질병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벽에 부딪히면서도 도시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일궈온 역사를 읽으면 가슴이 웅장해지는데 제 리뷰로는 결코 모르겠죠ㅠ_ㅠ 꼭 책으로 만나 보세요. 도시의 신선한 역사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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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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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지원 도서입니다

서른에 뜻을 세웠다는 공자와도 같이 서른이 된 차라투스트라도 고독을 찾아 산으로 은거합니다. 십 년의 수행 후 자신의 지혜에도 실증이 난 그는 뜻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기 위해 하산하기로 해요. 한 방랑자가 그런 차라투스트라를 붙들어 설득합니다. "인간들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말게.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인간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죽이고 말걸세." 결심은 집어치우고 숲속에 머물며 신을 찬양하라는 성자의 말에 차라투스트라는 깜짝 놀라 되려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이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아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구나!'(p18) 하고 말이죠.

처음으로 발 디딘 곳은 어느 도시의 시장이었습니다. 줄타기 광대의 공연을 보려는 구름 같은 관중들 속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말합니다.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 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대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p19) 차라투스트라의 긴 연설을 군중들 모두가 비웃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이야기하는 인간의 길, 죽은 신, 행복과 이성, 덕과 정의, 동정심, 무엇보다 초인의 의미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차라리 줄타기 광대가 얼른 나와 재주 부리기만 바랄 뿐이죠. 차라투스트라는 슬퍼하고 광대는 밧줄 위를 잰걸음으로 가로지릅니다. 그런 광대의 뒤를 한 어릿광대가 뒤따릅니다. "빨리 가! 이 절름발이야!" 바싹 다가선 어릿광대에 놀란 광대가 떨어져 죽자 차라투스트라는 차게굳은 길동무를 짊어지고 길을 떠납니다. 어둡고 쓸쓸한 차라투스트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만 같이요.

이후로 거듭되는 방랑.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짐승들 사이에 있는 것보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차라투스트라는 고독한 동굴 또는 소란스러운 인간세계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해요. 세계를 부유하는 차라투스트라의 뒤를 그의 잠언으로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이 뒤따릅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산에서, 들에서, 항구에서, 바다 위에서, 작은 선박 한 켠에서까지 차라투스트라에게 배움을 청하는 이들이 나타나지요. 그를 비웃던 자들이 이제는 차라투스트라만한 이가 없다고 감탄하네요. 차라투스트라는 거듭 말합니다. 세계를, 몸을 경멸하는 자들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을, 죽음을, 전쟁과 전사들을, 우상과 순결과 이웃 사랑과 젊고 늙은 여자를. 하다 못해 아이와 결혼에 관해서까지도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매 편이 끝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되고 전개되고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와 왕들과, 정신의 양심을 지닌 자와 늙은 마술사와 교황과 자발적으로 거지가 된 자와 그림자, 나귀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끝이 납니다. 아침 태양처럼 이글이글 불타는 마음으로 동굴을 떠나는 그는 정말이지 후련해 보이는데 독자인 저는 그가 남긴 동굴 앞에서 어쩌면 좋은가 하고 망설이고 있어요. 그를 따라 하산할 때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의 동굴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꿀을 핥으며 그가 남긴 말들을 되새기고 일깨우고 비판하고 따져 물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모든 말들이 수수께기인 것만 같아요. 제가 잘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차라투스트라가 너무나 많은 말을 했는데 그 중 하나도 다 알지 못하는 것만 같아 읽는 내내 속도 많이 상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내 집에 머물러 있는 한 그 누구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p491)고 말하거든요. 그러니 완독이지만 실은 완독이 아니라며 계속해 그의 동굴에 머물러 있으면 어떨가 싶어요. 또 말하기를 "용기를 내라,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얼마나 많은 일이 아직도 가능한가! 그대들이 실패했고 절반만 성공했다 하더라도 무엇이 이상한가!"(p514) 라고 하니 쪽수를 해치웠다는 외에는 의미를 갖지 못한 이번 독서에도 지나치게 실망은 하지 않을래요. 게으름뱅이 독자는 밉다는 차라투스트라. 무엇이든 곧이 듣지 말라구요. 쉬이 설득 당하지도 말라구요. 차라투스트라가 전하는 탁월한 이야기들, 그 한 마디 한 문장 모두 의구심을 가지며 용감하게 또 해석에 개의치 않고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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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로 보는 서양미술 - 르네상스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디테일로 보는 미술
수지 호지 지음, 김송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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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북스 지원 도서입니다

재작년부터였는가 싶습니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미술책을 보기 시작한게요. 처음에는 그림과 관련한 에세이를 주로 보다가 차츰 인문교양 파트의 미술 혹은 예술쪽 도서에도 손을 댔어요. 주제가 그림인 경우 미술사 쪽도 지루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어 나름 적극적으로 찾아 읽는 중입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마로니에북스에서 출간된 <디테일로 보는 서양미술>이에요. "디테일로 보는 시리즈" 중의 한 권으로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과 함께 출간되었습니다. 표현할 수 있는 감상이라고는 예쁘다, 아름답다, 무섭다, 기괴하다, 인상깊다 내지는 내 방에 두고 싶다 밖에 없는 제게 황금 같은 감상 팁을 줄 것 같아 읽기도 전부터 두근두근. 무지무지 설렜습니다. 표지의 그림은 카라바조의 류트 연주자인데요. 기존에 이 그림을 알던 독자님들, 연주자의 얼굴을 단박에 알아보셨나요? 전 전혀요. 다른 그림책에서 만난 적이 있는 작품인데도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생각했어요. 눈빛, 표정, 이목구비 어느 하나 디테일하게 감상하지 못한 탓이었겠죠?

영국의 미술사학자 수지 호지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 로코코,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현대미술에 이르는 긴 역사 속에서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별해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시대별 세계 최고의 예술 작품을 실었다고 말하는만큼 익숙한 작품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여러번 봤고 또 대강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작품들인데 놓치고 있던 이야기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모나리자의 그림 속 배경은 가상의 풍경인데요. 이런 풍경 앞에 인물을 놓고 그린 초상화는 모나리자가 처음이었다고 해요. 모나리자의 눈썹은 원래 없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복원 작업 중에 지워지거나 안료가 바래져서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다빈치가 처음 그린 그 모습 그대로의 모나리자가 궁금해졌어요. 드레스에 있는 자수는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쭈욱 이어진다는데 그걸 확인해 볼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이토록 섬세하게 감상하는 사람도 있구나!! 아님 원래 전문가들은 다 그런건가요?? 참고로 전 드레스에 자수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과 관련해서 그림 속 인물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설명은 들은 적이 있는데요. 학당 아치의 패턴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은 처음 봤어요. 그리스 도자기에서 처음 유래한 패턴 디자인이라는데 가만 보다보니 낯익은 것도 같아 도서출판 숲에서 출간된 일리아스를 꺼내어 확인해 봤더니요. 아주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패턴의 항아리들 사진이 곧장 등장하더라구요. 앞으로 이런 패턴을 보면 대번에 그리스 도자기 무늬!! 하고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아요. 은색의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화려하고 예뻐서 앙투안 와토의 베네치아 축제 그림을 좋아했어요. 소녀나 그밖의 인물들의 표정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고 표정이 있다는 생각도 못한 채로 그림을 감상했는데요. 악사로 분장한 화가의 초상화나 배경으로 서거나 앉거나 드러누운 인물의 표정 위로 울적함을 가감없이 실어놓았더라구요. 내면의 혼란, 인생 전반에 대한 걱정, 심각한 질병에 대한 우울을 왜 미처 눈치 채지 못했나 싶었습니다. 앞으로 더는 이 그림을 보며 예쁘다는 생각은 못할 것 같아요.

새빨간 예복을 입고 월계관을 쓰고 있는 나폴레옹의 초상화는 실은 상상화구요. 오필리아의 그림 속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마저 모두 햄릿 속 대사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되어 햄릿을 재독하고 싶은 욕망이 불끈 일었어요. 고흐의 노란 의자 뒤에는 막 피어나는 구근이 심겨진 상자가 있는데요. 설마하니 튤립일까요? 무슨 꽃인지 궁금했는데 이파리만 보고는 알 수 없는건지 답이 실려있진 않았습니다. 클림트의 키스를 황금색 물감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금박과 은박으로 제작했다는 얘기에 급 시가가 궁금해지기도 하구요. 이밖으로도 매 그림에 대한 디테일한 감상이 그림마다 장장 4 페이지씩 할애되어 소개되는데 다 알려드릴 수가 없어 안타까워요. "당신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p7, 헨리 데이비드 소로) 책 속에서도 그림 속에서도 더 많은 걸 읽어내고 짚고 감상할 수 있는 독자이고 싶어요. <디테일로 보는 서양미술>이란 안경을 쓰고 다양한 작품들을 한결 뚜렷하고 선명하고 아름답게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제 눈에 안경이 아니라 모든 독자들의 눈에 안경 같은 책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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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초대 - 이름을 불러 삶을 묻는다
김경집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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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서가 지원 도서입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란 뜻의 명사인 줄 알았어요. 이름을 불러 삶을 묻는다는 부제를 스치듯 눈에 담고는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던 책이었습니다. 카드로 만들어진 책소개까지 읽고 나서야 제가 완전히 오해한 줄을 알게 됐어요. 유명인을 불러 삶을 묻는 게 아니라요. 사물의 이름을 불러 내 삶과 우리의 세상에서 그가 가진 의미를 묻는 책이었습니다. "인문학자 김경집"을 미리 알기만 했더라도 이런 오해는 안했을텐데 원체 소설만 파던 편독파라서요. 첫만남에 머쓱하게 오해하고 혼자 뻘쭘해 했어요. (^▽^*))

오르골, 신용카드, 지우개(⭐), 숟가락과 젓가락, 압화(⭐), 달력, 북엔드(⭐), 아스피린, 커피, 선글라스, 베개(⭐), 안경(⭐), 단추(⭐), 가로수와 사진, 우체통과 유치원(⭐), 대문, 휴게소, 차표 등등. 근(近), 내(內), 원(遠)이라는 소제목 아래 총 47개의 명사를 초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책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입고 있는 것, 먹고 있는 것, 앉는 자리, 누운 자리, 일하는 구석구석 온갖 명사들이 산재해있는데요. 그에 대해 기원을 궁금해하거나 의미를 규정하거나 역사를 헤아리거나 쓰임에 대해 사유해 본 적이 없어요. 휴지는 그냥 휴지지 휴지의 이름이 왜 휴지인지, 이게 한자인지 한글인지, 누가 처음 썼는지, 상업화 된 건 언제인지, 어느 나라에서 먼저 팔렸는지, 휴지를 어디다가 쓰는지, 휴지가 가지는 의미는 뭔지, 그 의미가 어필할 수 있는 교훈이 있을지 생각해 볼 엄두도 내지 않았어요. 불필요하니까요.

이 책을 받는 처음 제 마음도 그랬어요. 인문학자의 섬세하고 풍요한 언어 감각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구요. 인문학자의 깊은 사고로 의미있게 규정지어지는 사물들의 뜻을 내 걸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철학적인 내용일 거라 혼자 멋대로 내용을 추측했는데요. 의외였던건 인문학자가 명사의 바다에서 건져올리는 이야기가 상당히 잡학다식해서 사소하고 쓸데없지만 흥미진진하다는 거였어요. 뜻밖으로 정적이지도 않더라구요. 저 위에 쓴 휴지처럼 각종의 것들을 이야기 하다 보니 제목을 <명사의 초대>가 아니라 "그 명사의 모든 것"으로 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루이 15세는 질나쁜 와인의 생산을 막기 위해 새로운 포도나무를 심는 걸 금지했는데요. 그 왕령을 폐지했던 때가 바로 프랑스 혁명 때였대요. 프랑스 대혁명이 시민뿐 아니라 실은 와인에도 자유를 부여했던 거에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보면 길바닥에 나뒹굴다 부서진 포도주통을 보고 뒷골목 사람들이 허겁지겁 모여들어 땅에 고인 포도주 한 방울까지 핥아먹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포도주의 색깔에만 집중해서 귀족들의 피를 암시하는거겠거니 했는데 포도주가 포도주 자체로도 의미를 지닌 소재였구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통상 대일밴드라고 부르는 일회용 접착 밴드는 존슨앤존슨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요. 직원이었던 얼 딕슨이 요리만 했다 하면 손을 다치는 아내를 위해 제작한 게 회사의 상품이 된 거래요. "나는 성공하기 위해 발명하지 않았다. 단지 사랑하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p203) 라고 말하며 부회장까지 승진한 얼 딕슨. 이거야말로 "로맨틱, 성공적"이죠.

사진은 멈춰진 시간을 담았지만 그 뒤편에 시간의 문을 달고 있고, 내 허물 지울 지우개를 탐하기보다는 남의 허물 지워줄 지우개 되기를 바라고, 베고 누우면 모든 고민도 걱정도 내려놓게 하는 베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당신을 부를 땐 꼭 시집을 읽는 기분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여러 장서인을 내놓고 어느 것으로 찍을가 고민한다는 장면에서는 부럽고도 설렜구요. 전 아직 장서인이 하나도 없는데 장서인을 몇 개씩 두고 이런 고민해보고 싶어요. 완독하고 넘넘 좋았던 책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서인을 찍으면 황홀할 것 같아요. 제가 꼭 한 장 초대장을 쓸 수 있다면요. 책세상으로 날려 보낼래요. 내가 읽은 책, 읽지 못한 책, 소장한 책, 소장했다 정리한 모든 책들을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렇게 모인 책이 너무 많고 그 책들이 하고자 하는 얘기도 엄청 많아서 귀를 막아야 할지도 모를만큼 많은 책을 만나고 싶단 생각을 하며 이만 책을 덮습니다. 김경집 선생님, 좋은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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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주식으로 흥하는 중
김옥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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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으로 흥할 날을 꿈꾸는 주린이들을 위한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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