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초대 - 이름을 불러 삶을 묻는다
김경집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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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서가 지원 도서입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란 뜻의 명사인 줄 알았어요. 이름을 불러 삶을 묻는다는 부제를 스치듯 눈에 담고는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던 책이었습니다. 카드로 만들어진 책소개까지 읽고 나서야 제가 완전히 오해한 줄을 알게 됐어요. 유명인을 불러 삶을 묻는 게 아니라요. 사물의 이름을 불러 내 삶과 우리의 세상에서 그가 가진 의미를 묻는 책이었습니다. "인문학자 김경집"을 미리 알기만 했더라도 이런 오해는 안했을텐데 원체 소설만 파던 편독파라서요. 첫만남에 머쓱하게 오해하고 혼자 뻘쭘해 했어요. (^▽^*))

오르골, 신용카드, 지우개(⭐), 숟가락과 젓가락, 압화(⭐), 달력, 북엔드(⭐), 아스피린, 커피, 선글라스, 베개(⭐), 안경(⭐), 단추(⭐), 가로수와 사진, 우체통과 유치원(⭐), 대문, 휴게소, 차표 등등. 근(近), 내(內), 원(遠)이라는 소제목 아래 총 47개의 명사를 초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책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입고 있는 것, 먹고 있는 것, 앉는 자리, 누운 자리, 일하는 구석구석 온갖 명사들이 산재해있는데요. 그에 대해 기원을 궁금해하거나 의미를 규정하거나 역사를 헤아리거나 쓰임에 대해 사유해 본 적이 없어요. 휴지는 그냥 휴지지 휴지의 이름이 왜 휴지인지, 이게 한자인지 한글인지, 누가 처음 썼는지, 상업화 된 건 언제인지, 어느 나라에서 먼저 팔렸는지, 휴지를 어디다가 쓰는지, 휴지가 가지는 의미는 뭔지, 그 의미가 어필할 수 있는 교훈이 있을지 생각해 볼 엄두도 내지 않았어요. 불필요하니까요.

이 책을 받는 처음 제 마음도 그랬어요. 인문학자의 섬세하고 풍요한 언어 감각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구요. 인문학자의 깊은 사고로 의미있게 규정지어지는 사물들의 뜻을 내 걸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철학적인 내용일 거라 혼자 멋대로 내용을 추측했는데요. 의외였던건 인문학자가 명사의 바다에서 건져올리는 이야기가 상당히 잡학다식해서 사소하고 쓸데없지만 흥미진진하다는 거였어요. 뜻밖으로 정적이지도 않더라구요. 저 위에 쓴 휴지처럼 각종의 것들을 이야기 하다 보니 제목을 <명사의 초대>가 아니라 "그 명사의 모든 것"으로 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루이 15세는 질나쁜 와인의 생산을 막기 위해 새로운 포도나무를 심는 걸 금지했는데요. 그 왕령을 폐지했던 때가 바로 프랑스 혁명 때였대요. 프랑스 대혁명이 시민뿐 아니라 실은 와인에도 자유를 부여했던 거에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보면 길바닥에 나뒹굴다 부서진 포도주통을 보고 뒷골목 사람들이 허겁지겁 모여들어 땅에 고인 포도주 한 방울까지 핥아먹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포도주의 색깔에만 집중해서 귀족들의 피를 암시하는거겠거니 했는데 포도주가 포도주 자체로도 의미를 지닌 소재였구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통상 대일밴드라고 부르는 일회용 접착 밴드는 존슨앤존슨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요. 직원이었던 얼 딕슨이 요리만 했다 하면 손을 다치는 아내를 위해 제작한 게 회사의 상품이 된 거래요. "나는 성공하기 위해 발명하지 않았다. 단지 사랑하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p203) 라고 말하며 부회장까지 승진한 얼 딕슨. 이거야말로 "로맨틱, 성공적"이죠.

사진은 멈춰진 시간을 담았지만 그 뒤편에 시간의 문을 달고 있고, 내 허물 지울 지우개를 탐하기보다는 남의 허물 지워줄 지우개 되기를 바라고, 베고 누우면 모든 고민도 걱정도 내려놓게 하는 베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당신을 부를 땐 꼭 시집을 읽는 기분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여러 장서인을 내놓고 어느 것으로 찍을가 고민한다는 장면에서는 부럽고도 설렜구요. 전 아직 장서인이 하나도 없는데 장서인을 몇 개씩 두고 이런 고민해보고 싶어요. 완독하고 넘넘 좋았던 책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서인을 찍으면 황홀할 것 같아요. 제가 꼭 한 장 초대장을 쓸 수 있다면요. 책세상으로 날려 보낼래요. 내가 읽은 책, 읽지 못한 책, 소장한 책, 소장했다 정리한 모든 책들을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렇게 모인 책이 너무 많고 그 책들이 하고자 하는 얘기도 엄청 많아서 귀를 막아야 할지도 모를만큼 많은 책을 만나고 싶단 생각을 하며 이만 책을 덮습니다. 김경집 선생님, 좋은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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