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의 단식법
샘 J. 밀러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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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할수있는게아무것도없는세상

 

사람들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 중요한 이야기는 절대 아무한테도 하지 !(p12)”

 

맷은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당황스러운 주인공이 절대로 아니야. 소개할 거리가 편의점의 라면만큼이나 풍부해서 오히려 고민이지. 17. 고등학생. 남자. 뚱뚱하고 못생김.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어서 손은 더 못생김. 아빠 옛날에 가출. 누나는 엊그제 가출. 엄마는 백수되기 일보 직전. 가난뱅이. 왕따. 동네에서 소문난 게이... 이런 걸 두고 누군가는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거야. <명백히 살인이나 자살을 초래할지도 모를 학생>이라고 선생님이 보고서도 썼어. 학교에서 인기있는 애는 아닌데 관심의 정점에 서있기는 해. 전교생이 맷을 알아보고 호모 새끼라고 부르거든. 맷은 통학버스도 안타. 하도 주먹질을 당해서. 6천 번쯤? 호르몬으로 박터지는 어린 영장류들에 치여서 맷은 딱 죽고만 싶어. 그날 아침에도 엿 같은 오트놈이 불러서 괴롭힘을 당하는데 뜬금없이 초능력이 발휘된 거야. 진짜 난데없었다니까? 냄새를 맡았는데 그게 그냥 냄새가 아니야. 훨씬 밀도 높은 정보 같은 걸 맷의 코가 취합해. a b가 친구고 a c가 사귀는데 b의 입술에서 c의 침냄새가 나더라 같은 거?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마초가 12살 때 남자애와 키스했다는 걸 냄새로 캐치한다니 이게 말이 돼? 슈퍼파워 뭐 그런걸까?

 

#굶으면내몸무게만큼은줄일수있잖아

 

찌질한 내용을 전부 빼버린다면 이것이 대체 무슨 법칙서가 되겠는가?(p37)”

 

맷의 누나가 가출했다고 얘기했잖아. 맷은 이 문제 때문에 엄청 열 받아 있어. 맷은 누나를 엄청 사랑하거든. 근데 누나가 자기만 두고 집을 나간거야. 누나가 가출한 원인을 따져봤더니 짚이는 건 딱 하나 뿐이야. 타리크. 맷네 학교 축구스타. 그리스로마 신화의 현대판 버전 같이 엄청나게 잘생기고 몸도 좋고 키도 크고 축구도 잘하는 앤데 누나가 가출 직전에 만났던 사람이 타리크랑 친구들이란 말이야. 그날 뭔가 잔인한 일이 벌어졌던 게 틀림없어. 슈퍼파워도 생겼겠다. 맷은 타리크에게서 진실을 알아내고, 할수만 있다면 복수도 하려고, 정신무장을 하는데 위장은 무장을 못했어. 무슨 놈의 슈퍼파워가 굶어야 힘이 지속돼. 더 오래 굶을수록, 쫄쫄 오그라든 위장이 더 강력한 파워를 내보낸다니까. 감자튀김 하나라도 씹어 삼켰다간 맹물 같은 상태로 돌아가. 다이어트 정도가 아니야. 절식이야. 먹는 척 하면서 엄마의 팬케이크를 내다버려.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복수의 길은 험난한 법. 힘을 키우려면 별 수 없지. 웩웩. 토하는 일쯤이야.

 

#자신이얼마나망가졌는지확인할수있는검사가있다면좋을텐데

하러 버티지? 우리는 때마다 점점 고통과 번뇌와 노화와 질병과 외로움과 죽음에 가까워지기만 뿐인데, 하러 계속 살아가야 하지? (p349)”

 

 

근데 얘들아. 진짜 슬픈 게 뭔지 알아? 실은 맷이 타리크를 좋아한다는거야. 남매가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니 삼류막장인가 싶지만 그런것치곤 남매의 우정은 찐이었다고! 그러니 지금 맷 기분이 어떻겠어? 복수를 위해 슈퍼파워로 타리크의 친구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너무 행복한거야. 타리크랑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책을 읽고 같이 콘서트에 가고 같이 파티에서 어울리는 거 말이야. 사실 어떤 날은 집 나간 누나 생각은 1도 못했어. 그게 미안해서 맷은 또 엉엉 울고. 아이고 애기야 ㅠ .ㅠ 맷의 슈퍼파워는 대체 정체가 뭐지? 복수를 하기도 전에 맷이 죽을까봐 겁나. 먹지 않고도 30일은 산다지만 그건 가만히 누워있을 때 얘기 아니야? 맷은 벌써 두 번이나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어. 타리크가 그런 맷을 걱정해. 맷의 누나에게 잔인한 짓을 하고 맷을 걱정한다라 이건 좀 말이 안되지 않아? 타리크는, 누나는,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걸까? 맷의 복수는 과연 결판이 났을까? 어때? 나 좀 궁금하게 설명했어? 맷을 만나볼 마음이 생겨?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 책 진짜 재밌거든.

 

어느새 모두가 글의 독자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깔끔한 상자들 속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수백만 명의 사람,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구부러지거나 부러져야 했던 모든 , 자살정 사고를 하는 자들, 자신의 몸과 전쟁 중인 사람들 말이다. (p360)”

 

 

맷의 말투를 따라하며 리뷰 써봤어요 ㅋㅋ 맷의 슈퍼파워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모르겠어서 다른 서평도 여럿 읽었는데요, 독자들마다 생각이 다르더라구요. 저는 진짜다에 한 표. 행복하고 초능력이 넘치는 세상을 사랑하는 독자니까요. 동성애, 거식증, 왕따는 샘.J.밀러 작가가 십대 시절 직접 경험했던 일이래요. 집이 정육점을 했다는데 그래서인지 맷 엄마가 돼지도축공장의 노동자로 근무 중입니다. 맷의 아버지와는 달리 작가님의 아버지는 가정에 충실하셨던 것 같아 다행이에요. 맷과 타리크가 엄청 좋아하며 같이 읽은 작품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인데요. 두 사람의 말을 빌자면 그 작가가 좆나 좋대요. "마치 그가 글 쓰는 방식이 내 감정 그 자체 같아. 그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또 어떻고.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과 슬픔이 있는지, 그리고 삶이 진정 우리에게 주려는 가르침을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이 만류해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지, 너는 생각해 본 적 있어?"(p181) 저는 솔직히 그런 고민 해본 적이 없거든요. 이 책을 읽은 어린 두 독자는 일찍 그런 고민을 시작해 다른 사람의 만류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대면합니다. 아마 저보다 훨씬 나은 어른으로 성장할 것 같아요. 그래서 늦었지만 저도 길 위에서를 만나보려구요. 판타지? SF? 좀 독특한 느낌의 성장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님들께 <슈퍼히어로의 단식법>을 추천합니다.

 

 

열린책들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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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려면 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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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지만 읽기에는 문제가 없는 리뷰를 쓰고 싶어요. 가독성이 좋아서 한 줄 한 줄 눈에 콱 박히는 리뷰 있죠? 예전에는 '내 리뷰 나만 본다'는 생각에 아무렇게나 써서 제출했는데요. 책리뷰 쓴 지 5년쯤 되니 아무렇게나가 창피하더라구요.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생기구요. 보기 좋은 책이 읽고 싶어진다는 생각에 사진도 많이 찍고 있지만 역시 감상문의 질부터 높이고 싶달까요. 그러던 차에 만난 책입니다. <글을 잘 쓰려면 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 어느 독자님이 읽다가 무서워진 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전 읽을 때는 모르겠더니 리뷰 쓰는 지금 이 순간이 무서워요. 책에서 배운 거 다 까먹고 벌써부터 잘못된 문장을 쓰는 것 같아요. (덜덜덜)


#내 문장력은 어느 수준인가

출판사 (주)리베르스쿨에서 편집자를 모집할 때 출제한 시험 문제가 실려있어요. 핑크펜을 들고 자신만만하게 예시 문장 고치기에 들어갔는데 웬걸요. 한 번 읽어서는 어디가 틀렸는지 모르겠어요. 두 번 세 번씩 읽고 어긋난 부분을 찾는데 어떤 문장은 아무리 읽어도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예를 들면 이 다음 문장요. "천왕문을 지나면 곧바로 경내, 오른쪽으로는 허름한 슬라브집 요사채가 궁색해 보이지만 정면에 보이는 정면 3칸의 맞배지붕 주심포집이 그렇게 아담하고 의젓해 보일 수가 없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중) 처음 읽을 땐 뭐지? 좋은데? 라고 생각했구요. 두 번 읽고는 '정면에 보이는 정면 3칸', 여기가 이상한가 싶어 밑줄 쫘악 긋고 '정면 3칸에는'으로 수정했어요. 그 다음 편집자님이 고쳐 쓰신 걸 보는데 충격 먹었잖아요. '쓰다가 만 느낌을 주는 문장, 표준어가 아닌 단어, 명사와 명사의 결합으로 인한 띄어 쓰기, 대구, 균형'을 다 따져 문장을 싹 바꾸셨더라구요. 새로 쓰여진 문장이 마음에 들고 안들고는 차치하더라도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이렇게나 많다는데 놀랐어요.


#꼬리물기 3원칙

① 호응하는 원칙 : 주어, 부사어, 목적어는 서술어와 어울리게 짝지어라.

② 연결하는 원칙 : 문장과 문장은 보조사, 공통어, 지시어, 리듬으로 이어라.

③ 분리하는 원칙 : 복잡한 문장은 나누고 불필요한 요소는 버려라.

문장이 엉키면 해당 서술어의 주어부터 찾아보세요. 문자 오류를 훨씬 쉽게 짚어낼 수 있어요. 간접 인용문보다는 직접 인용문일 때 문장 이해도가 높구요. 목적어나 부사 등도 다 서술어와 호응이 되야 해요. "침이나 담배꽁초를 버리지 마세요!"는 목적어가 두 개이니 서술어도 두 개여야겠죠? 침은 뱉지 말고 담배 꽁초는 버리지 말고. 꾸미는 말은 꾸밈을 받는 말 앞에 두세요. 있으나 마나 한 접속어는 쓰지 말구요. 부사어와 피수식어는 되도록 가까이 붙입니다. 문장은 접속어로 연결되기 전에 문맥으로 이어져야 해요. 앞뒤 문장을 논리적으로 연결할 자신이 없을 때 접속어가 사용된다는 걸 잊지 말고 한번 더 살펴보도록 해요. 중복되는 표현을 없애려고 대명사나 지시어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지나친 사용은 삼갈 것. 문장 흐름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해당하는 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편이 좋습니다. 대등한 문장,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을 구분해서 쓸 줄 알아야 하고요. 열거나 비교의 요소를 대등하게 갖춰서 문장의 균형을 맞춰줘야 해요. 가급적이면 관용적 표현은 어기지 말고 하나의 문장에는 하나의 개념만 담을 것! 이렇게 요약해서 써놓으니 간단한데 책 읽으면서 수정 연습할 때는 왜 이렇게 어렵죠?


#바른 글쓰기를 위하여

대한민국은 비문 공화국이래요. 각종 공문과 기사와 소설과 논문과 기타등등의 지문 속에 비문이 넘쳐난대요. 비문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지금 삶에 너무 익숙해졌나봐요. 솔직히 뭐가 비문이고 아닌지 읽고 또 읽어도 구분이 안가요. 어떤 문장은 비문이 낯익어 안비문이 낯설더라구요. "1세기 무렵 불교가 전파된 후, 중국은 불교와 도가를 합쳐 중국 특유의 선종을 형성하였다."(<동양 철학사를 보다> 중) 어디가 비문인지 곧장 발견하셨나요?? 사물 주어를 설명하는 여섯 번째 예시였는데도 이게 진짜 비문인 게 맞나 싶어 여러번 읽었습니다. 독자들의 읽는 재미를 감안한 탓인지 신문 기사보다는 문학 작품 속 문장들을 많이 지적하는데요. 장점은 잘 읽힌다는 거? 단점은 비문으로 공감하기가 힘들다는 걸까요?

비문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이전에 잘못된 문장에 대한 취향과 견해 차이가 발생하더라구요. 형용사가 두 번 연달아 나올 때는 '고'로 연결해 주는 게 좋다며 '숱 많은 새까만 눈썹'을 '숱 많고 새카만 눈썹'으로 고치는데요. 전 '많고' 보다는 '많은' 쪽이 취향이에요. '서산 말애불의 발견 아닌 발견은 실로 위대한 발견이었다'도 반복되는 명사를 생략하고 '서산 마애불을 찾아낸 것은 실로 위대한 발견이었다'로 수정하는데 발견+발견=위대한 발견으로 확장되어 가는 앞서 문장이 더 맘에 와닿았어요. <토지>와 여타 작품들 속 문장도 비문일지언정 원저가 더 좋더라구요. 수정 후의 문장은 입에 촥 붙는 감칠맛 같은 게 없달까요? 기사에는 적합하지만 문학에는 써억 맞지 않아 보였어요. "바른 글 => 바른 생각 => 바른 행동"인데 문학은 바르지 않은 것들을 더 많이 소비하는 곳이라 그런가봐요. 어차피 제가 쓰는 글은 소설이 아니라 아무 상관 없지만. 전 리뷰어니까요! (ㅋㅋ) 잘못된 문장을 쏙쏙 고쳐서 짧고 경쾌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책 소개 잘 해보겠습니다. 아자아자!

 

+리베르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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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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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도쿄 출생. 와세다 대학 1문학부 연극과 졸업", ? 마루야마 마사키, 젊은 작가가 아니었군요. 낯선 이름에 작가님 작품을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처음으로 만나 혜성처럼 등장한 90년대생 작가님인 알았어요.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 권인 <데프 보이스> 데뷔하셨고 이후 <표류하는 아이>, <형사 이즈모리의 고고한 얼굴>, <원더풀 라이프>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마쓰모토 세이초 최종 후보에 오른 <데프 보이스>일텐데요.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를 첫권부터 읽을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제일 최신작부터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요.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부제 '너는 너대로 괜찮아' 입니다.

1.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귀가 들리지 않아요, 119 신고하고 싶어도 한다고요!”

_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p69


한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습니다. 농인이 112 신고하고 119 부르는 방법에 대해서요. "농인 112" 네이버에 검색을 하고 2017년의 기사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에도 긴급영상통화 시스템이 있고 이를 위한 수화통역센터가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요. 야간 근무조가 없어 응급 상황시 이에 대처할 인력이 부족하니 많은 지원을 바란다는 농아인협회의 요청은 받아들여졌을지, 이래저래 기사를 찾았지만 눈에 띄는 내용은 없더라구요.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읽지 않았다면, 수화 통역사 '아라이 나오토' 만나지 않았다면 저란 독자는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영영 눈을 감고 살았을 겁니다. 소설에서 농인 임산부가 아이를 잃는 모습을 봤어요. 의도된 설정이라지만 응급대원의 " 빨리 신고하지 않았냐" 말에 "신고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왈칵 소리 지르는 아라이의 말이 돌처럼 얹혔습니다. 구급차를 부르는 일조차 아라이 같은 통역사를 거쳐야 하는 농인들의 불편함. 생존과도 직결된 이런 위기에 대해 어쩌면 조금도 몰랐을까요? 많은 시간이 흐른만큼 농인들을 위한 SOS 시스템이 충분히 개선되었기를 바래봅니다.

2. 사일런트


너는 너대로 괜찮아.”

_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p141


잘생긴 외모에 농인이라는 사연, 어딘지 섬세하고 우아한 수화로 화제를 모아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HAL. 아라이가 맡은 이번 의뢰는 HAL 기자간담회 통역입니다. HAL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드물게 '거의' 완벽한 구화를 해요. 상대가 입으로 말하면 나도 입으로, 상대가 수화로 말하면 나도 수화로, 좋게 말하면 융통성 있게 대응하며 성장한 셈이지만 사실 HAL 농인쪽에도 청인쪽에도 완벽히 속하지 못한 자신의 세계에 불안감을 느껴요. HAL 농인 스타로써의 자신의 위치에도 책임감을 느낍니다. ' 2 HAL, 3 HAL 나왔으면 좋겠다.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농인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지원도 늘기를 바란다.' 그런 각오를 밝히며 아라이에게 과외를 요청하기도 하구요. 수화의 수준도 나날이 늘었는데 이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방송국 놈들요. HAL 수화가 너무 수다스러워졌다는거죠. 멋지지도 폼나지도 않은 수화는 접으라면서 농인의 위치에 걸맞게 구화도 삼가라네요. 정체성을 찾아 성장 중인 HAL에겐 너무나 가혹한 요구라 맘이 아팠어요. 얼마전 BTS 수화 안무에 WTO 사무총장과 농인들이 감사 인사를 전해 화제가 됐잖아요. 수화로 노래를 즐길 있다는 사실에 신기한 마음이었는데 HAL 방탄 노래를 들으면 기쁘지 않았을까, 같이 노래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들을 있는 청년도 들을 없는 청년도 모두 멋지게 날아올라 꿈을 펼치기를 바랍니다.

3, 4장은 비밀


오늘도 좋은 하루였네요. 내일도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_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p216


제가 말해버리면 재미없으니까 줄거리는 여기까지. 가정을 이룰 없는 남자로 보였다는 아라이 나오토. 그가 3권에서는 아내도 있고 딸도 있는 유부남으로 변신합니다. 주부와 다름없는 마음가짐으로 미와를 돌보고 아내 미유키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라이와 주변인물들이 기억하는 아라이의 간극이 커서 신기했어요. 전편에서는 삭막하고 벽이 두터운 남자였나보지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농인이었던 아라이는 자식을 낳는데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미유키의 적극적인 요구에 응해 히토미를 낳습니다. 히토미는 걱정대로 '들리지 않는 아이'였구요. 1장에서 4장까지 각기 다른 사건들을 통과하며 아라이는 청각장애를 가진 자식을 아버지로서, 함께 딸을 키워야 하는 아내의 파트너로서, 장애아인 동생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정에서 혼란을 느끼는 큰딸 미와의 버팀목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농인 부부의 아들, 농인 형의 동생으로 때만 해도 세상사에 비껴있었다는 그는 새로운 가족을 위해 벽을 낮추고 세상과 농인의 소통을 위해 분주하게 뜁니다. 그런 그를 뒤쫓으며 듣게 소수자의 말들을 잊지 않을게요.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황금가지 지원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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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싶다 문득 시리즈 5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이상원 옮김 / 스피리투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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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니겠어요? 자고 자고 또 자도 잠이 고픈 곰탱이라서요. 제목에 무지무지 공감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자고 싶다>는 아홉 편의 목록 중 다섯 번째에 올라있는데요. 심정적으로는 제일 첫 자리에 세워주고픈 이야기였어요.



#다섯 번째 이야기_자고 싶다


이런 망할 것이 있나. 아기가 우는데 잠을 자!”_자고 싶다 중, p47


열세 살 먹은 애보기 바르카는 하루종일 일을 합니다. 말이 좋아 애보기지 식모가 따로 없어요.

밤에는 아기를 돌보고요. 낮에는 주인마님이 시키는 온갖 허드렛일을 합니다. 헛간에 장작을 가지러 가고 불을 피우고 차를 준비하고요. 덧신을 닦고 계단을 치우고 손님을 안내합니다. 방을 정돈하고 상점으로 뛰어가 장도 보구요. 차시중을 들면서 내내 주인 어른의 명령에 대기해요. 긴 노동 끝에 찾아온 밤, 바르카는 잠들지 못합니다. 예민한 아기가 밤새 울다 깨다를 반복해서요. 바르카의 머릿속엔 지금 한 가지 생각밖에 없어요. "자고 싶다." 주인 마님께 들키지 않고 잠들고 싶어요.  방법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아기만 조용히 해준다면, 아기의 목청만 틀어막을 수 있다면, 아기야 제발.. 바르카 이 불쌍한 것!😭 섬찟하고 소름끼쳤지만 열세 살 바르카의 숙면을 비난할 수 없었어요.



#두 번째 이야기_삶에서 하찮은 일


아이들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

_삶에서 하찮은 일 중, p13


올가 이바노브나 이르니나와 동거 중인 니콜라이 일리치 벨랴예프. (이름 좀 보세요. 역시 로씨아죠? ㅋㅋㅋ) 외출 중인 애인을 기다리며 남자는 그녀 아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요즘 무슨 일 없냐며 근황을 묻던 중에 알게 된 사실. 이가 엄마 몰래 아빠를 만난다네요. 자는 아이를 살살 꾀어 아빠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알아냅니다. 엄마한테 비밀로 해줄게, 아저씨한테만 말해봐." 들으나 마나 제 욕이지 뭘 확인한담;;; 뒷담화의 내용에 분노 폭발한 남자는 급기야 집에 온 애인에게 따져 묻고요. 아이는 아저씨! 비밀이라고 했잖아요!! 엉엉 울며 소란을 피웁니다. 순식간에 시끄러워진 응접실의 풍경에 무척 아연해졌어요. 어쩌면 생에 처음으로 어른의 거짓말과 맞부딪혔을 꼬맹이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정말로 모든 것이 다 끝나려면 아직 얼마나 멀었는지!”

_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중, p232


오페라에서 상사의 대머리에 기침했던 체르뱌코프는 창자가 터져 죽고요. 아들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한 마부 요나는 말을 찾아가 모든 것을 이야기해요. 정신과의사였던 안드레이는 정신병자로 몰려 자신의 병원에 수감되구요. 심심한 남편을 지겨워하며 화가와 바람을 피웠던 올가는 남편도 잃고 화가도 잃어 버리네요. 달팽이처럼 자기 껍질 속에 숨어살던 상자 속 사나이 벨리코프 선생과도 만났는데요.상황은 비극적인데 어째 제 눈에는 벨리코프의 마지막이 행복해 보이더라구요. 자기 몸에 딱 맞는 상자를 찾아 깨지 않는 잠에 빠져들어 그는 분명 만족했을 겁니다. 여자를 저급한 종족이라 무시하던 유부남 구로프는 유부녀 애인을 보며 생각해요. '이 불쌍하고 애틋한 것 같으니라고.'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게 가엽고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도 가엽고. .. 이래서 불륜남 불륜녀들이 그렇게 구질구질 애달픈 거구나. 아내랑 남편은 안중에 없이 떳떳하게 못만나는 서로가 제일 불쌍하다 이거지. 이렇게 해석하라고 쓴 이야기는 아닐테지만 불륜이라면 흰눈이 떠져서 고운 해석 불가;; 


안톤 체호프가 따라 오세요, 하고 그어 놓은 줄이 눈에 보였는데요. 저 자꾸 삐딱하게 읽는 독자였어요. 읽으라는데로 안읽고 자꾸만 포장을 벗겨 버리고 싶더라구요. 어쩌면 그것까지도 안톤 체호프의 안배였을까요? 비극같기도 하고 희극같기도 하고 이래서 칭송 받는 작가인가 보다 했습니다.



+ 스피리투스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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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안티 투오마이넨 지음, 전행선 옮김 / 리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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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쾌하고 재치넘치는 북유럽 소설이에요. 천만뜻밖의 분위기에 완전 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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