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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 계속해도 될까요?
니시 카나코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1020/pimg_7464421721508219.jpg)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상당히 열심히 일기를 썼다. 일기만 쓴 게 아니라 펜팔도 했었고, 친구와 교환노트도 주고 받았다. 감동적인 시도 옮겨 적고 ㅡ 대게는 그렇고 그런 사랑시였다 ㅡ, 꽃 이파리도 말려 붙이고, 괴발개발한 그림도 그리고, 누구 뒷담화도 하고. 그렇게 우스개 같은 이야기를 줄줄 풀어 놓은 일기장이 아직도 창고방 한켠 상자 속에 쌓여있는데 누가 볼까 부끄럽지만 이사 때마다 도저히 버리지를 못해 싸서 묵히고 있는 중이다. 묵힌단들 안네의 일기나 난중일기처럼 극적으로 승화할 리도 없건만. 대신에 그 시절 추억은 군내나는 김치처럼 쉬어빠지지는 않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이 책이 꼭 그때적 우리들의 일기장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와 내 친구의 교환노트 같기도 하고. "야, 내 얘기 좀 들어봐" 하며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꺄르르 꺄르르, 흥분하며 떠들어대던 그 시절 친구의 수다 같기도 한... 구름같이 편하게 읽히는 에세이집이었다.
에세이로 만난 니시 가나코 작가는 소녀와 아가씨 사이의 감성이 풍부하게 뒤섞여 알록달록 무지개 같은 사람이었다.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의 사춘기 소녀 같이 널뛰는 감수성과 엉뚱함, 약간의 자의식 과잉과 가끔은 낯뜨거운 오글거림.,그리고 순수한 사탕 같은 마음들이 일상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내 일렁일렁 파도를 쳤다. 너무나 평범한데 또 한편으론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이 굉장히 독특하고 발랄해 순정만화 주인공이 써내려간 일기장 같은 느낌도 있었다. 보통 소녀는 아닌 것 같은 느낌 적 느낌. 어떻게 보면 순정만화 쪽 페이지에 매번 빠지지 않던 만화가의 일상같기도 하고 말이다. 정작 이 에세이가 작가의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의 작품이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인데 작가들의 독특한 시선이라는 건 나이를 초월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건 또 그것대로 감탄이 나왔다. 책을 읽는 내내 아유 쑥스러~ 부끄러움은 왜 독자의 몫인가~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일화들이 특히나 많았는데 알고 보니 니시 가나코 작가도 자신의 젊을 적, 이 에세이들을 보면 쑥스쑥스 부끄부끄 한다고. 그렇지만 솔직한 심경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세상에 내어놓기 부끄럽진 않았다는 마음에 공감이 갔다. (물론 내 일기는 공개할 수 없다ㅡ//ㅡ)
서정적 감수성으로 힐링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신에 코믹, 발랄, 엽기적인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책 ㅡ제목과 표지에서 풍기는 느낌에 완전 오해할 수도 있으니 분명히 밝혀둔다. 키득키득, 친구가 써준 교환노트를 수업 시간에 몰래몰래 숨겨 읽듯 어젯밤, 또 아침 눈 떠서, 점심을 끝내고, 일하다 눈치껏 조금조금씩 읽다보니 어느 새 한 권이 뚝딱. 책 읽는 게 느린 내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읽었나 싶게 순식간에 뚝딱뚝딱. 니시 가나코 작가의 팔짱을 끼고 도둑시장에 가 흥정을 하고, 빅카메라 가전매장에서 쇼핑도 하고, 눈물나게 어여쁜 고양이들의 배도 쓰다듬어 주고, 종이봉투 뒤로 맥주를 숨겨 한모금씩 마시며 뉴욕 거리도 활보하고 싶은 이 가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