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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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센 씨, 여기 이거 보여요?"
켈센은 나를 쳐다보았다.
"애 엄마요, 애 엄마." 내가 말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 알죠?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눈, 머리카락, 연금, 모든 걸 다 내놓잖아요. 그건 내 반쪽일 뿐이에요. 다른 반쪽은 뭔지 알아요? 미치광이 과학자예요. 프랑켄슈타인, 마부제 박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합쳐진 잡종이 나예요. 거기서 어떤 독종이 나왔는지 곧 보게 될 거에요. 켈센 씨 날 봐요. 내가 얼마나 막다른 상황에 처했는지 아시겠죠?" (p158)

자녀들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의 모성이라니!! 그녀는 켈센이라는 토목학교수의 무릎에 앉아 그의 재규어를 이 벽에 박고 저 벽에 박아가며 협박합니다. 미래 위원회가 뭐냐, 나는 엄마고, 물리학에 미친 여자고, 우리 아이들은 미래 위원회 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 살만큼 산 나는 곧 죽어도 상관없지만 아직 세상 맛도 보지 못한 내 아이들은 아니다. 네가 미래위원회에 관해 알려주지 않으면 너를 끌고 얼음장 같은 바다로 재규어와 함께 퐁당 빠지겠다 하면서요. 그녀와 그녀의 아들은 오늘 한번 죽을 뻔 했고 남편과 딸도 곧 그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눈에 뵈는 게 없죠. 이렇게 얘기하니 대단히 모성 넘치는 어머니의 파이팅 넘치는 스릴러물인 것만 같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아주 대단한 막장가족의 대를 이은 막장 스릴러였습니다. 꽤 유명한 잡지에서 덴마크의 위대한 가족으로 소개되었던 적도 있는 이들은 실로 스펙타클한 구성을 자랑하고 있는데요. 아빠 라반은 유명한 음악가인데 인도 부족장의 딸(무려 18세!!)와 도망쳐서 인도 마피아에 쫓기고 있구요. 물리학자이자 유명 교수인 엄마 수잔은 26세 애인에 대한 폭행, 살인미수 혐으로 25년형을 언도 받기 직전입니다. 쌍둥이 중 남아인 하랄은 밀수품을 들이다가 고소를 당했구요. 딸인 틴트는 백만 신도를 거느린 종교 지도자와 사랑의 도피 중이지요. 감옥으로 수잔을 찾아온 전 덴마크 법무부 장관 토르킬 하인은 그녀에게 제안을 합니다. 수잔과 남편, 아이들의 혐의를 벗겨주고 현재 해외 도주 중인 그들을 덴마크로 안전하게 이송시켜 주겠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란 없었으니!! 수잔 이펙트, 진실을 말하게 만드는 그녀의 능력으로 덴마크의 비밀 결사대, 싱크탱크 미래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를 찾아내라는 것이었지요. 라반과 수잔, 하랄과 틴트 가족은 평범한 가정, 안전한 생활로의 회귀를 위해 미래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를 찾아나서지만 그들의 앞날엔 먹구름만 가득했으니 협박과 폭력, 살인, 강간, 감금, 세기말적 종말까지 갈수록 커지는 스케일에 입이 쩍!!! 그러다 막판 세레나데의 앙상블엔 웃음이 팡팡 터져나오는 소설 되시겠습니다. "이 낯선 스릴러가 결국은 로맨틱 코미디였단 말인가?(옮긴이의 말)" 하구요.

사람으로부터 진실을 뽑아내는 수잔의 능력 수잔 이펙트,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물고 노래와 포옹을 부르는 라반 이펙트, 한번 읽은 것은 모두 기억하는 인간 컴퓨터 하랄과 살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노숙자가 끼인 크리스마스 파티는 꼭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대책없이 낙천적인 틴트. 이 개성적인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가족심리스릴러가 수잔 이펙트였습니다. 가족이래도 서로 막 죽고 못살게 절절한 것도 아니요, 바람 나 이혼 직전이라고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는 것도 아니요, 부부와 아이들 모두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사람들이라 신선하더군요. 인물 면면이 호감과 비호감의 줄다리기를 펼친다고나 할까요? 특히나 수잔은, 정말 이런 여주인공은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독특했는데 초능력 같은 능력도 대단하지만 한 성격 하시는 분이거든요. 자신을 강간하는 남자를 전기드릴과 발코니 나사로 드르륵 박는 모습이 엄청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소년원에 갔냐는 아들의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듣는 이들이 외려 무안해져 자리를 비우는 순간에 그녀가 크리스마스 파티 후의 휴식에 안도하며 노숙자와 맥주를 마시는 점도요. 주인공 이하 등장인물들의 팡팡 튀는 성격이 지루한 스토리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영화 아일랜드를 생각나게 하는 세기말적 상상력과 음모로 가득한 이야기 자체는 꽤 익숙하고 흥미롭지만 물리학적, 과학적 수사가 가득한 문장들 때문에 사실 읽는 진도는 좀 느렸거든요. 수잔 이펙트가 그냥 그대로 사람 이름인 줄로만 알았던 부끄러운 기억과 함께 완독한 책으로 정리합니다. 참고로 이들 가족의 성은 스벤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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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시런니가 필요해 - 인생 신생아 은시런니의 사이다표 드립뱅크
유은실 지음 / MY(흐름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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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살아보니 ㅂㅅㄴ 보다 ㅆㄴ이 살기 편해"

뭐 대단하게 오래 살은 것은 아니지만 이만큼만 살아봐도 알겠다. 누가 뭐래도 ㅂㅅㄴ 보다 ㅆㄴ이 살기 편하다는 걸. 날 믿고 신입을 구했으니 교육 좀 시켜달라며 직원을 보낸 곳이 있었는데 어찌나 뻔뻔하게 요구하던지 얼이 빠져 대응도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서로가 민망한 처음을 지나고 나니 내가 선임도 아니건만 그 직원은 거의 한달에 걸쳐 하루에도 열 두번씩 전화를 해댔다. 직원은 무슨 죄냐며 (보통 사람이면 그렇게까지 전화하지 못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인지상정으로 도와줬더니 석 달도 못버티고 퇴사를 했다. 퇴사까진 그러려니 한다. 개인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퇴사 며칠 전까지도 이거 모르겠다며 전화하던 양반의 징징거림을 들어주고 앉았던 내 입장에서는 말 한마디 않고 나간 직원에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전화하고서는 이건 어떻게 하는 거고 저건 어떻게 하는 거냐며 꼬치꼬치 캐묻다 왜 이렇게 어렵냐며 짜증 부리는 진상은 또 어떻고. 옮겨간 곳의 일처리가 이상하니 확인 좀 해달라는 전화에는 할 말을 잃었다. 친절을 모토로 서비스를 해주면 요구 사항은 더 더 늘어난다. 해줘서 고마운 건 처음 뿐이고 나중에는 무턱대고 찔러본다. 그런 사람에게 대응하다 보니 나도 점점 ㅆㄴ이 되고 만다. 걔 까칠하더라가 걔 만만하더라 보다는 내 시간, 내 체력, 내 돈을 아끼는 길이라는 걸 사회생활을 하며 깨닫는다. 그런 내 모습이 좋으냐면 그건 또 아니라서 까칠함을 마구 발산한 날은 하루가 더 길고 피곤하다. 맥주 한 캔, 마구 친절해져도 좋을 사람, 나를 만만히 보지 않을 사람이 그립다. 언니가 필요한 순간이다.

은시런니는 사십대에 가까운 유은실씨가 상처 가득한 날에 그리기 시작한 그림으로부터 시작한다. 욕이 하고 싶다고 현실에서 마구 발산할 수는 없다. 열 받는다고 다 풀고 살면 사회생활은 물 건너가는 거다. 조용히 처리되던 찌꺼기가 그림으로 화해 짦은 문구와 함게 인스타에 올려지면서 마법 같은 일이 생겨난다. 그녀의 글과 심통 가득한 은시런니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인기를 얻고 책이 만들어졌다. 365일치 분량의 글과 그림은 짧지만 유쾌하고, 직설적이고, 솔직하고, 다감하다. 인기를 끈 이유를 알겠다. "삶은 삶은 달걀, 더럽혀진 생각을 빨고 싶다, 월화수목금을 없애려는 완전 범죄의 꿈, 내가 내일의 나에게 할 일을 미루는 게으름, 먹고 자고 싸는 만족스런 잉여력, 정지 화면처럼 씻지도 일어나지도 않는데 후다닥 지나가버리는 하루의 아쉬움, 월요일에 대한 두려움"이 공감 이백프로다. 중간중간 나왔던 내용이 또 나오는 것 같은 기시감은 있지만 365일 일상이 다 그렇고 그런거지 하며 넘기면 그만이다. 진상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내 구질구질함과 연이은 다이어트의 실패와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와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민에 짧지만 간결한 위로가 있다. 폭탄 같은 웃음은 아니었지만 한 모금 사이다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은 순간 만나고 싶은 은시런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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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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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당시 미네르바라는 사람이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다음 아고라에서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을 예측하며 일약 스타가 됐던 그는 경제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넷상에서 신망이 높았다. 대정부긴급공문발송이라는 글을 기재하며 허위사실유포죄로 체포되어 법정에 설 때까지만 해도 그가 인터넷에서 받은 추앙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무직자이며 전문대졸의 평범한 삼십대라는 것이 알려지자마자 체포될 때 이상으로 인터넷이 들끓었으며 엄청난 조롱이 쏟아져 나왔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었다는 이들과 국가 이익을 훼손했다는 이들과 그의 경력을 조롱하는 이들과 조롱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이들과 뉴스거리가 이것 밖에 없냐고 아우성치는 이들의 다툼이 펼쳐졌다. 그는 후에 무죄 선고를 받았고, 은퇴했으며, 종종 그에 관한 음모론과 그의 예측이 정확하지 않았느냐는 네티즌의 회고에 이름을 올린다. 나는 이 소설 저스티스맨을 그 시절 미네르바 사건의 확장판 같은 느낌으로 읽었다. 경제 사건이 살인 사건으로 바뀌었지만 그 뿐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 지나치게 현실적이며 현실이 그렇듯 소설에서도 진실은 없다.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이 죽었다. 평범한 대학원생이었던 남자가 조교 사무실에서 자신의 책상에 앉아 살해 당한다. 총기소지가 불법인 대한민국에서 머리에 두 방이나 총을 맞았지만 총소리를 들은 사람도 살인범을 본 사람도 없다. 또 다른 남자가 피씨방에서 살해 당한다. 이칸저칸에 게임을 하는 무리로 꽉 차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머리에 두 방의 총을 맞는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없다. 살인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기자출신의 남자가 자신의 차량에서, 전자회사의 휴대폰 수리기사가 거주지인 오피스텔에서, 수리기사의 친구, 고등학교 교사 그리고 인터넷 여행 카페의 운영자까지. 평범한 직장인, 존경받는 가장, 인망 넘치는 카페의 장이 끔찍하게 목숨을 잃었다. 다발적으로 벌어진 이 사건들은 대한민국 국민을 두려움과 공포로 몰아 넣는다. 넘치는 호기심과 잉여력으로 사건을 주시하는 네티즌들, 국민을 겁주는 언론, 때를 이용해 돈 좀 벌어보려 안달이 난 장사치들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온 나라 특히나 넷이 시끌시끌 하다. 경검은 발칵 뒤집혔지만 그 무능력이 하늘에 닿아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다. 그런 때에 마치 눈으로 본 듯이 사건의 동기와 방향성을 짚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저스티스맨. 첫 살인사건 때부터 남다른 시각으로 살인을 분석했던 이다. 그는 죽은 자들이 한 때 인터넷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오물충, 팬션매춘녀와 관련한 사람이며, 미필적 고의로 인격살해를 저지른 놈들임을 밝혀낸다. 죽어 마땅하다고 대놓고 지적한 것은 아니었지만 네티즌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미친 놈이구나 에서 아주 좋게 미친 놈이구나로 시각이 변이, 살인범을 킬러라고 부르며 추앙한다. 살인사건이 터질 때마다 셜록홈즈처럼 살인의 동기를 풀어가는 저스티스맨에게도 열광한다. 그렇게 영웅들이 탄생한다.

영웅탄생비화를 담은 헛웃음 나는 막장극이며, 현실의 사람에게는 무관심 하지만 인터넷에서만큼 가장 정의로운 심판관이 되는 네티즌들을 꼬집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환멸과 함께 수치심을 느낀다. 별 다를 것이 없다. 나 또한 그들 가운데 한 명인 네티즌이다. 최선에 가까운 정의의 편에 서왔다고 생각하지만 알 게 뭔가. 제목 저스티스의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말하는 것일텐데 내가 이 책에서 느끼는 정의는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 에 더 가깝다. 읽는 내내 진실이 고팠으니까.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것인지, 정답에 걸맞는 정의가 뭔지 선명하게 알기 원했다. 밝혀진 진실 앞에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더한 패배감을 느껴야했지만, 작가에게 진 것만 같은 느낌!!, 추측하지 못한 이 결말이 싫지는 않았다. "그"라는 인칭 대명사로 느낀 혼란은 재미있었고, 나의 또다른 인격이었을지도 모를 네티즌들에게 얻어 맞은 가슴은 뜨끔뜨끔 하고, 죽은 놈들의 죽어 마땅한 이야기엔  통쾌하기도 했다. 도선우 작가가 제대로 한 건 했다는 느낌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 인물도 스토리도 완전히 뭉개버렸던 스파링과 비교하면 탄탄한 주제 의식에 재미와 가독성이라는 살을 제대로 찌우고 나왔다. 내 살은 떼어내야 마땅하지만 그의 살들은 더욱 비대해 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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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1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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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노예라고 불리는 홍콩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에 관한 기사를 아침 뉴스로 접했습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홍콩으로 온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이 됐나 보더라구요. 홍콩의 법은 외국인 도우미의 가내 입주를 명령하고 있지만 정작 실내에 도우미를 위한 공간이 주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침대 사이, 세탁기 위, 다락방 등에서 새우잠을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는군요. 고용주의 명령에 따라 고층 아파트의 창문을 닦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고, 시간 외 근무를 요구받아 과로하게 되는 것은 일상. 임금체불과 구타, 성폭행 등의 범죄에 노출되어 강력한 처벌을 바라는 시위가 일어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홍콩 같은 선진국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근대적인 차별과 폭력의 정도에 혀를 차다 떠올리게 된 책이 있습니다. <헬프> 1960년대  미국 남부 지방의 흑인 가정부들에 관한 책이었지요.

"여성 회원님들, 다음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유색인 질병의 99퍼센트는 소변으로 옮습니다. 우리는 유색인의 검은 염색소에 포함된 면역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질병에 걸리면 영구히 불구가 될 수 도 있습니다. 백인이 운반하는 병원균 또한 유색인에게 해로울 수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세요. 자녀를 보호하세요. 가정부를 보호하세요." (p269)

표어가 참 우습지요? 어처구니가 없지만 실제로 1960년대 미국에는  "남부 짐 크로 법"이라는 게 있어서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것이 아예 법제화 돼 있었다고 합니다. 백인과 흑인은 병원, 학교, 버스, 무덤 등을 공유할 수 없었고 같은 책조차 돌려볼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인종이 처음 책을 잡으면 그 책은 오로지 그들 인종의 것으로 헬프의 배경이 되는 잭슨시로 말할 것 같으면 애초에 도서관은 흑인접근금지구역입니다. 흑인은 대학을 나와도 그 지식적 배경에 입각한 취업을 할 수 없습니다. 냇 킹 콜 같은 가수를 제외하면 육체 노동자만이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가정부 에이블린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그녀는 십대 때부터 가정부 일을 했고, 열 일곱명의 아이들을 키워냈으며, 그녀가 낳은 유일한 아이는 일찍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열심히 배워도 가난하고,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선량히 살아왔던 그녀였지만 오늘에 와서는 저 엉터리 같은 표어를 퍼트리는 인종차별주의자 힐리에 의해 집 밖의 얼음장 같은 그녀 전용 화장실로 내쫓겨야 했지요. 그녀가 차려준 식탁에서 그녀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그녀 손으로 빨래한 옷을 입고, 그녀 손에 아이를 맡기는 백인들이 급기야는 같은 실내, 같은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는 것조차 거부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인간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수치심은 물론 견딜 수 있습니다. 백인들과 함께 한 평생이 모욕이었고 차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백인 아이 메이 모블리가 어른 백인의 눈으로 자신을 볼 것은 겁이 납니다. 더러운 흑인, 병을 옮기는 흑인, 저급한 흑인. 그녀를 엄마라 부르고 그녀를 사랑해마지 않던 여느 백인 아이들이 그랬듯 그녀를 한 명의 흑인 가정부, 흑인 일꾼으로 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삶이 되어 버린 차별은 견딜 수 있지만 제 손으로 키운 아이의 눈에 서리는 경멸만큼은 피하고 싶은 것이 에이블린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런 그녀가 백인 여성 스키터에게 제안을 받습니다. 미시시피주, 미국에서도 극악한 평을 듣고 있는 이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이 지극한 지역에서 가정부로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책으로 엮어보자는 것이었지요. 에이블린은 거부합니다. 백인들은 그들 흑인과 가족의 일자리를 뺏고, 집과 차를 불태우고, KKK단이라도 있는 경우엔 사람을 짐승처럼 사살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법의 심판에서조차 자유로와요. 단순히 주먹다짐으로 끝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에이블린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외면하고, 귀를 닫는 것으로 버티려 합니다. 억울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항의하고 싶은 목소리가 있음을 알지만 눌러 꺼버립니다. 참는 것은 그녀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사건이 급변한 것은 로버트 때문이었습니다. 아들 트리로어의 친구였던 다정한 아이 로버트가 고작 백인의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그게 결코 의도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타이어 레버로 두들겨 맞아 두 눈이 머는 폭행을 당한 것입니다. 에이블린의 마음은 슬픔으로 터져나갈 것만 같았지요. 이대로는 안된다. 변하고 싶다. 변화해야 한다. 그 마음이 시발점이 되어 에이블린과 미나, 스키터를 묶지요. 그러다 다시 흑인 가정부 율 메이가 저 악마 같은 힐리로 인해 감옥에 가는 일이 생기면서 인터뷰는 훨씬 더 활기를 띠게 됩니다. 지금 여기의 모순된 현실을 조금도 바꿀 수 없겠지만, 책이 출간될지 안될 지도 알 수 없지만 백인들에 대한 분노가 자식들에 대한 동정과 모성이 두려움을 눌러 버립니다. 처음에는 에이블린과 미나 두 명 뿐이었지만 또 한 명, 또 한 명, 다시 한 명이 더해지며 기어이 열 두명, 아니 스키터의 가정부였던 콘슨탄틴의 얘기까지 더해져 13명의 가정부 얘기가 책 한 권으로 엮어집니다. 책이 만들어지고, 다시 잭슨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수근대는 사람들 속에서 목을 죄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에이블린과 미나, 스키터는 생에 없던 자유와 해방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더 나은 선택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더 희망적인 인생으로 나아가기 위해 각자의 발걸음을 옮기지요.


헬프는 이들 가정부들이 엮어 만든 책의 제목입니다. 흑인 가정부들이 받는 차별과 학대에 대한 이야기이며, 흑인과 백인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리를 가르는 시선에 대한 고발이자 고백입니다. 인종차별주의자를 대표하는 힐러를 내세워 악을 벌하는 권선징악의 속 시원한 이야기는 지혜로운 에이블린, 용감한 미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스키터의 기개와 지략이 더해져 매 페이지가 흥미진진합니다.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회합이 차별이라는 심각한 소재 앞에서도 얼마나 따뜻한 시선으로 유머스럽게 펼쳐지는지 직접 책으로 만나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데요. 인종차별의 내용에 분노하고, 그 시절 흑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녀들의 따뜻한 마음과 모성을 응원하다 보면 8백에 가까운 페이지조차 아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들의 용기에 반성하게 됩니다. 세상 어디에선가, 저기 먼 홍콩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 이곳 대한민국과 내 마음 속 어딘가에도 국적과 인종과 부와 성별과 나이로 가르는 선들이 무수하진 않았었나 하구요. 저 또한 그런 차별적인 시선으로 누구에겐가 말 못할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는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매일의 일상에 같은 장소, 같은 자리, 같은 사람들 사이로만 오고 가는 저로서는 흔치 않을 일이지만 제 안에서 나와 너를 가르는 선이 뚜렷하게 느껴질 때면 이 책 헬프와 에이블린의 말을 떠올려야겠다고 결심해 봅니다. 체스를 둘 때처럼 놓인 위치가 다를 뿐 우리 사이에는 선이 없다고. 실로 그런 현실은 존재할 수 없고, 제 안의 선을 다 없애는 날도 결코 올리 없겠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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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을 올리는 독서의 기술
김태희 지음 / 지상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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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로 사고를 쑥쑥 키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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