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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평점 :
이명박 정권 당시 미네르바라는 사람이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다음 아고라에서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을 예측하며 일약 스타가 됐던 그는 경제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넷상에서 신망이 높았다. 대정부긴급공문발송이라는 글을 기재하며 허위사실유포죄로 체포되어 법정에 설 때까지만 해도 그가 인터넷에서 받은 추앙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무직자이며 전문대졸의 평범한 삼십대라는 것이 알려지자마자 체포될 때 이상으로 인터넷이 들끓었으며 엄청난 조롱이 쏟아져 나왔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었다는 이들과 국가 이익을 훼손했다는 이들과 그의 경력을 조롱하는 이들과 조롱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이들과 뉴스거리가 이것 밖에 없냐고 아우성치는 이들의 다툼이 펼쳐졌다. 그는 후에 무죄 선고를 받았고, 은퇴했으며, 종종 그에 관한 음모론과 그의 예측이 정확하지 않았느냐는 네티즌의 회고에 이름을 올린다. 나는 이 소설 저스티스맨을 그 시절 미네르바 사건의 확장판 같은 느낌으로 읽었다. 경제 사건이 살인 사건으로 바뀌었지만 그 뿐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 지나치게 현실적이며 현실이 그렇듯 소설에서도 진실은 없다.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이 죽었다. 평범한 대학원생이었던 남자가 조교 사무실에서 자신의 책상에 앉아 살해 당한다. 총기소지가 불법인 대한민국에서 머리에 두 방이나 총을 맞았지만 총소리를 들은 사람도 살인범을 본 사람도 없다. 또 다른 남자가 피씨방에서 살해 당한다. 이칸저칸에 게임을 하는 무리로 꽉 차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머리에 두 방의 총을 맞는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없다. 살인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기자출신의 남자가 자신의 차량에서, 전자회사의 휴대폰 수리기사가 거주지인 오피스텔에서, 수리기사의 친구, 고등학교 교사 그리고 인터넷 여행 카페의 운영자까지. 평범한 직장인, 존경받는 가장, 인망 넘치는 카페의 장이 끔찍하게 목숨을 잃었다. 다발적으로 벌어진 이 사건들은 대한민국 국민을 두려움과 공포로 몰아 넣는다. 넘치는 호기심과 잉여력으로 사건을 주시하는 네티즌들, 국민을 겁주는 언론, 때를 이용해 돈 좀 벌어보려 안달이 난 장사치들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온 나라 특히나 넷이 시끌시끌 하다. 경검은 발칵 뒤집혔지만 그 무능력이 하늘에 닿아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다. 그런 때에 마치 눈으로 본 듯이 사건의 동기와 방향성을 짚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저스티스맨. 첫 살인사건 때부터 남다른 시각으로 살인을 분석했던 이다. 그는 죽은 자들이 한 때 인터넷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오물충, 팬션매춘녀와 관련한 사람이며, 미필적 고의로 인격살해를 저지른 놈들임을 밝혀낸다. 죽어 마땅하다고 대놓고 지적한 것은 아니었지만 네티즌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미친 놈이구나 에서 아주 좋게 미친 놈이구나로 시각이 변이, 살인범을 킬러라고 부르며 추앙한다. 살인사건이 터질 때마다 셜록홈즈처럼 살인의 동기를 풀어가는 저스티스맨에게도 열광한다. 그렇게 영웅들이 탄생한다.
영웅탄생비화를 담은 헛웃음 나는 막장극이며, 현실의 사람에게는 무관심 하지만 인터넷에서만큼 가장 정의로운 심판관이 되는 네티즌들을 꼬집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환멸과 함께 수치심을 느낀다. 별 다를 것이 없다. 나 또한 그들 가운데 한 명인 네티즌이다. 최선에 가까운 정의의 편에 서왔다고 생각하지만 알 게 뭔가. 제목 저스티스의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말하는 것일텐데 내가 이 책에서 느끼는 정의는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 에 더 가깝다. 읽는 내내 진실이 고팠으니까.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것인지, 정답에 걸맞는 정의가 뭔지 선명하게 알기 원했다. 밝혀진 진실 앞에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더한 패배감을 느껴야했지만, 작가에게 진 것만 같은 느낌!!, 추측하지 못한 이 결말이 싫지는 않았다. "그"라는 인칭 대명사로 느낀 혼란은 재미있었고, 나의 또다른 인격이었을지도 모를 네티즌들에게 얻어 맞은 가슴은 뜨끔뜨끔 하고, 죽은 놈들의 죽어 마땅한 이야기엔 통쾌하기도 했다. 도선우 작가가 제대로 한 건 했다는 느낌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 인물도 스토리도 완전히 뭉개버렸던 스파링과 비교하면 탄탄한 주제 의식에 재미와 가독성이라는 살을 제대로 찌우고 나왔다. 내 살은 떼어내야 마땅하지만 그의 살들은 더욱 비대해 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