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우시 왕 1세 네버랜드 클래식 50
야누쉬 코르착 지음, 크리스티나 립카-슈타르바워 그림, 이지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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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기에 남아 있지 않아 다행이야.
클루클루, 울지 마. 우리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을 거야.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왕은 전쟁을 선포하기만 하고 죽는 건 군인 몫이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아름답게 죽는 것, 이것만이 마치우시의 유일한 바람이었어요.
갑자기 마치우시는 궁금해졌어요.
'적들은 내 장례식을 어떻게 해 줄까?' (p381)



 

10살의 이른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은 마치우시는 하루 아침에 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제 얼굴만한 왕관을 머리에 얹고 제 잇속 차리기에 바쁜 외무부장관, 법무부장관, 국방부장관 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무런 힘도 없이 외면 당하던 어느 날, 이웃 세 나라가 마치우시의 나라를 침공합니다. 왕이라지만 전쟁이 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마치우시는 신하들의 눈을 피해 전장으로 가는 후송열차에 숨어듭니다. 왕된 자로서 안락한 왕궁에 숨어있지만은 않겠다는 패기였지요.

    

'아빠, 아빠, 전쟁하는 왕이 되는 건 정말 힘들어요.
우리가 왜 두려워해야 하느냐고,

증조할아버지처럼 당신들을 이겨 주겠다고 말하긴 쉬웠어요.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네요.
그때 저는 아무 생각도 없는 어린애였어요.
사람들이 꽃을 던져 주는 가운데 흰말을 타고 수도를 떠나는 생각만 했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p81)


춥고 배고프고 이가 들끓고 잠자리는 딱딱하고 마치우시만의 전쟁은 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시작됩니다. 왕세자로 자라 순순이 왕이 된 마치우시에게는 너무나 고약한 환경이라 잠깐은 왕궁을 뛰쳐나온 것을 후회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왕을 욕하는 국민들은 또 어찌나 많던지요. 모든 국민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과 전쟁이 승리만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으며 마치우시는 싫어하던 공부도 좋아하게 되고 반항심을 갖고 대했던 어른들이 가진 해박한 지식과 지혜와 결단력을 깨달으며 참된 성장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난무하는 총알을 뚫으며 적진으로 달려가고 언땅을 파 참호를 만들고 몇날며칠을 참호 속에서 선잠을 자다 땅을 기어가 적군을 사살하기도 하는 등 여러 소소한 임무를 성공해내던 소년병은 스파이 업무까지 완벽하게 해내며 국방부장관의 훈장까지 받게 됩니다. (장관의 훈장을 받는 왕이라니요!! 후후후^ㅁ^) 그렇게 왕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밝히지 않고도 영웅과도 같은 대접을 받으며 마치우시는 아군들의 우호 속에서 결국 세 왕의 굴복을 받아냅니다. 찬란한 승리였어요.


"물론 우리 왕궁의 정원이 멋진 건 알아요.
하지만 혼자서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에서도 슬프다구요." (p18)

 

 

전쟁의 종결, 이로써 마치우시의 성장기도 모두 끝이 났냐구요? 기쁘게도 또한 가엽게도 마치우시의 극기체험은 전쟁 후에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이 되요. 백마를 타고 멋지게 환궁(할 뻔했지만 추락)한 마치우시는 전쟁으로 하여 12살 밖에 안된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고 장관 같은 어른들에게만 모든 권력을 내어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것이 바로 어른 국회와 어린이 국회의 분리였어요. 12살까지의 어린이들은 자신과 어린이들이 선출한 의원들이, 그 이상의 어른들은 어른 장관들이 통치하는 법안을 만든 겁니다. 어른 국회의사당과 어린이 국회의사당, 어른 국회의원과 어린이 국회의원이 함께 한 모습이라니 너무 신기방기한 이 정책에 어린이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여요. 어린이가 어른으로 성장 중인 불완전한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어른과 똑같은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존중받게 된 것이니까요. 마치우시는 아이들에게 매일 초콜릿을 나누어주고 그네와 놀이기구를 만들어주고 여름이면 가난한 아이들로 하여금 여름학교에서 생활하게 해주는 등 그가 생각하기에 오로지 어린이만을 위한 여러가지 정책을 펼치지만 글쎄요. 어른과 어린이들이 마치우시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에게 감사했을지는 더욱 시간을 두고 지켜 볼 일입니다. "뽀뽀하지 못하게 해주세요, 어른들만큼 많은 주머니를 가진 옷을 입고 싶어요, 아기와 여자애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등의 얼토당토 않은 법안 요구 속에서 잠자는 것도 잊고 먹는 것도 잊으며 어린이 복지에 힘쓰던 마치우시의 독특하고 해괴한 모험은 기어이 아프리카까지 향하는데요. 식인족과의 우정과 교류로 뜻밖의 황금과 다이아몬드까지 얻게 된 마치우시!! 이로써 어린이들을 위헌 정책에 부족했던 세수까지 완벽하게 확보 성공!! 그러나 아프리카의 황금과 다이아몬드는 이웃 왕들의 질시를 가져오게 되고 더욱이 마치우시의 정책으로 하여 타국 어린이들이 모여 데모를 하고 항쟁하기에 이르자 왕들은 무언의 위기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 스파이들, 타국의 군수공장과 군대들, 평화로움을 위장한 언론 뒤에 감추어져 있던 어른과 어린이들의 때아닌 갈등으로 위기 속에 놓이게 된 마치우시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 걸까요? 왕에게 등을 보이기 시작한 국민들과 스파이의 농간, 마치우시가 끌고온 황금과 인기에 겁먹은 어른들에 대항한 마치우시의 모험은 성공리에 막을 내릴 수 있을까요?

"계집애인데 남자애들까지 합쳐도 최고야. 맙소사, 저 애 나라의 남자애들은 어떨까!"
"똑같아. 남자애라고 더 나을 건 없어.
하지만 백인 나라에서는 여자애들이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야." (p282)


 

 

세 번째 안건에서 여자아이들은 두 개,

남자아이들은 여섯 개의 주머니를 가지기로 했어요.
클루클루는 화가 났어요.
왜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세배나 많이,
다르게 말하면 여자아이들은 왜 네 개나 적게 주머니를 가져야 하는데요? (p301)


마치우시 1세는 시공주니어에서 처음으로 발행하는 폴란드어 완역본이라고 합니다. 작가의 본명은 헨릭 골드슈미트, 공모전에 참가하려고 지은 이름이 야나쉬 코르착이었다는데 누군가의 실수로 야누쉬가 되어 그 이후로는 쭉 야누쉬 코르착이라는 필명을 쓰셨나 봐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가난하게 자랐지만 뛰어난 학구열로 의사가 되었고 우연히 그 이름이 바뀌었던 것처럼 운명같이 '고아들의 집'을 설립하여 아이들을 키우게 됩니다. 아동인권운동가로 교육자로 어린이 친구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야누쉬는 2차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치들에 의해 고아들이 강제수용소에 끌려갈 때에도 두려움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나치 장교가 혼자 살아나갈 수 있는 제안을 했을 때에도 그 기회를 제 손으로 뿌리치며 아이들과 함께 수용소행 기차를 타지요. 나치들이 준 15분의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소풍을 간다며 아이들을 안심시켰던 야누쉬 코르착. 마치우시의 깃발을 들고 신나하며 행진하는 고아원의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로 함께 향한 것이 폴란드 영웅의 마지막 행보였습니다. 1923년에 출간된 마치우시 왕 1세 곳곳에는 이런 야누쉬 코르착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존중, 이해가 담겨있습니다. 교육자로 그가 고아원에서 시행했던 여러 교육방법의 실패담도 함께 어우러진 이야기들 속 자그마한 유머도 가치롭습니다. 무엇보다 출간년도를 잊게 만드는 어린이인권의식, 반인종주의, 패미니즘적 성향이 놀라움을 자아냈는데요. 아프리카의 식인족장의 딸 클루클루는 마치우시와 함께 야누쉬의 말을 대변하는 가장 매력적인 주인공 중 한 명입니다. 어른 백인남자들도 못잡는 늑대를 때려잡을 정도로 용감하고 여자아이들의 무가치함을 욕하는 어린이 국회의 남자애들에게 거침없이 반론하며 사람들의 까맣고 하얀 피부색의 구분까지도 훨훨 날려버리는 걸크러쉬 터지는 매력적인 소녀와 어린이들에 대한 자애가 넘치는 소년왕은 다음 모험까지 기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표지로 인하여 너무 슬픈 결말일까봐 걱정했는데 확실히 좀 우울한 결말이긴 하더군요ㅠㅠ 낭길리마로 떠나던 사자왕 요나탄과 칼(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 사자왕 형제의 모험)의 자유낙하만큼 그 당시에도 논란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되는데 다행히도 다음 권 <무인도의 마치우시 왕>이 있다 하니 부디 빠르게 번역되어 이 궁금증과 우울함을 날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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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우리 - 고승의 환생, 린포체 앙뚜 이야기
문창용 지음 / 홍익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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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말로 린포체는 존귀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전생의 선한 업을 잊지 않고 고스란히 이어갈 운명을 지고 태어난 고승의 환생체를 일컸는데요. 어린 아기일 때부터 난 자리가 깨끗하지 않거나 흰옷을 입거나 부정한 것을 접하면 혀가 까맣게 되며 열병을 앓구요. 기이하게 성숙한 태도는 부모로 하여금 그가 린포체임을 알게 합니다. 덕이 높은 고승들에게 보이면 한 눈에 그가 린포체임을 알아보기도 한다 하니 티베트인들에게만 내려오고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내력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무병처럼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그렇게 린포체로 태어난 한 아이와 제자로 맞아들였던 동자승을 오히려 스승처럼 모시며 돌보게 되는 늙은 승려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린포체의 전생을 찾아가는 길고 고단한 여정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요.

환생자들은 대게 그 자신을 증거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전생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모셔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다섯살에 동자승이 되어 여섯살에 린포체임이 밝혀진 앙뚜는 열두살이 되도록 찾아오는 이가 없어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티베트 캄에 있는 그의 제자들은 여기 라다크에 그들의 스승 '족첸 귤멧 나톤 왕보'가 태어났음을 모르는 걸까요. 그도 아니면 중국으로부터 가로막힌 국경을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는 걸까요. 천성이 밝은 앙뚜에게도 닿지 않는 소식은 슬프고 속상한 일입니다. 존경을 표하던 마을 사람들이 린포체임을 의심하고 비웃으며 보내는 뾰족한 눈길도 아프기만 하고 한 사원 안에 두명의 린포체가 있을 수 없어 내쫓기기까지 하니 하늘 같던 자존심도 파스스 무너져버리고 말아요. 사춘기의 격정까지 더해져 풍랑처럼 들썩이는 앙뚜의 마음은 오로지 노승 우르갼만이 헤아릴 수 있습니다. 린포체를 사랑하고 린포체를 존경하고 린포체를 아끼는 이 일흔에 가까운 승려가 기어이 티베트로 앙뚜를 모셔갈 여정을 시작한 것도 모두 앙뚜에 대한 그지 없이 깊은 사랑 때문이었지요. 언제 닿을지도 알 수 없는 머나먼 길을 오로지 걷고 또 걸으며 앙뚜와 우르갼은 캄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제자들과 조우해 그 자신이 캄의 고승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시작은 그런 궁금증으로 하여 마음이 부풀었지만 끝내는 앙뚜와 우르갼이 그저 오래오래 사랑하고 아끼며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그들 두 사람이 또 그렇게 함께이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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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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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집에서 87, 88년의 이야기가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무슨 프로그램이었는지 티비에서 88 올림픽 성화 봉송이 나오고 비둘기가 타죽었댔나 어쨌댔나 하던 이야기 끝에 내가 동네 아이들과 함께 노태우노태우 떼창을 부르고 다닌 일이 거론되었다. 그럴 리가 없다,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는 나와 절대 그랬다는 엄마의 대립은 또다른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실로 밝혀지며 나를 기함하게 했다. 어린애가 뭘 알고 그랬겠냐, 선거유세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며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지만 수치스러운 기억이다. 민주화의 진영에서 깃발을 휘날리진 못할 망정 노태우를 부르짖고 다녔다니 그 시절로 돌아가면 내 입을 꿰메버리고 싶었다. 서른의 반격 그 시작은 내 그런 수치스런 기억을 일깨우며 88년도로 거슬러 올라갔다.

호돌이 마크가 전국을 도배하고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에 대한 노랫소리가 거리거리를 매우던 때, 우리 사는 세상에 보통 사람 노태우가 믿어주세요 하며 정권을 장악하던 그 해에 김지혜가 태어난다. 엄마의 출산 봉기가 없었더라면 임종하신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추봉이가 될 뻔했던 지혜씨. 작명의 시작부터가 유별났던 지혜씨. 그러나 지혜씨의 그런 "튐"은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88올림픽에 출전한 칼 루이스는 내 앞을 달린 인간은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벤 존슨은 남의 등짝이나 보고 달린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며 경쟁하는데 우리 보통사람, 우리 평범한 지혜씨는 88 올림픽을 전후하여 태어난 세상 많은 칼 루이스들과 벤 존슨들의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타인에게 앞자리를 내어주고 무수히 많은 남의 등짝을 보며 서른으로 자랐다. 나라고 뭐 달랐겠냐만은. 쓰고 보니 박탈감 캬~ㅠㅠ 살면서 나보다 ㅇㅇ 잘하는 인간 본 적 없음 이런 말 비슷한 것도 해본 적이 없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 칼 루이스, 벤 존슨의 말은 멋있으면서도 흥칫뿡이다ㅠㅠㅠㅠ

어쨌든 보통 내지는 보통미만사람으로 눈물을 닦을 일은 많았어도 성실하게 살았던 지혜씨.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라 서른의 나이에 인턴 7개월차, 정직원 기약없음, 정직원으로 등업하고 싶지도 않음, 이 정도 자리에 오려고 아둥바둥 공부했나 허탈감 장난 아님, 빌라 5층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계속계속 하락하여 현재는 지하방 신세, 단번에 취직한 남친과 달리 계속된 취업 고배로 갈등하다 헤어짐, 친구들은 결혼을 기점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딱 하나 남은(것은 아니겠으나 어쨌든 유일등장) 유부녀 친구는 미혼의 불안과 외로움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넌 좋겠다 시전, 학창시절 자기를 도둑으로 몰았던 때려죽여도 시원찮은 웬수 동명이인 김지혜는 갑으로 등장한다. 읽다 보면 누구 생각나는 사람 다들 한 명씩은 있을 것이다. "너랑 나랑"(은 절대 안되지~ 아이유 노래인가요. 자꾸 눈물이ㅠㅠㅠㅠ) 인생 왜 이러냐 소리가 절로 나올 만한 그런 시기에 지혜씨는 유례없이 특별한 상대를 만난다. 소설이라 현실과는 달리 반전 같은 삶의 활력소가 등장해 주시는 것이다. 이름 이규옥. 나이는 지혜씨와 같은 서른이다. 지혜씨네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와 일 잘한다, 성격 좋다 칭찬이 자자하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다. 곰돌이를 닮은 외향적 특징과 능글맞음으로 철벽치기 쉽지 않지만 첫만남이 워낙 강렬했기에 지혜씨는 이규옥을 믿지 못한다. 어떤 특별한 만남이 있었는지는 비밀, 그러나 그들의 만남으로 인하여 지혜씨가 아무래도 규옥씨도 함께 성장했다는 것은 안비밀. 깜빡 속아 하마터면 성장물이 아니라 연애물인가 착각할 뻔 한 것도 안비밀 ㅋㅋ 아차, 지혜와 규옥 그리고 우클렐라 반 회원들의 우연한 합작으로 시작된 세상을 향한 핑퐁 같은 반격들도  잼나다. 소소하지만 딱 보통사람다운 반격들이 귀엽다.

워낙에 리뷰들이 좋아 기대가 컸는데 그 마음 더 컸어도 좋았을 뻔 했다. 고작해야 이백, 장편소설이 이토록 간략해도 되는 건가요 하는 생각도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쏙 들어간다. 한문장도 빠트리지 않고 책이 통째로 공감이다. 김지혜의 서른. 가난하고 불안하고 사랑은 적고 교류는 희박하고 오해는 확장되고 세상은 나이가 들수록 좁아지는 것 같은 청춘의 순간순간들이 답답하고 슬프고 회의적이고 쓰지만 그럼에도 낭만적인 반격들이, 김지혜의 고민과 성장이 사랑스럽다. 어떤 순간들의 낭만은 분명 판타지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그 느낌까지 청량하게 소화시켜 본다. 우리 보통사람, 쓰레기 같은 누구 말고 진짜 보통사람들인 우리를, 청춘을, 믿어주세요 라는 느낌으로. 이래봬도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 ㅎㅎ 라는 멋적지만 따뜻한 위로를 덤으로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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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하창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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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식민지 시기, 아일랜드 태생의 장교와 인도여자 사이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자란 고아 소년 킴은 거대한 대포 잠잠마 아래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빨간 모자를 쓰고 탁발그릇을 품은 티베트에서 온 구루, 노승, 성자, 성인. 어떻게 불려도 좋을 지혜로운 테슈 라마가 거리에 침잠해 있던 킴의 운명에 무지개를 띄운 것이다. "저분은 단지 우리가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일 뿐이야."(p19)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살의 강을 찾아 하산하여 석가모니의 발자취를 좇고 있는 스님을 처음 본 순간 킴의 입에서 나온 현명한 말과 태도가 나를 매료시켰다. 다른 모든 아이들이, 그들의 말을 빌자면, 우상숭배자인 늙고 고단한 이방인을 겁내고 비웃을 적에 유일하게 킴만이 나서서 그를 불가사의한 집(박물관)으로 안내하고 구걸로 탁발그릇을 채워 배를 채우게 했으며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하였다. 스님은 벼락처럼 그가 자신의 제자될 이임을 알아 보았고 소년은 첫눈에 그를 사랑하게 된다. 아니 두 사람 모두가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함께 길을 나섬에 한치 주저함도 없을 정도로. 

화살의 강을 찾아서 인도의 모든 강을 건너야 하는 스님과 킴의 긴 여정이 12세에서 16세까지 계속되는 동안 인도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라호르와 티베트에 이르는 소박하지만 장대한 걸음이 떠들썩하다. 때로는 기차의 삼등열차에 올라타 닭장 같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때로는 2400키로미터에 이르는 눈이 부신 대간선도로를 따라 걸으며, 또 때로는 북부인도왕국의 나이든 부인의 가마를 얻어 타기도 하며 한 강을 살피고 또 한 강을 살피며 나아가고 나아가는 킴과 테슈 라마의 여정이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마치 서유기의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인도판 버전을 보는 듯도 한 이 기이하고 우습고 신기하고 아름다운 사제와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책을 잡기도 전부터 저항적 읽기를 하리라던 내 결심을 열두번쯤 무너트렸다. 아이 같이 순수하고 지혜로운 노승과 천방지축 악마 같이 영악하지만 노승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를 사랑하는 이유를 쉰가지쯤 댈 수 있는 킴을 읽다 보면 백인우월주의자이며 제국주의의 기치에 글쓰기를 다 바쳤던 러디어드 키플링의 가증스러움을 자꾸만 깜빡하게 되는 것이다. 

반란(인도의 입장에서는 여지없는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자신의 사촌까지 죽여버렸던 매국노 늙은퇴역군인은 영국으로부터 훈장과도 같은 재산과 존경을 받으며 그의 아들들까지 장교로 만들어 떵떵거리고 살고 있었다. 인도의 민족들은 특히 북부의 소수민족들의 경우엔 영국인으로부터 지배 당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복종의 태도를 보인다. 가난한 인도인들은 그들의 재산을 훔쳐가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에서도 삼등석, 다리를 펼 수도 없는 자리에나 올라탈 수 있을 뿐이며, 기차선로 아래로 엎드려 있었단 것만으로 (물론 그들에겐 북인도왕국의 밀정이라는 숨은 직업이 있었지만) 경찰이란 공권력으로부터 정도 이상의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피부가 하얀 백인들은 죄책감 없이 검은 인도인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고 때로는 총을 쏠 수도 있었으니까. 북인도왕국의 힘없는 왕들이 러시아와 손을 잡아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 또한 여정의 와중 영국정부의 스파이가 된 킴으로 인하여 끝끝내 무산되고 만다. 테슈 라마의 인도로 화살의 강을 만나 윤회의 수레바퀴에서는 벗어났을지언정 제국주의의 포화 속에서 백인으로서의 자부심만큼은 킴조차 뿌리 뽑지 못했던 탓이다.

세상 모든 이들의 친구, 모든 별들의 친구인 킴이 붉은 황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지나쳐 테슈 라마와 헤어짐 없이 쭈욱 길을 나아갔더라면.. 그 한가지의 아쉬움을 뒤로 하며 책을 덮는다. 식민역사의 아픔을 모르지 않는 국가의 국민으로, 독자로써 좋은 책이었다 말하기가 죄스럽다. 그럼에도 도무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빠져읽은 것 또한 사실이라 테슈 라마와 킴의 여정을 추천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키플링이 일찍이 그가 썼듯이 윤회의 수레바퀴가 공정함을 알고 그 자신과 그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글쓰기를 했다면 어떠했을까 다 늦은 바람으로 안타까움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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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 공감 본능은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위해 진화하는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최재천.안재하 옮김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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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고 싶다. 더 더 많이 공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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