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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 이야기 - 르네상스의 주역 ㅣ 현대지성 클래식 14
G.F. 영 지음, 이길상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0월
평점 :
뿌듯하다!!!!
내 맘 속 제 1의 아해도 뿌듯하다고 하고 제 2의 아해도 뿌듯하다고 하고 제 3의 아해도 뿌듯하다고 한다. 뿌듯하다!!!!! ㅋㅋㅋㅋ 책의 내용과 그에 대한 이해나 감상에의 깊이와는 별개로 내가 이 책을 완독했다는 것이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작년 겨울에 읽은 역사e 5편(티비 방영의 축약본) 이후로 거의 일년 만에 잡은 역사서인데다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두께였다. 끝맺음 말까지 포함하면 책은 764 페이지에 달한다. 더러 보이는 흑백 삽화로도 위로가 안되는 양인 것이다. 현대에 쓰여진 역사책도 아니었고 설민석 강사의 저서들처럼 유쾌한 풀이가 보장되지도 않았다. 17년에 번역됐다고 15, 16년즈음 출간된 책이겠거니 했던 것은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던가. 저자는 군인 출신이며 이 책을 쓴 것은 1910년도 10월에의 일이었다. 책을 펼치고 머리말을 읽고 다시 작가의 독자 전상서를 읽으며 이미 기가 죽었다. 역사는 그 자체로도 내게 힘든 영역인데 역사서의 고전 같은 책으로 접한다니 더 얼마나 힘이 들텐가. 그나마 내 용기를 북돋은 것은 작가의 말보다도 앞서 등장한 앤드루 랭의 전언이었다. "현실에 파묻혀 지내느라 그 위대한 과거를 구석에 처박아 놓아서는 안 된다." 재미를 포기한 분투하는 독서가 되겠지만 한 해에 한번쯤은 그 위대한 역사를 어느 나라의 것이든 한번은 들이 쉬고 가자 했던 어느 때의 각오가 새삼 치솟았다.
"이 가문의 역사를 살펴보노라면 노력과 행운이라는 양면에서 극단적인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입신 과정이 경이롭고, 숱한 부침이 애처롭고, 인류의 항구적 유익을 위한 사업에 후했던 점에서 위대하고, 그 장도에서 겪은 많은 사건들은 비극적이고, 쇠퇴와 몰락이 비루한(전정기에 버금가는 마지막 한 행동을 제외하고는) 이 가문의 역사는 3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광활한 무대에서 공연된 대 드라마와 같다.(p40)
<메디치 가문 이야기>는 350년에 걸친 메디치 가문의 장자 계열과 차자 계열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중요도에 따라 페이지의 양에 차이는 있지만 그렇다고 유명하거나 재미있는 사연이 많은 1인에 대한 소개로 절반쯤을 짓이기는 류의 구성은 아니었다. 작가가 시작하는 말에 미리 공지했던 데로 가급적 균형있게 분배되었던 것만은 분명해서 각양각색의 메디치 가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르네상스의 아침을 열었던 시조 조반니 디 비치, 피렌체에 일찌기 없었던 호칭 "국부"의 존대를 받았던 유능한 코시모, 소년시절부터 통풍에 시달려 통풍병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피에로 일 고토소, 휘장 없이 군주의 권력을 행사할 줄 알았던 위대한 자 로렌초와 그가 황금기로 이끌었던 화려한 도시 피렌체의 정경들, 르네상스의 별들이 펼치는 예술의 이야기, 별칭이 불행자일 정도로 맡은 과제마다 죽죽 말아드신 피에트로, 차자 계열의 질투와 모함으로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유럽 일대를 떠올아야 했던 대공위 시대, 서자로 하여 메디치 가를 잇겠다는 욕망으로 유럽 일대를 지옥 끄트머리까지 몰아넣었던 그리하여 메디치 가의 장자 계열을 시원하게 말아잡수신 클레멘스 7세 줄리오(천일의 스캔들 속 헨리 8세와 앤 볼린의 결혼을 막았던 그 교황!), 프랑스의 왕비였으나 정작 프랑스 국민들은 "그 이탈리아 여자"라는 호칭으로 손가락질 했으며 그런 무시와 홀대에도 어찌할 수 없는 애국심과 책임감으로 8차에 걸친 종교 전쟁으로부터 프랑스를 지키려 노력했던 불굴의 중재자 카테리나 데 메디치 (매력이 지나쳐 마녀라 일컬어졌던 디아 드 푸아티에라는 정적과의 사연으로 익히 더 알려졌다), 사자의 심장을 가졌던 여백작 카테리나 스포르차(여기서부터 차자계열), 메디치가가 배출한 유일한 군인 조반니 델레 반데 네레, 철권의 독재자 피렌체 공작 코시모 1세,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수석 수학자로 두었던 코시모 2세와 이후 170년간의 꾸준한 몰락기를 거쳐 메디치 가의 바스라진 영광을 끌어모아 별과도 같은 증여로 모든 사유재산을 피렌체에 안배했던 공주 안나 마리아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메디치 가문 전체를 다룬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고 하니 7백여 페이지가 많은 것만은 아니었다. 르네상스의 익히 들어 친숙한 예술과들과의 만남 정도로만 생각했던 책은 피렌체를 시작으로 베네치아 등의 공화국으로 점철된 이탈리아를 휘두르고 다시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스페인(통일 이전과 통일 이후), 영국 등 유럽 전역의 역사까지 뻗쳐간다.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이 그만큼이나 방대했던 것이 새삼 믿기지가 않지만 현재에까지 전해지고 연구되는 한 가문의 영달이 무겁고도 찬란하다는 것만은 알겠다.
"어떤 그림이든 나름대로 할 말을 갖고 있다.
작품이 조야하든 조야하지 않든 예술의 참 즐거움은 작품을 꿰뚫어 그 너머를 바라보고,
"활활 타오르는 메시지"ㅡ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ㅡ 를 해독하는데 있다." (p134)
그간 내가 써온 리뷰는 거의 언제나 재미있다, 재미없다라는 작품에 대한 나의 기호로 쓰여질 때가 많았다. 그것이 내가 책을 읽는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고 리뷰를 쓰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런 분류를 하지 않으려 한다.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이 유럽 일대를 종횡무진하며 업적을 쌓고 승리하고 다투어 물러나고 강탈하고 찬탈당하고 쇠퇴하여 끝끝내 문을 닫는 그 장구한 역사의 축약이 내 속에서 단순하게 재미있다 없다로 구분되지도 않을 뿐더러 있는 힘껏 열과 성을 다한 지금의 읽기에 별을 매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내 노력이 가상해서 ㅎㅎㅎ 완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책에 대한 애정이 솟는 대단히 전투적이었던 독서를 끝마친다. 작가 G.F.영의 활활 타오르는 메시지를 다 꿰뚫어 볼 능력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