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인종 분리? 노예 제도? 이 개새끼 같은 놈아, 네 부모가 널 그렇게 키우진 않았을 거다!
그러니 이놈의 파티를 시작해 보자!" (p40)

파티의 근원은 악이었다. 폭력이었다. 폭행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성장 기폭제였다. 스테미너 물약과도 같았다. 미국이 약을 끊었을지는 몰라도(정말??) 후유증은 계속된다. 흑인이라는 인종에게 되물림된 폭력이 일부 가정으로 확대되었다. 적어도 미의 집에서는 그랬던 듯 하다. 미의 아버지는 행동주의 심리학자다. 살아 생전 흑인의 자유를 누구보다 목청껏 부르짖었던 이 남자는 그러나 가정폭력범이었다. 영혼의 살인범이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그는 이미 몇 차례나 아들인 미를 살해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역사의 문제가 그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책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지를 넘겨 버리면 과거를 잊을수 있다고. 하지만 역사는 그것이 적힌 종이가 아니다. 역사는 기억이며, 기억은 시간과 감정이자 노래다. 역사는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세대의 문제는 그것이다. 역사를 모른다는 것."(p336)

그는 아들 미를 심리학적 이론의 실험체로 사용했다. 도무지 역사를 잊을 수 없었던 이 남자에게 미는 인간쥐였고 때때로 흑인시사상식 문제를 맞추지 못하는 정도로도 전기고문을 했다. 쓰레기 같은 교육의 산 증거로 미는 제 아버지가 교통법규위반이라는 경범죄로 경찰의 총에 사살되었을 때도 그를 안고 울기 보다는 그를 안고 도넛 가게의 흑인 지식인 모임에 참여해 그를 의자에 앉혔다. 그의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훨씬 더 선호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제가 어떻게 클지를 알고 있었다. 흑인으로서 받은 부당한 처우 때문이 아니라 일찍이 그가 노출되었던 폭력들이 그의 현실을 자각케 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역 고등학교에 가게 될 거라고. 반에서 중간 정도 석차로 졸업해, 흔해 빠진 윌리 럼프 럼프(주: 성병 걸린 남자)가 되어 철자법이 다 틀린 여섯 줄짜리 이력서를 들고 직업소개소와 스트립 클럽 주차장과 공무원 시험 교습소를 왔다 갔다 할 것이라고. 내 유일한 사랑, 옆집의 마페사 델리사 도슨과 결혼해서, 섹스하고, 죽이게 될 거다. 애들을 낳을 거다. 애들에게 말 안 들으면 사관학교에 보내 버릴 거라고 협박하고, 체포되면 절대 보석금을 안 내 내줄 거라고 으름장을 놓을 거다. 스트립 클럽에서 당구나 치고 내셔널 대로와 웨스트우드 대로의 트레이더 조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금발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그런 흑인이 될 거다." (p61)

그는 대체로 그가 어릴 적 예상한 그대로로 컸다. 노력하지 않고도 아마 원만하게 내재된 성장지도를 밟았을테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 날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운명은 비틀렸고 그는 윌리 럼프 럼프가 되지 않고 농부가 되었다. 식물처럼 무해한 남자로 성장했다. 비록 마페사 델리사를 스토킹 하고 노예를 자청하는 노쇠한 전직 아역 스타 호미니의 등짝을 너덜너덜하게 찢어놓긴 했지만. 노예주이자 완벽한 농부이자 더 완벽한 분리주의자로서 인종차별정책에 더더욱 완벽히 찬성하는 입장이기는 해도, 그렇다, 그는 적어도 제 아버지보다는 세상에 무해한 자였다. 흑인의 모든 역사를 알고 그 역사를 아버지로부터 제 몸으로 익힌 남자가 행하는 비폭력 분리주의, 노예부활운동은 누구에게도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않는다. 그저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안겼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기는 했어도 분리주의 운동은 그저 그렇게 시작됐다 그저 그렇게 저물었다. 대신에 지도상에서 사라졌던 미의 고향 디킨스가 일기예보에 재등장했으며 그는 미 합중국으로부터 고소되어 감방에 갈지 말지 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태이다. 

"그는 그저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나를 부끄러워할 것이며,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내용을 말을 했다.
그리고 그가 옳다. 나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p395)

제목의 배반의 대상은 누구였을까.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 선 아버지 미, 백인우월주의자가 된 아들 미, 조상이 힘써 흑인노예해방전선을 펼치며 인권을 끌어올렸더니 다시 노예가 되고 싶다며 무릎 꿇는 호미니, 같은 흑인의 아이디어를 훔쳐 주류 백인 사회에 편입한 포이, 역사를 잊어버린 채 현실에 만족하는 흑인, 역사를 잊지 못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흑인, 역차별 당한다는 생각으로 억울한 백인, 역차별이라며 억울해 하는 백인을 보며 더욱 억울한 흑인,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인권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멕시코나 인디언, 아시안들. 그도 아니면 책을 결말까지 다 읽고도 이 책의 행방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독자를 이름일지도. 내가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열 두번을 읽는단들 이 책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오롯이 그 문화권과 역사권에서 성장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예시와 은유와 직유가 많아 때때로 책의 3분지 1에 달하는 주석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렇대도 뿌리에서부터 좀 먹은 채 자란 흑인 남자가 늘어놓는 개소리가 싫지는 않았다. 복숭아 맛이 나는 훌륭한 사과의 아이러니를 대충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해서.

무슨 말이냐고? 직접 읽어보시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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