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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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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캔디
(
) l 2017-11-05 20:31
https://blog.aladin.co.kr/746442172/9692876
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평점 :
옛날 일기장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p86)
"뭔데 하고 싶은 말이."
"나, 너를 계속 좋아했어."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좋을 대로의 일방적인 대화들....
처분하는 수밖에 도저히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독립하여 이사나올 적에 대대적으로 방을 뒤집어 엎으며 갖은 잡동사니를 없애버렸다. 주택이라 집에 20 리터 쓰레기 봉투를 묶음으로 상비했는데도 또!! 봉투가 부족해 마트로 달려가는 등 뒤로 식구 중 누군가가 50 리터 묶음으로 사오라고 소리치던 것이 잊히지를 않는다. 한 집에서 이십여 년을 살며 쌓아온 유년의 추억들이 한순간에 치워버려야 할 쓰레기로 전락한 때였는데 그 때의 기억은 또다시 후련한 추억으로 남았으니 추억이란 놈의 아이러니함이란;;; 게중엔 막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쓴 일기와 마찬가지로 막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갔을 즈음의 일기도 있었는데 첫 알바 때와 첫 취직 때도 다이어리를 쓰다 말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뭔가 습관 같은 것일까. 노트의 절반을 채우기도 전에 멈춤한 일기들. 그 자체로도 누더기 같은 면모였지만 감수성 폭주하던 시절의 흔적들은 뜨악하다 못해 처참할 지경이라 누가 볼새라 얼른 찢어 버렸다. 어느 한 부분쯤 귀여운 면모가 있지 않았겠는가 싶기도 한데 꼼꼼히 자세히 읽을 요량도 없었지만 꿈에 나올까봐 무서워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스마 미리의 말처럼 "처분하는 수밖에 도저히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p86)". 상자에 고이 모셔두고 여전히 버리지 못한 것은 고딩 시절의 일기뿐으로 이것도 거의 공포소설 급이지만 누가 본다고 죽고 싶을 정도의 수치는 아닌데다 (앞서의 것들은 수치사가 가능하다ㅠㅠ) 한 권 한 권이 꽉 차게 완료되어 뿌듯하고 흐뭇해 도무지 버릴 수가 없었다. 한두권쯤은 아마 뒤에 빈종이가 몇 장 있었을텐데 노트를 다 쓴 것처럼 보이려고 티 안나게 뜯어냈다. 아무도 내 일기를 안보는데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런 짓을 한 것일까? 모를 일이다. 하여튼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런 것을 썼던 때가. 그런 때를 생각나게 해주는 책을 만나고 보니 나도 작가와 함께 그 시절을 참 잘 버렸다 싶다. 너무 볼품없는 추억이기도 하고 추억보단 공간의 값어치가 더 큰 탓도 있어서 이고지고 살고 싶지 않기도 하고. 뭣보다 어떻게 쓰여 있는지 안궁금해, 안궁금하다고! 그냥 그런 때도 있었지.. 하고 머릿속에만 남겨두는 편이 나의 장수를 돕는 일이다. 오래 살 것을 생각하다니, 정말로 어른 다되었지 않나? ㅎㅎㅎ
사족이 길었는데 (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만나면 유독 번외의 말이 많아진다. 쓰잘데기 없이. 에잉;) 그녀의 이번 신간 에세이 <그렇게 쓰여 있었다>도 지금까지의 작품들과 비슷비슷한 느낌이다. 한가롭고 수다스럽고 친근하다. 대신 유년의 에피소드가 전편들 보다는 몇 개쯤 더 들어있는 정도? 라고 말하려고 보니 비교대상이 마땅치 않네. 내가 이제까지 읽어왔던 건 그녀의 만화들이라. 어쨌든 좋다. 그냥 내 일상 같고 그대 일상 같고 하여서. 그런 점이 참 좋아서 그녀의 다른 책들과 비슷할 줄 알면서도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가족과 친구와 편집실 사람들과의 하루, 여행, 대화, 목표, 과거의 어느 날들과 무엇보다 달콤한 디저트들이 함께 하는 충만한 40대 미스의 삶의 기쁨들에 공감공감. 책 한 권에 나의 공감을 일백개쯤 찍고 보니 분홍색 띠지가 그대로 하트 같아 보인다. 작가의 모습이 곧 다가올 내 중년과 한참 후에 다시 그리워 할 내 젊은 날과 비슷하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4, 50대의 내 일상에도 매일 좋아요를 찍을 수 있기를. 어른의 나날들에 그래도 가끔은 수치사하고픈 정열의 흔적 또한 남길 수 있기를. 하트 콕콕의 기쁨을 먼 미래까지 예약하며 오늘 독서의 마침표를 찍는다. 내내 행복하세요 마스다 미리~♡
있잖아, 우리 다음에...
"이 근처에 맛있는 포르투칼 요리 레스토랑이 있는데."
"보고 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빗속을 뚫고 굳이 그 식당을 찾아가 명함을 받아온다.
"있잖아. 우리 다음에는 예약하고 오자."
이렇게 날마다 계속해서 쌓여가는 '있잖아, 우리 다음에......"
쌓인 것을 다 쓰지 못한 채 우리의 인생은 끝나겠지만, 그래도 쌓을 수 있을 만큼 쌓아두고 싶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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