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리 종활 사진관
아시자와 요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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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활이라니 대체 무슨 얘기일까 생각했어요. 사진관과 수수께끼는 더욱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구요. 쉬운 마음으로 책을 잡았는데 한번도 안쉬고 끝까지 내리 읽었습니다. 출판사의 홍보문구처럼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쏟아져나오는 마음들에 온기가 퐁퐁, 참 따뜻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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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리 고양이
이세문 지음 / 이야기나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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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세계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들어가는 말)

고양이 세계로 떠난 고양이들을 궁금해하는, 특히나 인간 집사들을 위하여, 100마리의 고양이가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많은 고양이들이 사람을 좋아하는 탓에 인간 세계로 내려오지만 때가 되면 다시 고양이 세계로 돌아갈 수 밖에 없어요. 어떤 고양이들은 스스로 돌아갈 날을 결정하기도 하구요. "고양이 세계 오른쪽 나라의 왕"이 그런 경우였는데요. 그가 "나의 인간들"에게 자신의 것을 충분히 나누어 주었다고 생각했을 때 더는 미련없이 고양이 세계로 휭 하고 날아갔거든요. 물론 수명이 없는 고양이 세계의 왕 답게 넉넉한 모험심과 "나의 인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몇 번이고 인간계로 돌아오기도 했지요. 고양이 세계에는 즐거움과 꿈이 가득하구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지만 겨울이라고 해서 무작정 춥지는 않아요. 내리는 눈조차도 포근포근 할지언정 차갑지는 않답니다. 그러니 떠난 고양이들이 혹 외롭지 않을까, 슬프지 않을까, 춥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요. 너무 어려서 인간계로 내려가지 못한 어린 고양이들이나 귀환 고양이들은 고양이 세계에서 저마다의 직업을 가지니 심심할 겨를도 없어요. 인간들의 노동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놀이 같은 느낌이라 땀 흘려 일하는 상상은 하지마시구요. 하기야 자고 자고 또 자고 돌아서면 자고 자고 또 자서 하루 웬종일 잠만 자는 것 같은 우리 고양이들에게 직업이 있다니 상상이 잘 안가기는 하지요?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와 따뜻한 햇살, 오염 없는 대지 속에서 우리 고양이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홍차를 너무너무 좋아해 세 시간에 한번씩 홍차를 마시는 홍차홍차 고양이.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오픈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고양이(엥? 이것도 직업이야? 싶으시겠지만 고양이 세계에 뭔들? ㅋㅋㅋ) 왼쪽 나라 동그란 도시의 요리사 고양이는 "거대한 고양이 혓바닥으로 온몸을 그루밍 받는 것 같은 맛"(p30)을 계발 중인데 맛이 상상이 가십니까? 작은 모자에서 아기 고양이를 스무 마리나 꺼낼 수 있는 마법사 고양이는 또 어떻구요. 이 친구는 하늘의 구름을 모조리 고양이 구름으로 만드는 재주까지 있대요! 어쩜 하늘에 고양이 구름 한 마리가 밀려오면 고양이 나라 마법사의 흔적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도요. 우리 집 고양이가 좀 뚱뚱하다, 눈동자가 멍하다~ 싶으면 집사님들은 의심을 해야 합니다. 스파이 고양이일 확률이 높거든요. 뭘 감시하는지는 몰라도요. 은하계에서 일하는 우주 고양이, 성냥팔이 고양이, 산신령 고양이, 겨울의 여왕 고양이. 모든 직업이 다들 왜 이렇게 귀여운지 퓨퓨퓨 웃으며 읽다가 찔금 눈물도 났다가 또 웃으며 읽다 보니 어느 새 100마리 고양이 편지가 끝이 나 너무너무 서운해져요. 그래도 고양이 세계는 영원불멸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귀환하는 고양이와 새로 태어나는 고양이들이 있으니까요. 드래곤만큼이나 오래 사는 고양이 세계의 고양이들이 심심해지면 또 편지를 써보낼지도 몰라요. 이세문 작가님께로 얼른 다음 편지들이 모여서 다음엔 또다른 100마리 고양이들을 만나기를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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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들린 목소리들
스티븐 밀하우저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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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신비로운 이야기를 좋아했다. 환상적이고 비밀스럽고 허공에 붕 뜬 저너머의 세상. 그러나 틀림없이 인간 에너지가 담뿍 담겨있는 그런 이야기들. 귀신, 유령, 부적, 도깨비, 고대무속신앙 등이 등장하는 심령소설이나 좀비 등 괴생물체가 등장하는 생존물, 지구 밖으로 떠나는 과학 SF까지 좋아지더니 근래엔 그저 현세의 것이 아닌 듯한 초자연적임만 묻어나도 다 좋다. 밤에 들린 목소리들에 등장하는 열여섯 편의 단편에도 초현실의 비밀스런 매력이 자박자박 깔려있다. 차분하고 으스스해서 나도 모르게 어깨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바람 같은 마력에 탑승해 스티븐 밀하우저의 시야에 잡힌 비일상의 미스터리를 엿본다.

1. 기적의 광택제
"실은 나는 실망강에 짓눌린 남자였다. 한때 꿈꾸었던 대로 삶이 풀리지 않은 남자였다.
자신의 삶에 신중한, 솔직히 말하자면 소심한, 조용한 남자였다." (p25)
거울은 오로지 출근할 때 한번 정도 보게 되는 생활용품일 뿐, 삶에 찌들은 제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이 남자의 앞에 의문의 외판원이 등장한다. 기적의 광택제, 녹슨 물 같은 끈적끈적한 액체가 거울에 닿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슬픔도 피로도 좌절도 모두 녹여놓는 거울, 거울 밖의 나보다 더 생생한 거울 속의 나. 남자의 세상에 하나 둘 늘어나는 거울들. 이대로 괜찮은걸까?

2. 유령
"다람쥐나 민들레만큼이나 익숙한 존재." (p44)
유령이 사는 마을에 살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유령은 보고서를 읽고 뭐라고 말할까?

3. 아들과 어머니
긴 시간을 돌아 어머니를 찾아온 아들. 모자의 서먹한 시간 속 땅거미 지는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어머니는 과연 아들이 가져다 준 평안함에 만족했을까?

4. 인어열풍
해변으로 실려온 아름다운 인어 시체 한 구, 그녀가 박제되어 협회에 전시되면서 마을 사랑들의 마음에 퇴폐적인 열풍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가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하반신을 비늘옷으로 덮은 인어패션에서 시작해 자신의 두 다리를 접붙이는 수술로. 다시 인어의 고향으로 가겠다며 바다에 빠져죽는 이들까지. 기형의 욕망은 어디로부터 기원해 어디까지 나아가게 될까?

5. 아내와 도둑
한밤중에 들려온 아래층의 발소리. 도둑일까? 도둑이겠지? 홀로 잠에서 깨어난 아내는 두려움에 빠진다. 그리고 딱 그만큼 확신하고 싶다. 남편을 깨웠는데 도둑이 아니면 어쩌지? 경찰을 불렀는데 도둑이 아니라 온동네에 신경증 환자로 망신을 당하면 어쩌지? 아내는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이고 홀로 계단을 내려가 본다. 도둑인지 아닌지 내 눈으로 목격한 후 뭘해도 하겠다는거다. 그렇게 1층에 당도한 아내는 과연 무사할 수 있었을까?

6. 우리의 최근 문제에 대한 보고서
어느 마을에 불어닥친 자살 놀이. 어른, 청소년, 아이 할 것 없이 "역동적인 게임으로서의 죽음, 도전으로서의 죽음, 흥미로운 예술 형식으로서의 죽음, 독창성의 표현으로서의 죽음(p156)"에 뛰어든다. 이토록이나 평화롭고 아름답고 찬란하고 안전한 마을에서 도대체 왜? 

7. 근일 개업
긴 여행 후 돌아온 내 집이 내 집이 아닌 것 같다. 
시간여행? 공간이동? 그도 아님 스티븐 밀하우저 식 장자의 꿈, 한여름의 백일몽일지도. 
2차선 도로 아래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출구로 질주해 간 로빈슨은 어느 곳에라도 도착할 수 있었을까?

8. 라푼젤
"그녀가 간파한 게 또 하나 있다. 그녀가 왕자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건 좋은 일이다.
그녀는 다시 웃을 것이고, 머리카락을 기를 것이고, 즐겁게 놀 것이다." (p224)
동화의 낭만은 사라지고 시커먼 어둠과 피곤과 현실만이 남은 라푼젤의 세상.
왕자는 마녀와의 싸움 끝에 청춘의 도전과 젊음을 상실했고 라푼젤에겐...... 그녀에겐 장차 무엇이 남게 될 것인가?

9. 어딘가 다른 곳에
"오래전, 황혼 녘에 두 팔을 활짝 편 채 거리를 쏘다녔던 시간에 대한, 다른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p248)
일상이 환상으로 활짝 펼쳐지는 시간, 독서와 다름 아닌가?

10. 열세 명의 아내
"왜 아내를 열세 명이나 두었어?"
"오, 좋은 것은 아무리 많아도 괜찮잖아!" (p251
나만 혼자 지옥에 빠질 수 없다. 다 속아 넘어가랏!! 이런 건가?
이 남자가 사는 집에 손님이라도 방문하면 아내를 소개하는 시간만으로도 하루가 다 저물지 않을까?

11. 아르카디아
"평화가 저를 향해 흘러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향해 걷기만 하면 됩니다." (p292)
6미터 이상 늪지, 해먹에서 멀지 않은 돌우물, 북서쪽의 높은 탑, 가지가 튼튼한 나무들, 고풍스러운 끈상자, 예리한 독일제 스테인리스 칼 세트, 누구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깊은 협곡. 야생의 자연 속으로 이끄는 샛길들이 구비되어 있는 곳. 고통받고 있는 자여, 평화를 원하는 자여, 해방의 길은 단 하나 뿐입니다, 아르카디아로 오세요 라고 말하는 광고글이 이토록 슬플 줄이야. 누군가는 희망을 질병이라 말한다. 내 희망은 영원히 불치병으로 남을 수 있을까?ㅠㅠㅠㅠㅠㅠ

12. 젊은 가우타마의 쾌락과 고통 
"나는 사람이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 나는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p312)
가우타마가 석가모니였다. 가우타마 싯다르타. 왕으로부터 인간사 받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물려받은 왕자는 어째서 행복하지 않은가? 

13. 플레이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환상과 현실을 잇는 세계가 바로 내 집 뒤편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면 나는 과연 그 세계에 발 들이지 않고 오롯이 현실에 안주할 수 있을까?

14.홈런
9회 말 투아웃, 동정상황. 매클러스키 선수의 끝내기 홈런이 장외를 넘어 하늘로 솟구쳐 성층권을 뚫고 우주로 날아간다. 달, 화성, 소행성을 지나 목성, 토성, 천왕성, 그리고 은하수, 더하여 계속. 관중들은 야구장을 빠져나가고 청소부들이 장내를 청소 중이고, 매클러스키는 어느 새 그 팀의 코치가 됐는데 아나운서는 슈퍼맨이 되어 날아간 공을 언제까지 중계하려는건가? 작가 진심 미친 듯 ㅋㅋㅋㅋ

15.미국의 설화
"일해야지!"(p417)
도끼질 한방에 4헥타르의 삼림을 절단내는 힘센 일꾼, 남들이 세상 모르고 잘 때도 일하는 그는 성실한 폴 버니언이다.
"꿈을 꾸고 있어. 꿈을 꾸고 있을 뿐이야."(p421)
하품하는데만도 엿새가 걸리고 콩 한쪽도 일곱개로 나누어 칠일을 먹는 게으름뱅이 책쟁이 그는 몽상가 제임스 버니언이다.
그리고 이 두 형제가 어느 날 자존심을 건 잠자기 시합을 시작하는데 과연 승리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환상도 진지한 얘기로만 쓰는 작가인가 했는데 연타로 계속 웃기네?

16. 밤에 들린 목소리
"이보게, 잠 잘 시간이야."(p454)
예순여덟살의 불면증. 그를 불면증에 빠트린 것은 어린 시절에 만난 책 속의 이야기였다. 구약성서와 사무엘과 그를 부른 하나님. 사무엘과 같이 밤에 들린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스트랫퍼드의 어린 아이는 기대를 배신 당하고 신이 아니라 책장의 세계로 눈을 돌린다.  뮤즈를 받드는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쓴다. 스티븐 밀하우저, 오늘 밤은 부디 좋은 꿈 꾸시기를요.

"잠의 시간은 끝났다."(p367) 책과 함께 나의 주말도 평화롭게 끝이 났다. 오늘이 금요일 밤이면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 아직 못읽은 책이 한가득인데ㅠㅠ 밤에 들린 목소리들을 통과해 사차원에 묻힌 시간들을 끌어다 쓸 수 있다면 이 밤을 모쪼록 길게 늘려놓고만 싶다. 그게 안된다면 폴 버니언처럼 "더 잘 자고 더 깊이 자고 더 많이 잘 수 있도록" 일찍 잠자리에나 들어야지. 모쪼록 굿나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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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열걸 1
미야기 아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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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잔말 말고 연필로 표시만 해놓으면 돼! 어떻게 할 거야, 이제 혼고 선생님이 우리 회사에 원고를 안 줄지도 모른다고!"

"그야 내 알 바 아니죠. 원래 내 역할은 잔말 말고 연필로 표시만 하는 거니까." (p33)

아우~~~~~~♡♡♡♡♡
이 책 넘 재미있어요!! 너무 좋아 발 동동 구릅니다. 어뜨케!!!!!
(교열가는 여기에 몇 개의 교열 표시를 집어 넣을까요?? ㅋㅋㅋㅋ)

어린 시절부터 경범사의 패션잡지에 푹 빠져지냈던 고노 에쓰코는 대학 시절 접한 경범사의 잡지 라시로 인해 일생일대의 결정을 하게 됩니다. 잡지사의 에디터가 되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까지는 무리더라도 편집자가 되어 멋지게 '에디터스 백'을 들고 다니겠다! 우어어어어~~!!!!!! 백악기 공룡만큼이나 커다랗게 꿈을 키웠던 에쓰코는 바람처럼 경범사에 입사해 곧장 패션편집부로 발령날 수 있었을까요? 정답은 반은 YES!! 반은  NO!! 안타깝게도 에쓰코의 이력서가 경범사에 입사한 다른 동기들 보다 조금 후달렸던 탓에 인기 만발 패션편집부가 아니라 교열부로 직렬이 나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입사 자체가 그녀의 기가 막힌 기억력과 문학을 사랑하지 않는 (여기가 뽀인트!!) 비범한 무관심 덕에 현 상사의 눈에 띄어 겨우 문턱을 넘은 거여서요. 교열부 싫어! 라는 말도 결국 배부른 투정일 뿐이었지요. 이런 게 합격 이유라니 에쓰코 급 좌절ㅠㅠㅠ 어쨌든 그런 이유로 오늘도 에쓰코는 패션편집부가 아니라 교열부로 출근 도장 쾅 하고 찍습니다. 근면성실하게 원고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연필로 줄을 긋고 한자를 찾고 공백에 의문을 작성하며 교정일에 열심 또 열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이렇게 능력을 다져가며 일하다 보면 어느 날 라시의 패션계로 인사이동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그 전에 더 중요한 것은 2분 만에 에쓰코를 사랑에 빠트린 아프로 머리(곱슬곱슬하게 엄청 부풀린 헤어스타일)의 작가 고레나가와의 러브러브죠!!

"교열부에 있으면 일반 독자보다 먼저
고레나가 씨의 다음 신작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p253)

"....... 꺄! 손발이,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소식을 전해들은 동료들과 함께 저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뭣보다 국보지정급의 미인 남자작가라니 이거 판타진가요? 판타지 맞습니까?? 판타지라도 좋잖아요!!! 젠장, 썸 타는 장면은 몇 장 되지도 않는데 두근두근 하다닛!!!! 내 나이가 아깝다!!!!고 스스로 경악하면서도 실은 흐뭇흐뭇했습니다 ㅋㅋㅋ 요란한 전동 연필깍이 외에는 침묵만이 흐르는 교정부, 새송이버섯 머리 상사와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정체성이 의심스런 동료 요네오카, 편집부의 신경질쟁이 가이즈카, 단 한번의 바람이 들키는 바람에 평생 쥐잡이들이 신세인 에로 미스터리 작가 혼고, 문학부의 사감선생 후지이와, 귀여운 임대 관리인 가나코, 그밖의 많은 경범사 직원들과의 즐겁고 유쾌하고 신나는 교열 에피소드가 펼쳐집니다. 엉터리 문장들을 나도 같이 교열해 보는 재미 1과 에쓰코의 씨원씨원한 입담과 성격이라는 재미 2.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에쓰코 커플의 썸 3의 빅재미를 직접 만나보시길요. 콩닥콩닥 넘 두근대고 웃겨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는 만화 같은 소설로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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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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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해가 뜨지 않았으면 말세도 없었겠지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p227)

처자식도 버리고 열살이나 어린 처녀에게 새장가를 들었던 염치없는 작가 단얼둥이가 점잖게 얘기했다. 제삿밥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을까 싶어 주워다 기른 산치짜의 수양아들이 제 어매도 죽이고 옆집 사는 난쟁이 처녀까지 겁탈하고 나간 후에, 그 처녀의 임신 사실이 동네에 알려진 다음의 일이다. 작가로 긴 세월을 살고 매일 뜨는 해를 보며 말세를 많이도 겪은 탓일까. 츠쯔젠의 등에 업혀 뭇 산들의 꼭대기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빼곡히 들어찬 갖가지 인간군상의 골짜기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다투는 듯도 하고 뽐내는 듯도 하여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너무 높은 꼭대기로 올려져 책을 놓고 내려갈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별세계로 똑 떨어진 느낌. 게다가 이렇게까지 재미있어도 되는건가? 생각지도 못했던 대륙적 매력에 폭 빠졌다. 이토록 변화무쌍하고 신묘한 이야기라니 맙소사!

"만약 심령이 무지개를 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온갖 나쁜 사람을 옭아매길 원하네
만약 심령이 샘물을 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모든 사악한 불을 끄길 원하네
만약 심령이 노랫소리를 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만수천산을 날아가길 원하네" (작가의 말)

룽잔진의 도축업자 신치짜에게는 친자식이 없다. 그의 아버지가 중일전쟁의 탈영병이었고 그의 엄마는 일본인이었으므로 그는 평생을 제 핏줄을 부끄러워한다. 결혼은 할 수 있지만 제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어야 한다며 매파를 얼렀고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 딸 왕슈만이 부모형제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불임수술을 받은 채 신치짜에게 시집을 온다.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의 삶에 자식이 없으니 외롭기도 허하기도 하여 왕슈만이 출생의 적을 알 수 없는 사내아이 신신라이를 데려와 키우는데 이 아들 자식이 뭇 산들의 꼭대기 룽잔진 일대의 다섯 가족에게 고통과 통곡과 슬픔과 좌절과 다시 새로운 역사를 가져오게 만들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룽잔진의 신선으로 떠받들여지며 수명을 점치다 갑작스런 인재로 하계로 떨어지고만 난쟁이 안쉐얼. 사형을 집행하는 사법경찰인 것을 숨기고 결혼한 탓에 그의 아내에게 이혼 당한 후 홀로 안쉐얼을 키워야 했던 안핑. 사지육신이 마비된 남편을 수발 들기 위해 염습사가 되어 시체를 닦는 안핑의 불륜녀 리쑤전. 지체장애가 온 친구 천위안을 보살피며 고향 보건소의 의사로 근무 중인 탕메이. 룽잔진의 자연을 사랑하여 어떻게든 개발만은 막고자 하는 관리 탕한청. 돈을 위해 군의 상급자에게 몸을 판 린다화와 그녀를 사랑하는 장교 안다잉. 평생을 한 여자를 사랑했으나 또한 평생을 탈영병의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했던 신카이류 등 열거할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잘한 조연들을 빼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신치짜, 탕한청, 안핑, 천진구, 단쓰싸오의 가족들인데 룽잔진 너른 꼭대기에 빨래줄을 쳐서 다섯 가족 삼 세대 역사를 널어놓았다고 봐도 좋았다. 그것이 비바람에 흩날려 뭇 산들의 아래로 떨어졌으니 얼마나 어지러운 형국이었겠는가.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많은 인물과 이 많은 사건사고 속에서도 독자는 전혀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 경우엔  이 낯선 이름의 인물들이 거의 완벽하게 구분이 되었고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사십여명의 인물들이 허투루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 없이 모든 곳에서 의미를 가졌다. 대단하지 않은가? 

똑 떨어지게 말끔한 서사, 중국색이 짙은 고전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문장들, 신선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이 얽힌 듯이 감동적이고 기이한 에피소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엄청나게 쿨한 마인드, 무엇보다 시대와 역사와 환경에 부대끼며 입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p466)"이 유쾌하고 감탄스런 책이다. 이토록 매력 넘치는 작가를 매끄러운 번역으로 알게 해주신 번역가 강영희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출판사 은행나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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