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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산들의 꼭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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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캔디
(
) l 2017-11-11 14:36
https://blog.aladin.co.kr/746442172/9704185
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세상에 해가 뜨지 않았으면 말세도 없었겠지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p227)
처자식도 버리고 열살이나 어린 처녀에게 새장가를 들었던 염치없는 작가 단얼둥이가 점잖게 얘기했다. 제삿밥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을까 싶어 주워다 기른 산치짜의 수양아들이 제 어매도 죽이고 옆집 사는 난쟁이 처녀까지 겁탈하고 나간 후에, 그 처녀의 임신 사실이 동네에 알려진 다음의 일이다. 작가로 긴 세월을 살고 매일 뜨는 해를 보며 말세를 많이도 겪은 탓일까. 츠쯔젠의 등에 업혀 뭇 산들의 꼭대기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빼곡히 들어찬 갖가지 인간군상의 골짜기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다투는 듯도 하고 뽐내는 듯도 하여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너무 높은 꼭대기로 올려져 책을 놓고 내려갈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별세계로 똑 떨어진 느낌. 게다가 이렇게까지 재미있어도 되는건가? 생각지도 못했던 대륙적 매력에 폭 빠졌다. 이토록 변화무쌍하고 신묘한 이야기라니 맙소사!
"
만약 심령이 무지개를 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온갖 나쁜 사람을 옭아매길 원하네
만약 심령이 샘물을 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모든 사악한 불을 끄길 원하네
만약 심령이 노랫소리를 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만수천산을 날아가길 원하네" (작가의 말)
룽잔진의 도축업자 신치짜에게는 친자식이 없다. 그의 아버지가 중일전쟁의 탈영병이었고 그의 엄마는 일본인이었으므로 그는 평생을 제 핏줄을 부끄러워한다. 결혼은 할 수 있지만 제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어야 한다며 매파를 얼렀고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 딸 왕슈만이 부모형제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불임수술을 받은 채 신치짜에게 시집을 온다.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의 삶에 자식이 없으니 외롭기도 허하기도 하여 왕슈만이 출생의 적을 알 수 없는 사내아이 신신라이를 데려와 키우는데 이 아들 자식이 뭇 산들의 꼭대기 룽잔진 일대의 다섯 가족에게 고통과 통곡과 슬픔과 좌절과 다시 새로운 역사를 가져오게 만들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룽잔진의 신선으로 떠받들여지며 수명을 점치다 갑작스런 인재로 하계로 떨어지고만 난쟁이 안쉐얼. 사형을 집행하는 사법경찰인 것을 숨기고 결혼한 탓에 그의 아내에게 이혼 당한 후 홀로 안쉐얼을 키워야 했던 안핑. 사지육신이 마비된 남편을 수발 들기 위해 염습사가 되어 시체를 닦는 안핑의 불륜녀 리쑤전. 지체장애가 온 친구 천위안을 보살피며 고향 보건소의 의사로 근무 중인 탕메이. 룽잔진의 자연을 사랑하여 어떻게든 개발만은 막고자 하는 관리 탕한청. 돈을 위해 군의 상급자에게 몸을 판 린다화와 그녀를 사랑하는 장교 안다잉. 평생을 한 여자를 사랑했으나 또한 평생을 탈영병의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했던 신카이류 등 열거할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잘한 조연들을 빼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신치짜, 탕한청, 안핑, 천진구, 단쓰싸오의 가족들인데 룽잔진 너른 꼭대기에 빨래줄을 쳐서 다섯 가족 삼 세대 역사를 널어놓았다고 봐도 좋았다. 그것이 비바람에 흩날려 뭇 산들의 아래로 떨어졌으니 얼마나 어지러운 형국이었겠는가.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많은 인물과 이 많은 사건사고 속에서도 독자는 전혀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 경우엔 이 낯선 이름의 인물들이 거의 완벽하게 구분이 되었고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사십여명의 인물들이 허투루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 없이 모든 곳에서 의미를 가졌다. 대단하지 않은가?
똑 떨어지게 말끔한 서사, 중국색이 짙은 고전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문장들, 신선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이 얽힌 듯이 감동적이고 기이한 에피소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엄청나게 쿨한 마인드, 무엇보다 시대와 역사와 환경에 부대끼며 입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p466)"
이 유쾌하고 감탄스런 책이다. 이토록 매력 넘치는 작가를 매끄러운 번역으로 알게 해주신 번역가 강영희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출판사 은행나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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