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하늘이 만나다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34
테리 펜.에릭 펜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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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아흔번째 생일날, 호는 오늘도 하늘을 바라봅니다.
"배 타기 좋은 날이구나" 싶게 하늘이 너무너무 푸르고 청명해요.
그래서 호는 배를 만듭니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그곳으로 떠나려구요.
튼한 배를 혼자 만드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 호는 배를 만드는 중에 그만 잠이 들고 말았어요.
그리고 호가 잠에서 깨어난 바로 그 순간에 배는 홀로 움직이고 있었지요.
드디어 호의 여행이 시작된 거에요!

 

 

 

 

깊은 바다로 나아간 호가 가장 먼저 만난 친구는 황금 물고기였어요.
혹시나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그곳을 알까 싶어 물었는데
이 친절한 물고기 친구가 호를 그곳까지 데려다 준다는군요.

 

 

호는 황금 물고기를 따라 도서관 섬으로 갔습니다.
거기엔 책을 좋아하는 각종 새들이 모여있었어요.
책의 수준은 또 어찌나 높은지 오디세이와 모디 딕, 미술사, 서유기, 곤충 대탐험처럼
저도 읽어보지 못한 각종 책들이 즐비했구요.
오즈의 마법사, 비밀의 화원,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같이 좋아하는 책들이 많아 조금은 안심도 되었습니다. 
안경을 쓴 부엉이 신사와 대화라도 나눠봤으면 참 좋았겠지만
남은 여정이 길어서 호와 황금 물고기는 금방 길을 떠나요.

 

 

소라껍데기가 즐비한 섬에도 방문했는데요.
저 껍데기에 귀를 대면 파도가 해일처럼 밀려오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어요.

 

 

해파리들이 춤추는 바다까지 지난 호는
마법처럼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그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배가 두둥실 떠올라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진 세상으로 동실 떠다녔어요.

 

 

고래와 용과 잠수함과 범선, 작은 배와 열기구와 황금 물고기의 환상적인 만남.
바다와 하늘이 만난 세상이 황홀해 얼마나 오래 들여다봤는지 몰라요.

 

 

호에게 황금 물고기를 보내준 이는 아마도 하늘나라의 할아버지셨던 것 같아요.
책에선 그 어떤 말도 없었지만요.
황금 물고리를 따라 달빛 속으로 첨벙 헤엄쳐 갔더니 할아버지가 미소 짓고 계셨거든요.
호는 하고 싶은 말이너무너무 많았지만
호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나요.
못다한 말은 또 어느 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세계로 떠난 여행에서 다시 할 수 있겠지요.
호는 저멀리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곳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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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전환에는 역시 그림책.
예쁜 그림 따뜻한 이야기를 만나면 으쌰으쌰 기운이 나요.
너무너무 예쁜 그림에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그날 밤 정말 바다와 하늘의 세계를 꿈꿀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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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과 다리의 가격 - 지성호 이 사람 시리즈
장강명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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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자들이 그저 눈을 감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잘못 없이 굶어 죽은 비극에 대해 더 슬퍼해주기를 바란다. 그런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그게 누구의 책임이었는지 아는 것은 뒤로 미뤄도 된다. 비난의 대상을 찾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먼 미래로 연기하거나, 아예 하지 않아도 되고." (p9, 이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1990년대 초반 학포탄광마을에 살았던 소년 성호의 이야기는 배경을 남한, 시대를 1960년대 정도로 바꾸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만큼 익숙하고 친근하고 정감가는 것이었다. 마을에 열 집 남짓하게 밖에 없는 흑백 텔레비젼, 티비에서 영화가 상영될 때면 발디딜 틈 없이 모여드는 마을 사람들,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이 되면 학교에서 배급하는 과자선물과 어려운 살림에 술이 마시고 싶을 때면 어머니 눈치를 봤던 아버지, 할아버지 댁에서 양껏 먹은 감자와 옥수수, 성공한 큰아버지와 고모부가 몰고 왔던 자동차, 어른들 몰래 송이버섯을 캐어 처음으로 장만한 중국제 운동화, 군인으로 진학할지 말지 고민했던 무수한 희망의 고민 같은 것들에 나도 모르는 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살아본 적도 없는 시대에 그리움이 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평화롭고 소박하고 모두가 근검했던 나날들은 매우 가파르게 깨져버렸다. 1993년 즈음, 제날짜를 어긴 채 식량배급이 이루어지는 날들이 늘어갔다. 94년 학포탄광마을에도 콩을 훔쳐 총살 당하는 두 명의 도둑이 생겨난다. 그 해 여름 '이번 달에는 배급이 없다'는 공문과 함께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누구누구가 굶어죽었다는 소문까지 들려온다. 95년 배급은 완전 중단되었으며 실제로 성호와 가족들의 곁에서 굶어죽는 이들이 생겨난다. '고난의 행군'이었다.

처음에는 관을 짜서 가족을 묻던 이들이 어느 날부터는 널빤지에 헝겊 한장 대충 말아 시체를 정리했다. 죽는 이가 너무 많아 슬픔은 습관이 됐다. 관은 낭비, 사람들은 장례를 치른다고 하지 않고 직파한다고 했다. 옥수수 심듯 땅에 내던져지는 시체들이었다. 북한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붕괴되었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 성호, 이 소년의 평범했던 소년기도 무참히 파괴됐다. 집을 잃었고 도둑놈이 되어버린 삼촌으로부터 뒷통수를 맞았으며 먹고 살기 위해 석탄을 훔치다 기차에 한 팔과 다리를 빼앗겼다. 마취제도 없이 수술을 받고 뼈가 보일 정도로 곯아버린 상처에서 피고름을 닦아냈다. 그렇게 그가 살아나는 동안, 살아야겠다고 결심하여 일어나는 동안 어머니가 누이동생이 아버지가 떠나갔다. 소년은 하나 밖에 없는 팔과 하나 밖에 없는 다리로 두만강과 메콩강을 건너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다. 소년 성호는 실존인물이며 2006년 막냇동생과 함께 탈북해 현재는 NAUH의 대표로 북한 인권에 앞장서는 인권 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장강명 작가는 이야깃거리를 구해 한 모임에 나갔다가 지성호 대표를 알게 되어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쓴다. 아무 잘못없이 굶어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독자인 우리와 함께 슬퍼하기 위해서.   

130 남짓 짧은 소설이지만 강력했고 강렬하다. 처음엔 너무 얇다 했는데 이보다 더 길었다면 나는 진작에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내가 쉽게 소화할 수 있는 피폐함이 아니었다. 슬펐다. 슬프고 끔찍하고 몸서리가 쳐졌다. 누구는 33만 누구는 100만 누구는 300만이 죽었다고 말한다. 1994년 우리가 지독한 폭염으로 기억하는 그 한 해 동안 북한에서는 굶주림으로 인한 사상자가 매일 삼백명 남짓하게 발생했다고.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책을 읽으며 울었다. 겪어본 적 없는 굶주림이 폭력처럼 등을 때리고 갔다. 문을 열면 시체가 내 발에 채일 듯이 성호의 고백이 현장감을 몰고 왔다. 배가 부풀고 괄약근이 풀려 악취를 풍기는 아사한 시체가 떠올라 괴로웠다. 신문으로 교과서로 티비에 나오는 탈북자의 농섞인 회고로 접했을 땐 느껴보지 못한 진저리, 소설의 힘, 공감 속에서 발버둥쳐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위로하는 것은 다시 성호였다. 몸을 세우지 못해 다리를 질질 끌어 다가간 창가에서 맞은 봄. 세상 참 아름답구나 했던 성호의 깨달음. 한 팔과 한 다리를 잃은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고 결심한 성호의 미소와 의지. 책을 덮고 창밖을 본다. 94년의 여름처럼 덥고 하늘이 맑았다. 모두에게 아름다운 여름이기를. 정말로 아름다운 계절이기를 새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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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유격수 소설의 첫 만남 12
스콧 니컬슨 지음, 노보듀스 그림, 송경아 옮김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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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여야구장 둘레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소년 제리는 뱀파이어입니다. 뱀파이어들을 사냥하고 말뚝 박던 무지하고 잔인했던 시대도 있었다지만 현재는 이종족 평등법이 잘 제정되어 뱀파이어라고 해서 소년야구단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뱀파이어인데 낮의 야구장에서 운동하면 녹지 않느냐고요?원 농담도. 요즘 시대에 그런 개그하면 돌 맞습니다. 뱀파이어들은 낮이고 밤이고 쌩쌩하다고요.

우리 메이너스 솔러 레드 삭스팀은 열여섯번째 시즌을 보내는 중이지만 성적은 좀 별로입니다. 감독님은 말로는 승부와 상관없이 야구를 즐기자 하지만 실은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부모님들께 면피용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아이들 모두 알고 있어요. 승부와 상관없이를 말씀하실 때면 꼭 선수인 우리가 아니라 부모님을 보시거든요. 그러던 팀에 야구공이 요요고 그 요요의 줄을 잡고 있는 것만 같이 공을 다루는 유격수가 등장했으니 감독님 입이 아주 찢어졌지 뭐에요. 거기다 이 녀석 공도 잘 치고 던지기도 잘하고. 뭐죠? 만능인가요? 단점이라면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연습훈련이 끝나면 박쥐로 변해서는 쌩하게 달아나버린다는 건데요. 실제로 박쥐로 변하는 뱀파이어는 처음 봐서 저도 좀 놀라기는 했답니다. 웃기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세요. 제리 녀석 발에 글러브랑 빨간 티를 주렁주렁 달고 가느라 앞이 안보였는지 나무에 몇 번이나 부딪히더란 말입니다. 하기야 박쥐라 앞이 안보이는 건 아무 문제가 안됐겠군요. 그럼 무거워서 그랬나??

어쨌든 우리는 첫 경기를 무사히 이기고 연승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감독님도 우리도 완전 신이 났지요. 화가 난 건 상대팀의 관중들, 대게는 학부모님들이죠, 그리고 소여시 야구계의 간판 감독 로스코 턴불 등이었죠. 7년 내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는데 한순간 등장한 뱀파이어 제리 때문에 1등 자리를 내줄지 모르게 되었으니 분통이 터진거에요. 상대팀 학부모형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처음엔 왜 저래? 하고 무시하려 했지만요. "비정상이 간다!" "뱀파이어를 죽여라!" "말뚝을 박아버려!" 사방에서 들려오는 제리에 대한 비방에 저는 숨도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감독님이 심판과 로스코 턴불 감독, 관객에게 항의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어요. 인간도 아니고 뱀파이어인데 뭐 어떠냐는 거에요. 소심한 제리 녀석은 온 목이 발갛게 익어서는 그래도 경기를 하겠다고 달려가는데 저는 울음이 나려해서 혼났지 뭐에요. 제리가 야구를 하겠다고 강력 주장했기 때문에 경기는 지속되었어요. 그리고 그 일이 벌어져 버렸죠. 뾰족뾰족하게 날을 간 상대팀 선수 신발 밑창, 그 밑창은 거의 15센티 높이였고 무엇보다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옛 뱀파이어를 주이곤 했던 나무 말뚝이 이곳 신성한 경기장에 너무나 어린 선수의 발에 신겨 등장한 거에요. 그리고 그 스파이크가 목표로 하는 건 너무나 명명백백했고 그렇게... 또 그렇게 제리가....

이 날 벌어졌던 끔찍한 일에 대해서 나는 더는 회고하지를 못하겠어요. 제리의 그 일 이후로 소여시엔 더 많은 뱀파이어들이 이주했고 심지어 그들 중에서 시장이  선출되기도 했지만요. 뱀파이어를 그렇게나 경멸했던 로스코 턴불 감독이 뱀파이어 선수를 세 명이나 더 기용했지만요. 그렇게 나아진 이 환경에도 나는 그날의 상처가 도무지 아무는 것 같지 않아요.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까요. 제리가 요청했어도 누군가는 경기를 중지시켜야 했어요. 죽으라는 비난 따윌 아이에게 쏟아내면 안되는 거였어요. 누군가는 반드시 제리를 보호해야만 했다고요. 나도 입다물고 있어선 안되는 거였는데. 글러브를 쥐고 박쥐로 변해 날아가던 제리가 잊히지가 않아요. 경기에 지각할까봐 개로 변해 피가 담긴 수통을 목에 걸고 달려오던 모습도요. 이제 생각하면 그 애가 원한 건 딱 한가지 뿐이었어요. 야구를 하는 것. 늦게까지, 늦지 않게, 우리와 함께 야구를 하는 것.

정말 미안해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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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만남 열두번째 소설은 "뱀파이어 유격수" 입니다. 다름을 대놓고 차별하진 못할지언정 법이 정한 테두리 밖에서는 얼마든지 모욕할 수 있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이 야구장 안팎으로 존재하는 시대가 배경이에요. 어느 날 등장한 뱀파이어 유격수 제리를 바라보는 팀 감독의 시선에서 쓰여진 책이지만 저는 제리의 동료 선수 엘리스의 입장에서 편지를 썼습니다. 짧지만 흥미롭고 결말이 너무 슬픈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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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용도 3 (반양장) -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세계는 잔물견을 일으키며 당신을 통과하고, 당신은 잠시 물색깔을 띄게 된다 세상의 용도 3
니콜라 부비에 지음,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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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 이번주도 지루한 일상의 연속입니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여행 에세이는 더더구나 잘 읽지 않으면서 <세상의 용도> 족히 6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여행기를 펼쳐듭니다. 1953년과 54년, 현대가 아닌 낯선 과거 속 여행기는 조금 다르기를 기대하면서요.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냥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곧 증명해 주리라. 여행자는 자기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는 여행이 여행자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p13, 1권)

스위스의 작가이고 화가인 두 청년이 여행길에 오릅니다. 제네바에서 출발하여 발칸반도 그리스 터키로 이어지는 1권, 중앙아시아 이란으로 이어지는 2권,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3권. 생각보다 꽤 두께가 나가는 긴 자동차 여행은 몹시도 뜨거운 인도 대륙의 냄새를 맡는 장면까지 가서야 끝이 났습니다. 부유한 젊은이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출발할 당시에는 고작해야 9주일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있었을 뿐이거든요. 돈은 얼마 없었지만 시간은 넘쳐났고 때문에 여행은 오롯이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p74, 1권)만을 향유하며 계속됩니다. "새로운 세계에서 빈둥거리며 나태를 부리는 것(p22, 1권) 이외의 욕심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죠. 그러나 나태 안에 노동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여행자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작가인 니콜라 부비에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정 직업이 구해지지 않을 때에는 여행지 아이들의 프랑스어 과외를 하는 것으로 돈을 법니다. 화가인 티에리는 그림을 그려 판 돈으로 여행 경비를 마련했는데 때때로 여인의 누드화 같은 것도 그려야 했지요. 이십대 청년이 그린 이 누드화가 마흔을 넘긴 구매자의 취향에 맞지 않아 팔리지 않았을 때의 난감함이란. 조금 우습고 멋쩍더군요. 아시아에서 구걸로 경비를 마련한다는 요즘의 유럽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두 청년이 느끼는 자괴감에도 저는 좀 기특한 마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3권 700에 가까운 페이지 속에서 이들이 별다른 사건을 겪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종종 있었지 않나요. 여행지에서의 사랑, 경악스럽기까지한 테러범과의 키스, 불쑥 튀어나와 인생의 놀라운 지혜를 건내는 동양의 현자, 목숨의 위협이 난무하는 오지로의 방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가 막힌 기지, 가족과도 다름없는 정으로 인간애를 일깨운 이방의 주민들. 이 양반 꿈꿨나 싶게 독자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연 일색의 여행기들 말입니다. 그런데 니콜라 부비에와 티에리가 겪는 고난이라야 기껏해야 쏟아지는 더위, 매몰찬 추위, 한 차례의 교통사고, 잦은 자동차 수리, 파리(날아다니는 그 해충이요), 원고 분실 정도 뿐이니까요. 읽으면서 이래도 되나 싶기까지 하더라구요. 아차, 원고분실은 기껏이라 말하기 좀 미안하긴 하군요. 술집에서 알바하고 온 그가 책상에서 원고가 사라졌을 때 느낀 당황과 좌절감이 꽤 컸거든요. 쓰레기장에서 독수리들과 싸움하며 티에리가 봉투를 찾았을 땐 저도 같이 환호를 했는데 까보니 원고지 몇 장 이외엔 남아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 봉투에는 게다가 똥도 묻어 있었구요. 쓰레기장 냄새가 베인 옷은 빨아도 빨아도 썩은내가 났습니다. 지못미 두 사람ㅠㅠ 어떤 이들은 여행지에서의 사랑을 낭만으로 다루지만 부비에는 여행자들의 하룻밤 사랑을 경멸합니다. 대신 고국의 약혼녀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는 티에리의 열정을 축복하지요. 위험한 곳, 위험한 사람, 위험한 일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여행자들에게 원한을 품는 풍경의 위험함을 잘 알고 있거든요. 아래는 티에리가 낭만에 대해 경고한 내용입니다.

"낭만적이고 목소리 크고 성격 화끈하고 누가 뭐래든 막무가내인자들이 위험을 무릅써보겠다고 용감하게 나섰다가 영영 소식이 끊긴 장소가 아나톨리아와 카이바르 고개 사이에 여러 곳 있다. 강도까지 나설 필요도 없다. 산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작고 가난한 마을이나, 빵 한 개나 닭 한 마리를 놓고 벌이는 짜증나는 흥정이면 충분하다.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으므로 당신의 몸짓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당신의 눈길은 점점 더 불안해지며, 그러다가 몽둥이 여섯 개가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가는 순간이 금방 온다. 그러면 당신이 인간애에 관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건 간에 몽둥이는 내려쳐진다." (p146-147, 1권)

여행지에서의 객기를 다룬 에세이나 뉴스 기사 등을 읽으면 짜증부터 나는지라 티에리와 부비에가 함께 하는 거의 매순간 안전한 여행이 호감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안전하고 모범적이니 지루하겠구나라는 편견도 전연 가지지 마십시오. 끝없이 이어지는 이국적인 풍경과 음악소리 맛있는 음식들과 때때로 좋은 사람들을 좇다 보면 작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그 시간 그 풍경 속으로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국의 문학과 시들은 덤입니다. 서러시아의 칸으로부터 구혼받은 중국 공주의 얘기, 사자들이 15년에 걸쳐 성사시킨 이 혼인에 관한 책 <대초원의 제국>은 로맨스 소설로 만들어지면 참 재미나겠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감옥에서 아시리아인의 성경책을 읽는 장면도 너무나 평화로워서 뜬금 성경을 사볼까 싶더라니까요. 물론 돌아서자마자 무리다 했습니다만. 6년 후에 이 여행기를 쓰면서 1년 반동안의 여행의 후폭풍이 너무 커 현실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도 좋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직장을 구했지만 안주하지 못한다는 것, 여행에서의 기억을 잃을까봐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열심히 쓰고 있다는 것.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있는 그 자리에서 상상력과 집중력으로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성실함을 인정하는 마음이 예쁘더군요. 그러니 이렇게 감성 넘치고 정직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들을 쓸 수 있었던 거겠지요. 

세 권의 책을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덕분에 주절주절 리뷰도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이 긴 리뷰의 요약과도 다름없는 찬사를 발견해 덧붙입니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존재의 행복은 바로 이 평범함 속에 있다." (아마존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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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용도 2 (반양장) - 중앙아시아.이란,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모든 물 그것은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라 세상의 용도 2
니콜라 부비에 지음,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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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 이번주도 지루한 일상의 연속입니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여행 에세이는 더더구나 잘 읽지 않으면서 <세상의 용도> 족히 6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여행기를 펼쳐듭니다. 1953년과 54년, 현대가 아닌 낯선 과거 속 여행기는 조금 다르기를 기대하면서요.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냥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곧 증명해 주리라. 여행자는 자기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는 여행이 여행자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p13, 1권)

스위스의 작가이고 화가인 두 청년이 여행길에 오릅니다. 제네바에서 출발하여 발칸반도 그리스 터키로 이어지는 1권, 중앙아시아 이란으로 이어지는 2권,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3권. 생각보다 꽤 두께가 나가는 긴 자동차 여행은 몹시도 뜨거운 인도 대륙의 냄새를 맡는 장면까지 가서야 끝이 났습니다. 부유한 젊은이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출발할 당시에는 고작해야 9주일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있었을 뿐이거든요. 돈은 얼마 없었지만 시간은 넘쳐났고 때문에 여행은 오롯이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p74, 1권)만을 향유하며 계속됩니다. "새로운 세계에서 빈둥거리며 나태를 부리는 것(p22, 1권) 이외의 욕심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죠. 그러나 나태 안에 노동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여행자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작가인 니콜라 부비에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정 직업이 구해지지 않을 때에는 여행지 아이들의 프랑스어 과외를 하는 것으로 돈을 법니다. 화가인 티에리는 그림을 그려 판 돈으로 여행 경비를 마련했는데 때때로 여인의 누드화 같은 것도 그려야 했지요. 이십대 청년이 그린 이 누드화가 마흔을 넘긴 구매자의 취향에 맞지 않아 팔리지 않았을 때의 난감함이란. 조금 우습고 멋쩍더군요. 아시아에서 구걸로 경비를 마련한다는 요즘의 유럽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두 청년이 느끼는 자괴감에도 저는 좀 기특한 마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3권 700에 가까운 페이지 속에서 이들이 별다른 사건을 겪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종종 있었지 않나요. 여행지에서의 사랑, 경악스럽기까지한 테러범과의 키스, 불쑥 튀어나와 인생의 놀라운 지혜를 건내는 동양의 현자, 목숨의 위협이 난무하는 오지로의 방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가 막힌 기지, 가족과도 다름없는 정으로 인간애를 일깨운 이방의 주민들. 이 양반 꿈꿨나 싶게 독자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연 일색의 여행기들 말입니다. 그런데 니콜라 부비에와 티에리가 겪는 고난이라야 기껏해야 쏟아지는 더위, 매몰찬 추위, 한 차례의 교통사고, 잦은 자동차 수리, 파리(날아다니는 그 해충이요), 원고 분실 정도 뿐이니까요. 읽으면서 이래도 되나 싶기까지 하더라구요. 아차, 원고분실은 기껏이라 말하기 좀 미안하긴 하군요. 술집에서 알바하고 온 그가 책상에서 원고가 사라졌을 때 느낀 당황과 좌절감이 꽤 컸거든요. 쓰레기장에서 독수리들과 싸움하며 티에리가 봉투를 찾았을 땐 저도 같이 환호를 했는데 까보니 원고지 몇 장 이외엔 남아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 봉투에는 게다가 똥도 묻어 있었구요. 쓰레기장 냄새가 베인 옷은 빨아도 빨아도 썩은내가 났습니다. 지못미 두 사람ㅠㅠ 어떤 이들은 여행지에서의 사랑을 낭만으로 다루지만 부비에는 여행자들의 하룻밤 사랑을 경멸합니다. 대신 고국의 약혼녀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는 티에리의 열정을 축복하지요. 위험한 곳, 위험한 사람, 위험한 일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여행자들에게 원한을 품는 풍경의 위험함을 잘 알고 있거든요. 아래는 티에리가 낭만에 대해 경고한 내용입니다.

"낭만적이고 목소리 크고 성격 화끈하고 누가 뭐래든 막무가내인자들이 위험을 무릅써보겠다고 용감하게 나섰다가 영영 소식이 끊긴 장소가 아나톨리아와 카이바르 고개 사이에 여러 곳 있다. 강도까지 나설 필요도 없다. 산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작고 가난한 마을이나, 빵 한 개나 닭 한 마리를 놓고 벌이는 짜증나는 흥정이면 충분하다.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으므로 당신의 몸짓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당신의 눈길은 점점 더 불안해지며, 그러다가 몽둥이 여섯 개가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가는 순간이 금방 온다. 그러면 당신이 인간애에 관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건 간에 몽둥이는 내려쳐진다." (p146-147, 1권)

여행지에서의 객기를 다룬 에세이나 뉴스 기사 등을 읽으면 짜증부터 나는지라 티에리와 부비에가 함께 하는 거의 매순간 안전한 여행이 호감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안전하고 모범적이니 지루하겠구나라는 편견도 전연 가지지 마십시오. 끝없이 이어지는 이국적인 풍경과 음악소리 맛있는 음식들과 때때로 좋은 사람들을 좇다 보면 작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그 시간 그 풍경 속으로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국의 문학과 시들은 덤입니다. 서러시아의 칸으로부터 구혼받은 중국 공주의 얘기, 사자들이 15년에 걸쳐 성사시킨 이 혼인에 관한 책 <대초원의 제국>은 로맨스 소설로 만들어지면 참 재미나겠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감옥에서 아시리아인의 성경책을 읽는 장면도 너무나 평화로워서 뜬금 성경을 사볼까 싶더라니까요. 물론 돌아서자마자 무리다 했습니다만. 6년 후에 이 여행기를 쓰면서 1년 반동안의 여행의 후폭풍이 너무 커 현실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도 좋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직장을 구했지만 안주하지 못한다는 것, 여행에서의 기억을 잃을까봐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열심히 쓰고 있다는 것.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있는 그 자리에서 상상력과 집중력으로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성실함을 인정하는 마음이 예쁘더군요. 그러니 이렇게 감성 넘치고 정직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들을 쓸 수 있었던 거겠지요. 

세 권의 책을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덕분에 주절주절 리뷰도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이 긴 리뷰의 요약과도 다름없는 찬사를 발견해 덧붙입니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존재의 행복은 바로 이 평범함 속에 있다." (아마존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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