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용도 2 (반양장) - 중앙아시아.이란,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모든 물 그것은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라 세상의 용도 2
니콜라 부비에 지음,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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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 이번주도 지루한 일상의 연속입니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여행 에세이는 더더구나 잘 읽지 않으면서 <세상의 용도> 족히 6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여행기를 펼쳐듭니다. 1953년과 54년, 현대가 아닌 낯선 과거 속 여행기는 조금 다르기를 기대하면서요.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냥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곧 증명해 주리라. 여행자는 자기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는 여행이 여행자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p13, 1권)

스위스의 작가이고 화가인 두 청년이 여행길에 오릅니다. 제네바에서 출발하여 발칸반도 그리스 터키로 이어지는 1권, 중앙아시아 이란으로 이어지는 2권,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3권. 생각보다 꽤 두께가 나가는 긴 자동차 여행은 몹시도 뜨거운 인도 대륙의 냄새를 맡는 장면까지 가서야 끝이 났습니다. 부유한 젊은이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출발할 당시에는 고작해야 9주일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있었을 뿐이거든요. 돈은 얼마 없었지만 시간은 넘쳐났고 때문에 여행은 오롯이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p74, 1권)만을 향유하며 계속됩니다. "새로운 세계에서 빈둥거리며 나태를 부리는 것(p22, 1권) 이외의 욕심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죠. 그러나 나태 안에 노동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여행자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작가인 니콜라 부비에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정 직업이 구해지지 않을 때에는 여행지 아이들의 프랑스어 과외를 하는 것으로 돈을 법니다. 화가인 티에리는 그림을 그려 판 돈으로 여행 경비를 마련했는데 때때로 여인의 누드화 같은 것도 그려야 했지요. 이십대 청년이 그린 이 누드화가 마흔을 넘긴 구매자의 취향에 맞지 않아 팔리지 않았을 때의 난감함이란. 조금 우습고 멋쩍더군요. 아시아에서 구걸로 경비를 마련한다는 요즘의 유럽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두 청년이 느끼는 자괴감에도 저는 좀 기특한 마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3권 700에 가까운 페이지 속에서 이들이 별다른 사건을 겪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종종 있었지 않나요. 여행지에서의 사랑, 경악스럽기까지한 테러범과의 키스, 불쑥 튀어나와 인생의 놀라운 지혜를 건내는 동양의 현자, 목숨의 위협이 난무하는 오지로의 방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가 막힌 기지, 가족과도 다름없는 정으로 인간애를 일깨운 이방의 주민들. 이 양반 꿈꿨나 싶게 독자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연 일색의 여행기들 말입니다. 그런데 니콜라 부비에와 티에리가 겪는 고난이라야 기껏해야 쏟아지는 더위, 매몰찬 추위, 한 차례의 교통사고, 잦은 자동차 수리, 파리(날아다니는 그 해충이요), 원고 분실 정도 뿐이니까요. 읽으면서 이래도 되나 싶기까지 하더라구요. 아차, 원고분실은 기껏이라 말하기 좀 미안하긴 하군요. 술집에서 알바하고 온 그가 책상에서 원고가 사라졌을 때 느낀 당황과 좌절감이 꽤 컸거든요. 쓰레기장에서 독수리들과 싸움하며 티에리가 봉투를 찾았을 땐 저도 같이 환호를 했는데 까보니 원고지 몇 장 이외엔 남아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 봉투에는 게다가 똥도 묻어 있었구요. 쓰레기장 냄새가 베인 옷은 빨아도 빨아도 썩은내가 났습니다. 지못미 두 사람ㅠㅠ 어떤 이들은 여행지에서의 사랑을 낭만으로 다루지만 부비에는 여행자들의 하룻밤 사랑을 경멸합니다. 대신 고국의 약혼녀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는 티에리의 열정을 축복하지요. 위험한 곳, 위험한 사람, 위험한 일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여행자들에게 원한을 품는 풍경의 위험함을 잘 알고 있거든요. 아래는 티에리가 낭만에 대해 경고한 내용입니다.

"낭만적이고 목소리 크고 성격 화끈하고 누가 뭐래든 막무가내인자들이 위험을 무릅써보겠다고 용감하게 나섰다가 영영 소식이 끊긴 장소가 아나톨리아와 카이바르 고개 사이에 여러 곳 있다. 강도까지 나설 필요도 없다. 산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작고 가난한 마을이나, 빵 한 개나 닭 한 마리를 놓고 벌이는 짜증나는 흥정이면 충분하다.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으므로 당신의 몸짓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당신의 눈길은 점점 더 불안해지며, 그러다가 몽둥이 여섯 개가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가는 순간이 금방 온다. 그러면 당신이 인간애에 관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건 간에 몽둥이는 내려쳐진다." (p146-147, 1권)

여행지에서의 객기를 다룬 에세이나 뉴스 기사 등을 읽으면 짜증부터 나는지라 티에리와 부비에가 함께 하는 거의 매순간 안전한 여행이 호감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안전하고 모범적이니 지루하겠구나라는 편견도 전연 가지지 마십시오. 끝없이 이어지는 이국적인 풍경과 음악소리 맛있는 음식들과 때때로 좋은 사람들을 좇다 보면 작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그 시간 그 풍경 속으로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국의 문학과 시들은 덤입니다. 서러시아의 칸으로부터 구혼받은 중국 공주의 얘기, 사자들이 15년에 걸쳐 성사시킨 이 혼인에 관한 책 <대초원의 제국>은 로맨스 소설로 만들어지면 참 재미나겠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감옥에서 아시리아인의 성경책을 읽는 장면도 너무나 평화로워서 뜬금 성경을 사볼까 싶더라니까요. 물론 돌아서자마자 무리다 했습니다만. 6년 후에 이 여행기를 쓰면서 1년 반동안의 여행의 후폭풍이 너무 커 현실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도 좋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직장을 구했지만 안주하지 못한다는 것, 여행에서의 기억을 잃을까봐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열심히 쓰고 있다는 것.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있는 그 자리에서 상상력과 집중력으로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성실함을 인정하는 마음이 예쁘더군요. 그러니 이렇게 감성 넘치고 정직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들을 쓸 수 있었던 거겠지요. 

세 권의 책을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덕분에 주절주절 리뷰도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이 긴 리뷰의 요약과도 다름없는 찬사를 발견해 덧붙입니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존재의 행복은 바로 이 평범함 속에 있다." (아마존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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