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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유격수 ㅣ 소설의 첫 만남 12
스콧 니컬슨 지음, 노보듀스 그림, 송경아 옮김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소여야구장 둘레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소년 제리는 뱀파이어입니다. 뱀파이어들을 사냥하고 말뚝 박던 무지하고 잔인했던 시대도 있었다지만 현재는 이종족 평등법이 잘 제정되어 뱀파이어라고 해서 소년야구단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뱀파이어인데 낮의 야구장에서 운동하면 녹지 않느냐고요?원 농담도. 요즘 시대에 그런 개그하면 돌 맞습니다. 뱀파이어들은 낮이고 밤이고 쌩쌩하다고요.
우리 메이너스 솔러 레드 삭스팀은 열여섯번째 시즌을 보내는 중이지만 성적은 좀 별로입니다. 감독님은 말로는 승부와 상관없이 야구를 즐기자 하지만 실은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부모님들께 면피용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아이들 모두 알고 있어요. 승부와 상관없이를 말씀하실 때면 꼭 선수인 우리가 아니라 부모님을 보시거든요. 그러던 팀에 야구공이 요요고 그 요요의 줄을 잡고 있는 것만 같이 공을 다루는 유격수가 등장했으니 감독님 입이 아주 찢어졌지 뭐에요. 거기다 이 녀석 공도 잘 치고 던지기도 잘하고. 뭐죠? 만능인가요? 단점이라면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연습훈련이 끝나면 박쥐로 변해서는 쌩하게 달아나버린다는 건데요. 실제로 박쥐로 변하는 뱀파이어는 처음 봐서 저도 좀 놀라기는 했답니다. 웃기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세요. 제리 녀석 발에 글러브랑 빨간 티를 주렁주렁 달고 가느라 앞이 안보였는지 나무에 몇 번이나 부딪히더란 말입니다. 하기야 박쥐라 앞이 안보이는 건 아무 문제가 안됐겠군요. 그럼 무거워서 그랬나??
어쨌든 우리는 첫 경기를 무사히 이기고 연승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감독님도 우리도 완전 신이 났지요. 화가 난 건 상대팀의 관중들, 대게는 학부모님들이죠, 그리고 소여시 야구계의 간판 감독 로스코 턴불 등이었죠. 7년 내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는데 한순간 등장한 뱀파이어 제리 때문에 1등 자리를 내줄지 모르게 되었으니 분통이 터진거에요. 상대팀 학부모형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처음엔 왜 저래? 하고 무시하려 했지만요. "비정상이 간다!" "뱀파이어를 죽여라!" "말뚝을 박아버려!" 사방에서 들려오는 제리에 대한 비방에 저는 숨도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감독님이 심판과 로스코 턴불 감독, 관객에게 항의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어요. 인간도 아니고 뱀파이어인데 뭐 어떠냐는 거에요. 소심한 제리 녀석은 온 목이 발갛게 익어서는 그래도 경기를 하겠다고 달려가는데 저는 울음이 나려해서 혼났지 뭐에요. 제리가 야구를 하겠다고 강력 주장했기 때문에 경기는 지속되었어요. 그리고 그 일이 벌어져 버렸죠. 뾰족뾰족하게 날을 간 상대팀 선수 신발 밑창, 그 밑창은 거의 15센티 높이였고 무엇보다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옛 뱀파이어를 주이곤 했던 나무 말뚝이 이곳 신성한 경기장에 너무나 어린 선수의 발에 신겨 등장한 거에요. 그리고 그 스파이크가 목표로 하는 건 너무나 명명백백했고 그렇게... 또 그렇게 제리가....
이 날 벌어졌던 끔찍한 일에 대해서 나는 더는 회고하지를 못하겠어요. 제리의 그 일 이후로 소여시엔 더 많은 뱀파이어들이 이주했고 심지어 그들 중에서 시장이 선출되기도 했지만요. 뱀파이어를 그렇게나 경멸했던 로스코 턴불 감독이 뱀파이어 선수를 세 명이나 더 기용했지만요. 그렇게 나아진 이 환경에도 나는 그날의 상처가 도무지 아무는 것 같지 않아요.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까요. 제리가 요청했어도 누군가는 경기를 중지시켜야 했어요. 죽으라는 비난 따윌 아이에게 쏟아내면 안되는 거였어요. 누군가는 반드시 제리를 보호해야만 했다고요. 나도 입다물고 있어선 안되는 거였는데. 글러브를 쥐고 박쥐로 변해 날아가던 제리가 잊히지가 않아요. 경기에 지각할까봐 개로 변해 피가 담긴 수통을 목에 걸고 달려오던 모습도요. 이제 생각하면 그 애가 원한 건 딱 한가지 뿐이었어요. 야구를 하는 것. 늦게까지, 늦지 않게, 우리와 함께 야구를 하는 것.
정말 미안해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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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만남 열두번째 소설은 "뱀파이어 유격수" 입니다. 다름을 대놓고 차별하진 못할지언정 법이 정한 테두리 밖에서는 얼마든지 모욕할 수 있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이 야구장 안팎으로 존재하는 시대가 배경이에요. 어느 날 등장한 뱀파이어 유격수 제리를 바라보는 팀 감독의 시선에서 쓰여진 책이지만 저는 제리의 동료 선수 엘리스의 입장에서 편지를 썼습니다. 짧지만 흥미롭고 결말이 너무 슬픈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