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밑의 개
나하이 지음 / 좋은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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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지처럼 작아 이름이 엄지인 개가 있습니다.
튤립에서 자라난 개일까요?
마법사의 새알에서 뿅 하고 나타났을까요?
요정같이 작고 귀여운 외모에 엉덩이 춤이 장기인 엄지는 대신이랄지 버릇이 아주아주 나쁩니다.
주인인 미소와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다 보니 어리광도 많구요.
미소가 매일 같이 오냐오냐 해주니 하루가 다르게 고집불통, 심술만 늘어가요.
미소의 눈 밑이 아니면 잠들지 못한다고 고집을 피우면서
정작 미소가 몸부림이라도 치면 자신을 깨웠다며 미소를 왕 하고 물어버리기까지.
미소가 엉엉 울어도 눈 한번 깜빡이지를 않습니다.
잘못한 게 없다는 거죠. 아주 고약한 녀석이에요.

그랬던 엄지가 어느 날 미소의 곁을 떠나 집을 나갑니다.
미소 이모의 집에서 놀라온 강아지 메롱이가 예쁨 받는 엄지를 질투해
작은 나라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거기에 홀랑 넘어가 버렸거든요.
엄마처럼 둥기둥기 해주는 미소도 지겹구요.
작다고 집 안에서만 노는 것도 이제는 실증이 나요.
친엄마아빠를 찾아서 엄지처럼 작은 소인국의 세계로 가서 살거에요.
자기만큼 작은 강아지들과 마음껏 뛰어놀 생각입니다.
그런 꿈에 비하면 미소의 부름은 얼마나 소박한지.
이제는 미소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날 지경이에요.
미소가 걱정할 것을 알면서도 엄지는 달려갑니다.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귀를 꽉 막고 냉큼 문 밖으로 몸을 던져요.

과연, 대문 밖의 세상은 엄지의 꿈처럼 다정했을까요?
작고 예쁜 모습으로 미소 이상의 사랑을 엄지에게 나누어주었을까요?

손가락만큼 작은 개 엄지가 차가운 세상을 돌며 노랑노랑하게 성장하는 이야기.
나하이 작가의 삽화와 어우러져 아이들에게 여러 교훈을 줄 동화책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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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되었습니다 - 영화 [희생부활자] 원작 소설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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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으로 좋아하게 된 작가 박하익의 미스터리 소설 <종료되었습니다>를 만났다. 17년에 개봉한 영화 희생부활자의 원작 소설인데 영화평이 워낙 극악이었다. "희생은 나만 할테니 다른 관객은 보지 말라", "돈이 희생되었다 내 돈을 부활시켜라" 등등. 이런 악평을 보고도 소설에 호기심을 느낄리 만무하지만 일찍 일어났고 출근까지 시간이 좀 남은 탓에 아무렇게나 펼칠 책이 필요했다. 재미없으면 덮으면 그만이란 생각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넘 집중하고 읽어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하마터면 출근도 안하고 회사생활을 종료시킬 뻔. 약간 과장해서 말이다 :ㅡ)

진홍은 누나에게서 온 전화의 내용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엄마가 돌아왔어! 지금 텔레비전 보면서 콩나물을 다듬고 계신다고!"(p7) 말도 안되는 소리, 라고 진홍은 생각한다. 누나는 스트레스가 지나쳐 학교를 그만두기 일보직전이다. 과대망상이나 공상허언이나 갱년기의 신경성 질환이겠거니. 그러면서도 회사를 조퇴하고 집으로 차를 돌린다. 희망따위 조금도 없지만 몸이 저절로 집을 향해 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진홍은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 앉는다. 엄마다. 엄마가 돌아왔다. 7년 전 괴한의 칼에 일곱 차례나 찔려 사망했던 그 엄마가, 진홍의 엄마 명숙이 집으로 돌아왔다. 천국 어쩌면 지옥의 시작이었다.

살인으로 죽임 당한 자가 살아돌아온다. 얼마나 환상적인 소재인가. RVP, 살인 피해자 환세현상, 영화에서는 희생부활자라 명명되어진 이들은 죽음에서 부활해 살해자를 처벌하고 빛으로 흐트러져 사라진다. RVP들의 행위는 매우 정교해서 누군가 칼을 휘둘렀다면 그 휘두른 자 뿐만 아니라 사주한 자까지도 쓸어 없앤다. 오류는 없다. 여태 단 한 차례의 무고한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여기, 진홍의 집에서, 진홍의 엄마 명숙이, 칼을 빼어들고, 진홍에게로 달려든다. 심판, 쥬디지오를 읊조리면서. 아들을 심판하려는 엄마에 맞서 진홍은 죽은 엄마를 다시 죽음으로 몰 것인가. 아니면 살아돌아온 엄마를 계속해 살리는 길을 택할 것인가. 진홍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진홍 그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일까. 책을 읽는 끝까지 사건의 진실은 커녕 진홍의 실체에도 근접하지 못한 채 헤매기만 했다. 오리무중의 이 미로가 정말이지 흥미로워 늦여름 장마의 습기마저 잊었다. 박하익과 RVP의 심판, 모든 미해결사건이 해소되는 근미래를 응원하며 그의 다음 작품까지 믿고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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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데이 로맨스
찰스 디킨스 지음, 홍수연 옮김 / B612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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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단 : 이 첫 번째 이야기는 누군가의 머리에서 짜낸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실화다. 다음에 올 이야기보다 일단 첫 번째 이야기를 믿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쓰이게 된 건지 도통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죄다 믿으면 좋겠지만 1부만은 꼭 믿어주기 바란다.

첫문단을 읽고 나면 아이쿠! 작가님 뻥을 얼마나 치실려고 라는 생각부터 든다. 킬킬킬, 기대감도 한껏 고조.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롤>, <위대한 유산> 등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서 원작 한번 찾아봄직도 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이다가 샛노란 표지에 귀여운 그림에 혹해서 읽게 되었는데 세상에나! 미국 전래동화(??)인 줄만 알았던 "마법의 물고기 뼈"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었다!! 제목이 달라서 영영 모를 뻔!! (참고로 찰스 디킨스는 영국 작가;;;) 

책은 1부 윌리엄 틴클링 귀하가 쓴 사랑 이야기, 2부 앨리스 레인버드가 쓴 사랑 이야기, 3부 로빈 레드포스 중령이 쓴 사랑 이야기, 4부 네티 애시퍼드가 쓴 사랑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네 편의 주인공은 모두 어린이들이다. 1부의 어린이들은 댄스 교습소 모퉁이에 있는 오른편 옷장 안에서 결혼을 한다. 장난감 가게에서 산 초록색 반지로 무사히 예식을 치르지만 아뿔사 집안의 반대로 신부들이 유폐된다. 신랑들은 신부를 찾기 위해 전투를 치르지만 결국 아흔살이 될 때까지 그들은 헤어져있기로 한다. 믿기지 않는 첫 이야기 속 사랑아 안녕이다. 2부 앨리스 레인버드의 사랑 이야기가 바로 "마법의 물고기 뼈" 동화였는데 요정님이 가난한 왕에게 연어꼬리를 선물한다. 맛있게 식사를 하되 19 남매 중 첫째 공주인 앨리시아에게 "뼈를 말리고, 문질러, 자개처럼 반짝 거리도록 광을 낸 다음, 선물로 잘 간직하라"고 이른다. 한번뿐이지만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줄 것이라는 당부와 함께. 왕비가 아파 쓰러지고 동생들이 다치고 요리사가 바람이 나 왕궁을 나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앨리시아 공주는 연어뼈를 사용하지 않고 그때마다 왕이 공주에게 묻는다.

"앨리시아."
"네, 아바마마."
"마법의 생선뼈는 어찌 된 것이냐?"
"제 주머니에 있사옵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더냐?"
"아니옵니다, 아바마마."
"잊어버린 것도 아니었더냐?"
"그렇지 않사옵니다." (p49)

이 대화가 네다섯번쯤 이루어진 후에야 공주는 마법의 생선뼈를 꺼내든다. 왕이 무일푼이 된 후였다.

"아바마마, 수중에 한 푼도 없으신가요?"
"한 푼도 없단다, 아가."
"돈을 얻을 길이 전혀 없으신가요, 아바마마?"
"하나도 없다. 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고, 온갖 방법을 써 보았느니라."
"아바마마,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고 온갖 방법을 써 보았다면 정말로 최선을 다한 게 확실하겠지요?"
"앨리시아, 여부가 있겠느냐."
"우리가 정말로 정말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충분치 않다면 다른 이의 도움을 청해야 할 딱 알맞을 때가 온 게 틀림없겠지요." (p58)

이 얼마나 현명한 공주님이신지. 거기다 공주님은 청렴결백하셔서 나 같으면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했을 것을 그냥 한달치 월급을 당겨받는 것으로 소원을 끝낸다. 믿을 수 없다!! 옛날 동화는 안이랬던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읽은 결말에는 요정님의 은혜로 값비싼 옷과 보석, 남편이 될 왕자님, 년에 여덟번에 달하는 봉급(그럼에도 결국 봉급!!) 더하기 35명의 아가들을 얻는 것으로 행운을 터트린다. 35명. 동생이 18명인데 자식은 35명. 요정님의 은혜를 어른이 되어 마주하니 이거 왜 공포특급 같지? 3부에서는 해적이 된 어린이가 라틴어 선생님을 벌한다. 어떻게?

"첫째,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주제넘게 학생들에게 다시 뭐든 가르쳐서는 안 될 것. 
 둘째, 영국으로 돌려보내진다면, 평생 방방곡곡을 돌며 연습문제를 끝마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찾아낸 다음, 그런 학생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연습문제를 끝마치도록 해주고 그에 관해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될 것." (p84)

찰스 디킨스가 라틴어 수업을 아주 싫어했던지 그 시절 라틴어 선생님이 모든 학생들에게 매우 미움 받았던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라틴어 선생님 너무 안됐다. 그러나 아이들은 선생님에 대한 이런 처벌을 아주 좋아하겠지? 4부는 어린이로 불리는 어른을 돌보는 어린이..지만 호칭은 어른인 어린이들이(읭??) 파티를 여는 내용이다. 파티에 초대받아 온 어린이(실은 어른)들은 왜 그렇게들 불평불만이 많은지 어른들은(실은 어린이)들이 내내 힘들어한다. 

제목은 홀리데이 로맨스인데 실은 로맨스라 부를만한 내용은 1-4부를 통틀어도 별반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툭하면 이유를 따지고 야단치고 고함지르고 공부시키고 가정 일에 무관심한 어른들에 대한 동화 같은 비꼼이 가득하다. 얼렁뚱땅하고 어리둥절한 내용으로 긴가민가 싶은 내용들도 있지만 어른들에게는 교훈을 어린이들에게는 대리만족과 기쁨을 느끼게 할 동화들로 즐거워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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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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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란 : 나는 나를 믿으면 안 된다. 내가 의논하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근데 남편을 믿어도 될까? (p69)
상은 : 나는 알고 있었다. 남편이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남편에게 약자이자 패배자이어야 했다. (p107)


주란과 상은, 너무나 다른 인생 속의 두 여자의 시간이 겹치기 시작한다. 상은의 남편이 저수지에 빠져 죽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며 상은의 남편인 김윤범은 소아과 의사이자 주란의 남편인 박재호와 낚시 약속이 잡혀있었다. 그날 밤 어쩐 일인지 박재호는 약속을 깨트렸고 김윤범은 다음 날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익사다. 주란은 윤범의 죽음을 두고 남편을 의심한다. 윤범이 죽은 날 밤 남편은 내내 그녀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주란이 깨어난 새벽 침대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남편은 꿈을 꾼 거라고 주장했지만 그녀의 폰에는 분명 남편에게 건 부재 중 전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그녀를 괴롭혔던 마당 화원의 시체 냄새는 또 어떻고. 친구들의 비웃음 같은 부추김에 판 마당에선 분명 사람의 뼈가 나왔다. 그러나 남편은 그조차 주란의 착각이라 하였고 남편이 확인하겠다고 한 다음날부터 고약한 냄새 또한 감쪽같이 사라진다. 처녀시절 언니의 사망사고를 겪은 후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망상증까지 앓게 된 주란은 자기 자신의 판단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 이미 그녀는 멀쩡한 이웃을 살인자로 몰았던 전적까지 있으므로. 그렇다고 이전처럼 완벽하게 남편을 신뢰하지도 않는다. 의심을 갖기 시작하자 그의 웃음, 그의 말, 그의 손짓까지 온통 석연치 않다. 아들 승재와 자신의 완벽했던 가정을 위해 주란은 오직 제 손으로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그런 주란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 상은. 성실하지만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김윤범의 아내는 또다른 목적을 안고 부른 배를 끌어안은 채 박재호의 밤을 캔다. 남편의 죽음은 관심 밖이다. 김윤범의 죽음 속 진실이 너무나 명확하므로 상은은 실종된 소녀의 흔적만을 애타게 찾는다. 상은은 잘 살고 싶다. 먹는 거 입는 거 쓰는 거 걱정 안하고 내일 벌이의 걱정없이 뱃속의 아이와 함께 잘 살고 싶다. 소녀의 흔적만 찾을 수 있다면 아마도 그녀와 아이는 잘 살게 될 것이다. 진실과 돈, 두 여자의 목적은 다르지만 두 여자가 원하는 모든 것 모든 욕망이 그곳 주란의 마당 속에 있으므로 두 사람의 걸음은 재각기 마당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이 세상에서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에요. (p375)"


무섭다. 2016년 4월 9일의 날짜로 시작하는 소설은 2016년 6월 3일 금요일에서 끝을 맺는다. 두어달 밖에 안되는 시간의 흐름을 정신없이 쫓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비로소 나는 등과 겨드랑이 밑으로 축축하게 땀이 베인 것을 느꼈다. 으슬으슬 등골도 시렸다. 무섭다. 이 책 정말 무섭다. 의심이 한번, 그러다 다시 한번 뒤집히는 시간 속 정상인 줄 알았으나 정상치 않은 두 여성의 시야로 마주하는 행위와 감정들이 오싹오싹 하더라. 미치광이다에서 미치광이들이었다로 바뀌는 국면 앞에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상은의 남편, 주란의 남편, 승재, 그러다 레즈비언 커플로 마무리되는 관계도도 의미심장하다. 신인작가 그것도 한국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힘든 몰입도에 결말까지도 거의 완벽하게 느껴진 미스터리 소설이다.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간 주란, 구직 사이트를 뒤질 피곤할 내일을 짐작하며 잠든 상은. 또다시 풍겨오는 시체냄새. 두 여자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남편은 정말 살인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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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제인 오스틴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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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1년 하고도 5일 만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017년에 시공사의 제인 오스틴 사후 200주년 특별판으로 만났던 <오만과 편견>에 이어 18년인 올해엔 박희정 작가의 일러스트가 수록된 위즈덤하우스판 <오만과 편견>을 만납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매력적인 사양과 표지에 설레고 익히 알고 있지만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책을 펼칩니다. 그 시절 영국 사회의 모습 특히 혼인에 관하여 매우 함축적으로 표현해주는 명문도 한땀한땀 손으로 짚어가며 읽습니다

  
" 재산이 많은 남자가 미혼일 경우 사람들은 누구나 마치 당연한 진리처럼
그에게 아내가 필요하다고 믿는다.(p9)"

 
  
   "부유한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의 시공사 번역과는 또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백에 가까운 페이지 수 차이의 원인도 알게 하구요 :) 어쨌든 책을 읽어갈수록 부유한 남성이 아니라 실은 미혼 여성, 특히 상속재산이 없는 여성에게 재산이 많은 남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게 되므로 이제는 첫문장에서부터 시니컬한 작가 특유의 유머를 느낍니다. 어쩌면 그녀는 이 문장을 쓰면서 그녀의 작은 이동식 책상에서 콧방귀를 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신 또한 미혼에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에게 의탁해야 하는 신세였으니까요. 제인 오스틴과 같이 미혼이지만 남자 형제가 없어 미래가 더욱 불투명한 베넷 가의 다섯 자매는 이웃 네더필드 파크가 빙리가에 임대되었다는 소식, 그가 영국 북부의 상류층 젊은이이며 일년 수입이 4, 5천 파운드나 된다는 사실에 흥분합니다. 특히나 베넷 부인은 자매들을 빙리와 혼인시킬 생각으로 아주 분주해지지요. 천사처럼 아름다운 미모에 마음씨가 좋은 첫째 제인, 영리한 머리와 재치있는 말솜씨를 지닌 둘째 엘리자베스, 학구파 셋째 메리, 베넷부인을 빼닮아 허영과 수다가 극심한 넷째다섯째 키티와  리디아는 엄마의 등살에 밀려 또는 자의로 결혼원정대에 몸을 실습니다. 그리고 시끌벅적한 대저택 네더필드의 무도회장에서 제인과 엘리자베스, 빙리와 빙리 이상으로 부유한 친구 다아시가 운명처럼 마주하지요. 누가 봐도 호감형인 제인과 빙리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이끌리지만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만남은 안타까울 정도로 극악, 어떻게 보면 상극이었달까요.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와 춤을 추라는 빙리의 권유에 "그럭저럭 봐줄 만은 하네. 하지만 내 마음에 들 정도로 매력적이지는 않아. 그리고 다른 남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자한테 관심 보이고 싶은 생각 없어."(p22)라는 말로 엘리자베스의 어처구니를 빼놓습니다. 자존심 강한 리지는 절대로 그와는 춤추지 않겠다고 결심하고요. 그러나 그 남자의 오만과 그 여자의 편견 속에서도 로맨스는 착실하게 싹을 틔워 다아시는 리지에게 끌려가는 제 모습에 당황하게 됩니다. 리지의 지성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아픈 언니를 찾아 3마일을 넘게 걸어온 그녀의 흐트러진 얼굴은 또 얼마나 생그럽던지요. 제게 잘 보이려는 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까칠하고 솔직하고 털털한 리지의 독특함에 눈으로는 자꾸만 그녀를 쫓고 발걸음은 절로 리지에게로 향합니다. 혼인이 아니면 자존심을 지킬 수도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는 미혼의 여성이 일등 신랑감인 자신의 청혼을 걷어찼을 때 이러한 매력은 더욱 폭발해서 하늘이 뒤집히는 것과 같은 충격으로 다아시는 리지에게 빠져듭니다. 반면에 리지는 한번의 대화로 활짝 마음을 열게 된 군인 위컴에게 들은 다아시의 과거와 제인과 빙리를 갈라놓은 다아시의 방해공작에 그를 매우 미워하게 되지요. 그의 청혼에 한편으로 우쭐하면서도 결코 그를 좋아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설마하니 그 위컴과 막내 리디아가 달아나 그녀 가문의 명예가 시궁창에 처박힐 위험에 처하고 다아시가 해결사로 나설 줄을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가슴 벅차게 아름다웠던 펨벌리 정원에서의 재회, 원수와도 같은 동생 리디아에게 뻗어진 구원의 손길, 차츰차츰 겸손해지고 성숙해지는 다아시의 인격에 반해 마음을 열게 된 엘리자베스와 새벽길을 열며 빙리와 함께 베넷가를 찾은 다아시의 결합에 미소 짓기까지 결국 저는 두 번째 독서에서도 밤을 꼴닥 새버렸습니다. (내일 아니 오늘 출근은 어쩐담;:) 

샬롯 브론테의 평처럼 소설 오만과 편견 속 커플들의 사랑에는 확실히 정열은 부족한 느낌입니다. 영화 속의 낭만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두 커플의 애정은 조금 밋밋하기까지 하죠. 대신에 19세기 상류층 여성과 남성의 허영을 속 시원할 정도로 꼬집고 미혼 여성들의 배우자 찾기를  밝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놓는다는 점에서 전 이 책이 정말 재미납니다. 제인 오스틴 소설 속에 언제나 등장하곤 하는 속물적인 인간들조차도 이젠 밉지가 않고 애정이 가요. 그 베넷 부인조차도 가끔, 아주아주 가끔 귀엽게 느껴질 때가 있었으니 말 다했죠. 무엇보다 "
가장 행복하고, 가장 현명하며, 가장 합리적인 결말로!"(p528) 맞이하는 끝이 매우 취향이란 말씀! 상상력을 북돋는 일러스트와 함께 한시도 지루하지 않은 고전 오만과 편견을 꼭 한번 만나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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