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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평점 :
주란 : 나는 나를 믿으면 안 된다. 내가 의논하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근데 남편을 믿어도 될까? (p69)
상은 : 나는 알고 있었다. 남편이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남편에게 약자이자 패배자이어야 했다. (p107)
주란과 상은, 너무나 다른 인생 속의 두 여자의 시간이 겹치기 시작한다. 상은의 남편이 저수지에 빠져 죽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며 상은의 남편인 김윤범은 소아과 의사이자 주란의 남편인 박재호와 낚시 약속이 잡혀있었다. 그날 밤 어쩐 일인지 박재호는 약속을 깨트렸고 김윤범은 다음 날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익사다. 주란은 윤범의 죽음을 두고 남편을 의심한다. 윤범이 죽은 날 밤 남편은 내내 그녀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주란이 깨어난 새벽 침대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남편은 꿈을 꾼 거라고 주장했지만 그녀의 폰에는 분명 남편에게 건 부재 중 전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그녀를 괴롭혔던 마당 화원의 시체 냄새는 또 어떻고. 친구들의 비웃음 같은 부추김에 판 마당에선 분명 사람의 뼈가 나왔다. 그러나 남편은 그조차 주란의 착각이라 하였고 남편이 확인하겠다고 한 다음날부터 고약한 냄새 또한 감쪽같이 사라진다. 처녀시절 언니의 사망사고를 겪은 후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망상증까지 앓게 된 주란은 자기 자신의 판단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 이미 그녀는 멀쩡한 이웃을 살인자로 몰았던 전적까지 있으므로. 그렇다고 이전처럼 완벽하게 남편을 신뢰하지도 않는다. 의심을 갖기 시작하자 그의 웃음, 그의 말, 그의 손짓까지 온통 석연치 않다. 아들 승재와 자신의 완벽했던 가정을 위해 주란은 오직 제 손으로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그런 주란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 상은. 성실하지만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김윤범의 아내는 또다른 목적을 안고 부른 배를 끌어안은 채 박재호의 밤을 캔다. 남편의 죽음은 관심 밖이다. 김윤범의 죽음 속 진실이 너무나 명확하므로 상은은 실종된 소녀의 흔적만을 애타게 찾는다. 상은은 잘 살고 싶다. 먹는 거 입는 거 쓰는 거 걱정 안하고 내일 벌이의 걱정없이 뱃속의 아이와 함께 잘 살고 싶다. 소녀의 흔적만 찾을 수 있다면 아마도 그녀와 아이는 잘 살게 될 것이다. 진실과 돈, 두 여자의 목적은 다르지만 두 여자가 원하는 모든 것 모든 욕망이 그곳 주란의 마당 속에 있으므로 두 사람의 걸음은 재각기 마당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이 세상에서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에요. (p375)"
무섭다. 2016년 4월 9일의 날짜로 시작하는 소설은 2016년 6월 3일 금요일에서 끝을 맺는다. 두어달 밖에 안되는 시간의 흐름을 정신없이 쫓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비로소 나는 등과 겨드랑이 밑으로 축축하게 땀이 베인 것을 느꼈다. 으슬으슬 등골도 시렸다. 무섭다. 이 책 정말 무섭다. 의심이 한번, 그러다 다시 한번 뒤집히는 시간 속 정상인 줄 알았으나 정상치 않은 두 여성의 시야로 마주하는 행위와 감정들이 오싹오싹 하더라. 미치광이다에서 미치광이들이었다로 바뀌는 국면 앞에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상은의 남편, 주란의 남편, 승재, 그러다 레즈비언 커플로 마무리되는 관계도도 의미심장하다. 신인작가 그것도 한국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힘든 몰입도에 결말까지도 거의 완벽하게 느껴진 미스터리 소설이다.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간 주란, 구직 사이트를 뒤질 피곤할 내일을 짐작하며 잠든 상은. 또다시 풍겨오는 시체냄새. 두 여자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남편은 정말 살인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