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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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찬사를 들은 때가 17년 여름, 내 책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즈음 우리 집을 방문한 것 같은데 펼쳐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다. 책이 너무 두껍다는 핑계, 699 페이지나 되는 책의 주제가 클래식이라는 핑계, 내가 클래식은 1도 모른다는 핑계로 몇 번을 들었다 놨을까. 영영 사놓고 안읽는 책이 될 뻔했는데 이렇게 또 뜬끔 읽고 싶어지니 이상하지만 동시에 당연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 김영하 작가의 주장처럼 책은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거니까. 역시 사두면 언젠가는 다아 읽게 되어 있는 것이다 ㅎㅎ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차 예선이 펼쳐지는 경연장의 로비 이쪽저쪽으로 참가자들과 콩쿠르의 심사위원들, 그들을 응원하는 관계자와 팬들이 북적북적하다. 이번 콩쿠르에서 화제가 되는 인물은 단연코 세 사람! 미성년자 딱지도 떼기 전에 대성하여 본인의 리사이틀 무대까지 열었던 "한 때"의 천재소녀 에이단 아야, 줄리어드에서 세계 유수의 음악가들에게 사사받으며 괄목할 성장을 보이는 미모 + 지능 + 체력 + 성실 + 의욕까지 만땅인 하이브리드형 천재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양봉가의 아들로 이렇다할 음악교육의 이수없이 자립성장한 혜성 같은 천재 가자마 진 되시겠다. 지도자이자 매니저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 개최된 콘서트장에서 아야는 달아났다. 피아노는 묘지처럼 느껴졌고 그곳에선 더 이상 자신의 음악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피아노를 지속하니 그것으로 된 게 아닐까? 어릴 적 자신을 피아노로 이끌었던 운명의 음표소녀를 찾고 있는 마사루. 혼혈에게 적대적인 일본의 문화에 상처받았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만난 음표소녀로 음악에 발 디딜 수 있었기에 마사루는 일본에 아무런 원망이 없다. 단지 그 소녀를 한번만 더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 소녀에게 어릴 적 약속 '피아노를 계속하겠다'를 지키고 키워왔음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소녀에 대한 낭만과는 별개로 냉철한 머리 한쪽으로는 클래식의 재생자가 아니라 작곡으로 신 클래식의 창조자가 되고 싶다는 집념이 이글이글 불탄다. 꿀벌 왕자로 불리우는 가자미 진은 별명만큼이나 귀엽고 천진난만한 소년이다. 클리식계의 전설 같은 인물 유지 폰 호프만으로부터 누군가에게는 선물이 누군가에게는 재앙이 되리라는 찬사를 들은 유례없는 천재지만 실상 그의 관심은 콩밭에 가있다. "본선 진출 = 개인 피아노". 피아니스트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이 천재에게 아직껏 개인 피아노가 없었기에 본선에 진출하면 피아노를 사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에 가슴이 콩닥콩닥, "내" 피아노가 있는 꿈은 그 자체로 장밋빛이다 . 요즈음의 관심은 꽃꽂이 정도일까. 또 하나, 갇혀있는 음악을 세상 밖으로 이끌겠다는 유지와의 약속도 물론 잊지 않는다. 그 밖으로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미안하지만 결혼과 양육,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인생 마지막 콩쿠르에 도전하고 있는 다카시마 아카시도 빼놓아서는 안된다. 실상 주력인물들보다 더욱 내 마음을 뺏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해서. "눈개비 한 옴큼만, 눈개비 한 옴큼만" 그가 미야자와 겐지의 시에서 받은 영감으로 만들었다는 멜로디보다 더욱 듣고 싶은 음악은 이 책 어디에도 없었다.


꿀벌과 천둥에는 읽는 맛을 다채롭게 만드는 다양한 볼륨들이 있다. 삐이 하고 주파수가 맞춰질 때마다 피아노에 대한 어쩌면 집착에 가까운 사랑들이 커다랗게 노래하고 범인들은 쫓아갈 수 없는 어마어마한 매일의 노력들이 울고 좌절한다. 고민과 질투와 열등감이 날카롭게 소리치다 누군가의 소리는 완전히 죽어 사라지고 누군가는 해방감으로 표효하며 누군가는 다시금 잔잔하게 개울을 돌아나간다. 현실에서는 목격하기 힘든 만화 같은 성장들이 쑥쑥 자라는 소리에 두근두근 뛰던 심장이 돌연 너네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싶게 먹고 사는 이야기로 한바탕 수다를 떨 때는 퍼뜩 안심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독자에서 경연의 관객으로 돌고 도는 독서시간이 이토록 황홀하다니 대박대박. 물론 음악의 효과에 대한 묘사가 너무 과해서 축구왕 슛돌이의 독수리슛, 총알슛, 도깨비슛을 어른이 되어 다시 볼 때느끼는 민망함도 없진 않았고 경연이1차, 2차, 3차에 본선까지 치뤄지다 보니 2차 끝 3차 초반 즈음엔 참가자들의 긴장감에도 면역이 되어 조금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한껏 너그러워진 독자는 이 정도 늘어짐은 충분히 양해가 된다.


699 페이지, 이런 두께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괜찮다. 두껍지만 날아갈 듯 넘어가는 페이지에 읽다보면 되려 뿌듯해진다. 클래식을 모른다고? 그것도 괜찮다, 우리는 글로 배우는 독자니까. 농구는 '슬램덩크'로 배우고, 야구는 '크게 휘두르며'로 즐기고, 테니스는 '테니스의 왕자'로 응원했던 독자라면 클래식도 <꿀벌과 천둥>으로 행복하게 배우고 즐기고 응원할 수 있을거라 100 퍼센트 장담한다. 책과 함께 감상하는 음악들은 덤. 유튜브에 들어가서 꿀벌과 천둥을 치면 어느 독자님께서 책에 나오는 경연곡들을 아예 묶어놓으셨다. 소설도 음악도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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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술집 바가지 3 - Novel Engine POP
아키카와 타키미 지음, 시와스다 그림, 김동수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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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변두리의 작은 선술집 바가지. 덤터기를 씌워 제 값 보다 높게 받는 바가지 상술에 분노할 수 밖에 없는 고객 입장상 선술집 바가지는 상호부터가 너무너무 비호감이다. 어떻게 이런 이름으로 가게를 낼 생각을 할 수 있는거지?

미네와 카오루 자매가 운영하는 선술집에 의아했던 것도 잠시 포렴에 적힌 이 상호가 단골손님들의 선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아니 바가진줄 알면서도 단골 한다고요? 내 주머니에서 돈 빼서 포렴까지 만들어줬다고요? 뭐야뭐야, 선술집 바가지 대체 뭐야, 바가지라는 거야 안바가지라는 거야~


선술집 바가지의 1대 주인장이었던 미네의 아버지는 손님을 앉혀두고 툭하면 얘기하곤 했단다. 어디서든 살 수 있고 집에서도 충분히 해먹을 수 있는 요리에 술을 파는 우리집은 이미 충분히 바가지라고.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편의점에만 가도 살 수 있는 술과 집에서 내 손으로도 해먹을 수도 있는 요리를 하나 아깝지 않게 돈내고 먹으러 가는 건 그만큼 그곳의 음식이 맛있다는 증명 아닐까? 그런 바가지라면 엎어쓰고 나오겠다는 의미로 손님들은 선술집 바가지라는 상호를 붙여주었는가 보다. 버젓이 "바가지"라는 간판이 붙은 가게에 너무 많은 손님이 들지는 않으리라는 단골의 응큼한 속셈도 있었을테고 말이다. 손님들의 그런 독점욕(?)까지도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미네와 카오루는 부모님의 사망 후에도 유지를 받들어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매일 성실하게 장사에 임하고 있다. 일본 내외의 다양한 술들과 계절에 꼭 맞는 재료들로 엄선한, 그러나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 요리들은 (어디까지나 글로 읽었을 때 얘기고 나보고 하라면 못하겠지만 ㅋㅋㅋ) 활자로 보는 나도 침을 꼴딱꼴딱 삼키게 할만큼 맛있고 다양하다. 일상물보다 모험물을 더 좋아하는 내 구미에도 딱 맞는 간의 손님들의 얘기도 잔잔한 재미를 더한다. 좋아서 화나서 싸워서 화해해서 피곤해서 그리워서 행복해서 술이 생각나는 밤들이 세상 모든 어른들에겐 있지 않겠는가. 크게 폭음하고 위가 뒤집어져서 요즘 술을 자제 중인데 '아효 딱 한잔만 하고 싶다!!!'는 유혹이 1, 2 ,3권 읽는 내내 계속됐다. 특히 야키교자 만들어 구워먹는 얘기에 식욕 폭발. 냉동실에 만두가 없으면 불안한 사람이 난데 하필이면 집에 맥주도 있었고요. 냉장고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꾸욱 참았다. (나야 잘했어, 쓰담쓰담)


암만 봐도 3권이 완결인 것 같지는 않아서, 그도 그럴 것이 구시대적 표현으로 국수 먹게 해줄 것만 같은 남녀가 넷이나 있는데 냄새만 줄창 피우고 다된 요리를 보여주지 않았단 말이지. 이런 애매함으로 완결일리 없어 라고 주장하고 싶다. 호감이 있음에 분명한 단골 아키와 료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서른에 자기가 반한 것도 모르는 것만 같은 주인장 미네와 은근한 철벽 카나메의 향후 진행 상황이 궁금한 건 저뿐인가요? 그런가요? 바가지의 단골손님들은 아니지만, 그야 중학생들이다, 자매 같은 친구들 사키와 린의 우정도 계속 보고 싶고, 성인으로 발 딛여 첫 술잔을 선술집 바가지에서 기울였으면 좋겠는 료의 후배 노리의 첫 술도 궁금하다. 한 때는 게이샤였던 유메와 소꿉친구 시이의 재회의 회포가 바가지에서 풀리는 것도 목격하고 싶고, 무엇보다 다음 독서 때는 위가 건강해져서 미네와 카오루의 새로운 요리들 새로운 술을 안주 삼아 나도 기분 좋게 취하고 싶다. 선술집 바가지가 근방에 있다면 풀방구리 쥐나들 듯 하겠지만 없으니까!! 대신에 시리즈로 다음 권들이 쭈욱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작가와 출판사에 기대를 무럭무럭 날려보내며 그렇지만 싫었던 두 가지 사항도 고민 끝에 같이 첨부하며 길었던 이번 리뷰도 끝!


 

미네가 카나메에게 먹인 후쿠시마 복숭아는 쪼끔.. 심하게 많이.. 아니었다고 본다.

후쿠시마의 맛있는 복숭아 농장이 망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건 국가가 보상할 일이지 일본 국민들이 몸으로 감당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봐서ㅠㅠㅠㅠ

작가의 선의를 존중하지만 개정판이 나오게 된다면

이 부분을 심도 깊이 고민하고 내용 수정을 감안해줬으면 좋겠다.


첫방문에 주인장한테 반말하던 카나메의 첫인상도 쪼끔 비호감.

아가씨한테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초면 반말 직찍 날리던 건 90년대 초반에 끝난 얘기 아닙니까?

엄청나게 고연령자면 바뀐 시대에 적응을 못하시나보다 하겠지만 카나메 나이 고작해야 서른 중반;;;;

아기 고양이들 구해주는 장면으로 점수 회복했지만 작가 문제인지 번역가 문제인지 딴 책에선 부디 이러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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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 2019-02-2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제가 알고 있는 (잘못 알고 있을 확률도 높지만) 약간의 상식은 일본에서는 딱 봐서 연장자처럼 보이면 반말하는 게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일본 사람 밑에서 약 2년간 일한 경험이 있어서요 물론 일반화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나중에 일본 문화,사회를 더 알게 되면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

캔디캔디 2019-02-24 14:13   좋아요 0 | URL
일본은 또 그런 문화이군요. 제가 일본 문화를 몰라서 뭐 이런 무례하고 촌스러운 남자가 다 있나, 왜 번역을 이런 식으로 했을까 하고 살짝 분개했는데 그전에 일본 문화부터 알아볼 걸 그랬습니다. 몰랐던 정보까지 부끄럽지 않게 알려주시고 댓글 넘 감사해요 진우님~

vango 2019-02-24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드라마로 제작되었습니다 유튜브에 가시면 보실 수 있어요 자막이 없어서 내용은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따뜻해 보여요

캔디캔디 2019-02-24 14:13   좋아요 0 | URL
책도 굉장히 오붓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요. 주인공 미네씨도 매력적이구요 ㅎㅎ
드라마가 넷플릭스에 올라오면 보기 편할텐데 어디서 볼 수 있는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왼손잡이 숙녀 에놀라 홈즈 시리즈 2
낸시 스프링어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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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1월, 문을 연지 갓 한 달이 된 신설 탐정 사무소 아니 "사이언티픽 퍼디토리언"의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있다. 베이커가 221번지에 하숙하는 유명한 그 남자, 셜록 홈즈의 친구 존 왓슨 박사다. 세계 최고의 명탐정을 코 앞에 두고 왓슨 박사는 어째서 과학자이자 탐색가인 레슬리 티 라고스틴 박사를 찾아온 걸까? 라고스틴 박사의 비서로 분장하고 선 에놀라 홈즈의 가슴이 왓슨 박사를 보고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혹시 셜록이 자신을 찾기 위해 라고스틴 박사와 협업하려는 게 아닐까?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라고스틴 박사를 살피다 다름 아닌 가출한 여동생 에놀라 홈즈 자신을 찾아내는 건 아닐까? 그녀는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알 수 없는 감정 사이로 왓슨 박사를 분석하고 셜록의 상황을 추리하며 동시에 퍼디토리언으로서의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사건 하나를 새롭게 맡게 된다. 왼손잡이 숙녀, 레이디 세실리의 실종 사건을 말이다.


침대에 든 자국은 분명하다. 그 밖으로 없어진 물건도 없다. 숙녀가 가출할 때 필요로 할 자질구레한 옷가지는 물론 돈이 될 법한 보석 하나 건드리지 않은 채 레이디 세실리는 집을 나섰다... 고 경찰은 추정한다. 납치로 판단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창문 앞에 세워져있는 사다리 그리고 책상에서 경찰들이 발견한 하류층 남자와 주고받은 편지묶음 때문이다. 이 물적 증거들로 인해 런던 경찰도 세간에서도 하다못해 소녀의 아버지마저도 그녀가 사랑의 도피를 했다고 믿는다. 단 두 명, 딸의 어머니와 기숙학교에 가지 않기 위해 가출 진행형의 삶을 살고 있는 에놀라 홈즈만 빼고 말이다. 편지의 수신인에 따라 달리 사용됐던 잉크의 색깔, 세실리가 숨겨놓은 당시 숙녀로서는 파격적이라 할만한 그림의 소재들, 철저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한 세실리의 왼손잡이로써의 습관과 시대 반항적인 성격은 에놀라의 의심을 부추긴다. 또한 그녀의 흔적에서 느껴지는 동류의 느낌과 혼자라는 외로움에 에놀라는 레이디 세실리와 친구가 되기를 절실히 바라게 되는데.... 그럴려면 우선 실종된 숙녀를 찾아야만 한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 두번째 사건 <왼손잡이 숙녀>의 재미는 1권 <사라진 후작>을 가파르게 뛰어넘는다. 에놀라가 집을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던 가정과 사회 안팎의 코르셋에 중점을 뒀던 첫번째 사건에서 나아가 두번째 사건은 백화점으로 엿볼 수 있는 19세기 영국의 소비,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마르크스 자본론이 출간될 당시의 사회 분위기, 도시 빈민가의 뼈아픈 현실을 에놀라가 목격하게 만들며 그녀의 관심을 '나'에서 사회로 더욱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빅토리아 시대 배경의 여러 영화나 소설 등이 귀족적인 삶 또는 하류층 거친 남성들의 삶에 집중했던데 반해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영국 뒷골목에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의 삶도 조금씩 보여준다. 이를 테면 숙녀가 발 디딜 자리를 돈 받고 비질해주는 소녀의 얘기 등을 말이다. 물론 가장 큰 재미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셜록과 왓슨인데 여동생을 못찾아 안달하는 오빠 셜록의 지질한 면모가 매력(?) 넘친다. 그 매력의 뒷통수를 팍 치고 달아나는 에놀라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유쾌상쾌통쾌! 여자를 은근히 무시하는 셜록 홈즈가 언제쯤 에놀라의 능력을 인정하게 될지 이거 점점 더 흥미가 돋는데??


너무나 어린 나이에 엄마와 헤어져 스스로 삶을 개척하게 된 에놀라. 자유로운 삶을 위해 홀로 투쟁하는 그녀를 언제까지고 응원하련다. 세번째 사건을 가지고 근시일내 독자를 찾아와 주기를, 에놀라 화이팅! 셜록 오빠의 한층 진화될 집착과 지질함도 같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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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 젊은 괴짜 곤충학자의 유쾌한 자력갱생 인생 구출 대작전
마에노 울드 고타로 지음, 김소연 옮김 / 해나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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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에서, 메뚜기도 한철이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곤충학자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읽은 과학잡지 속 기사의 영향으로 메뚜기에게 뜯어먹히고 싶다는 꿈도 꾼다. 마에노 울드 고타로, 32살의 돈도 없고 직장도 없는 비정규직 메뚜기 박사의 이야기다. 일본에도 한국에도 파브르 곤충기를 읽는 어린이가 많다. 그야 위인전기 시리즈에 꼭 빠지지 않는 한 명이니까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또다른 파브르를 꿈꾸는 친구들도 적지 않을텐데 정작 대학에 진학해 학부 4년, 석사 2년, 박사 3년을 거쳐 진짜 곤충박사가 된 고타로 같은 친구는 몇이나 될까? 그것도 도시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도 않는 메뚜기를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학생이 말이다. 농경국가도 아닌 일본이니 사회적 인식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텐데 "엄마, 나 대학가서 메뚜기 박사 될래!" 했을 때의 부모님 표정이 궁금해진다. 이 책이 소설이었다면 "고타로는 꿈꾸던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되어 막장을 덮었을테지만 알다시피 메뚜기는 한철이라 오래오래 행복하기가 현실에서는 영 쉽지 않다. 거기다 장르도 소설과는 거리가 먼 과학도서니까! 오히려 박사를 따고 난 후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말로만 듣던 고학력 무직자가 된 것이다. 고타로는 앞날이 캄캄하다.


2. 모리타니에서,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젊은 연구자를 지원하는 일본 학술진흥회 해외특별연구원에 선발된 고타로는 아프리카 드림을 꿈꾸며 가방을 싼다. 메뚜기 피해국 중 한 곳인 모리타니의 연구소에 들어가 신선한 논문을 마구마구 써서 꼭 정규직 박사가 되리라!! 야망에 부푼 고타로는 잠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고타로가 모리타니에 도착한 그 날부터 씨알이 마르기 시작한 메뚜기들. 신의 형별이라는 메뚜기떼의 비행 또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메뚜기 한 마리를 찾으려고 차를 타고 하루종일 움직여도 없다. 살인적 가뭄에 메뚜기 유충마저 말라버린 하루하루 속 고타로의 메뚜기 연구를 향한 전력투구가 시작된다. 순진한 박사 호구 잡는 운전기사와 통역 대학생, 메뚜기 현상금에 좀비화된 마을 아이들의 폭력, 바닷바람에 두달여만에 녹아내린 메뚜기 실험 상자, 온갖 벌레들의 투신자살 내역을 입으로 확인하게 되는 사막의 스파게티, 또다른 벌레 거저리와의 외도. 2년여에 걸쳐 성공적인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나마의 수확을 꼽으라면 고슴도치 두 마리를 길들인 것 정도?? 타인의 불행을 보며 이렇게 웃어도 되는건지 독자는 괜스레 죄책감에 빠지지만 후기에 보면 독자의 웃음을 위해 더욱 불행해져도 좋았다는 박사의 다짐이 든든하다. 우리 마음껏 웃도록 하자.


덧, 모리타니 편에서 배운 메뚜기에 대한 것을 하나 소개하자면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보곤 하는 떼로 뭉쳐다니는 비행 메뚜기들이 어떤 특별한 종이 아니라는 거다.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가 시골 논에서 보곤 하는 평범한 메뚜기들이랑 똑같은 애들이란다. 근데 이런 평범했던 애들이 주변에 동료 메뚜기들이 많아지는 고밀도 환경으로 들어가면 급격히 무리를 형성하며 하루에도 100키로씩 날고 근방 식물들을 다 털어먹는 깡패 해충으로 변신한단다. 사람이고 메뚜기고 하튼 너무 가깝지 않게 띄엄띄엄 살아야 맞는거구나를 다시 한번 배웠다. 뭉치면 피곤해;; 그리고 여성을 죽이는 또 하나의 야만적 문화도 접했다. 전족, 코르셋, 할레는 알았지만 가바지는 또 뭐니? 체격이 아주 좋은 여성을 선호하는 모리타니에서는 어린 여자 아이들을 살 찌우기 위해 여섯 살 아이에게 우유 8리터, 2킬로그램의 쿠스쿠스(일종의 스파게티)를 1일 평균 식사로 제공한다. 그 와중에 폭력은 뭐 당연한거고 위장파열로 사망하는 아이까지 생기는데 그럼에도 아이를 살찌우기 위해 학원까지 보내는 극성 부모들이 존재하는가보다. 가바지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타로의 운전기사 티자니의 의붓딸 또한 가바지로 고통받는 걸 보면 가바지 문화의 완전박멸은 아직도 요원한 듯 . 모리타니의 여성에 대한 이런 폭력적인 문화가 얼른 사라지면 좋겠다.


3. 프랑스에서,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메뚜기 연구를 위한 잠깐의 후퇴. 이번 전장은 아프리카가 아닌 프랑스다. 메뚜기 씨가 마른 모리타니를 잠시 떠나 프랑스에 간 고타로는 파브르의 집을 방문한다. 여기서 아주 재미난 소식 하나를 접했는데 프랑스에서는 파브르가 별로 유명하지 않다는 거!!! 프랑스 사람 열 명 중에 한 명이 파브르를 알까말까라고 한다. 왓?!! 그럼 프랑스 교과서에는 파브르가 안나오나요? 진짜?? 이게 사실이냐고 프랑스 사람한테 물어보고 직접 확인까지 받고 싶지만 나는 뭐 그렇다. 봉쥬르 밖에 모르는 걸. 봉슈른가? 어쨌든 프랑스에서 메뚜기 원고도 완성하고 파브르 생가의 동상에 첫 원고도 바친 원대했던 나날들은 박사의 가슴에 다시금 정열의 불을 피워준다. 생계에 도움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직 박사에게도 구르는 재주는 있었던 것이다.


4. 다시 일본 다시 모리타니 다시 중국 다시 또 모리타니 다시 또 일본으로 방황하는 박사,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


이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곤충 속담 몇 개 더 아는걸로 써먹으려고 했는데 리뷰가 벌써 너무 길다 ㅎㅎ 어쨌든 좌충우돌, 일본-모리타리-프랑스-모리타니-일본- 모리타니-중국- 모리타니- 일본을 오고가며 특별 연구원 기간이 끝난 후 더욱 바빠진 박사님이다. 얼마 안되는 통장 잔고를 털어가며 아프리카에 머무르는 일은 그 자체로 크나큰 압박이니까. 연구비 마련을 위해, 안정적인 직업과 미래를 위해, 메뚜기 연구로 인류를 돕겠다는 거대한 꿈을 위해 또다른 연구원 자리, 또다른 논문, 결이 완전히 다른 방송과 출판과 대중강의에까지 도전을 한다. 실패가 두렵지만 꿈을 고백하면 할 수록 더 많은 도움을 받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생 속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메뚜기를 연구하고 있을 고타로 박사. 메뚜기를 하도 만져 메뚜기 알레르기가 생긴 그의 완치를 빌며 아프리카의 메뚜기 문제도 꼭 해결이 나면 좋겠다. 메뚜기 박사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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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그림으로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
이재연 지음 / 소동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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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커다란 대야에 불린 쌀을 잔뜩 이고 방앗간에 가서 줄을 서는 풍경이나 시침하는 이불 위에 굴러다니며 뒹굴뒹굴 하는 모양새나 아이들이 초칠하며 빤딱빤딱하게 닦는 교실의 마룻바닥, 동네 개구쟁이들을 꽁무니에 달고 달리는 소독차, 봄나물 캐는 날의 정경 앞에 잠깐씩 멈춰섭니다. 외할머니 건강하시고 외할아버지 살아계시던 제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요. 첩첩산골의 외딴 시골도 아닌데 어린애 몸통만한 구렁이가 나오던 외가댁은 저 4학년 때까지도 푸세식 화장실에 부뚜막이 있고 아궁이에 잔솔가지며 땔감으로 불을 피워 난방을 했습니다. 밤에는 화장실을 못가서 할머니가 챙겨주는 요강을 썼구요. 어쩌다 외삼촌방에서 잔 날은 요강을 못찾아 옷에 오줌을 싸기도 했습니다. 젖은 옷을 꼭 티비장 뒤처럼 으슥한 곳에 숨겼는데 키 쓰고 소금 얻으러 간 기억은 없지만 아마 크게 혼이 난 적이 있어서겠죠? 똥장군 지고 가던 동네 할아버지 뒷모습도 가뭇가뭇하지만 떠오르구요. 창호지문들은 여름방학 겨울방학이면 넘나드는 손자손녀들로 멀쩡할 새가 없었는데 이노무 손아 하고 혼이 나도 그때뿐 자꾸 구멍을 내니 노란 테이프로 너덜너덜한 부분을 붙여두곤 했습니다. 명절에 가면 문이 또 멀쩡해서 그걸 다시 뽕뽕. 아랫목 지글지글한 열기에 누렇게 타있던 장판도, 부엌과 마루 사이 반찬이 오가던 쪽문이랄지 쪽창이랄지 그곳 나무에서만 나던 유난히 콤콤하던 냄새도, 우리가 가면 불을 너무 지펴서 할매 숨막힌다 하며 벌컥벌컥 열어제끼던 문도, 할머니댁 가는 길 군데군데 떨어져있던 소똥까지 그림으로 들려주는 이재연 할머니 이야기를 보며 방울방울 떠오릅니다. 기억하는지도 몰랐던 일들까지, 이를테면 길 한복판의 소똥이 얼마나 컸었는지까지, 차례차례 생각나는 게 어찌나 신기하고 우습던지요.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는 보통 소설책 두 개를 붙여놓은 것마냥 가로가 긴 그림책입니다. 1948년에 태어난, 올해 만으로 71세가 되는 이재연 할머니께서 그리고 쓴 책입니다. 할머니도 그림을 그리며 고향 생각이 더 많이 나고 휴화산이 폭발하듯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셨다는데 세상엔 기억상실증만 있는게 아니라 기억상기증도 있는가 봅니다. 아마도 전염성도 강력한 것 같구요. 페이지를 넘길 수록 더 많은 시골풍경 더 많은 시골냄새가 마음과 코끝을 간지럽혔거든요. 표지의 초갓집이며 닭이며 강아지똥에 똑단발 머리의 얼음땡 놀이 중인 소녀들의 모습이 아주 정겹지요? 본문의 그림들은 표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크고 오손도손 정답습니다. 썩 잘 그린 그림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처럼 저는 이재연 할머니의 그림들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순간 포착이 잘 되어있는 그 시절 고향의 풍경이 살아본 적도 없는 시간과 경험하지 못한 나날들까지 그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진으로 접하는 옛날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맛입니다. 모르긴 해도 비슷한 때에 성장한 어른들은 이 책으로 더욱 재미날 게 틀림이 없는데요. 그래서 설 때 부모님과 친척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문제는 해버릇한 일이 아니라 쑥스러워 책 이야기를 못꺼내겠더라구요. 결국 저 혼자서만 조용히 감상한 시간이 못내 아쉽고 그렇습니다. 글밥 많은 책은 딱 싫어하시지만 외할머니 약해지시고 유독 어릴 적 얘기, 할아버지 살아생전 얘기를 꺼내곤 하시는 엄마 보라고 집에 몰래 놓고 와야겠어요. 혼자만 보기엔 정말이지 아까운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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