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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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찬사를 들은 때가 17년 여름, 내 책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즈음 우리 집을 방문한 것 같은데 펼쳐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다. 책이 너무 두껍다는 핑계, 699 페이지나 되는 책의 주제가 클래식이라는 핑계, 내가 클래식은 1도 모른다는 핑계로 몇 번을 들었다 놨을까. 영영 사놓고 안읽는 책이 될 뻔했는데 이렇게 또 뜬끔 읽고 싶어지니 이상하지만 동시에 당연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 김영하 작가의 주장처럼 책은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거니까. 역시 사두면 언젠가는 다아 읽게 되어 있는 것이다 ㅎㅎ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차 예선이 펼쳐지는 경연장의 로비 이쪽저쪽으로 참가자들과 콩쿠르의 심사위원들, 그들을 응원하는 관계자와 팬들이 북적북적하다. 이번 콩쿠르에서 화제가 되는 인물은 단연코 세 사람! 미성년자 딱지도 떼기 전에 대성하여 본인의 리사이틀 무대까지 열었던 "한 때"의 천재소녀 에이단 아야, 줄리어드에서 세계 유수의 음악가들에게 사사받으며 괄목할 성장을 보이는 미모 + 지능 + 체력 + 성실 + 의욕까지 만땅인 하이브리드형 천재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양봉가의 아들로 이렇다할 음악교육의 이수없이 자립성장한 혜성 같은 천재 가자마 진 되시겠다. 지도자이자 매니저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 개최된 콘서트장에서 아야는 달아났다. 피아노는 묘지처럼 느껴졌고 그곳에선 더 이상 자신의 음악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피아노를 지속하니 그것으로 된 게 아닐까? 어릴 적 자신을 피아노로 이끌었던 운명의 음표소녀를 찾고 있는 마사루. 혼혈에게 적대적인 일본의 문화에 상처받았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만난 음표소녀로 음악에 발 디딜 수 있었기에 마사루는 일본에 아무런 원망이 없다. 단지 그 소녀를 한번만 더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 소녀에게 어릴 적 약속 '피아노를 계속하겠다'를 지키고 키워왔음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소녀에 대한 낭만과는 별개로 냉철한 머리 한쪽으로는 클래식의 재생자가 아니라 작곡으로 신 클래식의 창조자가 되고 싶다는 집념이 이글이글 불탄다. 꿀벌 왕자로 불리우는 가자미 진은 별명만큼이나 귀엽고 천진난만한 소년이다. 클리식계의 전설 같은 인물 유지 폰 호프만으로부터 누군가에게는 선물이 누군가에게는 재앙이 되리라는 찬사를 들은 유례없는 천재지만 실상 그의 관심은 콩밭에 가있다. "본선 진출 = 개인 피아노". 피아니스트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이 천재에게 아직껏 개인 피아노가 없었기에 본선에 진출하면 피아노를 사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에 가슴이 콩닥콩닥, "내" 피아노가 있는 꿈은 그 자체로 장밋빛이다 . 요즈음의 관심은 꽃꽂이 정도일까. 또 하나, 갇혀있는 음악을 세상 밖으로 이끌겠다는 유지와의 약속도 물론 잊지 않는다. 그 밖으로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미안하지만 결혼과 양육,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인생 마지막 콩쿠르에 도전하고 있는 다카시마 아카시도 빼놓아서는 안된다. 실상 주력인물들보다 더욱 내 마음을 뺏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해서. "눈개비 한 옴큼만, 눈개비 한 옴큼만" 그가 미야자와 겐지의 시에서 받은 영감으로 만들었다는 멜로디보다 더욱 듣고 싶은 음악은 이 책 어디에도 없었다.


꿀벌과 천둥에는 읽는 맛을 다채롭게 만드는 다양한 볼륨들이 있다. 삐이 하고 주파수가 맞춰질 때마다 피아노에 대한 어쩌면 집착에 가까운 사랑들이 커다랗게 노래하고 범인들은 쫓아갈 수 없는 어마어마한 매일의 노력들이 울고 좌절한다. 고민과 질투와 열등감이 날카롭게 소리치다 누군가의 소리는 완전히 죽어 사라지고 누군가는 해방감으로 표효하며 누군가는 다시금 잔잔하게 개울을 돌아나간다. 현실에서는 목격하기 힘든 만화 같은 성장들이 쑥쑥 자라는 소리에 두근두근 뛰던 심장이 돌연 너네도 사람은 사람이구나 싶게 먹고 사는 이야기로 한바탕 수다를 떨 때는 퍼뜩 안심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독자에서 경연의 관객으로 돌고 도는 독서시간이 이토록 황홀하다니 대박대박. 물론 음악의 효과에 대한 묘사가 너무 과해서 축구왕 슛돌이의 독수리슛, 총알슛, 도깨비슛을 어른이 되어 다시 볼 때느끼는 민망함도 없진 않았고 경연이1차, 2차, 3차에 본선까지 치뤄지다 보니 2차 끝 3차 초반 즈음엔 참가자들의 긴장감에도 면역이 되어 조금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한껏 너그러워진 독자는 이 정도 늘어짐은 충분히 양해가 된다.


699 페이지, 이런 두께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괜찮다. 두껍지만 날아갈 듯 넘어가는 페이지에 읽다보면 되려 뿌듯해진다. 클래식을 모른다고? 그것도 괜찮다, 우리는 글로 배우는 독자니까. 농구는 '슬램덩크'로 배우고, 야구는 '크게 휘두르며'로 즐기고, 테니스는 '테니스의 왕자'로 응원했던 독자라면 클래식도 <꿀벌과 천둥>으로 행복하게 배우고 즐기고 응원할 수 있을거라 100 퍼센트 장담한다. 책과 함께 감상하는 음악들은 덤. 유튜브에 들어가서 꿀벌과 천둥을 치면 어느 독자님께서 책에 나오는 경연곡들을 아예 묶어놓으셨다. 소설도 음악도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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