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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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링박물관의 새들이 도난 당했습니다.

범인은 과감하게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캐비넷 안의 새를 무더기로,

자그마치 299점을!! 트렁크 하나에 실어 기차를 타고 달아났다는군요.

소설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셨나요?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실화입니다.

2009년 6월 24일 밤 범인이 실행하고 2009년 7월 28일 박물관측에서 도난 사실을 파악했죠.

영국 경찰이 곧장 수사에 착수했으나 서투르게 남긴 흔적이 무색하게 사건은 지지부진.

그러다 꼬박 1년이 지난 2010년 11월 12일 아침에서야 범인을 체포합니다.

영국 왕립 음악원에 재학 중인 미국인 유학생 에드윈 리스트를 말이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범죄소설이 아닙니다.

혹시나 범인의 이름을 벌써 밝히다니 스포 아니냐며 분기탱천할 독자가 있을까봐 짚고 가요.

깃털도둑은 기자인 커크 월리스 존슨이 에드원 리스트의 범죄를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마치 "사건 25시"나 "경찰청 사람들" 같은 느낌이랄까요.

차이점이 있다면 커크가 사건을 구성해나가는 시간의 영역이 몇 시간, 며칠, 몇 년 정도가 아니라는 거?

2009년으로부터도 200년을 훌쩍 뛰어넘는 아주아주 옛날로부터 이야기를 진행시키거든요.

극락조와 케찰, 집까마귀, 푸른 체터러 등의 새들이 어떻게 트링박물관이 오게 되었는지,

에드윈이 훔친 299점의 새들이 살아생전엔 어느 하늘 아래를 날고 있었는지,

누가 새들을 잡았고, 얼마나 많은 새들이 잡혔고, 어떻게 소비되고, 또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렇게 우리 손에 남은 표본에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앞으로 남은 의미가 무엇인지를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진화론이 등장한 시점까지 올라가 설명을 해요.

찰스 다윈과 그에게 좀 묻힌 감이 있지만 동시대에 진화론을 발견한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까지요.

트링박물관의 새 얘기가 끝난 후엔 에드윈 리스트가 어째서 새들을 훔쳤고 누구와 새들을 공유하고

또한 어떻게 12개월 집행유예로 풀려나 여전히 새들을 감추고 있는지까지 얘기하지만

이 부분은 화가 나서 더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아요.

전반부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 소설적 분위기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독특한 사건, 독특한 진행, 독특한 결말로 톡톡한 재미를 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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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보는 남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
김경욱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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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검색한다. 에드워드 호퍼풍으로 마주 앉은 남녀의 모습이 궁금해서. 남편을 잃은 여자와 그 남편의 얼굴로 안면인식수술을 받은 남자의 대면을 그림처럼 떠올리고 싶어서. 서로에게 건내어야 할 진실이 무엇일지 막연히 짐작하면서. 내가 생각한 건 기껏 같은 얼굴을 사랑하게 된 여자의 혼란과 그 사실을 몰랐던 남자의 분노 정도였는데. 독자를 따돌리고 멀찍이 달아난 여자와 남자는 짐작과 조금 비슷하지만 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편의 첫 기일, 여자는 공원 묘지를 다녀왔다. 남편의 무덤 자리에 심어져있던 제라늄 생화. 의미를 알게 된 건 꽤 시간이 지나서였다. "당신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내 생각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말아줘요" 가족은 아니다, 여자 본인도 아니다, 그럼 이 꽃을 남편의 무덤에 심은 이는 누구일까? 상투적이다, 남편은 바람을 폈고, 아내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묘지에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그 남자를 보았다. 남편과 쌍둥이처럼 닮은 얼굴을. 첫 눈에 알아본 내 남편의 얼굴로 수술한 남자. 수술 동의서에 사인한 것은 여자였다. 막연함의 실체를 눈 앞에서 직면한 혼란이 아니었더라도 그 얼굴은 죽음을 극복한 기적처럼 착각되지 않았을까. 스토커처럼 남자가 일하는 미용실까지 쫓아간 여자의 행위를 변명해본다. 미용사인 남자의 손에 긴 머리를 짧게 치고 한 개, 두 개 , 열 개 동그라미 쿠폰을 채워나갈만큼의 만남을 가지는 동안 여자는 점점 남편의 죽음이 궁금해진다. 더하여 남자의 얼굴도 궁금해진다. 왜 하필이면 내 남편이었을까? 왜 하필이면 내 남편의 얼굴이었을까? 여자가 알고자 하는 답은 누구에게 있을까? 남자가 알려줘야 할 진실 앞에서 창문을 넘어다보는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핀 시리즈가 취향이 아니라 그만 읽으려구요.. 라고 댓글 달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오늘 만난 핀 시리즈가 또 취향이라 내가 한 말 번복한다. 취향인 것 같아 남은 시리즈 마저 읽으려구요.. 라고. 사랑이 여지없이 실패하는 이야기다. 실패를 알고도 남녀가 나란히 앉았던 시간, 마주앉는 시간을 말하는 이야기다. 처음엔 정체불명이었지만 나중엔 계속해 정체불명으로 헤매고 싶었던 이야기기도 하고.

덧. 이건 나만의 반전인데 김경욱 작가의 성별을 착각했다. 이름과는 상관없이 글이 주는 느낌이 섬세하고 가느다랗고 조심스러워서. 웃을 때는 입을 가리고 걸을 때는 구둣발 신은 태 하나 내지 않게 얌전하고 자판을 두드려도 톡, 톡톡, 한 글자 한 글자가 조심스럽게 모니터 위에 떠올를 것 같았는데. 해골 머리에 꽃이 핀대도 이보다 덜 놀랠 것 같아. 아이쿠 ㅋㅋ (신인 작가도 아닌데 김경욱을 몰랐다고? 너 책 좀 읽는 거 맞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쓰신 책이 많던데 어쩜 한 권도 읽은 게 없을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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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이훤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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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입장을 사진으로 읽는 것, 시 아닌 형식이지만 시에 가까운 이야기"

"하나의 입장을 골똘이 들여다 볼 것"

작가 이훤이 독자에게 당부하는 말을 마주하며 나는 조금 겁먹어 버렸다.

작가가 걱정한대로 나는 통상적인 산문집, 여행 에세이 등을 생각하며 책을 잡았던 탓이다.

취향에 따라 사진이 많고 글밥이 적은 글이 읽기에 더 편하다는 독자도 있지만

상상력이 부족한 나 같은 독자는 작가의 도움이 적은 혼자만의 감상에 애를 먹기도 한다.

다급히 넘어가는 페이지의 속도로 재미의 수치를 가늠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가급적 오래 들여다보려 애썼다.

 

 

1. 우산살 : 지탱하는 일을 마다 않는 이가 끝내 견고한 품을 갖게 되는 비밀(p87)

명사 사람이나 동물의 뼈를 싸서 몸을 이루는 부드러운 부분.

명사 창문이나 연(鳶), 부채, 바퀴 따위의 뼈대가 되는 부분.

우산살이라는 단어를 평생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가 이 사진을 보며 이상하다 싶었다.

왜 우산뼈가 아니라 우산살일까.

네이버 국어사전을 검색해 보니 뼈도 살이고 살도 살이고.

어원은 찾지 못했지만 살이라는 단어가 참 재밌있다.

우산살을 보며 견고한 품을 이야기하는 시인은 더 재미있고.

 

 

 

2. 나무의 살 : 살을 다 잃어버린 날 / 그리고 다시 돌아온 날/ 피부가 익어가는 계절 / 단단해지는 뼈 (p127-131)

책 속에 등장한 또다른 살, 나무의 이파리, 앙상한 가지가 그러고보니 살이 쏘옥 빠진 모양새다.

다이어트 중인 나는 겨울나무처럼 마르고 싶은데 살 오른 나무의 초록은 왜 이리도 예쁜지.

나도 초록이면 예뻤을까.

 

           3. 문 : 입구가 여럿인 마음이 질문 몇 개가 열리고 닫히길 반복하고 (p271)

"납작한 표정 납작한 생활 영영 한 사람의 모서리가 된 사물들

사연이 되기엔 너무 많거나 흔한 마음 끝내 없고 마는 사건

저녁이 되면 단어를 기다리는 사람들

단어를 기다리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들"

(p268)

책의 문으로 들어가 내 마음의 문도 함께 여는 시간이었다.

내 집 안팎에서 매일 같이 마주치는 운동화, 세탁기, 우산, 초록이, 사과, 물, 문, 옷걸이와 세탁물에 이르기까지.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언어를 찾아내는 시인을 보니 이야기거리가 없는 삶이라 떠든 내가 좀 부끄러워진다.

시인을 닮고 싶어 시인의 안에서 헤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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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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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목표 중에 하나가 일기쓰기였다. 물론 대대적으로 실패했다. 게을러서 안쓴 것도 맞는데 일기장에 대고 할 이야기가 없었다. 나는 만족하지만 객관적으로 내 삶이 지루한 건 틀림이 없어서 일기장도 딱히 궁금하진 않았을거다. 내가 볼펜을 들 때마다 때 탈까봐 외려 두려움에 떨지 않았을까?... 하고 일기장 위하는 척을 해본다. 어쨌든 일기를 쓰는 사람, 매일에 나눌 이야기 많은 사람, 삶의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활자로 정리의 시간을 가지는 사람의 존재가 신기하다. 스물 초반의 일기장을 고스란히 독자의 품에 안겨주는 시인의 존재는 더욱이나 색다르고. 즐겁거나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비참하거나 어쨌든 스물 남짓의 시간은 속내를 톡 까발려 남들에게 내보이기엔 조금 쑥스럽고 부끄러운 시기이니까. 

 

"나는 결혼은 못해도 이혼은 잘하지 않을까?"(p73) 서른 전에 이혼하고 싶다는 그녀는 실은 미혼이다. 결혼한 적도 없으면서 이혼은 잘할 것 같단 말에 그녀를 인터뷰한 기자처럼 나도 웃고 말았다. 책상 밑에 저장해둔 일기장을 훔쳐보려한 남자, 베란다에 양다리 걸친 다른 여자의 선물을 보관한 남자,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는 무기력한 남자ㅡ그러나 자주 가던 카페의 여주인에게 애인이 아끼는 세계문학전집을 선물하기도 한 남자, 애인에게 소시오패스라며 욕하며 떠나간 남자, 등등등. 그 남자들과의 이별을 들여다보며 나는 왜 열손가락 넘어가는 연애를 못했나 왠지 좀 부럽기도 하고;;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노래한 하림보다 이별을 다른 이별로 잊노라는 문보영의 말에 비식 또 웃음도 났다. 어째 요즘은 사랑이 이별보다 더 어렵게 느껴져서. 이별마저 그립기도 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두렵겠지. 인생이 다시 망할지도 모르니까."(p25) 내 마음 속 과녁을 찌르고 들어온 말 앞에선 썩은 웃음도 한번 터트려보고. 타인을 갈망하는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닌데 도무지 시작할 엄두를 못내는 이유, 콕 찝어 주니 차라리 시원하다.

 

92년생의 시인은 2016년 중앙일보로 등단했다. 꼭 일년 만에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의 여린 마음이 아니더라도 사회로 내딛는 발걸음은 마냥 어렵다. 시인이기에 또한 더 어렵기도 했을 것이다. 우울증이 오고 정신과약을 처방받고 문학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상황들. 그녀의 등단작 제목처럼 <막판이 된다는 것>, 시 수업을 듣는 그녀의 수강생 중 한 명은 "막장이 된다는 것"으로 기억한 것과 같이 바닥으로 꼴아박는 심정으로 써내려갔을 글, 에피소드에 내가 함께 위로 받는다. "나에게 일기는 사실을 기록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장르게 구애받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글쓰기"(p9)라는 말이 책머리에 달려있지만 읽다 보면 사실의 유무는 별 의미없이 느껴진다. 일기여도 소설이여도 아무 상관없이 좋았다.

 

 

 

추신) 문보영 시인의 독서 에세이집을 만나고 싶다. 책 중간중간에 독자와 만난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요청에 따라 추천한 책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그게 또 한 매력한다. 시인의 취향이 나와는 정 반대라 해리포터 말고는 아는 책이 하나도 없었던 것도 한 몫하고. 출판사 보고 있나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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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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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독이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친 일이 없는 새로 뽑은 독." 조몽구가 읊조리는 김영랑의 시가 병실에 누운 "나"를 깨웠다. 호흡곤란, 요실금, 탈수, 구토, 혈압저하, 코마의 위험에 빠져있던 "나"였다. 나의 위에서 보툴리누스 균과 프토마인 균이 발견됐다. 식중독 균이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상한 음식을 섭취했다. 씹고 삼키고 소화시켰다. 맛을 음미했다. 밋밋한 맛, 쌉쌀한 맛, 쓴 맛. 검고 푸르고 붉은 생김새대로의 맛. 그 미묘한 맛을 기억하는 "나"의 혀 위로 조몽구의 이야기가 내려앉았다. "태어날 때부터 독을 몸에 지니게 되고,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그 독을 더욱 키우고, 그 독을 약으로 사용하고, 그러다가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게 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p27)가 말이다.

조몽구는 선천적으로 병을 안고 태어난다. 기억도 안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두통이다. 강간으로 태어난 자식을 끔찍히 돌보는 어머니의 모성에도 조몽구의 출처없는 이 병세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막연히 독을 의심할 뿐이다. 조몽구의 삶은 이 두통에 저항하고 포기하고 적응하고 해독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 있었는데 때마다 새롭게 독을 품은 인간들이 그의 곁을 스쳐간다. 조몽구의 모체에 독을 전파한 조영로. 해방이 된 바람에 친일부역은 무산됐으나 일본을 찬양하는 글을 쓴 이 남자는 이 후로도 당대의 권력에 기생하는 글을 쓰며 세상에 독을 퍼트린다. 남편의 기회주의적인 행위에 환멸을 느끼는 아내 운선, 독은 악이요 어둠이요 병이니 그 독을 누르기 위해 스스로 독이 되고자 한다. 같은 반 학우 자경, 몽구와 마찬가지로 미숙아로 태어났다. 인큐베이터에서 산소 과잉으로 인한 독에 노출되었고 독을 통해 습관적으로 자해한다. 수호, 독의 강력한 힘에 매혹 당한 몽구의 작은 아버지다. 너절한 삶에 매몰되지 않는 각성의 에너지를 독을 먹는 행위로 빌어온다. 그 밖으로 군대에서 증오라는 독을 품게 된 용한, 독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광수, 독 때문에 기억을 상실한 소화, 남자로 태어나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을 기형아라고 생각해 환각제를 마시는 정우, 술이라는 독으로 딸을 잃은 간호사 영지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변에서 결코 만나본 적 없는 완벽히 소설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중독시킨 독까지 낯설다고 말할 수 없다. 가치관, 가족, 대인관계, 물, 술, 약, 산소, 화장품, 세제, 우리가 먹고 입고 소비하는 모든 것, 우리가 말하고 내뿜고 싸고 만들고 약탈하는 모든 것. 친숙한 또 익숙한 독극물이 독자의 마음에 경고음을 날린다. 그러나 도통 유해하지 않은 환경과 유해하지 않은 관계와 유해하지 않은 마음이라는 건 또 뭘까. 몽구처럼 두통이 일어날 듯한 착각에 이마를 더듬으며 경고음을 부신다. 이런 생각도 독 같아, 더는 생각하지 말아야지.

작가 최수철도 일찍이 성서를 빌어 단편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멜랑콜리 해피엔딩, 작가정신, p289) 또한 김영랑의 시를 빌어 소설의 시작에서 짐짓 이르기도 했던 것이다. "산 채로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고 할퀴도록 내맡겨진 나의 신세.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이 세상 마지막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조몽구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그 사이 "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다시금 독을 견디며 살아갈테지. 한송이 독의 꽃으로 피고지기를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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