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올초 목표 중에 하나가 일기쓰기였다. 물론 대대적으로 실패했다. 게을러서 안쓴 것도 맞는데 일기장에 대고 할 이야기가 없었다. 나는 만족하지만 객관적으로 내 삶이 지루한 건 틀림이 없어서 일기장도 딱히 궁금하진 않았을거다. 내가 볼펜을 들 때마다 때 탈까봐 외려 두려움에 떨지 않았을까?... 하고 일기장 위하는 척을 해본다. 어쨌든 일기를 쓰는 사람, 매일에 나눌 이야기 많은 사람, 삶의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활자로 정리의 시간을 가지는 사람의 존재가 신기하다. 스물 초반의 일기장을 고스란히 독자의 품에 안겨주는 시인의 존재는 더욱이나 색다르고. 즐겁거나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비참하거나 어쨌든 스물 남짓의 시간은 속내를 톡 까발려 남들에게 내보이기엔 조금 쑥스럽고 부끄러운 시기이니까. 

 

"나는 결혼은 못해도 이혼은 잘하지 않을까?"(p73) 서른 전에 이혼하고 싶다는 그녀는 실은 미혼이다. 결혼한 적도 없으면서 이혼은 잘할 것 같단 말에 그녀를 인터뷰한 기자처럼 나도 웃고 말았다. 책상 밑에 저장해둔 일기장을 훔쳐보려한 남자, 베란다에 양다리 걸친 다른 여자의 선물을 보관한 남자,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는 무기력한 남자ㅡ그러나 자주 가던 카페의 여주인에게 애인이 아끼는 세계문학전집을 선물하기도 한 남자, 애인에게 소시오패스라며 욕하며 떠나간 남자, 등등등. 그 남자들과의 이별을 들여다보며 나는 왜 열손가락 넘어가는 연애를 못했나 왠지 좀 부럽기도 하고;;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노래한 하림보다 이별을 다른 이별로 잊노라는 문보영의 말에 비식 또 웃음도 났다. 어째 요즘은 사랑이 이별보다 더 어렵게 느껴져서. 이별마저 그립기도 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두렵겠지. 인생이 다시 망할지도 모르니까."(p25) 내 마음 속 과녁을 찌르고 들어온 말 앞에선 썩은 웃음도 한번 터트려보고. 타인을 갈망하는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닌데 도무지 시작할 엄두를 못내는 이유, 콕 찝어 주니 차라리 시원하다.

 

92년생의 시인은 2016년 중앙일보로 등단했다. 꼭 일년 만에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의 여린 마음이 아니더라도 사회로 내딛는 발걸음은 마냥 어렵다. 시인이기에 또한 더 어렵기도 했을 것이다. 우울증이 오고 정신과약을 처방받고 문학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상황들. 그녀의 등단작 제목처럼 <막판이 된다는 것>, 시 수업을 듣는 그녀의 수강생 중 한 명은 "막장이 된다는 것"으로 기억한 것과 같이 바닥으로 꼴아박는 심정으로 써내려갔을 글, 에피소드에 내가 함께 위로 받는다. "나에게 일기는 사실을 기록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장르게 구애받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글쓰기"(p9)라는 말이 책머리에 달려있지만 읽다 보면 사실의 유무는 별 의미없이 느껴진다. 일기여도 소설이여도 아무 상관없이 좋았다.

 

 

 

추신) 문보영 시인의 독서 에세이집을 만나고 싶다. 책 중간중간에 독자와 만난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요청에 따라 추천한 책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그게 또 한 매력한다. 시인의 취향이 나와는 정 반대라 해리포터 말고는 아는 책이 하나도 없었던 것도 한 몫하고. 출판사 보고 있나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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