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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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독이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친 일이 없는 새로 뽑은 독." 조몽구가 읊조리는 김영랑의 시가 병실에 누운 "나"를 깨웠다. 호흡곤란, 요실금, 탈수, 구토, 혈압저하, 코마의 위험에 빠져있던 "나"였다. 나의 위에서 보툴리누스 균과 프토마인 균이 발견됐다. 식중독 균이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상한 음식을 섭취했다. 씹고 삼키고 소화시켰다. 맛을 음미했다. 밋밋한 맛, 쌉쌀한 맛, 쓴 맛. 검고 푸르고 붉은 생김새대로의 맛. 그 미묘한 맛을 기억하는 "나"의 혀 위로 조몽구의 이야기가 내려앉았다. "태어날 때부터 독을 몸에 지니게 되고,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그 독을 더욱 키우고, 그 독을 약으로 사용하고, 그러다가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게 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p27)가 말이다.

조몽구는 선천적으로 병을 안고 태어난다. 기억도 안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두통이다. 강간으로 태어난 자식을 끔찍히 돌보는 어머니의 모성에도 조몽구의 출처없는 이 병세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막연히 독을 의심할 뿐이다. 조몽구의 삶은 이 두통에 저항하고 포기하고 적응하고 해독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 있었는데 때마다 새롭게 독을 품은 인간들이 그의 곁을 스쳐간다. 조몽구의 모체에 독을 전파한 조영로. 해방이 된 바람에 친일부역은 무산됐으나 일본을 찬양하는 글을 쓴 이 남자는 이 후로도 당대의 권력에 기생하는 글을 쓰며 세상에 독을 퍼트린다. 남편의 기회주의적인 행위에 환멸을 느끼는 아내 운선, 독은 악이요 어둠이요 병이니 그 독을 누르기 위해 스스로 독이 되고자 한다. 같은 반 학우 자경, 몽구와 마찬가지로 미숙아로 태어났다. 인큐베이터에서 산소 과잉으로 인한 독에 노출되었고 독을 통해 습관적으로 자해한다. 수호, 독의 강력한 힘에 매혹 당한 몽구의 작은 아버지다. 너절한 삶에 매몰되지 않는 각성의 에너지를 독을 먹는 행위로 빌어온다. 그 밖으로 군대에서 증오라는 독을 품게 된 용한, 독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광수, 독 때문에 기억을 상실한 소화, 남자로 태어나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을 기형아라고 생각해 환각제를 마시는 정우, 술이라는 독으로 딸을 잃은 간호사 영지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변에서 결코 만나본 적 없는 완벽히 소설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중독시킨 독까지 낯설다고 말할 수 없다. 가치관, 가족, 대인관계, 물, 술, 약, 산소, 화장품, 세제, 우리가 먹고 입고 소비하는 모든 것, 우리가 말하고 내뿜고 싸고 만들고 약탈하는 모든 것. 친숙한 또 익숙한 독극물이 독자의 마음에 경고음을 날린다. 그러나 도통 유해하지 않은 환경과 유해하지 않은 관계와 유해하지 않은 마음이라는 건 또 뭘까. 몽구처럼 두통이 일어날 듯한 착각에 이마를 더듬으며 경고음을 부신다. 이런 생각도 독 같아, 더는 생각하지 말아야지.

작가 최수철도 일찍이 성서를 빌어 단편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멜랑콜리 해피엔딩, 작가정신, p289) 또한 김영랑의 시를 빌어 소설의 시작에서 짐짓 이르기도 했던 것이다. "산 채로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고 할퀴도록 내맡겨진 나의 신세.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이 세상 마지막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조몽구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그 사이 "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다시금 독을 견디며 살아갈테지. 한송이 독의 꽃으로 피고지기를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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