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생각 - 정의에서 민주주의까지
애덤 스위프트 지음, 김비환 옮김 / 개마고원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만큼 이 사회는 정의에 목말라 있거나, 정치철학과 같은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이 많아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는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일종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있는 느낌도 강하다) 그것을 필두로 하여 그 뒤로 정치철학 관련 책들이 제법 출간되고 있다. 정치철학은 이제 정치가와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종의 인문학적 지식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애덤 스위프트의 <정치의 생각(원제 Political Philosophy)> 은 그러한 정치철학에 관한 입문서로, 정의와 자유, 평등과 공동체, 그리고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사회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들에 대해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1부에서는 사회 정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만 읽으면 샌델의 책을 읽을 때와 약간 비슷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샌델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를 주요한 테마로 다룬 반면 이 책은 정치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러 개념들에 대해 각각의 장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곧 사라지게 되었다. 사회 정의가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가 된 배경과 함께, 하이에크, 롤스, 노직의 사회 정의에 대한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 정의라는 관념 자체를 부정하는 하이에크의 입장에 대하여, 저자는 불평등한 상황 혹은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비록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결과를 낳은 정치적 행위에 따른 책임의 문제는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또한 다른 책에서도 자주 접했던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에 기반을 둔 롤스의 '공정으로부터의 정의'와 그 한계를 설명하며 롤스와 가장 빈번하게 대비되는 노직의 '자기 소유권적 개념'에 기초한 정의론을 권리로서의 정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여담이지만 내게 있어서 노직의 정의론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상당히 냉혹한 것으로 느껴졌다.  

2부에서는 자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사야 벌린이 구분한 '~으로부터의 자유'인 소극적 자유와 '~할 자유'인 적극적 자유의 이분법적 구분에 대해 저자는 그 둘 사이에는 궁극적인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구분을 극복해야만 자유에 대한 관념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벌린이 적극적 자유의 개념을 전체주의적이며 위험한 것으로 본 반면 저자는 '자율성으로서의 자유'라는 가치를 보호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자유의 개념에 호소하는 많은 정치적 논쟁들은 재산과 재분배와 관련된 문제들에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우파는 재분배를 위한 과세가 재산을 가진 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좌파는 재분배가 대다수 사람들의 실질적 자유를 더 증진시키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라 말한다.  

3부는 평등에 대한 부분으로, 저자는 평등이라는 가치의 곤혹스러운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자유가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받는 반면, 평등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주장으로 취급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 정치철학은 평등을 전제로 하여 진행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천적 차원에서 평등이 배척되는 것은 분배의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이며, 정치철학에서의 평등의 의미는 '모든 시민들의 행복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역시 같은 개념이라도 때로는 관점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달라진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는 부분이다. 평등에 대한 이러한 복잡성은 정치인들이 평등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기를 꺼리게 한다. 정치인들이 재분배정책들에 대한 옹호가 분배적 평등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생활수준의 개선이 가장 시급한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시켜주는 것과 완벽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흐뭇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아주 강력히 동감한다. '젠장, 누가 부자들 것 다 뺏어서 똑같이 나눠주자고 했나? 단지 가장 가난한 이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이라도 하게 해 달라는 것 아니야!' 이런 생각을 평소에 항상 하고 있는 나는 꽤 불온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4부에서는 샌델의 책에서도 등장한, 공동체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공동체주의 전반에 대해 비판하며, 공동체주의자들이 자유주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지적한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공동의 관계, 공유된 가치, 공동의 정체의식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저자는 자유주의적인 정의 자체가 하나의 공동선이라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적 가치 자체가 개인의 권리를 진술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공동선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지역 공동체나 다른 정체성(계층, 종교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행위가 분열적이고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지역감정이나 종교분쟁, 인종간의 갈등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샌델은 저자의 글을 '명석하며 공정하고 유려하다'고 평가했지만, 아무래도 이 챕터에서 저자는 샌델을 한 방 먹인 것 같은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현대 정치철학이 좀 더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인 민주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절차일 뿐인데,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일종의 정치적인 만병통치약으로써 사용되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민주주의는 무해하고 순수한 것이며 정의, 자유, 평등 등의 다른 개념들과는 달리 논쟁할 필요가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지닌 가치들을 진정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민주주의에는 왜 가치가 있는지 등을 생각하면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지극히 까다로운 과제를 부여한다. 민주적 가치들은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들은 더 많은 가치들 중 일부 가치들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 적어도 우리는 어떤 것을 판단하기 전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떤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치인들의 모호하고 불명확한 말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정치적 개념들에 대해 정확하고 명료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정치적 개념들을 논할 때 발생하는 이슈들을 설명하고 명료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이 어떻게 들리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지 주장의 실질적인 내용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개념의 엄밀한 사용이나 도덕적 책임은 표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달콤해 보이는 공약 따위를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발등 찍힌다는 이야기다. 가까운 예로 '반값 등록금' 공약이 그렇다. 이 말은 납부해야 하는 등록금을 반으로 줄인다는 말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말은 '심리적 반값'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로 등록금의 부담이 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느낄만큼 경제적으로 윤택해졌는가? 물가는 계속 오르고, 생활은 팍팍해져 가는 것이 현실 아닌가? '반값 등록금'보다 차라리 모 대형마트에서 내건 '통큰XX'이라는 이름이 훨씬 정직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래저래 정치 관련 책은 읽으면서 마음이 착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망할 놈의 사기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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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12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5장에 대한 얘기를 듣고 '반값등록금'에 대한 정치인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추측할 수 있었어요. '정치'라고 하는 것은 항상 알고 싶고 도대체 무엇일까라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이 공부를 어디서부터 해 봐야 되는지? 뭘 봐야 하는지부터 막힌다고 할까요? 특히나 선거 때는 쏟아지는 후보들 속에서 어떻게 투표의 길잡이를 잡아야할지도 막막하다고 많이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는 않고 투표장에 가요. ^^
휴..쿄고쿠도님은 세심한 독서력에 감탄을 절로 하고 갑니다. 네이버의 본거지에 좀 자주 놀러가야 하는데 알라딘에서만 자꾸 들려서 죄송하네요.
책을 좀 사고 싶어서 좋은 책이 없을까해서 쿄고쿠도님의 서재에서 계속 놀고 있어요. ㅋ

교고쿠 2011-06-12 20:43   좋아요 0 | URL
예,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저도 정치적인 내용들은 잘 모르지만서도, 가장 작은 자들을 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알라딘 신간평가단의 다른 분들 보면 글빨이 장난 아닌데 제 글은 투박하고 솜씨 없는 편이지요, 흑.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