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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평점 :
다카노 에쓰코의 <20세의 원점>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몇십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봐도 세상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듯 하다. 그때 유럽에서는 68혁명이 일어났으며 일본에서는 전공투가 한창이었다. 당시의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굉장히 깊은 사유와 성찰을 했고 자신의 사상이 확고했다. 그 당시에 불의에 항거하며 수업과 시험을 보이콧했던 학생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토익책과 공무원 수험서를 들고 도서관에 틀어박힌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탓할 것인가. 팍팍하기 짝이 없는 현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장 먹고 사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게 한다. 오연호와 조국의 <진보집권플랜>을 읽으며, 68혁명을 주도한 지식인들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7개월 동안 나눈 심층 대담을 정리하여 펴낸 이 책은,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보가 집권해야 하는 이유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조국 교수는 진보의 가치를 이렇게 말한다. "대중의 고통이 어디에 있고, 그 고통을 풀려먼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지,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조직,세력을 대중의 눈앞에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진보가 밥 먹여준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이다. 대중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까 하는 궁리만 하는 보수 정치인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 조국 교수도 '강남 좌파'라는 비난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대 나오고 미국 유학을 하면 권력과 돈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는 반문한다. 지식인으로서, 가진 자의 자유만 중시하는 천민자본주의와 같은 상황을 직시하면 진보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다고 또한 그는 말한다. 아주 속이 시원하지 않을 수 없다. 브라보!
또한 지나친 경쟁과 OECD국가중 가장 긴 노동시간, 청년실업, 대기업의 세습경영 등을 그는 비판한다. 고용의 유연성만 강조하고 안정성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이는 OECE에서도 걱정할 정도다. 비정규직 차별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을 어기는 것이고, 법철학적으로 보더라도 정의의 원칙에 반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김예슬 선언을 언급하며 교육의 문제점 역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더 이상 학문의 요람이 아닌, 취업만을 위한 곳이 되어버린 대학과 주 목적인 외국어 공부보다 명문대 진학의 통로로 변질된 외고를 비판하며 어느 정도는 affirmative action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는 마이클 샌델의 책에서도 등장했던 개념이다.) 예전에는 가난한 집의 자녀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서울 지역 대학에 강남 출신 학생의 비율이 높아졌고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지방 출신, 혹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은 이미 출발선부터가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이미 자신의 위치가 고착되어 버리는 것은 신분제 사회와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천안함, 연평도 사태로 인하여 들끓고 있는 남북문제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검찰의 권력에 대해서도 그는 이야기한다.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민족주의적 측면을 넘어선 접근이 필요하고, 이는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민족의식이 희박한 편인 나로서는 역시 크게 공감한 부분이다. 또한 검찰을 개혁해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필수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력형 부패,범죄를 단호하게 수사하기 위해서, 또 검찰이 독점하는 기소권을 분할하고 수사권은 경찰과 나눠 갖게 해서 검찰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참 흥미로운 부분은, 마지막 장에서 유시민, 정동영, 송영길, 노회찬 등의 진보 정치인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그들에 대한 일종의 평가를 제시한 점이다. 진보 정권이 대중의 열기를 제대로 담아내려면, 현재 난립해 있는 정당들의 '소통합'이 필요하다며 그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도 꽤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이다. 항상 선거 때마다 아쉬웠던 것이 진보 후보들의 표가 갈라져서 승산이 없었던 것인데 스위스에서 네 개의 정당이 연합해서 공동정부를 구성한 것처럼 진보 진영도 꼭 하나로 합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인 것처럼 연대해서 힘을 키우고 다져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읽으면서 정말로 속이 시원한 부분이 많았다. 또한 진보를 무조건 찬양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진보 진영이 왜 집권하지 못했으며 어떤 문제점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점 역시 바람직하게 여겨졌다. 내가 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보수와 달리 그들은 민중의 고통을 알고 덜어주려 노력하기 때문인데, 오연호 기자와 조국 교수의 대담을 읽으며 그러한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들과 동시대를 살아온 386세대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 불안한 미래에 시달리는 2,30대에게 손을 내미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과, 또한 나 자신부터 민중의 고통을 알고 항상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고 싶다는 생각을 새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