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인류 역사상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와 반동(reaction :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려는 것을 막는 것)주의자의 싸움은 여러가지 형태로 지속되어 왔다. 18세기에 프랑스혁명이 성공하고, 19세기에 보통선거권이 도입되고(재산이나 성별에 따른 제한이 없어지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세기에 많은 복지국가들이 수립되기까지 이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동의 논리가 반복되어 왔다.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은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진보를 언제나 방해하고 좌절시켜 왔고, 그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소통을 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두지만, 진보와 보수 사이의 소통은 여전히 요원하다. 서로 전혀 말이 통하지 않고, 마치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듯 하다. 앨버트 O.허시먼은 이 책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원제 The Rhetoric of Reaction)>에서 이러한 반동주의자들의 수사학이 지닌 정형화된 패턴을 밝혀내고 그 실체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의 세 가지 논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번째로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라는, 역효과 명제가 있다. 프랑스 혁명이 오히려 유럽의 상당 부분을 야만과 노예 상태로 되돌렸다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주장이나, 보통선거권을 반대하며 군중은 생각하는데에 전혀 소질이 없고 행동에만 몰두한다는 귀스타브 르봉의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좀더 가까운 예를 들면, 복지를 확충하면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 늘어나고 국가재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보수 정치인들의 주장이 있다. 그들이 꽤 자주 사용하는 논리다. 두번째로는 '그래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는, 무용 명제가 있다. 토크빌은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책에서, 프랑스혁명은 구체제와 단절된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분석을 받아들이면 프랑스혁명의 거대한 투쟁과 격변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20:80의 법칙'의 파레토 역시 보통선거권이 주어진 뒤에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 여담이지만 그는 사회주의를 혐오하는, 골수 보수주의자였다. 가까운 예로, "투표를 하나 안하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누구를 뽑으나 결과는 다 똑같다"는 말 역시 역효과 명제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명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노예가 되는지, 그저 통탄할 노릇이다. 또한 부도덕한 기업의 상품을 불매해봤자 어차피 쓸 사람들은 다 쓰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는 말 역시 역효과 명제로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세번째로는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무너질 것이다'라는, 위험 명제가 있다. 어쩌면 가장 잘 먹힐지도 모르는 논리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위험한다, 혹은 복지국가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등의 주장이 실제로 제기되었고, 이는 일종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영국에서는 1832년과 1867년 투표권 확대 등을 골자로 한 대개혁법안이 통과되자, 로버트 로는 연설에서 이 법안은 영국의 행복과 번영을 파괴할 것이라고 외쳤다. 독일에서는 하이에크가 <노예의 길>이라는 책을 통해, 정부가 특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독점적 권한을 가지게 될 때 자유가 치명적으로 위협받는다고 주장하며 사회보장에 대해 비난했다. 가까운 예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도 같이 무너진다는 주장이나 무상급식을 추진하면 나라 망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정치인들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보수의 레토릭을 비판하면서 진보의 레토릭 역시 비판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레토릭은 비타협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비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닌, 극단적이고 비타협적인 자세에서 벗어난 좀 더 민주주의 친화적인 논의를 그는 제시하고 있다. 치열하게 싸워온 적대 집단들 사이의 균형에서 다원적 민주주의가 성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피터지게 싸우던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그런 건설적인 토론을 주고받는 모드가 될 리가 없다는 점이 참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며, 서문에 언급되었던 어떤 소설의 인용 부분처럼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지?" 라는 말을 수없이 한 것 같다. (마치 조지 레이코프의 <도덕, 정치를 말하다>를 읽었을 때의 반응과 같다). 보수주의자들의 행태에 극심한 분노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보수주의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집단이든 진보와 보수가 모두 있어야 건강한 집단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성향의 집단 안에도 극보수(혹은 극우)인 구성원과 약간 진보에 가까운 구성원이 공존하고 있고, 진보성향의 집단 안에도 극좌파인 구성원과 약간 보수에 가까운 구성원이 있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서로 물고 뜯을 궁리만 할게 아니라, 건전한 보수 혹은 진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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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2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으려고 하는데,, 구입할까 고민중이에요, 조국의 책도 가지고 있는데
이욍에 보수에 관한 책 한 권 살까 생각중입니다 ^^

교고쿠 2011-01-26 16:39   좋아요 0 | URL
이 책도 괜찮고, 조지 레이코프의 <도덕, 정치를 말하다> 역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 중립적인 관점에서 비교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레이코프의 책은 주로 미국의 진보와 보수를 다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