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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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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초에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다. 그 책에서 오웰은 직접 경험한 실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당시 영국의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삶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또한 그가 굉장히 사회참여적인 작가라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 동안에 오웰의 에세이는 대부분이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판본이 없었는데, 이번에 한겨레출판사에서 <나는 왜 쓰는가>라는 이름으로 수백 편에 달하는 에세이와 칼럼 중에서 가장 뛰어나면서도 중요한 29편을 묶어서 출간함으로써 한국어로 그의 여러 에세이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구성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웰이 글을 써서 발표한 시기에 맞춰 순차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자전적인 소설처럼 읽히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시대상을 반영하는 논평과 같은 글들도 있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스파이크 The Spike'는 오웰의 부랑자 생활 경험을 묘사한 글이다. 부랑자 임시 숙소를 스파이크(Spike)라 하는데, 더러운데다가 난방도 제대로 안 되어 춥고 식사는 아주 형편없는 곳이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서로 나누는 일종의 정이 살아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인 평론보다 이러한 자전적인 경험담들을 더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더 잘 읽히고, 또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인듯 하다. 사실 오웰은 이튼 스쿨을 졸업하고 식민지에서 경찰 생활을 했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보통 이튼 스쿨을 나오면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는데, 그는 진학을 포기하고 식민지의 현실을 알기 위해서 경찰에 지원해서 버마에서 생활하면서 제국의 식민 통치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신에 대한 환멸을 맛보는 체험을 한다. 이는 에세이 '교수형 A Hanging'과 '코끼리를 쏘다 Shooting an Elephant'에서 잘 드러나 있다. 압제의 일원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경찰직을 그만두고 나서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빈민가에서 밑바닥 인생을 체험한다. 이는 위에 언급한 에세이 '스파이크'와 그의 첫 책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바탕이 된다. 충분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버리고, 부랑자나 빈민과 같은 생활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항상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좋은 것을 누려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극심한 빈곤에 직면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나의 청빈은 말뿐인 것이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 부분이다.

그 뒤 영국으로 돌아온 오웰은 정기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진보단체 '레프트 북클럽'에서 의뢰를 받아 탄광지대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조사하고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쓴다. 그리고 나서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페인 전장으로 달려간다.(극우적인 파시즘에 저항한 것에 굉장히 그에게 호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때부터 오웰은 보다 정치적인 작가로 거듭나게 되었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1936년 이후로 자신이 쓴 모든 글들은 직간접적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정치적인 평론들을 쓰기 시작하여,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Spilling the Spanish Beans',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Why I Joined the Independent Labour Party', '좌든 우든 나의 조국 My country Right or Left', '영국, 당신의 영국 England Your England' 등의 글들을 남긴다. 이러한 평론들은 아무래도 그 당시의 역사와 시대상을 잘 모르면 이해하기가 힘든 듯 하다. 읽으면서 꽤나 진도가 안 나갔던 부분으로, 자료도 찾아보고 공부해가면서 읽어야 될 것같은 느낌이다. 이때 오웰은 스페인 내전의 체험을 그린 <카탈로니아 찬가>를 집필하였다. 

1939년에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오웰은 건강상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하며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동물농장>의 집필에도 착수한다. 이때 쓰여진 에세이들 중 인상깊은 것이 '시와 마이크 Poetry and the Microphone'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시 낭송을 삽입했던 이야기를 통하여 시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전체주의가 라디오 방송까지 장악하여 예술 작품까지도 관료의 통제하에 들어가고 지식인의 자유를 말살하는 경향이 보인다고 오웰은 말한다. 독재 혹은 식민지 통치에 있어서 3S(영화, 스포츠, 성)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을 유발함으로써 지배자가 조작하기 쉽게 만드는 정책이 이미 그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다. 또한 '문학 예방 The Prevention of Literature'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오웰은 전체주의 옹호자들과 관료 지배 체계에 의해 지적인 자유가 공격받고 있는 시대의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는 작가들의 자기검열로 귀결되며 이러한 자유의 상실은 모든 형태의 문학에 해가 된다.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것이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하고, 자발성을 갖지 않는 한 문학 창작은 불가능하게 된다. 글쟁이 지망생으로서, 읽으면서 아주 속이 시원할 정도였다.  

또한 기억에 꽤 남았던 에세이 중 하나인 '정치와 영어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는, 그 당시 영어에서의 상투적인 어구들, 복잡한 전치사와 접속사, 고상한 척 하는 단어들, 별로 의미가 없는 단어들의 남용, 수동태의 남발 등을 꼬집고 그러한 어구와 단어들을 정치적인 말과 글에 이용함으로써 전체주의를 그럴싸해보이게 포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이다. 제대로 된 영국 영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글의 특성상 원문들의 일부도 함께 병기되어서 꽤 좋다). '어느 서평자의 고백 Confessions of a Book Reviewer'은 읽으면서 굉장히 크게 공감한 글로, 나 역시 수많은 서평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뭐든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취미일 경우에는 부담이 덜하나, 그것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이미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든다.이 책의 제목이 되었던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에서는, 이러한 시대에 정치적인 주제를 피해서 글을 쓸 수는 없다는 오웰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정치적이면서 문학적이고, 그 둘중 한 쪽을 빼고는 그를 이야기할 수 없다. 

폐결핵으로 건강이 악화된 오웰은 스코틀랜드의 쥬라 섬에 틀어박혀 지내며 예비학교 시절의 경험담을 그려낸 에세이 '정말, 정말 좋았지 Such, Such Where the Joys'를 쓴다. 이는 반어적인 제목으로, 그 당시 어린 학생들이 다니던 세인트 시프리언스 기숙학교의 실상이 여실히 드러난 글이다. 귀족 작위가 있거나 학교에 큰 돈을 낸 학생들과 학비를 지원받아서 온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했고 먹을 것은 아주 형편없었으며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일종의 지위나 재산 등에 따른 차별이 있었다. 체벌도 잦았으며 환경도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기숙학교라면 중산층 이상이 다니는 곳인데 그렇게 환경이 비참하다니, 빈민층의 학생들이 다니는 곳은 어땠을지 안 봐도 뻔하다. 오웰은 이 학교를 졸업하고 이튼스쿨에 진학해 시나 소설 등을 쓰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지냈는데, 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예비학교 시절의 좋지 못한 추억들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그런 학교들이 없어졌을 것이라 믿고 싶다. 얼마 뒤 병이 몹시 악화된 오웰은 <1984>를 완성하고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들을 통해 오웰의 정치적, 문학적 사유와 그가 지향하던 삶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그는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포기한 채 부랑자가 되거나 밑바닥 삶을 경험하고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편안히 살수 있었는데도 교사직을 그만두고 공장에 취업하여 노동자들의 애환을 느끼기를 원했던,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몬느 베이유의 모습과 어느 정도 공통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론만이 아닌, 행동이 따르는 사상이야말로 참된 것이다. 오웰은 진정한 민주적 사회주의자였고, 그것을 그의 삶과 글로써 보여주었다. 역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 이어 이번 에세이집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글쟁이 지망생인 내게, 작가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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