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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광기와 미친 천재성 - 정신질환과 천재성 사이의 교차점
자오신산 지음, 이예원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나는 천재가 되고 싶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대천재까지는 아니라도 영재 정도는 되고 싶었다. 그래서 멘사 같은, 높은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에도 일종의 선망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멘사의 테스트를 보고 가입한 일을 지금도 생각하면 참 기쁘다. 하지만 천재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극소수의 타고난 사람들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지금은 알게 된 듯 하다. (자신이 일부러 획득한 것이 아닌, 천부적인 재능을 뜻하는 gifted라는 단어만 봐도 그렇다.)그렇지만 아직도 천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가슴이 뛰곤 한다. 자오신산의 책 <천재적 광기와 미친 천재성> 역시 제목에서부터 굉장히 끌렸고, 그 내용 역시 궁금해져서 결국은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정신질환과 천재성 사이의 연관에 대해 다루고 있다. 확실히 천재들은 괴짜의 경향이 강하다. 범인(凡人)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며, 현실에서 동떨어진 세상에 있는 듯 하고 생각이나 행동도 상식에서 어긋나며 괴팍하다. 반면 광인은 저런 면들을 갖고 있지만 천재와 같은 찬사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격리되곤 한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천재와 같이 세상을 압도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심리적, 정신적 에너지가 넘쳐나기 때문에 에너지를 분출할 곳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세상을 창조하고 건설하는 것이다. 모짜르트, 바흐, 다빈치, 아인슈타인 등 훌륭한 업적을 남겨 인류 역사상에 남은 천재들이 이 분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세상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예로 들 수 있다. 세번째는 미쳐버리거나 자살하는 것으로, 수많은 광인들이 이에 속한다. 한 발 잘못 디디면 천재가 광인이 되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재와 광인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천재에게는 광인에게 없는 창조력과 직감이 있다. 물론 광인도 기묘한 그림을 그리고 알아볼 수 없는 글을 쓰기는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본질적인 내용도 없다. 적어도 타인과 공감대를 가질 수 없는 것들로, 광인 자신만 의미를 알 뿐이다. 하지만 천재의 창조력과 직감은 현실세계로 회귀할 수 있다. 꼬리를 물고 있는 뱀들을 꿈에서 보고 벤젠의 1.5중결합 구조를 밝혀낸 화학자 케쿨레의 일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저자는 천재들이 갖고 있는 우울증이나 고뇌에서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이 과학, 예술과 철학의 창조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사명감이 강박증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상을 창조하는 '건강한' 강박증은 주로 작가들의 충동적인 창작 욕구로 표현된다. <장한가>를 쓴 백거이는 자신의 고질병이 장구(章句), 곧 문장과 구절에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일종의 정신적 안식처를 찾는 활동이 바로 철학이다. 이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일종의 강박증이라고 한다. 반면 병리적인 강박증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객관적 효과도 없어서 현실 세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 외에 기억장애와 추상적 사고장애, 우울증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많은 천재들이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로웠다. 이는 창조력과도 연결되어, 우울함을 일종의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산하면 훌륭한 시와 그림이 나오고 스스로의 '감옥'을 벗어나게 된다. 천재는 필사적으로 싸우지만 미치광이는 가혹한 현실에 절망한다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책의 제일 마지막 부분은 일본 작가들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쓴 나쓰메 소세키도 피해망상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다고 하고,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역시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금각사>를 쓴 미시마 유키오 역시 극우적 사상에 경도되어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며 할복자살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아쉬웠던 것이,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달리 저자의 주관적인 면이 너무 강했다는 점이다. academic한 느낌보다는 일종의 개인적인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랄까.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들도 꽤 되는 것이, 송대의 대나무 그림 전문 화가인 문동(文同)의 "대나무는 나와 같고, 나는 대나무와 같다."라는 말을, 대나무로 변하는 망상으로 해석한 것은 너무 앞서갔다는 생각이 든다. 초현실적 몽롱시들을 정신병 환자의 '신조어', 곧 의미 없는 말로 매도하는 것도 주관적인 취향이 반영된 느낌이 들고, 다다이즘(Dadaism)을 일컬어 '비록 이 사조는 정신병원 밖에 있지만 정신병원 안의 '신조어'보다 더 사악하고 미쳐있으며 비논리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다다이즘 역시 예술의 한 사조로서 허무적인 경향을 가지고 기존 체제와 관습적인 예술에 반발한 문화 운동이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혹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사악하고 미쳐있다고 매도하는 것이 꽤 거슬린다. 그 외에도 읽으면서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느낌이 들기보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글을 읽는 듯한 부분이 많아서 기대치에 한참 못 미쳤던 느낌이 든다. 원문이 원래 그런지 번역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간결하게 딱딱 떨어지지가 못하고 어색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천재와 광인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칭찬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