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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
임광명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8월
평점 :
장엄하고 성스러운 종교적 건축물들은 보는 것만으로 숙연한 마음을 들게 한다. 꼭 바티칸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명동성당만 해도 그렇다. 이 책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는 한국의 종교적 건축물들을 취재해서 부산일보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어서 낸 것으로, 다양한 종교의 건축물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목이 된 <여기서는...>은, 구약의 탈출기 3,5에서 비롯된 것으로 원문은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이다. 하느님에 대한 외경과 흠숭의 마음으로 세속의 때를 상징하는 신발을 벗는 것이다.
사실 나는 가톨릭 신자라서, 이 책에 등장한 수많은 건축물들 중에서 주로 가톨릭 성당에 눈길이 갔다. 부산의 남천성당, 구포성당, 마산의 양덕주교좌성당, 울산의 꽃바위성당, 고성의 천사의 집 성당 등 경건하고 아름다운 성당 건물들에 나는 매료되었다. 빛이 들어와 더욱 성스럽게 느껴지는 제대, 포근한 성당 내부의 십자가의 길 조형물, 햇빛이 비추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 등 보는 것 만으로 마음속이 고요해지며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물론 타 종교의 건축물들도 굉장히 아름다운 것이 많아서, 이콘이 아름다운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여기는 가본적이 있다)이나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부산 구덕교회, 절 같지 않은 현대적인 느낌의 부산 안국선원, 그리고 한국에 몇개 안 되는 이슬람 성원 중에 하나인 부산 이슬람 성원 등 나름의 특별한 의미들을 담고 있는 많은 건축물들을 보았다. 책에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일일이 찾아보는 수고를 덜어준 듯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종교는 참 다양하다. 기독교, 불교, 가톨릭같은 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는 물론이고 성공회, 이슬람, 원불교, 천도교, 그리고 어떤 종교에도 속해있지 않지만 명상을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제주도의 지니어스 로사이 등 굉장히 다양한 종교의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더욱이 각각의 종교적 건축물들을 설계할때 설계자나 건축가가 그 종교적 특질과 함께 어떤 특별한 의미를 넣어서 설계하고 건축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노아의 방주 모양으로 설계된 천장,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을 연상하게 하는 나선형의 계단, 아늑한 느낌이 드는 둥근 공간으로 설계하여 부처님의 따뜻한 가르침을 의미하는 법당 등 세속의 건축보다 더욱 함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종교적 건축인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꼭 책에 등장한 곳들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서 종교적인 건축물들을 탐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담이지만 꽤 오래 전, 대학 신입생 시절에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겹쳐서 너무 괴로웠다. 그런 나에게, 마음이 괴로울 때는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가까운 성당이나 절 같은 곳에 가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나를 위로해 주신 분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당시 지리를 잘 모르던, 그리고 절박했던 나는 다른 성당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길을 몰랐기 때문에 명동 거리에서 계속 헤매기만 했을 뿐, 결국 그 날 명동성당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때 그 성당에 도착했더라면 나의 삶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때로 아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