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귀 문구 상상초과
소향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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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 작가의 장편소설 《화원귀 문구》를 읽었다. 얼마 전에 인상적으로 읽은 《올해 1학년 3반은 달랐다》에 참여한 작가라 신간 소식을 듣고 바로 읽게 되었다. 주인공 ‘단비’는 아빠가 부업으로 시작한 무인 문구점을 잠시 맡게 된다. 학창 시절 친구와 귀여운 문구 세트 대결을 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루의 공부 일정을 마치고 영수증 용지 교체, 쓰레기통 비우기, 진열대 정리 등 문구점 일을 하던 단비는 오래된 화구 통을 발견하고 거기 적힌 ‘허현’이라는 이름을 읽는다. 그리고 마법처럼 허현이 진짜로 등장했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러 100일 동안 문구점에 머무르게 된 현이를 단비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쓰기로 했다.


하는 행동은 조선 시대에 입맛은 편의점 라면인 현의 이야기는 웃음을 주고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에도 침착하게 현이를 아르바이트생으로 부리는 단비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둘의 기묘한 파트너 설정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는 단비와 현의 이야기 모두 재밌었기 때문이다. 단비는 엄마 없이도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나간다. 공부는 물론이고 집안일까지 신경 쓸 정도로 똑부러지는 그녀가 대견스럽고 안쓰러웠다. 우주나 아버지와의 관계도 작가의 세심한 시선이 더해져 좋았다. 이 세상에 드라마처럼 악역의 얼굴만 가진 사람은 없다는 걸 잘 보여준 것 같다. 현이의 사연 역시 인상적이었다. 재능이 없는 사람과 재능이 있음에도 그것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그려냈다.


후반부에 왜 단비가 현이를 처음 발견했는지에 관한 장면도 좋았다. 서로 홈이 맞는 사람들, 기대 쉴 수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도 있을까 궁금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아픔만 지울 수는 없나요? 아픔과 기억은 꼭 함께여야 하나요?”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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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2 - 수명을 먹는 나의 수호신 YA! 15
명소정 지음, 리페 그림 / 이지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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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정 작가의 장편소설 《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2》를 읽었다. 2년 만에 돌아온 후속작이다. 전작에서는 이야기를 먹는 괴물 ‘혜성’이 ‘세월’과 고민 상담부를 운영하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기존 인물의 후일담과 새로운 서사 중 고민했다고 한다. 작가의 결정은 ‘영명’과 ‘성단’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창조한 것이다.


1편에서 이야기를 먹는 괴물이 나왔다면, 이번 2편에서는 수명을 먹는 괴물 ‘영명’이 등장한다. 학교에서 뛰어내리려던 ‘성단’을 찾아낸 영명은 죽어야 하는 타당한 이유와 함께 그에 서명할 사람을 찾으면 그의 수명을 먹고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준다고 말한다. 모두에게 잊히고 싶었던 그는 동의한다.


이번 작품이 여러 인물의 고민을 다루기보다 성단에 초점을 맞춘 것이 흥미로웠다. 성단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매사에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 약한 마음에 공감되기도 했다. 나의 행동이나 말이 누군가에게 피해가 될까 봐, 내가 존재할 가치가 없는 사람일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고민했단 것조차 잊어버리게 만드는 1편처럼 이번 작품 역시 과격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고 싶은 이에게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떠올리고 곱씹어보는 행동이 더 위험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지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살 가치를 깨달을 기회가 될 것도 같다.


이 책을 시리즈로 이어간다면 또 어떤 것을 먹는 괴물이 나올 수 있을까. ‘악의’를 먹어치우는 괴물이 있으면 내 속에 있는 모든 나쁜 마음을 다 먹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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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612 누가 어린 왕자를 죽였는가
미셸 뷔시 지음, 이선민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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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언젠가부터 어린 왕자 굿즈를 모을 정도로 캐릭터에 푹 빠졌다. 해외여행을 가면 서점에서 그 나라 언어로 된 어린 왕자 책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그림자 소녀, 검은 수련으로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을 써왔던 미셸 뷔시가 어린 왕자를 소재로 신작을 내놓았다. 바로 CODE 612 누가 어린 왕자를 죽였는가.

 

이 작품은 어린 왕자 애호가 모임 ‘CLUB 612’에서 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에 관한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수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킨 작가의 죽음에 어떠한 비밀이 있고 그걸 책 어린 왕자 속에 숨겨놓았다는 것이다. ‘네벤앤디가 탐정 역할을 맡아 클럽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면서 각자가 주장하는 진실을 들으러 다닌다.

 

소설을 읽으면서 추리보다는 한 작품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듣는 기분이었다. 어린 왕자의 문장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만하게 근거를 끌고 와서 범인이 누구인지 주장한다. 여우와 뱀, 장미꽃 등 익숙한 대상이 나오면서 그것이 사실은 누구를 비유한 것인지 그럴듯하게 의견을 펼친다. 어린 왕자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기에 주장을 하나씩 들을 때마다 나 역시 그 의견에 설득되었다. 작가가 마지막에 내놓는 진실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소설을 읽으며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소설 속 창작인지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오랜만에 어린 왕자를 펴보았다. 잊고 있었던 문장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예전에 어린 왕자 필사책을 선물 받았는데 몇 쪽 하지도 않고 그만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틈날 때마다 한 장씩 다시 해야겠다. 아무리 열심히 필사해도 CLUB 612는 못 따라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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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훔치는 도둑
기르답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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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답 작가의 장편소설 꿈 훔치는 도둑을 읽었다. 제목처럼 사람들의 꿈을 훔치는 도둑이 주인공으로, 사람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 이마에 손을 짚고 꿈을 꺼내 유리병에 담고, 수집가에게 팔아 돈을 번다. 그 돈으로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바에서 술을 마신다.

 

도둑은 지금껏 읽은 그 어떤 책보다도 무뚝뚝한 주인공이었다. 아무 관심도, 욕망도 없는 도둑은 오로지 꿈을 훔치고 판다.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도둑에게도 변화의 씨앗이 자라난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두 명 생긴 것이다. 한 사람은 어린 꼬마로, 도둑이 훔쳐간 꿈을 돌려달라고 항의하러 왔지만 이내 마음을 열고 도둑에게 관심을 가진다.

 

다른 사람은 젊은 여자로 꿈을 훔쳤다고 하면 화를 내고, 그게 아니더라도 남의 집에 무단침입한 것에 대해 분노하지만 이 여자만은 꿈을 훔쳐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기묘한 교류가 시작된 도둑에게는 서서히 변화가 나타난다.

 

꿈 훔치는 도둑은 걸으면서도 읽고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도둑의 단조로운 삶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 아쩨사 도둑은 꿈을 훔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왜 꿈을 훔치는 건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은 멋지게 그 이유를 밝혀낸다.

 

책을 읽으며 왜 꿈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 걸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잠자는 동안 꾸는 꿈과 이상이나 희망 같은 꿈. ‘dream’ゆめ도 마찬가지로 두 뜻 모두 가지고 있다. 현실에서 꿈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꿈속에서라도 이루라는 뜻으로 같은 단어에 넣어준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정말로 꿈은 필요 없는 거라고. 바이올린의 꿈을 기억하는 자는 슬퍼하고, 바이올린의 꿈을 갖지 않는 자는 웃는다고.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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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산책가
카르스텐 헨 지음, 이나영 옮김 / 그러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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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스텐 헨의 《책 산책가》는 5월에 읽은 책 중 가장 훌륭했다. 책 산책가 ‘칼 콜호프’가 아홉 살 소녀 ‘샤샤’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칼은 서점에서 단골고객에게 책을 직접 배달해주는 일을 한다. 고객이 부탁한 책도 있고, 취향에 맞게 칼이 엄선한 책도 있다. 나 역시 주위에서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꽤 많이 들어봤기에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던 칼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책방 운영을 이어받은 사장 ‘자비네’가 책 배달 서비스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또한 책 배달의 여정에 불청객이 함께 하게 된다. 바로 소녀 ‘샤샤’인데, 칼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고 고객을 같이 만난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일상에 균열이 일어나자 칼은 혼란스러워한다.


노인과 소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너무 좋아하는 픽사 영화 <업>이 생각나기도 했다. 샤샤의 순수함과 당찬 모습이 칼에게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후반부에 샤샤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 칼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도대체 어디 간 것인지 같이 찾아 헤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칼이 방문하는 고객들도 무척 매력적이다. 칼은 고객에게 비슷한 이미지의 소설 속 캐릭터를 붙여서 부른다. ‘다이시’나 ‘헤라클레스’로 불리는 고객이 등장하는 장면을 읽으며 인물의 모습이나 행동을 상상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누구나 읽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작품 《책 산책가》를 자신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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