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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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만나 맥주를 마시던 중 운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세 명 다 장롱면허에 가까운데 운전 연수부터 한문절TV에 올라온 사고 영상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다. 집에 와서 책을 읽다가 원래도 많지 않았던 운전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야쿠마루 가쿠의 장편소설 《어느 도망자의 고백》이다.


대학생 마가키 쇼타는 친구들과 술을 늦게까지 마시고 집에 돌아갔다가 여자친구의 문자를 받는다.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지겠다.’라는 메시지를 보고 쇼타는 지하철이 이미 끊겼기에 운전해서 여자친구의 집에 가기로 한다. 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사람을 치어 죽게 만들고 감옥에 간다.


음주 운전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그래서 마가키를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사고 후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다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4년 10개월이라는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가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가해자의 관점에서 쓴 소설이다. 누가 봐도 지탄받아 마땅한 일을 저지른 자의 심리를 촘촘히 묘사하며 속죄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처럼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결국 영원히 속죄할 수 없는 걸까.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복잡했다. 범죄자여도 범죄를 저지른 측면 말고 수많은 다른 면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부분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억울한 마음과 죄스러운 마음이 섞인 복잡한 내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이 제시하는 결론이 참 좋았다. 도망치지 말고 속죄하라는 것, 그게 용서의 발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눈물이 맺혔다.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 중 한국에서 가장 크게 사랑받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지만, 이번 작품 《어느 도망자의 고백》이 새로운 대표작이 되기에 충분한 좋은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뉘우침의 눈물일까. 아니면 자기 앞길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눈물일까. (107-108쪽)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을 테니 지금 말할게. 우리 가족은 너 때문에 불행해졌어. 그런데 가장 불행한 건 우리도, 더욱이 너도 아니야.” (225쪽)


계속 도망치는 한 사람은 진심으로 웃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340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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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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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메이의 장편소설 블랙하우스를 읽었다. 서두에 미리 밝히고 싶다. 이 작품은 하반기에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다! (7월부터 현재까지 총 17권을 읽었다) 루이스 섬의 낡은 보트 창고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시신이 발견된다. 몇 달 전 발생한 살인사건과 유사했기에 이를 조사하던 형사 핀 매클라우드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블랙하우스는 온전히 새로운 작품은 아니다. 형사가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과거를 파헤치는 작품은 꽤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뛰어난 묘사와 이야기 전개로 순식간에 독자를 책 안으로 데리고 온다. 이 책이 주는 강력한 몰입감은 독자를 루이스 섬으로 초대하는 게 아니라 압송하는 것 같았다. 핀 매클라우드의 옆에 꼼짝없이 바로 서서 그 모든 이야기를 눈과 귀로 보고 듣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진행되는 이 소설은 과거 이야기가 특히 고통스러웠다. 핀이 왜 그렇게 이곳을 떠나고 싶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수많은 일이 있었고 추억도 많았지만 핀의 과거에는 비극이 참 많았다. 그 비극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영향을 주고 있었고, 마을을 탈출하여 묻어두었던 비극을 현재에 만난 핀이 안타까웠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입체적 인물을 그려낸 것도 이 소설의 뛰어난 점이다. 누군가는 악마 같은 사람이라고, 누군가는 진실한 친구로 생각한 인물이라든지, 과거의 빛나던 모습이 사라진 채 초라한 현재를 보이는 인물 등 이야기와 인물 설정이 모두 놀랍다.

 

결말에 이르러 또 한 번 추악한 비밀이 드러나며 이 소설은 정점을 찍는다. 만만히 보면 큰코다칠 수 있는 소설이다. 앞으로 피터 메이를 주목하게 될 것 같다. 이 작품은 루이스 섬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하는데, 2편과 3편도 반드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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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미스터리 키친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진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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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모치 아사미의 소설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나가에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나가에의 심야 상담소의 작가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속편인 만큼 구성은 똑같다. 두 부부가 모여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면서 일상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내용이다. 전작이 대학생 때 이야기라면, 이번 작품은 결혼한 두 부부에 아이까지 있는 시점이다.

 

네 명이 모여 식사하다가 음식에 대한 특성이 나오면 화자 후유키 나쓰미가 연관된 일상 이야기를 꺼내고, 나가에가 이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예를 들면, 연어 술지게미 절임을 만들 때 나가에는 담백한 맛을 좋아하여 재운지 하루 된 것을 먹고, 나가에의 아내 나기사는 간이 제대로 밴 것을 좋아해서 재운지 이틀 된 것을 먹는다고 말했다.

 

이를 듣고 나쓰미는 쌍둥이가 하루씩 차이 나게 행동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쌍둥이가 있는데 한 명은 피아노를 월요일, 수영을 수요일에 다니고 다른 한 명은 피아노를 화요일, 수영을 목요일에 다닌다는 것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법도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픽업이 불편할 테니 같은 날 다니는 게 훨씬 일반적인 상황일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나가에는 상황만 듣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멋지게 추리한다. 그야말로 안락의자 탐정 같다.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다양한 종류의 술, 미스터리까지 즐길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나가에의 추리는 듣다 보면 뭔가 구멍이 있는 것도 같지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명석한 두뇌의 나가에보다 연상법의 대가 나쓰미가 더 흥미로웠다. 어떻게 표현 하나에서 일화를 저렇게 떠올리는 건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피아노 선생님이 문득 떠올랐다. 설명하실 때 항상 비유를 활용하는데, 예를 들면 어떤 부분을 칠 때 혈당측정기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롭게 치라는 식이다.

 

무거운 작품을 연달아 읽다 보면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소설이 끌리는 것 같다. 금요일 오후 이 리뷰를 쓰고 있는데, 나도 이 소설을 따라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겠다. 미스터리가 없어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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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2 - 호랑이덫 부크크오리지널 5
무경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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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 작가의 장편소설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2: 호랑이덫》을 읽었다.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을 읽은 것이 3월이다. 독특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라 후속작이 꼭 나오길 바랐는데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은일당에 사는 주인공 에드가 오가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을 그렸다.


에드가 오는 오랜만에 친구 세르게이 홍을 만나러 가던 중 살인 사건을 목격한다. 총소리가 들리고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사체 옆에는 순사가 있었고 총을 쏜 것은 도망간 포수라는 말을 한다.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이상한 사건에 휘말린 에드가 오는 사건을 직접 해결하기로 한다.


전작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에드가 오와 은일당 주인의 딸 선화 덕분이었다. 모던을 꿈꾸지만 어딘가 허술한 에드가 오와 추리력과 관찰력이 있는 선화의 콤비가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뛰어난 탐정 연주까지 등장하여 시리즈의 정체성과 재미를 모두 잡았다.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무더위에 읽으니 몰입도 더 잘 되었다. 에드가 오는 쪄 죽는 한이 있어도 멋들어진 옷을 입는데 제발 그만두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당시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제대로 없었을 텐데 나까지 열사병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에드가 오는 본격적으로 탐정 역에 돌입한다. 전작에서 탐정이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주변의 도움을 받아 그럴듯한 연극을 보여주는데 소설의 하이라이트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직 이들을 보내주기엔 아쉽다. 연주나 선화의 관계 혹은 선화의 아버지 등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으니 꼭 3권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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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독한 강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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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의 장편소설 고독한 강을 읽었다.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가 주인공인 시리즈의 소설이다. 캐트린 댄스는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불안을 잡아내고 진술이 거짓인지 알아내는 능력자다. 이번 소설에서 그녀는 아주 끔찍한 사건을 맞닥뜨린다. 바로 사람들이 밀집된 공간에서 패닉을 일으켜 서로를 다치고 죽게 만드는 범행이다.

 

첫 사건은 클럽에서 일어난다. 출입문을 트럭으로 막아놓고 밖에서 불을 피워 환풍기로 연기가 들어가게 한다. 실제로는 치명적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탄내를 맡은 사람들은 공황에 빠졌다. 살고 싶었던 사람들의 발버둥에 미처 속하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은 짓밟히고 부딪혀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사망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끔찍한 발상을 한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충분히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이라 작품의 내용이 더 무섭게 다가왔다. 소설은 이 잔혹한 사건을 일으키는 범인을 숨기지 않는다. 비교적 초반에 등장하는 범인은 평범해서 더 소름이 돋았다. 무시무시한 속내를 숨긴 채 일반 사람인 척 가면을 쓰는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정말 무섭겠다는 생각을 했다.

 

캐트린 댄스는 특유의 능력과 추리를 발휘해 재앙을 막고 진상에 한 걸음씩 가까워진다. 65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에도 지치지 않고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주인공을 능력 있고 매력적인 인물로 정교하게 그려낸 덕분이었다. 사실 그녀가 이 사건을 맡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단지 도구적으로 쓰이지 않고 소설의 전체 흐름에 연결되어 있다.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은 이 소설의 완성도는 놀라운 수준이다. 그냥 넘겼던 부분도 다 관련이 있다!

 

사건 외에 캐트린 댄스의 주변 인물도 흥미롭다. 여하튼 버릴 것이 없는, 부족한 점이 없는 훌륭한 추리 소설, 고독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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