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유희
이가라시 리쓰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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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라시 리쓰토의 장편소설 《법정유희》를 읽었다. 현직 변호사가 집필한 법정 소설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도 도진기 변호사가 여러 재밌는 소설을 출간하고 있는데 확실히 법정 안에서의 일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모의재판 '무고 게임'과 실제 재판을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무고 게임'이라는 것은 고소인과 범인, 심판자가 있는 시스템으로 고소인이 여러 정황으로 범인을 지목하면 심판자가 그것이 합당한지 판결을 내린다. 주인공 '구가 기요요시'는 과거에 자신이 관련된 신문 기사로 인해 명예 훼손을 당했다며 무고 게임을 연다.


시간이 흘러 무고 게임이 다시 열린다는 메일을 받은 기요요시는 그곳에서 '유키 가오루'의 시신을 발견한다. 늘 심판자의 역할을 했던 그의 시신 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오리모토 미레이'가 있다. 범인으로 지목된 그녀를 지키기 위해 기요요시는 변호사로 나선다.


소설은 무고 게임과 재판 양쪽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켜본 무고 게임은 큰 파장을 일으키고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될지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소설을 읽어나갔다. 모든 정황이 미레이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기에 주인공이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지 궁금했다.


주로 법정 소설을 생각하면 깜짝 반전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지도 못한 범인이 나와 재판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피고인은 무죄로 풀려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조금 다르다. 반전 대신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묵직하게 풀어놓는 것이 좋았다. 왜 무고 게임이 진행되었는지, 미레이는 왜 기요요시에게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는지 많은 것들이 후반부에서 풀리며 그 자체로 멋진 이야기를 완성한다.


요즘 재밌는 소설을 많이 읽어서 이제 책태기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묻혀 있던 나의 독서 욕구를 확실히 끌어내준 고마운 작품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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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남은 시간 죽음의 디데이
이혜린 지음, 박시현 그림 / 풀빛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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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게임이 유행인 요즘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죽는 날짜를 아는 것과 죽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 두 가지 모두 알고 싶기도 모르고 싶기도 했다.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죽는 날짜를 아는 게 나을 것 같다. 이유를 알게 된다면 너무 무서울 것 같다.


이혜린 작가의 장편소설 《너에게 남은 시간 죽음의 디데이》의 주인공 '류담'은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그 사람의 남은 수명이 보이는 능력 혹은 저주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후로 류는 벽을 쌓고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으려고 한다.


청소년 문학을 읽다 보면 아이들이 가혹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특히나 잔인한 설정이라고 느껴졌다. 희망이 고통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그 구조가 안타까웠다. 예전에 본 드라마에서 자살을 연구한다는 목적 하에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든 희망을 뺏는 설정이 생각났다. 뭐 하나 위안거리가 생기면 그것을 제거해 버렸을 때도 버틸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담이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희망이라는 것이 담이에게도 찾아온다. 같은 반 친구 '미소'와 같은 능력을 가진 아저씨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햇살같은 미소가 있다면 담이에게도 웃음이 찾아올 수 있었다.


소설은 희생의 가치를 보여준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하는 그 모습을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이번년도에 청소년 문학을 여러 권 받아서 읽고 교실에 가져다 놓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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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성취 고객센터
마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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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 작가의 장편소설 소원성취 고객센터를 읽었다. 쏟아져 나오는 힐링 소설이 지겹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수식어와 장소가 만나는 소설은 거른다는 말도 들었다. 괜스레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슷한 형식을 지녔어도 저마다 특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물론 유행에 편승할 뿐인 함량 미달의 소설도 있겠지만 그동안 읽은 대부분의 힐링 소설은 1인분의 몫을 하고 있었다.

 

소원성취 앱을 만든 '소원'은 과학적으로 힐링을 제공한다. 고객을 직접 만나 이루고 싶은 소원을 듣고 그에 기반하여 핸드폰을 손본다. 새롭게 태어난 핸드폰은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악플이 두려운 웹 소설 작가는 앱을 통해 순화된 댓글을 읽을 수 있으며, 여기저기 이용당하다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간관계를 줄여주는 자동 답장 서비스가 이루어진다.

 

소설을 읽으며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 사이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 기술을 이용하면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기능이 현실에서도 구현 가능할 것 같다가도 어떤 장면을 보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한 것 같다. 현실의 쓴맛을 살짝 감춘 채 적당히 달콤한 시럽을 뿌린 것 같았다.

 

뻔하지 않은 전개 또한 이 소설의 장점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소원성취 앱을 깔고 위안을 얻는다는 고루한 전개를 예상한 사람에게 이 작품은 급커브를 안겨준다. 뒤처리는 셀프라는 뒷면의 소개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고객마다 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볼 수 있었다.

 

내가 이루고 싶은 소원은 무엇일까. 지금 생각나는 것은 수면이다. 한 번도 안 깨고 푹 자고 싶다. 이 소원을 말하면 '소원'은 내 핸드폰을 어떻게 고쳐줄까. 자는 동안 어떤 전자파가 내 뇌를 조종해 렘수면을 조절해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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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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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결의 독창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진 SF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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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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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신하 작가의 소설집 《우주의 속삭임》을 읽었다. 어른보다 훨씬 디지털 세상을 먼저 접하는 아이들이 SF 동화를 읽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총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이 작품을 읽으며 아이들이 참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은 다섯 가지의 SF 이야기가 서로 다른 결을 지녔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는 한없이 동화 같다가도 어떤 이야기는 차갑기 그지없다. 머나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과 지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같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첫 번째 이야기 [반짝이는 별먼지]는 우주 복권에 당첨된 할머니의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묘하게 걸쳐 있는 기분이 들었다. 50년 전에 당첨된 복권의 상품을 드디어 수령하게 된 할머니는 정말 어디로 간 것일까. 반갑게도 책 안에 들어있는 책갈피에도 복권 응모 큐알 코드가 들어있다.


[타보타의 아이들]는 불모지 행성 이끼를 정성껏 키우는 로봇의 이야기다. 영화 <월-E>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똑같은 설정에 안주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보여서 좋았다. 어떻게 결말을 낼까 궁금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이라 더 흥미롭게 읽었다.


[들어오지 마시오]는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어 마음이 조금 아팠다. 소설 속 이야기여도 가슴을 찌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신 이야기에서는 무아무아족이 도움을 준다. 귀여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후반부에 등장하는 액션 장면에는 깜짝 놀랐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많이 읽고 싶은데, 이 책으로 포문을 열면 어떨까. 상상에 푹 빠져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나올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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