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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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며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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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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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 작가의 장편소설 ≪낙원은 창백한 손으로≫를 읽었다. 경찰 '연우'는 후배 '상혁' 선양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긴급 파견된다. 이상한 점은 피해자 '차요한' 원장은 몇 시간 뒤에 연명 치료를 중단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차요한의 아들 '도진'은 살인 용의자 '유민희'를 변호하라는 협박을 받는다. 그리고 15년 전 있었던 끔찍한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재밌다'였다. 한순간도 지루해지지 않고 달려나가는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이야기에 힘이 있고 등장 인물이 잘 빚어지면 어떤 소설이든 커다란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은 연우와 도진의 시점이 번갈아 진행되며 시간적 배경도 현재와 15년 전을 왔다갔다 한다. 등장 인물도 많고 사건도 복잡한 양상을 띠지만 조잡하지 않고 깔끔하게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것도 좋았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을 3년 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확실히 긴 시간 동안 잘 다듬은 이야기였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정보를 얼마나 공개하냐일 것이다. 깜짝 반전을 위해 너무 적게 밝히면 뜬금없는 이야기가 되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많이 알려주면 김새는 결말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적정선을 기가 막히게 찾아 이야기의 재미도 설득력도 갖추었다.


철없지만 즐거운 학창 시절을 한순간에 악몽으로 만든 사건은 대체 무엇일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사건의 범인과 동기는 무엇인지 상상하고 또 반전에 당하는 재미가 있었던 소설, ≪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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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조각 미술관
이스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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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안 작가의 소설집 《신체 조각 미술관》을 읽었다. 여름이 지났는데도 참 덥다. 그래서 더 섬뜩한 소설을 읽고 싶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을 만한 그런 소설을. 표지부터 심상치 않은 이 작품은 그런 내 기대에 부합하는 소설이었다.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이 소설에는 다양한 기괴함이 있다. 표제작인 [신체 조각 미술관]부터 분위기를 확 장악한다. 여러 사유로 신체를 기증받아 박물관을 만든다는 설정이 무척이나 독특했다. 기괴하면서도 우아함이 있어서 좋았던 이야기다. 예전에 볼이 정말 말랑거리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 미술관에 간다면 가치 있는 작품이 탄생할 것 같다. (...)


[푸른 인어]는 인어를 소재로 이렇게 과격한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인어를 발견한 어부의 이야기인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어 공주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전개가 이어진다. 이야기에 놀라고 그 표현에 한 번 더 놀랐다.


[한밤중의 어트랙션]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였다. 지옥을 모티브로 만든 놀이기구에서 밤을 새우기로 한 직원들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괴담이 많은 장소 중 하나가 놀이공원으로 이를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도 꽤 많이 나왔다. 지옥 놀이기구라니 한번 타보고 싶지만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무섭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포영화 마니아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작가답게 오로지 무서움에 비중을 둔 이야기와 슬픔의 정서를 공유하는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는 점이 좋았다. 또한 귀신 같이 비현실적인 공포와 사람이 무서운 현실적인 공포가 같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더위를 잠시 잊고 제대로 오싹함을 주어 만족스러웠던 소설, 《신체 조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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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따위 필요 없어 특서 청소년문학 33
탁경은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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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청소년 소설 쓰기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엘리베이터에 타서 버튼을 누르면 무언가가 떨어지고 이를 활용하여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다만 금기를 어기게 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쓰다 말았고 컴퓨터에 고이 잠들어 있다.

 

탁경은 작가의 장편소설 소원 따위 필요 없어를 읽으며 깜짝 놀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비상 버튼을 누르면 다른 세계로 이어지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물론 글을 끝까지 쓰지도 못한 나와 전문 작가의 솜씨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그만큼 특별한 소재는 아닌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끝까지 읽어보니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소설의 주인공 세 명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저마다 소원이 있다. 아역 배우 민아는 혈액암에 걸렸다. 어쩌다 그렇게 큰 병에 걸렸는지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하며 힘든 나날을 버티고 있다. 건강해지는 것이 민아의 간절한 소원이다. ‘동수는 두 다리가 마비된 상태다. 다시 두 발로 걸어보는 것이 동수의 커다란 소원이다. ‘혜주는 셋 중 유일하게 꾀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아이다. 그러나 혜주도 부모님의 과도한 압박으로 마음이 아프다. 그 숨을 조여오는 답답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혜주의 소망이다.

 

소원 따위 필요 없어는 현실과 SF를 적당히 섞은 소설이다. 병원에서 인물들이 겪는 아픔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예전에 다리를 다쳐 한동안 걷지 못한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동수와 민아는 부모님의 눈치도 본다. 아픈 자신들로 인해 부모님이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에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이들이 만난 새로운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병도 쉽게 고칠 수 있고 다시 걸을 수 있게 해주는 그 세계에서 세 명이 하는 경험과 선택은 독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과연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가족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함으로써 복잡다단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쿵저러쿵 개연성을 따져도 아이들이 완벽하게 다 나아서 행복해하는 해피 엔딩을 좋아한다. 그러나 소설은 설득력 있으면서도 울림까지 있는 결말을 택함으로써 더 깊은 여운을 주었다. 소설은 끝났지만 민아, 동수, 혜주 모두 조금 더 행복한 삶이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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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네버랜드
최난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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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난영 작가의 장편소설 《카페 네버랜드》를 읽었다. 주인공 ‘연주’는 7급 공무원으로 찔피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바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는 뜻이다.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는 그녀는 직장 내에서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은 채 승급만을 바라고 있다. 그러던 그녀가 낸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계획서가 채택되어 ‘카페 네버랜드’가 생겼다.


힐링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 지친 현실을 위로할 곳이 필요하니까. 이번 작품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내게 어떤 힐링을 줄까 기대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처음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현실의 쓴맛이었다. 노인들을 데리고 카페를 운영해야 하는 연주는 수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성인만 되어도 고집을 꺾기 어려운데 나이 지긋하게 먹은 노인을 상대하며 그녀는 인내심을 기르고 또 기른다.


공무원 사회의 수직적인 모습 역시 소설의 고구마를 담당한다. 맡은 일을 하는 것뿐인데도 같잖은 견제를 받거나 상사의 어이없는 지시와 태도에 불쾌지수가 상승했다. 먹고 살기가 참 힘들다. 분명 힐링 소설이라 했는데 왜 이렇게 답답한 걸까 의문이 들 때쯤 힐링이 서서히 스며들어 온다.


카페 네버랜드의 노인 네 명은 개성이 뚜렷하다. 사고뭉치 ‘만영’, 난청인 ‘기복’, 말이 없는 ‘석재’와 ‘준섭’이 서서히 카페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 따뜻하게 그려져서 참 좋았다. 면대면 주문 대신 키오스크가 늘어가고 마트에서 계산할 때도 스스로 하는 곳이 대부분인 사회에서 카페 네버랜드의 독특한 운영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경청과 이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안 통한다고 무시하지 말고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인 혐오가 심각한 사회에서 단비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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