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저도 지금 유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도, 히무라도, 쓰지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예상도 못한 일이다.
이토는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고 간절한 눈빛으로 히무라를바라보았다. - P181

사람을 돕는 일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다.  - P181

이토는 쩔쩔매며 자리에 앉더니 마스터에게 술이 아니라 자몽주스를 주문하고 음료가 나오기도 전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매일 밤 여자 유령이 머리맡에 나타납니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라고 한다.  - P182

"아니요. 다른 사람과 함께 자도 저 혼자만 문득 잠에서 깨서 유령을 봅니다. 친구에게 밤새 지켜봐 달라고 해도 아마 제 눈에만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난처하네.
이건 쓰지가 말한 네 가지 경험담과는 종류가 다르다. 일단 유령의 출현을 증명하는 근거가 이토의 증언밖에 없다.  - P183

"그렇다면 유령 스토커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으음, 저는 이 정도밖에 떠오르는 게 없네요."
쓰지는 도움을 청하듯 히무라를 보았지만 히무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P185

"이토 씨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더라도, 생판 남인데도 꽃을 바치는 다정한 사람이라 멋대로 도움을 기대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쓰지가 거들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라면 도와줄 것 같다고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 P187

"유령이라고 생각하니까 한 발 물러나게 되는 거야. 살아 있는여성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소극적인 히무라에게 한 말이었지만, 막상 말하고 보니 이거다 싶었다. 내가 봐도 핵심을 찌르는 발언 아닌가? - P188

원망하는 이유를 알아냈다고 해도 상대는 유령이다. 과연 말이 통할지 의문이다. (중략).
"다음에 유령이 나타나면 사과해 본다거나...... 아, 이토 씨가 버린 꽃을 바친 사람을 찾아내서 한 번 더 꽃을 바쳐 달라고 하는 건요?" - P190

히무라는 심령 현상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과하면 유령이 용서해 줄 거라고 생각할 리가 없다. - P191

(전략), 나는 추리소설가다. 진짜 명탐정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희귀한 케이스다. 장르와 상관없는 영능력자와의 연줄을 기대해도 곤란하다. - P191

마스터가 접시를 포개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손님들 말씀이 귀에 들어와서요. 난처하신 것 같아 한 말씀드리고 싶어서."
우리는 나란히 마스터를 쳐다보았다. - P192

"전에 저희 가게에 오신 다른 손님이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탐정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듣자 하니 심령탐정이라나요………….."
히무라가 한쪽 눈썹을 실룩였다. - P192

"전화번호가 특이해서 외우기 쉽거든요. 그래서 기억합니다. 분명 ......."
이토는 서둘러 메모했다. 어째선지 쓰지까지 받아 적고 있다.
언젠가 진짜 심령 현상을 만났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리라. - P193

끈, 밧줄, 로프


아오사키 유고


1991년, 가나가와현 출생. 2012년 <체육관의 살인>으로 아유카와 데쓰야상을 수상하며 데뷔. 2024년 《지뢰 글리코》로 본격 미스터리 대상(소설 부문),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장편 및 연작 단편집 부문),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 그 밖의 저서로 ‘노킹 온 록트 도어 시리즈‘, ‘언데드걸 머더 파르스 시리즈‘, 《새벽녘 첫차의 살풍경》, 《11글자 감옥 아오사키 유고 단편 집성》, 《가스등 들개 탐정단》(원작) 등. - P10

1

느지막이 일어나 짧은 에세이 원고를 마무리하고 출판사에서보내 준 증정본을 읽는다. 활동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하루가될 예정이었다. 친구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 P11

아니. 그런 사람은 세상에 한 명이면 족하려나.
그 희귀한 직함을 가진 남자가 고물 벤츠 옆에 서 있었다. (중략).
히무라. 그를 불렀다.
"대학은 얼씨구나 내팽개치고 나와도 되는 거야? 입시다 졸업논문 채점이다 바쁜 시기잖아." - P12

"얼굴을 안 봐도 알아. 올해부터 종합소득세 신고가 복잡해졌으니까."
분하게도 그 추리는 적중했다. 오늘 저녁부터 영수증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 P12

"그래서 이번엔 어떤 사건인데?"
"강도 살인, 시체 유기. 자세한 설명은 이제 들어 볼 건데, 용의자는 어느 정도 좁힌 모양이야."
"부교수가 나설 자리는 없어 보이는데?" - P13

아파트 쪽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훤한 머리를 꾸벅 숙였다. 오사카 부경의 후나비키 경부다. (중략).
잘 아는 얼굴이라 요란한 인사는 필요 없다. - P13

"신고는 오늘 오전 11시경. 맞은편 해안 창고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산책로 아래 피복석*에 걸린 여성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 바닷가 등에서 물과 접촉하는 둑의 경사면이 무너지지 않도록 포개어 쌓은 돌 - P14

(전략).
"보다시피 이 모양이라. 문은 자동으로 잠겼지만 새시는 열려있었고 금품도 사라졌습니다. 지갑 속 현금과 <몬스터 나이츠>라는 카드 게임의 레어 카드가 스무 장 정도." - P15

"몬나이‘ 카드라고 못 들어 보셨습니까? (중략) 야스미 씨는 어렸을 때 뽑은 레어 카드를 소중히 파일에 넣어 이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게 여러 지인들의 증언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현재 시세라면 가격은 장당 5만 엔 정도고요. - P16

"이마에 있는 치명상이 전부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반신에는 찰과상이 여럿 있었지만 생활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산책로에서 유기될 때 생긴 상처 같습니다."
"머리 상처는 한 군데뿐이었다는 말씀이지요?" - P17

"그것 말인데 언뜻 야스미 씨가 새시 잠그는 걸 깜빡해서 그리로 범인이 들어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신발장 위에 이 집 여벌 열쇠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열쇠에서도 울 섬유가 검출되었습니다."
"범인이 만졌다는 말씀입니까?" - P18

"오사카 주민 880만 명 중에서 찾는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진전이군요. 하지만 아직 조금 많은걸."
히무라의 혼잣말에 경부가 반응했다.
"안심하세요. 더 좁힐 수 있습니다. 저희는 구속에 사용된 로프 도구에 착안했습니다. 시체가 입고 있던 의복이 바닷물에 잠겨 있어서 섬유는 검출하지 못했고, 굵기도 알아내기 힘들죠. (후략)." - P19

"그걸 찾아내면 범인 확정인가."
내 혼잣말에 경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에게 유리했어요. 범인은 시체가 바다에 떠내려가 발견이 늦어질 거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을 겁니다. (중략). 그렇게 생각하고 아파트 쓰레기 배출상황을 조사했습니다." - P20

"이 아파트 쓰레기 수거장입니다. 부지 안에서 여기만 방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중략). 부피가 크거나 분류하기 어려운쓰레기는 쓰레기봉투가 아니라 옆에 있는 상자에 넣어 두면 야마구치 씨가 나중에 혼자서 분류한다고 합니다." - P21

"있었나요? 저 상자에 로프 같은 걸 버린 주민이?"
"있었습니다.......세명."
기대를 저버리는 어중간한 숫자였다. 히무라가 조용히 물었다.
"실물은?"
"사건 발견이 11시라, 확보에는 실패했습니다. 이미 수거해가서 소각장으로." - P22

2

히무라와 나는 머리도 식힐 겸 가이즈카 앞까지 걸어가 ‘풍차‘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고풍스러운 간판이 취향이라...... 그런 건 아니고 흡연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 P22

"안심해, 일본어의 표현은 다양하니까. 순서대로 끈, 밧줄,  로프로 하면 어때?" - P23

"첫 번째는 이 남자입니다."
(중략).
뒷문에서 한 청년이 나타나 휴지와 음식물 쓰레기가 든 반투명 비닐봉지를 수거함에 던졌다. (중략).
"나가타 도모키, 24세, 106호에 혼자 사는 은행원입니다." - P27

100엔 숍 스티커가 붙은 열수축 필름에 나가타가 버린 것과 같은 끈이 들어 있었다. 제품명은 ‘다용도 마 끈 길이는 ‘20m‘. 굵기는 연필 정도일까. 평범한 갈색에 군데군데 보풀이 일어난, 농사일에 쓸 법한 흔히 볼 수 있는 끈이었다. - P24

"하라 겐이치, 44세. 집은 202호, 영상 제작 회사 직원입니다. 아내와 함께 사는데 아내는 지금 여행 중이라고 합니다."
(중략).
"고공 작업을 할 때 몸에 감는 추락 방지용 로프, 소위 말하는 생명줄이야. 발판 위를 옆으로 이동할 때 쓰는 건 수평 구명줄, 창문 청소처럼 승강 작업을 할 때 쓰는 건 수직 구명줄이라고 하지."
히무라가 설명해 주었다. 어디서 저런 지식을 얻어 오는 건지. - P25

"가토 료타, 30세. 집은 305호. 근처 중화요리점에서 일합니다. 독신이지만 어젯밤은 207호에 사는 시나다 유라는 남자를집으로 불러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알리바이가 있단 말씀입니까?"
"아니요. 새벽 0시 이후에는 둘 다 잠들었다고 해서...………."
(중략).
유명한 아웃도어 브랜드의 ‘반사 소재 텐트 로프‘였다. 길이는 ‘10m‘, 굵기는 끈과 밧줄의 중간 정도. - P27

"한 가지 더, 꼭 말씀드릴 점이. 가토 료타는 전과가 있습니다. 그래 봤자 고등학생 때 불량배들끼리 요란하게 싸움질을 한 게 다입니다만, 상해죄로 기소되어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경부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 P27

"오늘 아침 주민들이 버린 로프 형태의 쓰레기는 세 개. 저게전부입니다.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봉투 속 내용물도 야마구치씨가 일단 전부 확인했습니다." - P27

히무라는 천천히 팔짱을 꼈다.
"꼭 이 세 개중에 흉기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텐데요."  - P28

"......세 사람 다 소지품을 버렸다고 증언하던가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누가 현관 앞에 가져다 놓은 걸 기분 나빠서 버린 게아니라?"
"전부 자기 물건이라고 증언했습니다." - P28

"그렇다면 역시 이 세 사람 중에 ………… 앗!"
나는 작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재생되고 있던 영상 한구석에서 쓰레기 수거용 덤프트럭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략).
귀중한 증거품들은 이리하여 세상에서 사라졌다. - P29

"가능성으로는 로프가 유력하지만 결정적인 판단 근거가 없어. 다른 측면에서 따져 볼까?"
"그럼 단독범인지 아닌지부터."
"단독범이야."
히무라는 확신하며 말을 이었다. - P30

"흉기는 피해자의 집에 있던 장식품이었어. 그것도 교묘한 위장이라고 말하려고?" - P30

"범인이 아파트 주민이라고 단정한 이유는 여벌 열쇠에서 장갑 섬유가 나왔기 때문이야. 우연히 운 좋게 검출되어서 범인이 만졌다는 걸 알아냈지만 검출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 피해자가 직접 가져온 것으로 보고 정밀 조사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노리고 만든 상황으로 보기에는 불확정 요소가 너무 많아." - P31

"히무라 선생님 의견은?"
"범인이 침입한 시점에 피해자가 깨어 있었는지가 궁금해."
"...……아아, 새벽 1시였으니 피해자가 자고 있을 때 묶었을지도모르겠네." - P33

"끈, 밧줄, 로프, 유의어를 모아 보니 생각나는 단편이 있어. 쓰즈키 미치오가 쓴 <재킷 정장 수트>,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의 퇴직 형사가 나오는 단편이야.‘ - P33

"그 밖에 끈이라고 하면………… 란포의 《D 언덕 살인 사건》이 있지." - P33

나는 작은 고민을 털어놓기로 했다.
"기존 소설 캐릭터를 작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글로 쓸 수 있을까?"
"있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히무라가 대답했다. - P34

"동일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모호하다고 생각하는데. 네 소설에도 시리즈 캐릭터가 몇 명 있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와 지금의 그 인물은 같은 사람이야? 일 년 전과 오늘은? 성격이나 언행은변하는 거야, 작가의 마음속에서조차." - P35

그렇다면・・・・・・ 추리소설에서 독창성이란 무엇일까?
추리소설가들의 필사적인 창작은 전부 대체 가능한 영역인 건아닐까?
"내가 하는 일을 AI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불안해진 거로군." - P36

"재현 가능하다는 점이 그렇게 부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는않는데, 아리스 네가 종종 말하잖아, 본격 미스터리는 논리의 힘을 그리는 이야기라면서? 논리란 결국 과학이야. 과학의 본질은 재현성에 있어. 어떤 사람이 발견한 법칙이나 현상을 다른 사람이 실험으로 재현할 수 있는가. 재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불변의 사실로 인정받지. 불가능하다면 유사 과학이야. 미스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 P37

화제를 부교수의 전문 분야로 되돌렸다.
"끈, 밧줄, 로프...... 선택지는 세 개. 추리만으로 증거품 R을맞힐 수 있어?"
"아직 모르겠어. 내일은 문제의 세 사람과 이야기해 보자고."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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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은 뭘 찾는지가 달라졌잖아요." 칸즈위안이 자치의 말을 끊었다. (중략).
"불가능해요." 쉬유이가 고개를 저었다. - P335

"아뇨. 이번에는 훨씬 수월할 거예요. 셰자오후가 시신을 옮길 때 여행 가방이나 수레를 이용했을 테니까요."
쉬유이와 팀원들은 그제야 칸즈위안의 말을 이해했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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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가장 외로운 시대,
가장 외로운 세대


이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뜻밖의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중략), 나는 젊은 여성들의 우울증 치료 경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중략) 이 여성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자신이 우울감을 겪게 된 이유를 나름대로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P9

의아한 일이었다. 우울증을 겪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으레 사회성이 없고, 매우 음울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여성을 상상하게 마련이니, 별로 놀랍지 않은 일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 P10

가장 외로운 시대, 가장 외로운 세대

현대 사회에서 외로움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제는 정상으로 보일 만큼 새롭지만 흔한 현상, 심지어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 P11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외로움이 점점 만연해지는 현상을 보여주는 조사와 연구들이 속속들이 발표되고 있다.  - P11

만연한 외로움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2023년 미국 의무총감 비벡 머시는 외로움을 미국의 ‘전염병‘이자 공중 보건 위기라고선언했다. 2018년 영국에서는 ‘외로움부 장관 Minister of Loneliness‘직이 신설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P12

2018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20대 응답자 40%가 ‘항상‘ 외롭거나 ‘자주‘ 외롭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는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 P13

극단적 고립의 신호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쓰레기 집‘ 현상은 사회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노인 세대에서 주로 나타나는 문제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쓰레기 집은 갈수록 청년 세대의 문제로 떠오른다. - P13

우정마저 소멸해 가는 사회

‘손절‘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현상이 보여주듯 요즘은 인간관계를 단절하라는 조언이 흔한 시대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이토록 외로운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 P14

여러 학자와 사회 비평가들은 만연한 외로움이라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전통적인 낭만적 관계가 감소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일 또한 줄어드는 사실에 주목해 왔다. - P14

 사회적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 227건을 분석한 2013년의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친구 네트워크는 점점 좁아져, 200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1980년대 초반을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 친구 수가 약 서너 명적다.⁸ - P15

서론: 가장 외로운 시대, 가장 외로운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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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rnelia Wrzus, Martha Hänel, Jenny Wagner and Franz J. Neyer, "Social Network Changes and Life Events Across the Life Span:A Meta-Analysis", PsychologicalBulletin, 2013, 139(1), pp. 53-80. - P356

배우자나 애인이 없는 사람은 상상할 수 있어도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사람은 떠올리기 어렵다. - P15

‘사단법인 오늘은‘이 조사한 청년 세대의 관계 맺기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청년 열 명 중 4.6명은 현재 자신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 P16

관계의 비용과 기회비용

그렇다면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 P16

(전략). 실상은 오히려 케인스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근로 시간은 길어지고 소득 수준은 낮아지는 추세에 있다. 그리고 현재의 청년 세대는 이러한 사회 변화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 P17

흔히 "누구를 만날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고들 한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점점 더 오래, 더 불안정한 환경에서 노동한다.  - P17

(전략), 오늘날 상당수의 노동자는 전통적인 노동보호와 노동 안정성, 복지 없이 불안정한 노동을 지속한다. - P18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만연한 신자유주의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 그 자체가 경영을 통해 끊임없이 상품 가치를 높여야 할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 P18

2000년대 초 실리콘밸리에서는 업계의 이상적인 노동자상을 ‘제로 드래그zero drag‘¹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을 제외하고는어떤 인간관계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가족에서 연인까지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무도 지지 않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 P19

14 Arlie Russell Hochschild, The Time Bind: When Work Becomes Home and HomeBecomes Work, Macmillan, 2001, p. 18. - P356

관계를 쌓기 위해 우리는 자기 계발과 일자리 탐색을 위한 시간을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 P19

우리가 약속받은 경제성장과 ‘낙수효과‘를 통한 소득 증대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사회들에서 양극화는 계속해서 심해지기만 했다. - P20

독일 정치인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노력과 성과가 아니라 세습되는 자본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경제 봉건주의‘라고 규정하기도 한다.¹⁶ - P20

16 자라 바겐크네히트, 《풍요의 조건>, 장수한 옮김, 제르미날, 2018, p. 29 (SahraWagenknecht, Reichtum ohne Gier: Wie wir uns vor dem Kapitalismus retten, CampusVerlag, 2018). - P356

사랑의 형태

(전략).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역사적으로 나타난사랑의 형태를 세 가지 형식으로 구분한다.
강렬한 감정적 끌림과 성적 애착을 수반하는 ‘열정적 사랑‘은 근대 이전의 문헌들에서도 보편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중략). 그러나 기든스는 흔히 ‘로맨스‘와 연관되는 ‘낭만적 사랑‘은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중략). 기든스는 결혼이나 모성과 결합된 이성애 규범성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신을 솔직하게 열어 보이는 사랑, 서로의 정체성이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협상해 가는 ‘합류적 사랑‘이 현대적 사랑의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전통적 가족 형태와 이성애 규범성에 도전한 여성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의 성과이기도 했다. - P23

신자유주의라는 동전의 양면

인간관계에 관한 문화적 사고방식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손절이라는 용어의 유행이다. (중략). 그러나 이런 현실과는 상반되게도, 관계와 공동체의 회복을 촉구하는 대신 과감하게 단절과 고독을 받아들일 것을 권유하는 담론이 인기를 끌기도 한다. - P24

왜 우리는 외로워하면서도, 외로움을 인정하고 서로 의지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깊이 있는 관계에서 도피하는가?  - P24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의 말을 빌리자면, "신자유주의는 존재의 모든 측면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독특한 통치 이성 형식"이다.¹⁹ - P25

19 웬디 브라운, 《민주주의 살해하기》, 배충효·방진이 옮김, 내인생의책, 2017, p. 17(Wendy Brown, Undoing the Demos, Zone Books, 2015). - P356

신자유주의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은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경쟁논리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대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 P26

<오프라 윈프리 쇼> 등의 TV 프로그램, 《미움받을 용기》 등 유서 깊은 각종 심리학 서적과 심리학 자기 계발서가 보여주듯 사회학자들이 ‘치료요법 문화therapy culture‘ 또는 ‘치유문화‘라고 부르는이 문화에는 긴 역사가 있다. 그리고 이 문화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과 소셜 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해, (후략). - P27

치료요법 문화는 특히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지는 문화 현상이지만, 내면의 치유와 수련을 강조하는 이 문화의 전제들은 이미 우리사회에서 흔한 것이 되었다 - P28

치료요법 문화는 점점 더 봉건적으로 변해 가는 체제의 잔인성에 시달리는 우리 마음을 위무하는 문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경제에 꼭 부합하는 문화이자 외로움 위기를 심화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 P29

(전략).
MBTI부터 애착 유형 검사, 초민감자Highly Sensitive Person(이하 HSP)까지, 심리 검사를 통해 인간을 하나의 심리적 프로필로 요약하는것에 집착하는 문화는 인간관계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 P30

자아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외적 의미체계와 유대감의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 사회에서, 치료요법은 특히 청년들에게 정체성 구축을 위한 대안적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 사회의 청년들은 HSP, ADHD, 우울증 같은 진단명들을 일종의 대안적 정체성으로 여기기도 한다. - P31

게다가 행복이 삶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치료요법적 행복의 윤리는 타인과 공동체를 행복의 한 요소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보게 만든다. - P32

치료요법 문화는 유연하고 고독한 노동자, 사회성을 파괴하는 상품과 기술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소비자를 원하는 경제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P33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독재 정권이 아닌 이른바 진보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루어졌다. 신자유주의로의 변화는 마치 신자유주의가 진보가 내세운 가치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듯이 별다른 저항없이 이루어졌다.  - P34

이와 마찬가지로 치료요법 문화가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문화가 내세우는 건강, 행복, 진정성 같은 가치의 진보적 아우라 때문이다. - P34

특히 진보적 성향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오늘날 젊은 여성들은 치료요법 문화를 진보적 문화, 심지어는 페미니즘적 문화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 P34

치료요법 문화는 사회적 연대 없이 자유와 평등 같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라고 외치는 신자유주의 문화의 일부를 구성하기도 한다. - P35

(후략), 공동체나 사회와 어떤 연결감도 느끼지 못하며, 나의 아이돌과 상담사, 의사, ChatGPT‘(이하 챗GPT)에게만 내 이야기를털어놓을 수 있는, 그러나 나 자신도 내가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정확히 무언지 모르는, 외로움의 디스토피아이다. - P36

1부


내게 유해한 사람

치료요법 문화와 손절의 사회학


1장

인간관계
전문가의 시대


우리가 전문가 예능에 열광하는 이유

최근 몇 년간 가장 인기를 끈 TV 프로그램 포맷 중 하나는 전문가가 출연해 이른바 일반인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주는 것이다. - P39

(전략).
그 이유는 이 같은 프로그램들에서 결국 이 전문가들이 궁극적으로 바꾸려 하는 대상이 인간과 인간 정신이라는 점에 있다.  - P40

이러한 프로그램 형식에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며, 밤낮으로 자기 계발과 자기 관리에 몰두하는 삶을 이른바 ‘갓생‘, 즉 좋은 인생이라 여기는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무언가가 있다. - P40

 철학자 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어야만 하는 시대를 살아간다.³ - P40

1부: 내게 유해한 사람

3 미셸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심세광 외 옮김, 난장, 2012(Michel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Gallimard, 2004). - P357

다. 인간 자체가 상품, 곧 ‘인적자본‘의 총체라면, 인간의 심리적 특성 또한 하나의 자본이자 중요한 투자와 계발, 최적화의 대상이 된다. - P41

예능 밖으로 나온 빌런 찾기

백종원, 오은영, 강형욱 같은 전문가 엔터테이너들이 점점 더 유명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고, 이에따라 전문가 예능의 인기는 점차 사그라드는 추세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한 심리학적 향상이라는 장르 자체의 인기는 여전하다. - P42

유튜브에서 ‘인간관계‘라는 말을 검색하면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가 운영하는 다양한 채널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러한 채널들은 적지 않은 구독자를 보유 중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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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20세기 후반의 진화 심리학자들이 내세운 주장을 미리 보여준다. "세계의 주요 대륙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사는 민족 대부분에서 여성의 넓은 골반과 큰 엉덩이는 흔히 미의 중요한 특징으로 여겨진다." - P106

19세기 말에 이르자 골턴의 우생학은 미국으로 건너가서과학자들과 대중의 생각에 스며들었다. 오늘날 사람들 대부분은 우생학에 관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학살을 낳은 기괴하고 잔인한 사상이라고 알고 있지만, 20세기 초에 우생학은 대단한 인기를 끌며 침투하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였다. - P107

우생학자들은 사람과 신체를 기본적으로 ‘적합‘과 ‘부적합‘ 두 가지로 분류했다. - P107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생학자들은 미국 32개 주와 푸에르토리코에서 체계적인 불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1930년대 말까지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정신질환이 있거나, "정신박약"이라는 두루뭉술한 분류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본인의 의지에 반하는 불임 시술을 받았다. - P108

2010년까지도 캘리포니아 교도소에 투옥된 여성들은 본인의 의지에 반해 불임 시술을 받았다. - P108

인종차별 사상에 젖은 19세기의 과학자들이 인간의 위계를 이러쿵저러쿵 정하는 동안, 세라 바트먼의 유해는 퀴비에의 자연사 박물관 33번 진열장에 한 세기가 넘도록 전시되었다.⁵ㅃ - P109

51 세라 바트먼의 송환에 관련된 내용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Crais and Scully, SaraBaartman and the Hottentot Venus; Hershini Bhana Young, "Returning toHankey: Sarah Baartman and Endless Repatriations," in (Illegible Will: CoerciveSpectacles of Labor in South Africa and the Diaspora)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17), 29-72. 비교적 최근의 기사도참고로 삼았다. SuzanneDaley, "Exploited in Life and Death, South African to Go Home," (New YorkTimes), January 30, 2002, https://www.nytimes.com/2002/01/30/world/exploited-in-life-and-death-south-african-to-go-home.html; Obed Zilwa, "S.
Africa Buries Remains of ‘Sarah," AP News, August 9, 2002, https://apnews.
com/article/b92223d9da4a13252640e2340899ef1a. to미술사·시각문화를 가르치는 조교수 노무사 마쿠부에게, 남아프리카와 그 지역페미니즘에 바트먼이 남긴 유산에 관해 들었다. - P373

만델라는 고인류학자이자 남아프리카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과학자의 한 사람이었던 필립 토비아스Phillip Tobias 교수를 파리에 보내 협상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심한 반발을 마주해야 했다. 인류 박물관 관장은 두 가지 이유를 들며 바트먼의 유해를 송환할 수 없다고 맹렬히 반대했다. 첫째,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그곳엔 전 세계에서 수집한 인간 뼈와 다른 유해 수천 점이 있었는데 이를 전부 반환하고 싶진 않았다). (후략). - P110

영영 풀리지 않을 난제로 보였으나, 프랑스 상원의원 니콜라 아부Nicolas About가 바트먼의 유해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반환하도록 박물관에 요구하는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002년에 법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 P111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세라 바트먼의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고 그가 무엇을 대표하는지에 관한 토론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많은 여성이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유해가 송환된 당시에 만들어진 동상을 철거하려는 싸움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 P112

3장

형태에서 집착으로


(전략). 뜻밖의 수확도 있었는데, 바로 빅토리아시대 속옷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 P116

그런데 빅토리아 시대 속옷 가운데, 내가 알기로 아직 드라마에서 중요한 의미로 쓰인 적이 없는 품목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버슬bustle이다.  - P116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바트먼과 버슬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을 희미하게나마 알아챌 수 있다.  - P117

(전략).
사라넬라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관람 장소에는 커다란 테이블 세 개가 놓여 있었다. 흰색 보관 용지를 깐 테이블 위에내가 관람을 신청한 의류가 있었다. - P119

내가 제일 먼저 살펴본 버슬은 패턴이 그려진 고동색 쿠션으로, 솜을 넣어 크기가 다양한 타원형 돌출부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 P120

나는 보관소를 찾기 전에 기초적인 실용 지식으로 중무장했다. 최초의 버슬, 즉 버슬의 원형은 옷이 여성의 몸에 감기지 않도록 허리의 잘록한 부분에 작은 면 패드를 대어 묶은 것이었다. - P120

태피터 드레스 아래에는 여러 겹의 면 치마를 받쳐 입는게 보통이었는데, 착용자는 그 무게와 열기를 견뎌야 했다. 이런 디자인의 의도는 커다란 퍼프를 만들어내서 드레스의 호화로움과 풍성함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중략). 1850년대에 이르자 치마는 여자들이 출입구를 지나갈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 P121

이때 버슬이 등장한다.⁵ - P121

3장, 형태에서 집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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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버슬에 관한 기본 정보는 다음을 비롯해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다. C. Willettand Phillis Cunnington, (The History of Underclothes) (New York: Dover, 2013);Karen Bowman, (Corsets and Codpieces: A History of Outrageous Fashion, from Roman Times to the Modern Era) (New York: Skyhorse Publishing, 2016);Wendy Tomlinson, "All About the Bustle," Grey Roots Museum & Archives, https://greyroots.com/story/all-about-bustle. - P374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던 세 개의버슬은 각각 다른 시대에서 왔고, 그것들을 착용한 사람들은 각각 다른 종류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을 것 같다. - P122

실크 칼라를 턱 끝까지 올리고, 마찬가지로 실크로 된 치맛단으로 발목까지 덮은 채, 엉덩이에는 툭 튀어나온 쿠션을 묶은 내 모습. 겹겹이 치마를 걸치면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더울지 생각했다.  - P123

버슬을 자주 잡아당기고 거기 매달린 다양한 물체와 씨름해야 했을 것이다. 앉아 있을 때조차, 편하게 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세기의 다른 의류에 비해 버슬은 패션 역사학자들에게외면받았지만, 그래도 버슬이 큰 인기를 끈 이유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론이 존재한다.  - P123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이런 설명들은 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버슬은 누가 뭐래도 엉덩이를 커 보이게 하는 장치다.  - P125

버슬 보관소로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나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의 큐레이터이자 속옷의 역사에 대해 널리 글을 써온 영향력 있는 패션 역사학자 에드위나 어먼 Edwina Ehrman을 만났다.¹⁰
(전략). 그러나 어만은 빅토리아 시대에 살던 많은 사람이 실제로는 서로의 몸을 예민하게 느끼며 지냈다고 지적한다.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서로 몸을 비비며 지냈어요. 집마다 화장실이 따로 있지 않았고요" - P126

10 이하 정보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의 큐레이터 에드위나 어먼과의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 P374

서로 그만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치마만 들어 올리면화장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정도로 노출된 타인의몸을 흔히 보며 살았기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엉덩이의 기능과 그 산물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 - P126

과거 르네상스 시대의 속옷 디자인은 그 아래 감추고 있는 신체에 관한 도발적 암시를 의도한 것이었지만,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의 몸을 조이고 속박하는 코르셋은 그 자체로 욕망의 대상이었다.¹¹ - P127

11 빅토리아 시대 속옷에 대한 이 이론의 출처는 다음 논문이다. Casey Finch, "Hooked and Buttoned Together‘: Victorian Underwear and Representations ofthe Female Body," (Victorian Studies 34), no. 3 (1991): 337-63. - P374

(전략).
<아이리시 페니 저널>에 이 기사가 실린 날은 세라 바트먼열풍이 정점이던 때로부터 20년 넘게 지난 시기였지만, 바트먼은 이번엔 농담의 형태로 신문 지상에 다시 등장했다. - P128

바트먼이 아직 살아 있던 1814년에,¹³ 파리에서 <호텐토트비너스: 또는 프랑스 여자에 대한 혐오 The Hottentot Venus; or, The Hatred of Frenchwomen)>¹⁴라는 제목의 보드빌 극이 무대에 올랐다.
(중략). 흑인의 커다란 엉덩이는 처음에 주인공의동물적 욕망을 자극하지만, 결국 특권을 갖고 귀한 대접을 받으며 심지어 성적으로 더 매력 있다고 인정받는 것은 백인의 작은 엉덩이다. - P129

13 이 장에서 다룬 세라 바트먼과 "호텐토트 비너스"의 역사는 주로 자넬 홉슨과의E). Holmes, (Hottentot Venus; Crais and Scully, Sara Baartman and the Hottentot Venus).

14 Emmanuel Théaulon de Lambert, Achille d‘Artois, and Nicolas Brazier, (TheHottentot Venus; or, The Hatred of Frenchwomen), November 19, 1814. - P374

이렇듯 문화적 증거가 여럿 존재하는데도, 많은 패션 역사학자는 버슬을 특정한 신체 부위를 강조하기보다 전체적인실루엣을 만드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으로 취급한다.  - P130

 엉덩이가 아주 큰, 특정한 신체를 지닌 흑인 여성의 실루엣은 19세기의 과학과 대중문화에 깊이 엮여 있었다.  - P130

바트먼은 인간보다 못한 아프리카인의 정수로서 박물관 유리장 안에 박제되었다. (중략). 그렇다면 백인 여성들이그의 신체를 모방하고 싶었던 건 왜일까? - P130

1991년에 비평가 리사 존스Lisa Jones와의 인터뷰에서 시인 엘리자베스 앨릭잰더는 세라 바트먼의 신체와 버슬의 관계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¹⁶ "당신이 집착하는 것,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 당신이 파괴해야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무엇보다도 강렬히 원하는 것입니다." - P131

16 Lisa Jones, "Venus Envy," (Village Voice 36), no. 28 (July 9, 1991): 36. - P374

사라넬라는 결국 마네킹에게 버슬을 착용시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버슬을 입은 마네킹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 P132

우리가 몸에 걸치는 물건들은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드러내고 싶은지, 남에게 어떻게 보이고 이해받고 싶은지를 물질문화의 여러 유형 중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 P132

19세기 여성들이 허리에 착용한 퍼프와 패드와 틀을 설계한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였고,¹⁷ 막상 그것을 실제로 제작한 사람들은 주로 여자였다.¹⁸

17 Eschner, "Although Less Deadly Than Crinolines."

18 Nancy L. Green, "Women and Immigrants in the Sweatshop: Categories of LaborSegmentation Revisited,"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38), no.3 (1996): 414. - P133

 세라 바트먼은 반세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삶과 죽음이 남긴 유산은 꾸준히 끌려나오는 중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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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석해도 되겠습니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히무라가 "그러시죠."라고 대답했다. 히무라가 개의치 않는다면 나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 - P134

어제 이벤트 이야기에, 내 신작 이야기, 거기에서 파생해서 다음주에 개봉하는 미스터리 영화와 그 원작 소설 이야기가 나왔다.
두 잔째 맥주가 사라질 때쯤에는 그럭저럭 어색한 분위기도누그러졌다. - P135

"아리스가와 씨는 호러도 쓰시죠. 철도 폐선에서 시체를 발견하는 이야기, 읽었어요. 그 작품과 약간 비슷하다고 할까. 친구가 아는 프리랜서 기자가 행방불명된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가 떠올라서 오싹했어요. 그 사람은 시체로 발견된 건 아니고 폐쇄된 역에 짐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만." - P135

자발적으로 심령 스폿에 가지는 않아도 실제로 가 봤다는 사람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여기에서 유령이 나와요."라는 말을 들으면 이것저것 상상을 부풀리기는 한다. - P136

"쓰지 씨는 괴담을 좋아하시나요?"
"실은 그렇습니다."
계속 운을 띄우길래 그럴 줄 알았다. - P136

"부끄럽지만 학창 시절에는 심령 스폿 투어가 취미였어요. 친구집에서 기묘한 일이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재워 달라고 끈질기게 매달린 적도 있고...………. 몇 번은 으스스한 경험도 해봤어요."
내가 관심을 보이며 몸을 앞으로 내밀자 쓰지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으리라. - P137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마음대로 가져가세요‘라는 종이와 함께 전기로 작동하는 장난감을 상자째 버렸다. 인기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쓰는 무기도 있었는데 한때 매진될 정도로 인기 있는 제품이었다. - P138

이 집만 그런 게 아니라 건물 자체에 뭔가 있는 게 아닐까 불안했지만 집세도 저렴하고 가전제품 오작동 외에는 딱히 피해가 없어서 그대로 살고 있다.………….  - P139

(전략).
"후배분이 한밤중에 탄내를 맡았다고 했는데,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소문의 명탐정이 이야기의 세부 사항에 관심을 보여서 기뻤는지, 쓰지는 자세를 가다듬고 설명했다. - P141

"그 아파트 말입니다만, 혹시 고속도로 근처에 있지 않습니까?"
"아, 예, 00 나들목 출구 근처예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히무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했다.
(중략).
히무라도 내가 눈치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중략).
"아파트에서 발생한 가전제품 오작동은 아마 트럭 무선이 원인일 겁니다." - P142

"밤새 장거리를 달리는 트럭 중에는 개조한 불법 무선기를 싣고 다니는 차량이 있습니다. 출력을 최대한 높혀 두기 때문에 인근 가게나 민가의 가전제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지요. 그 때문에 텔레비전이나 에어컨이 멋대로 작동했을 겁니다." - P143

"기대하는 답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원인이 뭘까 계속 궁금했는데속이 다 후련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히무라에게 쓰지가 다급히 그렇게 말했다. 쓰지의 입장에서는 기묘한 경험담을 부정당한 꼴이었지만, 다행히 마음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 P144

"그 밖에도 몇 가지 경험한 게 있는데 들어 주시겠어요? 이것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꼭 들어 보고 싶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쩌면 아리스가와 씨 창작에 힌트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쓰지는 히무라에게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 P144

쓰지가 대학 1학년 때였다고 한다.
(중략).
친구가 뭐야, 하고 맥이 풀린 소리를 냈다.
쓰지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진짜 쫄......."
쫄았다고 말하려다 숨을 삼켰다.
인형 탈 목 부분이 움직이고 있다.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두 사람 쪽을 돌아보려는 것처럼. - P147

인형 탈이 머리만 떨어져 있었던 것도, 그게 움직인 것도 기괴해서 무섭다면 무섭지만 그것이 실화고 한밤중에 비성수기 휴양지 산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심령 현상과는 다른 해석이 성립한다. - P148

히무라는 바로 알아차렸겠지만 "당신, 그거 누가 봐도 살아 있는 사람이잖아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도 말하지 않는다. - P149

"하나는 제 경험이라고 해도 될지 미묘하긴 한데. 저는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현장을 찾아간 것뿐이라…………. 산악부 출신 친구가 산속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는 거예요."
"산속 괴담인가요."
괴담 중에서는 메이저 장르다. - P150

"산악부 출신이라고 해도 그 친구는 험한 산을 오르지는 않고 경치를 즐기며 산을 돌아다니는 게 취미예요. 대부분 혼자서 당일치기가 가능한 높이의 산을 올랐다고 합니다." - P151

길가에 지은 자그마한 오두막이다.
(중략). 대개 산꼭대기와 중턱에 있는데 숙소와 식당, 매점을 겸하곤 한다. 하지만 그 오두막은 그런 시설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알 수 있었다. - P152

오두막 안을 둘러보았지만 볼만한 건 딱히 없었다. 이용객의 사인이나 낙서라도 없을까 싶었지만 다들 얌전했던 것 같다. 북쪽을 바라보는 벽에 뭔가에 긁힌 듯한, 약간 눈에 띄는 흠집이 전부였다. - P153

उ그리고 한 시간쯤 걸었다. 이제 삼십 분만 더 걸으면 정상에도착할 것이다.
(중략). 바로 한 시간 전에 쉬었던, 그 오두막하고 똑같이 생긴 건물이 또 길가에 있었다. - P153

그리 높은 산도 아닌데 이렇게 짧은 거리에 휴게소가 두 채나 있다는 건 이상하다. 이상하지만, 있는 걸 어쩌겠나. - P154

평범한 흠집이다. 하지만 아까 그 오두막에도 같은 자리에, 비슷한 흠집이 있었다.
흠집을 본 순간 아까 본 광경이 떠오르자 오싹해서 가슴이 벌렁거렸다.
우연이라 해도 오싹하다. 어쩐지 안에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 P155

"(전략)……그래서 그 친구에게 자세한 장소를물어서 제가 직접 가 봤어요."
"행동력이 대단한데요."
나는 감탄해서 말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 P156

"하지만 한 채뿐이었어요. 이야기로 들은 것처럼 산 중턱에 휑하니 껍데기만 남아 있는 작은 오두막이 있었어요. 벽에 난 흠집도, 고양이 낙서도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 앨범을 거슬러 올라가 사진을 보여 주었다. - P156

"낭만이고 뭐고 없는데요, 기묘한 경험을 했다는 추억 그대로 남겨 두는 게 즐거울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친구는 무서워서 다시는 그 산에 오르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유령의 소행이 아니라고 말해 주면 기뻐할 거예요." - P158

같은 장소에 흠집이나 낙서가 있었다고 해서 똑같은 건물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긴 그렇다. 우연의 일치일 리 없으니 누군가 의도적으로 꾸몄다는 것도 듣고 보면 합리적인 설명이었다.
하지만 깊은 산속, 그것도 이용객이 적은 오두막에 일부러 그런 장난을 치다니 보통은 생각해 볼 수 없는 일이다. - P159

"도보 한 시간 거리에 오두막을 두 채나 지은 이유가 더 궁금해."
내가 애써 말을 돌리자 히무라가 대꾸했다.
"확실히, 아리스, 넌 어떻게 생각해?" - P160

산 소유주에게 문의해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다.
"듣고 보니 ・・・・・・ 그렇네요. 현실적인 해석입니다." - P162

대학생이었던 쓰지가 여느 때처럼 심령 스폿 투어에 빠져 있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여름 방학으로 고향에 돌아가 있던 쓰지를 고등학교 때 친했던 동급생 가가와가 폐업한 유원지로 담력 시험을 가자고 꾀어냈다. - P163

다만 피에로 간판이 있던 미러 하우스가 굉장히 무서웠다. - P164

"무슨 일이 있으면 내 책임이 되니까. 회사에서 잘리기는 싫어."
불법 침입 사실이 알려지기만 해도 유모토는 해고당할 것이다. 쓰지와 가가와는 최대한 조심하겠다고 약속했다. - P165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렇게 중얼거리긴 했지만 들어가 보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중략).
"우리가 찾으러 오기를 안에서 기다리다가 깜짝 놀래 줄 심산인지도 몰라." - P167

오 분쯤 지나 가가와가 출구로 나왔다.
쓰지와 눈이 마주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들어간 사이에 선배가 나왔어?"
가가와는 안에서 유모토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 P168

이번에는 가가와가 출입구를 지키고 쓰지가 안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 P169

정면에 있는 거울 앞에서 길은 왼쪽으로 이어졌다.
어째서 이 거울만 다른 거울과 다를까? 가까이 다가가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불빛을 비춘 순간, 거울 속 쓰지의 모습 위에 포개지듯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 P171

"그래서 유모토 씨는 발견됐습니까?"
내가 묻자 쓰지는 고개를 저었다. - P173

무사하다고 해도 "날 두고 가다니!" 하고 엉뚱하게 원망이라도 사면 곤란하다고 생각했으리라. 그 심정은 이해한다. - P174

"저는 우연히 알고 있는 어떤 사실 때문에 눈치챈 것뿐입니다. .....너도 아는 것 같군, 아리스?"
"트릭에 쓰려고 조사한 적이 있거든."
진상을 알아차렸다고 해서 자랑할 건 못 된다고 아주 못을 박는구나. 그러지 않아도 이런 일로 우쭐대지는 않는다. - P175

"그 미러 하우스에는 손님을 공포에 떨게 하는 장치가 있었던게 아닐까요? 가령 귀신으로 분장한 직원이 미로 안에 숨어 있거나 쫓아오는." - P177

"아마 그 한 개만 매직미러였을 겁니다. 매직미러는 빛을 투과시켜야 해서 도료로 표면을 보호할 수 없죠. 그래서 일반 거울보다 흠이 잘 납니다. 모습이 잘 비치도록 표면을 닦아 놓은 건 유모토 씨였겠죠." - P177

"아마 철거 작업을 맡게 된 유모토 씨는 미리 현장을 둘러보았다가 미러 하우스에서 비밀 문을 발견했을 겁니다. 겁 많은 후배 가가와 씨를 놀려 주려고 처음부터 작정했던 게 아닐까요?"
가가와는 미러 하우스 안에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했다. 그래서 유모토가 마련한 ‘유령이 비치는 단 한 장의 깨끗한 거울‘ 장치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 P178

"제가 본 유령은 거울 반대편에 있었던 유모토 씨였다는 말씀이군요. 얼굴은 확인도 못하고 달아나서 전혀 몰랐어요………… 하아, 그랬나." - P179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남은 안주를 먹고 있는데 카운터에 혼자 앉아 있던 손님이 일어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짐은 그대로 두었길래 화장실에 가는가 했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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