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가장 외로운 시대,
가장 외로운 세대


이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뜻밖의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중략), 나는 젊은 여성들의 우울증 치료 경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중략) 이 여성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자신이 우울감을 겪게 된 이유를 나름대로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P9

의아한 일이었다. 우울증을 겪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으레 사회성이 없고, 매우 음울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여성을 상상하게 마련이니, 별로 놀랍지 않은 일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 P10

가장 외로운 시대, 가장 외로운 세대

현대 사회에서 외로움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제는 정상으로 보일 만큼 새롭지만 흔한 현상, 심지어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 P11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외로움이 점점 만연해지는 현상을 보여주는 조사와 연구들이 속속들이 발표되고 있다.  - P11

만연한 외로움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2023년 미국 의무총감 비벡 머시는 외로움을 미국의 ‘전염병‘이자 공중 보건 위기라고선언했다. 2018년 영국에서는 ‘외로움부 장관 Minister of Loneliness‘직이 신설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P12

2018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20대 응답자 40%가 ‘항상‘ 외롭거나 ‘자주‘ 외롭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는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 P13

극단적 고립의 신호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쓰레기 집‘ 현상은 사회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노인 세대에서 주로 나타나는 문제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쓰레기 집은 갈수록 청년 세대의 문제로 떠오른다. - P13

우정마저 소멸해 가는 사회

‘손절‘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현상이 보여주듯 요즘은 인간관계를 단절하라는 조언이 흔한 시대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이토록 외로운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 P14

여러 학자와 사회 비평가들은 만연한 외로움이라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전통적인 낭만적 관계가 감소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일 또한 줄어드는 사실에 주목해 왔다. - P14

 사회적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 227건을 분석한 2013년의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친구 네트워크는 점점 좁아져, 200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1980년대 초반을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 친구 수가 약 서너 명적다.⁸ - P15

서론: 가장 외로운 시대, 가장 외로운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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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rnelia Wrzus, Martha Hänel, Jenny Wagner and Franz J. Neyer, "Social Network Changes and Life Events Across the Life Span:A Meta-Analysis", PsychologicalBulletin, 2013, 139(1), pp. 53-80. - P356

배우자나 애인이 없는 사람은 상상할 수 있어도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사람은 떠올리기 어렵다. - P15

‘사단법인 오늘은‘이 조사한 청년 세대의 관계 맺기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청년 열 명 중 4.6명은 현재 자신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 P16

관계의 비용과 기회비용

그렇다면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 P16

(전략). 실상은 오히려 케인스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근로 시간은 길어지고 소득 수준은 낮아지는 추세에 있다. 그리고 현재의 청년 세대는 이러한 사회 변화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 P17

흔히 "누구를 만날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고들 한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점점 더 오래, 더 불안정한 환경에서 노동한다.  - P17

(전략), 오늘날 상당수의 노동자는 전통적인 노동보호와 노동 안정성, 복지 없이 불안정한 노동을 지속한다. - P18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만연한 신자유주의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 그 자체가 경영을 통해 끊임없이 상품 가치를 높여야 할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 P18

2000년대 초 실리콘밸리에서는 업계의 이상적인 노동자상을 ‘제로 드래그zero drag‘¹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을 제외하고는어떤 인간관계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가족에서 연인까지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무도 지지 않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 P19

14 Arlie Russell Hochschild, The Time Bind: When Work Becomes Home and HomeBecomes Work, Macmillan, 2001, p. 18. - P356

관계를 쌓기 위해 우리는 자기 계발과 일자리 탐색을 위한 시간을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 P19

우리가 약속받은 경제성장과 ‘낙수효과‘를 통한 소득 증대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사회들에서 양극화는 계속해서 심해지기만 했다. - P20

독일 정치인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노력과 성과가 아니라 세습되는 자본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경제 봉건주의‘라고 규정하기도 한다.¹⁶ - P20

16 자라 바겐크네히트, 《풍요의 조건>, 장수한 옮김, 제르미날, 2018, p. 29 (SahraWagenknecht, Reichtum ohne Gier: Wie wir uns vor dem Kapitalismus retten, CampusVerlag, 2018). - P356

사랑의 형태

(전략).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역사적으로 나타난사랑의 형태를 세 가지 형식으로 구분한다.
강렬한 감정적 끌림과 성적 애착을 수반하는 ‘열정적 사랑‘은 근대 이전의 문헌들에서도 보편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중략). 그러나 기든스는 흔히 ‘로맨스‘와 연관되는 ‘낭만적 사랑‘은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중략). 기든스는 결혼이나 모성과 결합된 이성애 규범성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신을 솔직하게 열어 보이는 사랑, 서로의 정체성이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협상해 가는 ‘합류적 사랑‘이 현대적 사랑의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전통적 가족 형태와 이성애 규범성에 도전한 여성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의 성과이기도 했다. - P23

신자유주의라는 동전의 양면

인간관계에 관한 문화적 사고방식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손절이라는 용어의 유행이다. (중략). 그러나 이런 현실과는 상반되게도, 관계와 공동체의 회복을 촉구하는 대신 과감하게 단절과 고독을 받아들일 것을 권유하는 담론이 인기를 끌기도 한다. - P24

왜 우리는 외로워하면서도, 외로움을 인정하고 서로 의지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깊이 있는 관계에서 도피하는가?  - P24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의 말을 빌리자면, "신자유주의는 존재의 모든 측면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독특한 통치 이성 형식"이다.¹⁹ - P25

19 웬디 브라운, 《민주주의 살해하기》, 배충효·방진이 옮김, 내인생의책, 2017, p. 17(Wendy Brown, Undoing the Demos, Zone Books, 2015). - P356

신자유주의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은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경쟁논리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대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 P26

<오프라 윈프리 쇼> 등의 TV 프로그램, 《미움받을 용기》 등 유서 깊은 각종 심리학 서적과 심리학 자기 계발서가 보여주듯 사회학자들이 ‘치료요법 문화therapy culture‘ 또는 ‘치유문화‘라고 부르는이 문화에는 긴 역사가 있다. 그리고 이 문화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과 소셜 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해, (후략). - P27

치료요법 문화는 특히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지는 문화 현상이지만, 내면의 치유와 수련을 강조하는 이 문화의 전제들은 이미 우리사회에서 흔한 것이 되었다 - P28

치료요법 문화는 점점 더 봉건적으로 변해 가는 체제의 잔인성에 시달리는 우리 마음을 위무하는 문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경제에 꼭 부합하는 문화이자 외로움 위기를 심화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 P29

(전략).
MBTI부터 애착 유형 검사, 초민감자Highly Sensitive Person(이하 HSP)까지, 심리 검사를 통해 인간을 하나의 심리적 프로필로 요약하는것에 집착하는 문화는 인간관계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 P30

자아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외적 의미체계와 유대감의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 사회에서, 치료요법은 특히 청년들에게 정체성 구축을 위한 대안적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 사회의 청년들은 HSP, ADHD, 우울증 같은 진단명들을 일종의 대안적 정체성으로 여기기도 한다. - P31

게다가 행복이 삶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치료요법적 행복의 윤리는 타인과 공동체를 행복의 한 요소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보게 만든다. - P32

치료요법 문화는 유연하고 고독한 노동자, 사회성을 파괴하는 상품과 기술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소비자를 원하는 경제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P33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독재 정권이 아닌 이른바 진보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루어졌다. 신자유주의로의 변화는 마치 신자유주의가 진보가 내세운 가치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듯이 별다른 저항없이 이루어졌다.  - P34

이와 마찬가지로 치료요법 문화가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문화가 내세우는 건강, 행복, 진정성 같은 가치의 진보적 아우라 때문이다. - P34

특히 진보적 성향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오늘날 젊은 여성들은 치료요법 문화를 진보적 문화, 심지어는 페미니즘적 문화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 P34

치료요법 문화는 사회적 연대 없이 자유와 평등 같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라고 외치는 신자유주의 문화의 일부를 구성하기도 한다. - P35

(후략), 공동체나 사회와 어떤 연결감도 느끼지 못하며, 나의 아이돌과 상담사, 의사, ChatGPT‘(이하 챗GPT)에게만 내 이야기를털어놓을 수 있는, 그러나 나 자신도 내가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정확히 무언지 모르는, 외로움의 디스토피아이다. - P36

1부


내게 유해한 사람

치료요법 문화와 손절의 사회학


1장

인간관계
전문가의 시대


우리가 전문가 예능에 열광하는 이유

최근 몇 년간 가장 인기를 끈 TV 프로그램 포맷 중 하나는 전문가가 출연해 이른바 일반인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주는 것이다. - P39

(전략).
그 이유는 이 같은 프로그램들에서 결국 이 전문가들이 궁극적으로 바꾸려 하는 대상이 인간과 인간 정신이라는 점에 있다.  - P40

이러한 프로그램 형식에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며, 밤낮으로 자기 계발과 자기 관리에 몰두하는 삶을 이른바 ‘갓생‘, 즉 좋은 인생이라 여기는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무언가가 있다. - P40

 철학자 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어야만 하는 시대를 살아간다.³ - P40

1부: 내게 유해한 사람

3 미셸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심세광 외 옮김, 난장, 2012(Michel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Gallimard, 2004). - P357

다. 인간 자체가 상품, 곧 ‘인적자본‘의 총체라면, 인간의 심리적 특성 또한 하나의 자본이자 중요한 투자와 계발, 최적화의 대상이 된다. - P41

예능 밖으로 나온 빌런 찾기

백종원, 오은영, 강형욱 같은 전문가 엔터테이너들이 점점 더 유명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고, 이에따라 전문가 예능의 인기는 점차 사그라드는 추세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한 심리학적 향상이라는 장르 자체의 인기는 여전하다. - P42

유튜브에서 ‘인간관계‘라는 말을 검색하면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가 운영하는 다양한 채널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러한 채널들은 적지 않은 구독자를 보유 중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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