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20세기 후반의 진화 심리학자들이 내세운 주장을 미리 보여준다. "세계의 주요 대륙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사는 민족 대부분에서 여성의 넓은 골반과 큰 엉덩이는 흔히 미의 중요한 특징으로 여겨진다." - P106

19세기 말에 이르자 골턴의 우생학은 미국으로 건너가서과학자들과 대중의 생각에 스며들었다. 오늘날 사람들 대부분은 우생학에 관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학살을 낳은 기괴하고 잔인한 사상이라고 알고 있지만, 20세기 초에 우생학은 대단한 인기를 끌며 침투하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였다. - P107

우생학자들은 사람과 신체를 기본적으로 ‘적합‘과 ‘부적합‘ 두 가지로 분류했다. - P107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생학자들은 미국 32개 주와 푸에르토리코에서 체계적인 불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1930년대 말까지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정신질환이 있거나, "정신박약"이라는 두루뭉술한 분류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본인의 의지에 반하는 불임 시술을 받았다. - P108

2010년까지도 캘리포니아 교도소에 투옥된 여성들은 본인의 의지에 반해 불임 시술을 받았다. - P108

인종차별 사상에 젖은 19세기의 과학자들이 인간의 위계를 이러쿵저러쿵 정하는 동안, 세라 바트먼의 유해는 퀴비에의 자연사 박물관 33번 진열장에 한 세기가 넘도록 전시되었다.⁵ㅃ - P109

51 세라 바트먼의 송환에 관련된 내용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Crais and Scully, SaraBaartman and the Hottentot Venus; Hershini Bhana Young, "Returning toHankey: Sarah Baartman and Endless Repatriations," in (Illegible Will: CoerciveSpectacles of Labor in South Africa and the Diaspora)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17), 29-72. 비교적 최근의 기사도참고로 삼았다. SuzanneDaley, "Exploited in Life and Death, South African to Go Home," (New YorkTimes), January 30, 2002, https://www.nytimes.com/2002/01/30/world/exploited-in-life-and-death-south-african-to-go-home.html; Obed Zilwa, "S.
Africa Buries Remains of ‘Sarah," AP News, August 9, 2002, https://apnews.
com/article/b92223d9da4a13252640e2340899ef1a. to미술사·시각문화를 가르치는 조교수 노무사 마쿠부에게, 남아프리카와 그 지역페미니즘에 바트먼이 남긴 유산에 관해 들었다. - P373

만델라는 고인류학자이자 남아프리카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과학자의 한 사람이었던 필립 토비아스Phillip Tobias 교수를 파리에 보내 협상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심한 반발을 마주해야 했다. 인류 박물관 관장은 두 가지 이유를 들며 바트먼의 유해를 송환할 수 없다고 맹렬히 반대했다. 첫째,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그곳엔 전 세계에서 수집한 인간 뼈와 다른 유해 수천 점이 있었는데 이를 전부 반환하고 싶진 않았다). (후략). - P110

영영 풀리지 않을 난제로 보였으나, 프랑스 상원의원 니콜라 아부Nicolas About가 바트먼의 유해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반환하도록 박물관에 요구하는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002년에 법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 P111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세라 바트먼의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고 그가 무엇을 대표하는지에 관한 토론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많은 여성이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유해가 송환된 당시에 만들어진 동상을 철거하려는 싸움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 P112

3장

형태에서 집착으로


(전략). 뜻밖의 수확도 있었는데, 바로 빅토리아시대 속옷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 P116

그런데 빅토리아 시대 속옷 가운데, 내가 알기로 아직 드라마에서 중요한 의미로 쓰인 적이 없는 품목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버슬bustle이다.  - P116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바트먼과 버슬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을 희미하게나마 알아챌 수 있다.  - P117

(전략).
사라넬라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관람 장소에는 커다란 테이블 세 개가 놓여 있었다. 흰색 보관 용지를 깐 테이블 위에내가 관람을 신청한 의류가 있었다. - P119

내가 제일 먼저 살펴본 버슬은 패턴이 그려진 고동색 쿠션으로, 솜을 넣어 크기가 다양한 타원형 돌출부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 P120

나는 보관소를 찾기 전에 기초적인 실용 지식으로 중무장했다. 최초의 버슬, 즉 버슬의 원형은 옷이 여성의 몸에 감기지 않도록 허리의 잘록한 부분에 작은 면 패드를 대어 묶은 것이었다. - P120

태피터 드레스 아래에는 여러 겹의 면 치마를 받쳐 입는게 보통이었는데, 착용자는 그 무게와 열기를 견뎌야 했다. 이런 디자인의 의도는 커다란 퍼프를 만들어내서 드레스의 호화로움과 풍성함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중략). 1850년대에 이르자 치마는 여자들이 출입구를 지나갈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 P121

이때 버슬이 등장한다.⁵ - P121

3장, 형태에서 집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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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버슬에 관한 기본 정보는 다음을 비롯해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다. C. Willettand Phillis Cunnington, (The History of Underclothes) (New York: Dover, 2013);Karen Bowman, (Corsets and Codpieces: A History of Outrageous Fashion, from Roman Times to the Modern Era) (New York: Skyhorse Publishing, 2016);Wendy Tomlinson, "All About the Bustle," Grey Roots Museum & Archives, https://greyroots.com/story/all-about-bustle. - P374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던 세 개의버슬은 각각 다른 시대에서 왔고, 그것들을 착용한 사람들은 각각 다른 종류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을 것 같다. - P122

실크 칼라를 턱 끝까지 올리고, 마찬가지로 실크로 된 치맛단으로 발목까지 덮은 채, 엉덩이에는 툭 튀어나온 쿠션을 묶은 내 모습. 겹겹이 치마를 걸치면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더울지 생각했다.  - P123

버슬을 자주 잡아당기고 거기 매달린 다양한 물체와 씨름해야 했을 것이다. 앉아 있을 때조차, 편하게 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세기의 다른 의류에 비해 버슬은 패션 역사학자들에게외면받았지만, 그래도 버슬이 큰 인기를 끈 이유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론이 존재한다.  - P123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이런 설명들은 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버슬은 누가 뭐래도 엉덩이를 커 보이게 하는 장치다.  - P125

버슬 보관소로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나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의 큐레이터이자 속옷의 역사에 대해 널리 글을 써온 영향력 있는 패션 역사학자 에드위나 어먼 Edwina Ehrman을 만났다.¹⁰
(전략). 그러나 어만은 빅토리아 시대에 살던 많은 사람이 실제로는 서로의 몸을 예민하게 느끼며 지냈다고 지적한다.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서로 몸을 비비며 지냈어요. 집마다 화장실이 따로 있지 않았고요" - P126

10 이하 정보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의 큐레이터 에드위나 어먼과의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 P374

서로 그만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치마만 들어 올리면화장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정도로 노출된 타인의몸을 흔히 보며 살았기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엉덩이의 기능과 그 산물에 대해 속속들이 알았다. - P126

과거 르네상스 시대의 속옷 디자인은 그 아래 감추고 있는 신체에 관한 도발적 암시를 의도한 것이었지만,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의 몸을 조이고 속박하는 코르셋은 그 자체로 욕망의 대상이었다.¹¹ - P127

11 빅토리아 시대 속옷에 대한 이 이론의 출처는 다음 논문이다. Casey Finch, "Hooked and Buttoned Together‘: Victorian Underwear and Representations ofthe Female Body," (Victorian Studies 34), no. 3 (1991): 337-63. - P374

(전략).
<아이리시 페니 저널>에 이 기사가 실린 날은 세라 바트먼열풍이 정점이던 때로부터 20년 넘게 지난 시기였지만, 바트먼은 이번엔 농담의 형태로 신문 지상에 다시 등장했다. - P128

바트먼이 아직 살아 있던 1814년에,¹³ 파리에서 <호텐토트비너스: 또는 프랑스 여자에 대한 혐오 The Hottentot Venus; or, The Hatred of Frenchwomen)>¹⁴라는 제목의 보드빌 극이 무대에 올랐다.
(중략). 흑인의 커다란 엉덩이는 처음에 주인공의동물적 욕망을 자극하지만, 결국 특권을 갖고 귀한 대접을 받으며 심지어 성적으로 더 매력 있다고 인정받는 것은 백인의 작은 엉덩이다. - P129

13 이 장에서 다룬 세라 바트먼과 "호텐토트 비너스"의 역사는 주로 자넬 홉슨과의E). Holmes, (Hottentot Venus; Crais and Scully, Sara Baartman and the Hottentot Venus).

14 Emmanuel Théaulon de Lambert, Achille d‘Artois, and Nicolas Brazier, (TheHottentot Venus; or, The Hatred of Frenchwomen), November 19, 1814. - P374

이렇듯 문화적 증거가 여럿 존재하는데도, 많은 패션 역사학자는 버슬을 특정한 신체 부위를 강조하기보다 전체적인실루엣을 만드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으로 취급한다.  - P130

 엉덩이가 아주 큰, 특정한 신체를 지닌 흑인 여성의 실루엣은 19세기의 과학과 대중문화에 깊이 엮여 있었다.  - P130

바트먼은 인간보다 못한 아프리카인의 정수로서 박물관 유리장 안에 박제되었다. (중략). 그렇다면 백인 여성들이그의 신체를 모방하고 싶었던 건 왜일까? - P130

1991년에 비평가 리사 존스Lisa Jones와의 인터뷰에서 시인 엘리자베스 앨릭잰더는 세라 바트먼의 신체와 버슬의 관계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¹⁶ "당신이 집착하는 것,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 당신이 파괴해야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무엇보다도 강렬히 원하는 것입니다." - P131

16 Lisa Jones, "Venus Envy," (Village Voice 36), no. 28 (July 9, 1991): 36. - P374

사라넬라는 결국 마네킹에게 버슬을 착용시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버슬을 입은 마네킹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 P132

우리가 몸에 걸치는 물건들은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드러내고 싶은지, 남에게 어떻게 보이고 이해받고 싶은지를 물질문화의 여러 유형 중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 P132

19세기 여성들이 허리에 착용한 퍼프와 패드와 틀을 설계한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였고,¹⁷ 막상 그것을 실제로 제작한 사람들은 주로 여자였다.¹⁸

17 Eschner, "Although Less Deadly Than Crinolines."

18 Nancy L. Green, "Women and Immigrants in the Sweatshop: Categories of LaborSegmentation Revisited,"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38), no.3 (1996): 414. - P133

 세라 바트먼은 반세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삶과 죽음이 남긴 유산은 꾸준히 끌려나오는 중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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