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위대한 세 명의 자연주의자도 흑인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당대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불린, 지질학, 고생물학, 근대 비교해부학의 창시자인 조르주 퀴비에 (Georges Cuvier)는 토착 아프리카인에 대해 "가장 퇴화한 인종으로 그 형태는 짐승의 그것과 흡사하며, 그 지능은 어느 모로 보나 질서정연한 통치에 도달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말했다(Cuvier, 1812, p.105). - P89

인정 많은 자유주의자였고 정열적인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찰스 다윈은 침팬지나 호텐토트인(Hottentot, 부시맨이나 흑인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남아프리카 원주민/옮긴이)과 같은 중간형의 멸종이 예상되기 때문에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간격이 더욱 멀어지게 될 미래에 대해이렇게 말한다.

(후략).

* 예를 들어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리우데자네이루 근처에서자신의 여자 노예의 손가락을 으깨기 위해 나사못을 준비해둔 노부인의 맞은편에 살고 있었다. 또한 매일 잠시도 쉬지 않고 욕을 먹고, 매를 맞고 혹사당해서 그로 인해 이 최저동물의 마음이 파괴될 지경에 이른 어린 흑백 혼혈아 하인이 있는 집에 머물렀다. 나는 깨끗하지 않은 컵을 내게 주었다는 이유 때문에 (내가 나서서 말릴 때까지) 말 채찍으로 머리를세 번이나 얻어맞은 6, 7세 가량의 소년을 보았다. (……) 이러한 행위는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고백하고, 신을 믿으며 신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또한 변명되고 있다! 자유를 떠벌이는 우리 영국인과 우리에게서 파생한 미국인들이 그러한 죄를 범했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온몸의 피가 끓고 마음이 떨린다." - P92

세계여행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19세기 과학의 최대 계몽가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는 역사 속에서 자신의 선구자를 찾는 오늘날 모든 평등주의자들의 영웅이다. 당시 어떤 과학자보다 지적이었던 그는 정신적 또는 심미적 근거로 인간에게 순위를 매기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강력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 P93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이론을 발견한 알프레드 러셀 월러스(Alfred Russel Wallace)는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모든 사람들의 타고난 지적 능력이 거의 동등하다고 단언했다. - P94

월러스는 자연선택이 동물에게 당장의 유용성*을 주는 구조를 만들어줄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옮긴이 당장의 유용성은 ‘immediately useful‘을 번역한 것이다. 진화는 미리 예정된필연적인 길을 따라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질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월러스는 자연선택의 이러한 특성을 동물에게 국한시켰다. - P94

인종차별론의 두 가지 모습-에덴동산의 완벽함과 또 다른 아담


진화론이 등장하기 이전에 인종의 서열화에 대한 정당화는 두 가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부적절한 정의지만 다시 사용하자면, 하나는 ‘온건한‘ 이론에 해당하며 모든 사람이 아담과 이브의 일회적인 창조에 결부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P95

성서를 가볍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퇴화론이 더 인기가 높았다. - P96

퇴화론자 중에는 인간의 형제애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인 주장을 편 사람들도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해부학자 에티엔 세레스(EtienneSermes)는 1860년에 하등한 인종이 완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자신의 노력에 의해 개량될 수 있는 유일한 종(種)이라는 것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썼다. - P96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레스는 보다 하등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열등성의 징후를 기록하기 위해 연구했다. 해부학자인 그는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그 증거를 찾았지만 기준이나 데이터를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 P97

인기는 떨어지지만 다원발생설에도 유력한 지지자들이 있었다. 데이비드 홈(David Hume)도 순수한 사색으로 일생을 보내지는 않았다. (중략). 흄은 각각의 인종이 별개로 창조되었고, 백인종 이외의 인종은 천성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했다. - P97

아가시의 다원발생설-흑인은 백인과 평등하게 살아갈 수 없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정치적 독립에 이어 지적해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미국 학자들이 유럽의 방식이나 이론에 굴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P100

19세기 중반 초기에 막 형성되고 있었던 미국의 과학자 집단은 에머슨의 충고에 따라 스스로를 조직했다. 절충적인 아마추어들은 유럽 이론가들의 위신 앞에 굴복하면서도 토착 사상과 유럽에서의 지속적인 연료공급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내부 동력을 갖춘 전문가 그룹이 되었다. - P100

스위스의 위대한 자연주의자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 1807~1873)는 유럽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원래 퀴비에 학파에 속했고, 물고기 화석의 연구자였다. 1840년대에는 미국으로 이주해 곧바로 미국 자연사연구의 지위를 향상시키기도 했다. - P101

아가시는 정치적 교의에 따라 의도적으로 다원발생설을 받아들이지는않았다. 인종 서열화의 타당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노예제의 반대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P101

아가시가 다원발생론자가 되기 쉬웠던 근본적인 원인은 그의 개인적 이론과 방법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1. 아가시는 동식물의 지리적 분포를 연구하여 ‘창조의 중심들(centersof creation)‘에 대한 이론을 개발했다. (후략).

2. 아가시는 분류학적 실행에서 극단적인 세분파(派, splitter)에 속했다. (후략). - P102

아가시는 유럽에서 한번도 흑인을 보지 못했다. 1846년 필라델피아의한 호텔에서 하인으로 일하던 흑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 P103

(전략). 즉 다원발생설은 인간의단일성이라는 성서의 교의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각각의 인종이 별개의 종으로 창조되었다 해도 인간은 공통의 구조와 공감에 의해 맺어진다. 성서는 고대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 P105

아가시는 자신의 정치적 태도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구체적인 사회정책을 제시하며 논문을 끝맺었다. 그는 타고난 능력에 맞는 교육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흑인에게는 손으로 하는 작업, 백인에게는 지적 작업을 훈련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 P107

링컨조사위원회(Lincoln‘s Inquiry Commission)의 위원이었던 S. G.호우(S. G. Howe)는 아가시에게 재통일된 국가에서의 흑인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구했다(호우는 교도소 개혁과 맹인교육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고, 『공화국의 전쟁 찬가(Battle Hymn of the Republic)』의 저자인 줄리아 워드 호우의 남편이기도 하다). - P108

그는 법률상의 평등은 모든 사람에게 허용되어야 하지만 흑인들에게 사회적인 평등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P109

아가시는 해방된 노예에게 법률상의 자유가 주어지면, 인종 사이의 엄격한 사회적 분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다행스럽게도, 자연은 윤리적 미덕과 같은 편이다. - P111

아가시의 세계는 그의 생애 마지막 십 년 동안 붕괴했다. 제자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고, 지지자들도 사라졌다. 그는 사회적으로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과학자들은 그를 다윈 조류 이전의 낡아빠진 신념을 강고하게지키며, 점차 나이를 먹어가는 독단주의자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 P112

 그러나 인종격리에 대한 그의 사회적 선호는 널리 퍼졌다. - P112

객관주의자 모턴-미국의 골고다

아가시가 필라델피아에서 흑인 웨이터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으며 모든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 P113

모턴은 미국과학의 위대한 데이터 수집가, 객관주의자, 미성숙의 기획을 공상적 추론의 수렁에서 구해낸 사람이라는 명성을 획득했다.  - P113

1851년에 모턴이 죽었을 때, 뉴욕 트리뷴』지는 "모턴 박사만큼 전세계의 학자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은 미국 과학자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썼다(Stanton, 1960, p.144). 그러나 모턴이 두개골을 수집한 이유는 추상적 관심이라는 도락적 동기나 완전한 표현을 얻으려는 분류학자의 열의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확인하고 싶은 가설이 있었다.  - P114

모턴은 처음에는 동요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곧 미국 다원발생론자들의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 그는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인종이 별개로 창조된 종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 P115

모턴은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산에 도착한 시기를 자신이 살던 시대로부터 4179년 전으로, 그리고 이집트의 무덤을 그로부터 1천 년 후라고 계산했다-이것은 노아의 자손들이 서로 다른 인종으로 분리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그는 불과 1천 년 동안 인종이 그렇게 급격하게 변화했고, 그후 3천 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물었다). 따라서 인종은 처음부터 별개로 시작되었던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Morton, 1839, p.88).  - P116

. 따라서 모턴은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상대적 서열화를 확립하려고 시도한것이다.  - P116

그러나 모턴이 과학자로 명성을 얻은 것은 두개골 컬렉션과 그것을 사용해서 인종을 서열화한 덕분이었다. - P116

모턴은 인간의 두개골 크기에 관한 세 편의 주요 저서를 발표했다. 첫번째는 1839년에 출판된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크라니아 아메리카나(Crania Americana)』로, 여기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많이 들어 있다. - P117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이 자료에는 백인이 정점에 위치하고, 인디언이 중간에 그리고 흑인이 최하위를 차지한다. 더욱이 백인 중에서도 튜턴족과 앵글로 색슨족이 정점에 놓이고, 유대인이 중간, 그리고 인도인이 맨 아래에 놓이기 때문에 양키들의 편견에 훌륭하게 부응하고 있다. 게다가 이 패턴은 유사 이래 계속 안정적인 것이었다.  - P117

모턴이 그린 미국에서의 지위나 권력에 대한 접근은 생물학적 가치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상주의자나 평등주의자들이 자연의 명령을 거스를 수 있었을까?  - P118

1977년 여름의 몇 주일 동안 나는 모턴의 자료를 분석했다(자칭 객관주의자였던 모턴은 자신의 모든 원자료를 공개했다. 따라서 그가 어떻게 원래의 측정값에서 표를 이끌어냈는지를 분명하게 추론할 수 있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모턴의 정리는 선험적인 확신을 억누르려는 뚜렷한 목적으로 속임수와 날조를 이어붙인 조각이불과 같다.  - P118

과학에서 의도적인 사기는 드물다. 또한 그것은 과학 활동의 본질에대해 거의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도 못한다. 만약 그런 사례가 발견된다면, 거짓말쟁이로 제명될 것이다. - P120

『크라니아 아메리카나』가 기본적으로 인디언의 열등한 능력에 대한 논문이기 때문에, 먼저 모턴이 인디언의 두개골 평균값을 82세제곱 인치로 기술한 것이 부정확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 P124

그러나 80.2 세제곱인치라는 ‘정확한 수치는 너무 낮다. 왜냐하면 그것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산출된 값이기 때문이다.  - P124

나는 모든 그룹에 똑같은 가중치 (weight)를 주는 동일한 방식을 사용해서 인도인의 두개골을 모턴의 표본에 부활시켰다. 모턴이 계산할 때 사용한 코카서스 인종의 표본에는 네 개의 하위 그룹 두개골이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인도인은 전체 표본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 P126

(전략).

뇌와 신체의 상관관계는 앞서 논의한 ‘크라니아 아메리카나에 남아있던 문제를 함께 해결해줄 것이다. 즉, 인디언 종족간의 뇌 크기의 평균값 차이는 무엇에 근거하는 것인가? (이 차이는 모턴에게는 큰 골칫거리였다. 작은 뇌를 가진 잉카인이 어떻게 그토록 정교한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복자에 의해 순식간에 멸망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기는 했지만 말이다.)  - P130

흑인의 평균값을 속인 사례

(전략). 모턴은 1839년과 1844년 사이에 두개골을측정하는 방법을 겨자씨에서 납 탄환으로 바꾸었다. 나는 이것이 흑인의 평균값이 높아진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모턴은 대부분의 두개골을 하나 하나 직접 다시 측정했다.  - P131

나는 겨자씨를 사용해서 측정한 쪽이 낮은 값을 나타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략). 모턴 역시 같은 두개골을 여러 차례 측정한 결과 몇 세제곱인치의 차이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 P132

(전략). 모턴이 (겨자씨로측정한) 『크라니아 아메리카나』에서 이들 인종에 대해 두개골을 개별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카서스 인종의 경우, 19개의 식별가능한 두개골에서 납 탄환으로 측정한 수치가 겨자씨로 측정한 수치보다 평균값에서 겨우 1.8 세제곱인치의 차이를 나타낼 뿐이었다. - P132

우리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모턴이 종자를 사용할 때, 엄청나게 큰 흑인의 두개골에 씨앗을 가볍게 채우고 몇 번 흔드는정도로 그친 반면 지독하게 작은 백인의 두개골에는 씨앗을 채운 후 세게흔들고, 엄지손가락으로 강하게 눌러댄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기대가 행위의 강력한 지침이 된 셈이다. - P133

1849년의 최종적인 표

모턴이 1849년에 최종 자료를 표로 만들었을 때 그의 훌륭한 컬렉션에는 모두 623개의 두개골이 모여 있었다-이 표는 앵글로 색슨족이라면 누구나 기대하는 서열화를 압도적으로 확인해주었다.
그런데 코카서스 인종의 부표본들은 오류와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 P133

여섯 개의 중국인 두개골은 모턴에게 82세제곱인치라는 몽골 인종의 평균값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낮은 값은 묘하게도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그의 두 가지 건망증의 사례를 기록한다.  - P134

(전략).

모턴은 이 두개골들을 납 탄환으로 재측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겨자씨로 측정했을 때의 인디언의 평균값 86.8세제곱인치에 2.2 세제곱인치의 보정값을 더하면 89세제곱 인치라는 평균값을 얻을 수 있다(1336번의 중국인 두개골을 추가하고, 에스키모 두개골을 보수적으로 보정한 경우). - P135

요약하자면 모턴이 편의적으로 매긴 순위를 수정한 결과 나는 그의 데이터에서(표 2.5) 인종간에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모든 그룹은 83에서 87세제곱인치 사이에 위치하며, 코카서스 인종이 그 정점을 차지한다.  - P136

결론

모턴의 속임수는 네 가지 일반적인 범주 속에서 그 위치를 부여할 수있다.

1. 편의주의의 모순과 수시로 바뀌는 기준: 모턴은 미리 예상한 그룹의 평균값에 부합하기 위해 종종 큰 부표본을 포함시키거나 제외했다. (후략).

2. 선입관을 향해 방향 지워진 주관주의: 겨자씨를 이용한 모턴의 측정 방법은 주관적 편향에 따라 폭넓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부정확했다. 하지만 이후 납 탄환에 의한 측정은 재현가능한 데이터이며 객관적이라고 생각된다. (후략).

3. 우리에게는 명백하게 보이는 절차적 생략: 모던은 두개골의 크기 차이가 타고난 지능의 차이를 나타낸다고 믿었다. (후략). - P137

4. 잘못된 계산과 편의주의적인 생략 : 내가 찾아낸 계산 오류와 생략은 모두 모턴이 가진 편견의 산물이다. 그는 이집트 니그로이드의 평균값을 80세제곱인치로 반올림하지 않고 79 세제곱 인치로 내렸다. 독일인과 앵글로 색슨인의 경우에는 90세제곱 인치라는 평균값을 사용하고있지만, 정확한 값은 88과 89세제곱인치 사이다. (후략). - P138

그러나 이러한 속임수를 통틀어 나는 사기나 의식적인 조작의 징후를발견할 수는 없었다. 모턴 역시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자신이 남긴 흔적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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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아리스가와 아리스 데뷔 35주년 기념 현정이라는 과감한 기획에 일곱 명의 작가분들이 참가해 주셨습니다.
다들 한창 물이 올라 기세등등한 분들이라, 이런 앤솔러지를 기획해 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아직도 못 믿겠어요). - P5

참여 작가들의 팬은 물론이고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어떤 소설을 쓰는지 모르는 분들도 즐겁게 읽을수 있을 겁니다.
(후략).

아리스가와 아리스 - P6

히무라 히데오에게 바치는
괴담


오리가미 교야


오리가미 교야


1980년, 런던 출생. 2012년 《영감 검정》으로 고단샤 BOX 신인상 ‘Powers‘를 수상하며 데뷔. 2015년 《기억술사>로 일본 호러 소설대상 독자상, 2021년 《꽃다발은 독》으로 미라이야 소설 대상을 수상. 다른 저서로 《그녀는 그곳에 있다》, 《이웃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키스에연기》, 《환상의 여인 뱀눈의 사키치 체포 수첩》 등. - P130

8층짜리 건물 5층, 그 가게는 중후한 목제 문 너머에 있었다. (중략).
정통 스타일의 바 같지만 카운터 위 칠판에 오늘의 추천 요리와 안주 메뉴가 적혀 있다. 들은 대로 레스토랑을 겸한 바인지, 제대로 식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 P131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적당하고 시끄럽지도 않고, 창가에 앉으면 선로도 굽어볼 수 있어요." - P132

입구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굳이 시선을 주지는 않았지만 "아리스가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쳐다보았다. 가게에 들어온 손님은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이 가게를 알려 준, 서점 직원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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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기술들의 몽정. 수많은 기술성애자들을 과학의 영역에서 공상과학의 영역으로 끌고가는 것으로 보이는 생각의 흐름이 있다.¹¹⁴ - P102

114. 기술광 예언자들 중 가장 잘 알려진 레이 커즈와일이 원래 공상과학 매니아였다는것은 의미심장하다. Kurzweil, p. 1. 나노기술의 예언자, 킴 에릭 드렉슬러(Kim EricDrexler)는 원래 "우주여행과 우주식민지 이론을 연구"했었다. Keiper, p. 20. - P119

대부분의 기술 유토피아들은 적어도 기술광에게는 불멸을 포함한다. 기술들이 스스로 누리게 되리라고 믿고 있는 불멸은 세 가지 중 하나의 형태를 갖고 있다.


(i) 오늘날 존재하는 인체의 영원한 보존.¹¹⁹

(ii)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통해 등장한 인간-기계 잡종의 영생¹²⁰

(iii) 인간 두뇌를 컴퓨터나 로봇에 "업로드해 등장한 정신이 업로드된 기계의 영생.¹²¹ - P102

119. Grossman, p. 47. Kurzweil, p. 320.

120. Grossman, p. 44, col. 3. Kurzweil, pp. 194-95, 309, 377. Vance, p. 1, col. 3; p. 6, col. 1.

121. Grossman, p. 44, col. 3; p. 48,col. 1; p. 49, col. 1. Kurzweil, pp. 198-203,325-26, 377. 기술들 아니면 더 정확하게 트랜스휴먼주의자들은 업로드 과정에서 그들의의식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 같다. 이 사안에 대해서 커즈와일은 다소 모호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의 두뇌를 비생물학적 요소로 한번에 대체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조금씩 대체하면 그의 의식이 살아남으리라 여기는 것 같다. Kurzweil, pp.
383-86. - P119

미래에는 인체를보존하는 기술이나 인간-기계 잡종이 등장할 수도 있다. - P103

하지만 인간 두뇌를 기존의 인격을 충분히 유지한 상태로 정확하게 전기적 형태로 "업로드"하는 게 가능할지는 의심스럽다. - P103

지식인들은 수없이 한탄했다. "사람들이 협력하기만 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텐데!"¹²² 하지만 사람들은 절대 "협력"하지 않는다. - P103

122. 윈스턴 처칠, Sept. 15, 1909, quoted by Jenkins, p. 212. 다른 사례: "...자유, 관용, 기회의 평등, 사회주의 사회나 세계가 이를 목표로 단결한다면 이러한 것들을 실현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Bury, p. 1 (originally published in 1920; see ibid., p. xvi). 1944년 7월 22일,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44개국이 "협동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이렇게 계속 해나간다면 인류애는 실현될 것이다."(헛소리!)Skidelsky, p. 355. - P120

기술광들이 보기에 불멸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유로, 기술광들은 그들이 속한 체제가 당연히 그들을 영원하게 살게 해주거나, 영원히 사는데 필요한 물자들을 공급해주리라고 믿는다.  - P103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 P104

예상된 불멸이 가능하기나 하다면, 70억 명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소수의 엘리트들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 어떤 기술광들은 이를 인정한다.¹²⁴ - P104

124. Grossman, p. 48, col. 3 ("Who decides who gets to be immortal?"). Vance, p. 6, col. 1. - P120

기술들이 자주 간과하는 것은 자기증식 체제는장기적으로 인간 엘리트들을 포함해 인간을 돌봐주는 게 체제에 이익이될 때에만 인간을 돌봐준다는 것이다. 인간이 더 이상 주요 자기증식 체제에 유용하지 못하다면, 엘리트든 아니든 간에 인간은 모두 제거될 것이다.  - P104

예상되는 반론은 정부, 기업, 노동조합 등 많은 자기증식 체제들이노인, 정신적/신체적 중증장애인, 심지어 종신형을 선고 받은 범죄자들같은 자신에게 전혀 쓸모없는 인간들을 돌봐주고 있다는 것이다. - P105

하지만 모든 인간이 쓸모없어진다면 자기증식 체제들은 더 이상 인간을 돌봐 줄 필요를 못 느낄 것이다.  - P105

미국과 유럽에서 은퇴자, 장애인, 실업자를 비롯한 비생산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조금이 상당히 줄어들었으며¹²⁹ 미국에서는 빈곤층이 증가하고 있다.¹³⁰ - P106

129. Eg: USA Today, July 20, 2011, p. 3A ("Painful plan in R.I."), Sept. 29, 2011, pp. 1A, 4A; Oct. 24, 2011, p. 1A; Sept. 14, 2012, p. 5A (Spain); Sept. 24, 2012, p. 6B(several European countries); Sept. 28, 2012, p. 5B (Spain); Aug. 5, 2013, p. 3A; Oct. 16-18,2015, p. 1A; April 26, 2017, pp. 1A-2A. The Economist, June 11. 2011, p. 38(Sweden), The Week, April 6, 2012, p. 14 (Greece, Spain); July 29, 2011, p. 12 ‘Theend of the age of entitlements"), Drehle, p. 32. Sharkey, pp. 36-38. 필자의 친구는 2012년 10월3일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제 부모님은 장기요양을 받을 수 없습니다…지금 많은 주들이 재산환수를 비롯한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이것은 즉, 아버지께서요양원으로 가면, 그분의 재향군인 연금, 사회보장, 생활보조금은 요양비로 쓰일 것이고, 이는 어머니께서 생활비를 구할 길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시나리오는 메디케이드(Medicaid)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들의 집을 저당잡고 어머니의 운이 나쁘면 메디케이드는 아버지가 받은 형편없는 요양 서비스에 든 비용을 집을 팔아 돌려받을 것입니다." 불멸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예상되는 미래는 다음과 같다. "야구의 전설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의 냉동 머리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언젠가 생명을 되찾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냉동보존을 희망했던 타자, 윌리엄스의 머리에는 어느 시점에 빈 참치캔이 들러붙였다. 캔을 떼어내기 위해 직원이 스패니로 반복해서내려쳤더니, 얼어붙은 머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The Week, Oct. 16, 2009, p14.


130. Eg: USA Today, Sept. 29. 2011, pp. 1A-2A; Sept. 12, 2016, p. 3A. The Week, Sept. 30, 2011, p.21 ("Poverty: Decades of progress, slipping away", July 27, 2012, p. 16Why the poor are getting poorer"), Kivial, pp. 35-37. 또한 미국 노동자들의 절반의 2010년 수입은 26,364달러 미만이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1999년 이후 가상낮은 중위소득이다." The Week, Nov. 4, 2011, p. 18. "미국 가정의 평균소득은 2007년-2010년 사이에 40%가량 떨어졌다. Ibid. June 22, 2012, p. 34. USA Today, Sept. 14, 2016, p. LA, reports, "가계소득이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상승하다. 이는 2018년 1월 현재 경제 순환의 고점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제 순환이 다음 지점에 도달하면, 소득은 아마 다시 줄어들 것이다. - P121

기계는인간의 감정을 헤아리거나,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인간이 도태된다면 그런 재주들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 P106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감정은 자기증식 체제가 인간-기계 잡종을 사용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므로 기계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인간의 감정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다른 힘으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 - P107

생물학적 진화를 보라.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종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오늘날까지 직계후손을 남길 수 있었다.¹³⁴ - P108

134. "종들은 지속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진다. 존재했던 종들의 99.9%는 멸종했다." Benton, p. ii. 우리는 이것을 99.9%의 종들이 현재 생존한 어떠한 직계 후손도 남기지못하고 멸종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 추측과는 별개로, 일반적인 진화 패턴에 비춰봤을 때, 전체 종들 중 극히 일부만이 오늘날 살아있는 후손을 남길 수 있음은 명확하다. 예를 들어, NEB (2003), Vol. 14, "Biosphere," pp. 1154-59; Vol. 19, "Fishes," p. 198, 그리고 "Geochronology," 특히 pp. 750-52, 785,792,794-95, 797,802,813-14, 819, 820, 825-27,831-32, 836, 838-39, 848-49, 858-59, 866-67, 872 참조. 멸종은 몇 개의 "대멸종" 사건에만 발생하지 않았다. 비록 시기별로 비율의 차이는 있었지만, 멸종은 진화 과정을 걸쳐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Benton, p. ; NEB (2003), Vol. 18, "Evolution, Theory of," pp. 878-79; NEB (2007), Vol. 17, "Dinosaurs, p. 318 참고. - P122

(전략). 자기증식 체제들 사이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진다. 이 과정이 빨라짐에 따라 생존경쟁의 패배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도태될것이다. - P108

우리가 지금까지 지적한 점들과 기술들의 미래 전망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고려했을 때,¹³⁹ 대체 왜 기술들이 그런 전망을 믿는 지 질문해야 한다. - P109

139. 물론 특정 기술 발전에 대한 기술들의 믿음을 증명해줄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성능은 끝없이 가속되리라는 믿음, 또는 언젠가 인체를 영원히 살도록 유지하는게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리라는 믿음 말이다. 하지만 미래 사회에 대한 기술들의믿음을 증명해줄 증거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가 실제로 몇몇 사람들을 수백년간 살게 해주리라는 믿음, 또는 우주 전체로 뻗어나고자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 P122

기술광들의 믿음 체계는 종교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¹⁴³ - P110

143. 몇몇 사람들은 기술광들의 믿음에서 종교적 특징을 발견했다. Grossman, p. 48, col. 1. Vance, p. 1, col. 4. Markoff, "Ay Robot!" p. 4, col. 2 (광고가 실린 부분은 무시할것). Keiper, p. 24. Kurzweil, p. 370는 그런 사람을 언급하고서는, 간단히 일축한다. "나는 대안 종교를 찾다가 이 예측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성경 기록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그가 개종했을 때, 새로운 종교를 찾고 있지 않았다. 사실, 그는 예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까지 기독교인들을 열정적으로 박해하고 있었다. Acts 9:1-31. Saul = Paul, Acts 13: 9. 분명히 많은, 아마도 대부분의 개종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새로운 종교를 찾아다니지 않았다. 그저 종교가 그들을 찾아냈을 뿐이다. 커즈와일처럼, 많은 기술들은 기술교로부터 금전적 이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종교로부터 이익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종교적 신앙을 갖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The Economist, Oct. 29, 2011, pp. 71-72 참고. - P123

(전략). 이러한 측면에서 기술교는 다른 종교들의 초기 단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¹⁴⁵ - P110

145.기독교가 초기 단계에 있었을 때, 통일된 교리가 없었다. 기독교 신앙은 대단히 다양했다. Freeman, passim, e.g, pp. xiii-xiv, 109-110, 119, 141, 146. - P123

. 기술교에는 기술들로 이루어진, 기독교의 참된 신자 또는 맑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¹⁴⁸와 유사한 선택받은 소수가 있다. 선택받은 자들은 기독교의 참된 신자들처럼 영생을 얻게된다. 물론 맑스주의에는 이요소가 빠져있다.¹⁴⁹ - P110

148. 내 친구는 프롤레타리아는 소수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아마 "하층"계급이 전부 프롤레타리아에 해당한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맑스주의 문헌들은 누가 프롤레타리아인지에 대해 일관적이지 않다. 예를들어, 1899년 레닌은 가난한 소작농들이 "시골프롤레타리아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in Russia,"e.g, Conclusions to Chapter II, section 5; in Christman, p. 19 참고. 그러나 1917년 레닌은 가난한 소작농들을 포함한 소작농들이 "모든 착취받은 자들, 임금노동자들의 무장전위대인 프롤레타리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암시했다. "The State and Revolution," Chapt. II, section 1; Chapt. III, sections 1 & 3; respectively pp. 287-88,299, 307 in Christman 참고. 우리가 맑스주의 신화의 선택받은 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러한 의미의 프롤레타리아를 가리킨 것이다. 그리고 맑스주의 이론의 프롤레타리아는 이런 의미의 프롤레타리아로 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레닌은 1902년에 적었다. "근대 (사회주의) 운동의 힘은 주로 산업 프롤레타리아로 이루어진 대중의 계몽에서 나온다..."What is to be Done?," Chapt. II, firstparagraph; in Christman, pp. 72-73. 스탈린의 저서 "History of the Communist Party"는 산업 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라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그리고 1917년 혁명 당시산업 노동자들은 전체 인구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e.g., first chapter, Section 2, pp.18, 22; third chapter, Section 3, pp. 104-05 and Section 6, p. 126; fifth chapter, Section1, p. 201 and Section 2, p. 211. 거의 확실하게, 어떠한 거대 국가에서도 산업 노동자들은 인구의 다수를 구성했던 적이 없다.

149. 종말론적 사교(邪敎)에 대해서는 NEB (2003), Vol. 1, "apocalyptic literature" 그리고 "apocalypticism," p. 482; Vol. 17, "Doctrines and Dogmas, Religious," pp. 402,
406, 408. 또한 성경, Revelation 20 참고. - P124

제3장

세상을 바꾸는 방법: 피해야 할 실수


"두 개 이상의 모순이 존재하는 복잡 과정을 연구할 때는, 가장 주된 모순을최선을 다해 찾아내야 한다. 일단 주된 모순이 해결되면, 모든 문제들이 동시에 해결된다."
-마오쩌둥¹


"목표가 단순해야 인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언제나 명쾌한 거짓말이 불분명한 진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것이다."
- 알렉시스 드 토크빌² - P125

후주

1. Mao, p. 112.
2. Tocqueville, Vol. I, p. 172.
- P176

이장의 첫 번째 파트에서는 규칙들을 간략하게 설명할 것이다. 그다음에 규칙의 의미를 검토하고, 사례를 조사하고, 한계에 대해 논할 것이다. 마지막 파트에서는 환경파괴를 비롯한 현대 기술로 인한 문제들을상대하고자 하는 오늘날의 노력이 이 규칙들을 무시할 경우 어떻게 실패할지 보여줄 것이다. - P125

I. 가정과 규칙

(중략).

가정1. 불분명하거나 추상적인 목표를 통해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어떤 노련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불분명하고 지나치게 일반론적인 목표는 거의 언제나 실패한다. 공동체가 당신이 원하는 길을 따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³ - P126

3. Huenefeld, p. 6. - P176

가정2. 그저 사상을 설파하는 것만으로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인간행동에 장기적이고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⁴ - P126

4. "선전가들은 합리적 주장, 귀에 꽂히는 슬로건 그 어느 쪽도 그 자체로는 인간행동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NEB (2003), Vol. 26, "Propaganda," p. 175. - P173

가정3. 급진주의 운동은 성실하기는 하지만 운동의 목표와 별로 관계없는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경향이 있다.⁵ 그 결과 운동의 기존 목표는 흐려지거나, 완전히 왜곡된다.⁶ - P126

5. Smelser, pp. 3455,356-57 참고.

6. NEB (2003), Vol. 16, "Collective Behavior," p. 563 참고. 운동의 목표가 점차 흐려진다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설명이 충분히 진실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서술은 이 장의 사례들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 P176

가정4. 운동이 약소했을 때 가입한 초기 지도자들이 모두 죽거나 은퇴하면, 강한 힘을 가진 모든 급진주의 운동들은 타락하게 된다. 운동이타락했다는 것은 운동의 조직원들, 특히 지도자들이 운동의 이상보다는돈, 안정성, 사회적 지위, 권력, 직업적 경력 같은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 P126

이 가정들로부터 급진주의 운동이 주의깊게 살펴야할 규칙들을 유도할 수 있다.

규칙1. 사회를 특정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운동은 변화를 이끌어낼 단 하나의 분명하고, 단순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야 한다. - P127

규칙2. 운동의 목표가 사회 변혁이라면 일단 실현되면 되돌릴 수 없는 목표를 골라야 한다. 즉, 목표 달성을 통해 사회가 바뀌면 운동 측에서추가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사회가 바뀐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운동은 강한 힘을 얻어야 하므로 가정4에 의해 금방 타락하게 된다.  - P128

규칙3. 일단 목표를 설정했으면, 소수의 인원을 설득해 단순한 이념 설파보다 더 강력한 목표를 추구해야한다. 다시 말하자면, 소수는 실용적인 행동을 위해 스스로를 조직해야 한다. - P128

가정에서 지적했듯이 사상 설파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으므로 사상 설파보다 더 강력한 수단을 추구하는 단체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 - P128

규칙4. 목표에 대한 스스로의 신념을 유지하려면 급진주의 운동은 부적합한 인원을 운동으로부터 제외할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규칙4는 대단히 중요한데, 가정3에 따르면 부적합한 인원을 받아들일 경우 운동의 목표가 흐려지거나 왜곡될 것이기 때문이다. - P128

규칙5. 일단 혁명 운동이 목표를 달성할 만큼 충분히 강력한 힘을 얻었다면, 그 목표를 최대한 빨리 달성해야 한다. 특히 운동이 비교적 약소했을 때 가입한 기존 혁명가들이 죽거나 정치적 불능상태가 되기 전에 달성해야 한다. - P129

가정1. 이 가정을 살피기 위해 반드시 노련한 활동가의 의견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일반론적으로 애매하거나 추상적인 목표로는 효과적 행동을 조직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유"를 저마다 다르게 이해하고 있으며 자유의 어떤 측면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저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유 그 자체는 목표가 될 수 없다.  - P129

그리고 목표가 불분명하거나 추상적이면 실제로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음에도 마치 목표를 달성했거나, 목표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것처럼 위장하기 쉬워진다. - P130

따라서 불분명하거나 추상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급진주의 운동은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대개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사실인가? 아닌 경우도 있다. - P130

제3장 파트3에서는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한 운동 사례들을 살펴볼 것이다. (중략).
기존의 역사적 추세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사회의 격렬한 저항을 받는 급진주의 운동들 역시 운이 좋다면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지만,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급진주의 운동은 대단히 불리한 입장에 처하리라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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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발스 스파

1996년: 땅속에 숨겨진 신전 같은 목욕탕


땅과 건축


건축을 하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땅이다. - P169

. 땅과 건축물의 구조는 건축가의 생각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 P170

페터 춤토어는 스위스 건축가로, 완성도 높은 건축을 한다. 여기서 완성도란 두 가지 측면을 가리킨다. 하나는 재료의 물성을 잘 이용하는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공의 정밀도다.  - P170

춤토어가 땅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그가 스위스 발스에 지은 두 건축물을 보면 알 수 있다. - P171

예를 들어 우리나라 정자를 지을 때 물 가운데 두는 경우가 있다. 주변 자연 경관과 건축물 사이에 빈 여백의 공간을 두기위해서다. 그 빈 공간이 있기에 건축물과 자연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 P174

땅속 동굴 같은 건축

‘성 베네딕트 채플‘과 가까운 거리에 ‘발스 스파‘가 있다. 같은 건축가가 만들었지만 완전히 다른 ‘땅과의 관계를 보여 준다. ‘발스 스파‘는 땅속에 반쯤 묻힌 형태다. - P174

(전략). 돌을 쌓을 때는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적절한 불규칙성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너무 규칙적이면 지루하고 너무 복잡하면 혼란스럽다. 그래서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것은 적절한 불규칙성이라고 말한다. - P176

. 실내 스파의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마치 퇴적암 지대에 만들어진 동굴 속 연못에서 목욕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P177

콘크리트로 만든 난초화

천창을 잘 만드는 건축가는 여러 명 있다. 그중에서도 안도 다다오를 빼놓을 수 없다. - P178

‘고시노 하우스‘의 거실에는 빛을 받아서 거의 흰색에 가깝게 밝은 콘크리트 벽체에 검은색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마치 흰색 한지 위에 검은색 먹을 머금은 붓으로 난을 친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검은색 그림자는 해의 위치가 바뀌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 P178

골목길에서 목욕하기


‘발스 스파‘에는 온탕, 냉탕 등 다양한 종류의 탕이 방으로 구획되어있다. 그 밖에도 마사지룸 같은 방도 여러 개 있다. 그리고 그런 방들은 마치 미로처럼 각기 다른 크기로 여기저기 떨어져서 놓여 있다. 방이 마을처럼 모여 있고, 그 방과 방 사이에 욕실이 배치된 구조다. - P181

보로 연결되지 않는 지붕을 만든다는 것은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작은 차이지만 작은 차이가 모여 엄청난 감동을 만든다.  - P182

목욕탕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 중에서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다루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목욕탕은 물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 P183

 ‘발스 스파‘는 동굴같이 어두운 공간을 연출해 그 안에서 극도로 민감해진 오감을 통해 절제된 빛과 물의 촉감을 최대한 느끼게 하는 궁극적인 감각의 공간이다. - P184

13장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

1963년: 빛이 투과되는 돌



재료에 대한 고정관념


태어나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 있는 물질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다. (중략). 이러한 물질을 다룬 경험들은 우리의 고정 관념으로 이어진다. - P217

이 같은 대형 건축 사무소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설계사무소 SOM(Skidmore, Owingsand Memill)은 고층 오피스 빌딩, 컨벤션 센터, 공항 같은 대형 건축물 중심의 작품을 쏟아 내고 있다. - P218

유대인 성막을 닮은 평면

이 작품의 평면은 먼저 구약 성경 속 인물 모세가 설계했다고 알려진유대인의 전통 성막인 ‘태버내클tabernacle‘에서 공간의 개념을 따왔다 - P219

사실 공간 안에 공간을 배치해 안쪽의 공간을 성스럽게 만드는 기법은 모세의 성막 이전에 이집트 신전에서도 사용되었고, 북경 자금성‘에서도 보이고, 심지어 우리나라 ‘청와대‘에서도 보이는 기법이다. 그러니 인류 보편적인 기법이라고 할수 있다. - P220

. 단 유대인 성막이 ‘자금성‘이나 ‘경복궁‘과 다른 점은 성소와 지성소에 창문이 없다는 점이다. - P220

유대인에게 가장 중요했던 여호와가 임재하는 성궤를 보관하는 건축물이 지성소가 있는 성막이다. 마찬가지로 지식의 전당인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희귀 도서를 보관해야 했던곳이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이다.  - P221

빛을 투과시키는 대리석

공간 시퀀스도 훌륭하지만 이 도서관이 유명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빛이 투과되는 대리석 벽 때문이다.  - P222

은은한 빛을 연출하려면 유리창에 반투명 필름지를 부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는 얇은 대리석을 사용했다. 그렇게 태양광이 대리석 벽을 통과해 들어옴으로써 내부에서는 아름다운 천연의 대리석 문양이 마치 벽화처럼 장식된다. 이 부분이 놀랍다.  - P223

.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도 아름다운 녹색 대리석문양을 보여 주기 위해 벽체에 대리석 판을 붙이고 그 옆의 창문을 크게 뚫었다.  - P223

천연 대리석의 문양은 햇빛 아래에서 바라보아도 아름답다. 하지만 햇빛이 투과되는 얇은 대리석은 마치 형광등 불빛 앞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엑스레이 사진처럼 더 환상적이다. 표면을 넘어서 대리석 내부의 모습까지 투영되기 때문이다. - P224

이 건축물의 또 다른 경이로움은 밤에 연출된다. 낮에는 거대한대리석 덩어리처럼 보이던 건축물이 밤이 되면 내부에 켜진 조명이 대리석 창문을 통해 투과되면서 이번에는 하나의 종이 랜턴 같은 모습이 된다. 낮 동안 대리석과 태양 빛이 만들어 낸 향연이 실내에 펼쳐졌다면, 밤에는 대리석과 인공조명이 만들어 낸 향연이 펼쳐진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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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슈헤이는 정신과 의사가 처음 가나미를 진료한 이후 방안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는 점을 눈치 챘다. - P143

절친한 편집자는 약속 시간 5분 전임에도 벌써 도착해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눌 때 어두운 하시모토의 표정을 본 슈헤이는 기분나쁜 예감이 들었다. - P144

"우리 회사랑 계약을 갱신할 때가 다가오는 거 알고 있어?"
‘그런 문제가 있었지.‘ 하고 슈헤이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계속 병가를 내면 계약이 해지되어 버린다고." - P145

"우리 사장이 너희 집에 전화했다는 거 알고 있어?"
슈헤이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가나미 친구인가 하는 사람이 받더니 ‘가나미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에요.‘라고 말한 모양이야." - P145

"무책임한 것도 정도가 있지, 가나미의 친구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야?"
"모르겠는데." - P146

하시모토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슈헤이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계약 기자가 받는 급료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게 불 보듯 뻔했다. 당분간은 적금을 깨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가나미는 대체 언제쯤이면 나아진단 말인가? - P147

"뭐하고 있어?"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슈헤이는 움직임을 멈췄다. 돌아보지 않고도 아내의 얼굴이 변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과거의 추억에 기대기라도 하려고? 계집아이 같지 않아?"
슈헤이는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 P148

 가나미는 자기가 들고 있는 식칼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지르며 내던졌다.
"슈헤이?"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묻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슈헤이는 이제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 P150

남자라는 인종은 모두 정신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슈헤이는 생각했다. - P151

4

금요일로 예정된 두 번째 진찰에 앞서 이소가이는 의국에 있는 동료에게 연락을 취했다. 최면 기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정신과 전문의는 교육 과정상 최면술을 배울 일이 없다. 하지만 개중에는 최면 요법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어 개인적으로 스승을 찾아내 능력껏 최면술을 체득하는 경우가 있었다. - P151

이소가이는 슈헤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빙의 상태의 가나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 P151

가나미가 신기한 듯 자신의 손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피암시성(최면적 암시에 의해서 어느 정도 심리적 상태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느냐를 가리키는 것옮긴이)은 강한 듯했다.  - P153

"그 임신한 아주머니는 가나미가 아는 사람이니?"
대답이 없었다.
(중략).
"아주머니는 지금 어디 있니?"
"내 마음속."
"그 아주머니와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 P156

이윽고 가나미는 사지를 내뻗고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성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종교적 엑스터시 같은 행동이기도 했다.  - P157

"가나미 씨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까?"
"만나더라도 모를걸?"
"무슨 말이지요? 옛 친구이기라도 합니까?"
"시라이시 가나미는 내 얼굴을 몰라." - P158

"왜 가나미 씨한테 씐 거죠? 목적이 뭡니까?"
여자는 깔끔하게 대답했다.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 - P158

"아니, 가나미의 아기. 경박한 남편이 아기를 죽이려 들어서 이렇게 된 거야."
여자의 차가운 시선이 아연실색해서 있는 슈헤이를 향했다.
"아기보다 맨션이 중요한 거지? 그렇지? 대답해 봐." - P159

 어두워진 실내에서 슈헤이가 가나미를 가리키며 외쳤다.
"방금 보셨어요?"
"뭘 말입니까?"
(중략).
"그림자가 보였다고요!" - P160

"괴로울지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 확인해 주셔야겠습니다."
이소가이가 신중히 말을 꺼냈다.
"배 속의 아기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죠?"
"중절할 수밖에 없어요."
(중략).
이소가이는 확신했다. 가나미의 병은 해리성 빙의 장애였다. - P161

이소가이가 말문을 열었다.
"아까 말인데, 그림자가 움직였다고 하셨죠?"
"네."
슈헤이는 고개를 들어 허물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10년 정도 연상의 정신과 의사를 바라봤다. - P162

하지만 이소가이는 슈헤이의 동요를 신경 쓰지도 않는 듯 분명하게 말했다.
"아마도 환각을 본 걸 테지요."
슈헤이는 납득할 수 없어 되물었다. - P162

"슈헤이 씨는 중절을 포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만도 없어요.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요."
슈헤이는 가나미가 조만간 직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자신이 편집 프로덕션과 박봉에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일 등을 털어놨다. - P164

"네. 임신부 네다섯 명 중에 한 명 꼴로 중절을 택하는 셈이죠. 배속의 아기를 인간으로 인정한다면, 일본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이아니라 인공 임신 중절이 되겠죠." - P165

그렇게 되묻는 이소가이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원하지도 않은 아이를 만든 부모는 그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어도 당연하다는 거만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까? 애초에 불행한 인간은 태어나지도 않는 게 더 좋았을까요?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될 인간이 있을까요? 누군가를 붙잡고 ‘너는 태어나지 않는게 더 나았어.‘라고 말할 권리가 있을까요?"
반박할 수 없었다. - P166

상대방의 태도 변화에 당황한 슈헤이는 이소가이가 웬일로 이성을 잃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무엇이 이소가이를 흥분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 P167

"중절 수술이 무사히 이뤄지기만 한다면 아기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약물 요법을 병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색다른 치료 수단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게 뭔가요?"
"최면 상태 하에서 나타난 빙의 인격입니다. 그 인물상은 가나미씨의 옛 친구가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P168

"다만 이건 빙의라는 증상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꽤나 강력한 수단입니다. 기본은 어디까지나 정신 요법으로 갈등을 해소하는데 있습니다. 어쨌든 그 경우에도 옛 친구에 대해 보다 자세한 정보가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옛 친구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모른다는 점이군요." - P169

5

그다음 한 주 동안 슈헤이는 잡무에 시달렸다.
(중략).
그다음에 슈헤이는 우울한 일 두 개를 해치웠다. 편집 프로덕션과의 계약 업무였다. - P170

한참 있다가 훌쩍이면서 가나미가 말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쇼핑백을 들고 맨션 앞에 서 있었어."
가나미가 가지고 있는 종이봉투의 내용물을 꺼내 보자 임부복과 아기 배내옷 등 전부 옷가지였다. (중략). 가격표에 9800엔이라고 찍혀 있었다. - P171

저녁 식사 후 가나미를 침대에 뉘인 다음에 슈헤이는 잠에 빠져든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침실에 머물렀다. - P172

‘내가 대체 뭘 본 거지?‘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이번에는 시야 끄트머리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사람 그림자임을 깨닫고 시선을 돌렸지만 간접 조명에 비친 흰 벽밖에 없었다.  - P172

지쳐 있는 거라고 되뇌었다. 모든 게 다 착각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패닉에 빠질 것 같았다. - P173

슈헤이는 벌떡 일어서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머리를 감던 손을 멈췄다. (중략).
가나미가 서 있었다. 아내의 모습을 보자마자 슈헤이는 비명을내지를 뻔했다.  - P174

거실로 가 불을 죄다 켜고는 소파에 몸을 누인 뒤 눈도 깜빡 않고 그대로 아침을 맞았다.
마침내 입원하는 날이 왔다.
나쓰키 가나미의 진료를 시작한 이래 이소가이는 아침에 일어나는게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 P175

ㅓ다.
아침 식사를 마칠 즈음 슈헤이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젯밤 잠자고 있던 가나미에게 벌어진 이상 행동을 보고해 왔다. - P175

전화를 끊고 이소가이는 차를 운전해 분쿄의대로 향했다. 목적지는 7층에 위치한 집중치료실이었다.
(중략).
도다 마이코는 아직도 식물인간 상태였다. - P176

"당신도 도다 씨 병문안을 온 거야?"
"네."
히로카와는 집중치료실로 시선을 돌렸다.
"선생님은 최선을 다했잖아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이소가이는 문득 히로카와에게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 P177

병원을 나선 이소가이는 나쓰키 가나미의 두 번째 중절 처치에 입회하기 위해 오후 일찍 나카이 산부인과 의원을 향했다. (중략).
"분쿄의대 정신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구먼. 상근 의사는 몇 명이나 되나?"
"다섯 명입니다."
이소가이는 대답하면서 장기 휴가를 신청했다는 사실에 새삼 죄책감을 느꼈다. - P178

이소가이가 산부인과에서 정신과로 전문 분야를 바꾸게 된 사건은 바로 이 분만실에서 일어났다. - P179

이소가이는 당시를 떠올리면서 올곧아 보이는 나카이 원장의 옆 얼굴을 살폈다.
그때 그 중절 수술은 합법이었던 걸까?
지금 와서는 모든 게 다 오리무중이었다. 인공 임신 중절의 진상도, 그리고 자신이 전문 분야를 바꿨던 이유도 말이다. - P182

"저희 측에 맡기신 모자 건강 수첩에 이름이 잘못 기재돼 있는 것같아서요."
가나미가 의아하다는 듯 수첩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이소가이는 왜 하필 지금인지 짜증이 났지만 신경이 쓰여 간호사의 손에서 모자 건강수첩을 낚아챘다. 표지에 적힌 어머니의 성명란에 ‘나카무라 구미‘라고 서명돼 있었다.  - P183

빙의 인격이 슈헤이의 양팔을 풀어 헤치려는 듯 버둥거리면서 원망이 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자기 아기를 죽이고 싶어?" - P185

나카이는 곤란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문 채 슈헤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중략).
"부부께선 잠시 병실로 돌아가 주실까요."
나카이는 한 간호사에게 동반할 것을 지시했다. - P186

완전히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슈헤이는 생각했다. 전부터 느껴 오던 불안감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었다.
가나미에게 중절 수술을 받게 하는 건 무리였다. - P187

이소가이가 수첩을 덮고 표지를 보였다. 어머니 성명란에 ‘나카무라 구미‘라고 적혀 있었다. 슈헤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이소가이를 봤다.
"가나미 씨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나미 씨 본인이 한 게 아니라빙의 인격이 작성한 듯합니다."
"이런 거 가짜 이름으로도 만들 수 있나요?"
"네. 구청에 가서 자진 신고만 하면 되니까요." - P189

"그렇습니다. 가나미 씨는 이 인물을 흉내 내고 있으니까요. 나카무라 구미라는 이름을 듣고 짐작 가는 점은 없습니까? 가나미 씨의 옛 친구라든가."
"그런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화난 듯 내뱉은 슈헤이는 곧 후회했다. - P190

"가나미를 내버려 두고 혼자 도망치는 게 얼마나 비겁한 짓인지는 잘 알아요. 하지만 이젠 한계예요. 결국 가나미와 저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인 거죠."
"진심입니까?"
"네." - P191

 식탁 곁에 앉은 이소가이가 지켜보는 중에 전화기를 집어 들고 가나미의 본가에 전화를 걸자 장모가 받았다.
"여보세요, 슈헤인데요."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 인사했다. 가나미는 외출 중이라고 말한 뒤 옛 친구인 ‘나카무라 구미‘와 급하게 연락해야 할 일이 있는데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 P193

장모는 되묻더니 오랜 기억을 더듬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아, 구미 말이구나. 우리가 센다이에 살던 시절에 나카무라 구미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가나미가 초등학생일 때 말인가요?"
"그렇지." - P193

슈헤이는 벽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중략).
"이소가이 씨가 증인이 돼 주셨으면 합니다."
(중략).
슈헤이는 벽장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가나미가 사용하는 빨간 시스템 수첩을 꺼내 들었다.
"꼭 필요한 페이지만 볼 겁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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