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어. 자네는 그저 그 머릿속에 숨겨둔 걸 우리에게제공해주기만 하면 돼."
"뭐라고요?"
"그날 기미코의 본성을 꿰뚫어 본 탁월한 관찰력. 자네는그 여자를 감시하고 비행선 안에서 일어난 일을 눈에 새기는 거야. 그리고 고트들이 그녀에게 굴복하는 순간을 지켜봐주면 돼." - P112

3

(전략).
나이로비의 국가통일당 본부에서 진행된 사전 교육에 따르면 9구역의 샘플 중 미리 심은 인물은 도키요, 고요미, 기미코 세 사람뿐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가 감행한 헤르메스 계획-인류 최고의 천재들을 샘플에 섞어 넣는 전략이 들통나서 6구역과 7구역이 공격을 받은 시점에서 고트들도 인류가 착륙 지점 규칙을 알아차린 것을 인식했다고 여겨진다. - P114

고트들은 공항에서 보안 검사를 하듯 샘플의 짐을 조사했다. 꽃무늬 옷을 입은 통가족 여성은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귀걸이를 빼앗겼고, 땋은 머리에 마젠타색 머리를 붙인 남성은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에 통신 기능이 없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 P115

"여러분은 32일간 이 비행선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지능측정 테스트를 받게 됩니다. 지능 측정이 완료될 때까지 여러분의 안전은 보장됩니다." - P115

지능 측정 방법은 다양했다. 도형이나 기호를 보고 질문에 답하는 사립 초등학교 시험 같은 것도 있었고, 물이 담긴 커다란 용기를 들고 선 위를 걷게 하거나 들어본 적 없는 언어를 계속해서 들려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 P116

 예전의 기미코는 사소한 몸짓조차 날카로운 적대감으로가득 차 있었지만, 지금 그녀에게서는 무섭도록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우리를 부른 거죠?"
기미코는 도키요를 가리키려 했지만 손목이 떨려 제대로방향을 맞추지 못했다. - P117

기억은 거짓말을 한다.
(중략).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제대로 관찰하는 것. 도키는 매일 이어지는 테스트를 해치우면서 비행선 내부를 유심히 관찰했다. - P118

탑승할 때 짐을 검사한 것이 경비원, 넓은 방에서 연설한 것이 사령관이었다. 시험 감독관은 30여 마리, 호텔맨과 경비원은 각 20여 마리 있었지만, 사령관은 한 마리뿐. - P119

나이로비에서 받은 사전 교육에 따르면 경비원이 들고 다니는 이 막대기 끝부분의 표면 온도는 2천 도 이상이며, 가볍게 찔리기만 해도 치즈처럼 인체에 구멍이 뚫린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 막대기를 빼앗아 고트에게 반격을 가할 수있는가 하면, 그들의 비늘은 내열성이 뛰어나서 긁혀도 상처하나 남지 않는다고 한다. - P12

도키요와 고요미는 이 덜렁쇠 경비원과 친해졌다.
사령관은 그를 ‘수면병‘ 에보라고 불렀다. 복도에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도키요와 고요미는 에보소와 대화를 나눴다. 에보소에게는 두 자녀가 있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이번 임무에 지원했다고 했다. - P121

문을 열자 기미코가 있었다. 혼자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기미코는 최근 항상 휠체어를 밀어주는 호텔맨 ‘풍선‘ 샤모소와 가까워진 듯했고, (중략). - P122

기미코는 파리가달라붙은 듯한 표정을 지은 후, 두꺼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경멸하듯 웃었다. "아, 맞다. 다카시에게 총을 맞아 머리가 맛이 갔었지?"
도키요는 기미코의 멱살을 잡았다. (중략).
고요미는 도키요를 두 걸음 뒤로 밀어내고 몸을 숙여 기미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P123

기미코는 손끝만 내려다보며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둔한 저도 드디어 당신의 계략을 알게 되었어요."
오호라, 하고 입술이 움직이는 듯 보였다.
"구스카미 씨에게 우즈메 계획을 제안받은 당신은 그의 계략에 동조하는 척하며 우리를 여기로 데려오게 했죠. (중략), 당신은 남아프리카의 4억 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여기에서 바라볼 생각인 거죠? 정말 당신다운, 사람의 목숨을 장기말처럼 여기는 악마의 소행이군요." - P124

기미코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중략).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해서 완전히 맥이 빠진거야?" 갈라진 입술 끝이 올라갔다. "속이 다 시원하네." - P125

"엄마, 이제 곧 끝이야."
약속대로 고요미는 문을 두드렸다. 답은 없었다. 문이 앞뒤로 흔들렸다. 빗장은 걸려 있지 않았다.
(중략).
도키요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기력이 빠져 드러누운 것이아니다. 울다 지쳐 잠에 빠진 것도 아니다.
2층에서 떨어진 아기처럼 두개골이 부서져 있다. 도키요는 죽어 있었다. - P126

4

(전략).
반쯤 열린 문으로 복도를 바라보았다. 휠체어에 앉은 기미코가 사령관을 불러세웠다.
"당신들, 대체 어떻게 책임을 질 셈이지?"
일본어로 계속 말했다. 사령관은 잠시 기억을 더듬듯 뿔을기울인 후 "책임이라니 잘 모르겠습니다. 책임이 무슨 뜻입니까?" 하고 일본어로 답했다. - P127

"잘 생각해봐. 이렇게 된 건 도대체 누구 탓이지?"
"그건 물론 미즈타 도키요 씨를 죽인 범인입니다."
"그게 누군데?"
"모르겠습니다."
"그건 왜지? 저 말라깽이 녀석이 계속 감시하고 있던 거아닌가?" - P128

"즉, 저기 있는 멍청이가 실수를 저지른 탓에 이 여자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로군."
고트들이 ‘수면병‘ 에보소를 바라보았다. 에보소는 숨이막히는 듯 어깨를 떨었다. - P129

"그건 당신들이 생각할 일이지. 잘 생각해보고 결정되면나에게 알려줘. 알겠지?"
기미코는 휘이 손을 내젓고는 ‘풍선‘ 샤모소에게 휠체어를밀게 하여 방으로 돌아갔다. - P130

32일째.
팬파이프는 한 달 만에 은돌라의 금속 제련소에 다시 착륙했다. 경비원이 무슬림 소년을 붙잡자, 선체는 다시 성층권으로 상승했다. - P130

36일째.

"정말 썩어빠졌구먼. 그런 시시한 연극으로 나를 속일 수있다고 생각했나?"
기미코는 휠체어의 팔걸이를 두드리며 ‘풍선‘ 샤모소에게욕설을 퍼부었다. - P132

"쓰노 기미코 씨의 말씀대로입니다. 저는 정말로 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 진짜로 화를 표현하겠습니다."
샤모소는 복도의 호텔맨을 불러 에보소의 양팔을 붙잡게했다. 다섯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서 장갑을 벗고 바닥에 손톱을 세웠다. 에보소가 고개를 끄덕인 것을 신호로 샤모소는 달음박질하며 에보소에게 돌진했다.  - P133

기미코가 소리쳤다. 에보소가 얼어붙었다. 액체가 줄줄 떨어졌다.
"네가 근성 없이 본인 엉덩이도 제대로 닦지 못하니까 풍선이나 다른 애들이 손을 빌려주는 거잖아. 감사부터 해야지! 그런 것도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 P134

45일째.

고요미는 방에 틀어박혀 《기암성》 여백에 펜을 굴렸다. 눈을 뜬 이후 해가 질 때까지 한 번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고트들에게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도키요의 죽음을 계기로 그들은 기미코의 함정에 빠져드는 중이다.
인류를 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 P134

경비원 ‘수면병‘ 에보소는 예전과는 다른 생물처럼 여원채 쇠약해지고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 P135

"정말, 정말로 죄송합니다."
샤모소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이 구획의 샘플을 돌보는 것은 그의 역할이었다. 도키요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했던 ‘수면병‘ 에보소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P436

57일째

‘수면병‘ 에보소가 죽었다.
오전 7시가 넘어 ‘풍선‘ 샤모소가 상태를 보러 방에 들어갔다가 에보소가 차갑게 식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P137

경비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사령관이 에보소를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한 모양이었다. 에보소가 당한 괴롭힘은 도를 넘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같은 잘못을 저지른 호텔맨은 혼이 날 기색조차 없으니 그들이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P138

59일째.

"너무 추워서 견디기가 힘들어. 조금 더 난방을 올려줄 수없나?"
기미코가 경비원을 불러세워서 말했다. 매우 쉰 목소리였고 안색도 좋지 않아 보였다. 에보소가 죽은 이후로 그녀는 명백하게 상태가 이상했다. - P138

62일째.
"안돼. 죽을 것 같아. 뭐든 좋으니까 몸을 따뜻하게 할 수있는 것 좀 줘."
사령관의 방 앞에서 기미코가 애원하듯 말했다. 호흡이 가쁘고 발판에 올려둔 발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P139

고요미는 이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중략).
오후 11시 55분. 곧 날짜가 바뀐다. (중략).
빵.
건조한 소리가 들렸다. - P139

63일째.

사령관은 도키요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와 같은 말을했다.
생활 구역의 외진 방에 고트들이 모여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무슬림 소년이 침대 구석에 쓰러져 있었다. - P140

"다행히도 범인의 윤곽은 잡혀 있습니다."
사령관이 일본어로 답했다. 고트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체를 보십시오." 소년의 가슴을 가리키며 사령관이 말을 이었다. "카틀레호 씨의 가슴에 경비원의 무기로 찌른 구멍이 있습니다." - P141

 "어젯밤에 ‘빵‘ 하는 소리가 들렸어. 그거, 총소리잖아."
고요미도 그 소리를 들었다. - P142

"나는 생각합니다. 샘플 중 하나가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비원이 서둘러 말했다. "그 샘플이 카틀레호 씨를 쏘았습니다. 지능 측정을 더욱 늦추기 위해서입니다." - P142

 "당신들, 우리가 비행선에 탈 때 우리에게서 무기를 압수하지 않았나? 우린 아무도 총 같은 거 안 가지고 있다고!"
그 말대로였다.
경비원들이 침묵에 빠졌다. 샘플의 무기 반입을 허용했다면, 그것 또한 경비원 책임이다. - P142

뿔이 작은 경비원이 말했다. 기미코가 눈썹을 찌푸렸다.
"카틀레호 씨를 죽인 범인은 출입 금지 구역에 숨어 들어가 우리가 9구역의 공격을 위해 준비한 권총을 가져간 겁니다."
경비원들이 또다시 들끓었다. 사령관은 아무 대답도 하지않았다. - P143

경비원 한 마리가 사령관의 배에 뿔을 찔러넣었다. 사령관이 울부짖었다.  - P143

곧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중략).
방 앞에 고트가 서 있었다. (중략).
"대단히 죄송합니다. 더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무뚝뚝한 말투가 익숙했다. 사령관이었다.
"공격 가능 판정을 계속하겠습니다. 향후 일정은......." - P145

고요미는 출입 금지 구역을 한바퀴 돌았지만, 살아 있는 고트를 찾지 못했다.
다른 방에서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세 명이 난투에휘말렸고 다섯 명이 추락 시 부상을 입었지만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 P146

 우즈메 계획을성공시킨 노인은 저녁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눈이 부신 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중얼거렸다.
"잘 풀렸군."
그러고는 고요미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보였다.
첫번
"모든 게 너와 약속한 대로 됐어." - P147

(전략).
32일째. 남아프리카에 납의 비가 쏟아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세 시간 남짓.
"하지만 단 하나, 저 고트들을 박살 내고 인류를 구할 방법이 있어. 자네와 자네 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뭐가 재밌는지 기미코는 눈가에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 P148

도키요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기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해서 고트들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지."
"연극 도구 같은 건 안 가지고 있는데요."
"가지고 있어. 18년 전부터 계속."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 P149

기미코는 소리 내어 웃었다.
"본인이 하는 말이 이상하다고는 생각 안 하나?"
무슨 말이지?
"잘 생각해봐. 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천이 깨끗할 리 없잖아." - P150

첫 번째 발사로 깨진 것은 유리창이 아니었나? - P151

"다카시는 총을 세 발 쏜 건가요?"
첫 번째 총알은 창고 안의 유리 제품에 맞았고, 두 번째 총알은 도키요의 얼굴에 명중했고, 도키요가 피를 멈추고자커튼을 벗겨낸 후 세 번째 총알이 유리창을 깼다. - P151

그때 현장에 있던 두 사람, 경찰관 도키요와 감금되었던소지의 증언에는 서로 맞지 않는 점이 있었다. 둘 다 두 발의 총성을 들었음에도 도키요는 두 번째 총알에 왼쪽 눈을잃었다고 했고, 소지는 첫 번째 총알이 도키요의 얼굴에 맞았다고 했다.
만약 다카시가 파이프건을 세 번 쏜 것이라면 이 불일치도 설명할 수 있다.  - P152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발견된 총알은 바깥의 화분과 창고 바닥에 떨어진 것, 두 개뿐이었다.  - P152

"내가 연극에 쓰고 싶은 건 그 총알이야." - P153

. "총을 쏘면 소리가 날 텐데요. 상처에서 총알이 발견되더라도 총성이 들리지 않으면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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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 책에 실린 비평과 리뷰는 내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쓴 글들이다. 당시는 내 삶에서 뚜렷이 구분되는 시기였다.  - P13

여기 실은 에세이들에서 특정 예술 작품을 많이 거론하고 비평가의 임무에 대해서도 암시적으로 언급하긴 하나, 이 가운데 엄밀한 의미의 비평이라 할 만한 글은 거의 없다는 점도 안다. - P13

 즉각적인 ‘소통‘의 시대에, 새롭거나잘 알려지지 않은 활동에 대한 글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몰랐다. 《파르티잔 리뷰》에 쓴 묵직한 글이 얼마나 빨리 <타임>의 짧은 ‘최신 정보‘가 될 수 있는지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고통스럽게 알아가는 참이다.  - P14

카뮈의 『작가 수첩』

위대한 작가는 남편이거나 연인이다. 어떤 작가는 신뢰성, 명료성, 관대함, 점잖음 등 남편의 미덕을 제공한다. 한편 연인처럼 도덕적 선함보다는 기질을 안겨주는 작가도 있다. - P87

내가 말하는 작가는 당연하게도 현대문학의 이상적 남편인 알베르 카뮈다. 현대인이다 보니 카뮈도 광인의 주제인 자살, 무감함, 죄책감, 극도의 공포 같은 주제를 다루어야 했다. - P88

카뮈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개인적·도덕적·문학적판단이 뒤섞인다. - P89

카뮈의 소설은 예시적이고 철학적이다. - P89

카뮈의 에세이, 정치 기사, 연설문, 문학 비평, 저널리즘은 어떨까? 물론 빼어나게 뛰어난 글들이다. 그러나 카뮈가 중요한 사상가였나? 그 답은 ‘아니요‘다. - P90

어쩌면 작가가 독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 감사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면서 지속 기간이 가장 짧은 감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P91

카뮈는 글을 아는 세대 전체에게 영원한 정신적 혁명의 상태에 있는 영웅적 인물로 여겨진 작가다. 그러나 카뮈는 순응적 허무주의, 한계를 인지하는 절대적 반항이라는 역설을 지지한 사람이기도 하다. - P92

카뮈가 짧은 생애 동안 적어도 세 차례나 중대한 판단을내려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카뮈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하고, 공산당과 결별하고, 알제리 독립 전쟁에서 어느 쪽도 편들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이 셋 중 둘은 훌륭한 처신이었다. - P93

 알제리 문제에서 확실한 입장을 표하지 못한 카뮈의 고통스러운 무능이 (알제리인이자 프랑스인으로서 누구보다 발언할 자격이 있었음에도) 그의 도덕적 미덕의 최종적이며 불행한 증거가 되었다. 1950년대 내내 카뮈는사적인 충성심과 감정 때문에 단호하게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가없다고 말했다.  - P93

『작가 수첩 1935~1942 Notebooks, 1935~1942』(프랑스어 원서를 필립 토디가 영어로 번역했다)은 카뮈가 1935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쓴 노트를 모아 출간한 세권 중 첫 번째 책이다. 카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카뮈에 관해, 자신에게 감동을 준 책에 관해 알게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펼칠 것이다. - P95

카뮈의 『작가 수첩』에는 온갖 것이 들어 있다. 글쓰기 연습장이자 글감 채석장이며, 글 도막이나 지나가며 들은 대화의 일부, 단편소설 아이디어, 때로는 나중에 소설이나 에세이에 들어갈 단락을 끼적여놓기도 했다. - P96

그리하여 작가 수첩은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이긴 하나 카뮈가 지니는 불멸의 위상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거나 인간으로서 카뮈를 깊이 이해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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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및 천문학을 전공한 미카엘 매스틀린 Michael Mästlin은 케플러를 가르쳤던 교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케플러의 뛰어난 과학적 재능을 일찌감치 눈여겨보고 있었다. - P37

역법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케플러는 행성의 숫자와 크기, 그리고 그 궤도 등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종교적 신념은 여전히 굳건했다. - P38

티코 브라헤는 1546년 덴마크 귀족 가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티코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둘러싸고 문제가 생겨났다. (중략). 백부 외르겐Jörgen은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동생에게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나자 더 이상 동생 내외에게는 맏아들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티코를 납치해 갔다. 티코의 부친은 자신의 형 외르겐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 P39

브라헤는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벌이기 좋아했지만 밤에는 천문대에 자리를 잡고 조수들과 함께 20년 동안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기록했다. 때로는 4개의 팀으로 나누어 같은 곳을 동시에 관측하기도 했다.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브라헤는 유례없이 정밀한 관측을 행했다. 그런데 그런 정밀함 못지않게 중요한사실은 그가 중단 없이 장기간에 걸쳐 관측을 했다는 점이다. - P40

그러나 자신의 이론을 채 완성하기 전에 이 거만하기 그지없던 과학자는 덴마크 국왕과 불화를 일으켰다. - P41

그렇지만 브라헤와 케플러의 공동연구는 원만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브라헤가 케플러에게 맡긴 일은 행성의 움직임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중략). 하지만 모든 자료를 자유롭게 볼 수는 없었다. 브라헤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만 자료의 일부를 내어줄 뿐이었다. 브라헤는 우수한 조수가 자신을 능가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 P42

늘 기름진 성찬을 배불리 먹던 브라헤가 그만 방광염을 얻고 말았고, 결국 이로 인해 사망하게 된 것이다. 황제 루돌프 2세는 곧바로 케플러를 황실 수학자로 승진시켰고, 조수 생활을 하던 케플러는 브라헤가 신주 모시듯 하던 관측 기록까지 물려받았다. (중략). 어쩌면 ‘훔쳤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브라헤의 상속인이 정당한 소유권을 행사하기 전에 그 기록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 P43

한편, 케플러는 마침내 천문학 표 작성을 끝마치게 되었다. (중략). 왜냐하면 황실 수학자로서 케플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금액도 남아 있었던 상황에서 하사금도 기약 없는 지급 약속만으로 수여되었기 때문이다. - P45

케플러는 많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적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완성한 일이다. - P45

그러나 케플러는 천체와 같은 거시적 문제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중략). 이 책의 주제인 케플러의 추측은 바로 그의미시적 관심에서 연유된 것이다. 케플러의 추측은 <육각 눈송이>란 제목의 소책자에 실려 있다. - P46

먼저 케플러는 육각형의 경우 빈틈없이 바닥을 덮을 수 있다는점을 깨달았다. (중략). 케플러의 답은 사각형이나 삼각형은 육각형에 비해 표면적이 적기 때문에 그만큼 꿀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적어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위대한학자 케플러는 다소 불명확하게 말을 하고 있다.  - P47

아마도 케플러가 말하고자 한 것은 테두리 길이가 일정한 사각형 · 삼각형 · 육각형을 비교하면 육각형이 가장 넓은. 면적을 갖는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또는 동일한 면적을 갖고 있는 삼각형 · 사각형 · 육각형 가운데 육각형의 둘레 길이가 가장 짧다는 사실⁵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5) 이것 또한 ‘디도의 문제‘ 이다. (3장 참조) - P48

 그 다음으로 동그란 벽보다 곧은 벽이 더 견고하기 때문에 찌그러질 위험이 훨씬 적다는 점을 케플러는 들고 있다.⁷

7) 하지만 공학자들은 이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중세 때에 이미 교회 건축가들은 아치형출입구가 곧은 모양보다 훨씬 더 큰 하중을 견뎌냄을 알고 있었다. - P48

그러한 사실은 100년도 더 지난 후인 1727년, 영국의 식물학자 스티븐 헤일스Stephen Hales(1677~1761)에 의해 다시금 확인되었다.
케플러의 추측을 연구한 수학자 토머스 헤일스는 스티븐 헤일스에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스티븐 헤일스는 늦게 결혼을 해 자손 없이 사망했으므로 내 조상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우리 집안의 과학자들은 비공식적으로 그를 우리 가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우리 집안의 과학자들‘ 이란 수학자를 가리킨다. 이인용문은 스티븐 헤일스가 비록 수학자는 아니었지만 케플러 추측과 관련이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에 수학사에 그의 이름이 남게 되었다는 뜻이다-옮긴이)  - P49

헤일스의 결론에 다소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것은 케플러가 발견한 사실을 다시금 확증해 주는 것이었다. 즉, 씨앗이나 콩에 압력을 가해 서로 밀착시키면 각각은 다른 12개와 맞닿게 된다는 사실 말이다. - P51

. 사각형을 기반으로 할때는 모든 구가 수평과 수직을 이루도록 열과 행을 배열한다. 그 다음 켜에서는 첫 번째 켜에 있는 구 4개마다 홈이 만들어지는데, 이곳에 구를 올려놓는다. 다음 켜에서도 동일하게 구를 쌓는다. 이렇게 배열하면 첫 번째 켜에 평행한 평면에서는 각각의 구가 사방으로 4개의 다른 구와 맞닿아 있고, 위쪽 켜와 아래쪽 켜에서도 각각구 4개씩과 맞닿아 있게 된다. 바로 이 배열이 FCC임은 쉽게 알 수있을 것이다. - P52

이제 육각형을 기반으로 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할 차례이다. 먼저 한 평면에 6개의 구가 다른 하나의 구를 감싸도록 한다. 이들 7개의 구는 6개의 홈을 만들어 낸다. 위 켜에서는 하나씩 건너뛰는 방식으로 3개의 구를 올려놓는다. 또 아래 켜에서도 동일한 작업을 행한다. 이 배열이 HCP, 즉 육방 밀집 쌓기이다. - P52

여기에서 케플러는 진정으로 주목할 만한 사실 하나를 지적해낸다. 그것은 바로 이 두 가지 배열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ㅅ - P52

이상에서 케플러가 오각형으로부터 어떻게 신성 비율을 얻어내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는 신성 비율로부터 어떻게 풍요와 다산의 개념을 이끌어 낸 것일까?  - P55

물론 케플러의 주장은 합리적 논증을 따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내용 자체는 실제 사실과 합치되는 면이 있다. - P56

케플러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의 책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는논증 과정에서 2차원 쌓기 및 3차원 쌓기에 대해 매우 획기적인 내용을 언급했다. 가령, 2차원의 경우 육각 쌓기가 가장 높은 밀도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증명은 하지 않았다. 그의 주장을 확인하기까지는 무려 341년의 세월이 걸렸다. 다음으로 케플러는 앞에서 기술한 3차원 쌓기가 가장 밀도가 높은 배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추측 역시 증명되기까지 387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¹²


12) 이렇듯 증명 안 된 가설 외에 그 소책자에는 크게 잘못된 주장도 담겨 있다. 만일 공간이 동일한 크기의 정육면체들로 채워질 경우, "정육면체 하나는 38개의 다른 정육면체와 닿아 있게된다unum cubum contingunt alii.
・・・ octo et triginta" 고 케플러는 주장했다. 하지만 38개는 어불성설이다. 독자 여러분은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루빅Rubik 교수의 헝가리 큐브‘ 란 것을 기억할 것이다. 헝가리 큐브는 3단짜리 정육면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단은 가로 세로 3개씩의정육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정육면체 총 수는 3×3×3-27개가 된다. 즉, 하나가 중심에 있고 나머지 26개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6개의 정육면체가 중심의정육면체와 면을 맞대고 있고 12개는 모서리와 맞대고 있으며, 나머지 8개는 꼭지점과 맞닿아있다. 이번에도 역시 가운데 정육면체와 맞닿아 있는 정육면체의 수로 6+12+8-26개를 얻는다. 황실 수학자였던 케플러의 주장처럼 38개가 아닌 것이다. - P58

그 무렵, 태평양 건너 저 멀리 일본의 핵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中谷宇吉郎(1900~62)는 최초로 눈 결정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했다. - P60

(전략).
하지만 해리엇이 제시한 모델은 단지 설명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도입된 것일 뿐이다. 케플러는 모든 물질이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P62

그런데 왜 물 분자들이 눈 결정을 형성할 때 정육각형 배열을 택하는 것일까? 그 답은 다음의 물리적 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물리계는 외부의 아무런 간섭 없이 그대로 두면 가장 낮은 에너지상태를 갖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 P63

눈 결정이 육각의 구조를 갖는다는 사실과 평면에서 원을 육각형 형태로 배열하면 가장 밀도가 높은 배열을 얻는다는 사실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은 이제 분명해졌다. 사실 얼음 결정에서 볼 수 있는 원자의 배열은 그다지 밀도가 높은 배열이라 할 수없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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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집단에 동조하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모두 집단에 맞춰 행동을 조정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 P115

하지만 밀그램은 애쉬의 고전적인 연구 과정에서 사용된 생태적 타당성에 불만을 품었다. 실험 연구에서 과제의 ‘생태적 타당성‘이란 실험실 환경에서 연구되면서도 사회적으로 관련이 있고 가능한 한 실제 상황에 가까운 실험 모델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 P116

밀그램은 자신의 연구를 통해 얻은 복종 수준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사람들이 실험자의 명령을 따를 때 자신의 주체성과 책임을 실험자에게 넘긴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생각 없는 행동 주체thoughtless agents ofaction‘가 되어 ‘대리적 상태agentic state‘에 들어간다.⁵³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사람들이 명령에 복종하는 대리적 상태가 되었다는 그의 이론에 동의했지만,⁵⁴ 어떤 학자들은 그가 모든 참가자로부터 체계적인 보고를 받은 것은 아니었기에 그 타당성을 우려했다.⁵⁵ - P119

53 Milgram. Obedience to Authority, pp. 132-134.

54 T. Blass, The Milgram paradigm after 35 years: Some things we now know aboutobedience to authority.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 29 (1999), 955-978.

55 S.A. Haslam & S. D. Reicher. 50 years of "obedience to authority": From blindconformity to engaged followership. Annual Review of Law and Social Science13 (2017), 59-78. - P354

밀그램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처음에는 부족했음에도 명시적, 암묵적, 전기 생리학적, 신경영상학적 방법을 결합한 실험 연구는 밀그램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제3장에서 살펴보겠다). - P120

밀그램과 유사한 접근 방식을 사용한 다른 연구


(전략). 이후 다른 연구자들이 복종에 대한 추가적인 결론을 얻기 위해 여러 실험을 더 도입했다. (중략).
내가 박사 학위를 시작하기 전 브뤼셀의 중등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쳤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프랑스의 텔레비전 채널인 프랑스 2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죽음의 게임 Lejeux de la mort>을 시청하도록 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TV 진행자가 실험을 진행하는 과학자만큼 권위 있는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것이었다. - P121

지원자들은 초대를 받아 다가올 파일럿 TV 쇼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안내받았다. - P121

밀그램의 실험처럼 질문자는 경연자가 틀린 대답을 할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해야 했는데, 틀린 대답이 나올 때마다 전기 충격의 강도가 매번 증가했다. 질문자가 의심의 징후를 보이거나 절차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 TV 진행자는 질문자가 실험을 계속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특정 순서대로 다섯 번의 구두 재촉을 했다.  - P122

학생들에게 TV 연구 결과를 보여주기 전에 나는 그들이 그런 TV 쇼에서 나오는 명령에 따를 것 같냐고 물었다. 학생들은 만장일치로 절대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복종하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죠"라거나
"당연히 우리가 바보나 괴물은 아니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TV 쇼의 결과에 따르면 질문자 중 81퍼센트가 절차 끝까지 진행해서 경연자에게 450 볼트의 전기 충격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P122

TV 쇼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남성과 여성 참가자 간에 어떠한 차이도 관찰하지 못했고, 나이와의 상관관계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이 정치 스펙트럼의 왼쪽에 있을수록 학습자에게 주는 충격이 낮아진다는 것을 관찰했다.⁵⁷ - P123

쥐 참수 연구보다 더 최근에는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LaurentBègue가 이끄는 연구진이 밀그램과 유사한 실험을 통해, 과학 연구를 위해 동물을 죽이라는 명령에 사람들이 따르는 데 동의할지를 실험했다.⁵⁹ - P124

59 L. Bègue & K. Vezirian. Sacrificing animals in the name of scientific authority:The relationship between pro-scientific mindset and the lethal use of animals inbiomedical experimenta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8(2022), 1483-1498. - P354

그 물고기가 가짜인 것처럼 이 연구는 가상 상황cover story에 의존했다. 따라서 연구진은 먼저 152명의 참가자 중 누가 가상 상황을 신뢰하는지, 누가 신뢰하지 않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몇몇 심사자가 지원자의 영상을분석해 참가자들이 가상 상황을 신뢰하는지 아닌지 심사자의 인식을 기준으로 분류했다. - P125

실제로 밀그램의 참가자들이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실제로 무엇을 생각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어렵다. (중략).
밀그램의 연구에 대한 강력한 윤리적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⁶² - P128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다른 사람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행동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 과제의 외적 타당도external validity 에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 특수한 연구로 얻은 결과를 일반화할 수 있는 정도. 옮긴이 - P129

밀그램의 연구 이후의 복종 연구

(전략).
1980년대에 위트레흐트대학교의 연구팀은 복종을 시험하는 표준 접근법에 새로운 변화를 도입했다.⁶⁹ 연구팀은 구직 면접 지원자에게 매우 부정적인 발언을 하는 현대적 형태의 간접적인 폭력 실험을 했을 때 밀그램의 연구처럼 복종도가 높을지 조사했다. - P130

69 W.H.J. Meeus & Q.A. W. Raaijmakers. Obedience in modern society: The Utrechtstudies. Journal of Social Issues 51 (1995), 155-175. - P355

참가자에게는 그가 수행할 구직 지원자 시험이 선발 절차에서 중요하다는 것과 구직 지원자의 합격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참가자들은 구직 지원자의 시험 성적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고 성격을 폄하하는 발언을 해 지원자를 방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중략).
따라서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밀그램의 연구처럼 자신이 다른 개인을 고문하고 죽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구직지원자를 심하게 폄하해 심리적 피해를 주고 취업에 실패하도록 만들었을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P131

이는 밀그램의 복종 연구에서 끝까지 복종한 비율이 65퍼센트에 불과한‘ 것보다 높은 수치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자들이 또 다른 모집단인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도 이 연구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 P132

밀그램의 복종 연구와는 약간 다른 접근법을 사용한 이 실험의 결과는사람들이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한 매우 복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피해자가 될 위험이 생기면 갑자기 순응도가 뚝 떨어진다. - P132

복종을 연구하는 새로운 실험적 접근 방식

(전략)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밀그램의 연구를 아는 것과 관련된 주요 문제는 참가자들이 실험실에 들어갔을 때 우리가 숨겨진 목적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밀그램의 연구는 참가자에게 정보를 숨기고 속임수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⁷² - P134

밀그램의 연구를 재창조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우리는 밀그램의 연구와 관련된 윤리적 및 방법론적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가능한 한 생태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실험적 접근법을 개발해야 했다. 즉 사람들이 도덕적 결정에 직면하는 실제 행동을 측정할 수 있는 시도를 의미한다. - P136

밀그램의 연구처럼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실험 상황에서 참가자들은 땀을 흘릴 가능성이 크다. 내 경우에도 참가자 머리에서 땀이 흐를 때 양질의 뇌파 신호를 얻기가 정말 힘들었다. 땀 허상sweat artefacts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신경과학자에게 악몽과도 같다. - P137

물론 고려해야 할 다른 사항도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행동과 허용되지 않는 행동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연구할 때, 그들이 실제로 도덕적 또는 비도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결정에 직면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P137

총 두 명의 연구자, 줄리아 크리스텐슨Julia Christensen과 악셀 클리어만스Axel Cleeremans가 패트릭과 나와 함께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개발하기 위해 참여했다.⁷³ - P137

73 E.A. Caspar, J. F. Christensen, A. Cleeremans, & P. Haggard. Coercion changes thesense of agency in the human brain, Current Biology 26 (2016), 585-592. - P355

우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실험 조건을 설명하기 위해 ‘자유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실험자가 명령을 내리는 조건에는 ‘강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여기서 ‘강압‘이라는 단어가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의미로 여겨져야 한다는 점에 유의하자. - P139

과학 학회나 미디어에서 내 연구에 관해 말하면 사람들은 "하지만 사람들은 밀그램을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당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진다. - P141

우리는 처음에 대학생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밀그램을 광범위하게 공부했기에 참여자 중 단 한 명도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 예상은 완벽하게 어긋났다. 참여자 중에 다른 지원자에게 실제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내 명령을 거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 P141

복종 탐구: 참가자들이 고통스러운 충격을 가하는 이유

학자들 사이에서는 도덕성의 정의를 둘러싸고 상당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⁷⁴실제로 나는 내 실험을 통해 도덕성에 대한 서로 다른(그리고 매우 개인적인) 인식이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었다. - P142

71s nB. Gert & J. Gert. The definition of morality. In E. N Zalta (ed.), The StanfordEncyclopedia of Philosophy.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2020).
contrariar - P355

그런데 어느 날 한 참가자가 설명 중에 갑자기 내 말을 가로채서 "사람들이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없는데 왜 충격 없음 버튼을 누르는 거죠?"라고 물었다. 솔직히 이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으므로 "글쎄요. 당신 앞에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후략). - P143

일부 참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전기 충격을 많이 가했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이것이 주된 동기라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심지어 사후 설명 조사지에 "돈, 돈, 돈"이라고 적은 참가자도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53/60의 충격을 보냈다. - P144

나는 자유 선택 조건에서 그들이 무엇을 할지 완전히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으며 그들이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점처을 음부터 분명히 밝힌다. 실제로도 그랬다. - P146

어떤 참가자들은 호기심에 그렇게 했다. 한 사람은 피해자가 정말 고통스러울지 보고 싶었다고 밝혔고 (1/60회 충격 전송), 다른 한 사람은 전기 충격을 가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2/60회 충격 전송).  - P146

간혹 철학적인 설명도 보였다. "지혜는 지루합니다. 악은 자극적이죠" (15/48 충격 전송). - P147

실험실 실험이 실제 잔혹행위를 반영할 수 있을까?

(전략).
2015년 미국의 심리학자 앨런 페니히스타인Allan Fenigstein은 흥미로운 논문⁷⁵"에서 밀그램의 연구와 나치를 대조하면서 밀그램의 연구만으로는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P147

7.5A. Fenigstein, Milgram‘s shock experiments and the Nazi perpetrators: A contrarianperspective on the role of obedience pressures during the Holocaust, Theory&Psychology 25 (2015), 581-598. - P355

나 역시 연구를 설계하면서 이 문제를 고민했다. 실제의 집단학살과 전기 충격을 포함한 연구 사이에는 고려해야 할 중요한 차이점이 당연히 있다. 윤리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 전쟁이나 집단학살에 가담한 개인의 뇌에전극을 이용한 실험을 할 수는 없으므로 나는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해결해야 했다. - P148

결론


이 장에서 보여주듯이 다른 연구자나 내 실험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모집된 수천 명의 지원자는 실험 상황에서조차 외부 압력이 있든 없든 다른 개인을 해치는 것에 높은 수준의 복종도를 보인다. - P148

어쨌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방법이 신경영상 측정에 적합하여사람들이 명령을 따를 때 어떻게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을 받아들일 수있는지에 대한 답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 장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 P149

4

복종할 때의
도덕적 감정

(전략).
여러분은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느꼈던 순간들이 수십 가지는 쉽게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감정적이든 신체적이든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 공감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위를 꺼리게 만드는 이유로 생각된다. - P191

뇌는 공감을 느끼도록 설정되어 있다


(전략). 먼저 여기에는 자신의 신경계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고통을 처리해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경험 공유experience sharing가 포함된다. 그다음 정신회mentalizing는 다른 사람의 내면 상태와 생각을 이해하는 능력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공감적 관심empathic concern은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과 배려의 감정을 말한다. - P192

특히 우리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우리를 해로움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 P193

리콜라티와 그의 팀은 마카크원숭이의 전운동 피질에 있는 뉴런의 전기적 활동을 기록하여 이 뉴런들이 움직임의 계획과 시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고 있었다.¹¹⁴ (중략).
연구자 중 한 명이 돌아와 원숭이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고 원숭이 뇌에는 여전히 활성화된 장치가 연결돼 있었다. (중략). 연구자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수동적으로 지켜보고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신경 반응은 당연히 연구팀을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그래서 몇 가지 추가 시험을 하기로 했다. - P196

114 G. Rizzolatti, R. Camarda, L. Fogassi, M. Gentilucci, G. Luppino, & M. Matelli. Functional organization of inferior area 6 in the macaque monkey. Experimental Brain Research 71 (1988), 491-507. - P358

이렇게 해서 거울뉴런이 발견되었는데, ‘거울‘이라는 용어는 이 뉴런이 수신된 정보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사실에서 유래했다. - P196

거울뉴런이 있는 덕분에 전대상 피질과 전측 섬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이로써 우리는그 사람의 감정적, 신체적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흔한 예로는 하품이 있다.  - P197

인간의 뇌 속에 거울뉴런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침습적 기술이 필요하므로 복잡하다. 리촐라티가 마카크원숭이에게 사용한 것과 같은 단일 뉴런 시술은 두피를 열어 뇌에 접근한 다음 특정 개별 뉴런에 전극을 삽입해야 해서 매우 침습적이다.  - P198

공감에 중요한 뇌 영역인 전대상 피질과 전측 섬에도 거울뉴런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지만, 이곳은 뇌의 더 깊은 영역이고 접근하기 어려워 인간에서는 아직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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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잡고 앙투아네트는 두 잔의 럼 펀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작은 식탁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녀가 잔을 들어 내게 주더니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라고 말했다.
"행복을 위하여."
내가 대답했다. - P95

"무얼 그렇게 무서워했다는 거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안 무서웠어요. 사실 모든 게 다 무서웠어요."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고, "크리스토핀이에요." 라고 앙투아네트가 말했다. - P96

앙투아네트가 웃었다.
"저 문을 열면 당신이 쓰게 될 작은 방이 있어요. 원래는 옷 갈아입는 방이었어요."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 P97

모든 것이 매우 선명한 색깔들을 뽐내고 있지만, 내게는 한없이 낯설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것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 내가 결혼하게 될 이 여인도 내겐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 P99

나는 나의 결혼 예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 P100

결혼식 바로 전날 아침이었다. 내가 막 모닝커피 한 잔을 다 마서가고 있을 때 리처드가 프레이저 씨의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일을 진행하지 않겠다네!"
"무슨 일을?"
"자네와 결혼하지 않겠다는군."
"왜?"
"왜 그런지는 말을 안 해."
"무슨 이유가 분명 있을 것 아닌가" - P101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를 껴안고 키스했다.
"그렇지만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
"당신이 나를 믿어준다면 나도 당신을 믿으리다. 어때요? (중략)." - P102

(전략). 나는 옆방에서 들리는 물소리와 웃음소리에 잠을 깼다. 나는 아직도 잠에 취한 채 듣고 있었다.
"내 머리에 향을 많이 바르지 말아요.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으니까."
앙투아네트의 음성이다. 또 다른 음성이 말했다.
"남자가 향내를 싫어한다구? 난 그런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구먼."
벌써 밤이었다. - P103

"사람들이 이 옷을 ‘조세핀* 스타일‘ 이라고 해요."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1796년에 결혼하여 1804년에 왕후가 된 조세핀 보나파르트는 마르티니크 출신이며 크리올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대농장의 주인이며 노예주였다. 조세핀은 1809년에 나폴레옹으로부터 이혼당하게 되는데, 앙투아네트나그녀의 어머니 아네트의 운명과 유사한 점이 많다. - P103

"영국이 꿈과 같다는 말이 사실이에요? 내 친구 하나가 영국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 친구가 그렇게 편지에 썼더라고요. 그 애가 말하기를 런던이란 곳은 때때로 암울하고 냉기로 가득 찬 꿈만같대요. 어서 깨어나 떨쳐버리고 싶은 꿈만 같다고요." - P104

그녀는 말을 멈추고 손을 올려 머리 위에 놓았다.
"슬픈 이야기면 오늘 밤 내게 말하지 말아요."
"슬픈 얘기 아니에요. 어떤 일이 일단 발생하면 그 사건이 언제, 왜 발생했는지는 잊어버린다 해도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영원히 존재해요. (후략)." - P106

그녀의 입은 억지로 웃고 있었고 눈빛은 세상과 동떨어진 외로운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내 팔로 감싸고, 아기를 달래듯 부드럽게 흔들어주었다. 그러고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내가 벌써 잊은 지 오래라고 생각했던 옛날 노래였다.


고요한 밤의 여왕에게 만세,
로빈, 환하게 빛나라, 환하게 빛나라,
네가 죽는 그날.*


*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갈리아 신화에 의하면 로빈(울새)은 ‘거세되지 않은 숫양‘ 혹은 ‘남근‘을 상징한다. 동시에 성의 희열과 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로빈의 죽음은 여왕과의 성 접촉 후 발생할 복종과 죽음, 거세를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앙투아네트의 왕성한 성욕을 두려워하게 될 로체스터의 고민을 예고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손필드에 불을 지르고 머리칼이 날개가 되어 불사조처럼 날아오를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예고한다고 보는 것이다. - P108

다음 날 아침 내가 잠을 깼을 때 해는 연두색으로 찬란히 비치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전에 일어난 모양이다. - P108

 내가 빛의 감상을 끝내고 나의 공간에서 침실로 돌아갔을 때, 침실은 아직도 컴컴했고 앙투아네트는 베개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중략). 앙투아네트의 곁을 아직 떠나지 않고 있던 흑인 여인이 말했다.
"제가 만든 황소의 피를 좀 마셔보세요, 젊은 서방님."
그녀가 따라준 커피의 맛은 훌륭했다. 손가락이 길고 가느다란그녀의 손은 의외로 아름다웠다. - P109

그녀가 문 쪽으로 걸어가자 그녀의 치맛자락이 땅에 끌리며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문 앞에서 그녀가 몸을 돌렸다.
"서방님께서 밟아 으깬 협죽도 화환을 치우라고 아이를 보내겠습니다. 그냥 두면 바퀴벌레가 꼬이거든요. 꽃에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젊은 서방님."
"커피는 맛있지만 말투는 고약하군. 게다가 치맛자락은 좀 들고다니지, 마루를 쓸고 다니니 더러워지지 않겠어."
"치맛자락을 끌고 다니는 것은 존경을 표한다는 뜻이에요." - P110

그녀의 조그마한 부채가 탁자 위에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그것을 집어 들더니 몸을 눕히고는 눈을 감았다.
"오늘 아침엔 안 일어날래요."
"안 일어난다고? 아주 안 일어나겠다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래요. 저도 아주 게을러요, 크리스토핀처럼. 침대에서 하루 종일 일어나지 않고 있을 때가 흔히 있어요." - P111

나는 아주 이른 아침에 연못에 가서 몇 시간씩이고 그곳에 머물렀다. 나무 그늘이 좋아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밤에만 핀다는 꽃들도 그곳에 있었다. 그 꽃들은 입을 꼭꼭 오므리고 고개를 숙인채 두꺼운 잎 사이에 숨어 태양을 피하면서 밤을 기다렸다. - P112

"독사야 물론 독이 있지요. 그런데 여기는 독사가 없어요."라더니 곧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알지요? 그들이 정말 알고말하는 걸까요?" 그러더니 "여기 뱀들은 독이 없어요. 물론 없고말고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 P113

"컨설레이션 저택의 주인 남자는 은둔자래요. 그분은 아무도 안만나고, 말도 거의 안 한대요."
그녀가 말했다.
"이웃이 은둔자라? 그거 나하고 잘 맞는군. 썩 잘 맞아."
"이 섬에만 은둔자가 네 명 있어요. 네 명은 진짜예요. 은둔자인척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우기가 되면 다 떠나거나 만날 술만 마셔요. 그때 슬픈 일들이 발생하는 거죠."
"과연 이곳은 내가 느낀 대로 외로운 곳이군." - P114

"뱁티스트는 아주 집사 노릇을 잘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뱁티스트나 크리스토핀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내색하지 않으며, 나는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동의하곤 했다.
"뱁티스트가 그러는데……………, 크리스토핀이 그러는데. - P115

밤중에 잠이 깨면 밖에는 흔히 비가 내렸다. 변덕을 부리며 가볍게 내리기도 했고, 춤추듯 장난기 어리게 내리기도 했으며, 혹은 소곤거리듯 조용히 오기도 했다. 그러다 점점 소리가 커지면서 비는 끈질기게 내렸다. 강력하고도 냉혹한 소리를 내면서.  - P116

"당신을 알기 전에 저는 살고 싶지 않았답니다. 죽는 게 낫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시간을 기다렸는지."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말을 했소?"
"제가 말을 나눌 사람이나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이 어디 있어야죠. 쿨리브리에서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하실 거예요." - P117

"왜 크리스토핀과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추고 그러지?"
"그러면 왜 안 되는데요?"
"나 같으면 그 사람들과 껴안고 입 맞추는 짓은 안 할 거요. 아니, 못할 거요."
내 말을 듣고 그녀는 한참 동안 웃었다. 그러나 왜 웃는지 결코 말해 주지 않았다. - P118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녀가 내게 속삭였다.
"만일 내가 죽을 수만 있다면, 지금, 내가 가장 행복할 때, 당신이 날 죽게 해주겠어요? 당신이 날 죽일 필요도 없어요. 그저 ‘죽어라.‘ 하고 말만 하세요. 그러면 제가 죽을게요. 안 믿으시는군요. 그럼 한번 시험해 보세요, ‘죽어라.‘ 하고 말하세요. 그리고 제가 죽는 모습을 보시라니까요."
"죽어, 죽고 싶으면 죽으라니까!" - P119

내가 위험을 느끼는 것은 밤이었다. 나는 위험을 잊으려 했고,
위험을 내 인생에서 밀쳐내려고 했다.
"당신은 안전해."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 주곤 했다. ‘당신은 안전하다‘ 라는 말을 듣는 것을 그녀는 좋아했다.  - P120

만일 그녀를 어린애라고 한다면 그녀는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라 고집이 센 아이라고 해야 한다. 그녀는 가끔 내게 영국에 대해 질문을 했고 내가 말해 주는 것을 경청했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그녀에겐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영국에 대한 그녀의 의식은 이미 확고하게 결정돼 있었으니까.  - P121

나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끝없이 계속될 것처럼 내리는 비의 졸린 듯한 노래. 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비야, 나를 잠에 빠지게 해다오. 금세 나는 잠들어 버렸다. - P122

"주인님, 이게 오늘 아침 일찍 왔어요. 힐다가 받았어요." 아멜리는 동판 인쇄처럼 얌전하게 겉봉이 쓰인 두툼한 봉투를 내게 주었다. 편지 귀퉁이에 ‘친전, 급‘이라는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주변에 산다는 은둔자 중 하나겠지.‘ 나는 생각했다. - P122

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중략). 마치 내가 이런 편지를 기대하고 있었던 듯이, 아니 아마 나는 이런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 P128

앙투아네트가 말했다.
"그리고 가서 크리스토핀에게 내가 보잔다고 말해."
아멜리가 비질을 멈추고 말했다.
"크리스토핀이 떠난다는대요." - P128

앙투아네트가 갑자기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아멜리의 따귀를 때렸다.
"나도 너를 때릴 거야, 이 흰 바퀴벌레야. 나도 너를 때릴 거야."
 거아멜리가 정말 앙투아네트를 쳤다.
앙투아네트가 그녀의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아멜리는 이를 악물더니 이번에는 앙투아네트를 이빨로 물려고 덤볐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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