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어. 자네는 그저 그 머릿속에 숨겨둔 걸 우리에게제공해주기만 하면 돼." "뭐라고요?" "그날 기미코의 본성을 꿰뚫어 본 탁월한 관찰력. 자네는그 여자를 감시하고 비행선 안에서 일어난 일을 눈에 새기는 거야. 그리고 고트들이 그녀에게 굴복하는 순간을 지켜봐주면 돼." - P112
3
(전략). 나이로비의 국가통일당 본부에서 진행된 사전 교육에 따르면 9구역의 샘플 중 미리 심은 인물은 도키요, 고요미, 기미코 세 사람뿐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가 감행한 헤르메스 계획-인류 최고의 천재들을 샘플에 섞어 넣는 전략이 들통나서 6구역과 7구역이 공격을 받은 시점에서 고트들도 인류가 착륙 지점 규칙을 알아차린 것을 인식했다고 여겨진다. - P114
고트들은 공항에서 보안 검사를 하듯 샘플의 짐을 조사했다. 꽃무늬 옷을 입은 통가족 여성은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귀걸이를 빼앗겼고, 땋은 머리에 마젠타색 머리를 붙인 남성은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에 통신 기능이 없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 P115
"여러분은 32일간 이 비행선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지능측정 테스트를 받게 됩니다. 지능 측정이 완료될 때까지 여러분의 안전은 보장됩니다." - P115
지능 측정 방법은 다양했다. 도형이나 기호를 보고 질문에 답하는 사립 초등학교 시험 같은 것도 있었고, 물이 담긴 커다란 용기를 들고 선 위를 걷게 하거나 들어본 적 없는 언어를 계속해서 들려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 P116
예전의 기미코는 사소한 몸짓조차 날카로운 적대감으로가득 차 있었지만, 지금 그녀에게서는 무섭도록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우리를 부른 거죠?" 기미코는 도키요를 가리키려 했지만 손목이 떨려 제대로방향을 맞추지 못했다. - P117
기억은 거짓말을 한다. (중략).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제대로 관찰하는 것. 도키는 매일 이어지는 테스트를 해치우면서 비행선 내부를 유심히 관찰했다. - P118
탑승할 때 짐을 검사한 것이 경비원, 넓은 방에서 연설한 것이 사령관이었다. 시험 감독관은 30여 마리, 호텔맨과 경비원은 각 20여 마리 있었지만, 사령관은 한 마리뿐. - P119
나이로비에서 받은 사전 교육에 따르면 경비원이 들고 다니는 이 막대기 끝부분의 표면 온도는 2천 도 이상이며, 가볍게 찔리기만 해도 치즈처럼 인체에 구멍이 뚫린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 막대기를 빼앗아 고트에게 반격을 가할 수있는가 하면, 그들의 비늘은 내열성이 뛰어나서 긁혀도 상처하나 남지 않는다고 한다. - P12
도키요와 고요미는 이 덜렁쇠 경비원과 친해졌다. 사령관은 그를 ‘수면병‘ 에보라고 불렀다. 복도에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도키요와 고요미는 에보소와 대화를 나눴다. 에보소에게는 두 자녀가 있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이번 임무에 지원했다고 했다. - P121
문을 열자 기미코가 있었다. 혼자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기미코는 최근 항상 휠체어를 밀어주는 호텔맨 ‘풍선‘ 샤모소와 가까워진 듯했고, (중략). - P122
기미코는 파리가달라붙은 듯한 표정을 지은 후, 두꺼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경멸하듯 웃었다. "아, 맞다. 다카시에게 총을 맞아 머리가 맛이 갔었지?" 도키요는 기미코의 멱살을 잡았다. (중략). 고요미는 도키요를 두 걸음 뒤로 밀어내고 몸을 숙여 기미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P123
기미코는 손끝만 내려다보며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둔한 저도 드디어 당신의 계략을 알게 되었어요." 오호라, 하고 입술이 움직이는 듯 보였다. "구스카미 씨에게 우즈메 계획을 제안받은 당신은 그의 계략에 동조하는 척하며 우리를 여기로 데려오게 했죠. (중략), 당신은 남아프리카의 4억 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여기에서 바라볼 생각인 거죠? 정말 당신다운, 사람의 목숨을 장기말처럼 여기는 악마의 소행이군요." - P124
기미코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중략).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해서 완전히 맥이 빠진거야?" 갈라진 입술 끝이 올라갔다. "속이 다 시원하네." - P125
"엄마, 이제 곧 끝이야." 약속대로 고요미는 문을 두드렸다. 답은 없었다. 문이 앞뒤로 흔들렸다. 빗장은 걸려 있지 않았다. (중략). 도키요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기력이 빠져 드러누운 것이아니다. 울다 지쳐 잠에 빠진 것도 아니다. 2층에서 떨어진 아기처럼 두개골이 부서져 있다. 도키요는 죽어 있었다. - P126
4
(전략). 반쯤 열린 문으로 복도를 바라보았다. 휠체어에 앉은 기미코가 사령관을 불러세웠다. "당신들, 대체 어떻게 책임을 질 셈이지?" 일본어로 계속 말했다. 사령관은 잠시 기억을 더듬듯 뿔을기울인 후 "책임이라니 잘 모르겠습니다. 책임이 무슨 뜻입니까?" 하고 일본어로 답했다. - P127
"잘 생각해봐. 이렇게 된 건 도대체 누구 탓이지?" "그건 물론 미즈타 도키요 씨를 죽인 범인입니다." "그게 누군데?" "모르겠습니다." "그건 왜지? 저 말라깽이 녀석이 계속 감시하고 있던 거아닌가?" - P128
"즉, 저기 있는 멍청이가 실수를 저지른 탓에 이 여자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로군." 고트들이 ‘수면병‘ 에보소를 바라보았다. 에보소는 숨이막히는 듯 어깨를 떨었다. - P129
"그건 당신들이 생각할 일이지. 잘 생각해보고 결정되면나에게 알려줘. 알겠지?" 기미코는 휘이 손을 내젓고는 ‘풍선‘ 샤모소에게 휠체어를밀게 하여 방으로 돌아갔다. - P130
32일째. 팬파이프는 한 달 만에 은돌라의 금속 제련소에 다시 착륙했다. 경비원이 무슬림 소년을 붙잡자, 선체는 다시 성층권으로 상승했다. - P130
36일째.
"정말 썩어빠졌구먼. 그런 시시한 연극으로 나를 속일 수있다고 생각했나?" 기미코는 휠체어의 팔걸이를 두드리며 ‘풍선‘ 샤모소에게욕설을 퍼부었다. - P132
"쓰노 기미코 씨의 말씀대로입니다. 저는 정말로 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 진짜로 화를 표현하겠습니다." 샤모소는 복도의 호텔맨을 불러 에보소의 양팔을 붙잡게했다. 다섯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서 장갑을 벗고 바닥에 손톱을 세웠다. 에보소가 고개를 끄덕인 것을 신호로 샤모소는 달음박질하며 에보소에게 돌진했다. - P133
기미코가 소리쳤다. 에보소가 얼어붙었다. 액체가 줄줄 떨어졌다. "네가 근성 없이 본인 엉덩이도 제대로 닦지 못하니까 풍선이나 다른 애들이 손을 빌려주는 거잖아. 감사부터 해야지! 그런 것도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 P134
45일째.
고요미는 방에 틀어박혀 《기암성》 여백에 펜을 굴렸다. 눈을 뜬 이후 해가 질 때까지 한 번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고트들에게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도키요의 죽음을 계기로 그들은 기미코의 함정에 빠져드는 중이다. 인류를 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 P134
경비원 ‘수면병‘ 에보소는 예전과는 다른 생물처럼 여원채 쇠약해지고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 P135
"정말, 정말로 죄송합니다." 샤모소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이 구획의 샘플을 돌보는 것은 그의 역할이었다. 도키요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했던 ‘수면병‘ 에보소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P436
57일째
‘수면병‘ 에보소가 죽었다. 오전 7시가 넘어 ‘풍선‘ 샤모소가 상태를 보러 방에 들어갔다가 에보소가 차갑게 식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P137
경비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사령관이 에보소를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한 모양이었다. 에보소가 당한 괴롭힘은 도를 넘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같은 잘못을 저지른 호텔맨은 혼이 날 기색조차 없으니 그들이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P138
59일째.
"너무 추워서 견디기가 힘들어. 조금 더 난방을 올려줄 수없나?" 기미코가 경비원을 불러세워서 말했다. 매우 쉰 목소리였고 안색도 좋지 않아 보였다. 에보소가 죽은 이후로 그녀는 명백하게 상태가 이상했다. - P138
62일째. "안돼. 죽을 것 같아. 뭐든 좋으니까 몸을 따뜻하게 할 수있는 것 좀 줘." 사령관의 방 앞에서 기미코가 애원하듯 말했다. 호흡이 가쁘고 발판에 올려둔 발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P139
고요미는 이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중략). 오후 11시 55분. 곧 날짜가 바뀐다. (중략). 빵. 건조한 소리가 들렸다. - P139
63일째.
사령관은 도키요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와 같은 말을했다. 생활 구역의 외진 방에 고트들이 모여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무슬림 소년이 침대 구석에 쓰러져 있었다. - P140
"다행히도 범인의 윤곽은 잡혀 있습니다." 사령관이 일본어로 답했다. 고트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체를 보십시오." 소년의 가슴을 가리키며 사령관이 말을 이었다. "카틀레호 씨의 가슴에 경비원의 무기로 찌른 구멍이 있습니다." - P141
"어젯밤에 ‘빵‘ 하는 소리가 들렸어. 그거, 총소리잖아." 고요미도 그 소리를 들었다. - P142
"나는 생각합니다. 샘플 중 하나가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비원이 서둘러 말했다. "그 샘플이 카틀레호 씨를 쏘았습니다. 지능 측정을 더욱 늦추기 위해서입니다." - P142
"당신들, 우리가 비행선에 탈 때 우리에게서 무기를 압수하지 않았나? 우린 아무도 총 같은 거 안 가지고 있다고!" 그 말대로였다. 경비원들이 침묵에 빠졌다. 샘플의 무기 반입을 허용했다면, 그것 또한 경비원 책임이다. - P142
뿔이 작은 경비원이 말했다. 기미코가 눈썹을 찌푸렸다. "카틀레호 씨를 죽인 범인은 출입 금지 구역에 숨어 들어가 우리가 9구역의 공격을 위해 준비한 권총을 가져간 겁니다." 경비원들이 또다시 들끓었다. 사령관은 아무 대답도 하지않았다. - P143
경비원 한 마리가 사령관의 배에 뿔을 찔러넣었다. 사령관이 울부짖었다. - P143
곧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중략). 방 앞에 고트가 서 있었다. (중략). "대단히 죄송합니다. 더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무뚝뚝한 말투가 익숙했다. 사령관이었다. "공격 가능 판정을 계속하겠습니다. 향후 일정은......." - P145
고요미는 출입 금지 구역을 한바퀴 돌았지만, 살아 있는 고트를 찾지 못했다. 다른 방에서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세 명이 난투에휘말렸고 다섯 명이 추락 시 부상을 입었지만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 P146
우즈메 계획을성공시킨 노인은 저녁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눈이 부신 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중얼거렸다. "잘 풀렸군." 그러고는 고요미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보였다. 첫번 "모든 게 너와 약속한 대로 됐어." - P147
(전략). 32일째. 남아프리카에 납의 비가 쏟아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세 시간 남짓. "하지만 단 하나, 저 고트들을 박살 내고 인류를 구할 방법이 있어. 자네와 자네 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뭐가 재밌는지 기미코는 눈가에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 P148
도키요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기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해서 고트들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지." "연극 도구 같은 건 안 가지고 있는데요." "가지고 있어. 18년 전부터 계속."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 P149
기미코는 소리 내어 웃었다. "본인이 하는 말이 이상하다고는 생각 안 하나?" 무슨 말이지? "잘 생각해봐. 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천이 깨끗할 리 없잖아." - P150
첫 번째 발사로 깨진 것은 유리창이 아니었나? - P151
"다카시는 총을 세 발 쏜 건가요?" 첫 번째 총알은 창고 안의 유리 제품에 맞았고, 두 번째 총알은 도키요의 얼굴에 명중했고, 도키요가 피를 멈추고자커튼을 벗겨낸 후 세 번째 총알이 유리창을 깼다. - P151
그때 현장에 있던 두 사람, 경찰관 도키요와 감금되었던소지의 증언에는 서로 맞지 않는 점이 있었다. 둘 다 두 발의 총성을 들었음에도 도키요는 두 번째 총알에 왼쪽 눈을잃었다고 했고, 소지는 첫 번째 총알이 도키요의 얼굴에 맞았다고 했다. 만약 다카시가 파이프건을 세 번 쏜 것이라면 이 불일치도 설명할 수 있다. - P152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발견된 총알은 바깥의 화분과 창고 바닥에 떨어진 것, 두 개뿐이었다. - P152
"내가 연극에 쓰고 싶은 건 그 총알이야." - P153
. "총을 쏘면 소리가 날 텐데요. 상처에서 총알이 발견되더라도 총성이 들리지 않으면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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