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누 301 입니다

두 사람은 홀로그램 속 모습과 약간 달라 보였다. (중략).
"어머, 홀로그램과 똑같네. 아니, 훨씬 잘생겼다. 그런데……."
(중략).. 여자는 무언가 기억해내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내 이름을 말하려는 것이겠지.
"제누 301입니다." - P7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디가 큼큼 목청을 가다듬었다. 예의를 지키라는 신호였다. 실수를 한 건 저들인데 예의는 왜 매번 나만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 P8

"어머, 저렇게 큰 헬퍼는 처음 봐요."
"여긴 아이들이 많아서 일반 가정에서 이용하는 헬퍼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저희 NC 센터를 위해 정부에서 특별 제작한 헬퍼입니다." - P9

. 요즘 헬퍼들은 인간의 모습과 육십퍼센트 정도 닮은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누가 봐도 로봇 그이상은 아니었다. - P9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두 사람만 사는 집이 적막하더라고요. 나도 남들처럼 아들과 여행도 다니고, 낚시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 P10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춘 태도로 NC 센터를 찾아온 이 프리 포스터 (prefoster)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가세요."
"한번 안아주고 싶은데."
"아직 신체 접촉은 불가합니다." - P11

가디가 피곤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
"제 ID 카드에 평생 NC의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는 뜻이죠." - P12

평생 NC의 낙인 아래 살아간다는건 분명 힘든 일일 테니까. 성인이 된 후 이곳을 벗어난 사람들이 어떤 차별 속에 사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 P12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NC 출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일이다."
"말도 안 되는 부모 밑에서 살아가는 게 더 어렵죠."
가디의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 P13

사방 어디든 초록의 숲이 빽빽하게 펼쳐져 있었지만 누구도 저 숲을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홀로그램일 뿐이니까. (중략). 저 하늘은 진짜일까?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 P14

NC 센터는 한국 전역에 퍼져 있었다. (중략). 이곳은 ‘라스트(last)‘라는 말뜻 그대로 NC 센터에서 지내는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집이라 할 수 있었다. - P14

나비와 무당벌레, 벌과 잠자리 같은 곤충 모양의 드론이 가끔NC 센터에 날아들었다. NC 바깥의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를 궁금해했으니까. 개중에는 우리가 불법적으로 신분 세탁을 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 P15

 나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의 짙은 암갈색 눈동자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잘 아는 분이 싫다는데 왜 억지로 페인트를 진행시켜요?" - P16

방에 들어서자마자 아키가 번쩍 고개를 들고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형, 페인트 했어?"
잔뜩 흥분한 아키를 피해 나는 풀썩 침대에 누웠다.
"블라인드 내리고 취침등." - P17

"불공평해. 왜 형 목소리만 등록되어 있지? 나는 일일이 리모컨을 눌러야 한다고. 그리고 나 아직 안 잘 거야." - P17

중요한 것은 이름 뒤에 붙는 숫자였다. - P18

. 우리는 부모를 선택해 가족을 이루어야만 혜택들이 주어졌다. 물론 우리를 키우려는 사람에게도 그에따른 여러 혜택이 생겼다. - P18

"아니, 준 203. 왜 준이 유독 많은 걸까? 여자애들이 생활하는 센터G에도 주니가 많다던데."
왜일 것 같냐? 되물으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 P19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중략). 정부는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았다.
"이제 아이는 국가에서 책임지고 키웁니다."
단순히 양육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 P19

상담실 문을 열자 테이블 너머에 최가 앉아 있었다. (중략).
"어땠어?"
(중략).
반드시 입이 무거울 것. NC의 가디들이 지켜야 하는 중요한 원칙 중 하나였다. - P20

"제누, 꼭 정부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그들이 NC를 방문하는건 아니야."로 존재
"모든 아이들이 꼭 부모가 필요한 건 아니듯이요?" - P21

"태어날 때 만나야만 부모니? NC의 아이들은 모두 열세 살 때부터 부모를 가질 수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우린 버려졌다는 뜻이죠."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최의 눈에 서늘한 빛이 스쳤다. - P22

최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부모가 될 사람의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받거나,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으면 추가로 두 차례 더 면접을 진행했다. - P22

"15점짜리 부모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아이도 있어."
최는 우리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 P23

"그 사람들은 사실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 속이 훤히 보였거든. 박이 왜 그 사람들에게 너를 추천했고, 싫다는 너에게 억지로 면접을 진행시켰는지 알아?"
가디는 웃었지만 나는 썩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이 센터에 열일곱이 몇 명 없잖아요." - P24

최를 따라 일어서면서 나는 말했다.
"너, 요즘 먹는 게 부실해."
"지난달 보디 체크에서 상위 십퍼센트 안에 들었는데요." - P25

설립 당시부터 NC 센터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부모가 아이를 버리는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출생률을 높이지 않으면 국가의 존속마저 위태로워진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며 찬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쪽도 늘었다. - P26

"건강은 절대 자신하는 거 아니야. 그거라도 꼭 먹어." - P27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아키가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형! 나도 하게 됐어! 페인트." - P27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전략).
아이를 잘 낳지 않고, 낳아도 키우지 않으려는 사회였다. (중략).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고 가장 예쁜 짓을 할 때인 다섯 살 정도의 어리고 귀여운 아이들을 주로 원했다. 갓난아기는 부담스러워했다. - P29

그러나 정부에서 받는 혜택만을 노리고 무분별하게 부모 면접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P29

 연령 제한을 높이자 오히려더 많은 사람들이 NC 센터에 관심을 보였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힘들여 어린아이를 키워야 하는 시간이 보통보다 십년 넘게 단축되었다는 것과, 양육 수당과 연금을 앞당겨 받을 수 있다는 혜택. - P30

남북한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사실상 종전이 선포된 이후, 국방비로 들어가던 예산의 일부가 국민 복지와 출생률 안정을 위한 자금으로 더해졌다. - P30

 사람들은NC 출신과 자신들을 구분 지으면서 특권의식을 느꼈다. 낳아 준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에게 NC 출신은 자신과 결코 같을 수 없었다. - P31

"글쎄, 내가 팔려 가는 느낌이야."
그런데도 모든 것이 가식으로 느껴졌다. 부모들이란 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각종 혜택과 보장 제도에만 침을 흘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 P31

"결혼이라는 게 그런 거 아냐? 남남이던 두 사람이 계약을 맺고 한 집에서 사는 거. 서로 맞춰 가느라 처음에는 싸우기도 할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아니면 헤어지면 되고, 부모 자식 관계도 그런 거 아닌가."
(중략). 글쎄, 부모 선택과 결혼이 과연 비슷할까. - P32

이를 진화하기 위해 정부는 NC 아이들의 ID 카드에서 출신 기록을 삭제하는 법을 정비했다. 새로운 부모에게 입양되는 즉시 ID카드에서 NC 출신이라는 기록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 P33

아이를 입양하려는 사람들과 NC의 아이들을 아무도 모르게 가족으로 묶어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NC 센터의 핵심 역할이자 목표였다.  - P33

프리 포스터와 NC의 아이가 만나 가족을 이루는 가정이 많아지자 겉으로 보이던 문제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NC의 아이들은 소리도 냄새도 없이 점차 자연스럽게 사회에 스며들었고, 차별은 눈에 띄게 줄었다. - P34

8월에는, 긴 여름휴가가 있었다. 반복되는 빡빡한 일상을 벗어나 산이나 바다, 섬, 해외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눈부신 풍경 속에서 자유로움에 취했다. 다음 해 6월에 아이들이 태어났다. 준, 주니가 많은 이유였다. - P35

"너는 분명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녀석에게 진짜 좋은 프리 포스터가 나타나길 바란다. 아키는 밝고 천진한 아이니까. - P36

 NC에서 열일곱은 사실상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대부분 열다섯 살이되기가 무섭게 페인트에 성공해 센터를 떠나니까. - P38

센터에서 데려온 아이를 파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정부지원금을 토해 내야 하는 것도 모자라 벌금까지 낸다고 들었다. 노아는 열다섯 살에 센터를 떠났다가 반년 만에 제 발로 돌아온 녀석이었다. - P38

다시 센터로 돌아온 아이들이 비단 노아만은 아니었다. 막상 부모를 선택했지만 예상 밖으로 권위적이거나, 무심하거나, 뭐가 됐든 마음이 심하게 불편하면 아이들은 주저 없이 돌아왔다. - P39

바깥세상에는 넘쳐 나는 VR룸이 NC 안에는 몇 개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연령별로 지정된 날이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했다. 게임 종류 또한 제한적이었다. - P40

"친부모 밑에서 자란 애들도 그런다는 거야."
(중략).
"부모들도 저 녀석들을 귀찮아하지 않을까? 저 녀석들에게 짜증도 내고 화도 내지 않았을까? 나는 절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 P41

. 늦은 시각에 사무실로 오라는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생활 태도나 수업 태도 불량 문제라면 멀티워치로 간단히 경고만 주었을 것이다. - P45

한 무리의 아이들을 스쳐 갈 때 등 뒤에서 나직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지난번에 같이 본 영화의 남자 주인공 이름, 괜찮지 않아? 너는 생각해 놓은 이름 있어?"
"오랫동안 주노 408로 불려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게 어색해." - P47

"너희 모두에게 좋은 부모를 소개해 주는 게 우리의 의무다."
가디다운 발언이었다. 사설은 이쯤에서 끝내자는 뜻일까.
"그래야 실적도 올라가니까요."
실적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물론 잘 알고 있다. - P47

내가 멋쩍게 웃자, 박이 손끝으로 톡톡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겠구나. 네 말대로 우린 실적이 중요하다. 이곳 NC 센터가 전국에서 실적이 가장 낮기로 유명해. 본부에서 지침이 내려왔다. 프리 포스터들을 위해 심사의 문턱을 낮추라고 하는구나. 그렇다고 아무나 들일 수는 없겠지만......."
박의 낯빛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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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살무사 할멈을 밝혀내기 어렵다면 우리 란포에게 상담해주세요." - P210

"다쿠조 씨는 다케요 씨가 가져온 센차에는 입을 대지 않으신 거죠?"
"네. 그분이 마신 건 요타가 가져온 호지차뿐이랍니다." - P211

다케요 할멈의 뒤쪽 복도에서 다쿠조가 날뛰고 있었다. 마치 바닥이 뜨거운 철판으로 바뀐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털이 반쯤 빠진 쥐가 다쿠조의 발밑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 P212

"아, 이런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뚜껑에 손을 대자마자 그렇게 말하고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을 잊은 듯했다.
"우단 차인 교쿠로(그늘에서 재배하는 센차의 일종으로, 고급품으로 여겨진다ー옮긴이)입니다."
30초쯤 후에 돌아와서는 찻잔에 차를 따르고 나나코의 손가에 건넸다. - P213

"오후 11시 40분에 오신 분이죠? 분명 제가 상대했습니다"
손님이 방문한 기록을 적어두는 듯 수첩에 적은 문자 위를 손으로 따라가며 답했다.
"차의 취향을 여쭈었더니 차가우면 뭐든 좋다고 하셔서차가운 센차를 드렸습니다. 가지고 계신 금액이 적었기에남는 방이 없다고 전했더니 10분 정도 만에 돌아가셨어요."
다쿠조에게 들은 이야기와도 어긋나지 않았다. - P214

고메 할멈은 순간 화장을 한 이마에 주름을 잡았지만, "끓는 물에 손가락을 넣어버렸답니다. 정말 부끄럽네요" 하고곧장 손가락을 접어 부어오른 부분을 숨겼다.
그 변명에서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 P215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해주세요."
마지막까지 예의 바른 고메 할멈의 모습에 나나코는 어쩐지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P215

5


(전략).
세 할멈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다쿠조를 죽인 범인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 그녀일 거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명탐정은 아니지만 구로즈카라는 유곽 마을, 혹은 이 마을 여자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같은 생각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나나코는 도저히 그녀가 살무사 할멈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아직 설명되지 않은 점도 남아 있다. - P216

나나코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가슴을가득 채웠다. 이보다 더 잔혹한 일도 많이 봐왔지만, 이 정도로 간담이 서늘해진 것은 오랜만이었다. - P219

그때 문득 악마가 속삭였다. 유녀와 남자들은 불타오르는고부토리 언니에게 정신이 팔렸다. - P219

나나코는 화가 났다. 언제는 도망가라더니 이제는 돌아오라니, 너무 제멋대로 아닌가. - P220

"기노미 거리가 시끄럽다 했더니, 그걸 기회로 도망치려는거군. 약삭빠른 건 좋지만, 어떻게 감시초소를 빠져나갈 셈이지?"
나나코는 제정신을 차렸다. - P221

문득 사면발니라도 발견한 듯한 태도로 노파가 말했다. "그런데 당신, 꽤 훌륭한 게 들러붙어 있네."
순간적으로 거리를 둘러보았다.
인적은 없었다. - P221

낮에 방문한 세 곳의 유곽. 그중 어느 한 곳에서 본 것이어떤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는.......
안개가 걷히듯 하나의 답이 떠올랐다.
이대로라면 살무사 할멈을 자백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 P223

6

(전략).
"네가 혼자서 말하는 걸 봤다는 사람이 많아. 마치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던데. 너, 머리를 맞은 탓에 이상한 게 보이는 거 아니야?" - P224

"남천루에는 예쁜 아가씨가 많다며 우리 여주인도 항상 부러워해요. 뭐, 저는 한 명도 본 적 없지만."
그건 마쓰바 할멈이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자조였다. - P226

다케요 할멈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다쿠조에게 이야기를 들은 시점에 추측할 수 있었다. 다케요 할멈이다쿠조에게 낸 센차가 차가웠기 때문이다.
구로즈카에는 손님에게 갓 끓인 센차를 내는 풍습이 있다. - P229

하지만 다쿠조의 이야기를 들은 시점에 이 추리는 그저추측의 영역에 불과했다. 그것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진주루에서 다케요 할멈의 이야기를 들은 후 다쿠조가 소란을피웠을 때였다. - P230

(전략).
그렇다면 고메 할멈이 범인일까요? 여기에서 떠올려야 하는 건 역시 살무사 할멈이 내건 예고문이에요." - P231

고메 할멈의 오른손은 집게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손끝이 붉게 부어 있었다. 본인은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갔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람의 손가락은 뜨거운 것을 만지면 곧장 떼어내기 마련이다. 하나둘이라면 몰라도 실수로 네손가락에 화상을 입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 P232

. 피부가 가벼운 화상을 입게 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일광화상이다.  - P233

유희인지 푼돈 벌이인지는 모르지만, 고메 할멈은 황홀루에서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얼굴의 화장을 지우고 다도인모자를 쓴 채 길을 걷는 손님에게 점을 치는 일을 했다. - P233

그러면 다시 의문이 떠오른다. 반나절 전 황홀루에서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째서 점쟁이가 된 고메 할멈은 나나코와 처음 만난 것처럼 행동했을까. - P233

L당연히 그들 대다수는 몸에 결함이 있다.
본인들은 물론, 손님들도 이를 특별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 P235

"4일 밤, 다쿠조 씨에게 차를 내어준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 P236

다쿠조의사인을 오해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눈앞에 나타난 다쿠조의 유령이 자신은 독살당했다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까. - P237

"젊은 주인님이 잇폰마쓰 씨에게 차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사쓰마 순사는 "뭐라고?"라며 눈썹을 모았지만, 거기에서말이 끊겼다. 젊은 주인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 P239

"범인이 특정 손님을 노리고 독을 먹인다면 그것이 가능한 건 매일 많은 손님에게 차를 내어주는 할멈들뿐이에요. 젊은 주인님은 예고문을 내걺으로써 유곽에서 일하는 할멈들에게 의심이 쏠리게끔 하려 했던 거죠." - P240

7

사람에게 말도 못 거는 유령이 누군가를 저주해서 죽이는것이 가능할까? (중략).
잇폰마쓰 후미히코가 죽은 것이다. - P242

"남천루의 나나카마도 맞지? 살아 있다는 말은 미나토회의 야쿠자에게 시집을 간 건가?"
도키오는 나나코의 온몸을 핥듯이 훑어보고는 오른손의여행 가방에 시선을 고정했다.
"뭐야. 그런 거였어?" - P243

택시를 갈아타고 일곱 시간. 두 개의 현을 넘어선 곳에서두 사람은 마침내 차에서 내렸다.
그곳은 하다카미라는 항구도시였다.
두 사람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공동주택에 방을 얻었다. - P245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은 살무사 할멈의 정체를 밝혀낸 그날 이후 다쿠조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는 점이었다. - P247

8

게소자키에 눈이 내린 것은 3년 만이었다. - P255

나는 이 여자를 알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어딘가의 유곽에서 일하던 유녀 아닌가
"이 아이, 전에도 구로즈카에 있지 않았어?" - P256

 젊은 여자는 침을 흘리며 의미도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했다. "시로가 내 안에서 죽은 아이의 유령이었다니, 생각지도 못했어."
역시 이 여자, 처음이 아닌 듯하다. - P257

모틸리언의 손목 - P259

0

(전략).
"역시 생각대로야. 손이 있는 걸 보면 분명 근처에 다른 부위도 있을 거야."
시우베라는 ‘어때, 멍텅구리 자식아‘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으로 무릴로를 흘겨본 후, 손목을 보존 수조에 던져 넣었다. 무릴로는 말없이 조종석에 올라탔다. - P263

자신들이 찾는 것은 단순한 시체가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광물이 스며들어 뼈의 성분이 치환된 시체, 즉, 화석이다.
물론 아무 화석이나 좋은 것은 아니다. - P264

1

포스타 섬에는 신이 산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선생에게 그렇게 배웠다.
무릴로는 더는 아이가 아니다. - P264

지금으로부터 29,976년 전, 고향 섬에서 별을 관측하며 유유자적한 노년을 보내던 우주생물학자 하카 타파리아가포스타 섬에 서식하는 모틸리언을 발견했다. - P265

모틸리언은 언제부터 지구에 살았을까.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 P265

그 이후 지구는 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우주에 자신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조상들은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며 이 행성에서 고독하게 살아 갈 수밖에 없었다. - P266

"과연 그럴까? 지구에는 단 한 곳, 아직 아무도 드릴을 꽂은 적 없는 숫처녀 같은 땅이 있어."
시우베라는 약방 안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확인한 후 말했다. - P267

"포스타 섬은 신의 섬이야. 200년 전부터 출입이 금지된덕에 아직도 모틸리언의 시체가 다수 묻혀 있어."
얼핏 듣기엔 사기로 느껴지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 P268

"포스타 섬은 연맹 보안국의 관리 구역이잖아. 바로 잡혀서 감옥에 가지 않을까?"
"딱히 해안을 지키며 감시하는 건 아니야. 배가 금속 파동센서에 걸릴 가능성은 있지만, 잘 대비하면 문제없어." - P268

"고철 덩어리를 쑤셔 넣은 고래를 배에 싣고 가는 거야. 그리고 해상의 금속 파동 센서가 반응하면 고래를 버리고 도망치는 거지. 멍청한 공무원들은 센서가 고래에 반응했다고 생각하고 빈손으로 기지로 돌아갈 거라고." - P269

"시우베라." 무릴로는 시우베라의 거친 손을 꽉 쥐었다.
"나도 한 번쯤 외계 생명체를 발굴해보고 싶었어." - P269

"오늘은 내가 쏜다! 마음껏 흡입하라고! 뇌가 우주가 될때까지 마음껏 빨아!"
말은 거창했지만, 시우베라가 내놓은 황분은 매춘가의 약방에서도 본 적 없을 정도로 혼합물이 잔뜩 섞인 조악한 물건이었다. - P271

푸자가 수조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발굴한 모틸리언의 작은 손목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거, 지하 2체(약 8미터)에 묻혀 있었잖아."
무릴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는 알도 연맹이 제정한 단위 중 하나다. - P273

무릴로 일행이 발견한 모틸리언 화석은 무언가 불행한 사정으로 길거리에서 죽었거나, 혹은 우리 조상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고 동료들이 장례를 치러줄 수 없었던 자들이라는 말이 된다. 결국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모틸리언이 팔다리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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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칠 때마다 자연이 자연인 동시에 반자연이 되며, 있는 게 없어지는 저 모순의 등식이 고개를 든다. 결국 동일률은 해체된다. 아무것도 아니며, 있지도 않다. - P106

 차라리 허무라는 원칙이 희망이라는 원리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나 할까? - P106

. 개인과 지나친 간격을 두고 개인의 ‘에셰크‘를 포용하지 않는 사회야말로 자살의 온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죽음이든 아니든 죽음을 철학으로 변호할 수는 없다. - P107

소수라 해서 그 권리를 침해해서야 되겠는가. - P107

 물론 자살이라는 행위가 동성애라는 성적 취향보다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중략). 그럼에도 자살 시도에 성공한 사람은 매몰차게 잊어버리고, 자살 시도에 실패한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하는게 인간적인 태도일까? - P107

 스스로 매우 발달했다고 자처하는 유럽 중부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는 ‘구출된 모든자살 시도자를, 그가 자신의 행위를 감추려 하지 않는 한, 직권으로 정신병원에 넣어버린다. - P108

 자살을 이미 기도했거나 하려는 사람을 사회는 계속 음험한 구실, 즉 시도 내지는 계획한 행위로 이미 성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구실을 내세우며 ‘파문‘해 버릴게 틀림없다 - P109

정신이 받는 고통을 사회라는 몸체가 앓는 병으로 보는 이들의 입장은 자유를 기본 인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목표를 한참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09

 전체적으로 볼 때 사회는 자살이 얼간이나 반미치광이가 저지르는 짓쯤으로 폄하한다. 단지 당사자의닫힌 세계 안으로 사회가 들어가 볼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 P110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은 이 두 현상에서 존엄성을 박탈해버렸다. 학문들은 이런 현상을 질병으로 간주하고 질시한다.  - P111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이 인간에 관련해 알고 있는 것은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²⁴가 그의 애지중지하던 회색 거위와 관련해 알고 있는 꼭 그만큼일 뿐이다.

24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1903~1989). 유형별로 동물의 고유한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해 이른바 ‘비교행동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 1973년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 P111

환자로 내몰린 끝에 자신의 인생을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은 언젠가 자살을 시도한다. 그의 과거가 정말 치욕적이었을까? - P112

우울증 환자는 얼마나 병든 것일까? 그 병세는 어느 정도일까? - P112

 지금까지 읽어보고 직접 겪은 바를 종합해볼 때 마음의건강(몸의 건강까지 포함해서)이 질병이라는 영역과 구별되는 경계선이라는 것은 언제나 자의적이고, 그때그때 사회 체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 P113

의사가 오래 전부터 금연을 지시했음에도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하는 나 자신은 얼마나 병이 든 것일까? - P113

내가 올바로 보았다면, 정신 질환은 경험의 한계를 잘못 판단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아닌 것을 맞다고 주장할 때,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가봤다고 흰소리할 때, 살아 있으면서 죽었다고 억지를 부릴 때, 정신병은 고개를 든다. - P114

심리적인 충격으로 별거 아닌 돌발사건이 무슨 엄청난 일로 부풀려진다. 개밋둑이 그의 눈에는 산처럼 보인다. - P114

. 너희에게는 별것 아닌 돌발 사건일 수 있다. 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인생의 결정적 사건이다. - P115

이것은 자연적인 죽음이다. 이 죽음이 자연적인 이유는 내가 일상 언어가 자연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신적으로 소화할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 P115

우울증 환자가 자신의 직업 활동을 마지못해 불충분하게 한다거나, 심지어 전혀 하지 않고 침대에서 뒹굴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사람은 사회에 불필요한 인간, 즉 기능하지 않는 인간이다. 이익을 추구하기에 바쁜 사회는 그래서 그런 인간을 ‘치료‘하려 든다. - P115

 인간에게 강요된 자아, 외부의 간섭으로 빚어진 자아는 문제가 많은 조작의 산물이다. - P116

그러나 우울증의 경우, 심지어 자살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을때, ‘사유 실체‘는 격심한 고통을 겪는다. 영혼의 더할 나위 없는 상처라 말할 수도 있다.²⁶

26 여기서 ‘연장 실체‘는 ‘res extensa‘를, ‘사유 실체‘는 ‘res cogitans‘를 각각 옮긴말이다. 세상에 공간적 연장(延長)을 갖는 사물과 생각하는 정신, 이렇게 두가지로 설명하며 데카르트가 쓴 개념이다. - P116

결국 모든 게 나와 타인, 개인과 사회 사이의 싸움이라는열악한 최후를 향해 치닫는 것일까? - P117

이를테면 늙고 병들어 죽은 자연죽음이 반드시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손발을 묶어두고 자연 죽음만 기다리라고 하는 게 반자연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 P117

. 자살자는 영웅과 마찬가지로 모범적인 성격을 띤다. 세상의 피난민은 세계 정복자보다 못난 게 아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보면 더 낫기까지 하다. - P118

이제 자살은 가난과 질병과 마찬가지로 치욕이 아니다. - P118

자연 죽음으로서의 자살이라는 게 정확하게 무엇일까? - P119

존재를 강타하며 파괴하는 ‘에셰크‘에 맞서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게 자살이다. - P119

 선택과 결정은 오로지 당사자 개인의 문제다. 그는 자신의 독자성을 위해,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의 고유한 것이지 않았던 생명이라는 고유 재산을 파괴한다. - P120

3장

손을 내려놓다


손을 자신에게 내려놓다. 어딘지 모르게 현실성을 솎아낸 것처럼 들리는 표현이다. (중략).
그런데 나에게는 그만큼 절박하게 들린다. 진부하게 들릴 - P123

자유죽음을 구하는 사람이 하나의 통일체인 동시에 둘로 나뉜 존재라는 것, 이 통일체와 복합체는 서로 특정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래서 심리학은이런 관계를 두고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자기자신을 스스로 공격하는 성향도 여기서 배제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심리학의 가설은 이후 적당한 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 P124

 나와 내 몸을 똑같은 나와 내 몸이 파괴한다. 대체 이를 어찌 이해해야 좋을까? - P124

 몸은 우리의 "세계 내 존재(Inder-Welt-Sein)"³에서, 사르트르가 표현했듯, "무시당하는 것(lenéglige)", "침묵 아래 간과되는 것(le passé sous silence)"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두고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3 하이데거 실존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개념. 인간의 현존을 세계 안에 던져진 투사(Projekt)로 보는 실존철학에서는 우리가 세계 안에서 다른 존재자와 교섭을 가져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세계를 벗어나는 일. 곧 죽음은 실존철학에 있어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 P125

 왜 흔히 고통 때문에 ‘껍데기에서 빠져나오고 싶다‘⁴는 말을쓰지 않던가. 건강할 때는 의식조차 하지 않던 몸이 조금만 아프면 거추장스럽고 빠져나가고 싶기만 한 것이다.


4 이 문장의 원어는 ‘aus der Haut fahren möchten‘이라는 숙어로 일상에서는 ‘미치도록 화가 난다‘라는 의미로 쓴다. 그러나 여기서는 원어를 그대로 직역해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 P126

언제나 몸과 자아가 혼연일체를 이루지는 않는 탓에, 차라리 아직 우리 몸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낫다. - P127

 발치의 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뽑아버린 치아가 아쉬워 우울한 기분에 빠진다. 빠진 구멍이 증명해주는 없음이 우리의 ‘자아‘를 좀먹었다는 느낌에 괴로워한다. - P127

우울함과 괴로움의 뿌리는 더욱 깊숙이 있다. - P128

그러나 치아가, 발가락이 아니 심지어 팔과 다리가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유감스럽지만 아니다. 우리가 자유죽음 앞에 섰을 때, 손을 내려놓으려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몸 전체다.  - P128

장차 "침묵 아래 간과하라"는 말도 할 수 없게 되리라(더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가 무얼 간과할 것인가?). - P128

(전략), 머리가 대뇌피질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라는 과학 지식은우리의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라는 자아가 사라진 마당에, 머리가 한낱 물질로 남은 지금, 대뇌피질 따위가 다 무어란 말인가. - P130

자유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사람은 이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밀도 있는 대화를 몸과 머리와 자아와 나눈다. - P130

 나 자신이 없어져버릴 마당에 여전히 끄떡없이 있을 세상이 나에게 무엇일까. 몇 번이고 내 몸을 상냥하게 대해주자고 다짐하지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떠받들고 있는 ‘나‘라는 자아가 사라질 텐데, 이런 상냥함과 애틋함은 멀리서 보면 흡사 자위행위를 닮았다 - P131

 "인간의 실존을 통해서만세계는 존재한다."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하지만 자위하는 인간 실존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해져 있다. 자위하는 실존은 세상을 포기했다. 그래서 결국 묻지 않을 수 없다. - P132

자위하는 실존 역시 인간 실존이다. - P132

그리고 이 자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칠 줄 모르고 ‘나‘라는 의식을 만들어낸다. - P133

자아는 얼굴 안에서 아직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한다. 무언가 참혹한 게 솟아오른다. 이 참혹함은 자살자의 속 안에 쌓인 두려움과는 다른 것이다. - P134

자아를 두고 "감각의 묶음(Bundle ofPerceptions)"이라거나 선험적 주관의 내재적인 현상 형식이라는 식의 규정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나는 세계를 부정했으며, 이로써 자기 자신도 부정했다.

5 ‘감각의 묶음‘은 데이비드 흄이, ‘선험적 주관‘은 칸트가 각각 자아를 정의한개념이다. 경험론과 관념론이 다뤄온 자아 문제가 죽음을 다루는 논의에서아무 쓸모가 없다고 아메리는 지적한다. - P134

 모든 의식은 "무엇을 향한 의식(BewuBtsein von etwas)"⁶이라고 한다. 자살자의 자아가 기억을잃어버린다면, 자아라는 의식은 대체 무엇을 향할까? 기억해야할 것을 갖지 못해도 의식인가?

6 ‘무엇을 향한 의식‘은 현상학을 창시한 에드문트 후설이 의식을 정의한 말이다. 후설의 현상학은 의식의 기본 구조를 지향성이라고 보고, 언제나 무엇을지향하는 의식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표현을 했다. - P135

죽음을 향한 의식?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이제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극단으로서 자살자 앞에 있지 않은가. 말 그대로 끝장이자 ‘치명적인 결말(exitus letalis)‘이 아닌가. - P136

. 자살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부가 아닐지라도 공허한 자아가 주는 소름끼침은 무섭기만 하다. 그러나 일단 자살이 실천으로 옮겨지면 공허함을 보는 두려움, ‘자아‘라는 수수께끼에 직면한 ‘공허함의 공포(horrorvacui)‘는 순전한 죽음의 공포에 집어삼켜진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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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질문 하나만 더요." 벤은 마치 나를 붙잡을 듯 팔을 뻗었지만, 그러지 않고 두 손을 테이블에 올려놨다. "비공식적으로요."
"질문은 해도 되지만, 대답은 안 할 수도 있어요."
"콜린 던하고 가까웠나요?"
나는 한숨을 내쉰다. 빌어먹을 콜린던. - P89

"콜린이 그날 밤, 정말 바로 집에 갔다고 생각해요? 왜 콜린과 매트를 결혼식장에 두고 사바나와 당신 둘만 간 거죠?"
나는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섰다. "질문이 한 개가 아니잖아요.
벤"
"전 규칙 같은 거 잘 안 지켜서요."
젠장, 최악의 타입이다. - P90

11

"할머니 대체 뭐예요?"
(중략).
"팟캐스터 그 개자식이 거기 있는 걸 알고 절 보낸 거죠?"
- P91

"제가 그 팟캐스터랑 얘기하게 하려고 생일파티를연 건 아니죠?"
"그걸 굳이 묻는 이유를 모르겠구나. 당연히 그것 때문에 하자고 했지. 뻔하잖아." - P92

"그 애가 네게 제일 좋은 기회일 것 같아."
"무슨 기회요?"
"누가 사바나를 죽였는지 알아낼 기회. 그 남자애랑 꽤 오래 얘기했는데, 엄청 솔직하더구나 다른 사람들처럼 널 말려 죽이려는게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어 했어."
나는 말없이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 P93

"그 애는 팟캐스트 첫 번째 시즌에서 미제 사건 하나를 해결했어. 이번 사건도 그렇게 될 거야. 그러니 너도 걔를 도와줘."
"새비네 가족이 사설탐정 세 명을 고용했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대요. 그런데 벤이 무슨 수로 이 사건을 해결하겠어요?" - P94

"그날 콜린이 결혼식 끝나고 집에 바로 안 갔대." - P94

벤 오웬스의 거짓말에 귀 기울일 것


Episode 3

매드가 아까웠어요.



콜린던은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사바나의 남자친구였습니다. - P95

벤: 그럼 두 사람은 새비가 죽기 전까지 만나는 사이였나요?
콜린: 음... 만났다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네요. 우린・・・ 어. 그러니까, 네, 그냥 만나는 사이였다고 하죠. 네. 새비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저보다 훨씬 더 그건 분명해요. - P96

콜린: 루시랑 매트가 싸웠던 것 같아요. 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새비가 그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보였고, 자기 오빠 키튼에게 절 데려다주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 저는 키튼과 같이 가진 않았죠. 집이 별로 안 멀어서 그냥 걸어갔어요.
벤: 바로 집으로 갔나요?
콜린: 네, - P98

벤: 전 그냥 시간을 추정해보려는 거예요. 당신은 새비가 살해당하던 시간에 밖에, 혼자 있었어요. 하지만 경찰에는 새비가 결혼식장을 떠난 후 바로 집으로 걸어갔다고 거짓말했죠. - P99

콜린: 전 안 죽였어요.
저기 이거 다시 하면 안 돼요? 저 완전 망한 것 같은데. - P99

12

(전략).
"고마워, 딸, 십 분 안에 애들이 온다는데, 집이 돼지우리 같으면 안 되잖아." 엄마는 남부 여자라면 모두 인정할 만큼 충분히 부푼 머리카락을 다시 부풀렸다. - P101

세 사람은 나도 안다. (중략).. 자넷은 처음 보는 얼굴이다.  - P103

폐기는 엄마 아빠가 지어준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기라도하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 P104

"그 남자는 만났어?" 페기가 벳시의 말을 잘랐다. "그 팟캐스트하는 남자 말이야. 이름이 뭐였지?"
"벤." 자넷이 말했다.
"그래, 벤, 정말 잘 생겼던데, 안 그래? 라디오에서 뭘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배우를 했으면 좋았을걸." - P105

나는 오늘 나온 에피소드를 반절밖에 듣지 않았지만, 콜린은 누군가를 죽이기엔 너무 멍청하고 게을렀다. - P105

13

나는 햄프턴 하우스를 의식적으로 피했다. 그 집을 볼 필요도 없고, 괜히 갔다가 새로운 아내와 함께 있는 매트를 마주치는 일은 진심으로 없었으면 하니까.
하지만 결국 시내를 가로질러 그쪽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 - P107

‘저 집을 사면 우린 이 지역 스타가 될 거야. 모두들 이 집과 우리 얘길 할 거라고, 매트는 항상 이렇게 말했었다.
까.
그 말이 맞았다. 플럼튼 전체가 우리 집 얘기로 시끄러웠으니 - P108

나는 부자들의 사고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 P108

그 순간,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개를 돌려 조수석 쪽 창문을 내다봤다.
그곳엔 매트가 서 있었다. - P109

벤 오웬스의 거짓말에 귀 기울일 것

Episode 3
매트가 아까웠어요.



(전략)
 
저는 많은 사람들과 매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매트와 루시의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스테파니 간츠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스테파니는 십 대 자녀를 축구 연습에 데려다주는 사이에 저와 인터뷰했습니다. - P110

스테파니: 음, 아뇨, 카일이요. 카일 포터. 그 얘기는 알죠?
벤: 얘기를 좀 듣긴 했죠.
스테파니: 카일이랑 꼭 얘기해 봐요. - P112

14

나는 멍청하게도 창문을 내렸다. - P113

"들어올 생각이었어, 아니면 여기 밤새 있을 작정이었어?" 매트가 물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지나던 길이야." - P114

나는 진심으로 당황해서 매트를 쳐다본다. "네 아내가 싫어할 것 같은데."
"곧 이혼할 거야. 그 사람은 휴스턴으로 돌아갔어." - P114

아니야. 젠장. 또 매트와 엮이면 안 돼.
"정말 나랑 단둘이 있어도 괜찮겠어?"
"루시." 매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매트는 내 행동을 지적할 때 이런 식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P115

그는 내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 P115

15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벤이 보였다. 지난번과 같은 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뭔가를 쓰고 있었다. - P116

 지난밤 나는 벤에게 오늘 아침에 만나자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제 여기가 우리 공식 회의실이에요?"
"뭐, 저는 대부분 여기 있으니까, 공식 회의실인 셈이죠."
"여기서 일해요? 호텔 같은데 안 잡았어요?" - P117

"정말 우리 할머니 생일파티 얘기를 하고 싶어요?"
어두운색 머리칼이 벤의 이마 위로 쏟아졌고, 벤은 고개를 흔들어 머리를 넘겼다. "아뇨, 그냥 예의상 물어봤어요. 가벼운 얘기를 해보려고 했죠." - P118

"같이 해결하는 게 어때요?"
"그 팟캐스트 일에 협력할 생각 없어요."
"팟캐스트 얘기가 아니에요. 어쨌든 직접적으로는 아니죠. 당신한테 돈을 주진 않을 거니까요."
"벌써 흥미가 생기는데요."
"저랑 협력하면 누가 사바나를 죽였는지 알아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저 말고 말이죠?" - P119

"당신은 누구보다 사바나를 잘 알았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얻은 모든 정보 중에서 당신에게 직접 들은 건 거의 없어요. 당신 이야기를 해 줘요. 당신 생각을 다른 사람들 생각은 넘치도록 들었으니, 그중에 뭘 걸러야 하는지 알아야겠어요. 그러려면 당신이 도와줘야 해요." - P119

"그럼 절 도와주겠다는 거예요?"
(중략).
벤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요?"
"네."
"인터뷰도요? 공식적으로?"
"네." - P120

벤은 다시 한번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당신이 틀렸어요."
"뭘요?"
"새로운 정보가 없다는 거요. 카일이 털어놨거든요." - P121

벤 오웬스의 거짓말에 귀 기울일 것

Episode 3
매트가 아까웠어요.


카일 포터는 오스틴에 살고 있습니다. (후략).

카일: 제가 루시를 만났을 때 루시는 플럼튼에 산 지 일 년 정도 됐었어요. (중략). 루시는 한산한 낮에 그 바에서 글을 썼죠. - P122

벤: 루시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카일: 결혼반지는 봤어요. 하지만 전 만나는 사람이 없었고, 솔직히 누굴 사귈 마음도 없었거든요. 사실 유부녀인 게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 P123

16

어제 식당을 나서기 전에, 프렌치토스트와 후회로 가득 찬 상태로 벤에게 내 번호를 알려줬다 - P125

사실 요즘 큰 실수를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 P125

. 할머니는 하루의 80%(낮게 잡은 거다.)를 취해서 보낸다. 그런 사람의 결정을 믿어서는 안됐던 게 아닐까? - P125

 나는 고개를 숙여 벤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오후에 시간 괜찮아요?】
(중ㄹㅑㄱ).
【제 방에 같이 있어요. 플럼튼 스위트 호텔 226호요.】 - P126

"페이지, 이쪽은 루시야. 루시, 이쪽은 제 어시스턴트인 페이지에요. 절 싫어하고요." - P126

페이지가 다시 나를 응시했다.
"당신이랑 실제로 만나서 얘기하고 있다니 믿기지가 않아요. 혹시 우리 팟캐스트 들어요?"
"네." - P127

‘여자를 죽여본 적은 없는데, 언젠가 죽여보고 싶긴 해‘
나는 목소리를 무시하려 애쓰며 자세를 바꿨다. 요즘 부쩍 시끄러워지고 있다.
좋은 신호일 리 없었다. - P128

"고등학교 때 로스 아이어스는 왜 때린거죠?"
(중략).
아니, 사실 에밋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밋은 늘 비밀을 잘 지켰다.
"로스가 같은 반에 있던 여자애 치마 속 사진을 찍고 있었거든요."
"역시 그런 거였군요." 페이지는 자신이 이겼다는 듯, 혹은 누군가를 당장이라도 때릴 듯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P128

"그 자식은 인정 안 할 거예요."
"에밋은 알았던 거죠?" 페이지가 묻는다. "그 일을 물어봤을 때 뭔가 걸리는게 있어 보였거든요." - P129

"에밋하고 얘기 안 한 지 5년은 됐어요."
"왜죠?" 벤이 물었다.
"놀랍게도 친한 친구의 살인 용의자가 되면 사람들이 연락을 끊거든요." - P129

"매트는 제가 범인이라고 생각해요."
"그 말이 맞아요?" 페이지가 물었다.
나는 밀려오는 두려움을 감추려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래요, 알았어요. 장담은 못 하지만, 한번 해 보죠." - P130

벤 오웬스의 거짓말에 귀 기울일 것

Episode 4
기억 상실증이라는 방어 기제


(전략).
처음에 루시는 가해자가 아닌 두 번째 피해자로 여겨졌습니다. 루시 역시 크게 다쳤으니까요.
하지만, 경찰은 현장에서 제삼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부검 결과 사바나의 팔에 난 긁힌 상처가 루시의 손톱 때문에 생긴 것으로 밝혀졌고, 멍 자국 역시 루시의 손 모양과 비슷했습니다. - P132

사실, 루시의 머리 부상에 관해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중략) 사실은 매우 심각한 부상이었죠. (중략). 사실, 뇌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아예 저장하지 못하는 것이라고합니다. 기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거죠.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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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가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보았습니다.

제1장

사회 발전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 통제 대상이 될 수 없다


"선을 계획하면 악이 방해한다. 선은 비효과적이지만, 악은 효과적이고 완강하다."
-디에고 우르타도 데 멘도사 Diego Hurtado de Mendoza, 1503~1575¹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역사가 인간의 계획을 얼마나 손쉽게 따돌리는지 감탄하게 된다."
-타키투스 Tacitus² - P23

I

실증적 데이터가 충분하다면 인간의 개입에 사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단기적으로 예측하고, 그 결과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도 있다. - P23

실증적 데이터가 부족한 경우에는 인위적 개입으로 인한 장기적 결과를 예측하기는 더욱 어려우므로 사회 발전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 P23

•기원전 2세기 초반, 로마는 사회적 타락을 막으려고 과도한 소비를 금지하는 사치 금지법을 통과시켰으나 의도했던 효과를 얻지 못했으며 로마인들은 계속해서 타락해갔다.⁴ - P24

•9세기, 이탈리아 왕들은 소작농 착취를 금지하는 법률들을 만들었지만 "이런 법률들은 무의미했으며 귀족 지주들의 정치권력은 계속해서 강해졌다."⁶ - P24

지난 수 세기 동안 인간의 사회 발전 통제력이 향상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1950년대 이후의 사회통제 시도들이 표면적으로는 옛날보다 더 정교해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더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다. - P25

ㆍ인터넷을 통해 등장한 "진정으로 상호연결된 세계"는 "문화를 초월한 협력과 전 세계적 진보로 이어질 것이라고 여겨졌다. "(전략). 즉, SNS의 시대는 평화와 공감의시대가 될 것이다."¹¹
실제 결과는 영 딴판이다. (후략). - P26

11. E.T. Brooking & P.W. Singer, p. 83. - P61

비스마르크는 생전에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자신이 패배자라고 생각했으며 1898년에 절망 속에서 죽었다.¹⁷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서서히 민주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는데, 그가 죽은 후에 독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훨씬 격분했을 것이다. - P27

17. NEB (2003), Vol. 15, "Bismarck," p. 124.
.,pp. 121-24; ibid., Vol. 20, "Germany," pp. 109-114; Zimmermann, Chapts. 1&7; Dor-palen, pp. 219-220, 229-231, 255-56, 259-260&n53 1 - P61

• 20세기 후반, 소위 "녹색 혁명"의 목적은 제3세계에 최신 농업기술을 소개해 수확량을 증진해 기아를 완화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수확량이 늘어났다. 그러나 "‘녹색 혁명‘은 국가 차원에서의 식량 생산량을 기준으로 보면 성공이었지만, 공동체와 개인들에게는 재앙이었다...."¹⁹ - P28

II

사회 발전을 통제하는 인간의 능력이 진보하지 못한 이유는 몇 가지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 P30

현대 인간 사회 같은 복잡계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은 경제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략).²⁹ 오직 미국 경제만을 고려해도 물가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6x10¹³개의 연립방정식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자그마치 60조에 해당한다!) - P31

복잡계만 혼돈 운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며, 대단히 단순한 체계도 혼돈 운동을 보일 수 있다.³⁴ - P32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물리 현상의 예측에 필요한 데이터의 정확도에 절대적 한계를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P33

현대 기술 사회가 혼돈 이론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략).
그러나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후략). - P33

사실 자기 행동을 예측하는 체계라는 개념 자체가 논리적 역설이다. - P35

그리고 사회가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려면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도 역설이 발생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끝내겠다. - P36

지식인들은 옛날부터 인간사회가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 P36

III

예상되는 반론은 다음과 같다. 설령 사회의 행동이 장기적으로 예측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반복적인 단기적 개입을 통해 사회를 합리적으로 조종할 수도 있다. - P37

어쩌면 전체 사회에도 동일한 방법을 쓸 수 있을 것이다. - P37

의도적 개입이 항상 성공하지는 않겠지만 다음의 개입을 통해 이전의 실패를 수정하면된다. - P37

하지만 이런 제안 역시 근본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첫 번째문제는 ‘무엇이 좋은 결과이고 무엇이 나쁜 결과인지 누가 정하는가?", "우리가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이 무엇인지 누가 정하는가?"라는 질문에 인류가 보편적 합의를 얻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P38

심지어 모두가 특정 정책에 동의해도 "공유지의 문제" 때문에 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 P38

예상되는 반론은,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 체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결정들은 수많은 의지들의 투쟁 결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거 등의 방법을 통해 공적으로 권력을 부여받은 소수의 정치지도자들이 개인들에게 전체의 복지를 위한행동을 강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내려진다. - P39

현실의 경험에 따르면 정치지도자들의 숫자가 6명만 넘어도 지도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를 해결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사회를 일관적으로 통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 P39

동일한 맥락에서 미국 대통령들을 철저히 연구한 역사가 클린턴 로지태 Cimmon Rossiter는 미국 대통령의 권력이 대단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 P40

(전략).
그러므로 소수의 지도자에게 공적인 권력을 집중시키는 방법으로는엥겔스가 말한 "수많은 의지들의 투쟁" 문제를 해결할 할 수 없다. 어떤사람들은 이론상 절대 권력을 지닌 절대권력자들의 권력도 실제로는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놀라기도 한다. - P42

・노버트 엘리어스는 "절대왕정" 시대 유럽의 "절대 군주들이 그다지 절대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⁷⁴ "절대" 군주의 전형 프랑스왕 루이 14세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처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권력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다. - P43

• 1931년~194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노동자들을 제도적으로 통제하려는 스탈린 정권의 힘보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더 강했기 때문에⁷⁹ 스탈린 정권은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 P45

더 중요한 것은 1930년대 중반부터 후반의 공포는 스탈린이 자신의 통치에 대한 저항을 효과적으로 분쇄하기 위해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는것이다. 실제 상황은 겁에 질린 독재자의 통제를 순식간에 벗어나기 시작했다. - P45

이 시기의 공포로 인한 결과 중 하나는 소련의 육군, 해군의 유고위 장교들이 거의 전부 제거되었으며 스탈린의 군대가 불구가 되었다는 것이다.⁸³ - P46

• 아담 데이빗슨Adam Davidson의 최근2012년 기사는 미국의 실업 문제의 원인을 논하고 있다. (중략). "스탠다드 모터 프로덕츠Standard Motor Products사의 주주들에게 가격을 덜 인하하고, 살짝 적은 이익을 감수하고, 비숙련 노동자들을 돕고, 미국의 실업 문제 해결을 조금이라도 도와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후략). - P49

IV

이 장의 파트3 앞부분에서 제안된 방식으로 사회를 "조종"하는게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대단히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모든 대규모 복잡 사회의 내부 발전은 "자연선택"을 따른다. 이 부분은 제2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며 여기서는 최대한 요약해서 설명하겠다. - P52

V.

이 장에서 지금까지 검토한 모든 논의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사회의내부 역학을 조종하는 기술이 등장한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해보자. - P53

한 명의 지도자 또는 소수 지도자들에 의한 권위적인 통치라는 개념은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 시민들이 느끼는 만큼 황당한 발상이 아니다.  - P53

 기술 사회는 앞으로 수십 년 이내에 심각한 문제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 P53

우리가 지금까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회 발전을 충분히 유의미한 시간에 걸쳐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할 수는 없지만 합리적 통제의 가능성을 얻기 위해 세운일련의 가정들이 너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므로, 사회 발전은 영원히 인간의 합리적 통제 너머에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려도 괜찮다.¹²³ - P26

VI.

이장에 대한 주된 비판은 필자가 "누구나" 다 알고있는 뻔한 사실을굳이 종이와 잉크를 낭비해가며 구구절절 설명했다는 비판일 것이다. - P56

얼핏 보기에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정교한 계획은 절대, 절대, 절대 성공적으로 시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채 그러한 계획을 제안하는 것을 우리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목격하고 있다. - P57

지금 현재 2013년, 현명해야 할 사람들이 자꾸만 사회 발전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 P57

물론 기술성애자들은 기술의 진보를 형성하거나 "사회를 개선하지 못할 것이며, 기술이 인간에게 우호적이게끔 만들지도 못할 것이다. - P58

아마 대부분의 기술성애자들은 "사회 개선"을 위해 기술의 "진보를 형성"하겠다는 헛소리를 진지하게 믿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는 "사회개선"이라는 환상이 급진적인 기술 혁신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사전에 차단하는 프로파간다로 쓰이는 동안 특이점 대학은 기술지향적 기업가들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¹²⁹ - P58

"사회를 개선하겠다는 기술성애자들의 계획의 배후에 있는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이와 유사한 진지한 계획들이 있다. - P58

2011년에 출판된 책에서, 니콜라스에쉬포드 Nicholas Ashford와 랄프 P. 홀Ralph P. Hall¹³²은 "산업국가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일관적, 학문통합적 transdisciplinary 접근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경제, 고용, 기술, 환경, 산업 발전, 국내법, 국제법, 무역, 금융, 노동자와 공공의 건강과 안전을 아우르는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목적 해결책의 설계를 제안한다."¹³³ - P58

또 다른 사례로(2011년), 나오미 클라인 Naomi Klein은 거대한, 정교한, 전세계적 "계획"¹³⁶을 제안했다. 이 계획의 목표는 지구온난화를 통제하고¹³⁷, 환경 문제들을 해결하고¹³⁸, 동시에 "참 민주주의"를 가져오고¹³⁹, 기업들에게 "고삐"¹⁴⁰를 채우고, 실업률을 낮추고¹⁴¹, 부유한 국가들의 소비를 줄이고¹⁴², 가난한 국가들의 경제를 성장시키고¹⁴³, "초개인주의 대신 상호의존성을, 지배 대신 호혜를, 계층 대신 협력을"¹⁴⁴ 조성하고, "지구의 생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 모든 투쟁들을 일관적인 서사로 우아하게 엮어내고"¹⁴⁵, 동시에 "진보적 의제를 촉진¹⁴⁶하여 "건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¹⁴⁷ - P59

136. Klein, pp. 14-15.
137. Ibid., pp. 14-17.
138. Ibid., p. 15.
139. Ibid., p. 15, col. 1.
140. Ibid.; 또한 p. 18, col. 1 참고. "시장의 힘에 고삐를 채워야 한다.")141. Ibid., pp. 15, col. 1, col. 2; 16; 21, col. 2.
142. Ibid., pp. 16; 17, col. 2.
143. Ibid., p. 16.
144. Ibid., p. 19, col. 2.
145. Ibid., p. 20, col. 1.
146. Ibid.
147. Ibid., p. 20, col. 2. - P68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이러한 계획들이 현실 세계에서 실행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인간사에 대한 현실 감각이 아예 없는걸까? - P59

대부분의 지식인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증상류층의 세계관은 열밀하게 조직되어있고, 문화적으로 "진보한 높은 수준의 사회 질서를 갖춘 대규모 사회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다. - P59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과 세계관이 종속되어 있는 사회를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계획이라면, 그 계획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더라도 붙잡으려고 한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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