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칠 때마다 자연이 자연인 동시에 반자연이 되며, 있는 게 없어지는 저 모순의 등식이 고개를 든다. 결국 동일률은 해체된다. 아무것도 아니며, 있지도 않다. - P106

 차라리 허무라는 원칙이 희망이라는 원리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나 할까? - P106

. 개인과 지나친 간격을 두고 개인의 ‘에셰크‘를 포용하지 않는 사회야말로 자살의 온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죽음이든 아니든 죽음을 철학으로 변호할 수는 없다. - P107

소수라 해서 그 권리를 침해해서야 되겠는가. - P107

 물론 자살이라는 행위가 동성애라는 성적 취향보다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중략). 그럼에도 자살 시도에 성공한 사람은 매몰차게 잊어버리고, 자살 시도에 실패한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하는게 인간적인 태도일까? - P107

 스스로 매우 발달했다고 자처하는 유럽 중부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는 ‘구출된 모든자살 시도자를, 그가 자신의 행위를 감추려 하지 않는 한, 직권으로 정신병원에 넣어버린다. - P108

 자살을 이미 기도했거나 하려는 사람을 사회는 계속 음험한 구실, 즉 시도 내지는 계획한 행위로 이미 성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구실을 내세우며 ‘파문‘해 버릴게 틀림없다 - P109

정신이 받는 고통을 사회라는 몸체가 앓는 병으로 보는 이들의 입장은 자유를 기본 인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목표를 한참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09

 전체적으로 볼 때 사회는 자살이 얼간이나 반미치광이가 저지르는 짓쯤으로 폄하한다. 단지 당사자의닫힌 세계 안으로 사회가 들어가 볼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 P110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은 이 두 현상에서 존엄성을 박탈해버렸다. 학문들은 이런 현상을 질병으로 간주하고 질시한다.  - P111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이 인간에 관련해 알고 있는 것은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²⁴가 그의 애지중지하던 회색 거위와 관련해 알고 있는 꼭 그만큼일 뿐이다.

24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1903~1989). 유형별로 동물의 고유한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해 이른바 ‘비교행동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 1973년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 P111

환자로 내몰린 끝에 자신의 인생을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은 언젠가 자살을 시도한다. 그의 과거가 정말 치욕적이었을까? - P112

우울증 환자는 얼마나 병든 것일까? 그 병세는 어느 정도일까? - P112

 지금까지 읽어보고 직접 겪은 바를 종합해볼 때 마음의건강(몸의 건강까지 포함해서)이 질병이라는 영역과 구별되는 경계선이라는 것은 언제나 자의적이고, 그때그때 사회 체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 P113

의사가 오래 전부터 금연을 지시했음에도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하는 나 자신은 얼마나 병이 든 것일까? - P113

내가 올바로 보았다면, 정신 질환은 경험의 한계를 잘못 판단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아닌 것을 맞다고 주장할 때,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가봤다고 흰소리할 때, 살아 있으면서 죽었다고 억지를 부릴 때, 정신병은 고개를 든다. - P114

심리적인 충격으로 별거 아닌 돌발사건이 무슨 엄청난 일로 부풀려진다. 개밋둑이 그의 눈에는 산처럼 보인다. - P114

. 너희에게는 별것 아닌 돌발 사건일 수 있다. 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인생의 결정적 사건이다. - P115

이것은 자연적인 죽음이다. 이 죽음이 자연적인 이유는 내가 일상 언어가 자연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신적으로 소화할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 P115

우울증 환자가 자신의 직업 활동을 마지못해 불충분하게 한다거나, 심지어 전혀 하지 않고 침대에서 뒹굴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사람은 사회에 불필요한 인간, 즉 기능하지 않는 인간이다. 이익을 추구하기에 바쁜 사회는 그래서 그런 인간을 ‘치료‘하려 든다. - P115

 인간에게 강요된 자아, 외부의 간섭으로 빚어진 자아는 문제가 많은 조작의 산물이다. - P116

그러나 우울증의 경우, 심지어 자살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을때, ‘사유 실체‘는 격심한 고통을 겪는다. 영혼의 더할 나위 없는 상처라 말할 수도 있다.²⁶

26 여기서 ‘연장 실체‘는 ‘res extensa‘를, ‘사유 실체‘는 ‘res cogitans‘를 각각 옮긴말이다. 세상에 공간적 연장(延長)을 갖는 사물과 생각하는 정신, 이렇게 두가지로 설명하며 데카르트가 쓴 개념이다. - P116

결국 모든 게 나와 타인, 개인과 사회 사이의 싸움이라는열악한 최후를 향해 치닫는 것일까? - P117

이를테면 늙고 병들어 죽은 자연죽음이 반드시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손발을 묶어두고 자연 죽음만 기다리라고 하는 게 반자연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 P117

. 자살자는 영웅과 마찬가지로 모범적인 성격을 띤다. 세상의 피난민은 세계 정복자보다 못난 게 아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보면 더 낫기까지 하다. - P118

이제 자살은 가난과 질병과 마찬가지로 치욕이 아니다. - P118

자연 죽음으로서의 자살이라는 게 정확하게 무엇일까? - P119

존재를 강타하며 파괴하는 ‘에셰크‘에 맞서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게 자살이다. - P119

 선택과 결정은 오로지 당사자 개인의 문제다. 그는 자신의 독자성을 위해,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의 고유한 것이지 않았던 생명이라는 고유 재산을 파괴한다. - P120

3장

손을 내려놓다


손을 자신에게 내려놓다. 어딘지 모르게 현실성을 솎아낸 것처럼 들리는 표현이다. (중략).
그런데 나에게는 그만큼 절박하게 들린다. 진부하게 들릴 - P123

자유죽음을 구하는 사람이 하나의 통일체인 동시에 둘로 나뉜 존재라는 것, 이 통일체와 복합체는 서로 특정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래서 심리학은이런 관계를 두고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자기자신을 스스로 공격하는 성향도 여기서 배제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심리학의 가설은 이후 적당한 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 P124

 나와 내 몸을 똑같은 나와 내 몸이 파괴한다. 대체 이를 어찌 이해해야 좋을까? - P124

 몸은 우리의 "세계 내 존재(Inder-Welt-Sein)"³에서, 사르트르가 표현했듯, "무시당하는 것(lenéglige)", "침묵 아래 간과되는 것(le passé sous silence)"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두고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3 하이데거 실존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개념. 인간의 현존을 세계 안에 던져진 투사(Projekt)로 보는 실존철학에서는 우리가 세계 안에서 다른 존재자와 교섭을 가져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세계를 벗어나는 일. 곧 죽음은 실존철학에 있어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 P125

 왜 흔히 고통 때문에 ‘껍데기에서 빠져나오고 싶다‘⁴는 말을쓰지 않던가. 건강할 때는 의식조차 하지 않던 몸이 조금만 아프면 거추장스럽고 빠져나가고 싶기만 한 것이다.


4 이 문장의 원어는 ‘aus der Haut fahren möchten‘이라는 숙어로 일상에서는 ‘미치도록 화가 난다‘라는 의미로 쓴다. 그러나 여기서는 원어를 그대로 직역해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 P126

언제나 몸과 자아가 혼연일체를 이루지는 않는 탓에, 차라리 아직 우리 몸을 소유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낫다. - P127

 발치의 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뽑아버린 치아가 아쉬워 우울한 기분에 빠진다. 빠진 구멍이 증명해주는 없음이 우리의 ‘자아‘를 좀먹었다는 느낌에 괴로워한다. - P127

우울함과 괴로움의 뿌리는 더욱 깊숙이 있다. - P128

그러나 치아가, 발가락이 아니 심지어 팔과 다리가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유감스럽지만 아니다. 우리가 자유죽음 앞에 섰을 때, 손을 내려놓으려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몸 전체다.  - P128

장차 "침묵 아래 간과하라"는 말도 할 수 없게 되리라(더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가 무얼 간과할 것인가?). - P128

(전략), 머리가 대뇌피질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라는 과학 지식은우리의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라는 자아가 사라진 마당에, 머리가 한낱 물질로 남은 지금, 대뇌피질 따위가 다 무어란 말인가. - P130

자유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사람은 이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밀도 있는 대화를 몸과 머리와 자아와 나눈다. - P130

 나 자신이 없어져버릴 마당에 여전히 끄떡없이 있을 세상이 나에게 무엇일까. 몇 번이고 내 몸을 상냥하게 대해주자고 다짐하지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떠받들고 있는 ‘나‘라는 자아가 사라질 텐데, 이런 상냥함과 애틋함은 멀리서 보면 흡사 자위행위를 닮았다 - P131

 "인간의 실존을 통해서만세계는 존재한다."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하지만 자위하는 인간 실존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해져 있다. 자위하는 실존은 세상을 포기했다. 그래서 결국 묻지 않을 수 없다. - P132

자위하는 실존 역시 인간 실존이다. - P132

그리고 이 자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칠 줄 모르고 ‘나‘라는 의식을 만들어낸다. - P133

자아는 얼굴 안에서 아직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한다. 무언가 참혹한 게 솟아오른다. 이 참혹함은 자살자의 속 안에 쌓인 두려움과는 다른 것이다. - P134

자아를 두고 "감각의 묶음(Bundle ofPerceptions)"이라거나 선험적 주관의 내재적인 현상 형식이라는 식의 규정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나는 세계를 부정했으며, 이로써 자기 자신도 부정했다.

5 ‘감각의 묶음‘은 데이비드 흄이, ‘선험적 주관‘은 칸트가 각각 자아를 정의한개념이다. 경험론과 관념론이 다뤄온 자아 문제가 죽음을 다루는 논의에서아무 쓸모가 없다고 아메리는 지적한다. - P134

 모든 의식은 "무엇을 향한 의식(BewuBtsein von etwas)"⁶이라고 한다. 자살자의 자아가 기억을잃어버린다면, 자아라는 의식은 대체 무엇을 향할까? 기억해야할 것을 갖지 못해도 의식인가?

6 ‘무엇을 향한 의식‘은 현상학을 창시한 에드문트 후설이 의식을 정의한 말이다. 후설의 현상학은 의식의 기본 구조를 지향성이라고 보고, 언제나 무엇을지향하는 의식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표현을 했다. - P135

죽음을 향한 의식?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이제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극단으로서 자살자 앞에 있지 않은가. 말 그대로 끝장이자 ‘치명적인 결말(exitus letalis)‘이 아닌가. - P136

. 자살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부가 아닐지라도 공허한 자아가 주는 소름끼침은 무섭기만 하다. 그러나 일단 자살이 실천으로 옮겨지면 공허함을 보는 두려움, ‘자아‘라는 수수께끼에 직면한 ‘공허함의 공포(horrorvacui)‘는 순전한 죽음의 공포에 집어삼켜진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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