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및 천문학을 전공한 미카엘 매스틀린 Michael Mästlin은 케플러를 가르쳤던 교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케플러의 뛰어난 과학적 재능을 일찌감치 눈여겨보고 있었다. - P37

역법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케플러는 행성의 숫자와 크기, 그리고 그 궤도 등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종교적 신념은 여전히 굳건했다. - P38

티코 브라헤는 1546년 덴마크 귀족 가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티코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둘러싸고 문제가 생겨났다. (중략). 백부 외르겐Jörgen은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동생에게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나자 더 이상 동생 내외에게는 맏아들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티코를 납치해 갔다. 티코의 부친은 자신의 형 외르겐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 P39

브라헤는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벌이기 좋아했지만 밤에는 천문대에 자리를 잡고 조수들과 함께 20년 동안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기록했다. 때로는 4개의 팀으로 나누어 같은 곳을 동시에 관측하기도 했다.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브라헤는 유례없이 정밀한 관측을 행했다. 그런데 그런 정밀함 못지않게 중요한사실은 그가 중단 없이 장기간에 걸쳐 관측을 했다는 점이다. - P40

그러나 자신의 이론을 채 완성하기 전에 이 거만하기 그지없던 과학자는 덴마크 국왕과 불화를 일으켰다. - P41

그렇지만 브라헤와 케플러의 공동연구는 원만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브라헤가 케플러에게 맡긴 일은 행성의 움직임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중략). 하지만 모든 자료를 자유롭게 볼 수는 없었다. 브라헤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만 자료의 일부를 내어줄 뿐이었다. 브라헤는 우수한 조수가 자신을 능가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 P42

늘 기름진 성찬을 배불리 먹던 브라헤가 그만 방광염을 얻고 말았고, 결국 이로 인해 사망하게 된 것이다. 황제 루돌프 2세는 곧바로 케플러를 황실 수학자로 승진시켰고, 조수 생활을 하던 케플러는 브라헤가 신주 모시듯 하던 관측 기록까지 물려받았다. (중략). 어쩌면 ‘훔쳤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브라헤의 상속인이 정당한 소유권을 행사하기 전에 그 기록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 P43

한편, 케플러는 마침내 천문학 표 작성을 끝마치게 되었다. (중략). 왜냐하면 황실 수학자로서 케플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금액도 남아 있었던 상황에서 하사금도 기약 없는 지급 약속만으로 수여되었기 때문이다. - P45

케플러는 많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적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완성한 일이다. - P45

그러나 케플러는 천체와 같은 거시적 문제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중략). 이 책의 주제인 케플러의 추측은 바로 그의미시적 관심에서 연유된 것이다. 케플러의 추측은 <육각 눈송이>란 제목의 소책자에 실려 있다. - P46

먼저 케플러는 육각형의 경우 빈틈없이 바닥을 덮을 수 있다는점을 깨달았다. (중략). 케플러의 답은 사각형이나 삼각형은 육각형에 비해 표면적이 적기 때문에 그만큼 꿀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적어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위대한학자 케플러는 다소 불명확하게 말을 하고 있다.  - P47

아마도 케플러가 말하고자 한 것은 테두리 길이가 일정한 사각형 · 삼각형 · 육각형을 비교하면 육각형이 가장 넓은. 면적을 갖는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또는 동일한 면적을 갖고 있는 삼각형 · 사각형 · 육각형 가운데 육각형의 둘레 길이가 가장 짧다는 사실⁵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5) 이것 또한 ‘디도의 문제‘ 이다. (3장 참조) - P48

 그 다음으로 동그란 벽보다 곧은 벽이 더 견고하기 때문에 찌그러질 위험이 훨씬 적다는 점을 케플러는 들고 있다.⁷

7) 하지만 공학자들은 이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중세 때에 이미 교회 건축가들은 아치형출입구가 곧은 모양보다 훨씬 더 큰 하중을 견뎌냄을 알고 있었다. - P48

그러한 사실은 100년도 더 지난 후인 1727년, 영국의 식물학자 스티븐 헤일스Stephen Hales(1677~1761)에 의해 다시금 확인되었다.
케플러의 추측을 연구한 수학자 토머스 헤일스는 스티븐 헤일스에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스티븐 헤일스는 늦게 결혼을 해 자손 없이 사망했으므로 내 조상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우리 집안의 과학자들은 비공식적으로 그를 우리 가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우리 집안의 과학자들‘ 이란 수학자를 가리킨다. 이인용문은 스티븐 헤일스가 비록 수학자는 아니었지만 케플러 추측과 관련이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에 수학사에 그의 이름이 남게 되었다는 뜻이다-옮긴이)  - P49

헤일스의 결론에 다소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것은 케플러가 발견한 사실을 다시금 확증해 주는 것이었다. 즉, 씨앗이나 콩에 압력을 가해 서로 밀착시키면 각각은 다른 12개와 맞닿게 된다는 사실 말이다. - P51

. 사각형을 기반으로 할때는 모든 구가 수평과 수직을 이루도록 열과 행을 배열한다. 그 다음 켜에서는 첫 번째 켜에 있는 구 4개마다 홈이 만들어지는데, 이곳에 구를 올려놓는다. 다음 켜에서도 동일하게 구를 쌓는다. 이렇게 배열하면 첫 번째 켜에 평행한 평면에서는 각각의 구가 사방으로 4개의 다른 구와 맞닿아 있고, 위쪽 켜와 아래쪽 켜에서도 각각구 4개씩과 맞닿아 있게 된다. 바로 이 배열이 FCC임은 쉽게 알 수있을 것이다. - P52

이제 육각형을 기반으로 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할 차례이다. 먼저 한 평면에 6개의 구가 다른 하나의 구를 감싸도록 한다. 이들 7개의 구는 6개의 홈을 만들어 낸다. 위 켜에서는 하나씩 건너뛰는 방식으로 3개의 구를 올려놓는다. 또 아래 켜에서도 동일한 작업을 행한다. 이 배열이 HCP, 즉 육방 밀집 쌓기이다. - P52

여기에서 케플러는 진정으로 주목할 만한 사실 하나를 지적해낸다. 그것은 바로 이 두 가지 배열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ㅅ - P52

이상에서 케플러가 오각형으로부터 어떻게 신성 비율을 얻어내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는 신성 비율로부터 어떻게 풍요와 다산의 개념을 이끌어 낸 것일까?  - P55

물론 케플러의 주장은 합리적 논증을 따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내용 자체는 실제 사실과 합치되는 면이 있다. - P56

케플러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의 책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는논증 과정에서 2차원 쌓기 및 3차원 쌓기에 대해 매우 획기적인 내용을 언급했다. 가령, 2차원의 경우 육각 쌓기가 가장 높은 밀도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증명은 하지 않았다. 그의 주장을 확인하기까지는 무려 341년의 세월이 걸렸다. 다음으로 케플러는 앞에서 기술한 3차원 쌓기가 가장 밀도가 높은 배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추측 역시 증명되기까지 387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¹²


12) 이렇듯 증명 안 된 가설 외에 그 소책자에는 크게 잘못된 주장도 담겨 있다. 만일 공간이 동일한 크기의 정육면체들로 채워질 경우, "정육면체 하나는 38개의 다른 정육면체와 닿아 있게된다unum cubum contingunt alii.
・・・ octo et triginta" 고 케플러는 주장했다. 하지만 38개는 어불성설이다. 독자 여러분은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루빅Rubik 교수의 헝가리 큐브‘ 란 것을 기억할 것이다. 헝가리 큐브는 3단짜리 정육면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단은 가로 세로 3개씩의정육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정육면체 총 수는 3×3×3-27개가 된다. 즉, 하나가 중심에 있고 나머지 26개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6개의 정육면체가 중심의정육면체와 면을 맞대고 있고 12개는 모서리와 맞대고 있으며, 나머지 8개는 꼭지점과 맞닿아있다. 이번에도 역시 가운데 정육면체와 맞닿아 있는 정육면체의 수로 6+12+8-26개를 얻는다. 황실 수학자였던 케플러의 주장처럼 38개가 아닌 것이다. - P58

그 무렵, 태평양 건너 저 멀리 일본의 핵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中谷宇吉郎(1900~62)는 최초로 눈 결정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했다. - P60

(전략).
하지만 해리엇이 제시한 모델은 단지 설명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도입된 것일 뿐이다. 케플러는 모든 물질이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P62

그런데 왜 물 분자들이 눈 결정을 형성할 때 정육각형 배열을 택하는 것일까? 그 답은 다음의 물리적 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물리계는 외부의 아무런 간섭 없이 그대로 두면 가장 낮은 에너지상태를 갖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 P63

눈 결정이 육각의 구조를 갖는다는 사실과 평면에서 원을 육각형 형태로 배열하면 가장 밀도가 높은 배열을 얻는다는 사실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은 이제 분명해졌다. 사실 얼음 결정에서 볼 수 있는 원자의 배열은 그다지 밀도가 높은 배열이라 할 수없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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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집단에 동조하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모두 집단에 맞춰 행동을 조정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 P115

하지만 밀그램은 애쉬의 고전적인 연구 과정에서 사용된 생태적 타당성에 불만을 품었다. 실험 연구에서 과제의 ‘생태적 타당성‘이란 실험실 환경에서 연구되면서도 사회적으로 관련이 있고 가능한 한 실제 상황에 가까운 실험 모델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 P116

밀그램은 자신의 연구를 통해 얻은 복종 수준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사람들이 실험자의 명령을 따를 때 자신의 주체성과 책임을 실험자에게 넘긴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생각 없는 행동 주체thoughtless agents ofaction‘가 되어 ‘대리적 상태agentic state‘에 들어간다.⁵³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사람들이 명령에 복종하는 대리적 상태가 되었다는 그의 이론에 동의했지만,⁵⁴ 어떤 학자들은 그가 모든 참가자로부터 체계적인 보고를 받은 것은 아니었기에 그 타당성을 우려했다.⁵⁵ - P119

53 Milgram. Obedience to Authority, pp. 132-134.

54 T. Blass, The Milgram paradigm after 35 years: Some things we now know aboutobedience to authority.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 29 (1999), 955-978.

55 S.A. Haslam & S. D. Reicher. 50 years of "obedience to authority": From blindconformity to engaged followership. Annual Review of Law and Social Science13 (2017), 59-78. - P354

밀그램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처음에는 부족했음에도 명시적, 암묵적, 전기 생리학적, 신경영상학적 방법을 결합한 실험 연구는 밀그램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제3장에서 살펴보겠다). - P120

밀그램과 유사한 접근 방식을 사용한 다른 연구


(전략). 이후 다른 연구자들이 복종에 대한 추가적인 결론을 얻기 위해 여러 실험을 더 도입했다. (중략).
내가 박사 학위를 시작하기 전 브뤼셀의 중등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쳤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프랑스의 텔레비전 채널인 프랑스 2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죽음의 게임 Lejeux de la mort>을 시청하도록 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TV 진행자가 실험을 진행하는 과학자만큼 권위 있는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것이었다. - P121

지원자들은 초대를 받아 다가올 파일럿 TV 쇼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안내받았다. - P121

밀그램의 실험처럼 질문자는 경연자가 틀린 대답을 할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해야 했는데, 틀린 대답이 나올 때마다 전기 충격의 강도가 매번 증가했다. 질문자가 의심의 징후를 보이거나 절차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 TV 진행자는 질문자가 실험을 계속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특정 순서대로 다섯 번의 구두 재촉을 했다.  - P122

학생들에게 TV 연구 결과를 보여주기 전에 나는 그들이 그런 TV 쇼에서 나오는 명령에 따를 것 같냐고 물었다. 학생들은 만장일치로 절대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복종하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죠"라거나
"당연히 우리가 바보나 괴물은 아니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TV 쇼의 결과에 따르면 질문자 중 81퍼센트가 절차 끝까지 진행해서 경연자에게 450 볼트의 전기 충격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P122

TV 쇼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남성과 여성 참가자 간에 어떠한 차이도 관찰하지 못했고, 나이와의 상관관계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이 정치 스펙트럼의 왼쪽에 있을수록 학습자에게 주는 충격이 낮아진다는 것을 관찰했다.⁵⁷ - P123

쥐 참수 연구보다 더 최근에는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LaurentBègue가 이끄는 연구진이 밀그램과 유사한 실험을 통해, 과학 연구를 위해 동물을 죽이라는 명령에 사람들이 따르는 데 동의할지를 실험했다.⁵⁹ - P124

59 L. Bègue & K. Vezirian. Sacrificing animals in the name of scientific authority:The relationship between pro-scientific mindset and the lethal use of animals inbiomedical experimenta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8(2022), 1483-1498. - P354

그 물고기가 가짜인 것처럼 이 연구는 가상 상황cover story에 의존했다. 따라서 연구진은 먼저 152명의 참가자 중 누가 가상 상황을 신뢰하는지, 누가 신뢰하지 않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몇몇 심사자가 지원자의 영상을분석해 참가자들이 가상 상황을 신뢰하는지 아닌지 심사자의 인식을 기준으로 분류했다. - P125

실제로 밀그램의 참가자들이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실제로 무엇을 생각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어렵다. (중략).
밀그램의 연구에 대한 강력한 윤리적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⁶² - P128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다른 사람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행동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 과제의 외적 타당도external validity 에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 특수한 연구로 얻은 결과를 일반화할 수 있는 정도. 옮긴이 - P129

밀그램의 연구 이후의 복종 연구

(전략).
1980년대에 위트레흐트대학교의 연구팀은 복종을 시험하는 표준 접근법에 새로운 변화를 도입했다.⁶⁹ 연구팀은 구직 면접 지원자에게 매우 부정적인 발언을 하는 현대적 형태의 간접적인 폭력 실험을 했을 때 밀그램의 연구처럼 복종도가 높을지 조사했다. - P130

69 W.H.J. Meeus & Q.A. W. Raaijmakers. Obedience in modern society: The Utrechtstudies. Journal of Social Issues 51 (1995), 155-175. - P355

참가자에게는 그가 수행할 구직 지원자 시험이 선발 절차에서 중요하다는 것과 구직 지원자의 합격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참가자들은 구직 지원자의 시험 성적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고 성격을 폄하하는 발언을 해 지원자를 방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중략).
따라서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밀그램의 연구처럼 자신이 다른 개인을 고문하고 죽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구직지원자를 심하게 폄하해 심리적 피해를 주고 취업에 실패하도록 만들었을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P131

이는 밀그램의 복종 연구에서 끝까지 복종한 비율이 65퍼센트에 불과한‘ 것보다 높은 수치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자들이 또 다른 모집단인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도 이 연구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 P132

밀그램의 복종 연구와는 약간 다른 접근법을 사용한 이 실험의 결과는사람들이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한 매우 복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피해자가 될 위험이 생기면 갑자기 순응도가 뚝 떨어진다. - P132

복종을 연구하는 새로운 실험적 접근 방식

(전략)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밀그램의 연구를 아는 것과 관련된 주요 문제는 참가자들이 실험실에 들어갔을 때 우리가 숨겨진 목적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밀그램의 연구는 참가자에게 정보를 숨기고 속임수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⁷² - P134

밀그램의 연구를 재창조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우리는 밀그램의 연구와 관련된 윤리적 및 방법론적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가능한 한 생태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실험적 접근법을 개발해야 했다. 즉 사람들이 도덕적 결정에 직면하는 실제 행동을 측정할 수 있는 시도를 의미한다. - P136

밀그램의 연구처럼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실험 상황에서 참가자들은 땀을 흘릴 가능성이 크다. 내 경우에도 참가자 머리에서 땀이 흐를 때 양질의 뇌파 신호를 얻기가 정말 힘들었다. 땀 허상sweat artefacts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신경과학자에게 악몽과도 같다. - P137

물론 고려해야 할 다른 사항도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행동과 허용되지 않는 행동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연구할 때, 그들이 실제로 도덕적 또는 비도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결정에 직면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P137

총 두 명의 연구자, 줄리아 크리스텐슨Julia Christensen과 악셀 클리어만스Axel Cleeremans가 패트릭과 나와 함께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개발하기 위해 참여했다.⁷³ - P137

73 E.A. Caspar, J. F. Christensen, A. Cleeremans, & P. Haggard. Coercion changes thesense of agency in the human brain, Current Biology 26 (2016), 585-592. - P355

우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실험 조건을 설명하기 위해 ‘자유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실험자가 명령을 내리는 조건에는 ‘강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여기서 ‘강압‘이라는 단어가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의미로 여겨져야 한다는 점에 유의하자. - P139

과학 학회나 미디어에서 내 연구에 관해 말하면 사람들은 "하지만 사람들은 밀그램을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당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진다. - P141

우리는 처음에 대학생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밀그램을 광범위하게 공부했기에 참여자 중 단 한 명도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 예상은 완벽하게 어긋났다. 참여자 중에 다른 지원자에게 실제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내 명령을 거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 P141

복종 탐구: 참가자들이 고통스러운 충격을 가하는 이유

학자들 사이에서는 도덕성의 정의를 둘러싸고 상당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⁷⁴실제로 나는 내 실험을 통해 도덕성에 대한 서로 다른(그리고 매우 개인적인) 인식이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었다. - P142

71s nB. Gert & J. Gert. The definition of morality. In E. N Zalta (ed.), The StanfordEncyclopedia of Philosophy.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2020).
contrariar - P355

그런데 어느 날 한 참가자가 설명 중에 갑자기 내 말을 가로채서 "사람들이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없는데 왜 충격 없음 버튼을 누르는 거죠?"라고 물었다. 솔직히 이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으므로 "글쎄요. 당신 앞에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후략). - P143

일부 참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전기 충격을 많이 가했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이것이 주된 동기라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심지어 사후 설명 조사지에 "돈, 돈, 돈"이라고 적은 참가자도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53/60의 충격을 보냈다. - P144

나는 자유 선택 조건에서 그들이 무엇을 할지 완전히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으며 그들이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점처을 음부터 분명히 밝힌다. 실제로도 그랬다. - P146

어떤 참가자들은 호기심에 그렇게 했다. 한 사람은 피해자가 정말 고통스러울지 보고 싶었다고 밝혔고 (1/60회 충격 전송), 다른 한 사람은 전기 충격을 가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2/60회 충격 전송).  - P146

간혹 철학적인 설명도 보였다. "지혜는 지루합니다. 악은 자극적이죠" (15/48 충격 전송). - P147

실험실 실험이 실제 잔혹행위를 반영할 수 있을까?

(전략).
2015년 미국의 심리학자 앨런 페니히스타인Allan Fenigstein은 흥미로운 논문⁷⁵"에서 밀그램의 연구와 나치를 대조하면서 밀그램의 연구만으로는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P147

7.5A. Fenigstein, Milgram‘s shock experiments and the Nazi perpetrators: A contrarianperspective on the role of obedience pressures during the Holocaust, Theory&Psychology 25 (2015), 581-598. - P355

나 역시 연구를 설계하면서 이 문제를 고민했다. 실제의 집단학살과 전기 충격을 포함한 연구 사이에는 고려해야 할 중요한 차이점이 당연히 있다. 윤리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 전쟁이나 집단학살에 가담한 개인의 뇌에전극을 이용한 실험을 할 수는 없으므로 나는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해결해야 했다. - P148

결론


이 장에서 보여주듯이 다른 연구자나 내 실험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모집된 수천 명의 지원자는 실험 상황에서조차 외부 압력이 있든 없든 다른 개인을 해치는 것에 높은 수준의 복종도를 보인다. - P148

어쨌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방법이 신경영상 측정에 적합하여사람들이 명령을 따를 때 어떻게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을 받아들일 수있는지에 대한 답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 장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 P149

4

복종할 때의
도덕적 감정

(전략).
여러분은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느꼈던 순간들이 수십 가지는 쉽게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감정적이든 신체적이든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 공감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위를 꺼리게 만드는 이유로 생각된다. - P191

뇌는 공감을 느끼도록 설정되어 있다


(전략). 먼저 여기에는 자신의 신경계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고통을 처리해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경험 공유experience sharing가 포함된다. 그다음 정신회mentalizing는 다른 사람의 내면 상태와 생각을 이해하는 능력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공감적 관심empathic concern은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과 배려의 감정을 말한다. - P192

특히 우리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우리를 해로움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 P193

리콜라티와 그의 팀은 마카크원숭이의 전운동 피질에 있는 뉴런의 전기적 활동을 기록하여 이 뉴런들이 움직임의 계획과 시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고 있었다.¹¹⁴ (중략).
연구자 중 한 명이 돌아와 원숭이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고 원숭이 뇌에는 여전히 활성화된 장치가 연결돼 있었다. (중략). 연구자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수동적으로 지켜보고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신경 반응은 당연히 연구팀을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그래서 몇 가지 추가 시험을 하기로 했다. - P196

114 G. Rizzolatti, R. Camarda, L. Fogassi, M. Gentilucci, G. Luppino, & M. Matelli. Functional organization of inferior area 6 in the macaque monkey. Experimental Brain Research 71 (1988), 491-507. - P358

이렇게 해서 거울뉴런이 발견되었는데, ‘거울‘이라는 용어는 이 뉴런이 수신된 정보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사실에서 유래했다. - P196

거울뉴런이 있는 덕분에 전대상 피질과 전측 섬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이로써 우리는그 사람의 감정적, 신체적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흔한 예로는 하품이 있다.  - P197

인간의 뇌 속에 거울뉴런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침습적 기술이 필요하므로 복잡하다. 리촐라티가 마카크원숭이에게 사용한 것과 같은 단일 뉴런 시술은 두피를 열어 뇌에 접근한 다음 특정 개별 뉴런에 전극을 삽입해야 해서 매우 침습적이다.  - P198

공감에 중요한 뇌 영역인 전대상 피질과 전측 섬에도 거울뉴런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지만, 이곳은 뇌의 더 깊은 영역이고 접근하기 어려워 인간에서는 아직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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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잡고 앙투아네트는 두 잔의 럼 펀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작은 식탁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녀가 잔을 들어 내게 주더니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라고 말했다.
"행복을 위하여."
내가 대답했다. - P95

"무얼 그렇게 무서워했다는 거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안 무서웠어요. 사실 모든 게 다 무서웠어요."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고, "크리스토핀이에요." 라고 앙투아네트가 말했다. - P96

앙투아네트가 웃었다.
"저 문을 열면 당신이 쓰게 될 작은 방이 있어요. 원래는 옷 갈아입는 방이었어요."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 P97

모든 것이 매우 선명한 색깔들을 뽐내고 있지만, 내게는 한없이 낯설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것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 내가 결혼하게 될 이 여인도 내겐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 P99

나는 나의 결혼 예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 P100

결혼식 바로 전날 아침이었다. 내가 막 모닝커피 한 잔을 다 마서가고 있을 때 리처드가 프레이저 씨의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일을 진행하지 않겠다네!"
"무슨 일을?"
"자네와 결혼하지 않겠다는군."
"왜?"
"왜 그런지는 말을 안 해."
"무슨 이유가 분명 있을 것 아닌가" - P101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를 껴안고 키스했다.
"그렇지만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
"당신이 나를 믿어준다면 나도 당신을 믿으리다. 어때요? (중략)." - P102

(전략). 나는 옆방에서 들리는 물소리와 웃음소리에 잠을 깼다. 나는 아직도 잠에 취한 채 듣고 있었다.
"내 머리에 향을 많이 바르지 말아요.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으니까."
앙투아네트의 음성이다. 또 다른 음성이 말했다.
"남자가 향내를 싫어한다구? 난 그런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구먼."
벌써 밤이었다. - P103

"사람들이 이 옷을 ‘조세핀* 스타일‘ 이라고 해요."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1796년에 결혼하여 1804년에 왕후가 된 조세핀 보나파르트는 마르티니크 출신이며 크리올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대농장의 주인이며 노예주였다. 조세핀은 1809년에 나폴레옹으로부터 이혼당하게 되는데, 앙투아네트나그녀의 어머니 아네트의 운명과 유사한 점이 많다. - P103

"영국이 꿈과 같다는 말이 사실이에요? 내 친구 하나가 영국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 친구가 그렇게 편지에 썼더라고요. 그 애가 말하기를 런던이란 곳은 때때로 암울하고 냉기로 가득 찬 꿈만같대요. 어서 깨어나 떨쳐버리고 싶은 꿈만 같다고요." - P104

그녀는 말을 멈추고 손을 올려 머리 위에 놓았다.
"슬픈 이야기면 오늘 밤 내게 말하지 말아요."
"슬픈 얘기 아니에요. 어떤 일이 일단 발생하면 그 사건이 언제, 왜 발생했는지는 잊어버린다 해도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영원히 존재해요. (후략)." - P106

그녀의 입은 억지로 웃고 있었고 눈빛은 세상과 동떨어진 외로운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내 팔로 감싸고, 아기를 달래듯 부드럽게 흔들어주었다. 그러고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내가 벌써 잊은 지 오래라고 생각했던 옛날 노래였다.


고요한 밤의 여왕에게 만세,
로빈, 환하게 빛나라, 환하게 빛나라,
네가 죽는 그날.*


*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갈리아 신화에 의하면 로빈(울새)은 ‘거세되지 않은 숫양‘ 혹은 ‘남근‘을 상징한다. 동시에 성의 희열과 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로빈의 죽음은 여왕과의 성 접촉 후 발생할 복종과 죽음, 거세를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앙투아네트의 왕성한 성욕을 두려워하게 될 로체스터의 고민을 예고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손필드에 불을 지르고 머리칼이 날개가 되어 불사조처럼 날아오를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예고한다고 보는 것이다. - P108

다음 날 아침 내가 잠을 깼을 때 해는 연두색으로 찬란히 비치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전에 일어난 모양이다. - P108

 내가 빛의 감상을 끝내고 나의 공간에서 침실로 돌아갔을 때, 침실은 아직도 컴컴했고 앙투아네트는 베개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중략). 앙투아네트의 곁을 아직 떠나지 않고 있던 흑인 여인이 말했다.
"제가 만든 황소의 피를 좀 마셔보세요, 젊은 서방님."
그녀가 따라준 커피의 맛은 훌륭했다. 손가락이 길고 가느다란그녀의 손은 의외로 아름다웠다. - P109

그녀가 문 쪽으로 걸어가자 그녀의 치맛자락이 땅에 끌리며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문 앞에서 그녀가 몸을 돌렸다.
"서방님께서 밟아 으깬 협죽도 화환을 치우라고 아이를 보내겠습니다. 그냥 두면 바퀴벌레가 꼬이거든요. 꽃에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젊은 서방님."
"커피는 맛있지만 말투는 고약하군. 게다가 치맛자락은 좀 들고다니지, 마루를 쓸고 다니니 더러워지지 않겠어."
"치맛자락을 끌고 다니는 것은 존경을 표한다는 뜻이에요." - P110

그녀의 조그마한 부채가 탁자 위에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그것을 집어 들더니 몸을 눕히고는 눈을 감았다.
"오늘 아침엔 안 일어날래요."
"안 일어난다고? 아주 안 일어나겠다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래요. 저도 아주 게을러요, 크리스토핀처럼. 침대에서 하루 종일 일어나지 않고 있을 때가 흔히 있어요." - P111

나는 아주 이른 아침에 연못에 가서 몇 시간씩이고 그곳에 머물렀다. 나무 그늘이 좋아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밤에만 핀다는 꽃들도 그곳에 있었다. 그 꽃들은 입을 꼭꼭 오므리고 고개를 숙인채 두꺼운 잎 사이에 숨어 태양을 피하면서 밤을 기다렸다. - P112

"독사야 물론 독이 있지요. 그런데 여기는 독사가 없어요."라더니 곧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알지요? 그들이 정말 알고말하는 걸까요?" 그러더니 "여기 뱀들은 독이 없어요. 물론 없고말고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 P113

"컨설레이션 저택의 주인 남자는 은둔자래요. 그분은 아무도 안만나고, 말도 거의 안 한대요."
그녀가 말했다.
"이웃이 은둔자라? 그거 나하고 잘 맞는군. 썩 잘 맞아."
"이 섬에만 은둔자가 네 명 있어요. 네 명은 진짜예요. 은둔자인척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우기가 되면 다 떠나거나 만날 술만 마셔요. 그때 슬픈 일들이 발생하는 거죠."
"과연 이곳은 내가 느낀 대로 외로운 곳이군." - P114

"뱁티스트는 아주 집사 노릇을 잘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뱁티스트나 크리스토핀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내색하지 않으며, 나는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동의하곤 했다.
"뱁티스트가 그러는데……………, 크리스토핀이 그러는데. - P115

밤중에 잠이 깨면 밖에는 흔히 비가 내렸다. 변덕을 부리며 가볍게 내리기도 했고, 춤추듯 장난기 어리게 내리기도 했으며, 혹은 소곤거리듯 조용히 오기도 했다. 그러다 점점 소리가 커지면서 비는 끈질기게 내렸다. 강력하고도 냉혹한 소리를 내면서.  - P116

"당신을 알기 전에 저는 살고 싶지 않았답니다. 죽는 게 낫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시간을 기다렸는지."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말을 했소?"
"제가 말을 나눌 사람이나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이 어디 있어야죠. 쿨리브리에서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하실 거예요." - P117

"왜 크리스토핀과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추고 그러지?"
"그러면 왜 안 되는데요?"
"나 같으면 그 사람들과 껴안고 입 맞추는 짓은 안 할 거요. 아니, 못할 거요."
내 말을 듣고 그녀는 한참 동안 웃었다. 그러나 왜 웃는지 결코 말해 주지 않았다. - P118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녀가 내게 속삭였다.
"만일 내가 죽을 수만 있다면, 지금, 내가 가장 행복할 때, 당신이 날 죽게 해주겠어요? 당신이 날 죽일 필요도 없어요. 그저 ‘죽어라.‘ 하고 말만 하세요. 그러면 제가 죽을게요. 안 믿으시는군요. 그럼 한번 시험해 보세요, ‘죽어라.‘ 하고 말하세요. 그리고 제가 죽는 모습을 보시라니까요."
"죽어, 죽고 싶으면 죽으라니까!" - P119

내가 위험을 느끼는 것은 밤이었다. 나는 위험을 잊으려 했고,
위험을 내 인생에서 밀쳐내려고 했다.
"당신은 안전해."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 주곤 했다. ‘당신은 안전하다‘ 라는 말을 듣는 것을 그녀는 좋아했다.  - P120

만일 그녀를 어린애라고 한다면 그녀는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라 고집이 센 아이라고 해야 한다. 그녀는 가끔 내게 영국에 대해 질문을 했고 내가 말해 주는 것을 경청했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그녀에겐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영국에 대한 그녀의 의식은 이미 확고하게 결정돼 있었으니까.  - P121

나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끝없이 계속될 것처럼 내리는 비의 졸린 듯한 노래. 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비야, 나를 잠에 빠지게 해다오. 금세 나는 잠들어 버렸다. - P122

"주인님, 이게 오늘 아침 일찍 왔어요. 힐다가 받았어요." 아멜리는 동판 인쇄처럼 얌전하게 겉봉이 쓰인 두툼한 봉투를 내게 주었다. 편지 귀퉁이에 ‘친전, 급‘이라는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주변에 산다는 은둔자 중 하나겠지.‘ 나는 생각했다. - P122

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중략). 마치 내가 이런 편지를 기대하고 있었던 듯이, 아니 아마 나는 이런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 P128

앙투아네트가 말했다.
"그리고 가서 크리스토핀에게 내가 보잔다고 말해."
아멜리가 비질을 멈추고 말했다.
"크리스토핀이 떠난다는대요." - P128

앙투아네트가 갑자기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아멜리의 따귀를 때렸다.
"나도 너를 때릴 거야, 이 흰 바퀴벌레야. 나도 너를 때릴 거야."
 거아멜리가 정말 앙투아네트를 쳤다.
앙투아네트가 그녀의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아멜리는 이를 악물더니 이번에는 앙투아네트를 이빨로 물려고 덤볐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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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겐이치의 의자가 뒤로 쓰러졌다. 비명소리.
"이상해, 이상해, 아까부터 그 말뿐이네."
케이시가 심하게 다리를 떨면서 불평했다.
"맞아. 그게 바로 답이거든." - P56

"숀이 다리 위에 쓰러져 있던 건 틀림없어. 그렇다면 이 이어폰은 범인이 일부러 남겨둔 가짜 단서였다는 말이 돼. 범인은 다리 아래로 이어폰을 떨어뜨림으로써 손이 그곳에서 공격당한 것처럼 보이게 한 거야. 바꿔 말하면, 사실 손은 그곳에서 공격당하지 않았어. 하지만 어째선지 숀은 그 사실을 숨기고 있지." - P57

"마치 직접 목격한 것처럼 말하는데, 증거 있어?" - P58

"숀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건데?"
야스가 뒤에서 머리카락을 비비 꼬며 말했다. - P59

내가 내뱉은 말에서 신물이 났지만, 나는 계속했다.
"숀이 돌아오면 지금 내가 말한 건 전부 잊어줘. 그리고 가능하면 모두 조금씩 숀에게 말을 걸어줬으면 해."
창문에 바람이 부딪혔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스토브 팬이 돌아가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 P60

"방금 영상에서도 보셨다시피 침팬지 릴리가 연구원 흉내를 내며 문의 키패드를 조작한 결과, 비밀번호가 적중한 것이 이번 탈출 사고의 원인입니다."
열두 명의 하원의원과 서른 명의 방청객에 둘러싸인 채유성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중략).
"제멋대로 누른 숫자 조합이 우연히 1/10⁵의 비밀번호였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 P61

다만 센터의 존속이 공공안전위원회의 평가에 달린 이상,
그런 속내를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기적 같은 우연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밖에요."
웃기지 마. 신의 뜻으로 돌리려는 거냐. - P62

센터장인 자신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면 센터는 즉시 폐쇄될 것이다. 성제는 시선을 내리깔고 땀에 젖수 은 손수건을 움켜쥐었다.
"제 위험 예측이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 P63

소현은 성제의 여동생이다. (중략), 그사이에 한국 교육부의 정책보좌관으로 취임했다는 듯, 5일 전부터 여당 의원과 함께 뉴욕을 방문한 상태였다. - P64

"전라남도 무안의 승호라는 아이, 들어본 적 있어?"
성제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소현은 안경을 밀어 올리며 그렇게 물었다. 성제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천재 소년이야. 불과 열 살에 서울대에 수석으로 합격했어." - P65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각된 2004년 이후, 한국의 대학 입시에서는 철저한 방지 대책이 시행 중이다. 물론 빠져나갈길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열 살에 서울대학교에 수석 합격하는 것은 상식과 너무 동떨어졌기에 오히려 더욱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 P65

"좀 진지하게 들어!" 소현이 허벅지를 걷어찼다. "날짜를봐. 승호가 마법에 걸린 게 2월 24일. 그리고 아이오와의 방사장에서 침팬지 릴리가 탈출한 게 2월 25일. 바로 다음 날이지." - P66

"승호가 각성하기 나흘 전인 2월 20일. 한 남자의 연설이서구의 지도자들을 혼란에 빠뜨렸어."
어?
"아프리카의 사자, 가다이 대령 말이야. 라빌리 공화국의독재자. (후략)." - P67

"가다이는 이미 그 정체를 밝혔어. 그는 TV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지. 이 무기는 시대의 흐름을 바꿀 것이다."
소현은 허공에 ‘time‘이라고 적었다. - P68

소현은 바 테이블에 양 팔꿈치를 올리고 상반신을 앞으로내밀었다.
"라빌리군의 기술자들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겠지. 그들은 신무기 작동에 실패했다고 믿고 같은 조작을 반복했어.
그 결과 비슷한 시각에 같은 현상이 연이어 발생했어. (후략)." - P69

5

(전략).
"이번부터는 규칙을 바꾸겠다. 시험지를 회수하는 건 타이머가 울리고 나서야. 다 풀고 나서도 끝날 때까지 답안을 검토할 것"
선생님이 잠시 나를 쳐다보고는 곧바로 눈을 돌렸다.
책장에 머리를 부딪힌 그날, 나는 과학 시험지를 2분도 안되어 제출했다. 내 답안이 너무 빨랐기에 이래서는 체면이서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 P71

전어는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고는 몇 번이고 복도를 둘러본 후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료타, 너 진범에게 속은 것 같아." - P72

"내가 진범을 알아차리게 된 계기는 이거야."
전어는 주머니에서 유리 조각을 꺼내서 기쁜 듯 저녁노을에 비췄다.
"료타와 하늘신 공원에 갔을 때 번개 연못에서 주운 거야.
경찰 아저씨에게 귀가 찢어지도록 혼이 났지만, 어떻게든유리 조각을 들키지 않고 넘겼어." - P73

"나는 그날 다리 밑에서 잉어가 헤엄치는 걸 봤어. 사건이있던 밤, 연못이 얼었다면 잉어는 다 죽었을 거야."
"물 전체가 얼었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수면만 얼었던 거야. 우리가 빙어 낚시를 했던 시치로가타 호수에서처럼." - P74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우리가 사건 다음 날 공원에갔을 때, 이미 연못에 얼음은 없었어. 해가 뜨고 우리가 수업을 듣는 사이에 녹은 거지. 그럼 고드름은 어떨까?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니 이쪽도 꽤 녹아서 작아졌을 거야. (후략)." - P75

"료타의 추리는 잘못됐어. 이 사건에는 범인이 있어. 그 범인이 창문의 금이라는 가짜 단서를 남기고 숀이 자작극을벌인 것처럼 꾸민 거야.
그렇다고 해서 숀을 공격한 직후에 창문을 깬 건 아니야. (후략)." - P76

"손이 공격받았을 때 연못 물은 꽁꽁 얼어 있었어. 범인은얼음 위에 올라선 채 다리 밑에 숨어 있었어. (중략). 숀은 키가 작아. 머리 꼭대기는 어렵더라도 목덜미라면 키가 작은 나도 할 수 있었을 거야."
(중략).
전어는 이제 바보가 아니다. - P77

"이상하다는 생각에 풍뢰교 위에서 공원을 바라봤어. 그랬더니 바람 연못에 녹색 유리 조각이 흩뿌려져 있는 게 보이더라고. 전날에는 번개 연못에 있었던 병 조각이 바람 연못으로 이동한 거야." - P78

"왜 범인은 범행 다음 날 갑자기 생각을 바꿨을까. 마치 갑자기 머리가 좋아진 것처럼 말이야. 그것도 살짝 머리가 좋아진 수준이 아니야. 평범한 사람은 이렇게 복잡한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 고작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머리가 변할 수 있는 걸까?" - P79

당황한 듯 난간을 잡고 병원 주변을 둘러보았다.
"숀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범인은 다시 숀을 죽이려고 할지도 몰라. 철저하게 경비하지 않으면 위험해."
나는 눈을 감았다. 숨을 멈추고 주먹을 쥐었다.
명탐정이 여러 명 있는 것은 이상하다. 단 한 명이기에 명탐정은 명탐정이 될 수 있다. - P80

이것이 나의……………. - P80

학년 소식지 원고를 다 쓴 후, 구보 후키코는 안경을 벗고양어깨를 번갈아 주물렀다.
어느새 오후 9시가 지나 있었다. 젊은 교사가 자진해 교내순찰을 나간 탓인지 교무실은 완전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 P81

"혹시 최근에 5학년 3반에서 시험 본 적 있으세요?"
다라야마는 동요하지 않고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구보는5학년 수학을, 다라야마는 과학을 담당한다.
"시험은 안 봤는데."
다라야마의 책상에는 채점이 끝난 시험지가 쌓여 있었다. - P82

부정행위인가.
"전어지?"
머릿속에 떠오른 별명을 입에 올렸다. (중략).
다라야마는 할 말을 찾듯 허공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 반, 평소에는 평균 65점 정도거든요. 그런데..
도움을 구하듯 이쪽을 바라본다.
"오늘 시험, 전부 만점이었어요." - P83

1

‘참다운 신사는 자신의 결점을 고백한다.‘ 프랑스의 격언에 따르면, 침입자들은 틀림없는 신사였다.
2030년 6월 24일. (중략), 투루울 산기슭 평원에 살던투바족 사냥꾼 여덟 명이 이를 알지 못한 채 구조물에 접근했고, 그 직후 모습을 감췄다. - P87

. 이들은 구조 직후, 자신들을보호한 양국 군인에게 ‘고차원 생명체‘를 자처하는 뿔 달린 존재에게 붙잡혀 있었으며, 그들로부터 일곱가지 전언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후략). - P88

7월 3일, 고차원 생명체 비행선은 고도 1만 5천 미터까지상승하여 성층권을 지나 1구역의 중앙 부근에 위치한 몽골 허브드 주의 락타르 평원에 착륙했다. - P90

64명이 끌려간 지 32일이 지난 8월 4일. 다시 락타르 평원에 비행선이 착륙했고, 고차원 생명체 70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비행선 내에서 복제한 것으로 보이는 대량의PKM 기관총으로 1구역을 습격, 약 15시간 만에 3천300만명을 살해했다.  - P91

와플대학국방장관은 통합참모본부의 일원인 육해공군 장관, 우주군 작전부장, 해병대 종합사령관을 비롯해 기계공학자, 분석화학자, 소립자물리학자, 면역학자, 동물행동학자 들을 불러들여 특별국방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서는 고차원 생명체를 고트Goat, 고차원 생명체 비행선을 팬파이프라 명명하고, 그들이 7구역에 나타날 예정인 2031년 1월 16일까지 공격을 회피할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 P92

투바족의 전언에 따르면, 고트는 규칙에 대단히 얽매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비행선 착륙 지점에도 인류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닐까. - P93

더는 물러설 곳이 없게 된 6구역에서는 마지막 카드인 ‘헤르메스 계획‘이 감행되었다. 무대는 일본 이즈 반도. 여기에서는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에서 선발된 아시아계 성적 우수자 50명이 투입되었다.
그들의 무기는 ‘지성‘이었다. - P94

2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상사를 마주치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도 없다. 가령 인류 멸망이 눈앞에 다가왔다 해도 그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마터면 길거리 갱단을 치어 죽일 뻔했네."
옛 아메우라 경찰서장인 구스카미 신페이는 18년 전과 변함없이 세상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P96

"구스카미 씨야말로 용케 무사하셨네요. 일본인은 6구역과 7구역에서 전멸했다고 생각했는데요." - P97

"나는 지금 케냐 정부의 긴급안전보장팀에 속해 있네."
구스카미는 다시 한번 도키요의 안대를 바라본 후 한잔에 5랜드의 포도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직함은 그럴싸하지만 사실은 그저 어중이떠중이를 모아놓은 거야. 잘 알겠지만 우리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도 7구역에서 모두 목숨을 잃었어. (후략)." - P98

"그 사건 관계자 중 6구역의 공격을 피한 자가 한 명 더있네. 쓰노 기미코야."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쓰노 기미코는 그 사건의 주범이었다. 체포되고 3년 만에사형 판결이 확정되었다. (중략).
구스카미는 안대를 차지 않은 내 오른쪽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남아프리카를, 아니, 전 인류를 구할지도 몰라." - P99

‘기미코씨‘와 ‘다카시 씨‘에게 괴롭힘을 당해 아빠가 죽을것만 같다. (중략).
도키요는 반신반의했다. 소녀는 둘째치고 성인 남성인 아버지까지 누군가에게 감금당했다고 믿기는 어려웠다. 소녀가 어린아이다운 착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P101

"맞은편 공사 소음이 너무 심하죠? 밤에는 공사하지 말라고 해도 멈추지 않아서 다들 잠을 못자 힘들답니다."
기미코는 말을 쏟아냈다. 명백하게 화제를 돌리려는 듯 보였다. - P102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브라운관 TV, 녹슨 선풍기, 물때 낀 수조, 잡다한 물건을가득 쌓아놓은 방.
그곳에 한 남자가 있었다. - P103

도키요는 죽지 않았다.
의식을 되찾는 데 3일, 그리고 기억을 회복하는 데 2주 정도가 걸렸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장에서 발견된 탄환은 두 개였다. 하나는 창문을 관통해 바깥 화단에 박혔고, 다른 하나는창고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 P104

뒤쪽 도로에서 착암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탓에 이웃대부분은 파이프건의 발포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각선 맞은편 연립주택에 살던, 철거 작업자 청년만이 착암기와는 다른 울림을 깨닫고 창밖을 내다보았다고한다. - P105

"쓰노 기미코의 무기가 뭐라고 생각하나?"
윗입술에 묻은 포도주를 핥으며 구스카미는 말을 이었다.
"말이야. 기미코는 말로 상대의 방어벽을 허물고 마음을사로잡아 자기 뜻대로 조종하지. (중략). 사회 규범상 그녀는 악인이지만, 희귀한 능력의 소유자인 건 틀림없네." - P107

기미코의 무기는 말. 그것은 도키요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경찰에게 폐를 끼치는 나쁜 어른이 되지 말라고 애를 혼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죠."
사건이 발각되기 9개월 전, 알몸으로 물을 뒤집어쓴 아이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찾아간 도키요에게 그 여자는 그렇게 말했다. - P108

창문 밖에서 총성이 울렸다. 구스카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구스카미 씨는 9구역 샘플에 기미코를 끼워 넣으려는 건가요?"
"맞아. 조지 웰스의 외계인을 멸망시킨 세균처럼 말이야."
"그녀가 체포된 건 18년 전이에요. 이미 꽤 늙었을 텐데요?" - P109

전기가 없는 생활은 사람을 규칙적으로 만든다. - P110

만약 그때 이 커튼을 움켜쥐고 끌어내리지 않았다면, 후배경관이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고 도키요는 지금쯤 콘크리트와 함께 드럼통에 들어 있을 것이다.
아니, 아니다. 도키요는 커튼을 움켜쥐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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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사건

3월 1일 오후 7시경. 고테자키 시 우에베 정 4초메의 한 공원에 아동 3명이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 3명 모두 얼굴과 목에 자상을 입었으며 의식 불명 상태다. 우에베 정에서는 지난달에도 아동이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은 순찰을 강화한 상황이었다.

고테자키 신보 온라인(3/1 19:55) - P7

"겐이치 군은 고테자키 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이지요?"
"네."
"오늘 학교는?"
"휴교예요."
"겐이치 군은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 P9

"우리 반에는 명탐정이 있거든요." - P9

2011년 1월 10일, 북아프리카 라빌리 공화국의 항구도시 베르그지에서 경찰조직에 대한 항의 시위가 열렸다. (중략).
무장 경찰에 맞서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SNS에서 주목받으며 시위는 곧장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 P10

2월 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서방 각국 주도로 시민에 대한 라빌리 정부의 무력행사를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정부 자산 동결, 정부 고위 관료의 비자 발급 중지 등의 제재도 가해졌다. - P11

1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전어가 소풍비를 도난당한 것이다.

지난 겨울방학, 나는 명탐정이 되기로 결심했다. - P12

마치 지옥 같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붓토비맨을 보는 동안 이 나라에서는 범죄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고타쓰(일본의 난방 기구-옮긴이) 속으로 파고들었다.  - P13

아빠는 눈을 두 번 깜빡이더니 말했다.
"료타의 꿈이라면 웬만한 건 다 응원할 생각이지만, 경찰은 안 돼. 절대 허락 못 해."
한쪽 발로 서서 신발을 벗으며 아빠는 "세무서 직원도 마찬가지야"라고 덧붙였다. - P14

하지만 탐정의 길은 험난했다. 나는 곧장 벽에 부딪혔다.
아무리 기다려도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 요령이나 추리 팁은 어떤 책에 실려 있었지만, 사건을 만나는 방법은 적혀 있지 않았다. - P15

2월 사건은 발생했다.

"선생님, 이거 가져왔어요."
전어는 3단으로 접힌 납부 봉투를 펴더니 셀로판테이프를 떼면서 "소풍비예요"라고 말하며 교탁에 올려놓았다.
(중략).
"지금 장난치는 거냐?"
무뚝뚝하게 봉투를 집고는 안을 들여다본 다라야마 선생님이 봉투를 도로 내밀었다.
"(중략)
"저요?" 전어가 눈을 크게 떴다. "저는 장난 안 쳤는데요." - P16

이날의 버스비로 1월 중에 한 사람당 천 엔을 학교에 납부하기로 했다.
"내일까지 돈 안 가져오면 내년 수학여행 때 너만 교실에서 자습이다."
계속 돈을 가져오지 않는 전어를 보고 인내심이 바닥난다라야마 선생님이 어제 종례 시간에 그렇게 경고했다. - P17

내가 신경이 쓰인 것은 그 셀로판테이프였다.
(중략). 전어가 테이프를 뜯어낸 것은 거기에 진짜 돈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전어는 실제로 소풍비를봉투에 넣어두었다. - P18

"내가 소풍비를 훔친 범인을 찾아낼게."
나는 선언했다. 붓토비맨의 엔딩처럼 점퍼가 바람에 멋지게 나부꼈다. - P19

"그런데 오늘 아침에 지각하고 말았어. 원래는 조회 시간에 선생님께 내려고 했는데 늦어서 못 드렸지. 그래서 종례시간에 내게 된 거야."
조회 시간에 전어가 없었던 것은 나도 기억하고 있다. - P19

조회 시간을 알리는 음악이 끝난 후, 선생님이 야스의 책상에 지갑이 놓인 것을 보고 "딱히 필요도 없는데 학교에 돈가지고 오지 마" 하고 야스를 꾸짖었다. 야스는 불량 학생이다. - P20

"왜 지각했는데?"
"왜였지." 전어는 코 밑을 긁적이더니, "아, 맞다!" 하며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2센티미터 길이의 유리 조각을 꺼냈다. "이거 하수구에 떨어져 있던 걸 발견하고 주워왔어." - P20

"오늘 소풍비 가져온 거, 누군가한테 말했어?"
전어는 "흐음" 하고 이마를 찌푸리더니 말했다.
"케첩한테만 말한 것 같아." - P21

추리할 재료는 갖춰졌다. 이제 남은 일은 그것을 어떻게조합하는지다.
아버지는 "뭐 하는 거냐?" 하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고, 다라야마 선생님은 "멍 때리지 마" 하고 머리를 두드렸지만,
나는 추리를 멈추지 않았다. - P22

숀이 목에 건 이어폰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누군가가 전어의 봉투에서 돈을 빼갔다고 해도 그게 우리반 학생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순 없잖아?"
숀은 전학생이다. - P23

나는 이때다 싶어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반 아이들은 그날 전어가 소풍비를 가지고 왔다는사실을 몰랐어. 하지만 우리 반은 달라. 전날 종례 시간에 선생님이 내일은 꼭 소풍비를 가져오라고 전어에게 신신당부했어. 범인은 그걸 들었기에 다음 날 전어의 돈을 훔칠 수있었던 거야." - P24

"그럼 범인은 언제 전어의 소풍비를 훔쳤을까? 봉투를 꺼내는 것뿐 아니라 그걸 반바지 주머니에 되돌려놓을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해. 그런 절호의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어."
나는 교단에서 내려와 칠판 옆에 걸린 시간표를 가리켰다.
"2교시 체육 시간 전의 쉬는 시간." - P26

"그날 아침 조회 시간을 떠올려봐. 다라야마 선생님이야스를 혼냈지. 용건도 없는데 학교에 돈을 가지고 오지 말라고 말이야. 그때 선생님은 야스의 지갑에서 5천 엔짜리 지폐를 꺼내서 모두에게 보여줬어. 범인도 그걸 봤을 거야. 여기서 의문이 생기지. 범인은 탈의실에 있는 모든 남학생의 옷에서 물건을 훔칠 수 있었는데, 왜 야스의 5천  엔이 아니라 전어의 천 엔을 가져갔을까?" - P27

"이 봉투에는 접힌 자국이 세 개 생겨 있어. 종이를 3단으로 접었을 때 생기는 자국은 두 개야. 그런데 왜 이 봉투에는 접힌 자국이 하나 더 있을까?"
봉투를 바라보았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 P28

"잠깐만. 전어의 주머니에 구멍이 있는 걸 숀이 어떻게 알아?"
라부카가 큰 목소리로 물었다. - P29

"전어, 너 혹시 선생님께 소풍비를 가지고 오라는 소리를듣고 그날 밤 봉투에 천 엔 지폐를 넣은 채로 현관에 놓아둔거 아니야?"
전어는 몸을 기울이다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 그렇긴한데." - P30

"전어가 잠든 후, 아버지는 현관에서 봉투를 발견했을 거야. 그날 아버지에게 천 엔은 무척이나 큰돈이었겠지. 아버지는 봉투에서 천 엔을 빼낸 후, 전어가 눈치채지 못하게 학년 소식지를 대신 넣어둔 거야." - P31

2011년 2월 25일, 아이오와 영장류 연구센터의 제4관찰실에서 침팬지 두 마리가 탈출했다. - P31

그날은 조지 워싱턴 초등학교 학생 154명이 센터를 견학하는 날이었다. 침팬지 두 마리는 송전탑에서 전시동 입구를 내려다보며 아이들을 위협하는 행동을 보였다. - P32

이 사고는 조지 워싱턴 초등학교 학부모들을 분노케 했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장류 연구자들을 경악시켰다. (중략).
침팬지 탈출 사고는 드문 일이 아니다. - P32

침팬지 탈출에 대한 대책을 세울 때는 다른 종의 그것과는 수준이 다른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침팬지는 인간을관찰하고 출입 방법을 이해한 후 이를 실행에 옮기기 때문이다. - P33

 주임연구원 유성제가 리더를 맡은 안전관리팀이 설계,
개발한 것이 수치계산식 잠금 시스템CNL이었다.
직원은 방사장을 출입할 때 숫자 키패드로 비밀번호 다섯자리를 입력한다. 이 번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세 가지 변수-그날의 날씨W, 월M, 요일D-를 포함하는 2차 방정식으로 정해진다. - P34

유성제는 경악했다.
릴리는 단 한 번의 입력으로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마치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숫자의 개념조차 알지 못하는 릴리가 어떻게 자물쇠를 풀수 있었을까? - P35

2

내 비명소리에 잠에서 깼다.
(중략).
아주 이상한 꿈이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멈춘 걸까. 아니, 시간이 꽉응축된 것 같다. - P35

오늘은 2월 24일, 소풍비 도난사건으로부터 2주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명탐정이 되기로 결심한 지 어언 1년. 드디어 첫 사건을만났는데, 나는 그만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점찍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아마추어에게 잘못을 지적받고 사건 해결의 영광을 빼앗기기까지 했다. - P36

"선생님, 숀이 없어요!"
(중략). 다라야마 선생님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더니
"그 녀석은 결석이야"라며 출석부를 덮었다.
"도쿄로 돌아간 건 아니죠?"
라부카가 과장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순간 기분 좋은 상상을했다가 금세 그런 자신이 한심해졌다. - P37

틀림없다.
내 머리에 이상이 발생했다.
(중략).
머리를 부딪혀서 바보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걸까.
나는 30초 만에 모든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시험지를 교탁으로 가져갔다. - P38

종례 시간.
"숀은 어젯밤에 괴한에게 습격당했다."
급식 시간까지는 운동복 차림이던 다라야마 선생님이 의자에 걸쳐놓았던 재킷을 입고 말했다.
(중략).
"주, 주, 죽었나요?"
"시민병원에 입원했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모두가 선생님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 P39

전어는 요즘 신바람이 나 있었다. 반 친구들이 다들 갑자기 상냥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소풍비를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역시나 불쌍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몽당연필이나 입지 않는 옷을 전어에게 선물하거나, 급식을 만화에서처럼 푸짐하게 퍼주거나, 공원에서 조금이나마 놀이에 끼워주곤 했다. - P40

"숀을 때린 범인을 잡을 거야."
전어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불가능해. 료타는 소풍비를 훔쳐 간 범인도 알아내지 못했잖아.‘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 P41

3

(전략).
테이프를 넘어 공원에 들어서자 발밑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지면에 서리가 내려 있었다.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연못 주변의 돌을 따라 풍뢰교로 향했다.
"명탐정의 철칙, 그 첫 번째, 추리는 현장에서 시작된다.
현장을 구석구석 조사해야 해. 숀을 공격한 범인도 분명 단서를 남겼을 거야." - P42

다리를 지탱하는 나무 중 하나에 전선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중략).
그것은 숀의 이어폰이었다. 얻어맞고 쓰러질 때 다리에서떨어진 것이리라. - P44

그 이어폰의 정확한 모양은 잊어버렸지만 숀의 이어폰이완전히 다른 구조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P45

며칠 전 내가 공원에 왔을 때 저런 금은 없었다. 관리 창고앞에서 솔방울을 주운 덕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저 유리창을 깬 것은…………,
퐁당. 물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중략). 아무래도 반짝이는 것을 발견한 듯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연못 여기저기에 녹색 유리 조각이 가라앉아 있었다. - P46

명탐정의 철칙, 일곱 번째. 경찰은 적이 아니다. 친밀하고원만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런 일로 경찰관에게 미움받으면 안 된다.
"내일 보자!" - P47

다음 날, 2월 25일,
(중략).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졌나요?"
라부카가 둥글게 만 책받침을 움켜쥐었다.
"아니. 숀은 범인을 보지 못했다."
다라야마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 P47

야스가 스마트폰을 치우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머지 두 명도 고개를 들고 희미하게 심술궂은 미소를 보였다.
"뭐야, 탐정맨."
"이거랑 같은 이어폰 가지고 있지?" 나는 주머니에서 숀의 이어폰을 꺼냈다. "어떻게 쓰는지 좀 알려줘." - P49

"경찰은 숀을 공격한 범인을 찾지 못했어!"
이를 악물고 소리를 질렀다.
(중략).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야."
야스가 돌아보았다. 분노와 어이없음이 반쯤 섞인 이상한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진짜 미쳤어?"
"숀을 위해서야.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 P50

4

방과 후.
나는 다시 교탁 앞에 섰다.
"숀을 공격한 범인을 알아냈어."
모두가 나를 보고는 곧장 눈을 돌렸다. ‘아직도 그런 말을하는 거야?‘, ‘쳐다보는 내가 다 부끄럽다. 대부분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 P51

"즉, 이런 뜻이야?" 겐이치가 콩가를 두드리듯 책가방을두드렸다. "숀이 거짓말한 거구나." - P53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마리코가 공기를 뒤섞는 듯한 제스처를 했다. "숀이 쓰러졌을 때, 이어폰은 강에 떨어졌어. 이윽고 경찰이 손을 발견했어. 경찰은 다리 주변을 살피다가 강에 떨어져 있던 이어폰을 찾았어. 그리고 그걸 주워서 나무에 걸어뒀어. 코드에 피가 묻어 있지 않은 건 한번 강에 떨어져서 피가 씻겨나갔기 때문이야."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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