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머 교수가 나를 그다음 주 토요일 밤 자택에서 열리는 만찬에 초대했는데, 이유는 클로드가 곧 워싱턴에 돌아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중략). 교수의 동성애에 대해서는 내가 1963년에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에 클로드가 얘기해 주었는데, 그는 이유를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놀라기를 바라지 않았을 뿐이야. 그때껏동성애자와 알고 지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동성애자가서양의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내 말은, 동양에는 겉으로는 동성애자들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중략). 어쩌면 교수를 에워싼 문학 작품들이 향수를불러일으켰는지,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조용한 미국인에 관한 자네의 졸업 논문을 기억해 지금껏 내가 읽어본 최고의학부생 졸업 논문 중 하나였지. 내가 점잔을 빼며 미소를 띠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이, 클로드는 소파의 내 옆자리에 앉아 코웃음을쳤습니다. 난 그 책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 



*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1950년대 인도차이나전쟁과 베트남을 배경으로정치적 이념과 체제 앞에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해지고 비인간화되는가를 그렸다. - P179

아니, 그렇지 않아. 결과적으로 그 실수를 저지른 덕분에 오늘날의 내가 될 수 있었어.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교수님?
그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네가 나를 거듭난 미국인이라고 불러도 될 거라고 생각해. 모순이기는 하지만, 만일 지난 수십 년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었다면, 자유의 수호에는 오직 미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거야. - P181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여러 모순을 초래하며 결국 무너질 것이라고 믿지만, 인간이 행동을 취할 경우에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모순은 자본주의의 특징은 아니었습니다.  - P182

이튿날 저녁 나는 소령을 염탐하기 시작했습니다. - P183

정해진 대로 무절제한 소령과 만남을 갖기 직전 토요일에, 본과 나는 차를 몰고 차이나타운으로 갔습니다. 접이식 테이블에서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는 오프브로드웨이의 어느 뒷골목에서우리는 정품이 아님을 보증하는 가격에 UCLA 대학의 스웨트 셔츠와 야구 모자들을 샀습니다.  - P185

. 우리 그레이리스트*의 맨 위에서부터블랙리스트의 맨 아래까지 모든 심사를 통과했던 어느 베트콩 혐의자가 체포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우리가 묵살하기에는 이미 충분히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베트콩이라고 밀고한 상태였습니다. 아니, 소령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 그레이리스트(gray list)는 혐의자 혹은 감시대상자 명단이라는 점에서는 블랙리스트와 유사하지만, 혐의 대상에 오른 사람을 특정 활동에서실제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은 채 혐의를 계속 두며 예의 주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P186

베트콩이라고요? 그 남자가 허공에 손을 흔들며 울부짖었습니다. 말도 안 돼요! 난 사업가라고요! - P187

소령이 내 몫이 든 봉투를 건네주면서 쾌활하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1년치 봉급과 맞먹었지만, 요모조모 따져 보면 실제로 1년 동안 먹고살기에 충분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거절하면 의심을 살 판이라. 나는 그것을 받았습니다. - P188

이튿날 저녁 7시 30분쯤 우리는 UCLA 대학 스웨트 셔츠와 모자를 착용한 채 주유소 아래쪽 길거리에 차를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우리를 주목한다 하더라도, 일이 잘만 되면 그저 UCLA학생들을 기억하게 될 터였습니다. - P189

나는 유감스러운 듯이 웅얼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을 뿐 해줄말이 없었습니다. 거세는 입에 담기도 두려운 소리니까요. 우리는 차 두 대가 휘발유를 넣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내가 무절제한 소령을 위해 베풀 수 있는 단 한 가지 친절이 있었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난 그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면 해.
그는 무슨 일이 닥쳤는지도 모를 거야. - P190

본은 양말을 신은 두 발로 좁은 길에 가장 가까운 차 두 대사이의 자리로 걸어간 다음 꿇어앉은 채 머리를 창문 밑에 두었습니다.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습니다. 8시 7분. 나는 겉에 노란색 행복한 얼굴 캐릭터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인쇄된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폭죽과 오렌지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 P192

그게 뭐야? 그가 내 쪽으로 절반쯤 다가왔습니다.
독립기념일 선물요. 소령이 지나치는 중인 차 뒤에서 본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나는 소령을 계속 응시했습니다. 3피트가 채 안 남았을때 그가 말했습니다. 독립기념일에도 선물을 하나? - P193

호밀 위스키 한 잔을 건넬 때 본의 한쪽 손에 난 붉은 흉터를 보았습니다. 본이 말했습니다. 소령을 위하여. 호밀 위스키의 고약한 맛이 너무 끔찍해서 우리는 그 맛을 씻어 내려고 한 잔 더. 그러고 나서또 한 잔 더, 더, 더, 계속 더 마셨고, 그러는 동안 줄곧 건국기념일을 축하하는 텔레비전 특집 방송을 지켜보았습니다.  - P195

7장


소령의 죽음에 몹시 괴로웠음을 자백합니다. 소장님. 그게 소장님께는 별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요.  - P196

내가 대성당의 습한 기후 속에서 몸서리를 치는 사이 미망인들은 기도문을 웅얼거렸습니다. 영광이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일부의 인식과는 달리 혁명 이념은 심지어 열대 국가에서도 뜨겁지 않습니다. 차갑고, 인공적입니다. - P197

 비참한 시기였다면 나는 한 자리 얻을 만한 자격도 없었겠지만, 이때는 우리가 미국으로 망명한 지도 1년이 넘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호경기가 다시 찾아와 있었습니다. - P198

 장군은 연회 초반 감동, 눈물, 술을 부추기는 연설을 하면서 그를칭찬했습니다. 모든 참전 용사들이 가세해 자신들에게 영웅적 자질이 없다는 불편한 사실을 가리느라 느닷없이 한바탕 입심 좋게 허풍을 떨며 그 영웅을 위해 축배를 들었습니다. - P199

(전략). 이성애자로 공인된 은행가들과 군인들이 그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바치며 가수가 유별나게 딱붙는 새틴 바지를 입고서 보여 주는 희롱하듯 노골적인 골반 놀림 하나하나에 소리 높여 찬동의 뜻을 표했습니다. - P199

흔히 결혼식으로 인해 학대는 더 심해졌습니다. 그런 학대는 행복하고 순결한 신부와 신랑의 모습으로 인해 더 심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들의 결혼은 불화, 불륜, 불행, 이혼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또한 애정, 정절, 자녀, 만족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 P201

1973년과 1974년 여름에 집으로 돌아와 있는 동안 그녀는 청나팔바지를 입고 깃털 머리를 하고 블라우스를 불룩한 가슴 위로 트램펄린처럼 팽팽하게 당겨 입고 평범한 키에 몇 인치를 더해 주는 나막신을 신은 이방인으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 P203

이제 나는 알았습니다. 이제 이유를 알았습니다. 무대 위의 이라나는 내가 기억하는 란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 P204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클라크 게이블이 무대로 나가더니 뜻밖의 손님, 1962년부터 1964년까지 그린베레로서 우리 나라에서 복무했고 우리가 어느새 자리 잡고 있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하원의원이 왔다고 알렸습니다. 하원의원은 훌륭한 군대 경력이 오렌지카운티에서 많은 도움이 된 덕분에,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 P206

 우리는 무언가 다른 피부색, 그것도 특히 미국인의 지갑을 소매치기하는 한심하고 작은 황인종들의 피부색을 포용할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는 음과 양의 이원대립적이고 인종적인 정치관을 지닌, 백인과 흑인으로 구성된 미국의 존엄성과 좌우 대칭식의 균형미를 위협했습니다. - P207

여러분은 제가 누구 얘길 하는지 아실 겁니다. 민주당 지지자들. 대중 매체, 반전 운동. 히피들, 대학생들, 급진주의자들. 미국은내분으로 인해, 우리의 대학들과 뉴스 편집실 및 보도국들과 우리 의회에 들끓는 패배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과 반역자들로 인해 약화되었습니다. 슬프게도, 여러분은 그들에게는 그저 그들 자신의 비겁함과 배신을 상기시킬 따름입니다. - P209

모든 청중이 연설 내내 미친 듯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 P210

국가 제창이 끝나자 지지자들이 무대 위의 하원의원에게 떼 지어몰려든 반면, 나머지 청중들은 성교 후에 의기양양해하듯이 각자의 자리에 털썩 앉았습니다. 나는 돌아섰다가 손에 메모장과 펜을 든채 미즈 모리 옆에 서 있는 소니를 발견했습니다. - P211

전형적인 백인 남성의 행동이에요. 미즈 모리가 말했습니다. 백인 남성이 어떤 아시아 언어의 단어 몇 개만 배우면 우리가 냉큼 거기에 만족한다는 걸 눈치챈 적이 있나요? 물 한 잔을 요청할 줄 알면 우리는 그를 마치 아인슈타인 대하듯 할 거예요. - P211

자네가 바로 그런 부류야, 그렇지? 소니의 눈은 선팅된 자동차 창문만큼이나 불투명했습니다. (중략). 그래서 너는저 하원의원을 어떻게 생각하는데?
내 말을 인용할 건가?
자네는 익명의 제보자가 될 거야. - P212

그다음 주말에 나는 예의 하원의원의 잠재력에 대한 내 생각을 가다듬을 기회를 추가로 제공 받았습니다. - P212

(전략). 미국 생활에서 제일 나쁜 점은 ‘타락‘이에요. 본국에서는우리도 그걸 술집과 나이트클럽과 기지 안에 억눌러 놓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우리 아이들을 미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음탕함‘과 ‘천박함‘과 ‘저속함‘에서 보호할 수가 없을 거예요. - P214

(전략).
하원의원이 말했습니다. 모든 체제에는 내부적으로 억제해야만 하는 도를 넘는 행위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우리는 히피들에게 사랑‘과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도용하게 내버려뒀다가 이제야 겨우 반격하기 시작했을 뿐이에요. 그 싸움은 가정에서 시작되고 또 끝나지요. - P215

장군이 말했습니다. 의원님이 바로 정부 아닌가요?
아무렴요! 그게 바로 내가 영화와 음악을 규제하는 입법에 우선적으로 앞장서는 이유랍니다. 이건 검열이 아니라 아주 강력한 충고일뿐이지요. 하지만 할리우드와 음악계 사람들은 나를 만나고 나서야다시 말해, 내가 그들의 창작물을 포식하려고 나선 사람 잡아먹는괴물 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나를 좋아하게 될 게 틀림없어요.  - P216

어떤 남자들은 흰색 아오자이를 입은 저 청순한 여학생들을 더 좋아했지만 나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거부한 우리 문화의 목가적이고 순수한 이상에 속해 있었고, 나한테서는 내 아버지 고국의 눈덮인 산봉우리들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 P218

(전략), 나는 흰색이 단순히 순수나 순결과 관련된 색상만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애도와 죽음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 P219

8장


낮에는 우리가 주인이지만, 밤에는 ‘찰리*가 주인이야. 절대 그걸 잊지 마라.


* 미군이 공산국가의 군대, 그중에서도 특히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과 북베트남인들을 지칭할 때 사용한 은어. - P220

(전략).
하여튼, 이것이 감독의 개인 비서가 우편으로 보낸 영화 대본에 대한 내 해석이었는데, 다소 두꺼운 마닐라 봉투에는 내 이름의 철자가 아름다운 필기체로 잘못 쓰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있을 거라는첫째 조짐이었고, 둘째 조짐은 개인 비서인 바이얼럿이 우편물 발송주소를 묻고 할리우드 힐스의 감독 집에서 있을 면담을 주선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첫 인사말이나 작별 인사말을 하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 P222

나는 처음부터 외국인으로 지정돼 있었고, 따라서 손님 대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운전면허증, 사회보장카드, 외국인 체류허가증을 지닌 정식 미국인인데도 불구하고 바이얼럿은 여전히 나를 외국인으로 여겼고,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내 자신감이라는 매끄러운 피부를 찔러 상처를 냈습니다. - P223

내 영어가 나무랄 데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 P224

(전략). 한편으로는, 나는 유명한 ‘작가주의 영화 감독‘과 면담을 하기 위해 앉아 있었고, 그 순간에는 한때 토요일오후마다 극장에서 대낮에 상영하는 영화를 보는 더없는 기쁨을 누린 다음 약간 얼떨떨한 채로 눈을 깜박거리면서 병원 분만실의 형광등만큼이나 밝게 빛나는 햇빛 속으로 들어가던, 흔해빠진 사랑에 번민하는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 P225

(전략). O자 하나는 반쯤 쓰러졌고, 나머지 O자는완전히 쓰러졌지요. 단어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어요. 그래서 뭐 의미는 여전히 파악할 수 있는데. 고마워, 바이얼릿, 건배. 

* 1970년대 후반 할리우드 표지판은 이런 상태 때문에 기부금을 통해 재정비했다. - P228

(전략). 나는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영어를 제2언어로 구사하는 사람으로서 마치 나와는 다른 나라 출신의 외국인이 영어로 말하는 걸 귀 기울여 듣는 중인 것 같았습니다. - P229

제가 정확하게 기억한다면, 26, 42, 58, 77, 91, 103, 118페이지, 즉 기본적으로 우리 나라 사람들 중 하나가 대사를 말하는 모든 대목에서, 남자또는 여자가 비명을 지릅니다.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비명소리만. 그러니 당신은 최소한 비명소리들이라도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비명소리는 보편적이지. 내 말 맞지, 바이얼릿. - P230

바이얼릿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니 당신 대본에서 그저 그것을 지적하기만 하겠습니다. 당신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비명을 지르게 합니다. 으아아아아!!! (중략). 하지만 수많은 내 동포들이 고통스럽게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어보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은 그들이 비명을 지르는 방식이 아님을 당신에게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비명을 지르는지 들어 보겠습니까? - P231

 영화감독, 바이얼릿 그리고 나의 만남은, 내가 영화 촬영 배경인 베트남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말하는 대목이없다는 것은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체로 조금 더 차분한 방식으로 얼마 동안 더 지속되었습니다. - P233

(전략), 조금 더 실감 나고, 조금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 영화 대본에서처럼 마을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 장면으로 곧장 바꾸는 대신에요.  - P233

그가 왜 그렇게 무례하게 굴었을까요? 부인이 말했습니다. 당신한테 몇 가지 의견을 달라고 요청한 쪽은 그 사람 아니었나요?
그는 예스맨을 찾고 있는 거였어요. 제가 자신에게 고무로 된 승인도장을 찍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 P234

감독이 말했습니다. 비밀 하나 알려 드리지 준비됐나. 자, 이거요. 그딴 건 아무도 관심 없어.
그는 내가 침묵하자 즐거워했습니다. - P235

. 나는 순진하게도 내가 할리우드라는 유기적인 조직이 전세계 관객들을 대상으로 대뇌 전두엽 백질 절제 수술과 소매치기를 동시에 해치우겠다는 목표를 바꾸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겁니다. - P236

나는 실패했고, 작가주의 영화감독은 『더 햄릿』을 자기 의도대로 만들 터였습니다. 내 동포들은 그저 착한 황인종들을 나쁜 황인종들로부터 지키는 백인 남자들에 관한 서사시적 작품의 소재 역할만 하는 채로 말입니다.  - P236

(전략). 부인의 쌀국수는 따스했던 어머니의 부엌을 떠올리게 했지만, 십중팔구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만큼 따뜻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중략).
내가 말했습니다. 맛있군요. 여러 해 동안 이런 걸 먹어 보지 못했습니다.
놀랍지 않아? 나는 아내에게 이런 재능이 있을 거라고는 짐작도못했어. - P2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초의 아이디어와 합리적 재구성

과학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과학자의 탁월함에 놀라게 된다. 과학자들은 선행 연구를 검토하는 능력이 남다르다. 기존 연구의 문제점을 기막히게 찾아낸 후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가설을 도출해낸다. - P185

사실 실험실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훨씬 어수선하고 임기응변이며 뒤죽박죽이다. 예상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제야 중요한 참고 문헌이 눈에 띄어 새롭게 가설을 다듬게 된다. - P185

196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피터 메더워 Peter Medawar가1963년 ‘과학 논문은 사기일까? Is the scientific paper a fraud?‘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까닭이 이해된다.²³ 그만큼이나 실제 연구 과정과 논문 사이에 큰 간극이 있으니 말이다. - P185

23 Medawar P. Is the scientific paper a fraud? Listener. (1963) 70, 377-378; Howitt &Wilson. Revisiting "Is the scientific paper a fraud?" EMBO Rep. (2014) 15, 481-484;Calver N. Sir Peter Medawar: science, creativity and the popularization of KarlPopper. Notes Rec R Soc Lond. (2013) 67, 301-314 - P196

한편 가설의 구성 요건은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P186

가설을 성공적으로 도출하기 위해서는 완급 조절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단 하나의 연구 논문으로 가설을 완벽하게 증명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²⁵ 또한 과학 지식은 종교적 교리와 달리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 P186

25 논문 하나만으로는 연구의 완성도를 높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대다수의 과학자는 자신이 풀고 싶은 문제를 두고 장기간에 걸쳐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편의 논문을 순차적으로 발표하면서 완성도를 높여 나간다. - P196

발견에 법칙이 있을까

최초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오르게 되는 것일까? 과학자가 되려면 발견의 법칙이나 논리라는 것을 따로 익혀야 하는 것일까? - P187

실제 논문을 검토하거나 실험에 몰두하다가 느닷없이 "이럴수 있겠는데?" "이러지 않을까?" "이러면 말이 되는데?"라는 생각이 번뜩 들 때가 있다. (중략). 이는 어림짐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휴리스틱 heuristic으로서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초기단계에 귀추법abduction이 작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²⁷ - P187

27 귀추법은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간단하고 그럴듯한 최선의 설명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의생명과학 분야의 실험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https://plato.
stanford.edu/entries/abduction/ - P196

아이디어 전개에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글쓰기의 중요성이다. 생각을 말(음성 언어)에 대응시키는 것도 쉽지않지만 글(문자 언어)에 대응시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 P188

어쨌거나 뜻밖의 발견 사례, 즉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또 다른 시사점을 던진다.²⁸ (중략). 특정 순간을 잘 포착해 자신의 연구와 결부시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 P189

28 Meyers MA. Glen W. Hartman Lecture. Science, creativity, and serendipity. AJRAm J Roentgenol. (1995) 165, 755-764; Ban TA. The role of serendipity in drugdiscovery. Dialogues Clin Neurosci. (2006) 8, 335-344; Silver S. The prehistory ofserendipity from Bacon to Walpole, Isis. (2015) 106, 235-256 - P198

과학적 발견의 감수성

과학적 발견에 감수성이 중요하다면 ‘뜻밖의 발견‘이란 말은 수사적 표현에 불과한 것일까? 어떻게 해야 발견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과학적 감수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중략). 이러한 점은 예술과 달리 과학에서는늘 우선권 경쟁이 일어난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²⁹ - P189

29 Vale & Hyman. Priority of discovery in the life sciences. eLife. (2016) 5, e16931;Fang & Casadevall. Competitive science is competition ruining science? InfectImmun. (2015) 83, 1229-1233; Davis BD. The scientist‘s world. Microbiol Mol BiolRev. (2000) 64, 1-12 - P1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지만 내게 선택의 여지가 있나? 나는 뜨거운 물줄기를 맞고 서서 그때 일을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려본다. 상황은 냉혹하고 실재적이고 무자비하다. 돈은 바닥났고, 마저리와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 빨리 취직을 해야 한다. - P33

나와 사정이 비슷한 이들이 많다. 가장 먼저 나를 뽑아줄 회사가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중략).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넘쳐나고 일자리는 너무 적다. - P33

나는 샤워를 마치고 옷을 챙겨 입은 후 다시 사무실로 들어간다. 나는명단을 훑기 시작한다. 같은 주에서 며칠 간격으로 두 사람을 죽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당국에게 패턴을 읽히면 곤란하다.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없다. - P34

4

원래 컴퓨터는 가족 공용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빌리 전용이 돼버렸다. 이제 컴퓨터는 녀석의 방 한구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1994년, 나는가족에게 컴퓨터를 선물했었다.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기 1년 전, 경제적으로 안정권에 들어 있었을 때, 그때는 지출이 많았다. - P35

찰스 디킨스는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이렇게 말했다. "1년 소득이 20파운드, 1년 지출이 19파운드 6펜스면 행복한 사람이다. 1년 소득이 20파운드, 1년 지출이 20파운드 6펜스면 불행한 사람이다." 그는 1년 소득이 제로까지 떨어지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하긴 그런걸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있겠나? - P35

나는 컴퓨터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체와 크기로 회사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가 적힌 그럴 듯한 용지를 만들었다. (내 계획의 첫 번째 단계는 집에서 3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마을에 사서함을 빌려놓는 것이었다.)

B. D. 산업 용지
사서함 2900
와일드베리, 코네티컷 06899 - P36

그런 다음, 나는 페이퍼맨의 안내 광고 담당 부서로 전화를 걸었다. (중략). 그들은 45달러를 받고3개월간 광고를 실어주기로 했다. 외지 인력을 끌어다 써본 경험이 적은소규모 공장이라고 설명하자 잡지사의 직원은 회사 수표 대신 우편환으로 지불해도 된다고 했다. - P37

내 광고는 2월 마지막 주에 발행된 3월 호에 실렸다. 3월 첫 번째 월요일까지 총 97명이 사서함 2900번으로 이력서를 보내왔다.
"뒤에 0을 몇 개 붙이니 우편물이 쏟아지네요."
우체국 직원이 말했다. 우리는 그 말에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업계자들에 관한 업계지를 만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 P37

"행운을 빌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고,
"요즘엔 직접 사업에 뛰어드는사람이 많아졌더군요. 그거 못 느꼈나요?"
나 역시 느꼈다고 대답했다.
우편물의 양은 나날이 줄어갔다. 하지만 이후로도 『페이퍼맨』의 새 이슈가 발행된 직후에는 예외 없이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내 광고가 실린 5월 호는 무려 231명으로부터 이력서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 P38

기술자들은 빈손으로 돌아오게 됐죠. 멍한 기분으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아남고, 성공하는 데 반드시 알아야할 한 가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이겁니다. 아무도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다는 것. 아무도 우리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는것 일자리와 봉급과 중산층의 멋진 삶은 권리가 아닌, 싸워서 쟁취해야하는 전리품입니다.  - P39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하죠.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는 거야.‘ 당신은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 P39

내가 받아 본 이력서들 중 4분의 1에서 그런 거만함과 짜증이 묻어났다. 하지만 대부분 이력서의 문제점은 그보다 훨씬 단순하다. 그들의 목표가 잘못된 것이다. - P40

5

내가 결정권자라면 나보다는 그를 채용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화학공학 학사 학위의 위력이다.
또한 그는 자기 확신에 차 있다. 한 직장에서 25년간 근무했다는 건 그가 능력 있고, 헌신적인 직원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가 몸담았던 회사는 사악하고, 신의 없는 곳이라는 게 확인된 셈이고) - P42

마저리는 두 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그중 한 곳에 나가야 한다. (중략). 아내가 실질적으로 집에 가져오는 돈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아내는 집을 나와무언가를 한다는 자체가 좋은 모양이다. 아내 덕분에 항상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기는 하다. - P43

(지난주 에벌리를 그렇게 남겨둔 채 현장을 떠나온 후로 지금껏 아무소식도 접하지 못했다. 궁금해 미치겠지만 섣불리 알려고 나서다가는 위험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 실릴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즐겨보는 지역 주간지 『저널』은 폴 시티까지 배달되지 않는다. 우리 집케이블 서비스에는 지역 뉴스가 포함돼 있지 않다. 하지만 왠지 에벌리 사건姿이 텔레비전 뉴스에서 다뤄졌을 것 같지는 않다.) - P44

릭스의 집 옆으로는 텅 빈 벌판이 펼쳐져 있다. 관목과 키 작은 소나무로 덮인 벌판에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으로 ‘매물‘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하나서 있다. 누군가가 검은색 매직펜으로 적어놓은 전화번호도 보인다. - P45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허기도 달래야 하고, 6시까지 마저리도 태우러가야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 것 같다. 이렇게 하루를 날려버린 것이다.
이런 날이 반복되면 곤란하다. (중략).
이젠 어쩌지? 공교롭게도 내일 나는 올버니에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
포장지와 라벨 제조회사로, 통조림에 두르는 라벨을 주로 생산하는 곳이다. 큰 기대는 걸고 있지 않다. 라벨은 내 전문이 아니다. - P47

6

수북이 쌓인 이력서들을 처음으로 훑던 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기분 좋은 권력을 즐겼던 것 같다. - P49

하지만 그 도취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내게는 수많은 질문들만 남겨졌다. (중략). 나보다 조금씩 나은 이들의 이력서들을 보고 있노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중략). 게다가 이게 다 몇 명이야? 제공되는 자리는 몇 개 안 되는데. - P49

자살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들 중 몇몇은 자살 충동에 휩싸여본 적이 있을 것이고, 그중 누군가는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15년전에 시작됐다. 항공 교통 관제관들이 집단으로 정리해고됐을 때, 그 그룹의 자살률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지금 우리보다 훨씬 더 외로움을 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50

문제의 『펄프』 기사는 뉴욕 주 아카디아라는 마을에 자리한 공장에서 쓰고 있는 획기적인 공정에 관한 것이었다. - P51

업튼 ‘레이프‘ 팰런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또 읽어봐도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내가 충분히 차지할 수 있는 자리였다. - P52

필요하다면 그를 죽여야 했다. - P52

과연 내가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당방위일 수도 있다. 내 가족, 내 인생, 내 대부금, 내 미래, 나 자신, 내 삶을 살리는 일이니까. 명백한 정당방위다.  - P53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하루에도 사건은 숱하게 발생한다. 나라고 못할 거 있나? 게다가 내게는 걸려 있는것도 많잖아. 무엇보다도 내 인생. 그보다 더 절박한 게 또 있나? - P54

물론 나는 그보다 나은 자격을 갖추고 있다. 우리 둘만의 경쟁이라면그 자리는 당연히 내 차지가 될 것이다. (중략).
또 다른 누군가가 내 자리를 노릴지 모른다. - P54

그렇게 뒤척이다가 세 시간 만에 깨어난 내게 서늘한 의식이 찾아들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 P55

7


(전략).
면접. 물론 이번에도 나는 일자리를 잡는 데 실패했다. 통조림 라벨에대해 익히게 될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롱홈으로 향한다.
나는 채용되지 않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고, (후략). - P56

나는 요란스럽게 친분을 과시하는 타입도 아니고, 겉치레로 친절을 베푸는 타입도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일즈맨 시절나는 수많은 새로운 농담들을 배워 달달 외운 후 고객들에게 적절히 써먹었다. 오후의 전화 상담을 앞두고는 긴장을 풀기 위해 보드카를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그러니 술에 절어 지내는 날이 많았을 수밖에. - P57

내게 충분한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과거에 공들여 닦아놓은세일즈의 기술은 보나마나 사라졌거나 많이 녹슬었을 것이다. (중략).
또다시 그 유치한 농담을 외워뒀다가 면접관들에게 써먹어야 하나? (후략). - P57

내게도 딱 한 번 기회가 올 것이다. 업튼 레이프 팰런이 불운하게 세상을 떠난 후 아카디아 프로세싱의 면접관에게 그간 익혀온 농담들을 신나게 풀어놓을 것이다. (중략).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기필코 나를 팔아치우고말 것이다. - P58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뒤로 차 한 대가 바짝 다가와 멈춰 선다. 백미러에 눈에 익은 회색 차가 큼직하게 떠오른다. (중략).
월요일에 나를 노려보고 지나쳐 갔던 바로 그 여자다. 럭스 부인! 어떻게 된 일이지? 독심술사인가? - P59

그녀가 내 말을 막고 빽 소리친다.
"내가 당신 아내를 찾아갈 수도 있다는 걸 몰라요? 주니가 뭐라 하든간에 말이에요. 당신은 자존심도 없어요? 왜, 왜, 왜 그 앨 내버려두지 않는 거죠?"
"난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당신이 그 애 아버질 죽이고 있다고요!" - P60

나는 몸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감독 생활만 16년을 했던 사람이다. 그 기간 동안 내가 몸을 움직여 한 일이라고는 책상에 앉고, 현장을 슬슬 둘러보고, 차를 몰고 출퇴근한 것뿐이었다. 실직 후에는 더욱 움직일 일이 없어졌다. - P61

온몸이 덜덜 떨린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갑자기 오싹해진다. 더 이상쥐고 있을 수 없는 루거를 스포츠 재킷 안주머니에 쑤셔 넣고 왼쪽 팔뚝으로 잘 덮은 채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차들이 분주히 지나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천 명의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 아니면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지 알길이 없다. - P63

끔찍하다. 정말로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내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나? 그녀가 내 레인코트를 걷어내는 순간부터 내가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이 있었나?
대체 나는 여기서 무엇을 시작한 걸까?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 P64

8

할 일은 정해졌다. 잠 못 이루는 절망의 밤을 보낸 후 나는 세 차례에 걸쳐 이력서를 다시 훑었다. 이번에는 보다 냉혹하고, 비판적이고 현실적이 돼보기로 했다. - P65

나는 처음부터 내 계획의 아이러니를 깨닫고 이 일을 시작했다. 그들, 여섯 명의 관리 전문가들, 허버트 콜먼 에벌리와 에드워드 조지 릭스와 나머지 후보들은 내적이 아니었다. 업튼 레이프 팰런 역시 내 적이 아니었다. 내 적은 기업가들이다. 내 적은 주주들이다. - P65

주주들의 관심이 오로지 투자 수익에만 묶여 있으니 회사에 별 애착이 없는 임원들만신이 날 수밖에. (요즘에는 여성 임원의 수도 부쩍 는 것 같은데) 그런 이유로, 작업 현장은 점점 더 척박해져가는 것이고, 그들은 회사나 스태프나 제품이나 고객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다. - P66

민주주의의 밑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 P66

. 그런 이유로 항상 흑자를 내고 주주들에게 두둑한 배당액을 보장하는 우량 기업들이 한 푼의 이윤이라도 더 뽑아내기 위해, 그래서 임원들의 백만 달러, 천만 달러, 2천만 달러짜리 보상 패키지를 보장하기 위해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한다. - P66

9

예상대로 릭스 부부 살인 사건은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도됐다. 아무래도 허버트 에벌리 때보다는 훨씬 극적인 부분이 있었으니 그들을 살해한지 아홉 시간이 흘렀다. - P67

하지만 느낌이 이상하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 그녀가 사용하는 표현들, 이를테면 ‘잔인한‘, ‘야만적인‘, ‘무정한‘ 같은 표현들이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중략).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용의자를 붙잡았다는 사실이다! - P68

뉴스가 끝이 난 후, 저녁을 먹기 전, 마저리가 주방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늘 그랬듯 내 사무실로 향한다. 다음 표적을 선택할 시간이다. 이제 네명 남았다. 그리고 팰런・・・・・・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캐비닛 서랍을 열고 이력서가 담긴 폴더를 꺼낼 정신도 없다. 이유 모를 실의가 나를 짓누르고있다. - P69

제지 업계가 마지막으로 대량 인력 삭감을 단행했던 건 2년 전이었다. 나도 그때 해고됐고, 내게 이력서를 보내온 이들 대부분도 비슷한 시기에 해고를 당했다. - P70

하지만 인원 삭감은 주기적인 것이고 언젠가는 되돌아올 일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빨리 경쟁자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팰런을 없애지 못하면, 그 자리를 내 것으로 확실히 만들어놓지 못하면 머지않아 이보다 몇 배 많은 이력서들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 P70

10


이 모든 게 시작되기 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된 후로도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후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충분히 생각을 해봤고, 철저히 계획을 세웠고, 꼼꼼히 준비를 마쳤지만 백 퍼센트 확신이 들지 않았다. - P72

웨이트리스가 나와 유리창 사이로 들어와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저쪽에 앉았던 친구 말입니다. 혹시 레이프 팰런 아니었습니까?"
"오 맞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았습니다. 몇 년 전에 만났었죠. 그런데 오늘 보니 잘 모르겠더군요. 뭐 아무튼, 지금 괜찮으면 여기 계산좀 해주세요."
나는 말했다. - P75

11

루링어가 자살했다! 누가 이런 일을 예상이나 했을까? - P76

뉴스를 아무리 유심히 보고 들어도 루 링어가 죽었다고 안타까워하는 이는 없는 것 같다. 모두들 결국 이렇게 종결된 것을 무척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깔끔한 수습이니까.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으니까. 그는 정부의 부모인 럭스 부부를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증명 끝. - P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의 일부 젠더 이론가들은 이러한 암묵적 규칙을 남성의 행동방식을 제한한다는 의미로 ‘맨박스‘Man Box 라고 지칭한다. - P54

사회과학 문헌을 꼼꼼히 뒤져보면 심리학자들이 ‘자아해석‘self-construals 이라 부르는 주제에 대해 쓴 수십년간의 논문들을 발견할수 있다.¹¹ - P54

11 이 점에 대한 중요하고 (지금은) 유명한 심리학 논문이 있다. Susan E.Cross and Laura Madson: Models of the self: Self-construals and gender. - P429

많은 연구결과가 남성은 ‘독립적‘인 자기 개념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할 가능성이 여성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 P55

‘유해한‘ 남성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자, 나는 갑자기그 남성성에 갇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자동차 광고가 구현하려 한 ‘진짜‘ 남자라는 협소한 모델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나에게 성공은 물질이었지 관계가 아니었다.  - P55

데수치가 질문을 던져 나를 당황시킨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왜 당황했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는 "왜 친구가 필요할까요?"라고 물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우정에 관한 책을 쓰는 사람에게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연스러웠지만 그때의 나는 당황스러워했다. 내 정체가 탄로 난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 P56

친구는 왠지 불편하고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렸다. 또는 일종의 사치품 같았다. 내게 아직 친구들이 있었던 당시에 그들은 맥스디킨스 주식회사의 담보물 같은 존재였다. - P57

셀프 사보타주

(전략).
오랜 기간 나는 남자들과 유지하던 나쁜 우정을 놓아버린 상태였다. 심벌즈를 쨍하고 한방 치는 듯한 결정적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10년 동안 실망감이 점점 조용히 부풀어가더니 남자는 그다지 좋은 친구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 P60

‘농담‘이라는 단어는 더이상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 P61

여러분은 내가 사용한 ‘농담‘의 뜻을 알 것이다. 남성들이 관계를 맺는 특수한 방식이자, 선의의 놀림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는,* 더 나아가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요소다. 그럴싸하게 포장하자면 ‘반항적 유희를 즐기는 실존적 태도‘ 정도랄까. 



* 미국 녀석들의 말을 빌리자면 알 깨기 (ball breaking), 상대방을 기죽이는 공격적 행을 뜻하는 미국 속어ー옮긴이다. - P62

유머는 남성우정에 있어 토템과도 같으며, 우정은 유머의 축복과 좌절에서 생겨난 소우주다. 농담은 익살이라는 활을 가득 채운 화살통을 메고 인생의 굳건한 성벽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 P63

이런 이유에서 젠더 이론가들은 남성성을 ‘취약성‘으로 묘사한16다. 너무나 많은 제로섬 게임이 있다.¹⁶ 남성에게 삶은 일련의 남성성 경쟁이다. 남자다움은 다른 남자들을 성적, 육체적, 지적, 경제적으로 능가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 P64

16 다시 테리 리얼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남성들)는 성과와 타인의 의견, 우리가 가진 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 이는 자존감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특히 남성은 성과에 기반한 자존감에 의존한다. ‘취약한 남성자아‘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 자이다. 이 자아는 내적인 자존감이 없기 때문에 취약하다. 모든 것은 특정한 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 P430

일반적으로 남성우정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경쟁은 농담이다. ‘오줌 멀리 갈기기‘처럼, 농담이 단순한 재미나 조롱이 아니라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로 이루어지는 경우, 농담은 지위의 도구, 즉 서열을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이때 활용되는 방어 전략이 아이러니다. - P64

온 세상이 무대


이따금씩 농담을 던지는 건 괜찮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집요함이다. 개별적 농담으로 끈질기게 이어지는 업신여김은 농담이 누적되며 그 힘을 발휘한다. - P65

고프먼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인상관리‘를 한다.¹⁶ 우리에게는 ‘무대 앞 자아와 ‘무대 뒤 자아가 모두 존재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일련의 가면을 보여주고, 상호작용하는 대상에 따라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가면을 바꾼다. - P66

18 Goffman, Erving.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New York: AnchorBooks, 1959. - P430

왜 남자들은 무대 뒤에 많은 것을 남길까? 왜 편협하고 과장된 사회적 페르소나를 구축할까? 왜 헝클어지고 다차원적인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 P67

그래서 남자는 자신의 개성을 모노톤으로 밋밋하게 만든다. - P67

내가 가진 남성성에 대한 불안은 건설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이는 그들이 DIYDo it yourself 스킬, 육체 능력과 ‘강직도‘(나는 기껏해야 단단쫄깃한 알덴테 상태의 파스타 면 정도의 강도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 P70

 흠… 내가 데리고 다니는 남성성 부장님은 손에 석고를 묻히고 작업복에 페인트가 묻은 사람인 것 같다.²¹ - P-1

21 Perry, Grayson. The Descent of Man. London: Allen Lane, 2016. 이렇게 실체가 없는 목소리는 아이 시절부터 남자로 살아온 평생 동안에 걸쳐 흡수한 남성 도상의 e-fit(Electronic Facial Identification Technique, 컴퓨터로 합성한 범인 몽타주-옮긴이) 콜라주다. (고풍스러우면서도 기묘하게 현대적인느낌의 단편적 패션으로 스스로를 업데이트하는) 이런 프랑켄슈타인 같은남자는 우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이 남자의 목소리와 우리 자신의 목소리 간 차이를 더 잘 깨닫게 될 뿐이다. - P431

구조 서비스

(전략).
한가지 문제가 있다. 내가 숫총각이라는 사실이다. 그해 입학전 여름, 나는 동정을 거의 잃을 뻔한 비통한 일이 있었는데, 내가아직까지도 모든 인터넷 사이트 비밀번호로 사용하는 이름을 가진 한 여학생과의 사건이었다. 아무도 이 사건에 대해 모른다. 다만 모든 동정 남녀, 특히 동정남이 루저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나는 이 진실게임에서 절대 루저가 될 수 없다! 독자 여러분, 이후 나는 섹스계의 ‘전설‘이 되었다! - P77

 우두머리 수컷 오소리는 원샷을 명령하고, 별명을 할당한다. 그는 호전적 외향성으로 꽉 채운 보름달과 같은 ‘농담 왕‘이다. 우리 모두는 그를 중심으로 공전한다. 오소리에게는 그 공허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한데 이끄는묘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 P78

여자와 오랜시간 어울리는 남자를 묘사하기 위해 스웨프schweff라는 뜻도 없는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애정이 담긴 단어는 아니었다. - P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나는 지금껏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다. 살인을 하거나 누군가의 숨통을 끊어놓은 적이 없다는 얘기다. - P7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버지는 보병으로 참전했었다. 1944년에서 1945년 사이 프랑스를 가로질러 독일로 진입하는 마지막 진군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짙은회색 모직 군복 차림의 적들에게 총을 쏴봤을 것이고, 타격을 입혔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몇 명을 사살하기도 했을 것이다. - P7

오늘이 바로 운명의 날이다. 사흘 전, 그러니까 지난 월요일에 나는 마저리에게 펜실베이니아 해리스버그의 작은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고 얘기해두었다. - P8

그럼 그냥 탄창을 꽂아 넣고 표적을 겨눈 후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건가 위험하진 않을까? 모르는게 많으면 겁도 많아진다. 그래서 나는 쇼핑몰의 서적 체인점으로 달려가 권총 사용 설명서를 사 왔다. (예기치 못했던 비용!) 책은 여러 부품에 기름을 쳐둘 것을 권했다.  - P10

지난달, 그러니까 화창했던 4월의 어느 날, 나는 루거를 테스트해보기위해 집에서 서쪽으로 5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차를 몰았다. (중략).
권총이 든 스포츠 재킷 주머니는 묵직했다. (중략).
놀라운 경험이었다. 손안에서 루거가 튀어 올랐다. 하마터면 얼굴이 날아갈 뻔했다. 반동을 예상하지도 못했고, 책에서 반동에 대해 읽은 기억도없었다. - P11

세 발 연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루거를 잘 닦고, 기름을 쳤다. 탄창에는 부족한 탄약 세 발을 보충해 넣었다.  - P12

요즘 각광받는 새로운 직종이 하나 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구직에 나선 실업자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 P14

지금껏 봐온 이력서 중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흠잡을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고 할까. 이 정도 이력서라면 특수 중합체 용지 제품의 제조와 판매에 충분한 경력을 갖춘 관리자급 직원을 찾고 있는 제지회사에서 면접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 P14

마저리는 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오해할 것이다. 11년 전, 그녀에게 들켰던 딱 한 차례의 외도를 제외하고는 나는 성실하게 아내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 P15

 오해를 푸는방법은 그것뿐이니까.
"개인적인 용무가 있었어. 허버트 콜먼 에벌리라는 사람을 죽이러 갔던거야. 우리 가족을 위해서." 결국에는 이렇게 털어놓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함께 나누는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게다가 마저리에게 이런 문제로 부담까지 주고 싶지는 않다.  - P13

그녀는 내 마지막 근무일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내 해직 수당이 바닥날때까지 기다릴 타입도 아니었다. 내가 일시 해고 통지서(분홍색이 아니라 노란색 종이다)를 내민 순간부터 마저리는 긴축에 들어갔다. - P16

그녀는 먼저 헬스클럽과 원예 연수 모임을 취소했다. HBO와 쇼타임 케이블 채널을 끊고, 기본 채널만을 남겨놓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코네티컷의 언덕이 많은 동네에서는 안테나 수신이 불가능해서 케이블 채널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식단은 양고기와 생선 대신 닭고기와 파스타로 꾸며졌다. 잡지 구독도 연장하지 않았다. 백화점 쇼핑도 그만뒀고, 스튜 레너드 슈퍼마켓에서 더 이상 카트를 느릿느릿 밀지 않았다. - P16

폴 시티의 북서쪽 언덕의 집들 대부분은 크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옅은 색 외벽에 짙은 색 덧문이 붙어 있는 전형적인 뉴잉글랜드풍 집들로 나무가 우거진 광활한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중략).
이곳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지금 내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차를 몰다보니 그런 의문이 든다. 깔끔하게 깎인 저 잔디를 떠받치고 있는 땅이 얼마나 얇고 위험천만한지 알고 있을까? 봉급날을 한 번 지나치면 불안감에잠을 이룰 수 없다. - P18

요즘 나는 우편물이 배달될 때마다 항상 집을 지키고 있다. 언제 좋은소식이 찾아들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중략).
지금쯤 그도 창밖을 내다보며 우편물을 기다리고 있겠지? 안타깝게도 오늘은 좋은 소식이 없어. 오늘은 나쁜 소식뿐이야. - P19

남자가 우편함에서 편지, 고지서, 카탈로그, 잡지 들을 꺼낸다. 우편함을 닫은 그가 천천히 다가오는 나를 발견하고 눈썹을 추켜세우며 고개를돌린다.
나는 그가 마흔아홉 살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보다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실업자로 살아온 지난 2년간의 세월이 남긴 흔적때문일 것이다. - P21

나는 그의 앞에 차를 세우고 환히 미소를 짓는다. 나는 말한다.
"에벌리 씨?"
"네?"
나는 일을 벌이기 전에 확실히 해두고 싶다. - P21

나는 레인코트 밑에서 루거를 꺼내 열린 유리창 밖으로 불쑥 내민다.
"이거 보여?"
그가 총을 빤히 쳐다본다. 보나마나 많은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이 총 살래요? 오다가 찾았는데 당신 총입니까?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게 될지 모르겠다. - P22

 오늘 밤 나는 올버니 인근의 싸구려 모텔에서 묵을 계획이다. 물론 계산은 현금으로 해야지. 내일 오후에는 펜실베이니아의 해리스버그에서 면접을 망치고 돌아온 척하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정도 연기야 식은 죽 먹기다. - P23

2

나는 11개월간 꾹 참고 그들의 방식을 따랐다. 마지막 5개월까지 더하면 총 16개월이다. 내가 노란색 용지를 받고 나서부터 내 업무에 발전이뚝 멎어버렸을 때까지. 카운슬링을 마치고, 이력서 작성 기술을 한창 배우던 기간이었다.  - P24

지난 1~2년간 대량 인원 삭감에 대한 소문이 돌았었다. 실제로 두 차례에 걸쳐 소수의 직원들이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전 준비에 불과했고,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1995년 10월, 급료 지불 수표와 함께 노란색 용지가 도착했을 때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 P24

퇴직금은 후한 편이었다. 당시에는 후하고 합리적인 액수라는 생각을했었다. 해고된 직원들에게는 2년씩 묶어 한 달치 봉급이 지급됐다. 그것도 현재 임금 수준으로. (중략). 그중 2개월치의 액수는 조금 차이가 났다.  - P25

나는 그저 그들이 양심적으로 정산해주었기를 바랐을 뿐이다. 아무튼 내게 쥐어진 건 4,716달러 22센트짜리 수표였다. 22센트가 아니라 19센트였다 해도 나는 그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 P25

해고된 직원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처지를 그저 예기치 못했던 휴가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리고 즉시 다른 회사에 취직이 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 P25

실직자는 매일 수천 명씩 늘어나고 일자리는 점점 줄어만 간다. - P26

또한 업계지도 여러 개 구독한다. 해고되기 전까지 고용주가 대신 구독해주었던 잡지들. 유감스럽게도 잡지 구독은 해직 패키지에 포함돼 있지않다. (중략).
그 두 잡지에는 구인·구직 광고란이 있다. 그리고 항상 구직 광고가 구인 광고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 P26

나는 광고들을 유심히 살핀 후 이력서를 보내보았다. 아무 답이 없었다. 질문만 늘어갈 뿐이었다. 내가 희망 봉급을 너무 높게 불렀나? 이력서에 세련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나? 뭔가 중요한 사실을 빼놓진 않았나? - P27

가끔 관리직 사원을 뽑는다는 채용 공고가 올라온 이후 『펄프』와 『페이퍼맨』에 짧은 관련 기사가 실리곤 한다. 능글맞게 웃는 행운의 사나이의사진까지 넣어서 내가 지원했던 바로 그 자리다. 나는 그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의 얼굴을, 그의 눈을, 그의 미소를, 그의 넥타이를 왜 그가 뽑혔지? 왜 난 안 되는 거지?
가끔 여자나 흑인의 사진이 실린 기사가 올라올 때도 있다. 채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마련된 할당제 덕분이다. - P29

이 모든 건 바로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대체 그들의 이력서엔 뭐가 담겨 있나? 그들이 나보다 나은 게 뭐가 있나? 그래서 나는 슬그머니 내 광고를 내렸다. - P30

3

어제 나는 허버트 콜먼 에벌리를 죽였다. 그리고 오늘 나는 펜실베이니아 해리스버그에서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후 4시에 도착해보니 마저리가 거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소설을 읽는 척하고 있다. - P31

나는 말한다.
"편지 온 건 없고?"
갑자기 에벌리 생각이 들어서다.
"없어요. 중요한 편지는 없었어요."
(중략).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많은 사람들은 가족, 특히 아내에게 화풀이를하곤 한다. 중산층 실직자들의 아내 폭행은 심각한 수준이다. 나 역시 험악한 충동에 휘둘릴 때가 있다. 뭔가를 부숴놓고 싶은 충동, 가까운 표적에 대고 맹렬히 화풀이를 해대고 싶은 충동.
하지만 나는 마저리를 사랑한다. 아내도 나를 사랑한다. 우리 결혼 생활에는 단 한 번의 풍랑도 없었다.  - P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