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비극도 채프먼을 멈춰 세우지 못했다. 그가 개발한 초고속 레이스카를 기꺼이 몰고자 하는 드라이버들의 열망도 잠재우지 못했다. - P42

1976년 어느 날, 안드레티와 채프먼은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한 호텔 식당에서 각각 따로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중략).
채프먼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리오, 내가 자네에게 줄 딱맞는 차가 있다면 좋을 텐데." - P43

채프먼은 안드레티에게 "내년에는 런던 버스와 같은 외관의 신차를 선보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물론 버스와는 전혀 닮지 않은 이 신차는 이후 포뮬러 1의 방향을 영원히 바꿔놓게 된다. 그것은 이른바 그라운드 이펙트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레이스카의 첫 모델이었다. - P43

채프먼은 1977년형 신차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타이어를 지면에 최대한 밀착할 아이디어를 샘솟듯 떠올리며 다시 활력을 얻었다. (중략). 채프먼은 1975년 말 로터스팀의 연구 부서에 보낸 27페이지분량의 서신에서 자신의 모든 구상을 밝혔다. - P44

로터스는 쐐기 모양의 차체 하부에 슬라이딩 스커트sliding skirts*를 달아 노면과 유연하게 밀폐되도록 설계했다. 

* 말 그대로 차체 하부 가장자리에 달린 움직이는 ‘치맛단‘으로, 그라운드 이펙트를 극대화하기 위해 차 아래의 공기가 옆으로 빠져나가는것을 막는다 - P44

이 개념은 워낙 극적인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에, 1976년 말어느 대회에서 안드레티가 한번 사용해 봐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채프먼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 P45

안드레티의 입장에서 그건 너무 아슬아슬한 도박이었다. 그래서 그는 출발하기 직전에 메카닉에게 몰래 연료를 반 갤런(약 2리터) 정도 더 채워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 P45

그라운드 이펙트로 무장한 레이스카가 마땅히 거머쥐었어야할 월드 챔피언 타이틀은 결국 이듬해까지 기다려야 했다. 안드레티는 시즌 초반까지 로터스 78을 몰았지만, 한층 더 개선된 로터스 79가 곧 출시될 예정이었다. - P46

하지만 축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로터스팀의 동료 드라이버였던 로니 피터슨Ronnie Peterson의 차가 출발선을 떠나자마자 화염에 휩싸였고, 결국 그날 밤 그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 P46

이제 이야기에 들로리언이 등장할 차례다.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제너럴모터스GM의 임원을 지낸 들로리언은 말솜씨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1970년대 후반, 채프먼에게 찾아가 두 가지 솔깃한 제안을 했다. 하나는 로터스팀 전체를 인수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중략). 다른 하나는 영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유치해 북아일랜드에 들로리언 자동차 공장을 짓자는 거대한 계획이었다. - P47

이 계획에서 로터스는 1,767만 달러의 수수료를 받고 차량의 섀시 설계를 돕기로 했다.
그러나 이 돈 중 단 한 푼도 로터스의 자동차 개발에는 흘러가지 않았다. - P47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은 1982년 가을에 찾아왔다. (후략).
10여 년의 징역형을 앞두고 있던 채프먼은 당시 54세였다.
당시 항간에는 그가 사망으로 위장한 채 돈을 가지고 어디론가 도망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 P48

그가 남긴 유산은 단순한 성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그의뒤를 이은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포뮬러 1의 모든 규칙을 한계까지 비트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단련된 그들의 집요함은 이 스포츠를 자동차 기술 창의성의 최전선으로 끌어올렸다. - P48

레이싱을 아는 이들이라면, F1의 한계를 밀어붙인 이들을 확실한 천재라고 인정할 것이다. (중략). 빨간 레이싱카를 만드는 그들이 보기에 영국 엔지니어들은 결코 찬사를 받는 예술가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가라지스타garagistas, 즉 기름때에 찌든 정비공들일 뿐이었다. - P49

3장

프랜싱 호스

(전략).
엔초는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아름답다고 믿은 레이싱카를 생산하는 데 바쳤다. 비록 그가 페라리라는 회사를 설립할 때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 P52

1950년, 포뮬러 1이 출범한 첫 시즌부터 페라리는 자기 팀이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 대회에 빠지는 일만큼은 없도록 하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이후 70여 년이 흐른 지금, 페라리는 이 대회의 모든 시즌에 빠짐없이 참가한 유일한 팀으로 남아 있다.  - P53

페라리는 TV 광고도 하지 않고, 연간 판매 대수도 약 1만대에 불과하다. 페라리가 파는 모든 것은 F1 서킷 위에서 쌓아 올린 역사에 기대어 거래된다.  - P53

페라리는 그런 ‘감성‘ 위에 세워진 제국이었다. - P54

그러나 자신의 역사를 기반으로 브랜드 가치를 이어온 페라리이지만, 정작 포뮬러 1 무대에서는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성과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 P54

(전략). 그는 언제나 이탈리아인이 페라리의 운전대를 잡기를 선호했지만, 1958년 그에게 F1 타이틀을 안겨준 것은 요크셔 출신의 마이크 호손Mike Hawthorn이었고, 1964년 또 다른 타이틀을 선사한 것은 모터사이클 챔피언 출신의 존 서티스John Surtees였다. - P55

페라리가 전 세계 왕족들에 힘입어 어느 정도 당당한 기풍을 갖출 무렵, (중략). 그들은 지위를 중시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았으며, 남성성을극도로 존중하는 마초 집단이었다.
바로 미국인들이었다. - P57

 그들은 차를 사는데 들인 돈보다 오히려 유지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대서양 건너편의 페라리 대리점들이 부품값과 정비료로터무니없는 값을 불렀기 때문이다. (중략). 페라리 부품은절대 고장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형편없는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다시 페라리를 선택했다. - P57

사실 엔초 페라리는 자국민이라고 딱히 더 나은 대우를 해주지도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월급을 주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 P58

(전략).
피로 얼룩진 시즌들을 겪으며 페라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두 집단을 정면으로 상대하게 되었다. 스포츠 언론과 가톨릭교회였다. 엔초가 아무리 이탈리아의 빛나는 상징을 일궈냈다고 한들, 그것이 이탈리아 젊은이들을 계속 죽음으로 몰아넣는 대가라면 모든 업적은 허사로 돌아갈 터였다. - P60

레이싱은 결국 파괴적인 집착임이 틀림없었다. 동시에 매우 많은 돈이 드는 중독이기도 했다. 아무리 많은 로드카를 팔아도 페라리는 늘 자금이 부족했다.  - P61

결국 문제의 핵심은 레이싱이었다. 스쿠데리아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중략).
상대방은 "출전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로써 모든 것은 없던 일이 되었다. - P61

페라리가 실제로 포드에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었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일설에 따르면 그가 진짜로 관심을 두고 있던 상대, 이탈리아 대기업 피아트Fiat를 염두에 두고 미리 몸값을 올리려는 제스처였다는 것이다.  - P62

계약을 마무리하는 데는 무려 2년이 걸렸다. 결국 페라리는 포드가 제시했던 금액보다 훨씬 적은 액수로 피아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P62

이 협약으로, 홀로 빛나던 페라리의 위상은 이탈리아 최대 수출 기업과 완벽한 한 몸이 되었다. - P63

1970년대 초, 할리우드 영화가 그려낸 페라리는 현실과 사뭇달랐다. 스크린 밖에서 스쿠데리아의 F1 카는 맛이 간 키안티 와인한 병보다 못한 처지였다.
더 심각한 것은 페라리는 이제 이탈리아 차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라는 점이었다. (후략). - P63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마라넬로라는 거대한 종교 집단의 내부인들은 감히 입을 떼려 하지 않았다. - P64

니키 라우다Niki Lauda는 1973년 테스트 트랙에서 페라리를 처음 몰아본 후 삐걱거리는 스쿠데리아의 모든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 P65

라우다는 자서전에도 썼듯이 이렇게 대꾸했다. "뭐가 잘못됐죠? 이 차는 언더스티어가 심하고, 코너링은 형편없어요. 도저히 운전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요."
라르디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 역시 곤란했다. 노인이 라우다가 차를 칭찬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아챘다고 해도 말이다.  - P65

엔지니어가 일주일이라고 답하자, 엔초는 신입 드라이버를 향해 약속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을 했다. 차를 고칠 테니, "다음 주 이 시간까지 정확히 1초를 단축하지 못한다면 해고"라는 것이었다. - P66

라우다는 엔초가 진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 P66

라우다는 그때부터 한 주 내내 엔지니어들과 함께 차에 매달렸다. 다루기 힘든 그 기계의 모든 디테일에 개입하며 하나하나 통제했다. 그리고 엔초가 요구한 대로 일주일 만에 정확히 1초를 단축했다. - P66

(전략).
반면 라우다는 그다지 감상에 젖지 않았다. 그해 시즌 열린13번의 레이스에서 다섯 번 우승하고 세 번 포디움에 올라선 그는 한 아름 쌓인 트로피를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여기며 오스트리아의 한 정비소에 넘겼다.
그 대가로 라우다가 받은 것은 평생 무료 세차권이었다. - P67

그러나 페라리의 행복한 승리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P68

4명의 드라이버가 즉시 차에서 뛰어내려 불길로 달려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탈리아인 아르투로 메르자리오Arturo Merzario가 안전벨트를 뜯어내고 라우다를 끌어냈다. (중략).
라우다는 이 모든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다. - P69

독일의 「빌트Bild」는 "도대체 그의 얼굴은 어디로 갔나?"라는 헤드라인의 기사에서 라우다가 최소 6개월 동안은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리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라우다는 단 6주도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 P69

라우다는 수술로 재건한 눈꺼풀 사이로 앞을 보며 테스트 트랙을 맹렬히 질주하더니 레이스 복귀를 선언했다. - P70

그가 복귀전에서 보여준 가장 놀라운 대목은, 그가 여전히 월드 챔피언십 우승에 근접해 있었다는 점이다.  - P70

마치 노아의 시대가 되돌아온 듯 계속되는 비를 바라보며 라우다는 후지 스피드웨이 Fuji Speedway 에서의 레이스가 너무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경기가 강행되자 그는 몇 바퀴만 돈다음 아예 피트로 들어와 차를 세워버렸다. - P71

그해 라우다는 거의 앙심 하나로 월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는 엔초는 물론이고 팀 동료 카를로스 로이테만Carlos Reutemann도 싫어했다.  - P71

라우다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팀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
페라리는 또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 P72

페라리는 F1에 수많은 유산을 남겼지만, 거기에 ‘질서‘와 ‘체계‘가 포함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드라이버와의 건전한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 P73

 F1의 계획이 엔초의 마음에 차지 않을 것임은 자동차광이 아니라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세계 최고 모터스포츠에걸맞지 않은 초라한 엔진이라니, 그의 상식에는 맞지 않았다. - P73

그래서 엔초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엔진 합의가 되지 않으면 F1을 떠나겠다고 한 것이다. 모나코도 몬차도 다 필요 없고 인디카INDYCAR 레이스에나 나가겠다는 협박이었다.  - P74

그러나 1988년이 되자 마라넬로에는 엔초의 시대가 막바지에접어들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략).
엔초는 그해 8월에 세상을 떴다. - P74

에클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단언컨대 포뮬러 1은 페라리이며페라리는 곧 포뮬러 1이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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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친구보다 좋은?
소비주의와 친밀성의 상품화


6장

너 자신을
돌보라



심리학 문화 외에도 MZ 세대*를 중심으로 부상한 또 다른 유행이 있었으니 바로 K뷰티‘다. 


* 셀프MZ 세대는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후반에 출생한 Z세대Generation 2를 뜻한다. - P174

2025년 기준 한국 화장품은 미국수입 화장품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있다.² 영국에서는 한국화장품만 취급하는 K뷰티 전문 매장이 빠른 속도로 매장 수를늘려가고 있다.³ - P175

3부 : 친구보다 좋은?


2 이민아, ‘[단독] K뷰티, 美수입시장서 첫 1위 ・・・ 강적 프랑스 제쳤다". <동아일보>, 2025...
3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50101/130769659/2윤은영, "한국 화장품만 팝니다‘ 영국에 등장한 K-뷰티 전문매장, <리테일톡>, 2025.
6.11.https://www.retailtalk.co.kr/Global/?jdx=165219792&bmode=view. - P367

이처럼 이른바 ‘한국식 스킨케어‘라는 것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이유가 무엇일까? - P176

. 오늘날의 문화에서 자기를 돌보는 것은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며 각종 ‘루틴‘을 통해 자신의 내·외면을 돌보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 P176

셀프케어는 단순히 자기 관리를 넘어 과로와 노동 강박으로 인한 번아웃, 힘겨운 육아, 인플루언서로서 겪는 외모 강박이나 완벽강박 등 각종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제시되기까지 한다. - P177

이때 외면을 돌보고 능력을 함양하는 행위는 내면 돌보기와 너무나 밀접하게 얽혀 있어 사실상 구분이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다. - P177

자기 돌봄에 집중하는 문화는 ‘힐링‘이라는 키워드와도 밀접한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꼭 힐링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여야자기 돌봄 행위인 것은 아니다.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를 보는 것, 샤워나 세안, 연락하지 않기, 심지어 손절을 하는 행위조차 자기 돌봄으로 개념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178

현기증 날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에서 멈춤과 고독을 위한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178

우리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까

자신을 돌보는 행위를 꼭 혼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 목적이단지 나 한 사람의 정신적 ‘웰빙‘ 향상을 위한 것일 필요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돌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 P179

자기 돌봄 개념의 역사는 이 개념이 본래 훨씬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이었음을 보여준다. (중략). 그러던 중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민권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이 부상하면서 자기 돌봄은 훨씬 정치적인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 P179

페미니즘 운동 또한 당대 민권 운동의 이러한 행보에 영향을 받아 대대적으로 여성 건강 운동을 펼쳤다. (중략), 남성과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삼는 의료 지식 체계에 도전하고자 했다.⁹ - P180

9 Jennifer Nelson, More Than Medicine: A History of the Feminist Women‘s HealthMovement, 2015. - P367

.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구호에는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기 돌봄의 ‘자기‘란 억압받는 이들의 자결권을 의미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자기 돌봄은 무엇보다 서로를 돌보는 것에 관한 개념이기도 했다. - P180

끊임없는 생산과 가속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휴식과 충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기 돌봄은 현기증 나는 속도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에 대한 일종의 대항문화처럼 보이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 P180

(전략).
그러나 스스로를 돌볼 것만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돌봄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노오력‘해야만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되기 쉽다. - P181

1948년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은 단순한 질병이나 질환의 부재가 아닌 완전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웰빙의 상태"라고 정의한 바있다.¹⁰ - P181

10 Gloria L. Krahn, Ann Robinson, Alexa J. Murray and Susan M. Havercamp, "It‘sTime to Reconsider How We Define Health: Perspective from Disability and ChronicCondition", Disability and Health Journal, 14(4), 2021, pp. 1~5. - P367

 오늘날 웰빙과 자기 돌봄이라는 키워드는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만들기보다는 집에서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제공한다. - P182

. 고통과 불행이 개인적 행동을 통해 ‘치료‘되어야 하는 문제가될 때, 우리가 택하는 개인적 행동은 대개 소비이기 때문이다. - P182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홧김에 쓰는 돈을 뜻하는 이른바 ‘X발 비용‘이나 ‘금융치료‘ 혹은 ‘소비치료‘로 번역할 수 있는 ‘리테일 테라피 retailtherapy 같은 단어들의 유행은 가장 개인적인 행동인 소비가 불행에 대한 치료가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현실을 보여준다. - P183

우리가 자기 돌봄을 통해 치유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번아웃과 혼자살기의 어려움 같은 문제들은 68혁명 시대에 자기 돌봄을 외친 사람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들만큼이나 사회적 해결을 요구하는 문제이며, 타인의 지지와 유대감 없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 P183

자기 돌봄의 현대적 버전은 고통만을 마비시키고 고통받는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별문제가 없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해로운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 P183

 유튜브와 인스타, 틱톡에서 유행하는 각종 루틴 비디오들이 때로는 ‘생산적인 하루productive day‘나 버리는 시간 없이 자기 계발에몰두하는 인생을 뜻하는 ‘갓생‘이라는 키워드를 포함하는 제목으로 나온다는 사실만 보아도, (후략). - P184

행복을 연습하세요!

(전략). 단순히감정적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감정 상태, 즉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축약한) ‘소확행‘이라는 말의 유행은 잠시 커피를 마시거나 ‘덕질‘용 굿즈를 사는 것 같은 가장 개인적인 행동을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에 우리 문화가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P184

다수의 평자가 관찰하듯이, 사실 현대 사회에서 행복은 단순히 성취될 수 있는 것을 넘어 거의 강박에 가까운 의무가 되어버렸다.¹² ¹³ ¹⁴ - P185

12 지그문트 바우만, 《지그문트 바우만 행복해질 권리>, 김수진 옮김, 21세기북스, 2025. 1장 참조(Zygmunt Bauman, The Art of Life, John Wiley and Sons, 2013).

13 에바 일루즈 에드가르 카바나스, <해피크라시: 행복학과 행복 산업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가》, 이세진 옮김, 청미, 2021 (Eva Illouz and Edgar Cabanas,
Manufacturing Happy Citizens: How the Science and Industry of Happiness Control ourLives, Polity, 2019).

14 탁석산, 《행복 스트레스》, 창비, 2013. - P367

그런 면에서 행복 강박은 건강에 집착하는 건강주의 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 P185

오늘날의 사회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그야말로 낙인화된 경힘이 되어버렸다 - P185

언제나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고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주어야한다는 강박을 뜻하는 ‘해로운 긍정성 toxic positivity‘ 개념이 화두에 오르기도 한다.¹⁷ - P186

17 Tasha Bailey, "Toxic positivity‘: Why #GoodVibes Only can Leave You Feeling Bad", BBC News, 2021.4, https://www.bbc.co.uk/bitesize/articles/z64yn9q. - P368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행복이 강조되다 못해 강박에 가까운 이상향이 된 것은 복잡한 사회적 변화의 결과이다. - P186

긍정심리학의 최고권위자인 마틴 셀리그만이 1997년 미국심리학회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 회장이 되면서 유행하게 된 긍정심리학은 심리학이단순히 인간의 병리를 치유하는 것을 넘어 더 행복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P187

국내에서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으로 번역된 셀리그만의 《진정한 행복 Authentic Happiness》의 캐치프레이즈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을 배워라!"이다. - P187

(전략) 셀리그만은 그 유명한 ‘행복 공식‘을 제안한 바 있다. 이공식에 따르면 행복의 50%는 유전이 결정하고, 40%는 자발적 노력이 결정하며, 행복에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기껏해야 10%도 되지 않는다.¹⁹ - P187

19 마틴 셀리그만,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개정판), 김인자·우문식 옮김, 물푸레, 2014, 4장 참조(Martin E. P. Seligman, Authentic Happiness: Using the New PositivePsychology to Realize Your Potential for Lasting Fulfillment, Simon & Schuster, 2002). - P368

(전략). 애초에 노력을 통해 행복을 달성할 수 없다면 이 모든 자기 계발 매체와 상품들도 무의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188

그러면 어떤 노력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 P188

연구자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행복과 웰빙에 관한 주류 심리학 담론은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²¹ - P188

21 Glenn Adams, Sara Estrada-Villalta, Daniel Sullivan and Hazel P. Markus, *ThePsychology of Neoliberalism and the Neoliberalism of Psychology", Journal of SocialIssues, 75 (1), 2019, pp. 189-216. - P368

정확히 과학적으로 적절한 비율이 얼마인지는 학자마다 견해차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긍정적 경험 대 부정적 경험의 비율이 1:1인 사람은 건강하지 않다고 여긴다.²⁵ - P188

25 Barbara Fredrickson, "Updated Thinking on Positivity Ratios, American Psychologist,
68 (9), 2013, pp. 1~9. - P368

긍정적으로 살면 암도 극복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 P189

좋은 삶을 도덕이나 선과 연관 짓는 전통적 관점이나 철학적 관점과는 달리, 긍정적 감정의 우위라는 기준은 가치 중립적일 뿐만아니라 측정 가능성, 즉 추적과 관리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 P189

. 자아를 실현해서 진정한 내가 되어야 행복하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문화적전제들이다. - P190

우울증적 쾌락

긍정적 감정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러 부정적 감정을 경험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P190

불안정한 고용 전망, 치솟는 생계비, 억압과 불평등, 빈곤과 폭력 등의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마음가짐을 갖고, 감사 일기를 쓰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음미해 보라는 조언은 그저 기만에 불과하다. - P191

(전략). 행복 개념이 정치적인 개념인 첫 번째 이유다. - P191

 사회학자들은 행복이라는 개념이 신자유주의가옹호하는 각자도생의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행복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주장한다.²⁸ - P191

28 일루즈·카바나스, 《해피크라시》, 2장 참조(Illouz and Cabanas, Manufacturing Happy Citizens).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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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에 대한 글을 읽은 적 있지만, 막상 그걸 살리는 것과 살려진 것을 보면서 분석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감만이 든다.

큰 줄기가 없는 만화지만, 나중엔 이야기가 생길지 모르겠다.
작 중 이야기는, 회상을 제외하곤 시간 순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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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는 레드불보다 랩당 0.5초 이상 뒤처져 있었다. 즉, 레이스가 끝나면 그 차이가 30분으로 벌어진다는뜻이다.
볼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제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톱워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 P24

메르세데스는 이후 몇 주, 아니 몇 달에 걸쳐 설계와 시뮬레이션 단계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철저하게 조사한 끝에 원인 하나를 찾아냈다. 물론 이미 손을 쓰기엔 너무 늦은 때였다.  - P25

 W13에서 시작해 2023년형 모델에까지 영향을 미친 이 실수는 거의 두 시즌이 지난 후에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이미 7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 후였다. - P25

. 축구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정도로 규칙이 간단해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스포츠가 되었다면, F1은 그 반대다. F1 규칙은 너무 복잡해서 마치 대학원 수준의 물리학 지식은 갖춰야 이해될 것처럼 보인다. - P26

하지만 F1의 이런 복잡한 특성은 짐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큰 매력이 되었다.  - P26

 실리콘밸리가 "빠르게 움직여서 모든 것을 파괴하라 Move Fast and Break Things"*고 외치기 훨씬 전부터 포뮬러 1은 매년 더 빠르게 달리며 모든것을 재창조하고 있었다.
어떤 재창조는 10억 달러 규모의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F1이라는 스포츠를 거의 죽일 뻔한 적도 있었으며, 어떤 해에는 정말 형편없는 메르세데스 자동차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 P27

케케묵은 과거의 영광도 혁신과 적응을 이뤄낼 수 있음을 F1이 보여준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오늘날 F1이 이룩한 성공은결코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후략). - P28

2장

허점

누구나 ‘포뮬러‘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오픈 휠 자동차 경주보다는 수학 방정식이나 화학 공식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1950년에 이 대회가 설립된 이래 이 명칭이 단 한 번도 바뀐적 없는 이유는, 이 단어가 그랑프리 경주에 참여하는 모든 자동차와 드라이버가 따라야 하는 빽빽한 규정과 사양의 집합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 P30

이것이 이상한 이유는 포뮬러 1 이야말로 그 어떤 스포츠보다모든 규정을 뜯어고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의 규칙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술집 한구석에서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거의 달라진 게 없다.  - P30

야구의 경우, 세부 사항이 끊임없이 바뀐다고는 하지만 베이브 루스가 신인이던 시절이나지금이나 큰 틀에는 별 차이가 없다. - P31

 즉, 이 분야에서는 비상한 두뇌의 엔지니어와 야망에 찬 설계 전문가들의 존재가 몇몇 뛰어난 드라이버만큼 중요하다.  - P31

이 스포츠의 역사는 등장하자마자 몇 번의 레이스를 휩쓸고 결국에는 금지당한 비밀 무기들로 가득하다. - P32

다만, 규정의 허점을 파고든 기술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32

현실이 이렇다 보니 F1 설계팀은 두 부류로 뚜렷이 나뉜다. 규정의 허점을 찾아내 마치 비장의 무기처럼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팀과 평생 그런 팀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느라 허덕이는 팀. - P32

 물론, 이의를 제기한 팀이 페라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페라리팀은 그동안 자신들이 갖지 못한 혁신기술을 누군가 선보일 때마다 ‘바스타 Basta!‘‘*를 너무 자주 외친 탓에, 한때 영국 엔지니어들 사이에 FIA가 ‘페라리 국제 지원팀 FerrariInternational Assistance‘의 약자라는 농담이 나돌 정도였다.

* 이탈리아어로 ‘이제 그만!‘, ‘이의 있습니다!‘ 정도의 뜻 - P33

윌리엄스팀의 공동 창립자 패트릭 헤드Patrick Head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줄곧 찾는 건 사실상 불공평한 우위입니다. 불공평한 우위를 찾아내면 그저 몇 주 정도가 아니라 1년의 격차를 만들어주니까요." - P34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이는 자동차보다 먼저 비행기와 사랑에 빠졌던 멋진 콧수염의 전직 영국 공군 조종사 콜린채프먼Colin Chapman이었다. - P34

그의 좌우명은 간단했다. "직선주로에서 빨라지려면 출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구간에서 빨라지려면 중량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 P35

그가 시작한 로터스 양산 스포츠카 사업은 금세 인기를 얻었고, 실제로 그가 만든 차들이 우승하면서 우수한 성능을 입증하기도 했다. 채프먼은 영국 공군의 모스키토 전투기를 제작한 드 해빌랜드 de Havilland사의 인력들을 영입하며 공학팀을 키워나갔다. - P36

F1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크나큰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 P37

. 그중 하나가 로터스팀이 도입한 ‘미드엔진mid-engine‘ 설계였다. 이는 기존에 운전석 전면에 있던 엔진을 뒤쪽으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 P37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채프먼은 마침 레이스카의 디자인이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던 시기를 맞아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 P37

과정이 아무리 혼란스러웠다 해도, 채프먼은 1960년대 내내명작을 잇달아 선보였고, 또 그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판을 뒤엎을 만한 혁신이었다. - P38

한편 채프먼은 그 누구보다 먼저 자동차에 더하고 싶었던 한가지가 있었다. (중략). 바로 스폰서를 전면에 내건 도색이었다. - P38

F1 창설 이후 거의 20년 동안 대회에 참가하는 자동차의 색상은 그저 국적에 따른 것이었다. - P38

이런 관행은 1968년에 막을 내렸다. F1 당국이 차체에 후원사로고 인쇄를 최초로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로터스는 즉각 영국 팀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녹색을 내다 버리고, 영국 국영 담배회사제품 골드 리프 토바코Gold Leaf Tobacco 의 상징색인 붉은색과 흰색리버리livery*를 선택했다. - P39

이 새로운 수입원 덕분에 채프먼은 차고의 불을 조금 더 오랫동안 켜둘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채프먼은 ‘F1 바닥의 미치광이 과학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 P40

 당시 포뮬러 1에서는 사고가 너무 잦아 대회가 시작된 후 15년 동안 사망한 드라이버만 20명에 달했고, 그중 3명이 채프먼의 로터스팀 소속이었다. - P40

1969년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로터스팀은 이 암울한 기록에 두 명을 더 보탤 뻔했다. 문제의 장비는 높은 리어 윙rear wing이었다. - P40

(전략).
그는 채프먼에게 화난 어조로 편지를 썼다. "나는 5년 동안 F1에 참여해 왔고, 내가 저지른 실수는 딱 한 번뿐이었습니다. 그 외엔 사고 없이 잘 지내왔죠. 하지만 로터스팀에 합류한 이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솔직히 당신의 차는 이미 너무 빨라서 취약한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무게를 몇 파운드 늘리더라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 당신의 직원들이 도대체 뭘 하고있는지 확인하는 데 시간을 좀 쓰시길 바랍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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