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필자의 책을 알고 있는, 콕 집어서 《늙어감에 대하여》를 읽은 독자는 벌써 감을 잡을 수 있으리라. 그 책에서 나는 자유죽음(Freitod)이라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볼 것을 권했다. - P19
차라리 나는 자유죽음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 P20
물론 자살이라는 행위가 참을 수 없이 강제된 상황 탓에 빚어지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은 익히 안다. - P20
여기서 자살이란 ‘수이 카에데레(sui caedere)‘, 곧 ‘스스로 자신을 죽임‘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된 ‘자살(Suizid)‘을 말한다. - P10
하지만 아직 세밀한 구분을 할 정도로 우리의 이야기가 충분히 진척되지 않았다. - P21
충동 자살? 제법 그럴싸한 말이다. 또는 나르시시즘의 위기?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심지어 복수 행위라는 개념도 있다. - P21
마치 은하계나 소립자 같은 것을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는 물리학자처럼 객관적인 사실로만 자살을 바라본다면, 사실과 자료를 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우리는 자유죽음에서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 P22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치료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실증적 자료와 사실로 자유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마음을 돌려세운다? - P22
우리는 법의학자가 시체 조직의 일부를 잘라내듯 "자살 행태"를 해부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 P24
자신을 파괴하려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다가가야 한다. 우연이라는게 그를 살려주기로 작정했다면, 그는 우리에게 감사를 표하리라. - P25
심리학은 아주많은 종류의 "자살 행태"를 이야기해오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에 아주 까다로운 것도 많다. - P25
자유죽음에는 여러 형태와 그 발달사 그리고 그 바탕에 깔린 생각들이있다. (중략). 다름이 아니라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곧 자유죽음을 구하고 있다는 데서 그 공통성을 찾아야 한다. - P26
일단, 구하고 찾은 사람들, 즉 이미 자살을 한 사람들부터살펴보자. 먼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리라. 이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게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 곧 이들이 자신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것은 없을까? 앞으로 차근차근 알아보자. - P26
(전략). 사람에 따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법칙이라는 게 과연 법칙인가? - P30
이렇게 따지고 들어도 ‘자살학‘이 말하는 법칙들이 무력해지지는 않는다. - P30
. 다만, 자살을 이미 감행했거나,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공허할 뿐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일 따름이다. - P30
그보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은, 우리의 사례들이 객관적인 사실, 즉 자유죽음을 실행에 옮겼다거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객관적인 사실 말고, 어떤 점을 공통으로 가질까 하는 물음이다. - P31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바로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이다. - P31
관련 학문이 ‘결산자살(Bilanzsuizid)‘⁹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자유죽음을 계획했을 수도 있다.
9 ‘결산 자살‘이란 그동안 살아온 삶을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돌이켜보고택하는 죽음을 이르는 표현이다. - P31
.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은 다른 모든 일을 심드렁하게 여기는 상식 밖의 무관심을 빚어낸다. 뭐가 어떻게 다르다느니 하는 따위의 시시콜콜 따져야 하는 문제는 하나도 빠짐없이 남겨진 가족의 몫이거나 과학의 차지일 따름이다. - P32
. 대개 아주 잠깐이지만,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끌기도 하는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은 철저한 무관심으로 신분이라는 차이까지 깨끗이 지워버린다. - P33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무어라 중얼거렸던가. 이제 남은 것은 고통뿐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런 게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이다. 이를 두고 감히 비웃음을 흘리거나 훈계해도 좋을까? - P34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은 ‘자살학‘의 여러 자료를 통해서도 잘 증명되어 있다. 여기서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이 어둠 안으로 들어와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 P34
여기서 자살 행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며 함께 싸잡아 역사성을 운운하는 것은 삼가야 좋다는 게 내 의견이다. - P35
내가 개인적으로 인생의 한창때를 사는 40대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는 점은 인정한다. (중략) 다시 강조하지만, 자살을 바라보는 데 있어 역사성의 관점은 피해야 한다 - P36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은 앞으로도 거듭 이야기하게 되리라. 이 순간이야말로 자살이라는 문제의 알파요 오메가다. - P36
죽음은 어쨌거나 우리가 함께 끌어안고 살아야만 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 안에서 자라나며 공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 P36
외부로부터 다가온 죽음은 우리를 강제로 떼어놓는다. ‘밖에서 다가와 떼어놓는다‘라는 말은 비유적으로 볼 때 이중의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마치 우리가 죽음에로 도망간다는 뜻일 수도 있다. - P37
.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은 이 이중의 역설이 허락하는 한, 일종의 수동태다. 없는 무엇인가를 우리는 기다린다. - P37
하지만, 자유죽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문법적으로나 실제로나 적극적인 행위다. - P37
하지만 자살을 감행한 사람 혹은 자살할 뜻을 품은 사람은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첫마디부터 직접 한다. 어떤 형태로든(이를테면 병이나 사고 혹은 그냥 단순하게 기력이 떨어져서) 죽음이 말을 걸어오고 난 다음에는, "죽음아, 네 가시는 어디에 있느냐?" 하고 결코 묻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죽음을 소리쳐 부른다. - P38
자유죽음을 갖는 사람은 책을 깨고 나온다. 여기서 이란, 내가 이미 암시했듯, 생명의 논리를 말한다. 생명의 법칙이라고 해도 좋다. - P38
그러나 다시 한번 묻자. 살아야만 한다고? 일단 태어난 이상 살아야만 한다고?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깨뜨린다. - P39
내가 염두에 둔 것은 이런 말이다. "생명은 최고의 자산이 아니다." - P40
생명은 최고의, 궁극적인, 가장 심오한, 제일 좋은 자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이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모순된 판단은 돌연 좋은 의미를 갖는다. - P40
‘자살학‘이라는 학문 분과의 가장 철저한 연구자도 손끝조차 댈 수 없는 곳에 생명보다 소중한 자산이라는 게 있다. - P40
내 눈으로 보는 차원에서는 심리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는 저 유명한 심리학자 P. F.의 자살 역시 못지않게 맹랑하다. 그 사람도 생명의 법칙을 무시하지 않았는가. 아니, 차라리 존재의 법칙을 무시했다고 하는게 나을까? - P43
. 정말 진지하게 나는 자유죽음 논의는 심리학이 끝나는 곳에서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믿는다. - P43
우리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자살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 아니 범위를 좀 더 좁혀보자면, 이미 뛰어내리기 위한 디딤판으로서의 문틀에 서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 P44
지금 우리의 문제를 다루면서 자꾸 심리학을 기웃거리게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거듭 강조해두지만 우리는 심리학 바깥에 있다 - P47
다시 말해서 자살이라는 문제는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풀 수 없다. - P47
멋지고 훌륭하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 P48
있는 동시에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 그야말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 P49
죽음의 논리는 우리가 흔히 이성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만 허락된다는 의미의 논리가 아니다. 죽음의 논리는 끊임없이 단 하나의 결론만 허용한다. - P49
뛰어내리는 사람은 생명의 논리와 죽음의 논리 사이에서 찢기어 있다. - P51
더구나 불편한 것은 그런 해부와 접근의 목적이 본인보다는 가족,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보상 심리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자살을 기도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목숨을 건져 다시 생명 논리와 그 언어의 세계로 되돌아온 사람을 붙들고왜 그랬냐고, 어째서 우리를 그토록 놀라게 만들었냐고 추궁하는 셈이다. - P51
우리 문화에서 자살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P52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글에 다음과 같은 게 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몇 줄 더 나아가 결론이 내려진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만 한다."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적어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판단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 이런 철저한 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 P56
신실증주의는 생명의 논리라는 영역 안에서 의미 있는 판단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짜 질문을 거부하고 솎아낸다는 점에서는 옳다. 하지만 이 영역을 넘어가야만 하는 경우에 신실증주의의 태도는 옳지 않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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