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존맛이지?"
나는 오징어가 많은 부분으로 한입 가득 먹으면서 감탄했다. - P40

"난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 의문이야. 엄마는 있는 거 다 퍼 주고 아빠는 먼지 한 톨까지 긁어모으는데."
서로 다른 모습에 끌린 걸까. - P41

"무시와 직시………. 집에 가서 해 주고 싶은 얘기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정했어?"
"글쎄, 직시? 아직 고민 중이긴 한데 음, 그 전에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엘라가 너하고 친해지고 싶다."
호수에 냅다 돌멩이를 던지듯 단숨에 말하고는 반응을 살폈다. - P42

"국어 모둠 단톡방에서 나온 얘기면, 1분 대본 쓰기 말하는 거야?"
"응."
"새고방 메시지, 혹시 대본 내용 아니었을까?"
"대본에 내 이름이 왜 나와.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쳐도, 그거 완전 저격이잖아." - P43



용의자들


1번부터 5번까지


공부 잘하는 언니가 공부 잘하는 꿀팁이라며 책이란 생색은 다 내고 알려 준 방법이 있는데, 바로 표 그리기였다. - P46

다섯 명 중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그건 나도 모르지. 답답한 나머지 성질이 뻗쳤다. - P48

"새고방이 나가는 건 맘대론데 들어가는 건 아무 때나 안 되잖아. 매달첫 번째 월요일에만 비번이 통하니까." - P48

"3모둠 애들한테 가서 폰 보여 달라고 해야겠다. 새고방에 들어가 있으면 점셋 아님!"
(중략).
"네가 무슨 경찰이냐? 나 같으면 폰 안 보여 줘."
한호수가 초를 쳤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다.  - P49

"충분해. 모르는 문제 붙잡고 있는다고 답 떠오르는 거 아니잖아. 나 그냥, 들이댈래, ‘직시‘가 똑바로 보는 거니까 3모둠 애들 한 명씩 찾아가서 묻는 거지. 너냐?" - P49

이모와 아저씨가 이혼할지 모른다는 소식도 충격이지만 호수가 제주도로 간다면 이모와 호수, 둘 다 잃게 된다. - P51

이상한 산책

숨을 들이마신 다음 새고방에 들어간다.
(중략). 홍쌤은 새별중 교복을 입고 학생인 척 교내를 돌아다니면서 담배 피우는 학생을 적발한다. (중략). 듣기로는홍쌤의 형이 오래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P52

카톡으로 현서의 새로운 삶을 구경했다. 새 친구들과 와플을 먹는 모습으로 프사가 바뀌었다. 가슴이 아팠다. 현서 옆에 내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현서도 새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 P53

다희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을 걸었다.
"시간 있으면...... 나랑 이것 좀 같이 옮겨 주면 안 될까?"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작고 낡은 원목 책상을 가리키는 다희.
"중요한 건데 나 학원 간 사이에 엄마 아빠가……………."
흔들리는 목소리에 내 마음도 흔들리지만 달밤에 뜬금없이 용의자를 도와주고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 P54

몇 걸음 걷다가 돌아보니 나를 지켜보던 다희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을 움찔대다가 휙 돌아 뛰어갔다.
이상한 산책이었다. - P55



1번 김진아:
외롭고 심심하다면


책상 구하기

학교에 오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를 내다보는데 유리창에 다희의 얼굴이 나타났다. 걱정 가득한 눈빛. 다희도 어젯밤 숨겨 놓은 책상을 생각하는 듯했다. - P56

다희의 그림 실력은 미술 시간에 봐서 알고 있었지만 그림 얘기를 할때 이렇게 눈이 반짝거리는 줄은 몰랐다. 헛헛하지도 부어 있지도 않은, 초록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처럼 투명하고 도톰한 눈빛. 마음이 자유로워진다는 말이 내 마음에 물 자국처럼 남았다. - P57

"저기, 미안하지만 문자로 부탁해."
스팸도 아니고 웬 문자 메시지? 의외로 얘가 점셋인 거 아니야, 하는 의심이 들었다. - P58

내가 나를 싫어해도 되는 이유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몇 걸음 거리를 두고 김진아를 따라갔다.
학교에서 몇 번이나 진아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실패, 계속 실패. 기회가 오면 용기가 달아났고, 용기가 생기면 진아가 사라졌다.  - P60

"새고방에 올라왔던 거 봤지?"
첫 번째 용의자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지고는 침을 삼켰다.
"같은 반 되기 싫은 애 최은율? 봤지."
날아오는 돌주먹에 명치뼈를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두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 P61

"원래 3모둠 단톡방에 올리려던 메시지라던데…………."
(중략).
"그 일에 관해선 아무 말도 하지 말자고 약속했으니까. 난 아니라고 하면 그것도 약속을 깨는 거잖아. 그냥 아무 말도 안 할래." - P61

"나 지금 그러려는 건데. 3모둠 애들 한 명씩 찾아가서 너냐, 왜 그랬냐, 물어볼 거야."
(중략).
"뭐야, 제일 의심스러웠나 보네." - P62

두 달 만의 변명.
(중략)
두 달 만의 쿨함.
최은율, 넌 너랑 같은 반 되기 싫다는 말이 싫어? 걔도 너처럼 자기 생각을 말했을 뿐이잖아." - P63

"그건 아니지! 사람들 많은 단톡방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건……………"
"그날도 교실에 사람 많았어. 넌 애들 다 듣게 큰 소리로 말했고." - P64

"너 말이야. 널 싫어하는 애를 찾으려는 거야, 아니면 네가 널 싫어해도되는 이유를 찾고 싶은 거야?"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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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과잉 자극에 빠진 자신을 마주할 시간


친애하는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이 책을 한국에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무한한 영광을 느낍니다. (중략).  디지털 중독에는 유튜브 쇼츠, 소셜 미디어, 온라인 포르노, 게임, OTT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P7

사회가 정의한 ‘정상‘ ‘표준‘ 등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이 일해야 하는데, 이러한 압박은 개인을 중독에 더 취약하게 만듭니다. 현대 사회에서 강박적 과소비는 결코 낯선 문제가 아닙니다.  - P8

『도파민 디톡스』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 P8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세계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중독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쾌락과 고통의 늪에 더 쉽고, 깊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럴수록 더욱 현명하게 자신을 돌보고, 건강한 선택을 하는 자기결정성을 길러야 합니다. - P9

머리말

쾌락과 고통에 병든 뇌를 되돌려라

(전략). "도파민이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그 질문이 이 책을 집필하게 했다. - P11

『도파민 디톡스』의 핵심적인 논리는 ‘풍요‘가 전 세계적인 중독, 우울증, 불안, 자살률 증가에 기여하는 스트레스 요인이라는것이다.  - P11

하지만 사람들은 30년 전보다 덜 행복하고, 더 우울하며, 더 불안해한다. 또한 더 젊은 나이에 죽어간다. 전 세계 사망의 70퍼센트는 흡연, 신체 활동 부족, 잘못된 식습관 등 스스로 개선할 수있는 위험 요소와 관련 있다. - P12

도파민이 분비되면 뇌는 즉시 자극된 도파민의 수용체 수를줄이거나 ‘하향 조절‘하여 도파민 증가에 적응한다. 쾌락을 느끼면 뇌는 고통 쪽으로 기울여 균형을 맞춘다. 그래서 보통 쾌락을 느낀 다음에 기분이 가라앉는 후유증을 경험한다.  - P13

쾌락을 끊임없이 추구하다 보면 어떤 쾌락도 느끼지 못하는쾌락불감증anhedonia에 빠진다. - P14

(전략).
또한 중독성 생태계(모든 것이 약물화druggified 된 세상)의 문제는총체적인 문제다. 우리가 소비하는 강력한 쾌락재pleasure goods를생산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에도 책임이 있다. - P15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중략). 책에 낙서를 해도 좋다. 떠오르는 생각과 아이디어가있으면 적어보아라.  - P17

마지막으로, 도파민 디톡스를 정해진 기간 내에 완료할 필요는없다. 각자의 속도에 맞추면 된다. 지나친 완벽주의만 경계하면된다. - P18

1장

데이터


많은 사람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강박적 과소비의 어려움을 겪는다. - P23

사람은 즐거운 자극만큼 혐오스럽고 고통스러운 자극에도 중독된다. - P24

열정, 습관, 중독의 차이는 무엇일까? 해당 물질이나 행동이 해를 끼치는지 여부다. - P25

문제 행동을 파악했다면 빈도와 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의 사용량을 최소화해서 생각하는 경향이이기 때문에 시요 비도와 양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 P27

 향상된 인식은 어떻게 자율성을 강화할까? 전두엽 피질과 관련 있다. - P29

지난 한 주를 떠올려 보라. 중독된 약물을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가? 참고로 약물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섭취하는 물질과 행동을 모두 포함한다. - P30

강박적 과소비가 항상 스트레스 많은 시기에 발현되지는 않는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각자의 신경 구조에 따라서도 다르다. - P33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의 어떤 시점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상상하거나, 과거로 돌아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살피는 것처럼 장기적으로 사고할 때 강박적 과소비의 해로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P42

2장

목표

(전략).
내 임상 경험과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중독 물질이나 행동을시작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즐거움을 위해서, 또 하나는 문제 해결을 위해이다. - P49

강박적 과소비에 빠지는 이유를 성찰하면, 그 행위가 기대하는바를 충족해 주는지 알 수 있다. 놀라지 마라. 강력한 보상을 주는 물질과 행동으로 특정한 결과를 얻는다는 주관적인 ‘느낌‘을 받을 순 있다. - P53

‘목표 결과, 간극‘의 표에 중독성 물질이나 행동을 사용한 특정 사례를 나열하고 간략히 설명해 보자. 본인이 의미를 알 수 있을 만큼만 간단히 적어도 된다. - P55

3장

문제


(전략). 앞서 언급했듯, 나는 이것을 풍요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 P63

강화 요인이 되는 물질이나 행동에 과도하게 몰두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 P63

쉽게 말해, 쾌락을 추구할수록 쾌락에 익숙해져서 더 큰 쾌락을 요하게 된다. - P64

도파민이 보상 처리에 관여하는 유일한 신경전달물질은 아니다. (중략). 도파민은 ‘보상 자체의 쾌락‘보다는 ‘보상을 얻기 위해 동기를 부여하는 과정‘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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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이라는 것보다 더 절박한 수수께끼를 알지 못한다. 죽음이라는 것의 안을 들여다볼 때 자유죽음은 그 어처구니없는 모순을 몇 배는 더 끌어올린다. - P59

 바이닝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게 아니지 않은가. (중략). 결국 자유죽음은 ‘무의미하다. 이 말은 모든 경우에 남김없이 적용될까? - P61

 하느님 맙소사, 8년이라는 세월에도 나는 조금도 더 지혜로워지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은 나에게 새로운 것은 안겨다 주었다. 세월은 흐르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 P62

여기서 지금 내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을, 경험상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꿰어 맞춰가며 증명하려 하고 있다고? 의미도 근거도 없는 말들을 늘어놓아 가면서 불합리한 소리를 주절대고 있다고? - P64

 우선, 우리의 생각은 실증과학이라는 영역의 테두리 안에서 이른바 ‘자살‘이 밝혀낸 모든 것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확인해낸 것은, 논리라는 게 무엇이 되었든 생명의 논리여야 한다는 점, 그리고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자살이란 일체의 구속을 깨뜨리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골로 만이 형 클라우스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³⁵

35 골로만(Golo Mann)은 토마스 만의 여섯 자식 가운데 셋째 아들로는 둘째다(1909~1994). 역사학자이자 시사평론가면서 작가로 활동했다. 클라우스 만(Klaus Mann)은 둘째이자 장남으로(1906~1949) 역시 작가로 활동했다. 나치스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아버지를 따라갔던 클라우스는 이후 계속 세계를 떠돌던 끝에 자살했다. - P65

우리는 현대 논리학이 이른바 ‘가짜 질문‘으로 치부해 버린 문제를 파고들어가 그게 겉보기처럼 가짜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층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 P66

게다가 독자는 언제라도 인간의 건전한 상식으로 도피할 수 있다. - P66

자유죽음이라는 것은 근본적인 모순을 뿌리째 뽑으려는 시도지만, 이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 P67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죽음과 자아 소멸이라는 이런 상황을 다분히 의식해서 체험한다. 어떤 이는 짐짓 밝은 기분인가하면, 또 어떤 이는 열광하기도 하며, 히스테리와 함께 온갖 소동을 벌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침착하고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 P67

 존재, 곧 ‘있음‘이라고 하는 것은 연구하기 아주 힘든 문법적 구문을가지고 있다. ‘있음‘이라는 말은 그 모순, 즉 ‘있지 않음‘이라는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를 모순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있지 않음‘, 곧 ‘없음‘이라는 말뿐인 불가능성을 강제로 이끌고 오는 사람은 무의미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어디까지나 무의미한 사람일 뿐, 망상과 광기에 사로잡힌 괴상하고 의심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³⁶

36 이 문장의 원어 표현은 다음과 같다. "Des Unsinns, nicht des Wahnsinns." 여기서 ‘Unsinn‘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의 무의미다. 그러니까 자살을 무의미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유죽음이라는 행위가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게 아니다. 이게 저자의본뜻이리라 본다. 간결한 문장을 풀어놓을 수밖에 없는 옮긴이의 고충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원어에서 대립이 확실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원문을 소개해둔다. - P68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이제 막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눈을 좀 더 길들여야 한다. - P69

2장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Wie natürlich ist der Tod?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자격이 있다. 너희에게는 별것 아닌 돌발사건일 수 있다. 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인생의 결정적 사건이다. 너무나도 결정적인 나머지 나는나 자신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 P72

자연스러운 죽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것, 심지어 반자연적인 죽음까지 볼 수 있다. - P74

 근본적으로 죽음은 결코 자연스러울 수 없다. 특히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 P77

다시 말해서 인과관계로서의 외부 세계가 우리의 존재를좌지우지하는 주인으로서 우리의 자아를 지배하고 있다면, 죽음은 자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의 자아(심리적이고 정신적인 현상, 나라면 ‘감각의 묶음‘에 불과하다고 표현하리라)에게 있어 신장, 위장, 심장 등은 모두 외부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P78

 다시 말해서 일상 언어에서 ‘자연‘이라는 말은 특정 시점에 특정 인구에서 양적인 기준으로 보아 ‘일반적인 것‘을 보통이라고 하며, ‘자연적‘이라고 표현한다. - P78

죽어가면서도 아직 분명한 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그의 죽음이 어쨌거나 비자연적으로 보인다고 내가 말한다면, 나는 이 말로 일상 언어와 논리 언어 사이에 끼어 있는 셈이다. - P79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 슬픔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죽음을 끌어안고 살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신비롭게도 일상언어는 다시금 논리적으로 깔끔한 의미론의 개념에 근접한다. - P80

물론 죽음 바로 곁에 가 있는 사람의 사정은 다르다. 그에게 객관적인 현실쯤은 아무래도 좋다. 그는 심장에 어떤 물질이 쌓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P80

. 일단 죽음이 시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사람은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난다. 다만, 안간힘을 쓰며 화를 간신히 억누를 뿐이다. - P81

여전히 사람들은 누군가 죽으면 그 죽은 사람의가장 가까운 가족이 "망자는 자신의 ‘평안을 찾았습니다!" 하고 입에 발린 소리 하는 것을 들어야만 가까스로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이때 죽은 육신, 곧 시체가 평안할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 P81

죽음은 누구나 한 번 마주치지만, 신은 언제나 숨어 있다. 이게 바로 신이 현현하는 방식인 것을 어쩌랴. - P82

안타깝지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목을 향해 날아드는 칼의 바람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든 듣지 못했든, 우리는 죽음을 알고 있다. - P82

사실 나는 죽음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본래의 나다. - P83

자연적이기만 희망했던 죽음은 비자연이자 반자연이라는 모습을 취하기 시작한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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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필자의 책을 알고 있는, 콕 집어서 《늙어감에 대하여》를 읽은 독자는 벌써 감을 잡을 수 있으리라. 그 책에서 나는 자유죽음(Freitod)이라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볼 것을 권했다. - P19

자살? 나는 이 단어가 싫다. - P19

차라리 나는 자유죽음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 P20

물론 자살이라는 행위가 참을 수 없이 강제된 상황 탓에 빚어지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은 익히 안다. - P20

 여기서 자살이란 ‘수이 카에데레(sui caedere)‘, 곧 ‘스스로 자신을 죽임‘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된 ‘자살(Suizid)‘을 말한다. - P10

하지만 아직 세밀한 구분을 할 정도로 우리의 이야기가 충분히 진척되지 않았다.  - P21

충동 자살? 제법 그럴싸한 말이다. 또는 나르시시즘의 위기?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심지어 복수 행위라는 개념도 있다. - P21

마치 은하계나 소립자 같은 것을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는 물리학자처럼 객관적인 사실로만 자살을 바라본다면, 사실과 자료를 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우리는 자유죽음에서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 P22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치료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실증적 자료와 사실로 자유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마음을 돌려세운다?  - P22

 우리는 법의학자가 시체 조직의 일부를 잘라내듯 "자살 행태"를 해부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 P24

자신을 파괴하려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다가가야 한다. 우연이라는게 그를 살려주기로 작정했다면, 그는 우리에게 감사를 표하리라.  - P25

심리학은 아주많은 종류의 "자살 행태"를 이야기해오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에 아주 까다로운 것도 많다. - P25

 자유죽음에는 여러 형태와 그 발달사 그리고 그 바탕에 깔린 생각들이있다. (중략). 다름이 아니라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곧 자유죽음을 구하고 있다는 데서 그 공통성을 찾아야 한다. - P26

일단, 구하고 찾은 사람들, 즉 이미 자살을 한 사람들부터살펴보자. 먼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리라. 이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게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 곧 이들이 자신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것은 없을까? 앞으로 차근차근 알아보자. - P26

(전략). 사람에 따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법칙이라는 게 과연 법칙인가? - P30

이렇게 따지고 들어도 ‘자살학‘이 말하는 법칙들이 무력해지지는 않는다.  - P30

. 다만, 자살을 이미 감행했거나,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공허할 뿐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일 따름이다.  - P30

그보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은, 우리의 사례들이 객관적인 사실, 즉 자유죽음을 실행에 옮겼다거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객관적인 사실 말고, 어떤 점을 공통으로 가질까 하는 물음이다.  - P31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바로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이다. - P31

관련 학문이 ‘결산자살(Bilanzsuizid)‘⁹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자유죽음을 계획했을 수도 있다.

9 ‘결산 자살‘이란 그동안 살아온 삶을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돌이켜보고택하는 죽음을 이르는 표현이다. - P31

.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은 다른 모든 일을 심드렁하게 여기는 상식 밖의 무관심을 빚어낸다. 뭐가 어떻게 다르다느니 하는 따위의 시시콜콜 따져야 하는 문제는 하나도 빠짐없이 남겨진 가족의 몫이거나 과학의 차지일 따름이다.  - P32

. 대개 아주 잠깐이지만,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끌기도 하는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은 철저한 무관심으로 신분이라는 차이까지 깨끗이 지워버린다. - P33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무어라 중얼거렸던가. 이제 남은 것은 고통뿐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런 게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이다. 이를 두고 감히 비웃음을 흘리거나 훈계해도 좋을까? - P34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은 ‘자살학‘의 여러 자료를 통해서도 잘 증명되어 있다. 여기서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이 어둠 안으로 들어와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 P34

 여기서 자살 행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며 함께 싸잡아 역사성을 운운하는 것은 삼가야 좋다는 게 내 의견이다. - P35

내가 개인적으로 인생의 한창때를 사는 40대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는 점은 인정한다. (중략) 다시 강조하지만, 자살을 바라보는 데 있어 역사성의 관점은 피해야 한다 - P36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은 앞으로도 거듭 이야기하게 되리라. 이 순간이야말로 자살이라는 문제의 알파요 오메가다. - P36

 죽음은 어쨌거나 우리가 함께 끌어안고 살아야만 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 안에서 자라나며 공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 P36

 외부로부터 다가온 죽음은 우리를 강제로 떼어놓는다. ‘밖에서 다가와 떼어놓는다‘라는 말은 비유적으로 볼 때 이중의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마치 우리가 죽음에로 도망간다는 뜻일 수도 있다. - P37

.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은 이 이중의 역설이 허락하는 한, 일종의 수동태다. 없는 무엇인가를 우리는 기다린다. - P37

하지만, 자유죽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문법적으로나 실제로나 적극적인 행위다. - P37

 하지만 자살을 감행한 사람 혹은 자살할 뜻을 품은 사람은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첫마디부터 직접 한다. 어떤 형태로든(이를테면 병이나 사고 혹은 그냥 단순하게 기력이 떨어져서) 죽음이 말을 걸어오고 난 다음에는, "죽음아, 네 가시는 어디에 있느냐?" 하고 결코 묻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죽음을 소리쳐 부른다. - P38

자유죽음을 갖는 사람은 책을 깨고 나온다. 여기서 이란, 내가 이미 암시했듯, 생명의 논리를 말한다. 생명의 법칙이라고 해도 좋다.  - P38

그러나 다시 한번 묻자. 살아야만 한다고? 일단 태어난 이상 살아야만 한다고?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깨뜨린다. - P39

내가 염두에 둔 것은 이런 말이다. "생명은 최고의 자산이 아니다." - P40

 생명은 최고의, 궁극적인, 가장 심오한, 제일 좋은 자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이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모순된 판단은 돌연 좋은 의미를 갖는다. - P40

‘자살학‘이라는 학문 분과의 가장 철저한 연구자도 손끝조차 댈 수 없는 곳에 생명보다 소중한 자산이라는 게 있다. - P40

 내 눈으로 보는 차원에서는 심리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는 저 유명한 심리학자 P. F.의 자살 역시 못지않게 맹랑하다. 그 사람도 생명의 법칙을 무시하지 않았는가. 아니, 차라리 존재의 법칙을 무시했다고 하는게 나을까? - P43

. 정말 진지하게 나는 자유죽음 논의는 심리학이 끝나는 곳에서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믿는다. - P43

 우리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자살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 아니 범위를 좀 더 좁혀보자면, 이미 뛰어내리기 위한 디딤판으로서의 문틀에 서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 P44

지금 우리의 문제를 다루면서 자꾸 심리학을 기웃거리게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거듭 강조해두지만 우리는 심리학 바깥에 있다 - P47

 다시 말해서 자살이라는 문제는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풀 수 없다. - P47

멋지고 훌륭하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 P48

있는 동시에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 그야말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 P49

 죽음의 논리는 우리가 흔히 이성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만 허락된다는 의미의 논리가 아니다. 죽음의 논리는 끊임없이 단 하나의 결론만 허용한다. - P49

 뛰어내리는 사람은 생명의 논리와 죽음의 논리 사이에서 찢기어 있다.  - P51

 더구나 불편한 것은 그런 해부와 접근의 목적이 본인보다는 가족,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보상 심리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자살을 기도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목숨을 건져 다시 생명 논리와 그 언어의 세계로 되돌아온 사람을 붙들고왜 그랬냐고, 어째서 우리를 그토록 놀라게 만들었냐고 추궁하는 셈이다. - P51

 우리 문화에서 자살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P52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글에 다음과 같은 게 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몇 줄 더 나아가 결론이 내려진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만 한다."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적어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판단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 이런 철저한 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 P56

신실증주의는 생명의 논리라는 영역 안에서 의미 있는 판단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짜 질문을 거부하고 솎아낸다는 점에서는 옳다. 하지만 이 영역을 넘어가야만 하는 경우에 신실증주의의 태도는 옳지 않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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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을 어렵게 만든 원인은 연립주택의 일층에 사는 집주인, 가와하라 겐사쿠의 증언에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 P38

"가와하라 겐사쿠는 ‘귀가하는 요시모토 히토미와 마주쳤다‘라고 증언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 P39

"그렇다면 아가씨는 이미 이해하셨겠지요. 연립주택 이층에 사는 대학생 모리타니 야스오의 증언 중에 나왔던 ‘쿵쾅‘ 하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것 같은 소리‘의 정체를요." - P41

"잊은 것이 어디 있었다는 거야?"
"베란다에 있었습니다."
가게야마는 마치 직접 보고 왔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베란다? 확실히 베란다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었는데, 셔츠나 청바지하고 속옷들, 그리고 운동화. 그 여자가 잊은 물건이란 대체 어떤 거지?"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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