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너는 게르마니아 방의 희곡 동아리에 가입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분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분풀이로 성경 읽기모임에 지원했지만 거기서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일너는 막무가내로 그 모임에 들어가서는 점잖은 작은 형제회의 경건한 대화에 특유의 주제 넘는 독설과 신성모독적인 풍자로 불화와 시비를 일으켰다. - P130

 하일너는 그런 장난에 곧 흥미를 잃었지만 비꼬며 성경적으로 말하는 방식은 꽤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P130

어느 날 아침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나오면서 세면장 문에붙어 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쪽지에는 ‘스파르타에서 보낸 여섯 편의 에피그램(기지와 풍자가 넘치는 짧은 시, 경구-옮긴이)‘
이라는 제목 아래 몇몇 유별난 동급생들의 어리석은 행동이며우정에 관한 내용이 풍자적인 이행시로 적혀 있었다. 물론 기벤라트와 하일너 커플도 공격을 받았다.  - P130

다음 날 아침에는 학생들의 방문마다 반박하거나 동의를 나타내거나 새롭게 공격하는 풍자시와 경구가 잔뜩 붙었다. 정작 스캔들을 일으킨 장본인은 영리하게 여기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헛간에 불씨를 던지겠다는 그의 목적은 성취된 것이었다. - P131

신문제목은 <산미치광이 (꼬리 쪽 몸이 가시털로 뒤덮인 쥐처럼 생긴 야행성 동물-옮긴이)>로 주로 익살맞은 기사가 실렸다. 창간호 기사 중 역작은 여호수아서(구약성경 중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책 - 옮긴이)의 저자가 마울브론의 신학생과 나눈 재미있는 대담이었다.
신문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둔스탄은 매우 바쁜 편집자이자 발행인으로 명성을 누렸다. - P131

헤르만 하일너도 열정적으로 신문 편집에 참여했다. 뛰어난 재치와 능력을 발휘해 둔스탄과 함께 날카로운 풍자가 담긴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 시작하자 학교 전체가 놀라움에 휩싸였다.
이 작은 신문은 거의 4주간이나 수도원 전체를 뒤흔들었다.  - P132

교수가 한스를 지목하며 번역을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한스가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었다.
"뭐 하는 겁니까? 왜 일어서지 않습니까?" 교수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한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의자에 똑바로 앉은 채 고개를약간 숙이고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꿈에서 약간 깨어나긴 했지만 교수의 목소리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 아득했다. - P132

"기벤라트 군!" 교수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 자고 있었던 겁니까?"
한스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놀란 얼굴로 교수를 바라보고는머리를 저었다.
"자고 있었군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지금 어느 부분을 공부하고 있는지 말할수 있겠지요? 자, 어느 부분입니까?"
한스는 손가락으로 책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는 어디를배우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교수가 비꼬듯이 말했다. - P133

"그만 자리에 앉으세요. 수업이 끝나면 내 방으로 오도록 하세요." - P133

한스는 또 동시에 교사의 목소리와 학생들이 번역하는 소리,
그리고 강의실의 모든 사소한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느꼈다. 그러다 마침내 그 소리들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실제적인 소리로 들리는 것이었다. - P134

"어디 말해봐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정말자고있던 게 아니었나요?"
"아닙니다."
"그러면 왜 기벤라트 군을 불렀을 때 일어나지 않았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P133

식사하기 전에 한스는 다시 호명되어 기숙사로 불려갔다. 그곳에는 교장이 마을 의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중략). "그냥 지나가는 신경쇠약이에요. 일종의 가벼운 멀미지요. 이 젊은이는 매일 바깥바람을 쐬어야 합니다.
두통에는 제가 몇 가지 물약을 처방해줄 수 있습니다." - P135

다만 곤란했던 건 산책을 나갈 때 하일너가 동행하는 것을 교장이 분명하게 금지한것이었다. 하일너는 분개하여 욕설을 내뱉었지만 어쩔 도리가없었다.  - P135

라틴어 학교 시절 한스는 지금과 달리 더 열정적이고 호기심 깃든 눈으로 세심하게 봄을 들여다보았다. 철새가 돌아오면새의 종류마다 눈여겨보았고, 어떤 꽃이 먼저 피어나는지도 관찰했다. 5월이 되면 드디어 낚시를 시작했다. 지금은 새 종류를 확인하거나 새싹을 보고 풀 이름 맞히기 따위는 하지 않는다. - P136

한스는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때 집중하려고 애써야 했다. 흥미가 떨어지는 내용은 그림자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히브리어 단어들은 수업 시간 30분 전부터 외우고 있어야만 수업시간에도 간신히 기억할 수 있었다. (중략). 한스는 자신의 기억력이 더 이상 아무것도 흡수하려 하지 않고 갈수록 더욱 희미해지고 불확실해지는 것을 느끼며 절망했다. 그러면 - P137

. 한스는 하일너와 함께 기숙사 건물 안을 어슬렁거리며 고향과 아버지와 낚시와 학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일너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한스가 떠들거나 말거나 고개를 까딱이며 하루 종일 갖고 놀던작은 자를 허공에서 몇 번 심란하게 휘두르곤 했다. 한스도 점 - P137

"그냥 생각이 났는데, 네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말이야."
"대체 뭔데 그래?"
"있잖아, 한스 너 여자애를 쫓아다녀 본 적 있어?"
침묵이 흘렀다. 이런 이야기는 그들끼리 해본 적이 없었다.
한스는 주저했지만 이 수수께끼 같은 주제가 마치 동화처럼 그를 잡아당겼다. 그는 얼굴이 빨개지고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느꼈다.
"딱 한 번." 한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P138

"그 후에는! 뭐, 아무 일도 없었지."
하일너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한스는 마치 금지된 정원에서 나온 영웅이라도 보는 듯 친구를 쳐다보았다.
그때 취침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등이 꺼지고 모두 조용해진 후에도 한스는 침대에서 오랫동안 깨어 있는 채로 하일너가 애인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 P139

교사들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이상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교장은 얼굴을 찌푸리고 꾸중을 했으며, 동급생들도 이미 한스가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일등이 되려는 노력을 그만뒀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하일너만이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 P139

한스는 날마다 하일너의 연애사 뒷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물어보기가 더 어려워졌다. 학생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전처럼 미움을 받았다. 하일너가 <산미치광이>에 악의에 찬 농담을 써댄 바람에 아무도 두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 P140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진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주인공이자 장본인은 이번에도 수도원의 문제아 헤르만 하일너였다.
교장은 하일너가 자신의 금지령을 무시하고 거의 매일 한스의 산책에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번에 한스는 혼내지 않고 주범이자 자신의 오랜 적인 하일너만 집무실로 불렀다.  - P140

다음 날 한스는 공식적인 산책을 하기 위해 전처럼 혼자 나서야 했다. 2시에 산책에서 돌아와 다른 학생들과 함께 강의실에 앉았다. 수업을 시작할 때쯤 하일너가 자리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힌딩거가 사라졌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누구도 그가 수업에 늦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P141

 밤이 깊도록 모든 침실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하일너가 물에 뛰어들었을 거라는 가정이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실종된 하일너는 수중에돈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P141

그 시간, 하일너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수풀 속에 누워 있었다. 그는 추위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무한한 자유를 만끽하며 좁아터진 새장을 빠져나온 것처럼 팔다리를 활짝 뻗었다. 점심때부터 뛰쳐나온 그는 지금은 크니틀링엔 마을에서 산빵을 뜯어 먹으며 아직 봄기운이 남아 있는 연한 나뭇가지 사이로 밤의 어둠과 별,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 P142

 하일너는 온갖 농담을동원한 아부로 시장의 환심을 얻더니 급기야 시장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시장의 집에서 햄과 달걀을 푸짐하게 얻어먹고 하룻밤 잠자리도 제공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 하일너는 밤새 그리로 달려온 아버지의 손에 넘겨졌다. 마침내 도망자가 붙잡혀오자 수도원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 P142

교장은 이 심각하고 반항적인 비행 사건에 대해 화려하고 열정적이며 장황한 연설을 했다. 슈투트가르트의 상부 관청에 보내는 교장의 편지는 그보다는 더 온건하고 덜 감정적이며 부드러운 어조로 썼다. 퇴학당한 괴물 같은 아이와의 편지 왕래는 금지되었는데, 한스는 이에 대해 당연하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몇 주 동안 학생들의 주요 화제는 하일너와 그의 도주였다. - P143

 최근에 비워진 자리의 주인공은 이전 주인공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교장만이 두 번째 사건 역시 조용히 처리되길 바라고 있었다. 하일너가 수도원의 평화를 깨는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한스는기다리고 기다렸지만 하일너에게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 P143

한 교사는 수업 시간에 한스가 여러 가지 질문에 전혀 답을못하자 이런 말까지 했다.
"어째서 기벤트 군은 그 잘난 친구 하일너와 함께 가버리지 않았지요?"
교장은 한스를 내버려 두었다. 바리새인들이 세리(성경에서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 격인 바리새인들은 세금을 걷으며 횡령을일삼는 세리들을 죄인 취급했고, 부정이라도 탈까 봐 그들을 가까이하지도 않았다-옮긴이)를 쳐다보듯 경멸에 찬 동정심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 P144

5장

한스는 결국 헛되이 괴로워하는 일을 그만두고 모세5경과 호메로스, 크세노폰과 대수학을 차례로 던져버렸다. 교사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가가 ‘좋음‘에서 ‘괜찮음‘으로, ‘괜찮음‘에서
‘중간‘으로, 그러다 마침내 ‘나쁨‘으로 점점 떨어지는 것을 별생각 없이 지켜보았다. - P145

가끔은 잠들어 버린 그의 야망을 비꼬는 말로 자극하여 깨워보려고도 했다.
"우리 기벤라트 군께서 주무시는 게 아니라면 이 문장 좀 읽어주십사하고 감히 부탁드려도 될까요?"
교장은 아주 고상하게 불쾌감을 표현했다.  - P146

그런데 한스가 자신의 위엄과 권위적인 눈빛에 매번 힘없이 겸손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점점 불안을 느끼더니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그렇게 멍청하게 웃고나 있을 때입니까? 나 같으면 엉엉 울어댔을겁니다."
그 무엇보다 한스에게 충격이었던 것은 그에게 제발 성실히지내달라고 간청하는 아버지의 편지였다. - P146

고집스럽고게으른 그 성향을 반드시 몰아내고 폭력을 써서라도 한스를 바르게 돌려놓아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한스를 가련히 여기는 지도교사 외에는 누구도 비쩍 마른 소년의 얼굴에 깃든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 P146

게다가 아버지와 몇 명의 교사들, 그리고 학교의 잔인한 야망이 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를이 지경이 되도록 끌고 왔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한스는 가장 예민하고 위태로운 소년기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했을까?  - P147

여름이 시작될 무렵 마을 의사는 다시 한스의 증상이 성장기에 주로 나타나는 신경쇠약이라고 설명했다. 한스가 방학 동안간호를 잘 받으며 잘 먹고 숲에서 산책을 충분히 한다면 곧 나아질 거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상황은 방학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했다.  - P147

마을 의사는 자신의 환자가 이런 모습을 보이자 매우 언짢아했다. 그는 환자에게 즉시 요양이 필요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정신과 의사에게 진찰받기를 권유했다.
"저 아이는 조만간 무도병 증세도 보일 겁니다."
의사가 교장의 귀에 대고 말했다. 교장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P148

 얼마 전 하일너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교육청이 이번의 새로운 사고를 또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교장은심지어 이 사고에 걸맞은 연설을 포기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으며 한스가 떠나기 전까지 이상할 정도로 친절을 보였다. 이 소년이 요양을 위해 휴학한 후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 P148

 하지만 교장은 한스를 격려하려고 "금방 다시 봅시다"라고 진심인 것처럼 인사했다. 이후 교장은 헬라스 방에 들어가 비어 있는 세 개의 책상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재능 있는 두 학생의 퇴학에 자신도 얼마간 기여한 바가 있다는 생각을 애써 억눌렀다. - P148

풍경이 계속해서 변하면서 고향의 모습과 점점 더 닮아가자 소년은 설렘을 느꼈다. 하지만 고향마을이 가까워지자 마침내 아버지가 떠올랐다. 마중 나올 아버지를 생각하니 민망하고 두려운 마음 때문에 자그마한 여행의 홍이 전부 깨져버렸다. - P149

마침내 한스는 우산과 여행 가방을 들고 서서, 그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마주했다. 잘못된 길로 빠진 아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교장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 당혹감과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는 사실 한스가 몹시 아프고 쇠약한 모습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약간 야위고 쇠약해 보이긴 했지만 아직 건강하고 제 발로 걷는 것을 보니 얼마간 안심이 되었다. - P150

첫날, 소년은 마중 나온 아버지가 혼을 내지 않아 기뻤다. 하지만 곧 아버지가 얼마나 자신을 조심스럽고 근심스럽게 대하는지, 또 그러기 위해 얼마나 눈에 띄게 애쓰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버지는 가끔 한스를 묘하게 관찰하는 눈빛으로, 때로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 P150

한번은 이런 꿈을 꾸었다. 죽어서 들것에 실려 있는 헤르만 하일너를 보고는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데 교장과 교사들이 그를 밀쳐내고 다시 다가가려 할 때마다 아프게 때리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신학교의 교수들과 지도교사들 외에도 라틴어 학교 교장과 슈투트가르트의 시험관들도 있었는데 모두 화난 표정이었다. - P151

 그러다 드디어 하일너가 발을 멈추었는데 가까이 다가온 한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야, 난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어." 그러고는 대단히 큰 소리로 웃으며 덤불 속으로 사라져갔다.
한스는 마른 체구의 잘생긴 남자가 배에서 내려오는 모습을보았다. 그의 눈은 고요하고 거룩해 보였고 손은 아름답고 평화가 가득했다. - P151

 "egisVOTES AUTO TEQLEDQalov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곧 예수를 알아보고 그리로 달려오니)." 한스는 neQuégalov(달려오니)가 어떤 방식으로 변하는 동사인지, 현재형, 명령형, 완료형, 미래형은 어떻게 쓰이는지, 주어가 하나 혹은 둘 이상일 때 어떻게 변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기억나지 않아 두려움에 식은땀까지 흘렸다. - P152

몇 주가 지나자 한스는 라틴어 학교 시절의 마지막 이 년간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의 동창들 중일부는 멀리 떠났고, 일부는 수습공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는데 한스는 이들 중 누구와도 친하지 않았다. - P152

마을목사가 한스에게 조금 신경 써주었다면 좋았을 테지만그가 무얼 해줄 수 있었겠는가? 목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지식, 적어도 지식을 향한 열정을 전해주는 것 정도였을것이다. - P153

 한스는 외롭고 버림받은 기분으로 작은 정원에 앉아 볕을 쬐거나 숲에 누워 몽상에 빠지거나 괴로운 생각에 잠겼다. 책을 읽는 것도 별 소용이 없었다.
금방 머리와 눈이 아팠고, 어느 책이든 펼치기만 하면 수도원 시절의 유령과 그곳의 두려움이 되살아나 그를 끔찍하고 숨 막히는 꿈속으로 끌고 들어가 꼼짝 못 할 만큼 무섭게 노려보는것이었다. - P183

그리고 마침내 아름답게 죽을 수 있을 만한 데를 발견해 죽음의 장소로 결정했다. 한스는 그 장소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자리에 앉아 며칠 뒤 사람들이 그곳에서 죽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상상을 하며 묘한 기쁨을 맛보았다. - P154

왜 진작 나무에 목매달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한스는 의아했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끝냈고 그의 죽음은 결정된 일이었다. 그 사실은 한동안 한스를 편안하게 했다.
멀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그는 마지막 날들 동안 아름다운 햇살과 고독한 몽상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 P154

헤어날 수 없게 한스를 짓누르던 상념들은 줄어들었다. 그대신 맥없이 체념하게 만드는 편안하고 게으른 감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한스는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 혹은 며칠을 그냥 흘려보내며 무심하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 P155

 그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그 노래를 계속해서 흥얼거렸다.

아, 난 너무 피곤해.
아, 난 너무 지쳤어.
지갑에는 돈이 하나도 없고
주머니에도 아무것도 없네.

한스는 기억에 남아 있는 멜로디를 따라 스무 번쯤 노래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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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잡음

우리는 보통 무작위 잡음 신호를 골칫거리로 여기지만, 생물학적 시스템과 기술적 시스템 양쪽 모두에서 잡음은 사실 기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로라스피니(Laura Spinney)는 잡음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뇌가 지금의 절반만큼도 기능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 P231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비행경로와 폭탄의 궤적을 계산해야 했던 공군은 비행기가 땅 위에 있을 때보다는 하늘을 날고 있는 동안 장비가 더 잘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P231

그런데 우연히도 이 주파수 중 일부가 장비에 들어 있는 다양한 가동부품의 공명주파수와 일치해서 가볍게 두드려주는 작용을 하는 바람에 부품들이 더매끄럽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주파수가 중요한 것인지알 수 없었던 기술자들은 공명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장비 안에 작은 진동 모터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 P231

지금은 진화가 우리보다 선수 쳐서 이 기술을 사용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생명은 이미 무작위 신호의 혜택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잡음을 조금 넣어주는 것이 주변 환경에 대한 유기체의 감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준다. - P232

진화가 뇌 자체에도 디더(Dither) 기능을 포함시켜놓지 않았을까? 사실 이것이 바로 한 신경과학자 집단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이들은 ‘고의적 잡음 설계(noisy by design)‘ 신경회로를 찾아냈다고 말한다.  - P232

잡음의 기본적인 정의는 주파수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광대역(broadhand) 신호다.  - P232

확률공명은 출력이 입력에 비례하지 않는 비선형계(non-linear system)에 특별히 적용된다. 막전위가 역치에 도달했을 때만 흥분하는 신경세포는 비선형계의 좋은 사례다.  - P233

 가재의 감각유모세포(sensory hair cell)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지느러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데 난류가 도움을 주는 이유, 희미하게 보이는 이미지를 파악하는 데 잡음이 도움을 주는 이유를 확률공명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점이 밝혀진이후로 외부 잡음을 인간의 수행 능력 향상에 사용해왔다 - P233

하지만 뇌가 확률공명을 이용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잡음을 만들어낸다는 증거는 오랫동안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옥스퍼드대학교의 신경과학자 게로 미에센뵈크(Gero Miesenback)가등장했다. 미에센뵈크는 잡음을 발생시켜 뇌 기능을 강화하는 특별한 뇌 회로를 발견했다고 믿는다. - P233

초파리의 후각기관은 커다란 신경회로다. 이 신경회로는 초파리의 더듬이에서 1,200개 정도의 후각 수용체 신경세포(olfactoryreceptor neuron)로 시작한다. (중략)
특정한 냄새에만 반응하는 이 냄새특이성(odour-specific) 후각 수용체 신경세포는 더듬이에서 출발해서 사구체라는 신경절로 모여든다. - P234

하지만 몇 년 전에 신경과학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개별 투사신경세포의 전기적 활성을 기록했더니 가끔은 자신과 연결된 후각 수용체 신경세포가 포착한 냄새가 아닌 다른 냄새에도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 P234

이들은 특정 사구체와 연결된 후각 수용체 신경세포가 모두 소실된 돌연변이 초파리를 가져다가 그 투사신경세포로 다른 입력이 들어오는지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기존에는 몰랐던 ‘사이신경세포(intermeuron)‘의 네트워크가 사구체들을 서로 연결해서 그 사이로 활성을 전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 P235

이것으로 당장 눈앞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됐다. 냄새 수용체와 투사신경세포 사이의 정교한 일대일 대응관계를 망가뜨리는 신호를 보태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미에센뷔크는 이렇게 말한다. "직관에 어긋나 보이죠. 입력이 깔끔하게 잘 분리되어 있는데 거기에 잡음을 섞어서 흐리게 만들 이유가 뭘까요?" 그가 내놓은 가설은 잡음을 추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것이었다.  - P235

미에센뷔크의 연구진은 막스플랑크 신경생물학연구소의 알렉산더 보르스트(Alexander Borst)가 1983년 발표한 논문도 우연히 접하게 됐다. 이 논문은 사구체들을 서로 연결하는 억제성 국소신경세포의 네트워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미에센뷔크는 이것이 홍분성 국소신경세포와 반대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후각 수용체 신경세포로부터 오는 강력한 신호를 가라앉히는 역할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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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에 나오던 플래쳐 교수가 생각난다.
There are no two words in English language more harmful than ‘good job‘.
그냥 별 특별하지 않은 자기개발서다.


SECTION 6.2
Test

When all is said and done, more is said than done.
Most of us know what we need to do, but to know and notto do is not to know.
You do and you learn. You wait and you stagnate.
If you stop seeing decisions as final and start seeing all deci-sions as a series of tests that can be tweaked and adjusted as you go, not before you go, then you will be in flow. - P137

If in doubt, test.
If you‘re on the fence, test.
Even if you‘re sure, test; because then you stay open mindedto a better outcome.
Failure is discouraged with more final decisions, whereas itis embraced as part of the progressive improvement with test-ing. Test a new holiday destination with a short stay first. - P137

Coca-Cola would not have gone from medicinal to refresh-ment purposes without staying open to test results and feed-back. Lamborghini wouldn‘t have gone from tractors to cars. Infact, Nintendo went from producing playing cards to vacuum cleaners to instant rice to a taxi company and even a short-stay hotel chain. - P138

45
(How to) Start Now. Get Perfect Later.

GOYA and JFDI.
Get off your arse (ass) and just fuckin‘ (frickin‘) do it.*
You now have most of the strategies and tactics to makegood, fast, smart decisions. (중략) Don‘t let the desire for perfection get in the way of excellence, or simply making small baby steps of progress.

*Did you guess what these were, or did you do a cheeky Google search? - P139

Doing something mostly beats doing nothing.
It‘s never too late to start, but it‘s always too late to wait.
Talk less, do more. Or from the famous Chinese proverb ‘talkdoesn‘t cook rice‘.

□What you can change: change it.
□What you can‘t change: leave it.
□What you do change: live it.

No decision needs to be permanent. - P139

Nike‘s tagline is ‘Just Do It‘, not ‘Nah, Fuck It‘.
When I started in property I had just one house and nodeposits for any more. I had no experience or credibility toview and make offers on properties. The estate agents probably thought I was a clown. But one property led to two led to 20,
50, 500 and more. I‘m getting perfect later all the time. - P140

You should have seen my first website. In fact, I‘m glad you didn‘t! I looked about 15 and sounded like a robot. - P140

Warning: don‘t be flippant and put rubbish out into the world,
or be lazy or apathetic with your decisions. Some professions(such as medical, security and safety professions) require perfectprocesses, otherwise someone could die.  - P140

Start Now sound bite

GOYA and JFDI. ‘Start Now. Get Perfect Later‘. No decisionis final, so see all decisions as tests that can be changed quickly and that give you steady progress towards your goal. - P141

46
Experience, but not too much

Experience has its obvious benefits: wisdom, intuition and con-fidence. But it has drawbacks that many people are oblivious to.
So many people just won‘t start anything until they feel theyhave all the confidence and experience which, of course, is aparadox because you only get the confidence and experienceby starting. - P142

You don‘t have the results yet. You don‘t have the fatigue. Leverage this paradoxical asset in your favour, by seeing and focusing on thelatent assets within you, as this balances experience.
I bet there was a day when you hadn‘t had any experiencein sex, but you gave it a damn good go anyway and relied onother assets than experience! - P142

Never lose that naivety. Neverlose your youthful positivity, belief, creativity and resourceful-ness. It keeps you young, humble and open-minded. - P143

Start Now sound bite

By all means use the experience you have, but not too much. You also need youthful naivety, creativity and resourcefulness. Be care-ful not to get too hardened and lose your passion and enthusiasm.
Equally balance your experience, that of others ahead of you and positive open-mindedness. - P143

47
Change your mind

(중략). Therefore, they make a bad decision worse, or block a better decision coming their way. - P144

Three words I could never say were ‘I was wrong‘. - P144

‘I was wrong. You were right. Thank you. Sorry.‘
If you want happy staff, customers, followers and fans, usethese magic phrases often. One at a time, or all at once if you‘ve made a clear and massive balls up.
‘I was wrong. You were right. Thank you. Sorry.‘ - P145

Start Now sound bite

As long as you don‘t change your mind all the time for no goodreason, changing your mind when it is right to do so is a strength,
not a weakness. Give people power by saying ‘I was wrong‘ if you need to, and separate changing your mind from your protective ego. ‘I was wrong. You were right. Thank you. Sorry.‘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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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Fire yourself

You are often the cause of the biggest bottleneck that is stop-ping you getting your stuff done, or leveraging others to get your stuff done.  - P110

3. You are a perfectionist and no one lives up toyour (impossible) standards

Perfection is unattainable. Sure, strive for it, then settle forexcellence. Then improve. If you judge and measure people byyour own standards you will be perennially disappointed. - P111

5. If you want a job done well, do it yourself

No. It is your responsibility to get people to care as much as you with respect and culture.
- P111

I edited my last book Money five full times. My publish-ers asked me to edit it down from 165,000 words to 120,000words. After five full read throughs and hardcore editing, I gotit down from 165,000 words to 165,000 words. Boom. Lookat me! 5,000 words in, 5,000 words out, on each painstakingedit. Genius.
I. Was. The. Problem.
I needed to fire myself. Fast.
I kicked and screamed that the editors wouldn‘t know how to edit the book as well as me, after all it‘s my baby.  - P112

Start Now sound bite

Fire yourself fast. You are the problem. Get out of the way. Let go to grow. Trust others to do a good, or even better, job. If you arethe bottleneck you will never scale.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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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마가키 기미코도 그날 밤 그녀의 집에 갔던 게 아닐까. 아마도 내가 다녀온 다음에? 그리고 침실에서 사체를 발견하고 자신이 의심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도망치듯이 비상계단을 뛰어 내려온 것일까....
그렇다, 나는 전화를 받고 그다음 날 밤에 레이코의 맨션에갔었다. 문을 열어준 그녀가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기 때문에 나는 오늘 밤으로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 P152

테이프에 고백한 대로 칠 년 전, 나는 사람 한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그건 살인이 아니라 과실이었다. 근무처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에게서 불과 일 분쯤 눈을 떼고 곁에 있던 만화 잡지를 읽은 것뿐이다.  - P152

어차피 그다음 날에는 죽었을 환자였다. 그 과실은 단지 죽음을 하루 앞당긴 것뿐이다. 하지만 그게 세상에 알려지면 나는 몇십 년의 장래를 모조리 잃지 않으면 안 된다. 단일분, 줄이 입에서 떨어진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음에 몰아넣을 수있다. 인간에게 죽음을 안겨주는 건 너무도 간단하다. - P152

왜냐하면 나는 의사니까. 그녀의 얼굴은 헤벌어진 입술에 비명의 여운을 남긴 채 추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얼굴에서딱 한 번만 교통사고 후의 흉물을 떠올리고 이제는 다 잊자고 생각했다. 우리 두 사람은 이번에야말로 진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되고, 나는 마침내 그 점토 얼굴을 완전히 짓뭉개버린 것이다…. - P153

예상대로 사사하라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하지만 예상치못한 일 두 가지가 생겼다. 우선 사사하라가 나에게 진범을 찾아달라고 부탁해온 것이다. - P153

는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나와 그녀의 관계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큰돈을 들여 병원에서도 최상급의 일인실에 입원한 가장 큰 이유는 나를 협박하기 위해서였다. (중략). 베개 밑에서 테이프를 꺼내 한밤중의 복도에까지 들릴 만큼 큰 음량으로 내 목소리를 왕왕 울려서 나를 벌벌 떨게 했다. - P153

오늘 아침에 전화가 연결된 것은 두 사람뿐이다. 아직 네명이 남았다. 내일 아침에 할까 하다가 오늘 밤 안에 끝내버리기로 했다. 사사하라가 호텔 메모지에 적어준 용의자 목록을 꺼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 밑에 그가 직접 알아낸 자택과 직장,
두 개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맨 앞의 두 명은 이미 연락을 끝냈다. - P154

 범인일 리 없는 사람이 살인을 고백하고 자살하는 건 상상도 못했다. 또 한 사람,
마가키 기미코에게도 혹시 상상조차 못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그녀도 이번 사건에서 뭔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갖고 있다. - P155

사사하라가 이 물음표를 영원히 풀지 못하기를 기도했다. 그곳에 적혀야 할 이름은 ‘하마노 야스히코‘, 자신의 후배이자 누구보다 성실하다고 믿었던 자라는 것. 그것만은 사사하라가 끝까지 알지 못하기를 빌었다.
목록의 세 번째 이름 기타가와 준의 두 개의 전화번호 중에어느 쪽에 연락할지 망설였다 - P155

그는 결국 작업실 쪽을 선택했다. 손가락이 일곱 개의 숫자를 눌렀다. 차 한 대가 스쳐 지나갔다. 겨울밤의 정적 속에 단지 그 차 소리만 울렸다.
그렇다, 오늘 밤 안으로 끝내버리는 게 좋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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