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잡음

우리는 보통 무작위 잡음 신호를 골칫거리로 여기지만, 생물학적 시스템과 기술적 시스템 양쪽 모두에서 잡음은 사실 기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로라스피니(Laura Spinney)는 잡음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뇌가 지금의 절반만큼도 기능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 P231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비행경로와 폭탄의 궤적을 계산해야 했던 공군은 비행기가 땅 위에 있을 때보다는 하늘을 날고 있는 동안 장비가 더 잘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P231

그런데 우연히도 이 주파수 중 일부가 장비에 들어 있는 다양한 가동부품의 공명주파수와 일치해서 가볍게 두드려주는 작용을 하는 바람에 부품들이 더매끄럽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주파수가 중요한 것인지알 수 없었던 기술자들은 공명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장비 안에 작은 진동 모터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 P231

지금은 진화가 우리보다 선수 쳐서 이 기술을 사용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생명은 이미 무작위 신호의 혜택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잡음을 조금 넣어주는 것이 주변 환경에 대한 유기체의 감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준다. - P232

진화가 뇌 자체에도 디더(Dither) 기능을 포함시켜놓지 않았을까? 사실 이것이 바로 한 신경과학자 집단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이들은 ‘고의적 잡음 설계(noisy by design)‘ 신경회로를 찾아냈다고 말한다.  - P232

잡음의 기본적인 정의는 주파수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광대역(broadhand) 신호다.  - P232

확률공명은 출력이 입력에 비례하지 않는 비선형계(non-linear system)에 특별히 적용된다. 막전위가 역치에 도달했을 때만 흥분하는 신경세포는 비선형계의 좋은 사례다.  - P233

 가재의 감각유모세포(sensory hair cell)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지느러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데 난류가 도움을 주는 이유, 희미하게 보이는 이미지를 파악하는 데 잡음이 도움을 주는 이유를 확률공명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점이 밝혀진이후로 외부 잡음을 인간의 수행 능력 향상에 사용해왔다 - P233

하지만 뇌가 확률공명을 이용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잡음을 만들어낸다는 증거는 오랫동안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옥스퍼드대학교의 신경과학자 게로 미에센뵈크(Gero Miesenback)가등장했다. 미에센뵈크는 잡음을 발생시켜 뇌 기능을 강화하는 특별한 뇌 회로를 발견했다고 믿는다. - P233

초파리의 후각기관은 커다란 신경회로다. 이 신경회로는 초파리의 더듬이에서 1,200개 정도의 후각 수용체 신경세포(olfactoryreceptor neuron)로 시작한다. (중략)
특정한 냄새에만 반응하는 이 냄새특이성(odour-specific) 후각 수용체 신경세포는 더듬이에서 출발해서 사구체라는 신경절로 모여든다. - P234

하지만 몇 년 전에 신경과학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개별 투사신경세포의 전기적 활성을 기록했더니 가끔은 자신과 연결된 후각 수용체 신경세포가 포착한 냄새가 아닌 다른 냄새에도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 P234

이들은 특정 사구체와 연결된 후각 수용체 신경세포가 모두 소실된 돌연변이 초파리를 가져다가 그 투사신경세포로 다른 입력이 들어오는지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기존에는 몰랐던 ‘사이신경세포(intermeuron)‘의 네트워크가 사구체들을 서로 연결해서 그 사이로 활성을 전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 P235

이것으로 당장 눈앞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됐다. 냄새 수용체와 투사신경세포 사이의 정교한 일대일 대응관계를 망가뜨리는 신호를 보태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미에센뷔크는 이렇게 말한다. "직관에 어긋나 보이죠. 입력이 깔끔하게 잘 분리되어 있는데 거기에 잡음을 섞어서 흐리게 만들 이유가 뭘까요?" 그가 내놓은 가설은 잡음을 추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것이었다.  - P235

미에센뷔크의 연구진은 막스플랑크 신경생물학연구소의 알렉산더 보르스트(Alexander Borst)가 1983년 발표한 논문도 우연히 접하게 됐다. 이 논문은 사구체들을 서로 연결하는 억제성 국소신경세포의 네트워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미에센뷔크는 이것이 홍분성 국소신경세포와 반대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후각 수용체 신경세포로부터 오는 강력한 신호를 가라앉히는 역할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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