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윤리의 패러다임

(전략). 즉 컴퓨터게임의 윤리는 게임의 윤리와 동일한가라는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말로,
내가 여기서 제안하고 있는 프레임을 사용해서 프로 스포츠와 어린이의게임, 혹은 카드 게임의 윤리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 P22

(전략). 이는 컴퓨터게임 윤리의 연구에서도 중요하다. 이러한 차이는 한 가지 사실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컴퓨터게임은 ‘비디오 디스플레이를 포함하여 컴퓨터 능력을 이용하여‘²⁴ 플레이되는 게임이라는 사실 말이다. 컴퓨터 능력은 게임 경험의 윤리적 구성에 중요한 새로운 가능성들과 요구들을 산출한다. - P22

22 Dodig-Crnkovic and Larsson 2005, p. 20. - P338

내가 친구들과 내 콘솔로 캐주얼 농구 게임을 플레이할 때에는 그런 식으로 규칙을 변경할 수 없다. 컴퓨터 시스템이 득점 규칙과 턴어라운드 규칙을 관장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그것들을 변경하는 것과 그 게임을 더욱 즐거운 캐주얼 게임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분명 우리는 플레이 스타일을 바꿀 수는 있다. - P23

컴퓨터게임을 비디지털게임과 구별해 주는 또 다른 요소는 컴퓨터게임의 시뮬레이션 능력이다. 비디오게임의 게임 세계는 대개 다른 시스템의 시뮬레이션에 의존하고 있다. <프로 에볼루션 사커 4(Pro EvolutionSocer 4)>²⁶의 공의 움직임(dynamics), <완다와 거상(Shadow of theColossus)>²⁷의 거상(巨像들, 혹은 〈대합주! 밴드 브러더스(Daigassou! Band Brothers)> ²⁸의 악기처럼 이 시스템은 물리 법칙이다. 컴퓨터게임의 게임 세계는 몇몇 픽션적 요소(fictional elements)²⁹들을 갖춘 시뮬레이트된 환경이다. - P23

26 Konami 2004a.
27 Sony 2006b.
28 Nintendo 2004.
29 Aarseth 2005 - P339

 시뮬레이션과 규칙 둘 다 컴퓨터에 의해 관리되고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행동 및 주체성(subjectivity)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컴퓨터 힘과 시뮬레이션 능력의 존재는 디지털게임의 윤리를이해함에 있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연구를 컴퓨터 윤리 분야와 연결시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컴퓨터 윤리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와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창조한 윤리적 함의(含意)를 연구하는 분야다.  - P24

즉 우리는 그러한 이슈를 새로운 윤리적딜레마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오래된 딜레마로 간주할 것인가? 컴퓨터게임에 의해 제기된 윤리적 문제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있는가?
컴퓨터게임이 야기하는 윤리적 문제가 어떤 종류의 문제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나는 존슨(Deborah Johnson)의 3중 구별법을 사용할 것이다. "윤리적 이슈는 적어도 세 개의 상이한 방식으로 분류될 수 있다. 즉테크놀로지의 유형과 테크놀로지가 이용되는 분야, 주제(themes)의 윤리적 콘셉트에 따라서 체계화될 수 있는 것이다."³⁰ - P25

30 Johnson 2004, p. 65. - P339

 또한 이를테면 덕 윤리의 관점에서 컴퓨터게임이 제기하는 이슈와도 연관이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가령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가 도덕적 둔감화를 부추기는가?"와 같은 이슈 말이다. - P25

컴퓨터 윤리의 일반적 인식론적 분야와 관련하여, 나의 이론적 프레임은 브레이(Philip Brey)³¹의 해석적 컴퓨터 윤리(disclosive computerethics)가 제안하는 패러다임에 매우 가깝다.  - P25

31 Brey 2000a2000b. - P339

하지만 이 책의 주요 논점은 플레이어를 중심에 두는 일에 내가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컴퓨터게임 및 컴퓨터 윤리와 관련하여 관습적 담론으로부터 방향을 전환하는 점이기도 하다. 디자인된 대상으로서 컴퓨터게임은 비윤리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실천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실천은 도덕적 행위자에 의해 자발적으로 수행된다. - P26

이 책은 컴퓨터 윤리에 관한 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컴퓨터 윤리분야의 가장 의미 있는 몇몇 발견을 이용하고 그것들을 디지털게임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 P26

이 책의 구성

나는 이 책을 여덟 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하지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개념적 부분이 존재한다. 2장에서 4장까지는 핵심 이론을 다루는 부분들이다. 사례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예들은 대체로 개념적 문제와그 해결책에 대한 짧은 해설로 제공된다. - P27

5장에서 7장까지는 이론을 상이한 이슈에 적용할 것이다. 나는 세 개의 사례 연구를 소개할 것인데, 이들은 이론을 적용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싱글 플레이어 게임과 멀티 플레이어 게임 및 다중접속온라인게임의 분석에 그 이론이 갖는 영향력을 설명할 것이다. - P28

이 책의 목적은 컴퓨터게임의 윤리에 대한 포괄적 개관을 제공하는것이다. 이 분야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지만 표현과 오락을 위한 신생生) 문화 형식인 컴퓨터게임이 선진 사회에 던지는 증가하고 있는 윤리적 질문들 때문에 더욱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다. 이 책은 결코완전한 작업이 아니다. 더욱 많은 토론을 요구하는 영역들이 있다. 멈출수 없는 진화과정 속에 있기에 게임은 이 텍스트의 부분을 낡은 것으로 만들 것 같다. - P29

04
컴퓨터게임의 윤리학

<메탈 기어 솔리드 스네이크이터(Metal Gear Solid: Snake Eater))‘는 잠행 게임(stealth game)이다. (중략), 이 게임은 폭력적인 해결책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비군사적인 항복 기술들을 사용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러티브가 요구하는 그런 적들만을 죽이는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메탈 기어 솔리드 3>은 환경들과 자원들의 지적 이용을 독려한다. 여기서 폭력은 최적의 전략치고는 가장하수다 - P157

이 게임 플레이 시퀀스는 게임의 윤리적 가능성들을 실제 게임 디자인으로 옮겨 놓은 가장 노련한 예들 중 하나다. (중략). 소로는 디자인내에서 분명한 윤리적 행위유도성(affordance)이다. 플레이어는 전투이상으로 잠행에 참여해야 한다. 그들이 더 많은 군인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그들은 덜 숙련된 플레이어들이다. 그 결과 그들은 더 느린 게임 진행으로 벌칙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게임 행위유도성은 군인을 죽이는것이 불필요한 일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게임 경험이 변경될 것이다. - P158

이 장에서 나는 이러한 교훈들을 마음에 새기면서 포괄적인 윤리적 프레임을 고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틀은 컴퓨터게임이 제기하는 윤리적 이슈들뿐만 아니라 개발자들과 플레이어들 및 이론가들이 응용할수있는 가능한 해결책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심지어 예견하는 데 사용될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분석하기 위한 일반적 방법으로서 나는 우선 게임을 경험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다음으로 그러한 게임 경험 안에서 생겨나는 관련 윤리적 이슈들을 밝히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그리고 게임 현상학을 구성하는 상이한 요소들(플레이어, 대상, 커뮤니티)과 그러한 이슈들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윤리 이론의 적용을 제안한다.² - P159

04 컴퓨터 게임의 윤리

1 Konami 2004b.
2 이러한 접근법은 Philip Brey의 명시적인 컴퓨터 윤리에 깊은 영감을 받고 있다. Brey 2006b를 보라. - P350

덕 윤리와 컴퓨터게임

이제 나는 컴퓨터게임 연구에 덕 윤리(학)가 제공하는 분석 개념들을 소개할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덕 윤리적인 접근법이 갖는 결함들도 알리면서 말이다. 나는 게임 대상과 플레이어주체의 관계에 적용될 때 이이론이 가장 큰 유용성을 갖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덕 윤리의 관점에서게임 윤리를 분석하는 이 작업은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설명해 줄 가다머의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 P161

컴퓨터게임을 위해 덕 윤리학 정의하기

덕 윤리학은 도덕 철학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학파(學派)들 중 하나다.
(중략).
거칠게 말해서, 덕 윤리학은 인간과 인간 공동체가 윤리적으로 비치기위해 익히기를 갈망해야 할 윤리적 덕들을 명시하려고 시도한다. 덕 윤리학은 인간을 선(善)을 열망하는 도덕적 동물로 만들어 주는 도덕적 특성과 실천의 단련과 계발에 대한 이론이다.³ - P161

3 덕 윤리학에 대한 더욱 섬세하고 완전한 역사는 Honderich 1995, pp. 900-901과 며야 1999, pp. 960-961에서 찾아볼 수 있다. - P350

덕 윤리학은 동양 세계와의 횡 문화적 접속(cross-cultural connec-tion)의 기회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유학(Confucianism)과 같은 동양고대 윤리 사상의 상당 부분은 덕 윤리학과 원칙들이나 수사학을 공유하고있기 때문이다.  - P162

(전략). 대상으로서의 게임, 즉 게임 시스템은 내포적 가치(embeded values)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덕 윤리적 접근법은 단지 게임 안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그런 가치에만 관심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법과가다머의 해석학적 현상학 간의 접속이 중요하다. - P162

(전략). 대개 제국 경계들의 안보를 지키는 데에만 사용되는 자원들을 말이다. 비폭력이 플레이어를 위한 선택 사항이라는 사실은 흥미롭기는 하다. 비폭력적 문제 해결이라는 그것의 내포 가치는 실제적인비실용성(impracticality) 때문에 게임 전략으로서는 거부된다. 플레이어들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를 비폭력적 전략을 이용하여 승리할수 있는 게임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 속에서 덕 윤리학은 그 연구 공간을 발견한다. - P163

이러한 덕 윤리학적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플레이어 중심적이다.
개인적 관점에서는 물론 플레이어 커뮤니티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그러한 접근법은 플레이어를 덕이 있는 존재들(virtuous beings)로정의한다.  - P163

자신들이 그렇게도 신중하게 디자인해 놓은 미리 정해진 행위를 작동시킬 숙련된 사용자들로 여기는 것이다. 반면 많은 게임 디자이너들이 플레이어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많은 중요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를 다소 수동적인 형상으로 보는 이런 식의 담화 시스템과 벌이는 그들의 상호작용은 이미 계산된 것이었고 다소 제한적이다-⁷는 지배적인 견해로 남아 있다. - P163

6 "우리는 지루해지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플레이어를 보호할 것인가? 우리는 그를 전진하도록 몰아붙인다. 양치기 개가 양들을 몰듯이 말이다. [...] 여러 번 레벨 디자이너는 그 환경을 통과하도록 플레이어들을 이끌거나 그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밀어 붙인다. 하지만 늘 플레이어들은 추동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 게임은 침체될 수 있다" Byrne 2005, page 65. 또한 Rouse 2000, 1장, 7장 그리고 23장을 보라.
7 Rouse 2000, p. 127을 보라. - P350

이는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존재하기 위해 게임은 플레이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시스템과 관계 맺는 플레이어/유저의 존재는 게임 경험의 윤리적 좌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플레이어는 수동적인 수신자가 아니다. - P164

이를테면 <그랜드 세프트 오토: 샌 안드레아스>와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몇몇 차원들을 갖는 윤리적 행위다. 이 게임의 규모 자체만 감안한다면, 플레이어는 탈 것들과 지역들(locations)과 같은 이 세계의 흥미로운 아이템들 몇몇을 열기 위해 편법을 사용(cheat)하지 않을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랜드 세프트 오토: 샌 안드레아스>는 또한 폭력으로 유명한 게임이다. - P164

 같은 게임 경험 안에서 혹은 그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심급들 내에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우리가 맺는관계는 게임 플레이의 실천이다. 내가 주장한 것처럼 도덕적인 실천인것이다. 그것은 도덕적이다. 왜냐하면 게임 커뮤니티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혼자서든 다른 플레이어들의 집단을 통해서든 이 게임을통해 경험할 공유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 P165

플레이어를 덕이 있는 존재로 규정할 때, 나는 실천적 지혜 혹은 프로네시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사용한다. 이는 어떤 선택들이플레이어로서 자신의 덕을 더욱 더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플레이어가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나는 놀이적 프로네시스(ludicphronesis)를 도덕적 지혜로 정의한다. - P165

이러한 지혜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직면하게 되는 그러한 딜레마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덕 윤리학의 맥락에서 놀이적 프로네시스는 게임 플레이 행위에 존재하는 유효한 윤리적 지식이다. 이는 플레이어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한다. 이러한 게임 관련 실천적 지혜는 게임 플레이 경험 동안 하게 되는 판단 과정을 알려줄수 있는 윤리적성숙도를 키워 줄 뿐만 아니라 몸주체(body-subject)로서 플레이어 주체를 보여 주는 유효한 지표로도 작용할 것이다. - P166

놀이적 프로네시스의 올바른 발전과 적용을 의미하는 컴퓨터게임내에서의 좋은 판단은 디자인된 환경의 유저로서 플레이어-주체가 가져야 할 덕들을 강화한다. 프로네시스의 올바른 사용은 플레이어 주체의 윤리적 타당성을 강화하며 게임의 윤리적 경험에 있어 플레이어에게 가장 중요하다. - P166

좋은 게임의 심장: 놀이의 해석학적 순환

덕 윤리학의 관점에서, 플레이어는 덕이 있는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게임 상황에 몰입할 때, 플레이어는 게임이 부과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운동 기능, 추론 능력과 논리력, 지능을 사용한다. 그들은 또한 윤리적 추론 능력(reasoning)을 적용한다. - P171

덕이 있는 플레이어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게임과 관련하여 떠올리곤 하는 전략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 의미에서도 자기 행동을 반성한다. 덕을 갖춘 컴퓨터게임 플레이어는 자신의행위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시스템의 디자인에 관해서도 비판적이고 윤리적으로 반성을 해야 한다. - P171

덕 윤리학이 지지하는 관점 내에서, 컴퓨터게임의 윤리는 자발적으로그 게임에 참여하는 행위자의 윤리다. 그렇다면 다음 두 가지 이슈가 고려되어야 한다. 하나는 행위자로서 게임의 윤리와 플레이어가 아닐때 그 행위자의 윤리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다른 이슈는 도덕적 행위자로서의 플레이어와 도덕적 대상으로서의 게임 간 관계와 관련이있다. 컴퓨터게임의 윤리학이 발견될 수 있는곳은 이러한 관계들 속에서다. - P172

놀이적 프로네시스는 게임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윤리적 자원이다. 놀이적 프로네시스는 플레이어-주체와 게임 경험 외부의 문화적 존재에 비추어 게임 경험을 윤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정의될수 있다. 그것은 놀이적인 해석학적 순환의 적용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 요소다. - P173

몸을 지니며 육체화(embodiment)와 젠더라는 이슈들을 산출하는 어떤 사람이다. 그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 있는 주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또한 게임 시스템과 게임 상황을 해석함으로써 게임을 실제적인 경험으로 탄생시키는 몸주체이기도 하다. - P173

어떤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게임 시스템을 해석하고 적합한 전략을 선택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최적의 선택일 필요는 없다. - P173

덕 윤리학의 관점에서 선한 플레이어는 자신의 윤리적온전성(integrity)을 지키기 위해 놀이적 프로네시스를 사용한다. 이는 게임 안과 밖 모두에서 이루어진다.

- P167

덕 윤리학과 도덕적 대상으로서의 컴퓨터게임

여기에서 선택한 덕 윤리학적 접근법은 플레이어를 컴퓨터게임 윤리학에 관한 반성의 초점으로 삼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대상으로 게임이 갖는 도덕적 본성을 숙고하고 그것이 보다 플레이어 중심적인 덕 윤리학적 관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피는 일은 유용하다. - P167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게임의 중심 주제를 이루는 끝없는전쟁을 공급하겠다는 개발자의 의도와 허구적 세계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행위유도성에 대한 어떤 설명을 제공한다. 그러한 제한을 부과함으로써, 개발자들은 반대 진영들의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의 차이들을 해소하려 노력하거나 극도의 힘을 지닌 컴퓨터 통제 캐릭터들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는 어려운 시간을 가질 것임을 말한 셈이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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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레이터 샌드라 필립스 SandraPhillips는 《폭로》의 카탈로그 에세이에서 아버스의 작업을
"공감과 비평적 거리 사이의 생산적 긴장 속에 위치시키는데, 이는 그 차이를 쪼개고 있다. 결국 이러한 논쟁들은 아버스 작품의 본질보다는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공감의 공적 일대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여주며, 이 논쟁 속에서 아버스는 승자가 되었다가 패자가 되었다가 패자가 되었다가 승자가 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공감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카메라 작업에 대한 아버스 본인의 철학과는 배치된다. 아버스가 그 기형들을
"찬미했다"거나 많은 대상에게 깊은 애정을 가졌다거나, 그들과 관계를 발전시켜나갔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 P307

다시 장난감 수류탄을 든 아이 사진으로 돌아가보자. 이 사진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많은 사람은 여기에 베트남전쟁에 대한 아버스의 비판적 논평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⁶

6 Colin Westerbeck and Joel Meyerowitz, Bystander: A History of StreetPhotography (New York: Little, Brown, 1994) 17 Joel Meyerowitzo이 주제에 관해 쓴 글 참조. - P308

아버스 또한 사진 이론가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은 그보다 더 분명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의 부분적으로는 아버스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진술한 제한된 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버스의 딸 둔 Doon Arbus과 친구이자 스승, 연인인 마빈 이스라엘이 정리한 첫 번째 모노그래프,
《다이앤 아버스: 구경 모노그래프 Diane Arbus: An ApertureMonograph》 [이하 《구경 모노그래프》]의 서문에 실린 15쪽짜리글이 그것이다.  - P309

 이 책에서 다룬 모든 여성처럼, 아버스는 공감을 거부하는 것이 관심과 리얼리티를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고 이해했다. - P309

나이스하지 않음에 관하여

(전략).
《폭로》라는 제목은 전시된 작품을 묘사하여 아버스를알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녀 작품의 특성 역시 잘 담아내고 있다. 아버스의 사진 중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즉 나체주의자, 타임스스퀘어 휴버트 박물관에 사는 사람들 같은 기형들이나 (엉클 샘Uncle Sam이나 비잔틴 동로마 제국의 적법한 후계자라고 주장하는로버트 드로한 코르터네이 왕자 Prince Robert de Rohan Courtenay 같은) 기인들, 또한 난쟁이, 거인, 일란성 세 쌍둥이, 남녀추니같은 유전적 이형들, 드래그 퀸이나 매춘부, 동성애자 등의성적 추방자들, 공공시설에 수용된 정신병자들과의 만남에서 나왔다. 아버스는 평범한 사람들 젊은 커플, 사회주의자, 교외의 가족, 아기들뿐만 아니라 이런 대상들의 "틈gap", 즉 사람들이 의도한 바와 실제의 자기표현 사이의 거리를 포착하기를 좋아했다. - P312

<구경 모노그래프>에서 그녀는 ("흠Haw" 이라고도 불린) 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런 식으로 봐야 하는데 결국 다른 식으로 보게 되는 그런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람들이 관찰하는 바다. 거리에 있는 어떤 사람을 볼 때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그 사람에게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흠이다. 이런 특징들이 우리에게 주어져야 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우리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히 다른 것들을만들어낸다. 우리의 겉모습은 우리를 특정 방식으로 생각해달라고 세상에 보내는 신호와 같지만,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알아줬으면 하는 것과 어찌할 도리 없이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알게 되는 것 사이에 핵심이 있다. 그것은 내가 늘 의도와 결과사이의 틈이라고 불러온 것과 연관된다."¹¹ (강조는 필자)

11 Diane Arbus: An Aperture Monograph, ed. Doon Arbus and MarvinIsrael (New York: Aperture, 1972), 1-2쪽: 앞으로는 DAA로 쓰고 쪽수를 병기함. - P313

카메라에는 "일종의 엄정함" 과 "우리가 평소 겪지 않는 면밀한 응시가 있다. 이는 우리가 서로에게는 쓰지 않는 방식이다. 우리는 카메라가 개입할 때보다는 서로에게 더 나이스하다. 카메라가 개입하면약간 차갑고, 약간 가혹하다." (DAA, 2) 그녀는 마빈 이스라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인정했다. "내 생각에 사진 찍힌다는 것은, 조금, 상처가 되는 것 같아." (R, 146). - P315

궁극적으로 아버스는 사회성 sociability 이라는 부드러운포커스에 맞서 리얼리티를 향한 자신의 열망을 내걸었다. 아버스 식으로 보자면 ‘틈‘은 숨겨진 것을 공개하거나 폭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위반은 "관음증"과는 다르다. - P315

 "나는 좀 두 얼굴의 인간 같다. ㆍ 그건 정말로 뭐랄까 괴로운 일이다. 나는 그냥 너무 나이스하다. 모든 게 우와아아이다. 내 입으로 ‘멋져요‘라는 말을 하면 그건 정말 진심으로 멋지다고 말한 거다. 그건 내가 그런 모습이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다. 내 아이들이 그런모습이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키스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게 놀랍도록, 부정할 수없도록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DAA, 1) "대단한 것"을위해 기꺼이 비위를 맞추려는 이러한 태도는 특정한 방식의자기표현을 원하는 대상의 욕망에 맞서 대상의 리얼리티를이끌어내려는 아버스의 자발적 의지다. - P316

인간의 눈은 흠을 보지 않는 법을 배우지만, 카메라는그렇지 않다. 적어도 우리 생각은 그렇다. 왜냐하면 사진가가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사진을 잘라내며 만들어내는 시각에 대해 우리가 아무리 논쟁을 벌인다 해도 카메라가 카메라 앞의 리얼리티를 포착한다는 것은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 P317

《폭로》는 아버스가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리얼리티를 추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버스의 비평가들과 숭배자들은 모두 리얼리티를 포착하려는 그녀의 의욕을 치료의 형태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는 《구경 모노그래프》에실린 그녀의 말, 즉 어린 시절 자신은 현실reality을 박탈당한기분이었고 그 비현실unreality의 느낌을 사진 작업으로 보상받으려고 했다는 진술에서 나온 해석이다.¹³

13 예를 들어, Anne Tucker, The Woman‘s Eye(New York: Alfred A. Knopf, 1973)참조. 이 이야기와 이에 대한 추론은 인용구만큼이나 리뷰에서 종종 되풀이된다. 이는 어머니가 사망한 후 둔이 1972년 10월 《미즈 매거진Ms.
Magazine》에 쓴 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 P319

불행에서 면제받아 괴로워하느니 세상의 역경을 만나겠다는 아버스의 결심이 손택이 주장했듯이 나이브하건 아니건, 아버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태어난 자신의 기형들을 늘 "왕국"과
"귀족"과 결부시켰다. 아버스는 백화점의 공주였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왕국은 없었다. 다시 말해서, 단지 트라우마를 가짐으로써가 아니라 트라우마를 견디고 극복함으로써 획득하는 통치권을 이해하지 못했다. - P320

 샌드라 필립스가 《폭로》에 실린 에세이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내용에 대한 이러한 애착으로 아버스는 당시 유행하던 예술사 경향의 대척점에 자리한다. 하지만 리얼리티를 포착하는 것은 매우 다루기 어려운 형식적 문제였다. 사진이 늘 리얼리티를 복제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매체로 지명되어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랄 정도로 말이다. - P321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녀는 플래시를 사용해 차이를과장하고 배경의 깊이를 없애 사진 대상을 전면에 드러내기시작했다. 그녀는 커리어 아주 초반부터 필름 자르기를 하지않았는데, 이는 아버스가 작업을 시작한 시기(195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흔하던 방식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찍은 사진이나 거리 사진들에 주로 나타났다. - P322

사진은 개인의 자기표현 self-fashioning과 마찬가지로 작인의 실패, 즉 의도한 바와 성취한 바 사이의 틈에서 나왔다.
그녀의 기술적 실험은 기술을 완성하기 위한 시도라기보다는 카메라의 "저항" (DAA, 5)을 조절할 다양한 양식을 시험하며 놀아보는 것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 P323

 다시 말해 아버스는 사진의 결과를 통제하지 못했고 노력의 결과로 나타난 것들을 종종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도와 결과 사이의 틈을 견디느라, 심지어 그 속에 머물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녀는 섬광등strobe을 좋아했는데, 왜냐하면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은 본질적으로 눈이 멀기" 때문이다.(DAA, 9) 그녀는 "창작invention"의 "심사숙고한 선택들",
심지어 "수백만 개의 선택들"에서부터 나오는 "기술의 신비"를 사랑했다(그 선택 중 정말로 계획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 P323

《구경 모노그래프》에 실린 단편적 생각들이 아버스를나이브하거나 그저 직관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면, <폭로>의 <연보>는 아버스가 의도를 회피하기 위해 들인 엄청난 노력과 숙고를 보여준다. ‘폭로‘ 전시회는 아버스가 자신의 사진들, 잡지와 신문, 책에서 찢은 사진들, 자신의 작품과 무의식적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인용구들을 붙여둔 콜라주 벽을 재현해놓았다. - P324

다양한 문맥들 속에서 아버스가 진실, 또는 사실, 또는 리얼리티라고 칭한 이것은 사진 속에서 표현하기가 놀라울 정도로 어려웠다. 그것은 일부는 운, 즉 사진가에게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수백만 개의 보이지 않거나 무의식적인 선택들의 산물이었고, 일부는 정말로 거기 있는 것에 대한 이해를 무디게 하는 사회적 섬세함nicetics에 대한 거부였다. 그녀는 "정확히 있는 그대로"는 할 수 없었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더 가깝게 할 뿐이었다. - P325

 아버스가 자신에관해 언급했던, 잘 알려진 마지막 진술로 끝을 맺겠다. "내가 찍지 않았다면 아무도 보지 않았을 것들이 있다고 나는 정말로 믿는다." (DAA, 15) 여기서 아버스가 의미하려 한 바는 자신이 찍은 숨겨지고 사회적으로 배재된 사람들이라기보다나이스하려고 노력하다가 보통 간과하게 되는 리얼리티였을 것이다. - P326

작인의 한계

《폭로》의 《연보》에는 아버스의 초기 글 중, 고등학교 1학년 작문수업에서 초서 Chaucer와 세르반테스Cervantes 에 관해 쓴날카로운 글이 실려 있다. 이는 그녀의 "성숙한 감수성"이 일찍이, 아마도 심지어 완전히 형성된 상태로 나타났다는 증거로 소개되었다. - P326

초서는 "세상은 유일무이하고 여기 있기 때문에 물리적 세상을 사랑했다.(R, 128) 또한 돈키호테의 ‘광기‘는 극한까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방법이다". 이런 식의 짝짓기는 아버스가 관심을 표명하는 형식과
"극한까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R, 128) 그녀 사진의 대상들, 특히 초기 사진의 대상들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는 그걸로 충분히 좋다고 느꼈다"라는 문구에 잠시 멈춰서 자신으로 존재하는 이 장엄한, 어쩌면 미친 프로젝트들과 극한이라고도 칭할 수 있을 ‘틈‘의 문제가교차하는 지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 - P327

아버스가 초기에 쓴 한 에세이는 한계선의실재와 그 한계선을 가지고 작업하는 "섬세한 기술"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¹⁸ 1961년 11월호 《하퍼스 바자》에 실린 에세이 <완전한 원>에는 원래는 "신사처럼 보이는 숙녀"스토메 데라르베리 Stormé DeLarverie를 포함해 다섯 명의 "이상한" 사람들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이 인물은 <하퍼스>에서는 삭제되었지만, 다음 해 《무한대 Infinity》에 재수록된 에세이에 다시 들어갔다). 데라르베리는 아버스에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당신한테 자신과 인류에 대한 존중이 있다면, 자연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겠죠." (R, 55)

18 Diane Arbus, "The Full Circle", Infinity, February 1962, 4-13%, 19-21,
reprinted from Harper‘s Bazaar, November 1961. - P328

<무제>의 연작 사진들은 아버스의 마지막 프로젝트의결과물들로, 당시 정신지체아라고 불렸던 사람들을 위한 시설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여기서 아버스는 핼러윈 축제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는데, 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표현의 판타지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입고 있는 옷에 종종 어리둥절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다이앤 아버스의 사진 <무제> 연작(1969-1971) 참조]. - P329

이 모든 사진 속 자기표현은 늘 작인의 부족, 자신을 창조하려는 노력과 그 노력의 실패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다. 이것이 《구경 모노그래프》에 실린 사진들이 폭로하는 바이며, 그 때문에 많은 비평가가 그 사진들을 사적 영역에 위치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 P330

20세기 미국문학에 매카시가 남긴 큰 족적을들자면, 아마 가장 유명한 단편인 <브룩스 브러더스 정장을 입은 남자>에 나오듯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혹 장면에서 걸출하게 드러나는 소극의 재능이다. 《그룹》과 자서전에서도, 매카시의 사실성은 지면에서 "폭발" 해 여성들이품고 있던 성적 로맨스와 에로티시즘의 환상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 오히려 당대의 남성 작가들은 외설에 눈을 돌려 현대문학의 감상적 요소를 탈피하거나 현대문학을 다시 에로틱하게 만들려 하던 시점이었는데 말이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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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올해 4월 헌법재판소는 의미심장한(?) 결정을 내렸다. ‘강제적 게임셧다운제가 합헌이라는 판결이었다. 일명 ‘신데렐라법‘이라 불리기도 하는이 법은 "인터넷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 P5

우리의 국가 기구는 대중의 게임포비아(game-phobia)에 기대어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늘리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들도 안다. 생각보다 게임이라는 것이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이는 각 부처마다 내놓는 정책을 봐도 알 수 있다.  - P5

 이는 이번 헌재의 판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인터넷게임 자체는 유해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높은 인터넷게임 이용률 및 중독성 강한 인터넷게임의 특징 때문에게임은 죄인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물론 게임이 왜, 그리고 어떤 점에서 중독적인지 그 어떤 기관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을 내놓은 바는 없다. - P6

물론 게임에 중독적 요소가 있고 거기에 중독되는 사람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일찍이 영화와 TV, 만화 등도 중독의 대상으로 비판을 받은바 있다. 하지만 문화에서 ‘중독‘은 ‘몰입‘의 다른 이름이고, 둘의 차이와 경계는 미미한 것일 수 있다. 소설에 중독된 경험이 없었다면 위대한작가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6

책의 번역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른바 ‘게임악법‘을 장황하게 펼쳐놓는 것을 독자들이 양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만큼 이러한 법안들이 국내의 게임 생태계에 몰고 올 파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위기는 시작되었다. 이는 국내 게임 산업의 위축과 중국 창조산업의급부상에서도 확인된다. - P7

사실 국내의 일천한 게임 인식과 담론의 확장과 재생산에는 게임생태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책임 역시 크다. 정치인과 관료, 법조인이나 언론인에게 게임공포증의 담론을 사회적으로 유통하게 방조하거나 관망한 것 역시 이른바 ‘우리‘이기 때문이다. - P8

온갖 게임 법안들이 가져놀 파장에 전전긍긍하면서도 그들은 게임 연구자들이나 이용자들보다 더 자세를 낮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과거 영화나 텔레비전에 대한 규제의 움직임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것이 관련 업계였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측면이 있다. - P9

하지만 게임에 대한 전방위적 공세는 ‘문화연대‘라는 한 조직의 백병전으로는 버텨낼 수 없다. 땀으로 쓰인 그들의 성명서나 보고서는 값진 내용을 담고 있다(문화연대의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 P9

윤리적 게임 경험의 조건, 즉 윤리적 게임 플레이와 디자인의 잠재성 연구에 복잡한 철학 이론이 사용되고 있지만, 시카트의 주장은 간단하다.
예술 형식이자 오락 형식인 게임이야말로 윤리적 경험을 위한 유익한대화의 촉매가 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시카트의 말처럼 이 책은 다소 난해하다. - P10

사건과 진리, 충실성과 윤리 같은 바디우의 개념들은 ‘정치적인것(the political)‘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시카트는 애써 그것을감추려고 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다. 행위의 이론가(the theorist ofthe Act) 바디우에게 사건은 지금의 현실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정치적좌표를 마련하려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미디어) 현상학, 정보윤리학의 전공자들이 보기에 이러한 불만과 아쉬움이 끝이 없을 것이다.  - P10

 게임 연구와 인문학적 사유를 접속하려는 시도가 그만큼 소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카트의 방점은 인문학과 윤리학의 성과를 경유하여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재구성하는 것에 찍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후의 작업들을 위한 단초로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2014년 9월 20일 진주에서
김겸섭
- P11

01 서론

<데이어스 엑스(Deus Ex)>¹는 호평을 받은 1인칭 슈터 · 롤플레잉 컴퓨터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사이버네틱 슈퍼솔저(supersoldier)로서 어떤 디스토피아 세계를 탐색한다. 플레이어 캐릭터(JC Denton)는 국제연합 반테러동맹군 최고의 전투 도구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 P1

처음 <데이어스 엑스>를 플레이했을 때 나는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하여 모든 타깃을 제거하는 무모한 암살자로 행동했다. 내가 맞서 싸우는 테러리스트들은 결점이 많고 무장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며, (중략). 테러리스트들이 이야기한 내용은 나의 상급자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반박하고 있었다. 누가 옳았는가? 국제연합 반테러동맹군은 어떤 유형의 무장 세력인가? 테러리스트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P2

<데이어스 엑스>는 매력적이면서 디스토피아적인 윤리 게임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플레이어는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들의 목표와 목적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NSF 멤버들의 대화 엿듣기는 이 게임에서 모든것이 선 대 악으로 이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 P2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은 내가 <데이어스 엑스>를 플레이하는 동안 생겨난 것들이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어떤 게임이 나에게 게임 메커니즘과 게임 세계 디자인을 통해내 행위의 의미를 숙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P3

그 이후 나는 컴퓨터게임의 윤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데이어스 엑스>에 대한 나의 경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이해하려고 애써왔다. 나의 의도는 그러한 윤리적 게임 경험이 일어나는 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조건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 P3

도덕성의 급소

컴퓨터게임은 지난 20년의 상당 부분 동안 매스미디어의 표적이 되어왔다. 게임이 심각한 사회 문제와 결부된 10대 연쇄살인범의 훈련 장치라는 고발은 게임을 도덕적 패닉 상태를 초래하는 일반적 용의자로 만들었다. 미디어의 흔한 주장 중 하나는 게임이 폭력적 행동과 폭력에 대한 둔감화를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 P4

이러한 도덕적 패닉은 보다 광범위한 문화적 이슈의 어떤 징후다.
탈산업사회에서 우리는 컴퓨터게임을 오락과 창조 및 사회화를 위한 가치 있는 미디어로 이해하고 장려한다. - P4

이 책은 컴퓨터게임 윤리에 대한 탐색이다. 윤리는 도덕적 가치의 체계 혹은 집합, 그리고 이러한 가치의 분석 도구로 정의된다. 도덕은 행위나 대상들의 옳음 혹은 그름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의 적용은 선, 악, 해로움, 의무, 가치 같은 문제들에 관한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접근법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컴퓨터게임과 컴퓨터게임 플레이어들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탐색이다.
이 책에서 나는 컴퓨터게임이 윤리적 대상이라는 것, 컴퓨터게임 플레이어들이 윤리적 행위자(agents)라는 것, 컴퓨터게임의 윤리가 책임과 도덕적 의무의 복잡계 네트워크(complex network)라는 것을 주장한다. - P5

나는 몇몇 나라들에서추방되기도 한 <맨헌트(Manhunt)>²가 성숙한 플레이어들에 의해 플레이된다면 풍요로운 윤리적 경험일 수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반면 자칭플레이어들에게 도덕적 선택을 취하도록 허용한다고 하기도 하고 그렇게 플레이되기도 하는 <구 공화국의 기사단(Knights of the OldRepublic)>³과 같은 게임도 비윤리적인 게임 디자인의 사례일 수 있다. - P6

이 책에서 나는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이해하기 위한 프레임(framework), 즉 게임을 디자인된 대상이자 플레이어 경험 둘 다로 정의하려는 프레임을 제안한다. 나는 철학과 게임 연구에서 빌려온 접근법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 대상으로서의 컴퓨터게임과 윤리적 주체로서의 플레이어에 대한 형식적 이해에 기초한 프레임을 제시할것이다. 컴퓨터게임은 윤리적 주체에 의한 도덕적 대상의 경험이다. - P6

 컴퓨터게임의 비윤리적 콘텐츠로부터 게임이 유발한 윤리적 이슈들에 대한 게임 디자이너의 책임까지 여러 이슈를 논의할 수 있는 도구 말이다.
학문적 관점에서 나의 연구는 컴퓨터게임 연구(Computer gamestudies)라 불릴 수 있는 신생 분과에 속한다.⁴ 그것은 또한 컴퓨터게임 플레이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철학적 탐색이기도 하다. - P7

있을수 있는 이 모든 비판들에 대해 나는 그저 그들이 옳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철학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컴퓨터게임이 제기하는 몇몇 흥미로운 이슈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언어와 윤리 철학의 관점 속에 끼워 놓은 이슈들 말이다. - P8

이 책은 도덕적 책임성을 갖는다. 이 책은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소개한다. 첫 세장들을 구성하는 이론의 대부분은그러한 도덕적 의무에 대응한다. 논거들은 견실해야 하고,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을 만큼 설명이 튼실한 이론에 기반을 두어야하는 것이다. - P9

이 책의 마지막즈음에 가면 독자는 왜 우리가 윤리적 플레이어인지,
또한 컴퓨터게임의 가상 세계에서 우리가 행동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규칙들과 전략 및 게임 디자인의 윤리를 찾아가는 여행기다. 그리고 이 책은 게임을 플레이할 때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 P9

목적과 목표

이 책은 하나의 목적이 있다.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이해하는 것 말이다.
나는 이러한 이슈에 어울리는 대답을 제공하는 것, 컴퓨터게임에서의 윤리 탐구와 분석 및 적용을 위한 프레임을 제공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 P10

나의 주된 목적이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들 게임에서 발견하는 윤리적 담화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어떤 방식들로 혹은 어디에서 그러한 담화들을 찾을지, 어떤 이론들이 적용될 수 있는지를 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P10

선례들

어떤 연구도 전적으로 독창적이지 않다. 학자로서 우리는 전통의 일부다. 그러니 그러한 전통을 인정하고 그것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철학적 관점에서 쓰인 컴퓨터게임의 윤리 연구가 많은 선례들을 갖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에서 내 작업이 속해 있는 전통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에다가 또 내 자신의 접근법과 친화성을 갖는 몇몇다른 텍스트들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학제간 접근법을 취한다. - P11

이 책의 주요 주장들에 의미가 있는 첫 번째 선례는 프로벤조(Eugene F. Provenzo)의 『비디오 키즈: 닌텐도 이해하기(Video Kids:Making Sense of Nintendo)』⁵다. 이 작업에서 프로벤조는 닌텐도 문화안에 시뮬레이트된 폭력과 젠더 묘사 관련 이슈들에 집중하면서 닌텐도제작 컴퓨터게임과 문화적 장치로서 그 게임이 갖는 효과를 기술한다. - P12

 문화적 대상들로서 컴퓨터게임은 무엇인가? 우리가 컴퓨터게임을 플레이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비디오게임은 우리의 도덕적 영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내놓기 위한 프로벤조의 프레임은 꽤 다양해서 심리학부터 문화연구(culturalstudies)와 이데(Don Ihde)의 후기현상학(postphenomenology)에 이른다.⁶ 이는 그의 결론들에 튼튼한 토대를 제공한다. - P12

프로벤조는 어린이 플레이어들을 창조적 능력들을 갖춘 존재로 보는 암묵적인 담론을 개진한다. 이러한 능력들은 어린이 플레이어들의 도덕적 영역도 포함한다고 한다. (중략). 게임 경험에서도 플레이어들 고유의 가치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⁷ - P13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통제와 변형의 가능성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따라서 플레이어가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의 명령을 따르고 복종한다고 보는 점에서 그는 기술결정론자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능력을 박탈당한 플레이어에 대한-바로 어린이 플레이어에 관한 견해다. - P13

프로벤조는 컴퓨터게임 플레이어들을 무비판적 피조물로 그리고있다. 바로 게임 그 자체는 제한된 선택지들만 제공하기에, 플레이어들은 이성적으로 해명하고 도덕적으로 사유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내주고만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뿐만 아니라 게임을 윤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는 컴퓨터게임 윤리와 가치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우리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라는 반론을 펼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에서조차도 게임을 플레이할 때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 P14

윤리 분야와 컴퓨터게임 내에서 참조할 수 있는 또 다른 작업은 셰리터클(Sherry Turkle)의 제2의 자아 컴퓨터와 인간 정신(The SecondSelf: Computers and Human Spirit)』다.⁸ 여기서 터클은 우리의 사회적·심리적 삶의 일부로서 컴퓨터가 지닌 면모를 탐색한다. - P14

터클의 작업은 본질적으로 자아의 레토릭(rhetoric)에 컴퓨터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리학적 탐색이다. 그래서 그의 결론들은 나의 것과분명 다르다. 이런 경우 철학과 심리학 간의 방법론적 상이함은 너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클의 작업이 하나의 선례로 간주될 수 있는 근본적 이유가 있다. 제2의 자아라는 바로 그 개념 말이다. - P15

컴퓨터게임은 그러한 문화의 빼어난 예들이다. 컴퓨터게임은 기계적 제약들을 크게 벗어난다. 그래서 게임의 표현능력은 견줄 만한 것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프로벤조와 유사한 결론 방향을 취하면서, 터클은 그러한 모든 능력을 행하는 것이 플레이어들 자신의 자아형성과 표현 능력 면에서 플레이어들(다시 아이들이다. 성인플레이어들이 아니다)을 제한하는 것임을 강조한다.⁹ - P15

 터클에 따르면 컴퓨터게임이 하는 것은 우리의 자아를 다시 중심에 놓는 일(re-center)이다.¹⁰ 하지만 그것은 게임 경험과 접촉하는 제2의 자아다. 그녀는 또한 권한을 지닌 유저들의 존재를 강조한다.¹¹ 이는 플레이어들이 그저 규칙들을 따르고 복종하는 생각 없는 좀비들이 아님을 의미한다. - P15

 내 생각으로 터클의 작업에는 제2의 자아와 플레이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 사이에 어떤 혼란이 존재한다. 그것은 제2의 자아의 본성을 숙고하는 작업이 지닐 수도 있는 윤리적 함의들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차이의 핵심은 ‘제2의 자아‘라는 표현에서 발견될 수 있다.
‘제2(second)‘라는 말은 하위이고 그 위에 선행하는 ‘제1(first)‘이 있다는것을 함축한다. 터클의 작업에서 그 ‘제1의 존재는 다소 불명료하다. 하지만 그것은 제2의 자아가 갖는 윤리적 자율성을 약화시킨다. - P16

컴퓨터게임의 윤리에 관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글은 아마 레이놀드(Ren Reynold)의 "좋은 게임 플레이하기 게임의 도덕성 이해를 위한철학적 접근(Playing a ‘Good‘ Game: A Philosophical Approach toUnderstanding the Morality of Games)"일 것이다.¹² 거기서 저자는<그랜드 세트 오토IⅡ (Grand Theft Auto III)> (DMA Design/RockStarNorth 2001)의 분석을 위해 세 개의 상이한 이론들, 즉 결과주의(consequentialism)와 의무론(deontology) 및 덕 윤리(virtue ethics)를 적용한다. - P17

 레이놀드는 어떤 게임이 좋은지 나쁜지를 이해하는 방법을제한하면서, 덕 윤리가 게임의 도덕성 이해를 위한 적합한 프레임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덕(virtue) 이론이 21세기 컴퓨터게임의 분석을 위해 가장 적절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¹³ - P17

 플레이어는 그 세계에서 동일한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며 보상을 받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또한 그들 자신의 가치와 게임 경험을 통해 그들이 발전시키고자 하는가치를 반성하는 윤리적 행위자인 플레이어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스포츠 전통의 철학이 이미 주장해 왔던 것처럼 말이다.¹⁴ 이러한 관점 안에서만 어떤 게임이 좋은지 나쁜지를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 P18

다른 가치를 보여 주는 다른 선례들이 존재한다. 매코믹(MattMcCormick)의 "폭력적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나쁜 일인가?("Is It Wrong to Play Violent Video Games")"¹⁵는 폭력적 컴퓨터게임이 일으키는 도덕 관련 이슈를 소개한다. 이 논문은 그 이슈에 공리주의 의무론(deontology). 덕 윤리(virtue ethics)를 적용하면서, 덕 윤리가 컴퓨터게임에 의해 발생된 도덕적 문제의 이해에 보다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이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 P18

매코믹은 어떤 특정한 게임을 지목하기보다는 보다 일반적 관점에서 비디오게임에 대해 기술한다. 이는 문제점으로 생각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컴퓨터게임이 유사하지 않고, 장르와 유형의 차이점이 윤리적 함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코믹의 설명은 폭력적 컴퓨터게임의 플레이에 있을 수 있는 윤리적 함의에 대한 미묘하고도 세심한 분석이다. 그의논문은 이들 게임의 플레이 행위에 공리주의를 적용하며 논문 제목의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시작한다. 놀랍게도 결과는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¹⁶ - P19

 그런데 다시 "컴퓨터상에서든 럭비장에서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현실의 삶과 동일하지 않다"¹⁷는 사실은 컴퓨터게임 플레이에 대한 칸트식의 비평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만일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자 하는 어떤 사람의 성향에 게임이 미치는 해로운 효과들에 우리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폭력적 비디오게임이 수반하는 광범위한 활동들을 비난하도록 우리는 강요받을 것이기 때문이다."¹⁸ - P19

컴퓨터게임이 도덕 의식을 높인다는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도덕적 관심사들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매코믹의 논의에 들어있는 근본적 결점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덕 윤리는 컴퓨터게임의 플레이를 비윤리적행위로 규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과도한 제 멋대로의 부당한 행위의 시뮬레이션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잘못된 타입의 성격을 키우기"¹⁹ 때문이다. - P19

매코믹의 주장은 충분한 논의를 보여주며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다. (중략).
≪국제정보윤리리뷰≫의 2005년 12월호²⁰는 ‘e-game‘의 윤리에 전적으로 지면을 할애했다. 그 간행물에서 두 편의 글이 게임과 윤리 사이의 관계를 생산적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 P20

콘셀보의 글은 컴퓨터게임의 윤리에 대한 체계적(layered) 이해를 제시하는데,²¹ 이는 5장에서 다룰 나의 몇몇 결론들과 다소 유사한 점이 있다. - P20

이 저자들은 "우리가 플레이하는 방식들은 문명마다 다르다. [...]그 방식은 우리의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²²는 것을 인정한다. (중략). 이러한 주장은 컴퓨터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분석에서 되풀이 될 것이기도 하다.
도덕-크른코빅과 라르손의 글은 게임 디자이너들의 윤리적 책임성,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윤리적 고려들을 참작하지 않을 그들의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종종 언론의 자유(free-speech)의 법률에 의존하는지"²³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설득력이 있고 영리한 비평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철학적 관점에서 강력한 사례를 구성하는 데 성공하고있다. - P21

01 서론

1 Ion Storm Inc. 2000.
2 Rockstar North 2003.
3 Bioware 2003.
4 게임 연구분야에 대한 설명으로는 올셋(Aarseth) 2001과 에스켈리넨(Eskelinen)2001을 볼 것
5 Provenzo 1991.
6 Ihde 1990,
7 "<나쁜 녀석들(Bad Dudes)>, <로보캅> 혹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 같은게임에서 상징적 놀이 과정의 부분으로서 아이가 도덕적 정체성들을 실험할 수있고 환상들과 공격적 행동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판적 요소가 실종되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위해 플레이의 조건을 규정하고 동제할 수 있는 아이의 능력인데도 말이다. 비디오게임의 콘텍스트 속에 명시되어 있는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 사이의 갈등은 협소하고 제한적이다. 그리고 심지어 아이에게 더욱 중요한 것, 그것이 아이 대신에 게임 개발자와 제조사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Provenzo 1991, p.90)
8 Turkle 1984.
9 Ibid., p. 81.
10 Ibid, p. 84,
11 "사람들이 인터랙티브 미디어의 미래를 창안하려고 노력하는 서클들에는 큰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래 게임의 플레이어는 오늘날 게임이 제공한 세계보다 더 복잡한 세계. 하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창조한 세계에 있고 싶을까? 아니면 그 플레이어는 자기 자신의 게임의 디자이너이길 원할까? 다른 말로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의 ‘유저들‘로 있고 싶을까, 아니면 그들 자신의 권리를 갖는 프로그래머이길 원할까? 그들은 새로운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게임 규칙을 변경할 수 있기를 바랄까? 두 전략 다추구되고 있고, 틀림없이 결실을 맺을 것이다. 누군가는 인터랙티브한 <바람과함께 사라지다>의 이미지, 팅커토이들(Tinkertoys)이 달린 관람차(Ferris•wheel)를 설계하는 오늘날의 아이들과 같은 컴퓨터 세계들을 건설하는 아이들과 다른 이미지를 만들 것이다."(Ibid., p. 77)
12 Reynolds 2002.
13 "나는 어떤 특별한 게임이 비윤리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게 될 방법들을 스케치하고 싶다."(Reynolds 2002)
14 예를 들면 Feezell 2004를 보라.
15 McCormick 2001.
16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실체적인 근거들을 가질 수 있거나 가지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두 가지 실체적인 장애물에 직면한다. 우선, 공리주의자는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 위험을 증가시키는 활동이라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 둘째 […] 그들은 또한 전체적으로 증가한 해를 끼칠 가능성이 그 활동에서 나온 이익보다 크다는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McCormick 2001. p. 281)
17 Ibid., p. 283,
18_Tbid., p. 284.
19 Ibid., p. 285.
20 http://www.i-r-i-e.net/issue4.htm (검색일 2008년 3월 14일)
21 게임 개발자들, 게임 퍼블리셔들, 판매자들, 게임 플레이어들이 만들고 제공한행위와 선택, 그리고 게임 자체에 코드화된 선택들 모두가 조사의 대상이 될 수있다." (Consalvo 2005, p. 9)
22 Dodig-Crnkovic and Larsson 2005, p. 20.
23 Ibid... P.22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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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없는 과학은 아무것도 아니다. 1965년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의 말을 들어보자.
"대개 새로운 법칙을 찾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법칙을 추론한다. 둘째,
추론한 법칙이 옳을 경우의 함의를 알아보기 위해 추론한 결과를 수학적으로 계산한다. 셋째, 실험이나 경험(세계의 관찰)을 통해 계산한 결과를 자연에 대입한다. 계산한 결과를 관찰 내용과 직접 비교함으로써 결과가 맞는지 살피는 일이다. 계산을 통한 법칙이 실험과 일치하지 않은 경우 그 법칙은 틀린 것이다.
이 간단한 언명 속에 과학의 열쇠가 들어 있다. 추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과학자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추론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의 명성이 얼마나 큰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실험과 일치하지 않는 법칙은 틀린 것이다."¹ - P7

1. Richard Feynman, The Keyto Science, Lectureat Cornell University, 1964 (www.youtube.com/watch?v=b240PGCMwV0) - P390

 고대 그리스인도 현대인 못지않은 지성의 소유자들이었고, 그 중 일부는 세계란 무엇인가에 관해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호기심과 여유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극히 적은 예외를 제외하고 고대 그리스인이 할 수 있었던것은 대개 철학적 사유가 전부였다. 철학을 폄훼하려는 게 아니다. - P7

"여기 표명한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또 나의 역설 paradoxes (여기서는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이나 말의 의미로 쓰였다_옮긴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수많은 실험과 발견만큼은 주목하시라. 우리는 이 실험과 발견들을 캐냈고, 엄청난 노고와 큰돈을 들여 밤잠을 설쳐가며 이들을 입증했다.
여러분은 우리가 제공하는 실험과 발견을 즐겁게 이용하시라. - P8

길버트의 말을 바꿔보자면, 실험과 일치하지 않는 법칙은 틀린 것이다. ‘큰돈‘에 대한 언급 또한, 과학이 진보하려면 가장작은 물질 구조를 탐색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 CERN의 대형강입자 충돌기 Large Hadron Collider나 우주 탄생의 원인인 빅뱅의 세부사항을 밝혀주는 우주 망원경 등 값비싼 도구를 만들어야 하는 이 시대에 전혀 낯설지 않다. - P8

과학과 실험 간의 의존 관계를 보여주는 더 극적인 예는 19세기의 증기기관이다. 증기기관은 원래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됐다. 증기기관은 기관내의 작용에 대한 과학자들의 탐구심을 부추겼다. - P10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 진공펌프가 왜 그토록 중요한 기술적 성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진공펌프는 예로부터 여러 다른 형태로 존재해온 기구다. 효과적인 진공펌프가 없었다면, 19세기 진공 유리관 내부의 ‘음극선 cathode rays‘ 작용 연구나, 음극선이라는 ‘광선‘이 실제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고 알려져있던 원자에서 분리돼 나온 입자들, 즉 ‘전자electron‘의 연속체라는 발견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P10

그러나 이제 우리는 원자뿐 아니라 원자보다 작은 입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론에 기댔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방식으로알고 있다. 추론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실행할 수 있었고, 또한 실험을 실행할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 P10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때로 가설과 이론 사이의 구분을 혼동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용어를 잘못 쓰거나 엉성하게 쓰는 탓이다. 일상 언어의 용법에서 우리가 뭔가에 관한 ‘이론‘이 있는 경우, 예컨대 왜 어떤 사람들은 토스트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아닌지에 관한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추측이거나 가설일 뿐 과학에서 말하는 ‘이론‘이 아니다. 찰스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학을 모르기 때문에 다윈의 이론이 "단지 이론일 뿐"이라고 말한다. - P11

중력은 과학의 작동방식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다. 뉴턴의 이론은 처음에 모든 검증을 통과했지만, 관측이 발전하면서 그 이론이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이자 중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지점(강력한 중력장이 존재하는 지점)에서 궤도순환을 하는 수성 궤도의 미묘한 세부 요소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략).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현재까지 가장 완벽한, 과학계 최고의 중력이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뉴턴의 이론을 폐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뉴턴의 이론은 여전히 특정 계에서 완벽하게 통하기 때문이다. - P12

우리가 배운 일반상식과 달리, 과학은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혁명적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과학은 기존에 발전한 것 위에 새로운 것을 쌓아나가는 점증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 P13

이 모든 것들은 과학의 역사적 발전을 밝힐 목적으로 이 책에 선정해놓은 실험을 통해 분명해진다. 과학의 발전은 단순한 철학적 추론을 극복했던 1,600년 이전의 예외적인 실험 사례 두 가지 정도에서 출발해, 우주의 구성요소에대한 오늘날의 발견에 이른다. 이 책에서 선정한 실험과 발견들은 부득이하게개인적인 선택의 결과물이며, 100개를 선정해야 하는 지면상의 한계에 제약을받는다. - P14

 대형 강입자 충돌기 속 진공의 기원은 17세기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 Evangelista Torricelli의 실험이다(실험 8을 보라). 그러나 토리첼리는 힉스 입자 Higgs particle의 존재를 발견하기 위한 실험을해보기는커녕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 P14

 여기서 설명하는 개념 중 일부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길버트의 말을 떠올려보라.
"우리가 만든 많은 추론과 가설은 필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견해들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론과 가설은 "증명(실험)을 통해 권위"를 얻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명제, 실험과 일치하지 않는 법칙은 틀린 것이다. - P15

04. 강의를 위해 처형 시간을 맞추다.
•인체를 해부한 베살리우스

16세기 중반에 시작된 과학의 르네상스 시대에서 중대한 분기점은 1543년이다. 코페르니쿠스Copernicus가 유명한 저서 《천구의회전에 관하여 Orbium Coelestium》를 출간함으로써 지구를 우주의 중심 위치에서 끌어내리고,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가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 De Humani Corporis Fabrica》를 출간해 동물 세계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던 인간이라는 종의 지위를 끌어내린 해다. - P33

 당시의 이발사겸 외과의사는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도살업자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해부학 교수들은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서서 (말 그대로 손을 더럽히지 않고)실제 증거뿐 아니라 상상력을 이용한 해부를 통해 밝혀진 내용을 학생달에게 강의했다. - P33

베살리우스 전에 인체 해부에 대한 일반 지식은 고대 이후로 전승된 것이었고 이는 고대 로마의 의학자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Claudios Galenus (갈렌 Galen이라 알려져 있다)의 연구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중세 유럽인은 고대인이 자신들보다 훨씬 더 지혜로우며, 뛰어넘기는커녕 모방하기조차 불가능할 만큼 우월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 P35

베살리우스는 또한 고도로 숙련된 화가에게 자신의 강의에 쓸 커다란 그림을 그리게 했고, 그 중 여섯 점은 1538년 《여섯 점의 해부학 그림 TabulaeAnatomica Sex》이라는 책으로 발간됐다. 이 그림 중 세 점은 베살리우스가 직접 그렸고 나머지 세 점은 티치아노Titian의 제자였던 칼카르의 요한네스 스테파노 John Stephen of Kalkar가 그린 것이다. - P35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는 동료 교수와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용서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심지어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평범한 사람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같은 해 《인체의 구조에 관한 요약집 De Humani Corporis Fabrica Librorum Epitome>이라는 공식 제목을 단 개괄서도 출간했다. 이 책은 줄여서 《요약집Epitome》으로 통한다. - P36

베살리우스가 직업을 바꿔야 했던 이유는 필시 그의 이론에 대한 일부 동료들의 반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파도바대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파도바대학교로 오기 전 파리에서 베살리우스가 다니던 대학의 의사였던 자코부스 실비우스 Jacobus Sylvius는 베살리우스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비난을 퍼부어댔고, 갈레노스를 넘어서는 해부학 지식의 진보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P36

008 공기의 무게를 측정하다
・토리첼리의 진공

1640년대 초반에 이탈리아의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 EvangelistaTorricelli는 30피트(약 9미터) 이상을 판 우물에서는 물을 펌프로끌어올릴 수 없다는 문제를 파고들었다. 펌프의 작동방식은 자전거펌프의 한쪽 끝(열린 쪽)을 물속에 담그고 펌프 속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원리와 비슷하다.  - P46

 실험에서 유리대롱의 한쪽 끝을 막고 수은을 가득 채운 다음, 수은이 들어 있는 통 속에 대롱을 거꾸로 세웠더니 대롱 속에 꽉 차 있던 수은의 높이가 수은이 차 있는 통의수면에서 30인치 (76센티미터)까지 내려오면서 대롱 속 수은 위쪽에 틈새 공간이 생겼다. 그의 예상과 맞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틈새 공간에는 아무것도없었기 때문에 ‘토리첼리의 진공Torricelli Vacuum‘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P46

 토리첼리는 1647년에 사망했지만 프랑스인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그의 발견들을 넘겨받아 더욱 발전시켰다. 파스칼은 이런 종류의 초기 기압계로 측정한 기압이 날씨에 따라 어떻게달라지는지 연구했다. 또 다른 프랑스인인 르네 데카르트는 1647년 파스칼을 찾아가 산으로 기압계를 가지고 올라가 고도에 따라 기압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며 흥미로울 것이라고 제안했다.  - P47

흥미롭게도 퓌드돔 산 가장 아래쪽에 있던 신부 또한 그날 내내 그곳에 설치한 기압계 수치가 변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기압은 산 아래쪽보다 정상에서더 낮았던 것이다. 결국 이 실험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가 희박해진다는 것을 입증했고, 이는 고도가 더욱 높아지면 대기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 P48

009 진공에 매료된 과학자들

보일의 법칙


토리첼리 그리고 파스칼과 처남 페리에의 실험 이후 진공 관련 연구는 과학에서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 중 하나가 됐다. 과학자들은 진공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유리병이나 다른 용기에서 공기를 뽑아낼 수있는 효율적인 펌프가 필요했다. 17세기의 시대적 한계로 볼 때 이러한 펌프는 상당한 기술을 요하는 첨단기술 장비였다. - P49

. 1660년대 과학자들이 손에 넣을수 있는 최고의 펌프는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훅이 만든 것이었다. - P49

 그는 고도가 높은 곳의 저기압 현상의 원인을 공기의 밀도 저하로 추론했고, 훗날 ‘타우넬리의 가설 Towneley‘sHypothesis‘이라 알려지게 될 자신의 생각을보일에게 말했다. 보일은 이에 흥미를 느껴 조수였던 훅에게 그 가설을 시험해볼 실험의 임무를 줬다. - P50

위의 실험과 달리 보일과 훅이 실행했던 또 다른 실험들에는 공기 펌프가 쓰였다. 기압이 낮아지면 물이 더 낮은 온도에서 끓는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이그 중 하나였다(이는 왜 산꼭대기에서 끓인 차가 맛이 없는지 설명해준다). - P50

실험 결과는 1660년 출간된 보일의 《공기의 탄성에 관한 물리역학적인 새로운 실험New Experiments Physico-Mechanical Touching the Spring of the Air》이라는 저서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표됐다. 그러나 당시 보일은 부피와 압력에 관한 반비례 법칙을 명시적으로 상술하지는 않았다. - P51

훅의 실험과 보일의 법칙은 과학적 사고에 매우 큰 함의를 띠고 있었다. 공기는 원자와 분자로 이뤄져 있으며 주변을 돌아다니며 서로 충돌한다는 생각을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다. - P51

012 월식 주기의 차이는 왜 생기나
•광속을 계산한 올레 뢰머

실험뿐 아니라 ‘관찰‘에 대해 뉴턴이 한 말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 자연은 인간을 위해 직접 ‘실험‘을 시행해준다. 이때 과학자의 역할은 ‘그저‘ 진행 중인 사건을 관찰하고 왜 그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내는 것뿐이다. 그러나 매우 총명한 과학자만이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것을 알아낸 올레 뢰머 Ole Romer가 좋은 사례다. - P59

그 후 여러 해에 걸쳐 뢰머는 목성의 위성들의 월식을 계속해서 점검했고,
월식 현상이 늘 예측한 시간대에 정확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오라는 위성의 월식 현상에 특히 주목했다. - P61

(전략).
하지만 희한하게도 카시니는 이러한 생각을 더 발전시키지 않고 포기했다. 그러나 뢰머는 더 상세한 관측과 계산을 통해 이러한 가설을 발전시켰다. 1676년 8월 아직 그 생각을 버리지 않았던 카시니는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French Academy of Sciences에 경도를 추산할 때 쓰는 이오 월식의 공식 일정표를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빛이 이오에서 지구의 관측자에게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즉 빛이 지구 궤도의 절반 격인 거리를 오는데 약 10분에서 11분이 걸리는 듯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P61

불행히도 뢰머의 논문들은 대부분 1728년의 한 화재로 유실되는 바람에그의 발표에 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다소 왜곡된 보도 기사 정도다. - P62

 뢰머는 지구의 크기에 대해 당시 얻을 수 있었던 최상의 추정치를 통해 빛의 속도가 (현대의 단위로) 초속 22만 5,000킬로미터라고 추산했다. 우리가 뢰머의 관측을 이용해 동일한 계산을 할 경우, 그리고 현대 지구 궤도의 값을 끼워 넣을 경우 얻게 되는 빛의 속도는 초속 29만 8,000킬로미터다. - P62

021 지구의 무게를 재는 방법

・캐번디시의 중력 실험

지구의 무게를 재는 실험이 처음 시행된 것은 1790년대 말이었으며, 그결과는 1798년 왕립학회에 보고됐다. 사실 이 실험은 자연력 중에서 가장 약한 것으로 판명된 중력의 강도를 최초로 측정한 실험이었다. - P92

미첼은 1783년에 ‘블랙홀‘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생각해낸 인물이다. 그 무렵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사실(실험 12를 보라)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뉴턴의중력 법칙은 질량이 큰 물체일수록 그것을 벗어나려면 더 큰 속도가 필요하다는 것(질량이 클수록 움직이는 데 더 큰 힘의 작용이 필요하며, 속도를 변화시키기도 어렵다는 뉴턴의 운동 제2법칙인 가속도 법칙. 다시 말해 가속도는 질량과 반비례한다는 법칙_옮긴이)을 입증했다. - P92

미첼은 중력에 대한 추론뿐 아니라 중력 관련 실험에도 관심이 있어 중력을측정하는 실험을 고안해냈을 뿐 아니라, 실험에 필요한 대부분의 장치를 직접만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1793년, 실험을 하기 전에 사망했다. - P92

중력 실험은 이해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매우 어렵다. 실험은 당시런던의 변두리 마을이었던 클래펌커먼에 있는 캐번디시 저택의 별채에서 이뤄졌다. 실험의 핵심 장치는 6피트(1.8미터 길이의 나무로 제작한 튼튼하고 가벼운 막대였다. 양끝에는 납으로 된 작은 공을 매단다. 각 공의 무게는 1.61파운드(730그램)였다. 막대는 정중앙에서 볼 때 두 공의 균형이 맞도록 금속 줄로공중에 매달아놓았다. - P93

사실 캐번디시가 제시한 값은 지구의 질량이 아니라 지구의 밀도 값, 즉부피를 질량으로 나눈 값이다. 1798년 6월 21일 캐번디시는 1797년 8월과 9월에 이뤄진 여덟 차례의 실험 결과, 그리고 1798년 4월과 5월에 실행한 아홉 차례의 실험 결과를 종합한 내용을 왕립학회에 보고했다. 그가 보고한 지구의 밀도 값은 물의 밀도의 5.48배였다. 그러나 캐번디시는 약간의 계산 실수를 저질렀다. 그의 실험을 바탕으로 한 지구의 실제 밀도는 물 밀도의 5.45배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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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유는 글쓰기 또한 자아가 사라지고 자아를 지우는형식이라 상상했기에 멸절의 한 구성요소라고 보았다. 티봉의 설명대로 베유는 "혹독한 내면적 정화를 거치지 않고서는 결코 완벽한 표현을 획득할 수 없다"고 믿었다.(GG, 8) - P85

글쓰기가 번역이라는 이런 시각에서 보면, 베유가 숭모의 대상으로서든 동일시의 대상으로서든 작가의 "나"를 지우려한다는 걸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샤론 캐머런의 주장대로, 이멸절의 효과로 지극히 몰개성적인 문체가 드러난다. 베유가프랑스어의 대명사 ‘on‘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것 역시 사적 대명사(‘on‘이 들어간 프랑스어 표현은 영어에서 주로 부정사구문으로 번역된다)를 피하려는 의도에서다.⁴⁷

47 예를 들어 매카시는 베유를 번역할 때 전형적으로 부정사 구문을 쓴다. - P86

베유의 산문에 미학적 흡인력을 주는 이런 자질들은 심적인 불편을 초래하기도 한다. - P86

마찬가지로 《중력과 은총》 전편에 걸쳐 근대 세계에서 도출되거나 근대 세계를 지칭하는 명사들은 몇 개 되지않는다. "무정부주의자들" "사회주의" "전체주의" "유럽"
그리고 "계급." 극단적인 희소성 덕분에 이런 단어들은 나타날 때마다 두드러지게 이목을 끌고 심지어 깜짝 놀랄 정도로 생경해 보인다. 베유가 자신을 반근대주의자로 설정했다는 말이 아니다. 베 - P88

베유의 산문에는 몹시 기초적이고 원소적인 구석이 있으며, 덕분에 베유는 친숙하고 아마 보편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아득하게 거리감이 있는 세계를 창조한다. 구체성의 결핍 덕분에 베유의 산문은 번역이 쉽다. 특정성의 결핍 덕분에 문화적·역사적 차이의 감각이 아니라 그저 시간적 거리감만 창출하기 때문이다. - P88

베유는 <말의 힘>에서 추상에 대한 공포를 상술했다.
<말의 힘>은 베유가 스페인 내전에서 돌아와서 쓴 에세이로스페인 전쟁과 유럽의 전쟁광들을 트로이전쟁에 비유한 글이다. 베유는 추상 때문에 전쟁에 어떤 의미 있는 동기가 존재한다는 착각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 P89

베유는 자신의 시금석과 같은 개념들초연, 수난, 선악, 아름다움, 천형, 멸절, 죽음을 끝없이 되짚어 구체성의 질감을 부여한다. 명징하고 선명하게 설명하는 과정만이 이 "구체적 현실들"을 막대기, 동물, 연필과 같은 사물과 구분해줄수 있기에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개념을 구체화하는 시도가 소위 베유가 자기주장을 밀고 나가는 강직한 태도에 깔려 있다. - P90

이렇듯 정의를 강조하면서 베유의 글에는 권위가 각인된다. 베유 본인이 《어느 신부에게 보낸 편지 Letter to aPriest》에서 이 점을 주지시켰다. "앞으로 논하게 될 견해들은 내게 개연성이나 확실성의 정도가 몹시 다양합니다. 그러나모두가 내 마음속에서는 물음표를 수반하고 있지요. 그 의견들을 서술형으로 쓰는 건 오로지 언어가 빈곤한 탓이에요.
동사 활용형에 보완적 시제가 있어야 제 욕구가 충족되거든요. 성스러운 것들의 영역에서 나는 그 어떤 것도 범주적으로 긍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견해들도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똑같은 물음표를 수반하고 있습니다."⁵⁰

50 Simone Weil, Letter to a Priest (New York: Penguin Books, 2003), 12. - P91

고통스러운 선명성은 베유의 문체에 대한 티봉의 논의에서 보았듯,
그리고 그녀가 사후에 남긴 에세이와 글에서 보듯 베유 자신의 미학이기도 하다.
하지만 베유가 단순성과 선명성을 추구한 배후의 한편에는 정치적 목표가 있다. 그리고 이 정치적 목표는 고통을주는 게 아니라 민주적이어야 한다.  - P91

베유의 전작은 물론이고 이 에세이의 직설과 명징성은 고유한 어법에서 나온다. 예컨대 선언문의 활용, 종속절보다는 등위절을 선호하는 경향, 병행 구문의 강조, 비유의 빈번한 활용(A와 B의 관계는 C와 D의 관계와 같다)이다. 이러한 패턴의 어법은 베유 글의 균형과 수학적 엄정함을 생성하는 한편으로 권위적이고 가차 없는 어조를 창출한다. - P92

 베유의 산문 문체는 엄준한 단어 선택, 단순하고 직설적인 어법, 몰개성적인 대상을 상정한 화법, 반복과 재정의ㅡ 독자를 위로하고 꼬드기고 설득하거나 축소하고 미화하려는 일말의 시도도 하지 않고 난해한 화두에 곧장 직면하게 만든다. 베유가 빚어낸 명징하고 도발적인 문체는 윤리학이고 고통스러운 선명성의 정치학일 뿐 아니라 수난을 재현하기 위해 특별히 개발한 미학이기도 하다. - P93

베유는 산업 노동의 현실을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인민전선 Popular Front의 멤버들이 노동자의 일상을 직접 체험해본 경험이 없다는, 그런 단순한 말이 아니다. "노동자 본인들도 그런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말하고 심지어 사색하는일을 쉽다고 느끼지 않는다. 수난의 일차적 효과는 생각으로하여금 꾸준히 도피를 시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유는 자신을 얽어매는 역경을 직시하지 않으려 한다." (SWR, 54, 강조는 필자) - P94

베유의 사유-동물은 욕망과 탐욕이 아니라 고통을 주는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구별된다. 사유-동물은 도망칠 수는 있으나 추구할 수 없다. 사유는 지극히 편협한 동물적 자질-고통의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로만 인간의 운동성을갖는다. 노동자는 기계보다 못한 존재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도구이거나 심지어 무용한 도구다. - P95

 베유는 당대의 여러 다른 지식인들보다 자동화 공정에 격렬하게 불쾌감을 표시했는데 그 이유는 베유의 시각에서 인간은 기계 자체가 아니라 기계의 부품에 불과해 보였기 때문이다. 로버트 스팔링 Robert Sparling⁵⁵에 따르면 자동화가 노동 혹은 소외된 노동에서의 해방이라는 시각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베유는 마르크스와 중대한 차이가 있다.

55 노동의 화두에 관해 베유와 마르크스의 관계에 대한 온전한 논의를 참조하려면 로버트 스팔링의 이론과 실천 노동의 품격에 대한 베유와 마르크스의 견해 Theory and Praxis: Simone Weil and Marks on the Dignity of Labor",
Review of Politics 74, no, 1 (2012년 1월호), 87-107쪽 참조 - P95

게다가 도구나 쓰레기라면 인간 행위주체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다. 이 인정(베유는 이 문제를 <힘의 시, 《일리아드》>에서 더욱 상세히 묘사할것이다)이 없다면 노동자들은 자신을 사물로 보게 된다.
그렇다면 사유는 사물, 몸에 살게 된 고통받는 동물이다. 사물인 몸 역시 자상, 타박상, 화상, 열기, 피로, 소음으로 늘 고난을 받고 있다. - P96

베유는 논의를 중간에 끊고 다시 한번 수난의 불가해성을 경고한다. 여기서 베유는 공장노동의 상황에 국한하지않고 수난과 사유를 좀 더 보편적으로 논한다. - P96

 공장노동자들이 경험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서는 그 어떤 의미 있는 개혁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앎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 불행의 조건은 모두 은근히 인용되는 침묵의 영역을 창출하며, 이 침묵의 영역에서 불행한 개인은 섬처럼 외따로 격리된다. 섬에서 탈출하는사람은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SWR, 64) 테니까 - P98

<공장노동>이 초연한 거리감을 유지한다고 해서 이에세이에 고통을 함께 하려는 감정(동정)이 결여된 건 아니다.
오히려 감상주의를 배제한 동정을 담고 있다.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베유는 작업에서 공감(감정)이 아니라 사려 깊음(사유)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수난의 사정 혹은 조건을 안다는 것을 수난자들을 안다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 P99

베유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이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지금 어떤 일을 겪고 있나요?" 라는 물음이다. 그것은 수난자가 존재한다는 인식이다. 집단의 한 단위로서나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사회적 범주에 속하는 표본으로서 존재하는 게아니라, 우리와 다를 바 하나 없지만, 어느 날 천형이라는 특별한 낙인이 찍혀버린, 한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인식 말이다."⁵⁷

57 Weil, Waiting for God, in Simone Weil Reader, 64. - P100

 무엇을 느끼느냐, 혹은 어떤 감정이 드느냐는 물음이아니라 바로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살아있는 것에 인간성을 복원해줄 수 있다. 이 물음은 서사를 도출하며, 고통을 이야기함으로써 수난자가 사유와 행동을 통합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수난자는 베유가 <공장노동)에서언급한 정신을 창출하게 된다. 사유와 행동이 동기화될 때사람은 정신mind을 갖게 된다. - P100

《중력과 은총》도 <공장노동>과 다름없는 몰개성적 자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공장노동>에서 주장하듯 수난자에게 의지력을 발휘해 주의를 기울이라는 언명을 주창한다.
흔히 나오지 않지만, "나"라는 일인칭이 보편적이거나 대표적인 "나"로 기능한다는 사실은 개인적인 "나"가 끼어드는극소수의 순간들에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다. - P101

《중력과 은총》은 베유 신학의 역설을 조심스럽게 제련하는 사유 실험에서 수난의 본질과 신에 대한 베유의 사상을 시험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논리적인 강제와 순종하라는 간곡한 권고를 혼합한 구속적 의무들을 공표한다. 각각의 글과 나란히 한 세트를 이루는 단상들은 거의 항상 직설법으로 시작되며, 영의 자연법칙(예를 들어 중력 같은 것)에서도 종종 끌어오곤 한다. - P102

연역법

똑같은 수난이라도 동기가 저열할 때보다 고고할 때훨씬 견디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 군사들의 사기를 유지하거나 진작하기 위해 잔인성을 구실로 삼는이유가 된다. 도덕적 취약성과 관련해 잊어서는 안 될중요한 사실이다. 이것은 저열한 측에 힘을 보태주는 법칙의 구체적인 사례다. 중력은, 그 자체로, 그 힘의 상징이다. (GG, 46) - P103

. 베유의 글은, 형식적으로나 실체적으로나, 의지를 에워싸고 설득해 움직이게 만드는 논리와 의무의 비계를 거듭거듭 쌓고 지어 의지를 지탱하고 강화한다. 베유의 진화하는신학과 정치학에서 수난에 주목하고 수난을 체험하는 일, 특히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수난에 주목하고 실제로 겪는 일은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의지에 따라야 하며, 의지만으로는부족하다. - P104

 <힘의 시, 《일리아드》>에서 그랬듯 베유가 그 강력한 힘들을 직시하고자 자신을 단련할 때,
베유는 고통받는 타인을 거의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인간 상호작용의 물리학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이 무관심의 자연법칙은 <공장노동>에서 묘사한 도망치는 사유와 침묵의 영역과 상당히 비슷하게 보인다.  - P105

《일리아드》는 베유가 보기에 서구의 전통에서 가장위대한 시다. 그러나 서구는 이러한 전통을 대부분 잃어버렸다는 게 베유의 주장이다. - P105

 말 그대로, 진짜 시체가 에세이의 배경에 널려 있긴 하지만 베유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힘은 "죽이지 않는, 그러나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힘이다.(SWR, 165) 베유는 정복당한 전사, 사제, 노예와 병사들이두려움과 무력감에 금세 사물이 되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러나 사물로 존재하면 시간을 가로지르고 뛰어넘는다. - P106

승자의 자동적인 무관심은 전쟁에서 참담한 정치적결과를 낳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충동과 행동 사이에서 반추라는 아주 작은 간극을 끼워 넣을 능력이 있다. 반추의 여지가 없는 곳에는 정의나 신중한 배려가 끼어들 여유도 없다"(SWR, 173) - P107

"아마 인간은 모두, 출생이라는 행위 그 자체로, 폭력의 희생자가 될 운명에 처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이런 진실에 눈을 감을 수 있다."
(SWR, 173) 우리에게 두려움이 없을 때, 우리가 고통스럽지않을 때, 우리가 치욕을 당하지 않고 있을 때는 어김없이 우리와 천형을 당하는 사람들 사이에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우리는 수난자들을 알아볼 수 없고 그들 역시 우리를 알아볼수 없다. - P108

 본질적으로 베유는 기독교의 비극적 감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에세이 말미에서 베유는이러한 비극의 상실을 슬퍼하며 무섭게 불타는 분노를 아껴두었다가 인간이 지닌 자기기만의 능력에 쏟아붓는다. 그리스인의 삶에는 자기를 기만하는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 P109

자기망상의 문제는 베유의 글에서도 주된 관심사지만,
<힘의 시, 《일리아드》>에서는 수난을 묵살하고 회피하고자하는 유혹이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번에도 베유는 일단 비극이 현실의 시험이라는 논의에서 시작한다. 수난은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공간의 표식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현실을 부과한다.  - P110

 현실 파악 자체를 어려워하는 경우와 고통스러운 현실에 무방비로 노출되는것을 두려워하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에서 현실 파악을 막거나 견뎌낼 수 없는 고통을 뭔가 비현실적인 것으로 대체해서 아픔을 덜어내는 기제는 상상력이다. 베유는 끊임없이 상상력을 의심하는데, 이는 미학적 창조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상상력의 일차적 목적이 우리를 방어막으로 에워싸 현실적인 것으로부터 차단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P111

 베유는 주관성을 꿈의 세계라고 부르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세계를 통제하고 세계의 주인노릇을 한다는 인간의 망상에 대한 질책이고, 부분적으로는자아로부터의 해방이다. 우리는 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창조된 세계를 사랑해야 하고, 필연에 순종할 때에만 신이 창조한 세계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 P111

죽어간다는 것은 물리적 죽음은 물론이고 우리 각자의 자질과 이세계의 사물들에 대한 애착이 영적으로 죽음을 맞는 것을 포괄한다. "우리는 우리 안의 공허를 채우려고 상상력이 나래를 펴지 않도록 계속해서 막아야 한다. 그 공허가 무엇이든 무조건 받아들인다면, 과연 어떤 운명의 장난이 우리가 우주를 사랑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우주는 충만하다고 확신하게 된다." (GG, 64) - P112

《중력과 은총》에서 상상력은 그 자체로는 실체가 없는 현실에 대체재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은 창조적 기관 organ이 아니라, 우리의 눈을 가려 두려움의 대상인 현실을, 그 아름다움과 공포 모두를 보지 못하게 하는 파괴적 기관이다. - P112

 무기력의 신학적 쓸모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유약하고 제한적인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천형이 지나고 남는 게 있다면,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고개를 들어 부재하는 신을 바라보는 능력이다. "수난을 활용"하려면 수난의 변모와 초월을 끌어낼 수도 있다.  - P113

우리는 이성을 따라 비극을 선택할 수 있고(그리고 베유는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우리를 설득했다) 논리적으로 더 정의로운 세계를, 그리고 더 직접적인 신의 체험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라야만 한다. - P114

다이앤 아버스

카메라를 위한 감정

사진 찍힌다는 것은,
조금,
상처가 되는 것 같아.


다이앤 아버스,
마빈 이스라엘 Marvin Israel에게 보낸 편지 - P298

스타일과 공감의 문제

(전략). 왼쪽 구석에는 아이들로 보이는두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이는 사진의 전경, 중앙에서 살짝 왼쪽이자 여러 등장인물이 만든 삼각형의 끝부분에 선명히 초점이 맞춰진 채, 다른 인물들이 없다면 텅 비어 있을 공원에 보호자도 없이 혼자 있는 느낌을 준다. - P299

이 사진은 다이앤 아버스가 찍은 <뉴욕 센트럴파크,
장난감 수류탄을 든 소년>(1962)으로, 가장 잘 알려진 아버스의 사진들 중 하나이다. 아버스의 사진과 글들이 최대 규모로 전시된 2003년 아버스 회고전 ‘폭로 Revelations‘의 박물관 도록에는 이 사진을 촬영했을 때의 밀착 인화지 contact sheet가 실려 있다. 이 아이를 찍은 11장의 사진들 중 오직 이 사진에만 뭔가 특출한 데가 있다. - P300

밀착 인화지는 아버스의 작업방식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 촬영은 다른 많은 촬영에 비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는데도 아버스의 인내심, 낯선 인물과 신뢰를 쌓는 그녀의 능력이 분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밀착 인화지는 작업과정의 기록 이상을 보여준다. 이 사진을 연사로 보면 이 소년이 얼마나 특별하지 않았는지가 보인다. - P301

1972년 유작전 ‘다이앤 아버스‘와 2003년 회고전 ‘폭로‘ 사이에 두 권의 주요 사진집이 나왔음에도 이러한 분류가 계속 지배적이었다. 첫 번째사진집 《다이앤 아버스: 잡지 사진》 (1984) [이하 《잡지 사진》은 많은 잡지 중) 《하퍼스》와 《에스콰이어》, 《런던 선데이타임스》에 실린 사진과 에세이들을 모아 아버스의 상업적 커리어를 강조했다. - P302

 두 번째 사진집 《가족앨범》 (2003)은 아버스의 가족사진들을 모으고 아주 긴 시간동안 이루어졌던 가족 초상 촬영 작업에서 나온 밀착 인화지들을 복제함으로써 아버스가 가족 앨범과 스냅사진에 가졌던 지대한 관심에 집중했다.²

2 Diane Arbus, Family Album, ed. Anthony W. Lee and Hohn Putz (New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03). - P302

1967년의 ‘새로운 기록들 New Documents‘ 은아버스를 게리 위노그래드 Garry Winograd와 리 프리트랜더 LeeFriedlander와 함께 묶어 전시했는데, 이는 자르코우스키에 의하면 "삶을 개혁하는 게 아니라 아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두 번째 전시회는 5년 후에 열린 유작전 ‘다이앤 아버스‘로, 아버스를 일약 아이콘으로 만든 전시회였다. - P303

 자르코우스키는 아버스의 작품을 다큐멘터리 전통, 미국 개혁파와 (1960년대에 미국에 알려지게 된) 어거스트 샌더스August Sanders로 대표되는 유럽 분류파 양쪽 모두와 동일시하면서도 이에 들어맞지 않은 아버스의 작품 방식들도 지적했다. - P303

아버스가 다큐멘터리 전통의 사실주의적 충동을 이행했다는 것은 작품의 소재가 무엇이건 간에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르코우스키뿐만 아니라 최초의 아버스 비평가이자 지금까지도 가장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전 손택을 통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아버스와 끈질기게 연관되었다. - P304

 손택은 아버스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사진으로 찍고 수집하면서도 관객들에게 어떤
"온정적 목적"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견지에서 아버스는 공감이 결여되었고, 그 사진들은 "무정함을 시험하는 제멋대로의 테스트", 즉 관객들을 추함과 고통에 익숙하게 해서 단련시키는 테스트였다.⁵

5 மSusan Sontag, On Photography (New York: Picador, 1973), 40. - P305

아버스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불러일으켰던, 그리고 다큐멘터리 장르를 통해 주목했던 불편함은 아버스를 20세기 최고의 사진가 중 하나로 공인한 2003년 전시회 ‘폭로‘에거의 만장일치의 찬사가 쏟아지면서 일소되었다.  - P305

 우선 그 불편한 강렬함은 아버스의 천재성의 일부로 당연시되었고, 천재라는 꼬리표 자체가 그녀의 독창성이 불러일으킬 호기심에 대한 대답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196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한 미국의 대중적 이미지들이 더욱 광범위하고 다양해지면서 아버스의 소재들을 더 친숙하게 만들어주어 그녀의 작품을 변형시켜버렸다. - P306

하지만 결국 아버스를 온순하게 만든 것은 아버스의프로젝트에 부드러움, 열린 태도, 온정이라는 말로도 묘사될 수 있는 공감적 모티브를 귀속시킨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온정적 목적"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아버스가 위치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비평적 문제였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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