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의논할 일이 있어서. 1992년과 1995년에 발생한 사건을 지금 재수사할 수 있나?"
(중략).
"......92년 사건은 이미 시효가 성립됐어. 하지만 95년 9월 사건은 개정법 덕분에 아직 살아 있고, 그래도 그렇게 옛날 사건이면 수사본부도 이미 해체됐을 테니, 새로운 증거라도 없는 한 재수사는 어렵겠지." - P305

"예를 들어 그 사건의 범인이 나를 칼로 찔렀다고 치자. 그때 마침 현장에 있었던 네가 범인을 상해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거야. 그럴 경우, 범인이 과거에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도 다시 파헤칠 수 있겠지." - P306

며칠 후 구라타에게 전화가 왔다.
구마이의 부탁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단, 조건을 한 가지 제시했다.
"방검 조끼를 입어. 절대로 죽지 마. 약속이야." - P307

2015년 4월 20일, 구마이는 도쿄의 호텔에 방을 잡았다.
오후 5시경, 회색 코트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주택가에 외따로 자리한 편의점의 기둥에 몸을 숨겼다.
30분쯤 지났을까 모자(母子)가 편의점 앞을 지나갔다. 구마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확인했다. 틀림없다. 곤노 나오미다. - P307

밤에 맨션 앞에서 구라타와 만나 함께 6층으로 올라갔다.
(중략).
잠시 후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지금 열게요." 일부러 밝은 척하는 목소리였다. - P309

하기오 도미코

경찰은 4월 24일에 상해죄로 체포된 용의자 곤노 나오미가 과거에 여러 차례 살인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용의자 곤노 나오미는……………. - P310

하지만………… 지금 다시 그림을 보자 다른 해석이 떠올랐다. 혹시 반대였던 걸까.
나뭇가지는 문조를 보호하기 위해 뾰족해진 것 아닐까. - P311

구마이 이사무


(전략).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섭섭한 기분도 들었다.
그때 커튼 너머 옆 침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구마이 씨, 퇴원이군요. 축하드립니다." - P312

"아아, 고마워."
"하지만 힘드시겠어요. 퇴원하자마자 암 수술을 받으셔야할 테니까요."
(중략).
"그리고 구마이 씨는 앞으로 하셔야 할 일이 있을 텐데요."
"해야 할 일이라니?"
"구마이 씨의 협력으로 체포된 용의자 곤노 나오미의 손자, 유타를 돌보는 거 말이에요." - P313

그 일에 관련된 이야기는 꺼낸 적이 없다. - P313

"그나저나 곤노 나오미가 체포돼서 다행이네요. 이제 이와타 씨와 도요카와 씨도 고이 잠드시겠어요."

(중략).

경찰은 아직 그렇게까지 자세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평범한 일반인이 이와타와 도요카와를 알 리 없다. - P314

"미우라 씨와 이와타 씨가 죽기 직전에 그린 ‘그림‘도 인터넷에서 봤어요. 그거, 분명 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린거겠죠. 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그랬는가. 현장에서 침낭이 도난당한 걸 고려하면 간단해요. 두 사람은 잠든 사이에 습격당한 거예요."
(중략).
"보통 대학생인데요." - P315

"그럼 제가 구마이 씨께 특종을 선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블로그를 살펴보면 곤노 나오미의 여죄가 하나 더 나올 거예요. 곤노 나오미는 분명 며느리의 죽음에도 관여했어요"

(중략).

나오미의 며느리 곤노 유키는 2009년에 사망했다. 엉터리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 P316

확실히 구마이도 유타가 마음에 걸렸다. 나오미가 체포된후 유타는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중이다. 참 외로우리라. 구마이가 나오미를 쫓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P317

"그럼 블로그 이름을 알려줘."
나나시노 렌 마음의 일기‘예요.‘
(중략).
"닉네임이에요. 구마이 씨, ‘곤노 다케시‘를 히라가나로 써서 분해해보세요." - P317

"알았어. 한 입으로 두말은 안 해. .....그렇지만 하나만 알려줘. 왜 이 사건에 그렇게까지 열의를 보이는 거지? 흥미 본위로 추적했다.…….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그냥 호사가잖아?" - P318

-2015년 6월 어느 날 맑음


요네자와 미우의 아버지는 아침부터 자기 집 마당에서 커다란 몸으로 숯불을 피우고, 부지런히 움직이느라 온몸이 땀에 젖었다. - P319

실은 오늘 곤노네도 부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오미가 체포된 후 유타는 아동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분명 외로우리라. 불안하리라. - P319

"구마이 씨, 유타를 데려와 주셔서 감사해요. 괜찮으시면같이 드시죠."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수술해서 아직 밥을 잘 못 먹거든요." - P320

"유타, 어떤 고기를 좋아하니? (중략)."
유타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머뭇했다. 그러자 미우가끼어들었다.
(중략).
"하지만 유타는 볶음면을 좋아해. 그렇지, 유타?"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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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박살

1906년 4월 18일 오전 5시 12분, 지구가 어깨를 들썩였다.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산들이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갈라져 열렸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닫혔다!"¹ - P109

6. 박살


1 Jordan, The Days of a Man, Volume Two, 168. - P284

그저 에릭을 바버라처럼 보내지는 않겠다는, 우주가 에릭까지 데려가게 하지는 않겠다는 일념으로 에릭의 방으로 다급히 달려갔다. (중략). 아래층 거실에서 오싹하고 불길한 음이 울렸다. 무너지는 천장이 건반 위에아무렇게나 떨어지며 쏟아낸 피아노 소리였다.⁶ - P109

เค6 Jordan, The Days of a Man, Volume Two, 169 - P284

아직 오전 6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피크닉 바구니에서 빠져나오는 개미떼처럼 기숙사에서 달려 나와 잔디밭 위에 흩어져 있던 학생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며 아직도 지구에 안정감이란 게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그들을 지나쳐 달렸다. - P110

 터진 수도관에서 뿜어 나오는 증기의 비명 소리도, 불꽃을 튕기는 전선들도 지나서 자신의 물고기 사원으로 직행했다.
데이비드가 글로 남긴 바에 따르면, 그는 "걱정으로 가득 차서"¹¹ 입구에 들어섰다.
과연 여기에 어떤 단어들이 어울릴까? - P111

11 Jordan, The Days of a Man, Volume Two, 169. - P284

당신 삶의 30년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간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무엇이든 당신이 매일 하는 일, 무엇이든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일, 그것이 아무 의미 없다고 암시하는 모든 신호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중요한 것이기를 희망하면서 당신이 매일같이 의지를 모아 시도하는 모든 일들을 떠올려보라. - P111

나라면 이 지점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신성이 훼손되고, 꿈이 박살 났으며, 수십 년 동안 끈기 있게 해온 일이 헛수고로 돌아갔다면, 나라면 지하실로 내려가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 - P113

데이비드는 어떻게 했을까? (중략).
아니다. 바로 이때 이 불운한 작자, 이 경이로운 작자는 바늘을꺼내 우리 지배자의 목구멍을 향해 찔러 넣었다. - P113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의 표본 컬렉션에 일어난 절차상의 변화를 감독한 장본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도움을 요청한 서류들의 흔적에서 자기물고기들에게 질서를 되찾으려 한 그의 필사적인 노력이 분명히보인다는 것뿐이다. - P114

데이비드는 걱정하는 학부모들과 정신적 충격을 받은 학생들, 간담이 서늘해진 대학 회계사들을 달래느라 뛰어다녔고, 그러는 내내 머나먼 곳에 있는 동료들에게까지 에탄올을 보내달라는 황급한 메시지를 보냈다.  - P115

사람들은 물을 뿌리고 뿌리고 또 뿌렸다. 이토록 억눌리지 않는 불굴의 끈기는 어쩌면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 P115

마침내 에탄올이 도착했다. 데이비드는 서둘러 연구실로 달려가 사람들이 발치에 널브러진 살점들을 분류하는 일을 도왔다. 저 지느러미 그들은 저 지느러미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고 있을까? 저 노란 테의 눈알을 어디서 본 것인지 기억할 수 있을까? 이것은 실존적인 분류 작업이었다. - P116

그 답답한 마음이 그런 혁신을 불러온 것일까?
나는 모른다. 그러니 나로서는 데이비드가 최초로 바늘을 꽂던 순간을 상상해볼 수밖에 없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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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느 놈을 죽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민지형

(전략).
나는 당신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성이다. 긴 머리카락은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고, 키는 160센티미터 초반. 피부는 하얀 편이고, 얼굴은 갸름한 ‘편‘이다. 화장은 아주 옅게 해서 거의 티 나지않고, 입술 색 정도만 신경 쓴다. - P12

오직 편의점과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배달 음식 전문 가게들만이 살아남은 이곳에서 ‘네일케어‘와 ‘피부관리 전문숍이 영업 중이라는 게 놀라울 것이다. 저런 가게는어떻게 버티는 거지? 장사가 되나? 사람들이 오나? 그런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곳이 바로 나의 가게다. - P13

 하지만 모든 업종이 그렇듯이, 중요한 것은 ‘입소문‘이다. - P13

나는 프로답게 그의 표정과 옷깃, 신발 밑창까지 순식간에 스캔했다. 범상치 않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어젯밤 맡았던피 냄새가 갑자기 코끝을 스쳤다.
"뭐 해드릴까요?"
내가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 - P14

"꼭 한번 해보고 싶어서 진짜 열심히 길렀는데, 꼭 잘하는 분한테 받고 싶거든요. 이거 손기술이 진짜 중요하잖아요. 엄청 섬세해야 하고."
그쵸, 그것도 손기술이 진짜 중요하긴 해요, 엄청 섬세해야 하고요. 볼멘소리를 혼자 삼키다가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 P15

일정한 톤의 ‘감사합니다~‘와 함께 가면 같은 표정으로 첫 손님을 배웅하고서 다시 ‘딸랑‘ 소리로 문을 닫고 나자, 그야말로 온몸의 기력이 다 빠졌다. 어제 늦게까지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이만퇴근해도 되지 않을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아직 영업 종료까지는 한 시간 여가 남았지만, 뭐 주인 마음 아닌가. - P16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옷을 입은 50대 초반, 길지 않은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였다. (중략).
"앉으시지요."
여자는 내 말대로 했다. 그리고 말없이, 가방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 P17

"우리 가영이는… 분명 명줄이 길다고 했는데..."
내가 보는 사진은 항상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다. ‘타깃‘을 설명하기 위해 가져오는 것들이니까. 몰래 찍은 사진, CCTV를 캡처한것, 혹은 수배 전단의 사진들. 보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긴장되는. 하지만 여자가 내민 사진은 죽은 사람의 것이었다. - P17

(전략).
몇 년 동안 눈앞의 여자가 겪었을 마음고생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아주 단순한 주문만 수행할 뿐, 놀라운 추리력과 번뜩이는 지능으로 사라진 사람을 찾고 이런 건 못 하는데요, 어머니....
"갑자기 애가 죽었다는 거예요." - P18

"그런데, 그렇게 죽었다는 건 절대 자살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누군가 죽인 거잖아요. 그렇죠?"
여자가 몇 번이나 힘주어 ‘그렇죠?‘라고 되물었다. 확인을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 P19

"미덥지 않긴 했지만, 흥신소에 먼저 갔었어요. 그래서 그쪽에서 조사한 내용은 이렇게 받았는데."
(중략).
"마지막에 그 창고에 누구랑 있었는지는 흥신소에서도 결국 못 밝혀냈어요." - P20

"어쩔 수 없으니까... 이 파일 참고하셔서 딱 한 명만 죽여주세요. 제가 가진 돈은 이것뿐이니까, 그 한 명 죽이고 남는 돈은 수고비로 써주시고요."
(중략).
"딸아이의 죽음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 이 중에 제일 죽어마땅한 사람. 전문가시니까 조금만 들여다보면 정확히 판별하실수 있을 거라 믿고 왔어요."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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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헬레네 알빙 부인, 육군대위이자 시종관인 알빙의 미망인

오스발 알빙, 그녀의 아들, 화가

목사 만데르스

목수 엥스트란

레기네 엥스트란, 알빙 부인의 하녀


사건은 노르웨이 서쪽 어느 커다란 피오르 기슭에 있는 알빙 부인의 시골 저택에서 벌어진다. - P3

제1막

정원이 내다보이는 넓은 거실. 왼쪽 벽에 문이 하나, 오른쪽엔 두 개의 문이 있다. 방가운데에는 원탁과 의자들이 있고 테이블 위에는 책, 잡지, 신문들이 놓여 있다. - P5

목수 엥스트란이 정원으로 통하는 문가에 서 있다. 그의0왼쪽 다리는 약간 휘어져 있으며, 나무로 밑창을 댄 장화를 신고 있다. - P5

레기네 그만 좀 쿵쾅거려요. 위층에 도련님 자고 있어요.
엥스트란 여태 잔다고? 이 대낮에?
레기네 상관할 거 없잖아요.
엥스트란 어젯밤에 술을 좀 펐더니…
레기네 어련하겠어요. - P6

레기네 네, 네, 이제 그만 가 보세요. 여기 이렇게 서서랑데부² 하고 싶지 않아요.


2) rendez-vous. 언젠가 파리에 갈꿈을 꾸고 있는 레기네는 수시로프랑스어를 구사한다. - P7

레기네 아하, 속셈 뻔하지, 뭐!
엥스트란 속셈이라니?
레기네 (그를 쏘아보며) 만데르스 목사님한테 또 무슨 사기를 치려고? - P8

엥스트란 뭐가 어쩌고 어째? 너 애비한테 대드는 거냐,
이 망할 년이?
레기네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린다.) 나한테 종종 그랬잖아, 난 아버지랑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엥스트란 제기랄, 그게 무슨 상관이야... - P9

레기네 (짧은 침묵 뒤에) 날 왜 도시로 데려가려는 거예요?
(중략).
레기네 오,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말구요. 내가거길 왜 가야 하냐고. - P11

레기네 그래서 난 뭘...?

엥스트란 네가 좀 도와줬으면 해서 그냥 얼굴마담 노릇한다 생각하면 돼. 힘든 일 같은 건 안 해도 된다고, 얘야.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야.

레기네 네, 좋네요! - P12

엥스트란 이것저것 합치면, 대략 700~800크로네는 될거다.
(중략).
레기네 허접한 옷 쪼가리 한 벌 사줄 생각도 없고?
엥스트란 나랑 도시로 가면 옷 같은 건 실컷 갖게 될 거다. - P13

엥스트란 그럼 뭐 번거롭게 결혼하지 마. 그래도 돈은되니까. (더욱 은밀하게) 그 뭐냐. 영국인 말이야. 그 요트를 타고 온... 그 친구는 300스페시달레르기나 냈었다… 너보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여자한테 말이야.

7) speciedaler. 1560년부터 1875년까지 노르웨이에서 사용되었던 주화 단위, 원래 무게 30그램 미만에 함량 87.5퍼센트의 대형 은화였으며, 나중에 1달레르 이상의 액면가를 가진 지폐도 통용되었다. 2019년 기준으로 화폐 가치를 환산하면 1875년 시점의 1스페시달레르는 약 262노르웨이크로네, 우리 돈 약 3만 5000원에 해당한다. - P15

엥스트란 자고 있다 이거지. 너 알빙 도련님 생각을 끔찍이도 하는구나・・・ (은근히) 오호, 너 혹시 그 친구를...? - P16

외투 차림에 우산을 든 만데르스 목사가 작은 여행 가방을 어깨에 메고서 정원 문을 통해 온실로 들어온다. - P16

만데르스 목사 방금 도착했지. (방으로 들어간다.) 요즘비가 정말 지겹게도 오는군.
레기네 (그를 따라가며) 농부한텐 축복받은 날씨죠, 목사님.
만데르스 목사 그렇지, 맞는 말이야. 우리 도시 사람들은 미처 그 생각을 못한단 말씀이야. (외투를 벗기 시작한다.) - P17

만데르스 목사 무척 분주하겠군, 내일 일 준비하느라?
레기네 아 네, 여기 할 일이 많아요.
만데르스 목사 알빙 부인은 집에 계시고?
레기네 네, 그럼요. 도련님 드릴 초콜릿 준비하느라 위층에 계세요. - P18

만데르스 목사 고마워요, 고마워. 아주 편하군. (그녀를바라보며) 그나저나, 엥스트란 양, 지난번 봤을때보다 훨씬 성숙해진 거 같은데.
(중략).
만데르스 목사 살이 올랐다? 글쎄, 뭐 약간・・・ 딱 좋은데. - P19

만데르스 목사 아버진 그다지 강한 성격이 못 되셔, 엥스트란 양. 인도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중략).
만데르스 목사 누가 곁에 있어야 돼, 의지할 만하고, 말을 걸어 줄 사람 말이야. 지난번 날 만나러 왔을때 솔직히 인정하시더라. - P20

레기네 그렇다면 기꺼이 시내로 가고 싶을 거예요. 여긴너무 외롭거든요... 목사님도 잘 아시잖아요, 이세상에 혼자라는 게 어떤 건지. 그리고 감히 말씀드리자면, 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어요. 어디저한테 적합한 자리 아는 데 없으세요, 목사님?
만데르스 목사 나? 아니, 난 모르겠는데. - P21

만데르스 목사 이제 부인을 좀 모셔 올 수 있을까?⁸


8) 원문 표현은 "Vil De kanske være så snil at hente fruen?" 연령과 신분상만데르스 목사는 레기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지만 상대방을 지칭할 때 경칭 ‘De‘를 사용하고 있으며, 대화 추이에 따라 ‘엥스트란양‘과 ‘레기네‘라는 호칭을 번갈아 구사한다. - P21

만데르스 목사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잠시 뒷짐을 지고 서서 정원을 내다본다. 그런 다음 다시테이블 근처로 와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어 표지의 제목을 보고는 흠칫 놀라더니 다른 책들의 표지도 살펴본다.) 흠... 그것참! - P22

알빙 부인 네, 하지만 여기 집엔 이 엄마가 있잖아요. 오,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녀석・・・ 엄마를 끔찍이 생각한다니까요, 그 애가!
만데르스 목사 집 떠나 예술의 길을 간다고 해서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이 둔화된다면 그 또한 슬픈 일이 되겠죠. - P24

알빙 부인 이 책들이요? 제가 읽는 책들인데요.
만데르스 목사 이런 책을 읽으신다고요? - P25

알빙 부인 글쎄요, 전 이 책에서 제가 평소 생각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설명과 확증을 얻게 되거든요.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은요, 만데르스 목사님・・・ 사실이 책들엔 딱히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믿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깨닫지 못하거나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에요. - P25

알빙 부인 이 책들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뭐예요?
만데르스 목사 반대요? 설마하니 제가 이런 물건들이나면밀히 살펴보고 다닌다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 P26

만데르스 목사 이 책들을 반대할 수 있을 만큼은 읽었습니다.
(중략).
만데르스 목사 친애하는 부인, 살다보면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지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게 작금의 세상 이치예요. 그리고 그건 좋은 겁니다. 그렇지않다면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 P26

만데르스 목사 시종관 대신 육군대위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대위가 좀 더 겸허해 보여서요.
(중략).
만데르스 목사 그리고 이건 자금이 예치된 예금 통장입니다. 여기서 발생한 이자로 고아원 운영비를 충당하게 될 겁니다. - P28

만데르스 목사 고아원 건물을 보험에 들 건지 말 건지?
알빙 부인 물론 들어야죠.
만데르스 목사 네, 잠깐만요, 부인. 그 문제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죠. - P29

만데르스 목사 여기도 유력한 사람들ㆍ 사실상 싫은 소리를 낼 만한 유력한¹² 사람들이 꽤 있죠?



12) 원문 표현은 "meningsberettigede". 사전적 의미는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는‘, ‘발언권을 가진‘ 등이다. - P30

만데르스 목사 특정 신문과 잡지에서 보나마나 저에 대한 공격이 가해질 게 뻔하고...
(중략).
만데르스 목사 그럼 보험은 가입 안 하신다는 건가요?
알빙 부인 네, 그만둬야죠, 뭐. - P32

만데르스 목사 좋습니다. 원하시는대로 (적어 놓는다.)그러니까… 보험 가입은 안 함.
알빙 부인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하필 오늘 그 문제를꺼내시고... - P33

알빙 부인 오, 그럼요, 술만 안 마신다면...
만데르스 목사 그래요, 슬픈 약점이죠! 본인은 다리가아파서 종종 그러는 거라 하던데. 그 사람 지난번 도시에 왔을 때, 전 정말 감명을 받았습니다. 절 찾아와서는 이곳에 일자리를 구해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레기네 곁에 있을 수 있게 됐다고. - P34

만데르스 목사 유혹에 빠지려 할 때, 자신을 붙잡아 줄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에요. 야콥 엥스트란에게 호감이 가는 건 바로 이지점입니다. 무력한 모습으로 다가와 스스로를비난하고 자신의 약점을 고백한다는 거예요. 지난번에 왔을 때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들어 보세요, 알빙 부인, 내심 레기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면 하던데… - P35

알빙 부인 자, 소감이 어떠세요, 만데르스 목사님?
만데르스 목사 난... 난... 아니, 이게 바로 그…?
오스발 네, 바로 그 방탕한 아들입니다, 목사님.
만데르스 목사 아니 이 젊은 친구가.. - P37

만데르스 목사 인간의 눈엔 위험해 보이는 일들이 너무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악수하며)어쨌든 잘 왔네, 잘 왔어! 친애하는 오스발... 그래, 그냥 이름을 불러도 괜찮겠지?
오스발 그럼요, 달리 뭐라 부르시겠습니까? - P37

알빙 부인 화가도 가끔은 쉬어야지.
만데르스 목사 그럼요. 뭔가 큰일을 준비하려면 힘을 비축해야지.
오스발 네・・・ 어머니, 우리 식사해야죠? - P38

만데르스 목사 아까 오스발이 파이프를 입에 물고 문가로 들어서는데, 생전의 제 아버지를 보는 거 같더라고요.
(중략).
알빙 부인 오, 무슨 그런 말씀을! 오스발은 날 닮았어요. - P39

만데르스 목사 거참 희한한 일이네.
알빙 부인 오스발이 그냥 꿈을 꾼 거예요.
(중략).
만데르스 목사 젊었을 땐 아주 쾌활한 사람이었지.. - P40

만데르스 목사 거 보세요. 네, 뭐 본인 앞에서 얘기해도 상관없겠네요. 아드님의 경우 결과가 어떻습니까? 나이 스물예닐곱이 되도록 제대로 된 가정¹⁵이 어떤 건지 경험할 기회가 없었잖아요.


15) 이후 만데르스 목사와 오스발의 대화는 단순히 물리적인 ‘집(hos)‘이 아닌 ‘가정(hjem)‘을 화두로 삼고 있다. - P42

만데르스 목사 내 말은, 독신자 가정 말고. 내가 말하는집이란, 가족이 사는 가정을 뜻하는 거지, 남편과 아내와 아이들이 사는 곳 말이야. - P43

만데르스 목사 그러니까 자넨 비합법적인 관계를 말하는 거군! 소위 방종한 결혼¹⁶ 말이야!


16) 원문 표현은 "vilde ægteskaber", 직역하면 ‘야생의 결합‘ 또는 ‘야합(野合)‘, ‘거친 결혼‘을 뜻한다. - P44

만데르스 목사 (개의치 않고) 그러고 보니 당국에서 그런 일을 묵인하는 게로군! 공공연하게 그런 일이벌어지도록 말이야! (알빙 부인에게)이러니 제가 아드님에 대해 심히 우려를 나타낸 것도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드러내 놓고 부도덕이 횡행하는 그런 집단에서... - P45

알빙 부인이 말없이 그를 쳐다본다.

만데르스 목사 (이리저리 서성이며) 스스로 방탕한 아들이라 했던가요. 그렇군요, 안타깝게도... 안타깝게도!

알빙 부인이 여전히 그를 쳐다본다. - P47

만데르스 목사 부인께선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나락으로 떨어질 뻔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집과 가정을 버렸던 일, 남편 곁에서 도망친 일이요… 그래요, 알빙 부인, 도망쳤죠, 도망쳤어요, 그리고 그가 아무리 간청해도 한사코 돌아오길 거부하셨잖아요?¹⁸ - P49

만데르스 목사 전 전능하신 분의 뜻에 따라 쓰이는 하찮은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부인을 의무와 순종의 길로 인도한 이후 부인의 삶이 큰 축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요? (후략). - P51

(전략).
만데르스 목사 그 결과 부인이 저 아이한테 낯선 사람이돼 버린 겁니다.
알빙 부인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요!
만데르스 목사 아뇨, 그렇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돌아온 아드님이 어떻게 변해 있던가요! (후략). - P52

알빙 부인 (천천히 그리고 자제하며) 이제 말씀하신 거네요, 목사님. 그리고 내일 공식적으로 내 남편을기리는 추모 연설을 하실 거구요. 전 내일 아무말 안 할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목사님이 제게 하셨던 것처럼 저도 목사님께 말 좀 하고 싶네요. - P56

알빙 부인 하지만 이제, 만데르스,²⁰ 이제 제가 진실을말씀드릴게요. 언젠가 스스로 다짐한 적이 있었죠, 언젠가 당신 꼭 알게 될 거라고. 당신만큼은!
만데르스 목사 그 진실이라는 게 뭡니까?
알빙 부인 사실인즉, 제 남편은 평생 그랬듯이 죽는 날까지 방탕했다는 거요.


20)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부르는 걸로 보아 분명 사적으로 더욱 친밀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 P55

만데르스 목사 그보다 더 역겨운 일!
알빙 부인 난 그이가 집 밖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돌아다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했어요. 하지만 막상 그 일이 우리 집에서 벌어지니까…만데르스 목사 아니 어떻게! 여기서! - P57

(전략).
알빙 부인 난 곧 깨달았어요, 뭘 믿어야 할지. 시종관선 하녀를 마음대로 범하셨고... 그 관계가 결과물을 낳은 거죠, 만데르스 목사님.
만데르스 목사(마치 돌처럼 굳은 듯) 이 집에서 그 모든일들이! 이 집에서! - P58

알빙 부인 어린 아들을 위해 참았죠. 그런데 그 마지막모욕을 겪은 거예요. 내가 부리던 하녀. 그때 난나 자신에게 맹세했어요. 이 일을 끝내야 한다! 그래서 집안의 통제권을 틀어쥐었죠… (후략).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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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타・・・・・・ 만약 원하던 대로 편집국에 배치됐다면 정말 우수한 기자로 성장했겠지.‘
이와타가 고작 보름도 걸리지 않아 알아낸 진상에 다다르기까지 구마이는 10년을 허비했다. - P271

그래도 구마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증거를 찾아내면 돼. 그러면 경찰도 움직일 수밖에 없겠지.‘
그것이 미궁으로 들어서는 입구였다. - P272

그로부터 몇 년 후, 흐름이 바뀌었다. 뜻밖의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 P272

이와타는 미우라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아내고자 했다.
둘 다 실물을 보지 않고 산줄기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두 사람이 꼭 동튼 후에 살해당했다고 볼수는 없다.  - P273

그리고 나오미가 범인이라면 내내 마음에 걸렸던 의문이풀린다.
범인은 왜 그림을 현장에 남겨두었는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 P274

범인은 일부러 그림을 현장에 남겨둔 것이다. ‘산줄기 그림‘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275

새로운 실마리를 얻은 것을 계기로, 구마이는 나오미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나오미의 내력이 드러날수록 ‘좀더 빨리 조사해야 했다고 후회했다. - P275

하기오는 그리움이 담긴 말투로 이야기해주었다.
"(전략). 나오미는 보호 본능이 강해서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지키고 싶어하는 성격이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구마이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에 착착 들어맞았다. - P276

틀림없다. 동기는 ‘아이‘다. - P277

결과적으로 미우라는 아내를 감싼 셈이다. 왜일까. - P277

곤노 나오미

죽기 전에 남편은 뭔가 말하려고 했다. - P277

모든 일을 마치고 산을 떠나기 직전, 나오미는 남편의 바지에서 그림을 발견했다. 엄청난 속도로 머리를 굴린 끝에 ‘이 그림은 여기 남겨두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 P278

이게 끝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경찰과 취재진에게 거짓말로 일관해야 한다. (중략).
내가 체포되면 다케시는 부모를 잃는다. 외톨이가 된다.  - P278

완벽하게 해냈다는 자신은 없었다. - P278

(전략). 그때 문득 남편의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역시 그 그림을 현장에 남겨놓길 잘했다. (중략).
다행이다. 다케시 혼자 남지 않아도 된다....그렇게 생각하다 흠칫했다.

어쩌면 남편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 P279

남편이 죽은 후, 집은 예전보다 떠들썩해졌다.
도요카와와 남편의 제자인 가메이도 유키가 나오미와 다케시를 걱정해 자주 놀러 왔기 때문이다. 도요카와는 식료품을 가져왔고, 가메이도는 부엌일을 돕고 다케시도 돌봐주었다. - P280

어느 날 밤, 넷이서 전골 요리를 먹은 후 유키와 다케시는근처 가게에 과자를 사러 갔다. 

(중략).
도요카와가 음흉한 얼굴로 나오미의 귀에 속삭였다.
"나, 그날 밤 8부 능선에 있었어." - P280

"그만해... 곧 두 사람이 돌아올 거야…………."
"응, 그러니까 그 전에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
"무슨 이야기를?"
"시치미 떼지 마. 실은 나도 그날 미우라를 죽이려고 했어." - P281

되는 대로 지껄이는 말은 아니었다. ‘입에 밥을 쑤셔 넣고.‘.......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도요카와는 정말로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 P281

"이만 단념해, 이 망할 년아. 학생 때 나랑 미우라를 저울에 달면서 실컷 가지고 놀다가, 미우라가 청혼하니까 대번에 나를 버린 거………… 안 잊어버렸어. 난 말이야…………. 너희 부부의 행복을 박살내는 꿈만 꾸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이 남자도 죽여버릴까…………. 나오미는 몹시 망설였다. - P282

(전략).
그 이유는 다음 날 아침에 알았다. (중략).
히죽거리던 도요카와의 얼굴이 떠올라서 소름이 끼쳤다. - P283

나오미는 마음속에서 시커먼 살의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도요카와가 전근을 갔기 때문이다.  - P283

사건을 저지르고 3년이 지난 1995년 9월 가메이도 유키가오랜만에 집에 놀러 왔다. (중략). 같이 밥을 먹은 후, 가메이도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도요카와 씨가 지금 어디 사는지 아세요?"
(중략).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나 수사도 거의중단된 상태인데, 왜 이제 와서?
"그 사람, 우리 남편이랑 무슨 관계라도 있나?"
"미우라 선생님의 제자였대요." - P284

구마이 이사무


구마이는 침대에 누워 자기 어머니를 떠올렸다.
몸이 홀쭉했던 아버지와 달리, 나무통처럼 펑퍼짐했던 어머니는 늘 웃는 얼굴에 술을 마실 때도 호쾌했다. (중략).
과연 어머니와 나오미는 뭐가 다를까. - P285

곤노 나오미

나오미는 이와타와 도요카와를 죽일까 말까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중략).
하지만 도요카와를 살려두면 그건 그것대로 위험하다. 그는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 - P286

모든 일을 마친 후, 나오미는 다케시를 데리고 도망치듯 도쿄로 이사했다. 집세가 아주 저렴한 맨션 6층에 집을 얻고, 근처 산부인과에 취직했다. - P286

1주일 후, 다케시는 나오미가 시킨 대로 ‘여자친구‘를 집에데려왔다. 그 얼굴을 보고 나오미는 다리가 풀릴 뻔했다.
"유키......?"
다케시의 여자친구는 남편의 옛 제자이자 L현에 살던 시절집에 자주 놀러 온 가메이도 유키였다. - P288

(전략). 유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12년 만의재회였다. 유키는 서른세 살, 다케시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 P288

어릴 적부터 흠모했던 사람이 고생한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은 다케시는 생활비에 보태라며 없는 형편에도 한 장뿐인 1만엔짜리 지폐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유키는 돈을 받지 않았다. - P289

나오미는 복잡한 심경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유키와 다케시를 ‘터울이 진 남매처럼 여겨왔다. 그런 두 사람이 사귀다니 아무래도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본인들이 서로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다. - P290

그로부터 1년 후,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했다. - P290

그러다 유키가 갑자기 표정을 다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중략).
"저・・・・・・ 미우라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죽은 내 남편 말이니?" - P291

그런 일은 있었지만, 세 사람의 새로운 생활은 순조로웠다.
유키는 전업주부로서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덕분에나오미와 다케시는 퇴근한 후 느긋하게 쉴 수 있었다. - P292

나오미는 두 사람을 축복했다.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유키의 배가 커질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 P293

나오미는 자각했다. 나는 아직 어머니이고 싶은 것이다. 유키가 없는 세상에서, 아기의 어머니가 되고 싶은 것이다. - P293

하지만 나오미가 일하는 산부인과는 보통이 아니었다. (중략). 업무 대부분을 조산사에게 떠맡기고,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병원을 돌아다나는 게 그의 일과였다. - P294

병원에서 나오미에게 참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294

2009년 9월 10일 오전 10시에 진통이 시작됐다.
유키는 오후 6시에 분만실로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중략). 조산사 한 명이 소리쳤다.
"뭐야! 혈압이 왜 이렇게 높아?!" - P295

다음 날 아침, 나오미는 유키에게 캡슐 알약을 세 개 주면서 말했다.
"유키, 다케시한테 들었는데 요즘 빈혈이 심하다면서? (중략) 나도 임신했을 때 이걸 매일 먹었어. 효과를 많이 봤단다."

캡슐의 내용물은 소금이었다. - P296

급히 제왕절개를 실시해서 가까스로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다. 산모는 구하지 못했다.
유키는 뇌출혈을 일으켰다. (중략). 출산 직전에 기록된 진료 차트만 봐도 유키의 혈압은 정상치였다. - P297

다케시를 구슬리기는 간단했다. 몇 살을 먹어도 나오미의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다.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볼 때가많았지만, 유타에게는 꼭 ‘엄마‘라고 부르게 했다. - P298

하지만 유타를 어를 때도, 밥을 먹일 때도, 가족 셋이서 공원에 놀러 갈 때도 늘 죄책감이 나오미를 따라다녔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목을 부러뜨렸을 때, 나오미는 조금도자책감에 시달리지 않았다. - P298

유키에게 소금을 먹였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가…………나오미는 깨달았다. 이번만큼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살인이었다.
‘영원히 엄마로 있고 싶다‘, ‘엄마라는 호칭을 잃고 싶지 않다‘ ・・・・・・ 단지 그러한 욕심 때문에 그 착한 아이를, 다케시를 사랑해준 여자를 죽이고 말았다. - P299

그날은 난데없이 찾아왔다.
(중략). 다케시는 자기 방에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됐다. - P299

다케시가 운영하던 블로그에 자살하기 전날 올린 글이었다.

(중략).

그것은 나오미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 P300

시체에서 아기를 끄집어내는 할머니 그림. 바로 나오미 그자체였다.
유키는 눈치챘던 것이다. 나오미의 살의를 언제부터였을까. - P300

하지만 나오미가 택한 방식은 너무 간접적이었다. ‘캡슐 알약에 소금을 넣어 먹이는 행위는 범죄가 아니다. 발각된다 한들 얼마든지 발뺌할 수 있다. - P301

‘당신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 당연하다. 사랑하는아내를 빼앗겼으니까.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하지만 다케시는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만큼 다케시에게 나오미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상반되는 두 감정에 괴로워하던 끝에 다케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P302

구마이 이사무

(중략).
하지만 외상이 점점 나아가는 한편으로, 몸은 시시각각 좀 먹히고 있다. - P303

구마이는 그날 현경으로 가서 한 남자를 만났다.
구라타 게이조……………. 기자 시절에 제일 사이좋았던 형사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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